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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수 치마 / 전문 / 송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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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수 치마 / 송영

 

 

1

연순(然順)이는 시계 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었다. 분홍 모기장은 전등불빛에 어렴풋이 붉게 보였다.

그의 잠 취한 얼굴은 이 붉은빛에 잠기었다. 머리는 푸수수하게 흐트러져 있다.

흰 지지미 속적삼은 땀이 배어서 좁은 어깨와 볼통한 젖가슴에 착붙어 있었다.

모기장 밖에서는 앵앵거리는 모기 소리가 난다.

그리고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도 난다.

그리고는 모두가 고요하다. 깊은 여름밤이다.

"입때 아니 들어오나."

그는 입 속으로 종알거리면서 기지개를 켰다.

그의 반짝 쳐드는 두 팔 겨드랑이 밑은 분홍 물결에 고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는 홑이불을 덮은 대로 바스스 일어나서 눈을 비비고 모기장 밖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지금 친 소리는 오전 두시였다.

"에이구 오늘도 회를 하는 모양이로군."

하면서 하품을 하였다.

안방에서는 아까까지 주정을 하던 시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났다.

창문과 미닫이를 열어 놓았는데도 방 안은 훈훈하였다.

밤이 깊었건만 바람 한 점도 없었다.

모기장은 꼼짝도 아니 했다.

푸수수한 머리칼이 덮인 그의 하얀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스며 나오고 있다.

"아휴 더워."

그는 홑이불을 벗어 버리고 벌떡 일어섰다.

모시 치마는 후줄근하게 구겨졌다.

그는 어느 때나 그의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는 옷을 입고 잔다.

겨울에는 두루마기까지 입고 그대로 이불 위에 뒹굴어져서 기다린다.

지금 같은 더운 때에도 치마도 벗지를 않고 드러누워서 기다린다.

어느 때는 온밤을 그대로 새우기도 한다.

잠을 지새 자면서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 놀라 깬다.

바람에 창문만 펄쩍 해도 기급을 해서 일어나서 미닫이를 열고 내다도 본다.

그의 남편은 언제든지 밤이 깊어야 들어온다. 어느 때는 새벽녘에도 들어오고 어느 때는 그 이튿날 아침에도 들어온다.

아침에 돌아올 때에는 그의 남편의 얼굴은 홀쪽하다.

두 눈이 넘어갈 듯이 헐떡하고 목소리는 감기든 사람같이 쉬어 있었다.

그리고 두 어깨는 축 늘어지고 얼굴빛은 거멓게 되어 있었다.

온밤을 그대로 새우고 들어왔다는 것을 역력히 나타내고 있었다.

연순이도 온밤을 설잤기 때문에 두 눈에는 잠이 가득 차고 얼굴은 빨개져 있었다.

그러나 연순이는 뱅긋이 웃으면서 그의 남편을 맞이한다.

"어제도 회에서 늦으셨어요?"

"음, 졸려 죽겠는걸. 어떻게 바쁜지 그럭저럭 밤을 새웠어."

"그럼 오늘은 못 들어가시게."

"안 들어가면 되나. 어서 밥 채려요."

그의 남편은 허둥지둥 아침상을 받고 나서는 그냥 그가 출근하는 관청으로 줄달음질을 쳐서 간다.

2

그의 남편은 그보다 세 살밖에 더 안 먹은 이십이 세의 청년이다.

연순이가 열여덟 살 때 이십일 세 먹은 그와 혼인을 하였다.

그의 남편은 연순이의 큰오빠의 친한 친구였었다.

이 두 사람의 혼인도 큰오빠의 주선으로 되었었다.

그의 남편은 큰오빠와 같이 문학에 미친 청년이었었다.

언제든지 두 청년은 금글자 놓은 양장한 외국소설을 옆에다 끼고 돌아다녔다.

두 청년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떨어질 줄을 모르고 밤을 새워 가면서 고담과 준론을 주고받는다.

오빠가 남편의 집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고 남편이 오빠집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나 대개는 오빠집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많다.

그때 오빠는 종로 어느 약방에 점원으로 다니면서 겨우 어려운 집안의 호구를 시켜 가고 지냈었다.

남편은 지금까지도 다니는 어느 관청의 사무원으로 지내 갔었다.

두 청년은 겨우 보통학교들만 마치고 다른 동무들이 상급학교로 들어가서 양복에 구두를 신고 다니는 때에 그들은 새로 산 캡을 어색하게 쓰고 점원으로 사무원으로 변하여들 버렸다.

두 청년은 같이 가난하고 같이 직업 전선으로 일찌감치 나가고 또 같이 문학을 좋아하는 것이 더 원인이 되어서 형제 이상으로 지내 갔던 것이다.

남편 될 청년이 오빠와 같이 한 칸 사글셋방 윗목에 가 앉아서 떠들고 있을 때는 연순이는 어머니와 같이 아랫목 벽에 가 돌아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연순이는 보통학교 이학년밖에 못 다녔다.

국문만은 환―하게 깨쳐서 소설책이나 신문 삼면만은 겨우 뜯어 보고 지냈다.

그래서 오빠 책상에 금글자 박힌 두꺼운 양책을 볼 때에는 공연히 울 것같이 쓸쓸하여졌다.

그가 들어 있는 사글셋방은 목사님 아랫방이다. 안채 목사에게는 딸이 형제가 있다.

큰딸은 동경에서 여자대학을 다니고 둘째딸은 서울 어느 여자고등 보통학교에를 다닌다.

둘째딸은 연순이보다 두 살이나 나이가 적다. 연순이는 이 안챗집 두 딸을 한없이 속으로 부러워하였다.

그 중에도 한집안에 있는 둘째딸이 더 부러웠다. 검정 세루 치마를 무르팍까지 올라오게 가뜬하게 입고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수틀과 책보를 들고 해득해뜩하게 다니는 그의 활발한 자태를 바라볼 때에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

 



다 더러운 분홍 치마에 머리때 묻은 노랑 저고리에 헤어진 행주치마에 뒤꿈치 찢어진 고무신조각에 파묻혀 있는 자기 자신의 자태는 분하고 원통할 만치도 남이 부끄러웠다.

둘째딸은 영어도 한다. 어떤 때는 독창도 한다. 그리고 밖으로 맘대로 놀러도 나간다.

그러나 자기는 밖은커녕 낯 서투른 남자만이 찾아와도 부엌으로 피신을 한다.

독창은커녕 크게 웃기만 해도,

"계집애년이 왜 단정치가 못하냐."

하는 어머님의 꾸중 소리를 듣는다.

혹시 일갓집으로 갈 일이 있어도 행주치마를 푹 뒤집어쓰고 눈 하나만 빼꼼히 내놓고 땅만 내려다보고 지척거린다.

가끔 둘째딸에게는 역시 둘째딸 같은 여학생 동무들이 몰려온다.

대청이 떠나가라 하고 그들은 웃고 떠든다.

남자 이야기도 하고 세상 이야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말도 하고 영어도 한다.

연순이는 이런 때는 방 안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옷 입은 모양, 머리 땋은 모양, 걸음걸이, 활갯짓, 모든 것이 '구식'인 자기의 동정을 보이기가 싫었다.

그들이 노골적으로 말들은 아니 하나 가끔 흘깃흘깃 쳐다보는 것은 순전히 자기를 업수이여기고 깔보는 것 같았다.

어떤 때 그들은 자기를 보고 웃고서 일본말로 지껄이기도 한다.

'엥이 망할년들, 학교에 안 다니는 여자라고 막들 놀리는구나.'

'분해.'

연순이는 못 견뎌서 쥐어뜯기도 했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때는 신식 세상이다. 남녀나 노소를 물론하고 모두가 신식만을 좋아하는 세상이다.

무식한 여자, 구식 여자!

그는 '구식 여자'라는 소리를 듣고 지내는 것은 마치 송곳으로 찔리는 듯이나 온몸이 괴로웠던 것이다.

그러나 연순이는 큰오빠를 믿고 살아왔다.

큰오빠는 어머니같이 완고스럽게 야단도 치지를 않고 둘째딸 축같이 경멸도 하지를 않았다.

가끔 큰오빠는 말한다.

"집안이 가난하니 너나 나나 공부는 못 한다. 그러나 사람은 공부만이 제일이 아니다. 첫째가 마음이다. 뜻이다. 우리들은 굳세고 용감하고 대담한 마음을 언제든지 가지고 지내 가자. 여학생은 허영심이 많다. 구식 여자는 완고에게 지기만 한다. 그러나 너는 허영심도 없고 완고스럽지도 않다. 언문 한 자라도 눈을 홉뜨고 독학을 해라. 그리고 마음을 크게 먹어라. 나는 언제든지 너를 뒤받쳐 주마."

대개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리고 틈만 있으면 세상 이야기, 지구 이야기, 사회는 어떤 것이다, 남녀동등이란 이러저러한 것이다, 모든 것을 자세히 알려 준다.

어느 때는 세상에 유명한 여자의 전기(傳記)도 이야기하여 준다.

연순이는 글자에는 무식하지만 상식만은 높아 갔다.

세상이 어떻다고 비판은 할 줄 모르나 세상이 어떻다는 이해만은 가졌다.

그리고 오빠가 말한 '용감하고 대담하고 넓고 굳센 마음'이 그의 좁은 가슴속에서 모락모락 자라 가고 있었다.

그의 남편 될 청년과는 큰오빠의 주장으로 내외를 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언제든지 단 한 칸 방에서 윗목 아랫목에 앉아서 밤을 새워 가면서 지내 갔던 것이다.

3

연순이는 이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사람도 오빠요 따라서 제일 훌륭한 청년도 큰오빠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다고 구체적인 이론은 물론 안 가졌다. 무조건이요 일종의 맹목적이다.

무슨 책인지를 몰라도 책상 위에 양책이 쌓인 것만 보아도 큰오빠는 유식한 것이다.

무슨 말인 줄은 몰라도 남편과 밤을 새워 가면서 언전을 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훌륭한 말을 주고받는 것일 것이다.

더욱이 큰오빠는 담배도 아니 먹고 술도 반대를 한다.

밤에 극장도 아니 가고 '이 자식', '저 자식' 하는 막된 친구도 한 사람도 없다.

온종일 약방에서 일을 보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든지 책만 본다.

혹시 남편이 찾아오면 역시 '이러셨어요', '그랬습니다' 하는 점잖은 어조로 듣기에도 어려운 이야기로 세월을 보낸다.

이래서 연순이는 큰오빠를 숭배하고 믿었다. 따라서 큰오빠와 한짝인 남편 될 청년도 숭배하고 믿어졌다.

큰오빠와 남편 될 청년은 신식 중에서 더 신식 청년들이다.

중학교나 대학교들은 아니들 다녀도 보는 책은 대단히 어렵고 두꺼운 책이다. 이야기도 알아들을 수도 없을 만한 매우 유식한 이야기다.

그러나 머리에 기름이나 바르고 다니는 모양 낸 신식 청년들도 아니다.

모든 이런 점들은 그로 하여금 두 청년을 믿고 사랑하게 만들었다.

연순이가 열일곱 살 되던 봄에 그의 큰오빠는 동경으로 고학을 목적하고 달아나 버렸다.

그 뒤부터는 그의 동무 청년도 찾아오지를 않았다. 혹시 찾아와도 그전같이 방으로도 들어오지도 않고 또 어머니가 들이지도 않고 해서 대문간에만 잠깐잠깐 섰다가 간다.

연순이도 이제는 아주 처녀가 되었다고 내외를 시켰다.

큰오빠가 떠나간 것은 연순이의 행복과 자유가 떠나간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 가지의 기쁨과 믿음이었던 큰오빠는 자기 누이에게 또다시 쓸쓸한 생활을 남겨 놓고 지나갔다.

그 뒤에 큰오빠는 편지로써 두 편 집에 주선을 하여서 연순이와 그의 동무를 결혼을 하게 하였다.

연순이는 대단히 만족하여 하였다.

남편은 물론 신식 청년이다. 자기 같은 구식 처녀와 결혼을 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신식 여학생과 결혼하려니 하던 자기의 추상이 깨뜨려진 까닭이다.

남편이 고맙기만 했다.

처녀의 순진스런 첫사랑은 이 같은 감격성을 띠고 있었다.

남편은 자기가 연상한 것과 같이 매우 유순하고 활발하고 관대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큰오빠 모양으로 술 담배도 아니 먹고 '이 자식' 친구도 없고 극장에도 아니 가고 책만 보고 글만 썼다.

그리고 조금도 '무식한 여자'라고 경멸하지도 않고 '구식 여자'라고 상도 찡그리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모르는 것은 자세히 일러 주고 일깨워 주었다.

밤이면은 틈 있는 대로 쉬운 산술도 가르쳐 주고 한문자도 알려 주었다.

그리고 큰오빠 모양으로 별별 이야기를 다 들려 주었다.

그보다도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하여 주는 데에 취하여 버렸다.

그의 남편은 무엇 하는 단체인지는 모르나 하여간 훌륭한 세상 일을 하는 곳이란 것만은 짐작하였다.

그 단체에는 여자도 많았다.

가끔 그의 남편은 여자 회원과 가지런히 나가면은 으레 늦게 들어온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그의 남편을 의심치는 않았다.

그는 남편도 믿었지만 남편을 소개한 자기의 큰오빠의 말을 더 믿었다.

"얘, 영로는 보통 신식 청년과는 다르다. 조금도 해뜩거리지도 않는다. 길에 갈 때에도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도리어 고개를 숙인다."

이러한 자기의 남편이며 더욱이 세상 일을 넓게 아는 훌륭한 사람이니 아무리 여자와 같이 다녀도 탈선은 하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를 않으면 잠만은 깊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4

결혼한 지 반년도 못 되어서 그의 남편은 관청에서 쫓겨났다.

종업원 친목회라는 것을 조직해 가지고 여러 가지로 활동을 하던 것이 당국에서 사상운동으로 오해를 당해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몇 번 시말서를 쓰다가 기어코 희생이 되었던 것이다.

시아버지는 착실한 아들이 어쭉대다가 밥줄까지 끊어뜨렸다고 화풀이로 술만 먹고 지내 간다.

전에는 술을 먹어도 나비 같은 새 며느리를 귀여이 여기는 마음으로 껄껄 웃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을 잔뜩 찡그리고 아들을 야단치고 아내를 들들 볶고 며느리의 비위를 건다.

날마다 밤이면 술이 취해 들어오면 아들을 불러 앉히고 두 시간 세 시간씩이나 야단을 친다.

"이놈아 너도 정신을 차려야지."

"이제는 너도 홀몸도 아닌 터에 늙은 부모는커녕 젊은 계집까지 굶겨 죽일 모양이냐?"

"의식족이 지예절(衣食足而知禮節)이라고 먼저 먹어야 아니 하니?"

"네까짓 녀석들이 떠든다고 삐뚤어진 세상이 바로잡히겠느냐?"

이와 같은 내용을 가지고 백번 천번씩 되풀이를 하면서 악을 악을 쓴다.

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벙어리같이 듣고만 앉았다.

건넌방에 앉아 있는 연순이는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만 해졌다.

'완고 노인들은 할 수가 없어…….'

'참 케케묵었어. 그러니까 세상이 요 모양이지.'

하면서 혼자서 분개도 하였다.

어느 때는 후닥뚝딱 안방으로 건너가서,

"아버지는 왜 이렇게 케케묵은 소리만 하세요?"

하고 한번 호되게 집어세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는 차마 일어서지지가 않았다.

아주아주 참다참다 못해서 어느 때는 눈물까지도 난다.

몇 시간 뒤에 시아버지가 술기운에 못 이겨서 쓰러진 뒤에야 남편은 건너온다.

남편의 얼굴은 매우 우울하여 보이나 역시 아무 소리도 없었다.

연순이도 그저,

"어서 주무셔요."

하고 쳐다만 본다.

그러면 남편도,

"응, 퍽 졸린데."

하면서 그냥 자리 속으로 들어간다.

연순이도 따라 들어가서 아무 소리 없이 옆에 가 눕는다.

남편은 아무 소리 없이 연순이를 껴안는다.

연순이도 아무 소리 없이 바싹 껴안긴다.

그럴 때면 연순이의 눈에는 눈물이 팽 돈다.

남편은 슬그머니 그의 눈을 만져 보고서,

"흠 괜찮어."

하면서 빙긋이 웃는다.

"누가 어쩌나요, 호."

하면서 연순이도 뱅긋이 웃는다. 그리고 두 부부는 감격에 잠겨서 더한층 바싹 달려들어서 한뭉치가 되어 버린다.

5

시어머니도 친어머니답게 귀여워했다.

그러나 아들이 실직한 뒤부터는 다소 그 태도가 변해졌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실직한 뒤에 여러 군데로 무꾸리를 다녀 보았다.

유명한 무당과 판수에게 또는 전래꾼에게로 돌아다녀 보았다.

불사님 모셨다는 곳이나 최일 장군을 모시고 있다는 곳이나 관성제군, 백보살, 모든 영하다는 곳은 다 돌아다녀 보았으나 그 결과는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뿐이다.

며느리가 들어와서 집안이 느는 수도 있고 망하는 수도 있다.

며느리는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사주(四柱) 관계로 그 집안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시어머니는 보통 구식 아낙네 모양으로 한개의 미신의 화신(化神)이다.

무당의 말은 조상의 말보다도 더 하늘같이 안다.

연순이의 하는 꼴은 모두가 만점이다.

진일 마른일에 거치는 일이 없이 재빠르고 얌전하다.

어른 아이에게 하는 일이 하나도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없다.

게다가 인사성이 있고 사람의 마음을 잘 맞춘다. 남편을 공경하나 음란하게 하지는 않는다.

팔모로 뜯어보아도 부족한 점은 하나도 없다. 그야말로 며느리다운 며느리였었다.

그러나 그의 사주에는 살이 있다.

문제는 이 집안을 망하게 하고 남편을 괴롭게 하는 요악스런 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직접 며느리에게는 말은 아니 하나 일갓집 여편네 축들과 만나면 수군거린다.

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이리저리 굴러서 연순이의 귀로 들어온다.

아무리 이해가 깊은 남편에게 의지하여서 지내지만 이 같은 시집 쪽 여편네 축들에게 원성을 들을 때에는 기분이 좋지를 못했다.

"왜 또 그래. 흥 무슨 소리를 들은 모양이로군…… 허…… 엥이 바보."

가끔 눈치를 챈 남편은 연순이의 잔등이를 툭툭 치면서 이같이 웃는다.

"호, 왜 내가 바보예요."

하면서 연순이도 따라서 웃는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대단히 명랑하여진다.

이렇게 지내 오기를 만 일년이나 하였다.

남편은 여전히 직업을 얻지를 못하고 회에만 미쳐서 다닌다.

전에는 관청에서 다녀 나온 뒤에 노는 시간에나 다니던 곳을 요사이는 주야를 헤아리지를 아니하고 전문으로 종사를 한다.

어느 때는 며칠씩 나가서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럴 때면 으레 시아버지의 주정은 늘고 시어머니의 사색도 달라진다.

남편이 회에 열중이 되면 될수록 집안에 들어앉았는 연순이의 고통은 점점더 무거워만 갔다.

 



6

오늘 밤에도 시아버지는 한바탕 화를 내고 곯아떨어졌다.

남편은 아직까지 돌아오지를 않았다.

연순이는 모기장 밖으로 나와서 들창을 내다보았다.

검푸른 여름 하늘에는 투명한 별이 가득 차서 있다.

은하수는 앞집 지붕 위에 반쯤 걸려서 있었다. 처마 밑 어둑한 곳에는 모기 소리가 꿈속같이 잠겨 있었다.

어느 때인가 결혼한 지 얼마 아니 된 때였었다. 연순이는 남편과 같이 자기 집 뜰 앞에 서서 있었다.

그때도 여름이요 또한 깊은 밤이었었다. 하늘도 역시 검푸르고 투명한 별들도 은하수에 잠겨 있을 때다.

마침 시부모는 일갓집 제사 참례를 가고 집 안에는 그들만이 있었었다.

연순이는 연두 적삼에 분홍 치마를 입고 있었다.

"여보, 저것 보."

"뭐요."

"별 말요."

"별이 어쨌단 말예요."

"별 뒤는 넓은 하늘이 아니오. 우리들의 장래도 저같이 넓고 자유스러울걸!"

"그럼요."

"그런데 이봐 지금 세상에 부부라는 것은 화락하게만 지낼 수가 없어. 우리들도 이렇게 지내다가 언제 어떻게 헤어질 줄 아나."

"그럼."

"부부라는 것은 첫째가 서로 돕고 지내 가야 하는 거야. 서로 맞붙잡고 일을 해야 하는 거야."

"누구처럼 지도라도 그리란 말이지."

"암, 하여간 이해만이라도 가져야 해……."

"그럼."

두 부부는 멀리 여름 하늘을 쳐다보면서 속삭거렸다.

지금 연순이는 또 이 생각이 났다.

언제든지 가끔 그날 밤의 생각이 났다.

별 뒤의 넓은 하늘, 한없이 넓은 하늘.

아까 이른 아침에 남편은 같은 단체의 회원인 안경 쓴 여자가 찾아와서 같이 나갔다.

그때는 별안간 소낙비가 쏟아졌다. 남편은 그 여자 회원과 같이 한 우산을 받고 나갔다.

그 여자 회원은 그의 남편과 한 우산 속에서 연순이를 돌아다보고 생긋 웃으면서,

"모시고 나가서 미안합니다."

"온 천만에요, 호…… 얼마든지 모시고 나가 주세요."

하면서 쾌활하게 웃었다.

남편과 그 여자는 쾌활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그 여자는 행길 가는 사람이 쳐다보는 것도 관계치 않고 남자 이상으로 활달하게 크게 웃으면서 사라졌다.

연순이는 대문에 기대 서서 그들의 뒷모양이 사라진 골목길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쓸쓸한 생각이 났다.

'이해만 가지면 무슨 소용이 있나. 같이 일을 해야지.'

하면서 그 여자의 유식한 말과 쾌활한 행동이 대단히 부러웠다.

'나는 못난 년이야.'

'왜? 공부를 못 하였을까?'

자기 자신이 불쌍하였다. 부모가 원망스러웠고 세상이 귀찮았다.

'나도 어떻게 하면 저 여자같이 되어 보나.'

하면서 가슴이 터질 듯이 쓸쓸하였다.

지금도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남편은 아까 그 여자와 또 다른 활발한 여자들과 또 다른 남편 같은 남자들과 한데 모여 앉아서 세상 일을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이해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흥, 나는 병신이야.'

저절로 눈물이 팽팽 돌았다.

7

남편은 세시나 되어서 돌아왔다.

그는 삼동주 루바슈카를 입고 백세루 바지를 입었다. 머리는 길죽하게 길러서 뒤로 젖혔다.

"아니 입때 안 잤소."

"아뇨, 실컷 자고 지금 깨었어요."

하면서 생긋하고 웃었다.

남편은 무엇인지 걱정이 있는 모양으로 다소 얼굴이 흐려져서 있다.

"아니 무슨 걱정이 계셔요?"

"음, 글쎄."

하면서 입맛을 다신다. 연순이는 또 쓸쓸하여졌다.

가끔 남편은 무슨 걱정을 하다가도 연순이가 물어 보면 '아니'라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너는 알아도 소용이 없다'는 듯이 껄껄 웃어 버리고 만다.

그럴 때면 연순이는,

'내가 오죽 무식해야 남편까지라도 상대를 아니 하여 주나' 하는 욱한 생각도 나고 또 한편으로는 쓸쓸한 적막도 느낀다.

그러다가 스스로 돌려 생각을 한다.

도적이 제 발이 저리다고 내가 너무 지나치게 오해를 하는구나. 아무리 남편이라도 하지 못할 말도 있겠지. 더욱이 큰일하는 데에는 비밀이 제일이라는데…… 하면서 억지로 마음을 다잡아서 명랑하게 만든다.

연순이는 지금도 역시 그와 같았다.

남편은 루바슈카를 벗어던지고 수건으로 웃통을 씻으면서 연순이를 의미 있게 쳐다본다.

"이거 봐 또 큰일났는데."

하면서 빙긋하게 웃는다.

연순이는 남편에게 부채질을 하면서,

"왜 무슨 또 큰일……."

하다가 그만 말끝을 옴츠러뜨렸다.

그리고 언뜻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남편이 실직한 뒤에 더욱이 회에 열중이 되었을 때 눈치를 채고서 전당을 내주었다.

혼인할 때에 만든 반반한 옷가지는 대개 이 같은 전당으로 달아났다.

물론 시부모님에게는 비밀이었었다. 그러다가 기어코 나중에는 발각이 되었다.

처음에는 터놓고 의논을 하였으나 나중에는 남편도 너무 염치가 없어서 말을 못 했다.

사실 연순이는 뻘건 몸뚱이만 남았다. 화류 이층장 속은 텅 비어 버렸다.

연순이는 지금도 남편의 태도를 보고 직각을 하였다.

그래서 퍽 온화한 목소리로,

"왜 또 돈 때문이죠."

남편은 그제야 껄껄 웃었다.

"그렇다우…… 참 큰일났는데. 실상인즉 말야, 내일모레 내가 시골을 좀 갈 일이 있는데 여비가 퍽 많이 든단 말야…… 저어 남쪽 말야 왜? 신문에도 봤지. 삼남이 온통 기근이 나서 모두들 죽게 됐다고 그랬지."

"네, 참 그것 야단났습디다그려."

"그런데 사회단체들이 연합을 해서 기근구제강연회를 하게 됐어…… 그런데 우리 회에서는 내가 내려가게 됐는데 적어도 한 십 원은 들어야겠는데……."

하면서 요 위로 네 활개를 펴고 드러누웠다.

연순이는 아무리 농장 속을 생각을 하여도 십 원과 바꿀 만한 물건이 없었다.

다만 숙수 치마 하나밖에 남은 게 없다.

그러나 그것은 잡히기는커녕 아주 팔아 버린다고 하더라도 십 원에는 가당치도 못하다.

"그것 큰일났구려. 남은 것이라고는 치마 하나밖에 없는데."

하면서 연순이는 멍하니 장롱만 쳐다보았다.

남편은 다시 벌떡 일어앉으면서,

"그런데 말야. 한 반은 들어섰어. 아까 나하고 같고 나가던 경옥이 말야. 왜 안경 쓴 말괄량이 말야…… 아까 낮에 회에서 그와 같이 결정된 것을 듣고 나더니 슬그머니 나가서 단 하나밖에 없는 세루 치마를 삼 원에 잡혀 왔겠지."

이 소리에 연순이의 두 눈은 반짝하여졌다. 그리고 또 한번 숙수 치마가 언뜻 띄었다.

남편은 또 말을 계속한다.

"그리고 저 창호 말야. 그이가 월사금 가져갈 돈에서 삼 원을 내놓았어."

창호는 어떤 전문학교 학생이다. 변호사의 동생으로 사상이 불온하다고 언제든지 그 형과 충돌을 하고 지내 간다. 그래서 학비도 겨우겨우 뜯어서 쓰고 지낸다.

"그리고 저 추수 말야. 어떻게 했는지 일 원을 해왔겠지."

추수는 인쇄직공이나 아홉 식구를 혼자 책임지고 지내기 때문에 언제든지 쩔쩔매고 지내는 가난한 젊은이다.

"그래 결국 한 삼사 원 모자라는 셈인데 그건 내가 덮어놓고 주선을 한다고 호기를 피웠단 말야. 참 똥끄렸는걸, 허……."

하고 다시 네 활개를 펴고 드러누웠다.

연순이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그럼 내일 아침 저 숙수 치마나 가지고 나가세요."

"엥히 싫여. 단 하나밖에 안 남은 걸, 그거 됐나."

"괜찮어요. 내일 아침 일찌거니 어머니 일어나시기 전에 가지고 나가세요."

"엥히 참."

"뭬 엥히에요. 무슨 일이 있어요, 호……."

하면서 연순이는 온화하게 웃었다.

"자, 어서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 나가세요."

남편은 한참 만이나 잠잠하고 누웠다가 별안간에 껄껄대고 웃었다.

"그래, 그럼 낼 아침에 잘 싸줘…… 허…… 내 또 돈벌기 시작하거든 변리해서 옷 해줄게."

"그럼 변리도 이만저만하지 않을걸요, 호……."

"허……."

두 부부는 한참 동안이나 서로 웃기들만 했다.

이틀 뒤다. 지금이 밤 열시요 이곳은 경성역이다.

서울에 있는 각 사회단체의 대표들은 아주 씩씩한 얼굴로써 남행 급행열차에 올라섰다.

플랫폼에는 각 단체의 젊은 일꾼들이 가득 차서 있었다.

"잘들 갔다 오시오."

"건투하시오."

"믿습니다."

"뽐내라."

별별 소리가 다 한데 섞여서 웅얼거렸다.

"뛰―"

하면서 젊은 일꾼들을 실은 급행열차의 힘있는 기적 소리는 여름 하늘을 뒤흔들었다.

이 기적 소리는 온 서울 공중에 가득 찼다. 그리고 골목골목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갔다.

그래서 들창을 열고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섰는 연순이의 고막도 흔들었다.

"음, 인제 떠나는군."

하면서 그는 빙긋이 웃었다.

매우 만족한 웃음이었다. 모기는 벌써 앵앵거리기를 시작했다. 별들은 유리같이 반짝거리면서 온 하늘에 깔렸다.

 

출전:조선문단속간1(19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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