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美의 창조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質)없는 황금과 밤의 올(*)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
독자에게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시를 앍을 때에, 나는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즐 압니다.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 때에는 나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는 것과 같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악산의 무거운 그림자는 엷어 갑니다.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봇을 던집니다. - 乙丑 8월 29일 밤 -
님의 침묵 (沈黙) / 한용운(韓龍雲)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이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
조선 청년에게 / 한용운 새해를 맞이하면서 조선청년에게 몇 마디 말을 부치게 되는 것도 한때의 기회라면 기회다. 그러한 말을 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할 말이 하도 많아서 이루 다 할 수가 없을 것 같더니, 글을 쓰려고 붓을 들고 보니 다시 말이 없자 한다. 그래서 나의 말은 거칠고 짧다. 여기서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는 것보다 한 줄기의 정곡(情曲)으로 알아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은 거친 말을 다듬어 읽고, 짧은 글을 길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상승(上乘)되는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괴로운 형식으로 표현된 거친 말과 짧은 글을 독자의 가슴 깊은 속으로부터 다듬어 보고 길게 읽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고통이 되는 동시에 따라서 흥미가 되는..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 한용운 서론(緖論) 이 세상에 어찌 성공과 실패가 그 자체로서 존재하겠는가. 사람에 의거하여 결정될 뿐이다. 모든 일이 어느 하나도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소위 성공을 하고, 실패도 하고 하지 않음이 없으니, 만약 사물이 자립하는 힘이 없고 사람에 의존할 뿐이라면, 일에 성패가 있는 것도 결국은 사람의 책임일 따름이다. 옛사람이 말했다.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고,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있다'고. 이것을 따져서 말해 보면, 사람에게 성공하기에 족한 노력(謀)이 있어도 하늘이 이를 실패로 돌리기도 하고 사람에게 실패할 만한 노력밖에 없는데도 하늘은 이를 성공시키기도 한다는 뜻이 된다. 아,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람으로 하여금 흥이 깨지고 낙담케 함이, 무엇이 이..
행인과 나룻배(原題: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나는 나루ㅅ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읍니다. 나는 당신을 안ㅅ고 물을 건너감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깁흐나 엿흐나 급한 여을이나 건너감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마지며 밤에서 낫가지 당신을 기다리고 잇슴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도러 보지도 안코 가심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아러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 감니다. 나는 나루ㅅ배, 당신은 행인. (시집 님의 침묵, 1926) 작가 : 한용운(1879-1944) 본명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 아명 유천(裕天). 호는 만해(卍海). 용운(龍雲)은 법호(法號). 충남 홍성 출생. 1926년 시집 『님의 침묵..
타고르의 시(詩) GARDENISTO를 읽고 - 한용운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이여.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벗이여, 깨어진 사랑에 우는 벗이여. 눈물의 능히 떨어진 꽃을 옛 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 ..
찬송 - 한용운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金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읍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볕의 첫걸음이여! 님이여, 당신은 義가 무겁고 황금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거지의 거친 밭에 福의 씨를 뿌리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옛 梧桐의 숨은 소리여! 님이여, 당신은 봄과 光明과 평화를 좋아하십니다. 弱者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慈悲의 菩薩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바다의 봄바람이여! ▶시집 (1926) 작가 : 한용운(1879-1944) 본명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 아명 유천(裕天). 호는 만해(卍海). 용운(龍雲)은 법호(法號). 충남 홍성 출생.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며 등단. 한말에 의병운동을 했으며, 3․..
정천한해(情天恨海) - 한용운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정(情) 하늘을 따를소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한(恨) 바다만 못 하리라. 높고 높은 정(情) 하늘이 싫은 것만 아니지만 손이 낮아서 오르지 못하고, 깊고 깊은 한(恨) 바다가 병될 것은 없지마는 다리가 짧아서 건너지 못한다. 손이 자라서 오를 수만 있으면 정(情) 하늘은 높을수록 아름답고 다리가 길어서 건늘 수만 있으면 한(恨) 바다는 깊을수록 묘하니라. 만일 정(情) 하늘이 무너지고 한(恨) 바다가 마른다면 차라리 정천(情天)에 떨어지고 한해(恨海)에 빠지리라. 아아, 정(情) 하늘이 높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이마보다는 낮다. 아아, 한(恨) 바다가 깊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무릎보다는 얕다. 손이야 낮든지 다리야 짧든지 정(情) 하늘에 오르고 한(恨)..
이별은 美의 創造 - 한용운 이별은 美의 創造입니다. 이별의 美는 아침의 바탕[質] 없는 黃金과 밤의 올[絲]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없는 永遠의 生命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임이여,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美는 이별의 創造입니다. (시집 님의 침묵, 1926) 작가 : 한용운(1879-1944) 본명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 아명 유천(裕天). 호는 만해(卍海). 용운(龍雲)은 법호(法號). 충남 홍성 출생.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며 등단. 한말에 의병운동을 했으며, 3․1 운동 당시 33인 중의 주동자로 피검되어 3년간 투옥. 승려, 급진적 불교개혁론자, 독립 지사. 그는 당시의 퇴폐적인 사..
명상(冥想) 한용운 아득한 명상의 작은 배는 가이없이 출렁거리는 달빛의 물결에 표류(漂流)되어 멀고 먼 별나라를 넘고 또 넘어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이르렀습니다. 이 나라에는 어린 아기의 미소(微笑)와 봄 아침과 바다 소리가 합(合)하여 사랑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 사람은 옥새(玉璽)의 귀한 줄도 모르고, 황금을 밟고 다니고, 미인(美人)의 청춘(靑春)을 사랑할 줄도 모릅니다. 이 나라 사람은 웃음을 좋아하고, 푸른 하늘을 좋아합니다. 명상의 배를 이 나라의 궁전(宮殿)에 매었더니 이 나라 사람들은 나의 손을 잡고 같이 살자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님이 오시면 그의 가슴에 천국(天國)을 꾸미려고 돌아왔습니다. 달빛의 물결은 흰 구슬을 머리에 이고 춤추는 어린 풀의 장단을 맞추어 넘실거립니다. (시집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