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무한(山情無限) / 본문 일부 및 해설 / 정비석
송화은율
산정무한(山情無限) - 정비석 밤 깊어 뜰에 나가니, 날씨는 흐려 달은 구름 속에 잠겼고, 음풍(陰風)이 몸에 선선하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려 오는 소리가 있기에 바람 소린가 했으나, 가만히 들어 보면 바람 소리만도 아니요, 물 소린가 했더니 물 소리만도 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린가 했더니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함께 어울린 교향악인 듯 싶거니와, 어쩌면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를 일이다. 뜰을 어정어정 거닐다 보니, 여관집 아가씨는 등잔 아래에 외로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일까? 밤 ?은 줄조차 모르고 골똘히 읽는 품이, 춘향(春香)이 태형(苔刑) 맞으며 백(百)으로 아뢰는 대목일 것도 같고, 누명(陋名) 쓴 장화(薔花)가 자결을 각오하고 원한을 하늘에 고축(告祝)하는 대목일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