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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대위법 / 헉슬리 이 작품은 헉슬리 생애의 최대 걸작일 뿐 아니라, 20세기 소설의 대표작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비록 그의 후기의 신비주의적 경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다소의 다른 해석이 있을 수도 있으나. 아무튼 이 작품은 《크로움 엘로우》에서 시작하여 《익살춤》, 《시시한 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장편소설과 또한 이와 같은 시기에 씌어진 다른 많은 단편들 속에 넘쳐 흐르는 날카로운 풍자와 냉소적이며 회의적이고 파괴적인 인생관이 이 한 권에 집대성된 대표작이며, 헉슬리라는 작가의 20세기 소설에 있어서의 의의를 전하고 그의 소설 방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이 소설은 이른바 〈관념 소설〉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념 소설이란 어떤 관념을 대표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슬픔에 관하여 / 몽테뉴 나는 이 감정에서 가장 면제된 자들의 축에 든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치 여기 정가를 매겨 놓은 것처럼 특별한 기호(嗜好)를 가지고 이 심정을 존중하는 면이 있지만 나는 이것을 좋아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이것으로 예지(叡智), 도덕(道德), 양심(良心)에 옷을 입힌다. 어리석고 망측스런 장식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럴 듯하게 이 낱말에 괴악(怪惡)하다는 뜻을 붙였다. 왜냐 하면 이 심정은 언제나 해롭고 언제나 철부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토아 학파는 이것을 겁 많고 비굴한 소질이라고 보며, 그 파의 학자들에게 이 심정을 금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집트의 왕 프삼메니투스가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에게 패하여 잡혔을 때, 사로잡힌 자기 딸이 노예복을 ..
나는 함부르크에서 런던으로 항해했다. 승객은 둘이었다. 나와 그리고 조그만 원숭이로, 그 원숭이는 함부르크의 장사치가 영국인 친구에게 선물로 부친 비단원숭이 종류의 암컷이었다. 원숭이는 갑판 위의 벤치 가운데 하나에 가느다란 쇠사슬로 매어져 몸부림치며 애처롭게 캑캑 울고 있었다. 내가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매양 원숭이는 나에게로 그 검고 차디찬 손을 내밀고 우울한, 흡사 사람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러자 원숭이는 캑캑 울고 몸부림치고 하기를 그쳤다. 아주 잔잔한 항해였다. 바다는 둥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남빛의 책상보처럼 펼쳐져 있었다. 길게 그리고 원숭이의 울음소리 못지않게 애처로이 식당의 조그만 종이 울렸다. 이따금 바다 표범이 떠올랐다가가는 갑자기 곤두박질을 하..
시애틀 추장 / 수잔 제퍼스 초원에 날리는 흙먼지 사이로 그 흔적마저 사라진 지 아득한 옛날, 우리가 사랑하는 이 땅, 아메리카에는 아주 오래된 종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천 년을 이곳에 살면서, 초크타우, 체로키, 나바호, 이로키 족들의 문화를 비롯한 위대한 인디언 문화를 발전시켰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백인들이 밀려 왔습니다. 백인들은 인디언을 상대로 무자비한 살육 전쟁을 일으켰답니다.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시간만큼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백인들은 온 땅을 자기들 소유로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인디언들에게는 손바닥만한 땅을 내주며 거기 가서 살라고 했습니다. 기나긴 '인디언과의 전쟁'중에서 마지막 전투가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시애틀 추장은 백인과 협상 탁자에 앉았습니다. 그는 북아메리카 ..
사는 보람에 대하여 /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 어느 심포지엄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주제(主題)는 노인의 사는 보람에 대해서였다. 여러 가지 좋은 의견들이 많았는데, 나는 여기서 다시 한번 사는 보람에 대한 나의 평소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먼저 '노인의 사는 보람'과 '젊은이들의 사는 보람'은 과연 다른 것인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노인에게는 노인의 사는 보람이 있고, 젊은이에게는 젊은이의 사는 보람이 있어 마땅한 것이라고. 그런 것일까? 나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노인과 젊은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분명히 노인과 젊은이 사이에는 표면적인 차이는 있다. 노인은 체력(體力)이 떨어지면서 모든 일에서 손을 떼게 ..
사색에 대하여 / 쇼펜하워 수량이 아무리 많더라도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장서(藏書)의 효용도 의문스러우며, 수량은 보잘 것 없어도 정리가 잘 된 장서라면 훌륭한 효과를 거두는 것과 같이 지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많이 끌어모아도 스스로 사색해 낸 지식이 아니면 그 가치는 의심스러우며, 양으로는 보잘 것 없어도 몇 번이고 골똘히 사색해 낸 지식이라면 그 가치는 훨씬 크다. 무엇인가 한 가지 일을 하고, 하나의 진리를 터득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여러 가지 지식이나 진리와 결합시키고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이 수속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자기 자신의 지식이 완전한 의미로 획득되고, 그 것을 자유로이 구사(驅使)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철저히 사색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알고 있는 것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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