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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론 / 미끼 기요시(三木淸) 만일 독서의 정신이란 말을 할 수 있다면 독서의 정신은 대화의 정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신이란 것은 그 일의 순수한 형태, 본질적인 자세라는 뜻이다. 정신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에 방법이기도 하다. 독서는 대화의 방법에 의해야 한다. 그런데 대화의 정신은 또 철학의 정신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소크라테스가, 그리고 플라톤이 대화를 철학의 형식으로 삼은 것은 철학적 정신의 근원적인 발현이었다. 그 이후 모든 창조적인 철학은 소크라테스적 혹은 플라톤적대화로 제각기 돌아가는 것이다, 대화는 철학적 생명 운동의 근본적 형태이다. 여기에서 다시 독서의 순수한 모습은 철학적이라고 할 수가 있으리라. 그런데 이 철학의 정신은 과학의 정신과 별로 다른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
대화에 대하여 / 몽테뉴(M.E.de Montaigne) 회화(會話) 우리들의 정신을 단련하는 가장 유효하고 자연스러운 방법은 내 생각으로는 사람과의 대화이다. 나는 이 방법의 사용을 우리 인생의 다른 무슨 행위보다도 감미로운 것으로 생각한다. 이래서 나는, 만약에 지금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아마도 듣기와 말하기를 빼앗기기보다는 차라리 보기를 빼앗길 것에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 아테네인들과 더욱이 로마인들은 아카데미에서 대화의 연습을 극히 명예로운 위치에 놓고 있었다. 현대에 와서는 이탈리아인들이 다소 그 흔적을 간직해서 크게 그 덕을 보고 있는데, 그것은 가령 우리들의 오성(悟性)과 그네들의 오성을 비교해 보면 나타난다. 책에 의한 공부는 맥이 풀리고 약한 운동으로, 조금도 열을..
눈 / 루쉰(魯迅) 따뜻한 나라의 비는 어제껏 차갑고 단단하고 찬란한 눈으로 변한 적이 없었다. 박학(博學)한 인사들은 그것을 단조롭게 느낀다. 비도 그것을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지나 않을 것인지? 그러나 강남(江南)의 눈은 윤기 있고 싱싱하여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그것은 숨겨진 청춘의 숨결, 건강한 처녀의 살결이다. 눈 내리는 들녘에는 새빨간 동백꽃과 푸르도록 희디흰 백매화, 그리고 노오란 깔대기 모양의 납매화(臘梅花)가 피어 있다. 눈 밑에도 우중충한 잡초가 있다. 분명히 나비는 없다. 꿀벌이 동백꽃과 매화꽃의 꿀을 빨기 위해 왔었는지도 나도 잘 모른다. 다만 내 눈에는 겨울꽃이 핀 눈 내린 들녘에 많은 꿀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 뿐이다. 붕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린..
우리 모두 형제들이다 / 인디언추장 시애틀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 왔다. 대추장은 우정과 선의의 말도 함께 보내 왔다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는 그로서는 친절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대지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대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대지의 모든 부분이 신성한 것이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 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곽탁타 이야기 / 유종원 곽탁타 처음에는 어떤 이름인지 몰랐다. 곱추병이 생겨서 등이 불쑥 솟은 상태로 구부리고 다녔는데 그 모양이 낙타 모양과 비슷해서 마을 사람들이 그를 낙타라고 불렀다. 그럼 별명을 듣고 "정말 좋군요!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정확한 일이예요." 그래서 자기 이름을 버리고 자기 스스로 탁타라고 하였다. 그 마을은 풍락항이라고 하는데 장안의 서쪽에 있다. 탁타는 나무 심는 것을 생업으로 했는데 장안의 모든 부호들중에서 관상을 위해서나 과일을 파는 사람들은 모두다 다트어 모셔다가 대접을 잘 하였다. 곽탁타가 나무 심는 것을 보면은 어떤 경우에는 옮겨 심기도 하는데 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석류는 우거졌을뿐 아니라 과일이 일찍 열리고 많이 열렸다. 다른 나무 심는 사람이 비록 엿보거나 ..
독서론(讀書論) / 미끼 기요시 만일 독서의 정신이란 말을 할 수 있다면 독서의 정신은 대화의 정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신이란 것은 그 일의 순수한 형태, 본질적인 자세라는 뜻이다. 정신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에 방법이기도 하다. 독서는 대화의 방법에 의해야 한다. 그런데 대화의 정신은 또 철학의 정신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소크라테스가, 그리고 플라톤이 대화를 철학의 형식으로 삼은 것은 철학적 정신의 근원적인 발현이었다. 그 이후 모든 창조적인 철학은 소크라테스적 혹은 플라톤적 대화로 제각기 돌아가는 것이다, 대화는 철학적 생명 운동의 근본적 형태이다. 여기에서 다시 독서의 순수한 모습은 철학적이라고 할 수가 있으리라. 그런데 이 철학의 정신은 과학의 정신과 별로 다른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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