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부락 /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by 송화은율인디언 부락 /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호수 기슭에는 또 한 척의 보트가 끌어올려져 있었다. 인디언 두 명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닉과 아버지가 고물에 올라타자, 두 명의 인디언이 보트를 밀다가 한 사람이 올라타 노를 젓기 시작했다. 조지 숙부는 인디언 부락의 보트에 올라탔다. 젊은 인디언이 배를 밀다가 뛰어올라 노를 젓기 시작했다.
두 척의 보트는 어둠을 가르고 나아갔다. 닉의 귀에는 저편 보트의 노젓는 소리가 훨씬 앞쪽 안개 속에서 들려 왔다. 인디언은 잽싸게 노를 젓고 있었다. 닉은 아버지에게 안기듯 기대어 있다. 물 위는 추웠다. 닉네 보트의 인디언도 열심히 노를 젓고 있었으나, 다른 보트가 줄곧 훨씬 안개 속을 전진하고 있었다.
"아버지, 어디로 가는 거에요?"
닉이 물었다.
"음 인디언 부락. 인디언 여자가 중한 병에 걸려 있단다."
"아아, 그래요."
보트가 건너편 기슭에 닿자, 이미 한 척은 끌어올려져 있었다. 조지 숙부가 어둠 속에서 엽궐련을 피우고 있었다. 젊은 인디언이 와서 닉네 보트도 끌어올려 주었다. 조지 숙부는 두 인디언에게 엽궐련을 주었다.
호숫가 모래톱에서 풀밭 쪽으로 걸어가자, 풀잎이 밤 안개에 촉촉히 젖어 있었다. 랜턴을 든 인디언이 앞장을 섰다. 그들이 숲으로 들어가자 이내 재목 운반용의 숲길이 나오는데, 그 길은 언덕으로 깊숙이 이어져 있었다. 양쪽의 나무가 벌목이 되어 있어서 숲길이 훨씬 훤했다. 젊은 인디언이 멈춰서서 랜턴의 불을 불어 끄자 모두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이 커다랗게 휘어 도는가 싶더니, 개가 밖으로 뛰어나와 컹컹컹 짖었다. 나무 껍질을 벗기는 인디언들이 사는 오두막집의 불이 보인다. 개가 여러 마리 달려 왔다. 안내를 맡은 인디언이 개를 쫓는다. 그 문간에 노파가 남포등을 들고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나무 침대에 젊은 인디언 여자가 누워 있었다. 출산 때가 되어 벌써 꼬박 이틀째나 고생을 하고 있다. 부락의 늙은 아낙들이 다 나서서 산모를 구완해 왔다. 남자들은 산모가 지르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길가 어둠 속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닉이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 오두막에 들어설 때 여자가 째지는 듯한 신음 소리를 질러댔다. 2층 침대의 아랫간에 누워 있는 여자는, 이불을 덮고 있는데 어지간히 붕긋해 보였다. 얼굴은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윗간에는 여자의 남편이 누워 있다. 사흘 전에 도끼에 다리를 크게 다친 것이다. 그는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방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이 여자는 지금 아기를 낳으려는 거다 닉."
아버지가 말했다.
"예, 알고 있어요."
"네가 뭘 알아. 이 여자의 이런 용태를 진통이라 한단다. 아기는 세상에 태어나고 싶고, 어머니도 낳고 싶다. 어머니의 온몸의 근육이 아기를 내보내려고 힘을 쓰고 있다. 이 여자가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그런 뜻이다."
"예."
닉은 말했다. 바로 그 때 여자가 다시 소리를 질러댔다.
"아버지 빨리 약을 줘서 울지 않도록 하지 그래요?"
"안 돼, 마취약을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우는 소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빠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단다,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윗간의 남편은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부엌에 있는 여자가 와서 의사에게 물이 끊었다는 시늉을 했다. 닉의 아버지는 부엌에 들어가서 주전자의 더운 물을 대야에 반쯤 따랐다. 그리고 주전자에 담겨 있는 물에다 손수건에 싼 물건 가운데서 몇 개를 꺼내어 넣었다.
"이걸 끓여야겠어."
이렇게 말하고, 아버지는 부락에서 가져온 비누로 대야에서 손을 씻기 시작했다. 닉은 아버지가 두 손을 문지르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꼼꼼히 구석구석까지 씻으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닉, 아기는 머리서부터 태어나게 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단다. 그런 때가 골치가 아픈 거다. 이 여자도 어쩌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조금 지나면 알 수 있을 게다."
천천히 손을 다 씻고 나자, 아버지는 들어가서 여자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덮고 있는 이불을 치워 다오, 조지. 내 손은 아무것도 만지지 않는 게 좋을 테니까."
이윽고 수술이 시작되었을 때, 조지 숙부와 세 명의 인디언이 여자를 잡고 있었다. 여자가 조지의 팔을 물자, 숙부는
"빌어먹을 인디언 같으니."
하고 말했고 보트를 저어 온 젊은 인디언이 숙부를 보고 싱긋 웃었다. 닉은 아버지 옆에서 잠자코 대야를 들고 있었다. 수술은 한참이나 걸렸다.
아버지는 아기를 안고 호흡을 돕기 위해서 찰싹찰싹 엉덩이를 때려 주고는 노파에게 넘겼다.
"사내아이구나, 닉."
아버지가 말했다.
"인턴의 기분은 어떻지?"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닉은 아버지가 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외면하면서 말했다.
"이제 끝났구나."
아버지는 말하고 무엇인가를 대야에다 넣었다.
닉은 보지 않으려 했다.
"자, 난, 이제부터 몇 바늘 꿰매야지. 보든 말든 너 좋을 대로 해라. 지금 벤 자리를 꿰매야 하니까 말이다."
닉은 보지 않았다. 호기심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는 수술을 마치고 일어섰다. 조지 숙부와 세 인디언도 일어섰다. 조지 숙부는 자기 팔의 물린 자국을 보고 있다. 젊은 인디언은 아까의 일이 생각난 듯 웃었다.
"옥시풀을 발라 줄께, 조지."
아버지가 말했다.
그리고 인디언 여자를 둘러보았다. 이미 진정되어 눈을 감고 있다.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다. 아기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통 모르는 것이다.
"아침에 다시 오지."
아버지는 일어서서 말했다.
"한낮까지는 센트이그네스(미시간 호와 휴런 호 중간에 있는 도시)에서 간호원이 올 것이고, 필요한 것은 죄다 가져올 테니까."
그는 흥분하여 수다스러워져 있었다. 시합이 끝난 뒤의, 탈의실의 야구선수 같았다.
"이건 의학지에 쓸 만한 자료야, 조지."
그는 말했다.
"재크 나이프로 제왕절개를 하고, 9피트 길이의 가느다란 낚싯줄로 봉합을 했으니까."
조지 숙부는 벽에 기대어 팔을 보고 있었다.
"참, 대단합니다."
"자랑스런 아기 아버지 얼굴이나 보고 갈까. 이런 때는 아버지가 가장 난처한 처지가 되지."
의사가 말했다.
"하지만 용케도 참았군."
그는 인디언의 얼굴에 덮인 담요를 걷었다. 축축한 것이 손에 닿았다. 한 손에 남포등을 들고 아랫간 침대 모서리에 올라서서 들여다봤다. 인디언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린 채 꼼짝않고 누워 있었다. 목이 이 쪽 귀에서 저 쪽 귀까지 베어져 있었다. 흘러나온 피가 침대의 움푹 꺼진 곳에 그득히 괴어 있었다. 인디언의 머리는 왼팔 위에 얹혀 있었다. 시퍼런 날이 위를 향하고 있는 면도날이 담요 속에 있었다.
"빨리 닉을 이 오두막에서 데리고 나가 다오, 조지."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부엌 입구에 서 있던 닉에게는 아버지가 한손에 남포등을 들고 머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내가 잘못했구나, 닉. 너를 이런 곳에 데려오는 것이 아닌데."
수술 뒤의 기쁨이 싹 가셔버린 아버지가 말했다.
"너, 몹시 혼났겠다."
"아버지, 아기를 낳는 게 언제나 저렇게 힘든 건가요?"
"아니다, 저런 일은 예외의 사건이란다."
"왜 자살했을까요? 그 인디언 말이에요."
"모르겠구나, 닉.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지."
"그럼 자살하는 남자가 많은가요?"
"그렇지 않다."
"그럼 여자는?"
"좀처럼 없다."
"전혀 자살 안 해요?"
"아니, 더러는 한다."
"아버지!"
"응."
"아저씨가 어디로 가고 없어요."
"올거다."
"아버지, 죽는 건 괴로워요?"
"아니, 비교적 편할 거야. 경우에 따라서겠지만."
보트에 올라 닉이 고물에 앉자, 아버지는 이물에 앉아 노를 젓기 시작했다. 언덕 너머에서 해가 떠오른다. 그 때 농어 한 마리가 뛰어 수면에는 파문이 퍼져 나갔다. 닉은 물 속에다 손을 담가 보았다. 새벽의 날카로운 한기 속에서도 물은 따스했다.
먼동이 트는 호수에서 아버지가 젓는 보트의 이물에 앉아 있으면서 닉은 자기는 자살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점 정리
지은이 :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김 현 옮김
갈래 : 단편 소설. 성장 소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구성 : 성장의 구성.
성격 : 사실적.
배경 : 시간적 저녁에서 새벽까지 공간적인 배경은 인디언 부락.
경향 : 순수 문학.
문체 : 간결체.
제재 : 인디언 여자의 해산과 남편의 죽음.
주제 : 소주제는 인디언 여자의 고통스러운 수술과정과 그 남편의 죽음을 본 닉의 다짐이고 전체적인 주제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한 통찰
출전: <우리 시대에> (1925)
전체 줄거리 : 소년 닉은 숙부 조지와 함께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인디언 부락으로 향한다. 곧 해산(解産)할 산모(産母)가 있어서 안개 깔린 저녁의 추운 강을 뚫고 가는 것이다. 아버지가 수술 도구도 없이 잭 나이프만으로 제왕 절개 수술을 하는 것을 보고 닉은 흥미를 잃어버린다. 인디언 오두막 램프 불빛 아래서 의사인 아버지는 마취제도 없이 메스 대신 제크 나이프로 인디언 산모를 수술한다. 산모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아이는 태어나고, 산모의 절개 부위는 낚싯줄로 봉합된다. 다리를 다쳐 꼼짝할 수 없이 이층 침대에 누워 있던 산모의 남편은 아내의 비명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칼로 자기의 목을 베어 자살한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아버지는 매우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 발을 다쳐 누워 있던 산모의 남편이 자살한 것이 밝혀진다. 아버지는 닉을 데려온 것을 후회한다. 하지만 닉은 이 경험을 탄생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리고 자신은 자살하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내용 연구
호수 기슭에는 또 한 척의 보트가 끌어 올려져 있었다. 인디언 두 명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닉과 아버지가 고물에 올라타자, 두 명의 인디언이 보트를 밀다가 한 사람이 올라타 노를 젓기 시작했다. 조지 숙부는 인디언이 부락의 보트에 올라탔다. 젊은 인디언이 배를 밀다가 뛰어올라 노를 젓기 시작했다.
두 척의 보트는 어둠을 가르고 나아갔다. 닉의 귀에는 저편 보트의 노 젓는 소리가 훨씬 앞쪽 안개 속에서 들려 왔다. 인디언은 잽싸게 노를 젓고 있었다. 물 위는 추웠다. 닉네 보트의 인디언도 열심히 노를 젓고 있었으나, 다른 보트가 줄곧 훨씬 안개 속을 전진하고 있었다. - 보트를 타고 가는 광경
"아버지, 어디로 가는 거예요?"
닉이 물었다. "음 인디언 부락. 인디언 여자가 중한 병에 걸려 있단다." "아아, 그래요." - 행선지와 목적
보트가 건너편 기슭에 닿자, 이미 한 척은 끌어 올려져 있었다. 조지 숙부가 어둠 속에서 엽궐련을 피우고 있었다. 젊은 인디언이 와서 닉네 보트도 끌어올려 주었다. 조지 숙부는 두 인디언에게 엽궐련을 주었다. - 보트가 도착함
호숫가 모래톱에서 풀밭 쪽으로 걸어가자, 풀잎이 밤 안개에 촉촉히 젖어 있었다. 랜턴을 든 인디언이 앞장을 섰다. 그들이 숲으로 들어가자 이내 재목 운반용의 숲길이 나오는데, 그 길은 언덕으로 깊숙이 이어져 있었다. 양쪽의 나무가 벌목이 되어 있어서 숲길이 훨씬 훤했다. 젊은 인디언이 멈춰 서서 랜턴의 불을 불어 끄자 모두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이 커다랗게 휘어 도는가 싶더니, 개가 밖으로 뛰어나와 컹컹컹 짖었다. 나무 껍질을 벗기는 인디언들이 사는 오두막집의 불이 보인다. 개가 여러 마리 달려 왔다. 안내를 맡은 인디언이 개를 쫓는다. 그 문간에 노파가 남포등을 들고 서 있었다. - 인디언 부락에 들어감
안으로 들어가니 나무 침대에 젊은 인디언 여자가 누워 있었다. 출산 때가 되어 벌써 꼬박 이틀째나 고생을 하고 있다. 부락의 늙은 아낙들이 다 나서서 산모가 지르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길가 어둠 속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닉이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 오두막에 들어설 때 여자가 째지는 듯한 신음소리를 질러 댔다. 2층 침대의 아랫간에 누워 있는 여자는, 이불을 덮고 있는데 어지간히 붕긋해 보였다. 얼굴은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윗간에는 여자의 남편이 누워 있다. - 해산할 집에 들어섬
사흘 전에 도끼에 다리를 크게 다친 것이다. 그는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방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이 여자는 지금 아기를 낳으려는 거다, 닉."
아버지가 말했다.
"예, 알고 있어요."
"네가 뭘 알아. 이 여자의 이런 용태를 진통이라 한단다. 아기는 세상에 태어나고 싶고, 어머니도 낳고 싶다. 어머니의 온몸을 근육이 아기를 내보내려고 힘을 쓰고 있다. 이 여자가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그런 뜻이다."
"예." - 닉에게 상황을 말해 주는 아버지
닉은 말했다. 바로 그 때 야자가 다시 소리를 질러 댔다.
"아버지 빨리 약을 줘서 울지 않도록 하지 그래요?"
"안 돼, 마취약을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우는 소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빠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단다,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윗간의 남편은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 산모의 비명과 남편의 반응
부엌에 있는 여자가 와서 의사에게 물이 끓었다는 시늉을 했다.
닉의 아버지는 부엌에 들어가서 주전자의 더운 물을 대야에 반쯤 따랐다.
그리고 주전자에 담겨 있는 물에다 손수건에 싼 물건 가운데서 몇 개를 꺼내어 넣었다. "이걸 끓여야겠어."
이렇게 말하고, 아버지는 부락에서 가져온 비누로 대야에서 손을 씻기 시작했다. 닉은 아버지가 두 손을 문지르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꼼꼼히 구석구석까지 씻으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닉, 아기는 머리서부터 태어나게 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단다. 그런 때가 골치가 아픈 거다. 이 여자도 어쩌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조금 지나면 알 수 있을 게다." - 해산 준비 과정
천천히 손을 다 씻고 나자, 아버지는 들어가서 여자를 진찰하기 시작하였다. "덮고 있는 이불을 치워 다오, 조지. 내 손은 아무것도 만지지 않는 게 좋을 테니까." - 산모를 진찰하는 아버지
이윽고 수술이 시작되었을 때, 조지 숙부와 세 명의 인디언이 여자를 잡고 있었다. 여자가 조지의 팔을 물자, 숙부는 "빌어먹을 인디언 같으니." 하고 말했고 보트를 저어 온 젊은 인디언이 숙부를 보고 싱긋 웃었다.
닉은 아버지 옆에서 잠자코 대야를 들고 있었다. 수술은 한참이나 걸렸다. 아버지는 아기를 안고 호흡을 돕기 위해서 찰싹찰싹 엉덩이를 때려 주고는 노파에게 넘겼다. - 수술의 성공과 아기의 탄생
고물 : 뱃고물. 배의 뒤쪽.
숙부 : 작은 아버지.
엽궐련 : 담뱃잎을 통째로 돌돌 말아서 만든 담배. 여송연.
랜턴 : 등.
모래톱 : 강가나 바닷가의 넓고 큰 모래 벌판. 모래밭. 모래사장.
벌목 : 나무를 벰.
오두막집 : 사람이 겨우 거처할 정도로 작게 지은 막 집.
남포등 : 석유를 넣은 그릇의 심지에 불을 붙이고 유리제의 등피를 끼운 등.
출산 : 아기를 낳음.
구완 : 앓는 사람을 돌보아 주는 일.
봉굿 : 꽤 두두룩하게 나오거나 높직이 솟아 있는 모양
악취(惡臭) : 고약한 냄새.
용태(容態) : 얼굴 모양과 몸의 맵시.
진통(陣痛) : 해산할 때 짧은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생기는 복부의 통증
마취약(痲醉藥) : 중추 신경의 기능을 억제함으로써 의식을 잃게 하는 약제.
인디언은 ~ 젓고 있었다 : 닉과 아버지가 찾아가는 인디언 마을에 급박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구절이다.
인디언 여자가 ~ 걸려 있단다 :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생각해서 해산모의 상태를 '중한 병'이라고 표현하였다. 해산모를 보게 되는 어린 아들의 체험이 충격적이지 않도록 배려하는 아버지의 자상함이 잘 드러나 있다.
조지 숙부는 ~ 주었다 : 보트를 저은 인디언에게 감사의 표시로 담배를 준 것이다.
그들이 숲으로 ~ 이어져 있었다 : 재목 운반용 숲길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인디언 부락이 고립되어 있지 않고, 백인들과 재목을 교환하며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길이 커다랗게 ~ 불이 보인다 : 인디언 부락의 정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부락의 늙은 ~ 구완해 왔다 : 서로 돕는 인디언 부락의 공동체적인 성격이 나타난 구절이다.
"아버지 빨리∼하지 그래요?" : '닉'은 여자의 해산 장면을 처음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 여자가 진통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닉'의 순진한 면모와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아빠의 귀에는 ∼ 아니기 때문에. :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의사인 아빠는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다.
주전자에 ∼ 꺼내어 넣었다. : 해산(解産) 과정에 쓰일 도구를 소속하는 장면이다.
이 여자도 ∼ 할지도 모른다. : 정상 분만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 일종의 복선이다.
내 손은 ∼ 좋을테니까. : 세균에 오염될까 염려해서 아무것도 만지지 않으려 한다.
조지 숙부와 ∼ 잡고 있었다 : 마취제가 없었기 때문에 제왕 절개를 하기 위해 네 사람들이 여자를 붙잡고 있는거다.
여자의 조지의 ∼ 싱긋 웃었다 : 산모가 숙부를 문 것이나 숙부의 말이 진정(眞情)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젊은 인디언도 싱긋 웃는 것이다.
언덕 너머에서 해가 ~ 물은 따스했다 : 고통과 출산, 그리고 죽음이라는 어젯밤의 어두운 체험이 아침의 밝음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것은 체험의 부정이 아니라, 농어가 뛰고 따스한 물로 표현되듯 삶의 긍정이기도 하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25년 미국판으로 출간된 '우리 시대에(In Our Time)'라는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으로 헤밍웨이의 초기작에 해당한다. 소년 헤밍웨이는 어린 시절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의사인 아버지가 근처 마을에 왕진을 갈 때 따라가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이 곳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출생과 죽음이라는 생의 근본적인 동시의 겪는 소년이 그의 대해 의문을 갖고 나름의 해답을 찾아보는 통과 제의적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야기는 인생의 궁극적인 두 측면을 한꺼번에 보게 된 어린 소년이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년 닉은, 의사인 아버지가 수술 도구도 없이 잭 나이프로 제왕 절개 수술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호기심을 잃을 정도로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거기에다가 산모의 남편이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까지 겪게 된다. 이러한 현장을 목격하고 생의 고통스러움과 가혹함을 느낀 닉은 이제 아버지의 보호막에 갇힌 어린 소년이 아니라, 인생의 문제에 직접 대면하여 그 해결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하룻밤 사이에 닉은 내면적으로 크게 성장한 것이다. 이 작품이 일종의 통과 제의 소설이라는 지적은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삶과 존재의 문제에 눈을 뜨는 한 소년의 내적 성장 과정을 뛰어나게 묘사하고 있다.
심화 자료
시간적 배경이 갖는 의미
닉은 아버지를 따라 인디언 마을에 갔다가 '저녁-밤-새벽'이란 시간사이에 산모의 수술과 산모 남편의 죽음이란 충격적인 체험을 한다. 이러한 체험은 이전의 '닉'과 새로운 '닉'을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 이 낯선 시·공간의 체험을 토해 닉은 변화하는데, 여기에서 밤은 존재 변화의 장(場)이다. 새벽이 오자, 고통과 출산, 그리고 죽음이라는 어제밤의 어두운 체험은 아침의 밝음으로 수렴되다. 이것은 체험의 부정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삶에의 긍정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 글의 특징
내용은 한 소년이 탄생과 죽음의 고통스러운 장면을 동시에 목격함으로써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질문하고 대답을 찾아보는 통과 제의(祭儀)적 이야기이다. 구성은 시간적으로 '저녁-밤-새벽'의 흐름을 따라 작품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데, 고통스러운 경험 끝에 소년의 다짐을 그림으로써 성장의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표현은 기본적으로 간단 명료한 문체를 통해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무거운 문제를 담담히 조망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이 작품에서 보이는 아버지와 아들은 매우 친밀한 사이임을 알 수 있다. 밤을 새워야 할 아버지의 왕진을 따라가겠다고 아들이 졸랐을 터인데, 아버지가 선선히 데려간 데서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일상 생활의 모든 것이 좋은 교육이 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수술 장소까지 어린 아들이 들어오게 하고, 일부러 이런저런 상태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는 것이다. 인디언 남편의 자살을 보고 후회하는 데서도 역으로 이런 점이 확인된다. 그러면서도 자잘하게 신경을 쓰는 아버지이진 않다. 아들의 질문에 간단 간단히 대답하는 것에서 확인된다. 곧 인생의 여러 가지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스스로 터득하길 바라는 열린 마음의 엄부형(嚴父型)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통과제의(通過祭儀)적 성격
통과 제의(通過祭儀)란 통과 의례(通過通過)라고도 하며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거치게 되는, 탄생·성년·결혼·죽음 등과 같이 새로운 상태나 신분으로 이행함에 즈음하여 베풀어지는 의식을 말한다. 이 작품에서 닉이 겪는 경험은 일종의 통과 제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닉은 사춘기 소년으로서 탄생과 죽음을 목격하고 인생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성인이 되는 과정에 들어서는 것이다.
통과 제의는 원시적인 사회에서는 성인식(成人式)으로 제도화된다. "성인식은 권력에 대한 어른들의 의지를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잡귀를 쫓아내고 심신을 정화시키는 의식이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아이들을 가치 있게 만든다. 예컨대, 채찍질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내리는 축복이요, 병을 낫게 해 주는 수단으로서 구하는 행위라고 아이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초자연계에 있어서의 그들의 지위 수여식이다." (출처 : 루스 베네딕트, '문화의 패턴')
통과의례(通過儀禮) passage rite
(프)Rite de passage. rite of passage라고도 함.
개인의 사회적·종교적 지위의 변화에 따르는 의례 행사.
모든 사회에 존재하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의식의 대부분은 출생·성장·생식·죽음 등의 생물학적 단계와 결부되어 있다. 다른 의식들은 특별한 단체나 집단에의 가입 등 전적으로 문화적인 변화를 기념한다. 최초로 전세계의 통과의례에 관심을 가진 프랑스의 인류학자이며 민속학자인 아르놀트 반 헤네프가 1909년 통과의례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모든 의례가 분리·추이·통합 등 3단계로 구성됨을 보여주어 다양한 의례간의 구조적인 유사성을 강조했다. 헤네프는 이 3가지 범주가 모든 사람들에 의해 또는 모든 의례에서 똑같은 정도로 발전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이러한 범주가 보편적인 형태를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제1단계인 분리는 개인을 이전의 사회적 지위로부터 단절시키는 상징적 행위를 수반한다. 낡은 신분은 새로운 신분의 준비과정에서 없어진다. 제2단계에서 의례의 주체, 즉 '통과자'는 모든 지위 또는 역할의 징표를 벗어버리고, 일반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먼 과거와 미래 사이의 정지된 상태 또는 미래로 향하는 입구로 들어간다. 이 단계는 재생을 기다리며 어두운 자궁 속에 있는 상태 또는 죽음과 유사한 경우가 많다. 마지막 단계에서 의례의 주체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적·종교적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통과의례는 상징적인 것이 특징이다. 변화의 과정은 몇 가지 모티프를 통해 표현되는데, 지역과 문화에 따라 그 형식이 매우 다양하다.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죽음과 재생의 재연 의식에서 통과의례의 주체는 이전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의례적으로 '죽임을 당한다'. 추이단계에서는 유아로 취급되나 성장하여 새로운 지위를 얻게 된다. 통과의례에는 시련을 이겨나가는 것이 필수적인데, 새로운 영역으로의 편입을 의미하기 위해 때때로 문이 사용된다. 대개 몸의 일부를 변화시키거나(예를 들면 할례, 이 뽑기, 문신이나 상처내기, 머리장식 등) 특별한 의복과 장신구를 착용함으로써 새로운 지위를 나타낸다. 통과의례를 연구할 때는 주로 그 사회학적 기능을 고려해왔다. 사회체계는 순조로운 기능을 위해 일정한 정도의 균형을 요구한다. 개인 또는 집단의 변화는 이러한 균형을 위협하게 된다. 그러므로 통과의례의 주된 사회학적 기능은 이러한 변화 이후에 새로운 사회적 균형을 이루고 사회적 질서를 회복하여 조화된 부분들의 체계로서의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다. 개인이 새로운 질서로 편입되는 과정을 극화한 통과의례는 의례를 행한 개인에게 새로운 역할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통과의례는 또한 공동체가 그 구성원의 지지를 실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회학적 기능 못지 않게 중요한 통과의례의 심리학적 기능은 학문적인 관심을 덜 받아왔다. 일부 해석에 의하면, 이러한 의례는 인생의 중요한 단계들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며, 개인이 세계의 어떤 통제불가능한 측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통과의례는 개인의 경험을 위해 예측가능한 공동상황을 제공함으로써 변화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고통을 완화하는 심리치료적인 기능을 한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헤밍웨이는 시카고 교외 오크 파크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음악과 그림에 소양이 깊은 어머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사냥과 낚시를 좋아한 아버지는 북부미시간의 워룬 호반에 별장을 지어 놓고, 어린 헤밍웨이와 함께 자주 그곳으로 갔다. 그리하여 그는 3세 때 낚싯대를, 10세 때에 사냥총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는데, 그것이 그의 평생의 취미가 되었다. 이 무렵의 헤밍웨이는 대도시 교외의 기품 있는 상류와 중류 계급의 문화적 분위기보다도, 워룬 호반의 원시적인 자연과 미개한 인디언들과의 사긤에 더 깊은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1925년 미국판으로 출간된'우리 시대에(in our time)'라는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으로서 헤밍웨이의 초기작에 해당했다. 소년 헤밍웨이는 어린 시절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의사인 아버지가 근처 마을에 왕진을 갈 때 따라가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의 이 곳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Amerindian, Amerind)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으로 에스키모와 알레우트족은 예외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은 아시아의 몽골 인종에 속하는 수렵민으로서 빙하시대말(약 2만~3만 5,000년 전) 베링 해협의 육교를 건너 북아메리카로 이주했으며, 불을 사용하고 개를 기르는 것이나 특수한 의식과 치료법 등의 문화적인 특징이 당시의 아시아 문화와 비슷했다. 구대륙의 다른 문화적인 특징들(예를 들면 목축, 특정 식물 경작, 바퀴와 쟁기의 이용)은 아메리카 대륙에 없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서로 약간의 문화적 차이가 있었다 (→ 색인 : 원시문화). 북아메리카 서부, 그레이트플레인스 지역, 동부지역의 여러 고(古)인디언 수렵사회는 환경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생활은 비슷했다. 주요 식량원은 고기였으며 짐승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홍적세의 포유동물을 도살하는 데 이용했던 도살장 유적지에서 수렵사회 전통에 속한 고고학적인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가장 독특한 형태의 발굴물 가운데 하나는 뉴멕시코 클로비스 부근 도살장 유적지에서 처음 발굴한 세로 홈이 팬 클로비스의 화살촉으로서 대략 BC 9000년의 것으로 추정된다. 작살 모양의 도구는 맘모스를 도살하는 데 이용했다. 사막문화 부족들은 오리건에서 멕시코 북부지역, 태평양 연안에서 로키 산맥 동쪽에 이르는 지금의 미국 서부지역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유랑생활을 하는 수렵채집민으로서 동굴이나 바위를 은신처로 삼고 살았다. 씨앗을 가는 데 이용한 맷돌과 같은 유물을 통해 원시농업 기술의 발달 정도를 알 수 있다.
동부 아케익기(Archaic)는 BC 8000~1500년에 지속되었다. 그레이트플레인스와 그레이트베이슨 지역의 춥고 습한 기후가 덥고 메마른 기후로 바뀌었기 때문에 홍적세의 동물이 멸종되었다. 사회 유형은 수렵채집생활로 바뀌어 BC 6000년 무렵에는 일반적으로 해안과 강가에서 살게 되었다. 후기 아케익기의 특징은 홈이 파인 돌도끼, 절구공이, 끌, 추 등과 같은 도구의 발달과, 서로 다른 지역의 부족들 사이에 교역제도가 발달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아케익기(BC 8000~3000)에는 홈이 패이지 않은 플라노 화살촉을 써서 사냥했으며, 주요 사냥감은 들소였다. BC 3000~2000년(후기 플라노 시대)에 기후가 온화해짐으로써 일부 부족들은 목초지를 찾아가는 짐승들을 따라 서스캐처원과 앨버타로, 더 북쪽으로는 북극 툰드라 지대로 이주했다.
BC 2000년 무렵 미국 남서부의 여러 부족집단들은 옥수수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나 원시농업이 인디언 문화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1세기 이후였다. 오하이오 강과 일리노이 강 유역의 경우 옥수수 농사는 발전된 호프웰 문화의 경제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BC 200~AD 200). 잉여자원은 특권을 지닌 특정집단의 부로 이용되었으며, 정교한 장례의식에 사용되기도 했다. 200~700년에 한랭기가 찾아오면서 농업발달이 위축되고 문화는 후퇴했다. 700~1200년 미시시피 강 유역에서 촌락 중심의 문화가 발달했는데, 발전된 농업방식과 복잡한 종교의식이 특징이었다. 종교의식에는 전문적인 제조소에서 만드는 의식용품이 사용되었고 사제조직이 의식을 주관했다.
아나사지· 모고욘· 호호캄 등은 푸에블로족 이전의 문화들로 700~1200년에 남서부지역 전체에 분포했다. 모고욘 문화의 농사기술(특히 작물에 물을 대기 위해 빗물과 시냇물을 이용한 것)은 아나사지 문화에 와서 더욱 개선되었다. 애리조나 남부지역 호호캄 문화는 관개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다. 1100~1300년 건조기가 찾아옴으로써 문화발전이 멈추었으며 인구가 줄었다. 1000년 무렵 푸에블로 문화가 시작되었으며, 돌과 아도비 벽돌로 공동주택을 짓는 기술이 발달했다. 작물로는 섬유가 긴 목화와 여러 종류의 옥수수가 있었다.
고전 푸에블로 시기(Classic Pueblo period:1050~1300)는 건축기술과 도기제조기술이 크게 발달한 것이 특징이었다. 벼랑에 지은 1~4층으로 된 큰 공동주택에는 20~1,000개의 방이 있었으며, 고유한 지역적 양식의 다채색 도기가 생산되었다. 1300~1700년은 퇴행 푸에블로 시기(Regressive Pueblo period)에 해당한다. 부족들이 남쪽과 동쪽으로 이주한 동안에는 버려진 공동주택이 많았다. 근대 푸에블로 시기(Modern Pueblo period)는 1600년대말 스페인인들의 영구정착과 함께 시작되었다. 푸에블로 문화와 농사방법 가운데 일부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식민지시대 유럽 국가들이 시행한 북아메리카 인디언에 관한 공식적인 정책은 국가마다 달랐다. 스페인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그리스도교도로 개종해 지정된 지역으로 이주시키려 했으나, 프랑스인들은 주로 인디언과 교역관계를 맺는 데 관심이 있었다. 초기 영국 법은 불법으로 인디언 영토를 몰수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1763년 선언을 통해 애팔래치아 산맥 서부지역 전체를 아메리카 원주민 영토로 규정했다. 이 정책은 영국 지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뒤에 미국 정부에서도 채택하게 되었다. 지금의 캐나다를 생겨나게 한 1867년 영국령(領) 북아메리카 법에 따라 캐나다가 인디언과 그 영토에 관한 입법권을 독점하게 되었다.
1830년 인디언 이주법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강제 정책이 오랫동안 시행되었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자 백인들이 서부를 향해 대규모로 이주했으며, 수많은 조약을 통해 서부 개척로 주변 영토에 대한 인디언의 권리는 무효화되었다. 1876년 수족과 샤이엔족의 커스터 학살을 포함해 무시무시한 전쟁이 여러 차례 잇따라 일어났다. 1887년까지 대부분의 인디언이 보호구역으로 이주했다. 1887년 도스 일반토지분배법에 따라 인디언은 약 34만 8,100㎢에 이르는 영토를 잃게 되었다. 1934년 인디언 재조직법(Indian Reorganization Act)에 따라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위향상을 위한 사업계획이 확정되었다. 1950년대 이후 여러 가지 새로운 정책이 수립되고 시민권을 중시하는 분위기에 따라 인디언 단체들이 생겨났으며, 인디언 문제에 관한 미국민의 인식이 높아졌다.
중앙 아메리카 인디언
인디언이 니카라과에서 멕시코 북부지역에 이르는 중앙 아메리카에 들어온 것은 1만 년 이전의 일이었다. BC 4500년 무렵 농사기술이 발전하게 되었다. 옥수수·콩과 같은 주요작물의 재배기술이 꾸준히 발전한 결과 BC 2000년 무렵 농경사회가 확립되었다. 그뒤 몇 세기 동안 식량공급이 안정됨에 따라 작은 규모의 마을이 큰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도기 및 다른 여러 가지 기술이 발전했다.
1000년까지의 고전기 동안 마야와 같은 문명이 생겨났다. 마야족은 여러 가지 제의를 통해 결합했으며 사제계급의 지배를 받았다. 사제의 기능은 농사주기에 영향을 미쳐 풍년이 들도록 하는 데 있었다. 풍요의 신 틀랄록은 가장 중요한 신에 속했는데, 틀랄록의 상징 재규어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조각품에서 주제로 등장한다. 후기 문화에서는 재규어가 더욱 호전적인 독수리로 바뀌었으며,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의식이 되었다. 중앙 아메리카의 종교국가들은 1000년 무렵부터 톨텍 제국과 아스텍 제국에 밀려났다. 이 두 제국은 스페인이 침략할 때까지 번영을 누리면서 영토를 확장했다. 또 절정기에는 아스텍 제국의 군사력이 중앙 아메리카 거의 전체를 지배할 정도였다.
초기 이주민으로부터 지역에 따라 여러 개로 분류할 수 있는 소(小)문화집단이 생겨났다. 지금의 멕시코 북서부지역 연안, 사막, 산악지대에 한 집단이 살았으며, 또다른 집단 타라스코족은 미초아칸 산맥에 정착했다. 마야족은 과테말라 여러 지역과 유카탄 반도, 멕시코 치아파스 등에 살았으며, 아스텍족은 멕시코 중부 고원과 지금의 멕시코 시 지역에 집중해 살았고, 멕시코 남부 연안과 고원 지역에 5번째 집단이 살았다.
중앙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는 소규모 사회를 구성하며 개별 가족이 기본 사회단위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남성과 연장자가 사회를 지배하며, 상속은 부계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부계와 모계 양쪽을 모두 인정한다. 공동체 활동은 농산물과 공예품을 교환하는 시장과 정치기구에 집중되어 있다.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은 종교적인 역할도 겸한다. 또한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지도자들이 마을을 대표한다.
주요 종교형태는 스페인인들이 전파한 로마 가톨릭이지만, 그리스도교 성인들에 대한 의식과 널리 퍼져 있는 애니미즘·미신·점술을 통해 옛 종교의식의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가톨릭과 아울러 유럽의 기계와 기술을 들여온 스페인의 정복은 옛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알리는 신호였다. 식민지 정복 초기에 예수회에서 북서부지역에 특별 종교구역을 설치했으며, 다른 교파에서는 스페인 정부의 감독하에 개발된 '엔코미엔다'(encomiendas)에 정착했다. 그뒤 엔코미엔다가 해체되고 특별구역이 교회의 보호에서 벗어나게 되자 플렌테이션·목장·광산이 식민지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식민지 태생 스페인인들과 혼혈인들은 1821년 혁명을 통해 유럽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획득하고 새로운 공화국의 정책을 수립했다. 그뒤 산업화·상업화 시기 동안 인디언 사회는 경제적인 손실이 있었음에도 문화적인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점점 고립주의적으로 변해갔다. 멕시코에서는 그후 1910년 혁명을 통해 배타적인 사회·경제·정책이 폐지되었으며, 인디언의 정치적·문화적·경제적인 업적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디언 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한 계획들이 수립되었으며, 국민들은 멕시코 원주민의 예술과 전통에 관심을 기울였다. 과테말라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채택했으나 곧 폐지되고 말았다. 과테말라의 원주민 인구가 더 빨리 늘어났지만, 20세기 후반에는 과테말라보다 오히려 멕시코의 인디언이 도시와 농촌 사회에 더욱 완전하게 통합된 듯하다.
남아메리카 인디언
고고학적인 기록에 따르면, 남아메리카 문명은 BC 10000년 이후 언젠가 북아메리카와 중앙 아메리카에서 첫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첫 이주민이었던 수렵채집민은 지금의 티에라델푸에고, 아르헨티나, 칠레 남부지역, 그란차코 중남부 평원지역, 안데스 중부지역에 정착했다. 그후 수렵채집민 사회는 훨씬 더 발전한 농경사회에 밀려났다. 이동 수렵민들은 작은 집단을 이루어 살았는데, 집단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사냥감이 더 풍부한 지역이나 기후조건이 더 좋은 지역으로 자주 이주할 수 있었다. 열대림지대의 농경민과 마찬가지로 이들 수렵민은 친족관계에 바탕을 둔 집단을 이루었으며, 집단마다 연령과 성을 기준으로 서열을 결정했다. 그러나 브라질과 아라와크 연안, 대(大)앤틸리스 제도, 내륙 삼림지대 농경사회에서는 옥수수·콩 등 고유작물 재배에 성공하고 수렵도 함으로써 규모가 더 큰 규모의 안정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다.
수렵민 사회와 삼림지대 농경사회에서는 다른 미개사회와 마찬가지로 주변환경을 지배할 목적으로 주술의식을 거행하는 관습이 있었다. 카리브 해 인접지역과 안데스 북부지역 농민들은 군사적·종교적 지도력에 바탕을 둔 좀더 복잡한 형태의 사회조직을 발전시켰으며 그러한 사회조직은 기술적으로 훨씬 발전한 농업으로 유지되었다. 이 부족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부족사회를 발전하게 하고, 노예와 희생의식의 제물을 제공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초보적인 중앙집권적 지배형태를 수립하고 주술에서 벗어나 마침내 초기단계의 종교로 이행한 것이 이들 사회와 삼림지대 농경사회를 구별짓는 큰 차이였다.
BC 2300년경 남아메리카 원주민 문화 가운데 가장 발전한 문화가 안데스 중부지역에 뿌리를 내린 뒤 수천 년 동안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켰다. 1000년 무렵부터 여러 왕국(치무·티아우아노코· 잉카 왕국 등)이 생겨나 16세기초 스페인이 침략할 때까지 번영을 누렸다. 페루에서 칠레 북부지역에 걸쳐 영토를 확장했던 잉카 왕국에는 효율적인 관개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고, 국가에서 관리하는 식량생산·저장·배급 제도가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제국의 절정기에는 거의 350만 명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사회계층은 세습왕족에서부터 귀족과 장인계층, 평민인 농민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잉카 문명의 가장 두드러진 발전은 관습에 따른 사회조직이 법률제도로 바뀐 것과 예술품, 특히 금속세공 분야에서 수준 높은 예술품이 생산된 것이다. 이들 4가지 사회문화 유형은 남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역사발전 단계와 일치한다. 획일적인 사회구조의 이동수렵민이 처음 들어온 이후 수천 년 동안 외부세계의 도움 없이 목축·농업 등 여러 분야에서 기술발전이 이루어짐으로써 점점 복잡한 사회구조가 생겨났으며, 중앙집권적인 정부와 엄격한 계급제도가 나타났다. 11세기 안데스 중부 여러 제국들은 BC 500년 무렵으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는 옛 지역 제국들의 원형이 최고로 발전한 형태였다.
16세기 유럽의 정복으로 인해 남아메리카 주민들의 전통문화가 파괴되면서 일부 부족이 거의 사멸했으며 대부분 완전히 식민화되었다. 가장 심하게 파괴된 문화는 주요항로 주변에 있던 사회였다. 한편 항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안데스 부족들 가운데 일부는 지금까지 고유문화를 보존해왔으며 인구도 꾸준히 증가해왔다. 그러나 잉카 제국의 농사풍습과 정치관습은 스페인식으로 완전히 바뀌었으며 종교도 로마 가톨릭에 밀려났다. 귀족과 장인계급은 어느 정도 식민지 계급구조 상층에 흡수된 반면, 원주민 농민들은 비천한 노예신분으로 떨어졌다. 착취가 덜한 지역에 남아 있는 일부 잉카족은 문화유산의 일부를 보존하는 동시에 현대산업 중심지와 경제적인 교류를 해왔다. 아라우칸인과 같은 다른 남아메리카 인디언은 19세기까지 스페인의 지배에 저항했으나, 그후 동화되거나 보호구역으로 이주했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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