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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제(聖誕祭)- 김종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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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제(聖誕祭)-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9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후략>


요점 정리

 지은이 : 김종길

 갈래 : 서정시, 자유시

 성격 : 서정적, 회상적, 지성적, 문명 비판적

 제재 : 유년 시절의 병상 체험, 성탄일의 추억

 특징 : 상징적인 시어를 통한 시상의 집약적 표현과 과거와 현재, 시골과 도시라는 배경의 대칭 구조가 나타남. 시간적 이행에 의한 분련. 4연과 6연은 시간적 전개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의도적 돌출 행위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것은 산수유 열매의 구체적인 모습을 '눈'과 대비시켜 뚜렷한 시각적 심상으로 제시함으로써 어린 시절 그 때의 시적 자아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되었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또 한국적 정서의 형상화가 돋보인다.

 주제 : 아버지의 사랑(순수한 혈육애), 육친에 대한 그리움

 출전 : 성탄제 (1969)

 내용 연구

어두운 방 안엔(공간적 배경-시골 / 어둡고 추운 현실, 험한 세상, 시련)

바알간 숯불[할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피고,(뒤의 내 혈액과 관계를 가짐 - 따스하고 아늑한 방안의 분위기)[1행과 2행은 색채와 의미의 대조를 보임]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사그라지는, 꺼져가는) 어린 목숨(시적 자아, 서정적 자아)[나의 생명이 소멸되어가는 모습]을 지키고 계시었다[병든 나를 간호하시는 할머니]. - 앓고 있는 어린 목숨

 

이윽고(시간의 경과) 눈 속을(시련, 고난, 역경)

아버지가 약(산수유 열매,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이윽고'를 통해 극적인 장면 구성을 보여 주고 있다. '약'은 '산수유'로서 민간 요법에 의한 처방을 가리킨다]

 

아, 아버지가 눈[시련과 고난]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약 - 사랑의 증표. 시상의 핵심으로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7, 8행의 눈과 붉은 산수유 열매의 색채 대조)(말줄임표에는 '지금도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는 내용이 생략되어 있고,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을 영탄법을 통해 표현함) - 아버지의 사랑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보호받아야 할 어린 아이. 짐승으로 본능적 사랑에 의지하는 존재, 나약하고 무기력한 자기 존재 인식으로 아버지에게 마냥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어린 시절)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열을 식힐 수 있는 사랑으로 촉각적 심상, 험한 세파를 뚫고 살아오신 아버지의 체취)에

열(熱)(촉각적 심상)로 상기한(얼굴이 붉어짐) 볼[앓고 있는 나의 모습]을 말없이 부비는(비비는) 것이었다.(냉온감 대비 -본능적 행위지만, 언어를 초월한 사랑) - 어린 '나'의 감동과 믿음

 

이따금 뒷문을 눈(과거와 현재의 연결의 매체)이 치고 있었다.[시상의 O·L (과거의 눈-현재의 눈)-연결의 매개체]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아버지의 사랑-그리스도의 사랑(보편적 사랑과 성스러운 분위기)을 둘다 애처로운 목숨을 구원하는 행위로 보는 화자의 생각이 드러남 / 휴머니즘이 최고로 고양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과거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 과거

어느 새 나도

그 때[내가 앓던 어린 시절]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과거에서 현재로 시상이 옮겨옴, 이따금 뒷문을 - 나이를 먹었다 : 시상의 전환으로 회상에서 현실로 되돌아옴) - 어른이 된 '나'

 

옛 것(아버지의 헌신적 사랑과 같은 순수한 사랑 / 어린 시절의 정서와 분위기, 전통적, 한국적인 모습이나 정서 같은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삭막함과 외로움의 도시 / 밑바탕에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의 어조)[9연의 서러운의 원인이 됨]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사랑이 없고 메마른 현실)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눈'으로 과거 회상의 매체와 헌신적인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내리는데[과거와 대비를 통해 현실의 삭막함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지만 어린 시절 보던 눈을 통해 현실에 대한 따뜻한 시선 역시 버리지 않고 있다] - 과거에 대한 향수

 

서러운 서른 살(음운의 유사성으로 묘한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킴 / 삭막한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 나의 이마에(아버지의 순수한 사랑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기 때문)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아버지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 위로, 구원을 상징)을 느끼는 것은(예전에 아버지가 눈 속을 헤치고 따온 산수유 열매와 같은 사랑),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시각적 심상, 부성애, 혈육의 정, 옛것 / 아버지의 사랑)

아직도 내 혈액(육친의 사랑이 계승되는 것으로 피는 생명, 혈육의 사랑을 상징)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삭막한 현실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이 시간을 넘어 영원한 것으로 지속됨) -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 삭막한 현재

검은 색(어두운 방안)과 붉은 색(바알간 숯불)의 대비 어둠이 생명이 잦아드는 암울한 이미지라면, 바알간 숯불은 생명을 지키는 따뜻한 이미지이다.
붉은 색(산수유 열매)와 흰색(눈)의 대비 차가운 이미지와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의 대립은 아버지와 할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대변한다.

이해와 감상

시에서 노래되는 그리움의 대상은 연인이거나 어머니인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조금 특이하게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회상한다. 전 10연 중에서 제6연까지가 과거 회상의 부분이고 나머지 네 연이 현재의 모습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은 그의 어린 시절 어떤 심한 병을 앓았던 때를 되살려 내고 있다. 병원도 약국도 없는 시골, 눈이 많이 내리던 12월 하순 무렵이 그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다. 어린 시절의 그가 앓아 누운 방 안에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그 곁을 지켰다. 이 `바알간 숯불'과 할머니의 모습은 어둡고 추운 세계에서 그의 목숨을 지키는 연약한 정성을 암시하여 준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신다. 약이란 어두운 밤 눈을 헤치며 따 오신 산수유 열매이다.

 

세상이란 얼마나 넓고 어두우며 추운 것인가. 잦아들어 가던 어린 목숨은 눈 속에서 약을 구하여 돌아온 아버지의 옷자락에 뜨거운 볼을 부빈다. 어린 아들과 아버지의 이 모습에서 우리는 다른 시인들이 흔히 노래하지 않는 또 하나의 사랑을 발견한다.

 

여기서 시간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눈 속에서 산수유 열매를 따 오신 그때는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연상 속에는 성탄절의 의미를 자신의 절실한 경험과 맺어 보는 생각이 깃들이어 있다. 이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의 눈 내리는 저녁을 바라보고 있는 화자 역시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 든 어른이 되었다. 옛날과 다름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그는 불현듯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 어린 시절 눈 내리던 밤 뜨거운 볼에 와 닿았던 서느런 옷자락을 느낀다. 그것은 어쩌면 그때 아버지가 따 오신 산수유의 붉은 알알이 아직도 핏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성탄절이라면 흔히 연상되는 도시의 소란스러움 대신 어두운 밤에 내리는 눈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황량한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따뜻한 애정의 기억을 노래한 맑은 작품이다. [해설: 김흥규]

 

 

이해와 감상1

 김종길 시의 뿌리를 이루는 것은 유가적 전통이다. 그의 특성인 절제된 감정과 시어, 명징한 이미지와 고전적 품격 등은 모두 유가적 덕목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보여주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결국 그의 이런 근본에서 자라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서른 살의 나이에 이른 화자는 눈을 매개로 하여, 어린 시절 병든 자신을 위해 눈속을 헤쳐 산수유 열매를 따 오시던 아버지를 회상하고 있다. 따라서, 그 아버지는 부모의 은덕을 효로 보답해야 한다는 효제(孝悌)의 원리를 절로 떠오르게 하는 아버지이며, 화자는 그런 아버지로 표상되는 애정 넘치는 과거의 생활상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심화 자료

 성탄제의 의미

 이 시의 시간은 모두 '성탄제에 가까운 밤'이다. '성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이지만, 여기서는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 시적 화자와 아버지의 새로운 만남의 의미를 조명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성탄제는 서구의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축제로서의 의미가 아닌, 한국의 전통적·복고적 정서로 전이되어,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의 정점을 보여주는 한편, 그 분위기에 싸여 가족 간의 사랑을 한 차원 상승시키고 있다.

 

 

이해와 감상

주제 :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삶의 고달픔과 가족에 대한 애정

 

 

 이 시는 힘겨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인으로 돌아온 시인이 아버지로서의 고통(苦痛)을 토로하는 한편, 자식들에 대한 막중한 책임(責任) 의식을 스스로 확인하는 작품으로, 현실적 세계를 시적 대상으로 삼은 생활시로서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에서는 화자(話者)와 청자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화자는 실제의 시인과 거의 일치하며, 청자는 '강아지'라고 불린 그의 자녀들이다. 얼음판 같은 세상의 모습을 말하면서 다소 비감스러워하던 화자의 목소리는 자녀들에게 말을 건넬 때, 따뜻하게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연은 화자의 귀가(歸家)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피곤한 육신(肉身)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화자는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문수가 각기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바라본다.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화자의 가정이 아홉 켤레의 신발 속에 함축되어 있다. 직업이 다르고 신분이 달라도, 또는 부유하건 가난하건, 그래서 그것이 현관이건 들깐이건 사람 사는 모습은 결국 똑같다. 그러므로 '지상'이라는 시어는 힘겨운 일상의 삶이라 할지라도 일단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면, 가정은 그 가족만의 하나의 행복(幸福)한 지상(地上) 세계(世界)라는 뜻이라 할 것이다.

 

 2연에서 화자는 식구들의 신발 옆에 자신의 신을 벗어 놓는다. '눈과 얼음의 길'은 바로 화자가 살아가는 고달픈 인생길을 상징하는 것으로, 4연에서는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아홉 켤레의 신발 중에서 특히 막내둥이의 것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막내에 대한 특별한 애정(愛情)을 강조하는 것이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스스로 확인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3연의 1∼2행은 비록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온 화자이지만, 자녀 앞에서는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3∼5행은 고달프게 살아가는 화자의 가정을 의미한다. '연민한 삶의 길이여'라는 6행은 화자가 삶에 대해 느끼는 힘겨움을 직설적으로 토로한 것이며, 7행에서뿐 아니라 작품 전편에 등장하는 '내 신발은 십구 문 반'이라는 구절은 막내의 '육 문 삼'과 대비되어 화자가 자신의 신발을 거듭 의식하면서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4연은 화자가 방에 들어가며 자식들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 내가 왔다 / 아버지가 왔다'는 표현은 현실 생활에 시달리는 화자의 고달픈 삶을 극명히 보여 주는 것이며, 비록 고달프게 살아가는 가정이지만,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 존재한다'는 사실을 '십구 문 반'이라는 신발 크기로 강조하는 것은 그 큰 신발 속에 아홉 명의 자식들의 미래를 담고 있다는,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무를 강조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시는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자식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아버지들의 모습을 화자의 가정(家庭)을 통해 잘 보여 주는 작품(作品)이다.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성탄일 무렵 내리는 눈을 보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한 시이다.

이 시는 제5연과 제8연을 제외하고는 모두 2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이 부분에 화자의 시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나 음미해 보자. 화자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정조(情操)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감상하자. , 숯불, , 붉은 산수유 열매 등의 시어가 지니는 이미지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성격 : 회상적, 주지적, 문명 비판적

어조 :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독백적 어조

특징 : 촛불과 캐롤, 산타 할아버지로 표상되는 서구적 성탄이 아닌, 아버지와 산수유 열매 등의 한국적 정서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성 : 과거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1-6)

삭막한 현재(7-10)

제재 : 성탄일의 추억

주제 : 순수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그 계승의 참뜻

 

 

<연구 문제>

1. 이 시의 시상을 지배하는 소재를 찾아 쓰고, 그 상징 의미도 쓰라.

<모범답> (1) 산수유 열매(산수유 붉은 알알)

(2) 아버지의 순수한 사랑

 

2. 이 시는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가 대조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매개체를 찾아 쓰라.

<모범답>

 

3. 이 시에서 숯불’, ‘성탄제는 각각 어떤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는가?

<모범답> (1) 숯불 :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

(2) 성탄제 : 인류의 보편적 사랑과 성스러운 분위기

 

4. 화자가 어릴 적 체험과 관련하여 이라고 하며 성탄제를 연상하고 있는 근거와 시적 의미를 두 문장으로 설명해 보라.

<모범답> 고난을 무릅쓰고 산수유 열매를 구해다가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신 점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구세주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구세주의 탄생일인 성탄제를 떠올리고 혈연적인 사랑을 인류에의 보편적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5. 의 이유가 될 만한 시행을 찾아 쓰라.

<모범답>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 감상의 길잡이 1 >

시에서 노래되는 그리움의 대상은 연인이거나 어머니인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조금 특이하게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회상한다. 목숨이 잦아드는 듯한, 어렸을 때의 병력(病歷)과 그런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해도, 이 시를 대할 때의 친근감은 우선 그 기법의 낯익음에서 연유한다. 10연 중에서 제7연을 분기점으로 하여 전반부에 화자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을, 후반부에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어른으로서의 삶을 대칭적으로 조직하였다.

 

전반부를 보면 어린 시절의 화자는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온 붉은 산수유 열매(해열제)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생각한다. 붉은 산수유 열매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후반부에서는 어른으로서의 화자가 이제 어린 시절의 열병 대신 그렇게 열병을 앓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화자의 내면에 서리는 것은 어린 시절에는 열병, 어른이 된 다음에는 그리움이다.

 

한편, 전반부의 기억을 되살려 내는 계기는 성탄제 가까운 어느 날 서른 살의 이마에 와 닿는 눈발의 서느런감촉이다. 이 감촉이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연상케 한다. 눈은 회상의 매체인 것이다. 이러한 연상 속에는 성탄제의 의미를 자신의 절실한 경험과 맺어 보는 생각이 깃들어 있다. 이 시에서의 성탄제는 예수의 탄생이라는 피상적인 의미를 벗어나 아버지와 나(화자)와의 새로운 만남을 환기하는 계기가 된다.

 

붉은 산수유 열매로 상징되는 아버지의 사랑이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2 >

김종길 시의 뿌리를 이루는 것은 유가적(儒家的) 전통이다. 그의 시의 특성인 절제된 감정과 시어, 명징한 이미지와 고전적 품격 등은 모두 유가적 덕목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보여 주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결국 그의 이런 근본에서 자라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서른 살의 나이에 이른 화자는 을 매개로 하여, 어린 시절 병든 자신을 위해 눈 속을 헤쳐 산수유 열매를 따 오시던 아버지를 회상하고 있다. 따라서 그 아버지는 부모의 은덕을 효로 보답해야 한다는 효제(孝悌)의 원리를 절로 떠오르게 하는 아버지이며, 화자는 그런 아버지로 표상되는 애정 넘치는 생활상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열 개의 연이 시간적 추이 과정에 따라 전개되고 있으며, 15연의 유년 시절의 체험과 610연의 어른이 된 화자의 체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면서도 4연과 6연은 그 시간적 전개에서 제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시인이 산수유 열매을 대비시켜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고도의 시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화자는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 붉은 산수유 열매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통해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 어른으로서의 화자는 이제 어린 시절에 앓던 열병이 아니라 열병을 앓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린 시절 화자의 가슴에 서려 있던 열병이 지금에 와서는 그리움이 대신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열병과 그리움이 대칭적 관계를 갖게 된다. 또한,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엄부자모(嚴父慈母)’로 대변되는 유교적 전통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한편, 차가운 옷자락만큼 아버지의 사랑이 깊고 뜨거움을 상징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전반부의 시적 공간은 시골이며, 후반부의 공간은 도시이다. 시골의 방에는 바알간 숯불이 피어 있고, 밖에선 이 내리고 있다. 도시에도 역시 이 내리고 있지만, 방이 제시되지 않는 대신 내 혈액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나타나 있다. ‘내 혈액숯불은 동일한 붉은빛으로 서로 상관 관계를 가지며 시의 깊이를 더해 줌은 물론, 이러한 공간 구조는 산수유 붉은 열매에 의해 내적 통일성을 얻게 된다.

 

이 시의 시간은 전후반부 모두 성탄제 가까운 밤이다. 성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이지만, 여기서는 성탄제의 그런 피상적 의미를 벗어나 화자와 아버지의 새로운 만남을 촉진시키고 조명하는 기능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탄제는 서구의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축제로서의 의미가 아닌, 한국의 전통적복고적 정서로 전이되어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의 정점을 보여 주는 한편, 그 분위기에 싸여 가족간의 사랑을 한 차원 상승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부자자효(父慈子孝)의 윤리관으로 대표되는 관습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한 차원 더 깊어진 애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은 고요한 회상의 분위기와 함께 춥고 쓸쓸한 겨울 장면을 조성하는 기능을 갖는다. 또한, 그 눈을 헤치고 아버지가 따오신 산수유 열매가 화자의 혈액 속에 녹아 흐른다는 것은 육친간의 순수하고도 근원적인 사랑이 늘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산수유 붉은 알알은 화자의 내부에 생명의 원소처럼 살아 있는 사랑의 상징이 됨으로써 거룩한 성탄제의 본질적 의미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3 >

시에서 노래되는 그리움의 대상은 연인이거나 어머니인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조금 특이하게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회상한다. 10연 중에서 제6연까지가 과거 회상의 부분이고 나머지 네 연이 현재의 모습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은 그의 어린 시절 어떤 심한 병을 앓았던 때를 되살려 내고 있다. 병원도 약국도 없는 시골, 눈이 많이 내리던 12월 하순 무렵이 그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다. 어린 시절의 그가 앓아 누운 방 안에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그 곁을 지켰다. `바알간 숯불'과 할머니의 모습은 어둡고 추운 세계에서 그의 목숨을 지키는 연약한 정성을 암시하여 준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신다. 약이란 어두운 밤 눈을 헤치며 따 오신 산수유 열매이다.

 

세상이란 얼마나 넓고 어두우며 추운 것인가. 잦아들어 가던 어린 목숨은 눈 속에서 약을 구하여 돌아온 아버지의 옷자락에 뜨거운 볼을 부빈다. 어린 아들과 아버지의 이 모습에서 우리는 다른 시인들이 흔히 노래하지 않는 또 하나의 사랑을 발견한다.

 

여기서 시간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눈 속에서 산수유 열매를 따 오신 그때는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연상 속에는 성탄절의 의미를 자신의 절실한 경험과 맺어 보는 생각이 깃들이어 있다. 이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의 눈 내리는 저녁을 바라보고 있는 화자 역시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 든 어른이 되었다. 옛날과 다름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그는 불현듯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 어린 시절 눈 내리던 밤 뜨거운 볼에 와 닿았던 서느런 옷자락을 느낀다. 그것은 어쩌면 그때 아버지가 따 오신 산수유의 붉은 알알이 아직도 핏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성탄절이라면 흔히 연상되는 도시의 소란스러움 대신 어두운 밤에 내리는 눈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황량한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따뜻한 애정의 기억을 노래한 맑은 작품이다. [해설: 김흥규]

 

 

<맥락 읽기>

1.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

 

2. 말하고 있는 지금은 언제쯤인가 ?

성탄제 가까운 어느날

 

3. 이 시에서 화자를 가리키는 다른 말을 모두 찾아 보면 ?

어린 목숨, 어린 짐생, 서러운 서른 살

 

4. 이 시를 내용상 둘로 나누어 본다면 ?

: 1 6연 뒤 : 7 10

 

5. 앞 뒤의 내용이 어떻게 다른가 ?

: 옛추억(자기가 병들었을 때 아버지가 어렵게 약을 구해왔음)

: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은 어느 성탄제 가까운 날 옛추억을 생각함.

 

6. 옛추억을 떠올리게 된 매개는 ?

, 성탄제

 

7. 화자의 심정은 ?

서럽다. 그리움에 젖어 있다.

 

8. 화자가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

(돌아가신 것으로 볼 수도 있는 할머니 혹은)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삭막한 도시에 사는 서러움

 

9. 그러니까 화자는 지금 무얼하고 있는가 ?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그 옛날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며 그리움에 젖어 있다.

 

<생각해 볼 거리>

1. 이 시는 색감의 대조가 뚜렷한 표현들이 있다. 찾아본다면 ?

(검은색) : 바알간 숯불(붉은 색)

(흰색,차가움) : 붉은 산수유(붉은 색. 따뜻함. 뜨거움)

 

2. 이런 표현은 어떤 효과를 얻고 있는가 ?

, 눈이 주는 어둡고 차가운 이미지에 대해 바알간 숯불, 붉은 산수유는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와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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