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
by 송화은율흑과 백
홍우원 지음
김기빈 번역
백(白)이 흑(黑)에게 묻기를,
"너는 어째서 외모가 검고 칙칙한가? 그러면서도 어째서 자신을 씻지 않는가? 나는 희고 깨끗하니, 너는 나를 가까이 하지 말라. 네가 나를 더럽힐까 두렵다."
하니, 흑이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너는 내가 너를 더럽힐까 두려워하는가? 네가 비록 스스로를 희고 깨끗하다고 여기지만, 내가 보기에는 희고 깨끗한 것이 썩은 흙보다 훨씬 더 더럽다."
백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너는 어째서 나를 썩은 흙처럼 더럽게 여기는가? 나는 맑고 흰 것이 마치 장강(長江)과 한수(漢水)로써 씻은 것 같고, 가을 햇볕에 쬐인 것과 같다. 검게 물을 들이는 염료도 나에게 누를 끼칠 수 없고, 티끌과 흙의 혼탁함도 나를 더럽힐 수 없다. 무릇 천하에서 나보다 깨끗하고 맑은 것이 없는데도, 너는 어째서 나를 썩은 흙으로 여기는가?"
하니, 흑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 보라. 지금 너는 자신을 깨끗하게 여기면서 나를 더럽다고 여기고 있다. 나는 나를 더럽다고 여기지 않으며, 너를 깨끗하다고 여기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네가 과연 깨끗한 것인가? 내가 과연 더러운 것인가? 아니면 내가 과연 깨끗한 것인가? 네가 과연 더러운 것인가? 이점은 알 수 없다. 내가 논쟁하면 너 또한 논쟁할 것이며, 네가 따지면 나 또한 따질 것이니, 이것은 너와 내가 따진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너와 함께 세상 사람들에게 징험하여 말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 천하 사람들 중에 너를 좋아하는 자가 있는가? 없다.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자가 있는가? 없다.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젊고 건장할 때에 머리털을 검게 한 것은 내가 한 것이고, 귀 밑머리털을 검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한 것이다. 사람들이 청춘을 머무르게 하여 아름답고 예쁜 얼굴을 간직하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내가 한 것이다. 세월이 점차 흐른 뒤에는 너도 모르는 사이에 예전의 검은 머리가 꽃처럼 하얗게 되고, 흰머리가 반이나 되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거울을 잡고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라 족집게로 흰머리를 뽑는다.
아, 슬프다. 한스러운 것은 나를 머물도록 할 수 없는 것이고, 괴로운 것은 너를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이점이 바로 희고 깨끗한 것이 일찍이 사람들에게 기쁨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미움의 대상이 되었으며, 애당초 너의 아름다움이 되지 못하고 너에게 누를 끼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너의 깨끗함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한 광채를 깊숙이 감추고서 세상과 뒤섞여 속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용납되는 방법이다. 너무 고결하고 너무 밝게 처신하면서 출세한 자를 나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백이(伯夷)는 성품이 맑아서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고, 굴원(屈原)은 성품이 고결하여 멱라수에 빠져 죽었다. 그런데 조맹(趙孟)은 신분이 귀하고 계씨(季氏)는 부유해서 한껏 사치를 부리고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고 인생을 마음껏 즐겼다. 이들 가운데 누구의 삶이 빛나고 누구의 삶이 초췌한가? 누구의 삶이 성공하고 누구의 삶이 실패한 것인가?
아, 굴원과 백이의 화(禍)는 주로 네가 재앙을 만든 데에서 나왔다. 그러나 계씨와 조맹의 공명과 부귀가 당시에 위세를 떨치고 성대했던 것은 어찌 내가 한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너는 광명정대한 것으로 자신을 고상하게 여기고, 기운이 맑고 깨끗한 것으로 자신을 훌륭하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더러운 흙탕물 가운데서 벗어나 더러운 것은 받지 않고 먼지와 티끌을 뒤집어 쓰지 않는 것이다. 돈과 패물은 세상사람들이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것인데도 너는 지푸라기 같은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고, 수 많은 말과 곡식은 사람들이 누구나 바라는 것인데도 너는 뜬 그름처럼 하찮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고생시키고 곤궁하게 하며, 사람들로 뜻을 얻지 못하여 실의에 빠지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로 군색하게 하여 이를 견디지 못하게 하고 있다.
아, 덧없는 인생은 얼마 되지 않고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다. 만일 미쳐서 정신을 잃고 본심을 잃어서 세상과 등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가 너를 따라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고자 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어둡고 어두워서 티끌을 같이하고 모호하고 불분명하여 먼지를 머금는다. 밝게 빛나지 않고 씻고 갈아서 깨끗하게 된 것을 좋게 여기지 않는다. 재화와 진귀한 보배를 본래 가지고 있다면 높은 벼슬과 막대한 부도 못할 것 없다. 만일 얻을 수 있다면 구하여 사양하지 않고, 만일 취할 수 있으면 받고 사양하지 않는다. 문채나는 비단 옷에 대해서 사람들은 너나 없이 빛난다고 여기며, 성대하게 차려진 음식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너나 없이 가득하다고 여긴다.
무릇 자기 몸과 자기 집을 이롭게 하는 자는 누구나 다 자기 마음에 들고 자기 뜻을 흔쾌하게 하니, 이 때문에 온 세상이 휩쓸리듯 오직 나에게 모여든다. 간담을 쪼개 보아도 나와 사이가 없고, 속을 열어 보아도 나와 한결 같다. 제왕과 귀족들이 신는 붉은 신발을 신고서 검은 패옥을 차고 옥소리를 내면서, 재상들이 업무를 보던 황각에 올라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는 모두 나와 견고하게 결합된 사람들이다. 금으로 만든 인장을 걸고 인끈을 매고서 재상의 자리를 밟고 왕명의 출납과 언론을 맡은 자는 모두 나와 마음이 투합한 친구들이다. 철관(鐵冠)을 높이 쓰고 홀(笏) 끝에 백필(白筆)을 장식하여 어사대를 지나 어사부에 오르는 자는 모두가 나와 정신적으로 사귀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장 깃발을 세워 놓고 용맹스러운 군사들이 빙 둘러서 있으며, 칼과 창이 삼엄하게 벌려있는 가운데 관찰사에 임명되어 나라의 간성이 된 자들은 모두 나의 당파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훌륭한 수레에 붉은 휘장과 검은 일산을 하고서 한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관으로 있는 자는 모두 나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모두 너나 없이 유유자적하고 득의만면하다. 기개는 드높아서 우주를 업신여기고, 숨을 쉴 때 무지개를 토해낸다. 일을 만들면 사람들이 감히 좋고 나쁜 것을 지적하지 못한다. 종신토록 즐기고 놀아도 풍부하여 여러 대 동안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너와 종유하는 자들을 돌아보건대, 현재 쑥대로 엮은 초라한 집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살고 있고 산과 들 사이에서 쓸쓸하게 있다. 집안에는 아무 것도 없이 사방의 벽만 황량하고 한 바가지의 음료도 자주 거르고 있다. 옷은 짧아서 춥고, 손과 발은 얼어서 부르텄으며, 얼굴은 누렇게 뜨고 목은 바짝 말라서 거의 죽게 된 자들은 모두 이와 같다.
그런데 너는 벼슬은 대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누각을 세울 땅도 없으며, 지위는 높고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아직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살아 생전에는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하지 못하였고, 죽어서는 자손들에게 생계 대책을 마련해 주지 못했으니 너무 부끄러운 것이 아니겠는가. 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너나 없이 너를 경계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면서 혹시라도 따라올까 염려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이 너나 없이 나를 사랑하여 급급하게 나에게 나와서 혹시라도 잃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이로써 보건대, 너는 세상사람들이 버리는 대상이고, 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대상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버리는 것은 천한 것이며,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귀한 것이다. 나는 귀한 것이 깨끗한 것인지, 천한 것이 깨끗한 것인지, 귀한 것이 더러운 것인지, 천한 것이 더러운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무릇 천한 사람들이 누구나 다 더럽다고 여기는 것은 썩은 흙만한 것이 없다. 썩은 흙의 더러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모두 더럽다고 침을 뱉고 지나간다. 지금 세상에서는 너를 매우 천하게 여기고 있다. 지나가면서 더럽다고 침을 뱉고 가는 대상이 어찌 썩은 흙뿐이겠는가. 너는 앞으로 자신을 더럽다고 여기는 데도 겨를이 없을 터인데, 어느 겨를에 나를 더럽다고 여기겠는가. 너는 떠나가라. 그리고 나를 더럽다고 여기지 말라."
백은 망연자실하여 한참동안 묵묵히 있다가 말하기를,
"아, 옛날 장의(張儀)가 소진(蘇秦)에게 말하기를 [소진이 득세한 세상에 장의가 어찌 감히 말하겠는가.]하였다. 오늘날은 진정 너의 시대인데 내가 어찌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논란하지 않았다.
홍우원(洪宇遠)
1605년(선조38)∼1687(숙종13). 자는 군징(君徵), 호는 남파(南坡), 본관은 남양(南陽), 시호는 문간(文簡). 현종 및 숙종 때 남인 4선생의 한사람. 1645년 별시문과에 급제. 1654년에 강빈(姜嬪 : 昭顯世子嬪) 옥사(獄事) 때 삭직 당했다가 뒤에 기용되어 수찬에 복직했다. 1660년 제1차 예송 때 서인 송시열(宋時烈)이 주장하는 기년제(朞年制)의 잘못을 논박했다가 다시 파직당했고, 1674년 제2차 예송 때 남인이 집권하자 대사성, 공조참판, 예문관제학,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거쳐 좌참찬이 되었다.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파직당하고 명천(明川)에 유배, 이어 문천(文川)으로 이배(移配)되어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신원되었다.
이글은 저자의 문집 [남파집(南坡集) - 한국문집총간 제106집] 권10, 잡저에 실려있다. 원 제목은 <백흑난(白黑難)>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추진위원회 국역연수원교양강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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