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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原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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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原水)

강(江)·회(淮)·하(河)·한(漢)1)은 물 중에서 큰 것이다. 사람들이 다 반총(蟠총冢)·동백(桐柏)·곤륜(崑崙)·민산(岷山)에서 나오는 것만 알고, 그것이 이 네 산에 달하기 전의 근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대개, 물의 성질은 아래로 스며 내려가는 것이다. 물이 땅 밑에 있을 때는 비록 잠기며 고여 있으나, 땅 위에 나오게 되면 흐르고 움직이고 가득 차기도 해서, 그 이치에 따라 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이 물을 안다는 것은 보이는 것에만 국한되고, 그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둡다. 그러므로 성인은 땅 밑에 물이 있는 형상을 보고 이미 사괘(師卦)2)를 만든 후에 비괘(比卦)3)를 다음에 이었으니, 사람들에게 근원을 미루어 흐르는 데까지를 보인 것이다.

1)강(江) : 큰 시내 곧 강. 본디 양자강(楊子江))을 가리킴 / 회(淮) : 하남성(河南省) 동백산(桐柏山)에서 발원하여 안휘성, 강소성을 거쳐 황하로 흘러들어가는 강. / 하(河) : 중국에서는 황하(黃河)를 예로부터 하(河)라 함. ‘ 한(漢) 양자강(楊子江))의 지류(支流)인 한수(漢水). 중국의 강은 동서로 흐르는데 한수만은 남북으로 흐름. 2)육십사괘의 하나. 땅속에 물이 있음을 상징함. 3)육십사괘의 하나. 땅 위에 물이 있음을 상징함.

세상 사람들은 과연 물의 근원을 아는가. 축축하게 젖는 것은 물의 남은 기운이다. 그 흐르는 것이 방울방울 끊어지지 않아 잇닿다가 장강에 통하고, 큰 바다에 달하여는 호호(浩浩)1)하고 패연히2) 넓고 넓어 왈칵 닥치어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은미(隱微)3]한 것도 알고 드러난 것도 아는 자]4)가 아니면, 누가 능히 5)를 살피겠는가. 이것을 사람들6)이 다 같이 보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1)한없이 넓고 크다. 2)쏟아지는 모양이 매우 세차게. 3)묻히거나 작아서 알기 어려운. 4)겉으로 드러난 현상과 그 원리까지 아울러 아는 지혜를 지닌 사람. 5)막을 수 없는 물의 성질. 6)현상만 보고 그 원리까지는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

내가 하동(河東)에 있을 때에 집 곁에 작은 샘이 있는데, 그 근원이 수풀 속에 파묻혀 나오는 방향을 알지 못 하므로, 이웃 사람들1)이 더러운 흙에서 나오는 것이라 억측하고, 더럽게 여겨 먹지 않으려 하였다. 내가 가서 보고 그 근원을 청소하고 그 흐름을 터놓아, 조금 동쪽에다가 벽돌로 우물을 만드니 바로 이웃에 있는 냉정(冷井)으로 이름난 것과 수맥이 같고 맛이 또 같으니, 한 근원이요 물줄기만 나누어진 것이었다. 이에 부로(父老)2)들이 서로 와서 치하하며 왕래하고 길어 써도 마르지 않으니, 내가 진실로 옛말과 같이 지혜를 써서 물을 흐르게 한 것인가, 흐르는 것을 거슬러 근원을 알아낸 것인가 하였다.

1)현상만 보고 원리까지는 알지 못하는 일반인. 2)한 동네에서 나이가 많은 남자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

아, 사람이 세상에 쓰이고 버림을 당하는 것도 1)와 비슷함이 있다. 재주가 족히 임금을 착하게 하며, 백성을 윤택하게 할 선비가 있는데, 사람들이 곁에서 비방하면 물러나서 거칠고 더러움을 참으며 때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성군(聖君)과 지기(知己)2)를 만나 그 도를 천하에 행하게 된다면, 또 어찌 3) 물과 다르겠는가. 오늘날 위에 있는 자4)는 외모와 언변으로 사람을 취하고, 그 마음의 옳고 그름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니, 또한 물이 흐르는 것만 알고 그 근원은 알지 못함과 같다.

1)물의 근원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만 보는 것. 2)비방으로 인해 물러난 인재를 다시 등용하는 어진 임금과 그러한 인재를 임금에게 추천하는 사람(인재의 등용 원리를 아는 사람). 3)고요히 머물러 있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4)근원은 살피지 않고 외적인 현상에 집착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인물.

“하늘의 이치를 말하는 자는 반드시 사람에게서 이를 징험한다.”라고 하였으니, 지금 물을 논함에 또한 그러하다.1) 맹자 말씀에,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보라.”라고 하였다. 나도 또한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근원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1)사람에게서 물의 이치가 이루어질 징조를 경험하는 것.

요점 정리

지은이 : 이첨

갈래 : 수필

성격 : 현실 비판적, 교훈적

구조 : 사고의 확장

세상 사람들

성인(聖人)

겉으로 드러난 물의 모습만을 인식함

물의 근원을 앎

유추

인재를 선발하는 관리

확장

성주(聖主)

용모와 언사로써 사람을 취함

재주 있는 선비가 도를 행하게 함

제재 : 원수(原水)

주제 : 물의 근원에 대한 통찰을 통해 당대의 인재 등용 비판

특징 :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이해와 설득력을 높이고 있고, 유추를 통하여 논의를 확대하고 현실을 비판하고 있으며, 물에 대한 인식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인식과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고, 일반인들과 성인들의 지혜를 대조하여 현상에만 집착하여 올바른 판단을 그르치는 인식상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고, 성현의 말을 논거로 삼아 자기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음.

 

 

내용 연구

 

강(江)ㆍ회(淮)ㆍ하(河)ㆍ한(漢)[큰 물을 의미함]은 물 중에서 큰 것이다. 사람들이 다 반총(蟠冢)ㆍ동백(桐柏)ㆍ곤륜(崑崙)ㆍ민산(岷山)에서 나오는 것만 알고, 그것이[물이] 이 네 산에 달하기 전의 근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대개, 물의 성질은 아래로 스며 내려가는 것이다. 물이 땅 밑에 있을 때는 비록 잠기며 고여 있으나, 땅위에 나오게 되면 흐르고 움직이고 [호수 같은 곳에서는] 가득 차기도 해서, 그 이치에 따라[물이 자리를 잡게 되는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이 물을 안다는 것은 보이는 것에만 국한되고, 그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둡다[사람들은 환경에 따라 물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만을, 그것도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만을 볼 뿐이지(사람들은 물의 겉모습인 ‘현상’만을 볼 뿐이지), 물이 본래 땅 속에서 잠겨 고여 있는 것은(‘현상’ 속에 숨은 ‘원리’라 할 수 있는 물의 본래의 모습은)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땅 밑에 물이 있는 형상[물길을 따라]을 보고 이미 사괘(師卦)[육십사괘(六十四卦)의 하나. 곤괘(坤卦)와 감괘(坎卦)가 거듭된 것《땅속에 물이 있음을 상징함》.]를 만든 후에 비괘(比卦)[육십사괘의 하나. 감괘(坎卦)와 곤괘(坤卦)가 거듭된 것《땅 위에 물이 있음을 상징함》]를 다음에 이었으니, 사람들에게 근원을 미루어 흐르는 데까지를 보인 것이다.[이는 사람들에게 ‘근원’으로부터 시작해, 그 ‘근원’이 흘러 혹은 겉으로 드러나 ‘현상’이 되는 것을 보여준 바라 할 수 있다 /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물’의 ‘현상 속에 숨은 원리’를 보여줌으로써, 현상만 보며 사는 사람들(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과연 물의 근원을 아는가[질문의 방식을 통해, ‘은미한 것과 드러난 것을 모두 아는 사람만이 물의 근원을 알 수 있음’을 강조]. 또 축축하게 젖는 것은 물의 남은 기운이다. 그 흐르는 것이 방울방울 끊어지지 않아 잇닿다가[이에 이어서] 장강[큰 강]에 통하고, 큰 바다에 달하여는[도달하여서는] 호호(浩浩)하고[한없이 넓고 크며] 패연히[비나 물이 쏟아지는 모양이 매우 세차다.] 넓고 넓어 왈칵 닥치어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은미(隱微)[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없거나, 묻히거나 작아서 알기 어렵다]한 것도 알고 드러난 것도 아는 자[겉으로 드러난 현상과 그 원리까지 아울러 아는 지혜를 지닌 사람.]가 아니면, 누가 능히 이[막을 수 없는 물의 성질]를 살피겠는가. 이것을 사람들[현상만 보고 그 원리까지는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다 같이 보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사람들이 비록 모두 물을 보기는 하나, 대부분이 물의 겉모습만을 보기 때문에, 그 물의 근원은 잘 알지 못한다]

내가 하동(河東)에 있을 때에 집 곁에 작은 샘이 있는데, 그 근원이 수풀 속에 파묻혀 나오는 방향을 알지 못하므로, 이웃 사람들[현상만 보고 원리까지는 알지 못하는 일반인.]이 더러운 흙에서 나오는 것이라 억측하고, 더럽게 여겨 먹지 않으려 하였다. 내가 가서 보고 그 근원을 청소하고 그 흐름을 터놓아, 조금 동쪽에다가 벽돌로 우물을 만드니 바로 이웃에 있는 냉정(冷井)으로 이름난 것과 수맥이 같고 맛이 또 같으니, 한 근원이요 물줄기만 나누어진 것이었다. 이에 부로(父老)[한 동네에서 나이가 많은 남자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들이 서로 와서 치하하며 왕래하고 길어 써도 마르지 않으니, 내가 진실로 옛말과 같이 지혜를 써서 물을 흐르게 한 것인가, 흐르는 것을 거슬러 근원을 알아낸 것인가.[화자는 과거에 자신이 겪은 일을 소개함으로써, ‘물의 근원을 아는 일이 어떤 일’이고, ‘왜 그러한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아, 사람이 세상에 쓰이고 버림을 당하는 것도 이[물의 근원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만 보는 것]와 비슷함이 있다. 재주가 족히 임금을 착하게 하며, 백성을 윤택하게 할 선비가 있는데, 사람들이 곁에서 비방하면 물러와서 거칠고 더러움을 참으며 때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성군(聖君)과 지기(知己)[비방으로 인해 물러난 인재를 다시 등용하는 어진 임금과 그러한 인재를 임금에게 추천하는 사람(인재의 등용 원리를 아는 사람).]를 만나 그 도를 천하에 행하게 된다면, 또 어찌 이[고요히 머물러 있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물과 다르겠는가. 오늘날 위에 있는 자[근원은 살피지 않고 외적인 현상에 집착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인물.]는 외모와 언변으로[말솜씨로] 사람을 취하고, 그 마음의 옳고 그름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니[사람의 겉만 볼 뿐 사람의 깊은 속은 보지 못하니], 또한 물이 흐르는 것만 알고 그 근원은 알지 못함과 같다.[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사람의 겉모습만 보는 세상의 모습을, 사람들이 물의 겉모습만을 보는 현상에 비유하여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기 때문에, ‘유추(비유를 통한 추론)’가 사용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물’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세상일의 옳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으므로 본 글은 ‘자연물을 통해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화자가 ‘물’과 교감(서로 접촉하여 따라 움직이는 느낌)을 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를 비판하는 시각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따끔하게 지적을 하는 정도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뇌를 표출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늘의 이치를 말하는 자는 반드시 사람을 징험한다.”라고 하였으니, 지금 물을 논함에 또한 그러하다[사람에게서 물의 이치가 이루어질 징조를 경험하는 것.]. 맹자 말씀에,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보라.” 하였다. 나도 또 말하기를,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근원에 근본하라.” 하였다.[화자는 물을 보는 데에는 어떤 방법이 있음을 말하면서, 이러한 사고방식이 자신 혼자만의 방식이 아닌, 맹자라는 성현 또한 그러한 사고를 펼쳤음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다].

이해와 감상

 

이 글은 물의 근원에 대한 통찰을 통해 현상에만 집착하는 일반인의 태도와 성인의 지혜를 대조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물의 모습만 볼 뿐 물의 근원에 대해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의 인식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당대의 인재 등용 문제에 유추적으로 적용해 인재 등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물이나 현상의 근원을 탐색하며 의견을 논해 독자에게 보편적인 교훈과 깨달음을 주는 한문 문체 양식인 ‘원(原)’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작자의 식견과 교양이 돋보이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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