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우계총의 교훈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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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계총의 교훈

이 익 지음

조창래 번역

 

1. 현명한 모성

 

눈 먼 암탉이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데, 바른편 눈은 완전히 덮였고 왼쪽 눈도 반이상 실눈이 되어 있었다. 먹이가 그릇에 가득하지 않으면 쪼아 먹지를 못하고, 다니다가 담장에라도 부딪치면 헤매다가 돌아나오곤 하니, 모두들 저래가지고는 새끼를 기를 수 없다고 하였다.

마침내 날짜가 차서 병아리가 되어 나오니 빼앗아서 다른 어미에게 주려하였으나 한편으로 측은하기도 하여 차마 그러지 못하였다. 얼마 후 살펴보니, 별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뜰주변을 떠나지 않는데 병아리들은 똘똘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다른 어미를 보면 대개가 병들고 상처받아 죽거나 잃어버려 혹은 절반도 제대로 못 기르는데 유독 이 닭만은 온 둥지를 온전히 길러내니 어쩐 일인가?

흔히들 새끼를 잘 길러낸다고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즉, 먹이를 잘 구하는 것과 환란을 잘 막아주는 것이다. 먹이를 잘 구하려면 건강하여야 하고 환란을 막으려면 사나워야 한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면 어미 닭은 흙을 후비고 숨어 있는 벌레를 찾아내느라 부리와 발톱이 다 닳아빠지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새끼들을 불러모으느라 잠시도 편히 쉴 틈이 없다. 또 위로는 까마귀와 솔개, 주위로는 고양이나 개들을 살피며 부리를 세우고 깃을 펄떡여 목숨을 내걸고 항거함이 마치 용사가 맹적을 만난 것같이 한다. 그러다가 숲속으로 달아나서는 때맞추어 불러서 몰고 오는데 병아리는 삐약거리며 낭창낭창 뒤따라 오긴 하지만 힘이 빠지고 병들기 쉽상이다. 때로는 엇갈리어 길을 잃기라도 하면 물이나 불 속에 빠져 생사를 기필할 수 없으니, 이렇게 되면 먹이를 구해준 것도 허사로 돌아간다. 또 조심조심 보호하고 타오르는 불길같이 맹렬히 싸워도 환란이 스쳐가고나면 병아리 6∼7할을 잃고 만다. 게다가 너무 멀리 나가 사람의 보호도 받을 수 없으면 사나운 새매를 무슨 수로 당해내겠는가. 이렇게 되면 환란을 방비하느라 애쓴 것도 허사가 된다.

그런데 저 눈 먼 닭은 하나같이 모두 이와는 반대이다. 멀리 갈 수 없으므로 사람 가까이에서 맴돌고, 눈으로 살필 수 없으니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행동을 조심조심하며 노상 끌어안고 감싸준다. 그러므로 힘쓰는 흔적은 보이지 않아도 병아리들은 저들끼리 알아서 먹이를 쪼아먹고 자라난다. 무릇 병아리를 기르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아서 교란시키는 것이 가장 금기인데, 저 눈 먼 닭은 지혜가 있어서 그리 한 것은 아니겠으나 방법이 적중하여 마침내 양육에 만전을 이루게 된 것이다.

사물을 양성하는 방도는 한갓 젖먹이는 은혜에 달려있는 것이 아님을 이제야 알겠다. 통솔하되 제각기 제 삶을 이루도록 해야하니, 그 요령은 오직 잘 인솔하여 잃어버리지 않는 것 뿐이다. 나는 이 병아리 기르는 것으로 인하여 사람을 양육하는 도리를 깨달았다.

2. 형제간의 우애

 

내가 암탉 한 마리를 길렀는데 성품이 매우 자애로와 병아리 한 배를 길러놓고 두번째 병아리를 기르면서 먼젓번 배의 병아리도 함께 먹이고 있었다. 앞 배의 것은 겨우 깃이 생기고 뒤의 것은 아직 솜털 뿐인데 하룻밤에 어미 닭이 들짐승의 먹이가 되고 말았고 병아리도 큰 것은 역시 잡혀갔다. 암컷 한 마리가 요행히 도망쳤으나 역시 대강이와 쭉지에 털이 빠지고 전신에 상처를 입어 모이도 제대로 못 쪼았다.

병아리 떼는 삐약거리며 몹시 애닯게 어미를 찾고 있었는데 상처 입은 암컷이 상처가 조금 나아지자 즉시 병아리 떼를 불러서 품어주는 것이었다. 집안 사람들이 처음엔 우연이려니 하였으나 이윽고 먹이를 보면 반드시 부르고, 다닐 때는 꼬꼬꼬하는 어미 닭 소리를 내며 뜰 앞을 떠나지 않고 혹 깃을 벌려 환란을 막기도 하였다. 또 어쩌다 서로 엇갈리면 두리번대며 미친 듯이 날고 뛰면서 찾아다니니, 크고 작은 것이 서로 자애하고 따름이 흡사 그 어미와 새끼 같았다. 또한 짐승의 해를 피하여 사람을 가까이하고 처마 끝 돌출된 곳에서 자곤 하였는데, 때 마침 큰 장마가 두어 달 계속되니 그 두 깃으로 병아리를 덮어 비에 젖는 것을 모면하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몸도 작고 다리가 짧아서 굽힐 수가 없으니 밤새도록 꼿꼿이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기를 여름부터 가을까지 한결같이 하니 보는 이마다 감탄하였다. 이에 이름을 '우계(友鷄)'라고 명명하고, 사람들이 불선한 행동을 하면 서로 주의 주기를 "우계를 보아라 우계를"이라고 하면 부끄러워 굴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볏가리의 곡식을 쪼아도 차마 몰아 내지 못하였으니 사람에게 신임 받기를 이처럼 하였다.

마침내 병아리는 자라서 크기가 주먹만큼씩이나 한데 우계는 여전히 치약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도 변함없이 먹이고 덮어주고 하느라 자신은 병이 드니, 이것은 밤에 이슬을 맞아가며 병아리 기르기에 애쓴 노고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더욱 더 측은하게 여겼다.

그런데 들짐승이 몰래 엿보고 있을 줄이야. 마침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잃어버렸는데 집안 사람들이 쫓아갔으나 놓치고 말았고 고작 산길에 흩어져 있는 부러진 깃만 찾아내었을 뿐이었다. 내가 마침 외출에서 돌아와 그 말을 듣고 하마트면 눈물을 왈칵 쏟을 뻔하였다. 혹 잔해라도 남은 것이 없나 하고 두루 찾아 보았지마는 없었고 산길에 떨어진 깃을 주워모아 상자에 넣어 산에 묻고 '우계총(友鷄塚)'이라고 지칭하였다.

아, 고금의 말이 만물도 한가닥의 트인 것이 있다고 하는데, 까마귀의 자식노릇과 벌의 신하노릇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다. 그러나 벌은 분봉(分蜂)이 있어 떼 갈림이 있고 이익과 해독을 함께 할 수 없으며 까마귀도 젖먹은 은혜를 보답할 뿐이고 우애의 도리에 있어서는 천고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애란 부모의 심정을 미루어 형제에 미치는 것으로 사람도 쉽지 않은 것인데 더구나 동물이야 말할 것 있겠는가.

무릇 사람이 착한 일 하는 것은 혹은 선배가 이끌어 주기도 하고 혹은 풍속의 본을 받기도 하며 또는 명성을 위하여 가식을 좋아하기도 하는 이가 있으니 그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수도 있지마는, 지금 이 동물은 누가 가르치고 누구에게 배웠으며 또한 무엇을 위하여 가식을 하였겠느냐.

인간의 행실은 본래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있다. 그러므로 해박한 상식과 돈독한 행실은 어린 아이에게 바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행한다 하더라도 시종여일하기란 어려운 것인데, 지금 이 동물은 병아리를 채 못벗어났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기특한가. 내가 듣기로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은 성인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동물은 성인이었을까. 형태의 본성을 실천하는 것이 성인이라고 하였는데 날짐승으로서 인간으로도 어려운 일을 하였으니 이것은 형태에 구애받지 않은 것이 아닌가. 공적을 이루고 자신은 죽어 보답을 받지 못하였으니 어쩌면 이치는 통달함을 부여 받았으나 운수를 각박하게 만난 것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남들은 예사롭게 여기지마는 만물이 서로 엇비슷함이 있으니 길가에 무덤을 만들어 오가는 이를 보게 하노라.

이 익(李瀷) : 1681∼1763. 경기도 여주 사람으로 대사헌 이하진(李夏鎭)의 아들. 성리학으로는 퇴계 이황을 사숙하였고 실학으로는 반계 유형원의 학풍을 계승하였다. 저술로『성호사설(星湖僿說)』과 『성호전집(星湖全集)』이 전한다. 위 글은 한국문집총간 제200집 『성호전집 Ⅲ』권 68에 실려 있으며, 원제는 <할계전(할鷄傳)>과 <우계전(友鷄傳)>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추진위원회 국역연수원교양강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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