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고 싶어서 / 본문 및 해설 / 법정
by 송화은율함께 있고 싶어서 / 법정
가을은 떠나는 계절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 가을에 더욱 만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막혔던 사연들을 띄우고 예식장마다 만원을 사례하게 된다. 우리 절 주지 스님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 가을에 몇 번인가 주례를 서게 될 것이다.
결혼을 두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일생에 단 한 번 모르고나 치를 형벌 같은 것이라고 씁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족 보존을 위해서라고 제법 인류학자 같은 말을 하는 이도 있다. 혹은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선량한 상식인은 훨씬 많다.
여름내 보이지 않던 ㅈ양이 며칠 전에 불쑥 나타났다. 전에 없이 말수가 많아진 그는 이 가을에 결혼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평소에 결혼 같은 것은 않겠다고 우기던 그라 장난삼아 이유를 물었더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늘 함께 있고 싶어서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신이 나서 늘어 놓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늘 함께 있고 싶다는,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그 뜻에 복이 있으라 빌어 주었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끼리 함께 있을 수 없을 때 인간사(人間事)에는 그늘이 진다. 우수(憂愁)의 그늘이 진다.
그런데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는 그러한 존재가 아닐까. 사람은 분명히 홀로 태어난다. 그리고 죽을 때에도 혼자서 죽어 간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도 혼자서 살 수밖에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도 저마다 홀로 서 있듯이, 지평선 위로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시인의 날개를 빌지 않더라도 알 만한 일이다.
사람은 저마다 업(業)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을 따로 해야 되고 행동도 같이 할 수 없다.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인연의 주재자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이것은 어떤 종교의 도그마이기에 앞서 무량겁을 두고 되풀이될 우주 질서 같은 것.
죽네 사네 세상이 떠들썩하게 만난 사람들도 그 맹목적인 열기가 가시고 나면, 빛이 바랜 자신들의 언동(言動)에 고소(苦笑)를 머금게 되는 것이 세상일 아닌가. 모든 현상은 고정해 있지 않고 항상 변하기 때문이다.
늘 함께 있고 싶은 희망 사항이 지속되려면, 들여다보려고 하는 시선을 같은 방향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서로 얽어매기보다는 혼자 있게 할 일이다. 거문고가 한 가락에 울리면서도 그 줄은 따로따로이듯이, 그러한 떨어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작자 : 법정(法頂)
형식 : 경수필
성격 : 철학적. 교훈적
문체 : 간결체
제재 : 늘 함께 있고 싶은 마음
주제 : 함께 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좋아하는 사람과 늘 함께 있기 위해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조화를 유지해야 함
출전 : <영혼의 모음(母音)>(1973)
구성 : 기-서-결의 3단 구성
사람들은 가을에 만남을 원한다.(처음 - 주례를 설 것이다.)
ㅈ양의 뜻밖의 방문(여름내 보이지 않던 - 우수의 그늘이 진다.)
본질적으로 고독한 인간(그런데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은 - 알 만한 일이다.)
제각기 생각과 행동이 다른 인간(사람은 저마다 - 우주 질서 같은 것.)
항상 변하는 세상 일(죽네 사네 세상이 - 항상 변하기 때문이다.)
혼자의 의미를 새겨 볼 필요성(늘 함께 있고 싶은 희망 사항이 - 끝)
가을은 떠나는 계절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을 그 가을에 더욱 만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막혔던 사연들을 띄우고 예식장마다 만원을 사례하게 된다. 우리 절 주지 스님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 가을에 몇 번인가 주례를 서게 될 것이다.
- 사람들은 가을에 만남을 원한다.
여름내 보이지 않던 ㅈ양이 며칠 전에 불쑥 나타났다. 전에 없이 말수가 많아진 그는 이 가을에 결혼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평소에 결혼 같은 것은 않겠다고 우기던 그라 장난삼아 이유를 물었더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늘 함께 있고 싶어서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신이 나서 늘어 놓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늘 함께 있고 싶다는,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그 뜻에 복이 있으라 빌어 주었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과 늘 함께 있을 수 없을 때 인간사에는 그늘이 진다. 우수의 그늘이 진다.
- ㅈ 양의 뜻밖의 방문
그런데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는 그러한 존재가 아닐까. 사람은 분명히 홀로 태어난다. 그리고 죽을 때에도 혼자서 죽어 간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도 혼자서 살 수밖에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도 저마다 홀로 서 있듯이, 지평선 위로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시인의 날개를 빌지 않더라도 알 만한 일이다.
- 본질적으로 고독한 인간
사람은 저마다 업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을 따로 해야 되고 행동도 같이 할 수 없다.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인연의 주재자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이것은 어떤 종교의 도그마이기에 앞서 무량겁을 두고 되풀이될 우주 질서 같은 것.
- 제각기 생각과 행동이 다른 인간
죽네 사네 세상이 떠들썩하게 만난 사람들도 그 맹목적인 열기가 가시고 나면, 빛이 바랜 자신들의 언동에 고소를 머금게 되는 것이 세상일 아닌가. 모든 현상은 고정해 있지 않고 항상 변하기 때문이다.
- 항상 변하는 세상 일
늘 함께 있고 싶은 희망 사항이 지속되려면, 들여다보려고만 하는 시선을 같은 방향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서로 얽어매기보다는 혼자 있게 할 일이다. 거문고가 한 가락에 울리면서도 그 줄을 따로따로이듯이, 그러한 떨어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 혼자의 의미를 새겨 볼 필요성
업 :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 불교에서는 이것이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함.
주재자 : 사람들 위에서 일체를 관할하는 사람.
도그마 :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증명·비판 따위가 허용되지 않는 부동의 진리나 교리.
무량겁 : 끝이 없는 시간.
맹목적 : 이성을 잃고 적절한 분별·판단 등을 못하는.
고소 : 쓴 웃음. 냉소적이거나 자조적으로 짓는 웃음.
인간은 본질적으로∼아닐까 : '혼자 태어나고 혼자 죽어 가는' 삶의 시작과 끝을 볼 때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지평선 위로 ∼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숲은 모든 나무들이 모여 함께 있는 것 같지만 모든 나무들이 개체의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비유로 들어, 세상의 무리를 이루고 있는 인간 역시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라는 철학적 주제를 설파하고 있다.
인연의 주재자는∼질서 같은 것 : 현세의 인간의 인연은 그가 행한 전생의 업에 따라 정해지므로 결국 인연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이것은 딱히 불교의 교리라기보다는 원인에 따라 결과가 해지는 우주의 질서와 같다는 뜻이다.
들여다보려고만∼할 것이다 :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로 얽어매기에 열중할 것이 아니라, 나란히 앞을 보고 서서 '혼자'의 의미를 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거문고가 한 가락에∼할 것이다 : 거문고 줄이 한데 엉겨 붙으면 소리가 나지 않고 사원의 두 기둥이 한데 붙어 있으면 기둥도 사원도, 모두 무너지고 만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늘 함께 있기 위해서는 거문고 줄이나 사원의 기둥처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뜻의 비유적 표현이다.
이 글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결혼을 하기로 했다는 어느 사람의 이야기를 단서로 함께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 설명한 수필이다. 인간은 본래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사회를 통해서 끊임없는 만남과 헤어짐의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는 늘 함께 있고 싶은 것은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작자는 함께 있는 삶이 역설적으로는, 혼자 있게 하는 삶이라 설법하고 있다. 함께 있는 것이란 서로를 얽어 매어 상대방을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자는 숲 속의 나무, 사원의 두 기둥, 거문고의 두 줄을 비유로 들어 상대방을 소유하는 것(have)보다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be)로 인정해 주는 지혜를 설파하고 있다. 이 글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깊이 음미할 수 있게 한다.
그러니까, 작자는 함께 있는 삶이란 바로 상대방을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 글은 인간은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깊이 음미할 수 있게 한다. 결국 늘 함께 있는 조화로운 삶이란 '시선을 같은 방향으로 돌려야' 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법정(法頂)
승려. 수필가. 법정(法頂)은 법명. 1954년에 효봉 선사(曉峰禪師)의 문하에 입산하여 불도에 정진함. 불교적 지성을 바탕으로 현실을 예리하게 파헤쳐 삶의 깊은 진리를 불교적 득도(得道)의 모습으로 보여 준다. 저서로는 <텅 빈 충만>, <서 있는 사람들>, <영혼의 모음(母音)>, <버리고 떠나기>, <무소유>, <산방한담(山房閑談)>, <물소리 바람소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등이 있으며, <불교성전>을 엮어 내기도 하였으며 많은 번역서도 있다.
법정의 수필 세계
법정 스님은 종교인이요, 사회 운동가이며, 수필가이다. 그는 '직업적인 수필가'는 아니지만 많은 작품을 발표하여 오늘의 우리 수필 문학의 영역에 한 획을 긋고 있다. 그는 사회 운동가로서 종교적인 자비 사상을 바탕으로 사회 정의를 이룩하려고 했으며, 이를 위하여 설법만이 아닌 많은 글을 썼다.
그의 수필은 불교적 지성을 바탕으로 현실의 아이러니를 예리한 감수성으로 파헤쳐 쉽고 간결한 표현을 통해 독자들에게 불교적 득도의 모습을 제시한다. 그의 수필 정신은 심산 유곡의 불심, 고색 창연한 불교 사상을 현실의 언어로 오늘의 이 현실에 관한 문제로, 즉 끊임없이 사랑과 증오의 사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이 세계로 끌어 내오는 것이다. 그의 수필이 대부분이 짤막하며 일상의 단상 내지 세속 잡사에 대한 수필이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이 편린들을 통해 새로이 발견하는 불교의 현대적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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