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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 본문 일부 및 해설 / 유진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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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 유진오

 본문

이렇다 할 아무런 업적도 남긴 것 없이, 벌써 인생의 절반을 살아 온 내다. 20 전후의 불타오르는 듯하던 정열을 생각하면, 지나간 열다섯 해 동안 무엇을 해 온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도 모르겠다. 내깐으로는 허송 세월은 하지 않노라고 해 왔는데 결국 이 꼴이니, 앞으로 남은 반생이 또 이 꼴로 지나가 버리면 어찌 될 것인가. 송연(송然)한 노릇이다.

 

그 전에는 내 나이 젊은것을 핑계삼고, 누가 무엇을 쓴 것이 몇 살, 누가 무슨 일을 한 것이 몇 살 하고, 스스로 자신의 무능을 위로해 왔다. 그러나 어찌어찌 하다가 보니,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던 누구누구의 나이를 어느새엔가 나 자신이 넘어서고 말았으니, 인제는 무엇으로써 스스로 위안할까. 환경을 따져 보고 시대를 원망해보고 한 됐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위대한 정신은 항상 시대나 환경에 지배됨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거꾸로 시대나 환경을 창조하지 않았던가. 이 말이 지나친 말이라면 그들은 어떠한 시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결코 자신을 그대로 그 속에 매몰(埋沒)시켜 버리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철벽(鐵壁)을 뚫고 자신을 키워 나가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의 정신에 무엇인가를 플러스하였다. 나이 반생을 넘어서도록 아직 아무것도 일다운 일을 하지 못한 나는 결국 나 자신의 무능을 한탄할 수밖에 없다.

 

7, 8평 되는 안마당에다 지난 4월 아내와 아이들이 두어 평 되는 화단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비록 크지는 않으나마, 무궁화를 한 나무, 라일락을 두 나무 심은 뒤에, 작약(芍藥) 옥잠화(玉簪花) 국화 은방울꽃 칸나 촉규화(蜀葵花) 백합 등 속의 다년생 초본과 함께 채송화 봉선화 해바라기 양귀비 백일홍(百日紅) 분꽃 코스모스 한련(旱蓮) 나팔꽃 등 속의 화초 씨를 잔뜩 뿌렸다.

 

20평 화단이라도 비좁을 만큼, 여러 가지 나무랑 화초랑 심길래 나는 여러 번 나무랐으나, 아내와 아이들은 듣지 않고 다 심고 나서, 아침저녁 정성껏 물을 주었다. 며칠 지나니 나뭇가지에서는 파릇파릇 움이 돋고 땅에서는 소복하게 귀여운 싹이 나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신기한 것을 보는 듯 소리를 내 기뻐하고, 나는 내심 지난번에 나무란 것을 점직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린 화초들이 시루 안에서 콩나물 자라듯 비비고 나오기 때문에 밴 놈은 아깝지만 솎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약한 놈은 솎아낼 때를 기다리지도 못하고 저절로 사그라졌다. 그리해 두 달이 다 못 가서, 내 안마당 두 평 짜리 화단에는 두 평에 알맞은 만큼의 화초만이 남고 말았다.

 

지금 우리 안마당에는, 해바라기 두 그루가 가장 키도 크고 줄기도 굵어서 좁은 화단의 주인인 양 버티고 섰고, 그 옆에 키 큰 촉규화가 자줏빛 꽃을 한창 달고 있을 뿐, 그 밖의 화초들은 모조리 볼품 없이 되고 말았다.

 

싱싱하게 자라는 안마당 해바라기를 볼 때마다, 나는 내 방 앞에 있는 병든 해바라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서재 앞마당은 석 자도 못되는 넓이에다가, 6척이 넘는 벽돌담이 남쪽을 가리어, 꽃을 심어도 안 되고 나무를 심어도 안 되는 곳인데, 5월 달에 안마당에서 화초를 솎아 버리다가 그 중 키도 잎사귀도 제일 큰 해바라기 한 그루를 아깝다고 아이들이 옮겨다 심은 것이다.

 

<후략>

 

 

 요점 정리

 작자 : 유진오

 성격 : 경수필

 성격 : 철학적, 사색적, 교훈적

 주제 : 자연에서 느끼는 생명에 대한 단상

 

 내용 연구

 깐 : 일의 형편 따위를 속으로 헤아려 보는 생각이나 가늠

 철벽(鐵壁) : 쇠로 된 것처럼 견고한 벽. 또는 쇠로 된 벽이라는 뜻으로, 잘 무너지거나 깨뜨려지지 않는 대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직경(直徑) : 지름

 송연 : 두려워 몸을 움추림.

 점직하다 : 조금 미안하고 부끄럽다.

 애착(愛着) :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아니함. 또는 그런 마음.

 이해와 감상

  이 수필은 글쓴이가 자신의 반생을 회고해 보며, 아직 아무 것도 일다운 일을 하지 못한 자신을 나쁜 환경에서 자라나서 볼품 없이 병든 해바라기에 빗대어 쓴 것이다.

 

 글쓴이는 좁은 화원에서 솎아 버린 화초 중 해바라기 하나가 볕이 안 드는 곳에 옮겨 심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기술하는 것으로 수필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양지쪽에서 자라는 씩씩하고 건강한 해바라기와 자신의 서재 앞의 음지에서 자란 해바라기를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잘 자란 해바라기로부터 환경이 좋아서인데도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된 듯이 우쭐거리는 인간의 모습을 읽어내고 있으며, 그와 달리 병든 해바라기로부터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겸허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가운데,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생명 본연의 몫을 하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일방적으로 어느 한 편의 관점을 선뜻 택하지 않는다. 어차피 적자생존의 경쟁 속에서 삶은 존재하기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의 법칙을 인정하면서도 필자는 자신의 감정이 어쩔 수 없이 병든 해바라기에 집착하는 것을 느낀다. 이는 물론 너무도 당연한 인간의 마음이지만, 그는 원인에 대한 탐색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병든 해바라기는 어디까지나 환경의 탓이지, 그 자신만의 잘못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글쓴이의 관점은 그의 작품 전반에 표출(表出)되고 있다. 곧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의 왜곡된 삶이란 비록 보기 싫은 모습을 띠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전적으로 이들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유진오로 하여금 초기에 동반자 작가로 가난한 이들의 옆에 서 있으려고 했던 노력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심화 자료

 

 유진오 (兪鎭午/1906.5.13~1987.8.30)

 

 1906∼1987. 법학자·교육 행정가·정치인.

 

〔생 애〕

본관은 기계 ( 杞溪 ). 호는 현민(玄民). 서울 출생. 아버지는 궁내부 제도국 참사관 치형(致衡)이다. 1914년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졸업하였으며,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192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하였고, 1926년 동대학 법문학부 법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한 뒤 1929년 4월부터 1933년 3월까지 동대학 법문학부 조수로 있으면서 예과에 강사로 나갔다.

 

1933년 4월부터 보성전문학교 전임강사가 되어 1936년 4월 교수가 되었다. 1945년 광복 후 잠시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를 겸하였으나 고려대학교에 남아 법정대학장(1946∼1949)·대학원장(1949∼1952)·총장(1952∼1965)을 역임하였다.

한편, 법전편찬위원회 위원(1946∼1950)으로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하였고, 법제처장(1948∼1949), 고등고시위원(1949∼1955), 6·25전쟁 때 부산 전시연합대학 총장(1951), 한일회담 한국측 대표(1951∼1952), 대한국제법학회장(1953∼1968), 한국공법학회장(1957∼1961), 한국법철학회장(1957∼1965), 대한교육연합회장(1960∼1965),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장(1961)을 역임하면서 교육·문화·사회의 다방면에서 활동하였다.

 

1955년 연희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54년부터 학술원 종신회원이 되었다. 고려대학교 총장직을 은퇴하고 야당 정치활동에 투신하여 민중당 대통령후보(1966)가 되었고, 신민당 총재(1967∼1970)와 국회의원(1967∼1971)을 지냈다. 1983년부터 투병생활을 하다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별세하였다.

 

〔저 술〕

법학을 공부하고 일제강점기에는 문학가로서 필명을 날리기도 하였던 그는 광복 후 헌법학자로 ≪헌법해의 憲法解義≫(1949)·≪헌정의 기초이론≫(1950)·≪헌법강의≫(1953)·≪헌법기초회고록≫(1981) 등의 저서와 ≪민주정치에의 길≫(1963)·≪양호기 養虎記≫(1977)·≪미래를 향한 창≫(1978)·≪구름 위의 만상(漫想)≫ 등의 저서가 있다. 문학작품으로 〈창랑정기〉·〈김강사와 T교수〉 등도 널리 알려졌다.

 

≪참고문헌≫ 偉大한 法思想家들(崔鍾庫, 學硏社, 1985), 韓國의 法學者(崔鍾庫, 서울大學校 出版部, 1989), 韓國法思想史(崔鍾庫, 서울大學校 出版部, 1989), 玄民兪鎭午의 法思想(田光錫, 延世法學, 1992).

 결정론 決定論 (determinism)  

  인간의 행위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것이 정해진 때와 장소에서 일어나도록 미리 정해졌다는 근거를, 종교적 계시에서 구하는 것을 19세기 고전물리학의 전성시대에는 이 물리학이 결정론적인 세계상(世界像)을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학적 결정론’의 올바름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양자역학이 나오면서 강력한 의미에서의 결정론은 반드시 모든 국면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어, 일이 일어나는 확률만이 결정되어 있다고 하는 ‘확률론적 결정론’이 유력해졌다. 그러나 과학자들 가운데는 아직도 결정론적 사고방식에 매력을 느끼는 듯한 사람이 있어, 아인슈타인처럼 확률론적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못하여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은 물리학자도 있고, 양자역학에 결정론적인 해석을 다시 주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특수한 문제로서는 인간의 행동에 결정론적인 해석이 합당한 것인가 아닌가는 예로부터 대두된 문제였으나, 컴퓨터 모델에 의한 심리학의 발전은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결정론적 해석이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중요한 것은 결정론이 절대적으로 올바른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국면에서 어느 정도 유효한가의 문제일 것이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비결정론 非決定論 (indeterminism)

 신(神) 또는 인간이 의지의 자유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신학상 ·철학상의 학설이며 결정론(決定論)과 대립된다.

⑴ 신의 자유의 설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지주의(主知主義)에 대한 J.둔스 스코투스나 W.오컴의 반론으로 대두되었다. 신의 의지는 오성(悟性)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신의 오성의 내용을 이루는 영원진리도 신의 의지의 자유로운 결의에 의하여 성립된다고 생각한다. 이 사고방식은 근세의 철학자로서는 R.데카르트에서 현저하며 만년의 F.셸링도 같은 견해를 보인다.

 

⑵ 인간에서 의지의 자유는 본래 신의 예정의 필연성과 대립하여 주장된 것이다. 현저한 예로서는 M.루터의 예정설(豫定說)에 반대하여 인간의 자유를 옹호한 D.에라스무스의 경우가 있다. 근세철학에서 의지의 자유는 자연법칙의 필연성에 대립하는 것으로 다루어진다. 그것은 다음 두 입장에서 주장한다.

 

① 자연현상이 필연적 인과성(因果性)에 의한 지배를 승인해야 감성계(感性界)를 초월한 가상계(可想界)에서 인간의 자유가 발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I.칸트가 주장한 선험적(先驗的) 자유에서 전형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② 자연법칙 자체에 우연성을 승인하고 그것을 토대로 의지의 자유를 긍정하는 입장이 있다. 유심론(唯心論) 철학이 대체로 이런 사고방식이다. 특히 프랑스의 신유심론(新唯心論) 철학자들(부트루, 베르그송)은 이 입장을 대표하는 사상가들이다.

 

이 밖에 심리학적 비결정론으로서 인간행위의 자유, 외적 조건의 제약을 받지 않는 의지의 자기 결정력을 인정하며 W.제임스, F.실러, E.부트루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 양자역학(量子力學)에서의 불확정성 원리가 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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