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딴 문답(皮蛋問答) / 본문 일부 및 해설 / 김소운
by 송화은율피딴 문답(皮蛋問答) / 김소운
"자네, '피딴'이란 것 아나?"
"피딴이라니, 그게 뭔데……?"
<중략>
"있고말고. 내 얘기를 들어 보면 자네도 동감일 걸세. 오리알을 껍질째 진흙으로 싸서 겨 속에 묻어 두거든……. 한 반 년쯤 지난 뒤에 흙덩이를 부수고, 껍질을 까서 술안주로 내놓는 건데, 속은 굳어져서 마치 삶은 계란 같지만, 흙덩이 자체의 온기(溫氣) 외에 따로 가열(加熱)을 하는 것은 아니라네."
"오리알에 대한 조예(造詣)가 매우 소상하신데……."
"아니야, 나도 그 이상은 잘 모르지.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야. 껍질을 깐 알맹이는 멍이 든 것처럼 시퍼런데도,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풍미(風味)가 기막히거든. 연소(燕巢)나 상어 지느러미[ ]처럼 고급 요리 축에는 못 들어가도, 술안주로는 그만이지……."
"그래서 존경을 한다는 건가?"
"아니야, 생각을 해 보라고. 날것째 오리알을 진흙으로 싸서 반 년씩이나 내버려 두면, 썩어 버리거나, 아니면 부화(孵化)해서 오리 새끼가 나와야 할 이치 아닌가 말야……. 그런데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가 되지도 않고, 독자의 풍미를 지닌 피딴으로 화생(化生)한다는 거, 이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 허다한 값나가는 요리를 제쳐 두고, 내가 피딴 앞에 절을 하고 싶다는 연유가 바로 이것일세."
"그럴싸한 얘기로구먼.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도 되지 않는다……?"
"그저 썩지만 않는다는 게 아니라, 거기서 말 못 할 풍미를 맛볼 수 있다는 거,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지……. 남들은 나를 글줄이나 쓰는 사람으로 치부하지만, 붓 한자루로 살아 왔다면서, 나는 한 번도 피딴만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네. '망건을 십 년 뜨면 문리(文理)가 난다.'는 속담도 있는데, 글 하나 쓸 때마다 입시를 치르는 중학생마냥 긴장을 해야 하다니, 망발도 이만저만이지……."
<후략>
작자 : 김소운(金素雲)
형식 : 경수필. 희곡적 수필
성격 : 희곡적, 비유적, 교훈적, 성찰적(전체가 대화로 이루어져 마치 희곡의 대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대화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작자 자신이 스스로 주제를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희곡적 수필의 특성이 엿보인다. 피딴이라는 비유를 통해 사물과 인생을 연결시켜 표현하였다.)
제재 : 피딴
문체 : 대화체, 간결체
주제 : 원숙한 생활미에 대한 예찬, 피딴과 쇠고기 뭉치를 통해 깨닫게 된 인생의 오묘한 이치
출전 : <김소운 수필 전집>
구성 : 화제에 따른 2단 구성
① 피딴의 독자적인 풍미와 작자의 창작 활동과의 대비 - 피딴의 풍미
② 썩기 직전의 쇠고기 맛과 중용의 도를 지키는 인생의 원숙미의 대비 - 썩기 직전의 쇠고기 맛
표현 : 두 가지 일화에서 하나의 주제를 도출하고 있고, 일상적인 사물에서 유추하여 깨달음을 얻고 있으며, 대화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극적 성격이 강하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성찰적인 성격이 드러나고 있다.
"자네, '피딴[(皮蛋) : 오리알을 지열로 숙성시켜 겉이 퍼렇게 된 중국 요리]'이란 것 아나?"
"피딴이라니, 그게 뭔데……?"
"중국집에서 배갈[수수를 원료로 하여 만든 향기 있는 증류주. 고량주(高粱酒)] 안주로 내는 오리알[鴨卵] 말이야. '피딴(皮蛋)'이라고 쓰지."
"시퍼런 달걀 같은 거 말이지, 그게 오리알이던가?"
"오리알이지. 비록 오리알일망정, 나는 그 피딴을 대할 때마다, 모자를 벗고 절이라도 하고 싶어지거든……."
"그건 또 왜?"
"내가 존경하는 요리니까……."
"존경이라니……, 존경할 요리란 것도 있나?"[존경할 요리란 것도 있나? : 이 수필의 도입 부분에서 하나의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유도한다. 나는 그 피딴을 보면 늘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 까닭은 피딴이 썩지 않고 독특한 맛을 지니기 때문이다. 피딴을 인간에 비유한다면 인생의 원숙한 경지에 이른 사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있고말고. 내 얘기를 들어 보면 자네도 동감일 걸세. 오리알을 껍질째 진흙으로 싸서 겨 속에 묻어 두거든……. 한 반 년쯤 지난 뒤에 흙덩이를 부수고, 껍질을 까서 술안주로 내놓는 건데, 속은 굳어져서 마치 삶은 계란 같지만, 흙덩이 자체의 온기(溫氣) 외에 따로 가열[加熱 : (어떤 물체에) 열을 가함]을 하는 것은 아니라네."[흙덩이 자체의 - 것은 아니라네. : 오리알이 피딴이 된 것은 흙덩이가 지니고 있는 따스한 기운 때문이지 인간이 인위적으로 열을 가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피딴은 자연스러운 가운데 은근하게 숙성된 존재라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호의를 드러내고 있다]
"오리알에 대한 조예(造詣)가 매우 소상하신데……."
"아니야, 나도 그 이상은 잘 모르지.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야. 껍질을 깐 알맹이는 멍이 든 것처럼 시퍼런데도,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풍미[(風味) : 음식의 좋은 맛]가 기막히거든. 연소(燕巢 : 제비집 요리)나 상어 지느러미[ ]처럼 고급 요리 축에는 못 들어가도, 술안주로는 그만이지……."
"그래서 존경을 한다는 건가?"
"아니야, 생각을 해 보라고. 날것째 오리알을 진흙으로 싸서 반 년씩이나 내버려 두면, 썩어 버리거나, 아니면 부화(孵化)해서 오리 새끼가 나와야 할 이치 아닌가 말야……. 그런데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가 되지도 않고, 독자의 풍미를 지닌 피딴[인생의 원숙한 경지에 이른 사람을 비유]으로 화생(化生 : 생물의 기관이 보통의 형태와 현저하게 변하고, 그에 따라 기능도 변하는 일)한다는 거, 이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 허다한 값나가는 요리를 제쳐 두고, 내가 피딴 앞에 절을 하고 싶다는 연유가 바로 이것일세."[ 내가 피딴 앞에 - 바로 이것일세. '절을 하고 싶다'는 표현은 '존경할 요리'라는 표현과 일치한다. 작자가 '존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자신의 글쓰기가 피딴만도 못하다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럴싸한 얘기로구먼.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도 되지 않는다……?"
"그저 썩지만 않는다는 게 아니라, 거기서 말 못 할 풍미를 맛볼 수 있다는 거,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지……. 남들은 나를 글줄이나 쓰는 사람으로 치부하지만, 붓 한자루로 살아 왔다면서, 나는 한 번도 피딴만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네.[ 나는 한 번도 - 적이 없다네. : 내가 오랫동안 글을 써왔지만 잘 익은 피딴과 같이 독특한 풍미를 지닌 글은 써 보지 못했다는 표현] '망건(상투 있는 사람이 머리에 두르는 그물처럼 생긴 물건)을 십 년 뜨면 문리(文理 : 문장의 조리. 학문의 조리를 깨달아 아는 길)가 난다.[어떤 일이든지 오래도록 종사하면 그 일을 환히 꿰뚫어 알게 된다. 한 가지 일에만 열중하면 깨달음이 생긴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도 있는데, 글 하나 쓸 때마다 입시를 치르는 중학생(미숙)마냥 긴장을 해야 하다니, 망발도 이만저만이지……."
"초심불망[(初心不忘) : 처음에 먹은 마음을 끝까지 잊지 않음]이라지 않아……. 늙어 죽도록 중학생('순수'라는 의미로 처음 말한 이는 바라는 만큼의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피딴만큼도 문리가 나지 않았다는 말로 중학생 마냥 긴장을 하였고, 늙어 죽도록 중학생이라는 말은 자만하지 않는 마음을 긍정하는 대답을 한 것이다.)일 수만 있다면 오죽 좋아 ……."
"그런 건 좋게 하는 말이고, 잘라 말해서, 피딴만큼도 문리가 나지 않는다는 거야……. 이왕 글이라도 쓰려면, 하다못해 피딴 급수(級數)는 돼야겠는데……."
"썩어야 할 것이 썩어 버리지 않고, 독특한 풍미를 풍긴다[썩어야 할 것이 - 풍미를 풍긴다. : 이 글의 주제문으로 인생의 도가 넘지 않을 정도로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삶의 원숙미가 나타난다는 뜻이다.]는 거, 멋있는 얘기로구먼. 그 런 얘기 나도 하나 알지. 피딴의 경우와는 좀 다르지만……."
"무슨 얘긴데……?"
"해방 전 오래 된 얘기지만, 선배 한 분이 평양 갔다 오는 길에 역두(驛頭)에서 전별(餞別 : 떠나는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 작별함.)로 받은 쇠고기 뭉치를, 서울까지 돌아와서도 행장 속에 넣어 둔 채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다나. 뒤늦게야 생각이 나서 고기 뭉치를 꺼냈는데, 썩으려 드는 직전이라, 하루만 더 두었던들 내버릴밖에 없었던 그 쇠고기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더란 거 야. 그 뒤부터 그 댁에서는 쇠고기를 으레 며칠씩 묵혀 두었다가, 상하기 시작할 하루 앞서 장만한 것이 가풍(家風)이 됐다는데, 썩기 직전이 제일 맛이 좋다는 게, 뭔가 인 생하고도 상관 있는 얘기 같지 않아……?"
"썩기 바로 직전이란 그 '타이밍'이 어렵겠군……[썩기 바로 직전이라 - 어렵겠군 : 생짜도 아니고 썩지도 않는 중간 단계에 시간을 맞춘다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중용의 도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썩는다는 말에 어폐(語弊 : 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일어나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잘못'으로 순화)가 있긴 하지만, 이를테면 새우젓이니, 멸치젓이니 하는 젓갈 등속도 생짜 제 맛이 아니고, 삭혀서 내는 맛이라고 할 수 있지……. 그건 그렇다 하고, 우리 나가서 피딴으로 한 잔 할까? 피딴에 경례도 할 겸……."
김소운의 수필은 인정에 감싸인 유려(流麗)한 문체로 개인과 민족애에서 우러난 분노의 감정이 깃들어 있으며, 명상보다는 성찰(省察)의 경향이 주된 특징이다.
이 수필은 희곡적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두 가지의 예화를 인용함으로써 지은이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 마치 작은 논평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도 이런 글이 수필다워 보이는 것은 주변의 사물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예화 중 하나는, 지열(地熱)에 의해 알맞게 익혀진 오리알 피딴에 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썩기 직전의 쇠고기가 풍기는 독특한 맛에 관한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평범하게 보아 넘기기 쉬운 두 가지 예화를 통하여 인생에 대한 멋진 감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두 가지 예화는 모두 인간의 노숙미, 또한 잘 삭는 생활의 멋이나 중용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즉, 도가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무르익었을 때야말로 특유의 멋과 향기를 품을 수 있는 인생을 암시한 것이다.
이 글은 오랜 수련을 거쳐야만 인생의 원숙함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교훈적 수필이다. 그러나 글을 쓸 때마다 '입시를 치르는 중학생마냥 긴장'하는 자신의 글쓰기 태도를 반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백적 수필이기도 하다.
또한 개인의 정도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많은 노력과 인내, 오랜 시간이 필요함을 지은이는 강조한다. 그러기에 '썩은 것이 맛이 좋다'는 작품 속의 역설이 성립되는 것이다.
김소운의 수필 세계
김진섭과 비슷하게 지성적, 객관적 경향을 띠고 있는 그의 수필은, 일상생활의 평범한 소재를 끌어다가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경우가 많다. 마치 작은 논평문을 읽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런데도 그의 글이 수필다워 보이는 것은 자기의 주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에서 비롯된 감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의 글은 문장의 인위적인 도식을 의식하지 않고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뛰어난 이야기꾼의 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치, 경제 등의 까다로운 내용일지라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빌려 와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에 비유하여 쓰고, 화제가 다채롭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 방식이 독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수필이 생활의 예지를 보여 준다는 점을 실천한 셈이다. 친구와 중국 요리를 앞에 놓고 술 한 잔을 기울이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독자 앞에 펼쳐 보인 듯한 위의 수필은 매우 친밀감있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김소운(金素雲/1907.1.15~1981)
시인·수필가. 호 삼오당(三誤堂). 본명 교중(敎重). 부산 출생. 사립 옥성(玉成)학교를 중퇴하고, 13세 때 도일(渡日)하여 34년간 체재하였다. 일본 시인 기다하라 하쿠슈[北原白秋]에 사사하여 20세 전후부터 일본시단에서 활약하였고, 한편 《조선민요집》(29) 《조선시집》(43) 등 많은 작품을 일본에 소개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51년 장편수필 《목근통신(木槿通信)》이 일본 주오고론[中央公論]에 번역 소개되어 한일 양국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으나 52년 도쿄에서 이승만 정권을 비방한 것이 말썽이 되어 다시 13년간 일본에 체류하였다. 65년 귀국 후 본격적인 수필문학에 몰두하였으며, 이때에 《물 한 그릇의 행복》 등 10여 권의 수필집을 발표하였다. 말년에는 ‘소운(巢雲)’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였다. 80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銀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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