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에 대하여
by 송화은율
훈민정음과 한글 과학성에 대한 교육 전략 /김 슬옹
* 출전: 교육한글 14호(2001.12, 한글학회)
-차례-
1. 머리말 4. 한글의 구체적
2. 과학성에 대하여 과학성을 위한 교육 전략
3. 훈민정음 문자 5. 맺음말
과학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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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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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훈민정음/한글이 왜 과학적인지와 과연 그런지를 교육 전략 속에서 설명해 본 글이다. 특히 훈민정음을 문자과학 측면에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면서 자연과학 측면에서의 추상적 과학성을 실제 삶 속에서 실현되는 구체적 과학성으로 연결하는 교육 전략을 제시했다. 자연과학 측면에서의 과학성은 그 동안의 논의를 좀더 체계적으로 종합하고 그 맥락을 좀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해 최대한의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과학 측면에서의 과학성은 구체적 과학성으로 연결이 되지 않으면 단지 추상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과학성으로 머문다는 것을 강조해 문자의 사회적 맥락에 따른 역동적 전략을 제시했다. 곧 자연과학 측면에서의 과학성은 문자의 내적 체계에서 기본적으로 설정된 추상적인 과학성이며, 실제의 구체적 과학성은 시대마다 문자를 부려쓰는 사람들의 구체적 방식으로 설정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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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교육 현장에서 훈민정음이나 한글의 과학성을 한결같이 얘기하지만 과학성의 실체를 제대로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그러한 과학성을 성급하게 민족주의와 연결하는 경우가 많아 과학성을 따져야 하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하게 된다. 물론 과학성은 여러 전략으로 이용할 수 있고 민족주의와 연결하는 것이 우리 현실로 보아 주요 전략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다만 그런 전략은 과학성의 실체를 좀 더 정확하고 냉정하게 파악한 뒤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 하면 그런 성급하고도 일방적인 의도는 과학성의 풍부한 효과를 단순화시킬 수도 있고 과학성의 본질을 변질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글이 과학적이라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과학적이며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는 담론 차원에서의 과학성이 중요하다.
그러한 인식과 교육 모순 때문인지 정보화 시대의 핵심인 컴퓨터를 통한 한글 문자 제약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물론 지금은 운영 체제의 한글 문자 시스템 보완으로 큰 문제는 없지만, 우리는 한동안 컴퓨터의 상당한 영역, 그것도 통신망, 국가 전산망, 일부 문서 작성기에서 한글을 완전하게 구현할 수 없었다. 정확히 ‘찦차’의 ‘찦’과 같은 음절 글자를 칠 수 없었는데, 그것은 곧 해당 낱말을 표현할 수 없는 문제를 넘어 표현의 제약이었고 문화의 제약이었고 그런 문제는 지금도 잠재되어 있다. 그런 문제가 정보 시대에 한글이 과학적인 글자라는 담론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문자가 과학적이라고 해서 모든 언어 생활이 다 과학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음절(문자)조차 구현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학적이란 말을 내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문자 부려쓰기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한글이 왜 과학적인 문자인지를 다시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글은 과학적인 글자다’는 말은 ‘훈민정음은 과학적인 글자이다’와 같은 말을 같은 의미로 쓰거나 혼용하여 쓰고 있지만 일단은 구별해야 할 문제다. 단순히 ‘한글’과 ‘훈민정음’이라는 용어의 차이가 아니라 각각의 용어가 표상하는 문자의 자리매김이 다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창제 당시와 근대 이전의 상징성을 간직한 문자를 뜻하고, ‘한글’은 근대화 과정에서 ‘국문’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상징화시킨 말이다. 훈민정음이 다소 고정된 문자 이름인 데 반해 한글은 지금까지 그리고 당분간은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역동적 이름이다. 이런 차이에서라면 위의 두 말을 혼용해서 사용할 수는 없다. 훈민정음은 고정된 문자 이름이므로 과학적이냐 아니냐 판단하기 쉽지만, 역동적인 문자 체계인 한글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 가느냐에 따라 과학적이냐 아니냐가 판단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글이 비록 19세기 이후에 생긴 이름이지만 15세기부터 사용해 온 한국인의 문자 체계를 추상적으로 가리킬 수는 있다. 그런 맥락이라면 훈민정음도 마찬가지다. 비록 15세기와 지금의 문자 체계가 많은 변화를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 골격까지 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이 글에서 일반적 자연과학 측면에서는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역동적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사회과학 측면에서는 ‘한글의 과학성’을 주로 논할 것이다. 일반적인 자연과학으로서의 과학성은 추상적인 과학성이다. 구체적인 과학성은 실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구현된다는 것이 이 논문의 출발점이다. 물론 자연과학 측면에서의 과학성조차 역동적인 가치변화를 함의하고 있다. 모든 과학은 순수하지도 가치중립적이지도 않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이런 이치와 같다. 아주 과학적으로 설계된 전자 제품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이 전자 제품의 기능을 자기 용도에 맞게 잘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제 기능의 10분의 1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전자의 경우는 구체적 과학성이 실현된 경우이지만 후자의 경우, 구체적 과학성이 실현되었다고 볼 수 없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서는 그 전자 제품은 과학적인 전자 제품이 아니다. 훈민정음이 과학적으로 창제되었다고 하지만 실제 쓰임새에서 그 과학성이 제대로 구현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추상적인 문자 체계로서의 한글은 과학적일지 모르지만, 앞에서 지적한 완성형 프로그램에서의 한글은 과학적일 수 없다. 한자를 섞어 쓰는 글에서도 한글은 과학적이라 할 수 없다. 다른 문자를 섞어 의사 소통을 시도한다면 한글의 과학성을 완전히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훈민정음이나 한글이 과학적이므로 우수하다라는 담론이 근대 이후 민족주의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잡아 왔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과학성으로 실현되지 못한 것은 추상적인 과학성을 구체적 과학성으로 착각하거나 아니면 추상적인 과학성을 지나치게 상징화한 오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먼저 ‘과학성’에 대한 개념 설정을 바탕으로 훈민정음의 문자 과학의 특성을 규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교육 전략을 논하기로 한다.
2. 과학성에 대하여
훈민정음이 과학적인 문자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과학적이며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라는 거친 물음이 이 글의 동기이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 특히 국어학자들이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얘기해 왔지만 과학성 자체를 총체적으로 규명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정 희성(1994), 변 정용(1991)에서는 전산학자로서 주로 자연과학이나 수학적 측면에서 과학성을 규명한 적이 있다. 국어학자들도 많이 논의해 왔지만 이 글에서와 같은 종합적 설명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먼저 이 글에서 말하는 ‘과학, 과학성, 과학적’이란 개념이 무엇인지 밝혀 둘 필요가 있다. 누구나가 과학을 논의하고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 정의가 만만한 것은 아니다. ‘과학’은 형식과 내용, 정신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 이론과 실천 등의 대립적인 측면을 동시에 아우르는 복합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여러 논의를 종합하여 볼 때, 과학은 체계적인 인식의 틀이거나 종합적인 지식 체계이다. 여기서 체계라는 것은 실험이나 실천을 통해 검증된 이론 체계를 갖추었음을 뜻한다. 자연과학이건 사회과학이건 ‘과학’이란 말을 붙이는 이상은 그런 기본방향은 같다. 이론과의 구별을 통해 과학의 실체를 더 잘 알 수 있다. 과학은 반드시 이론을 함의하지만 이론이 과학을 반드시 함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론은 특별 개인만의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과학은 특정 개인만의 과학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의 이론이 여러 검증을 거쳐 과학으로 발전할 수는 있다. 유물론적 과학은 마르크스라는 개인에 의해 처음으로 성립한 이론이 발전한 사회과학이다. 따라서 과학은 이론에 비해 종합적이다. 종합적이라고 해서 과학의 개별성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곧 수학,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처럼 과학은 실제 구체적인 분야에서는 개별적 과학으로 작동할 수 있다. 물론 인지과학처럼 여러 과학의 종합을 추구하는 과학도 있다.
과학이 체계적인 인식의 틀이라는 측면을 더 주목해 보자. 수학은 수의 체계와 그에 관한 이론을 통해 세계의 여러 현상을 인식하고 해석한다. 유물론적 과학은 유물론과 생산 관계에 대한 체계를 통해 세계의 여러 현상을 해석한다. 그래서 유물론적 사회과학, 유물론적 언어과학 등 다양한 과학이 성립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인식 체계는 그 자체가 독자적인 지식 체계를 이룬다. 언어 과학은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과학이다. 이러한 언어 과학은 음성론,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 화용론 등 일정한 지식 체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는 여기서 ‘과학’이란 말과 ‘과학적’이란 말을 구별하고자 한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과학에 비해 널널하게 쓰이는 말이다. 과학은 종합적인 체계이다. 그러나 과학적이란 말은 어떤 특정 요소가 과학 특성을 보인다는 말이다. 어떤 개인의 이론을 무척 과학적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것이 실제 과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과학의 특성을 지녔다는 것이지 그 자체가 과학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상 생활에서는 과학이라는 말과 과학적이라는 말을 혼용해서 쓴다. 훈민정음이 과학적 글자라고 한 때의 과학적은 과학성 그 자체를 뜻하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이 과학적 글자’라는 담론은 문자를 만든 원리나 문자 체계가 체계적이고 자연과학처럼 객관적으로 검증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과학적 특성 때문에 훈민정음은 독자적인 문자과학이라는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자과학과 문자학을 구별할 필요성을 느낀다. 문자학은 그야말로 문자에 관한 학문이지만 문자과학은 문자의 과학성을 뜻한다. 어떤 문자가 과학적이건 아니건 그것은 문자학의 대상이 되지만 문자과학은 아니다.
그렇다면 문자과학은 무엇인가. 문자가 지향해야 주요 조건을 충족시킬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틀과 내용이다. 틀은 모든 문자에 적용할 수 있는 조건이 되고 내용은 각 문자마다 다를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틀에 해당하는 주요 조건은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해당 입말을 가장 충실하게 적을 수 있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곧 입말 수용의 과학성이다. 무릇 문자는 입말을 제대로 적을 수 있을 때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므로 입말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한 것이다. 이 첫째 조건만으로는 문자과학을 이룰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입말과 글말을 함께 부려쓸 주체인 인간과 사회적 시스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째 조건이 필요하다. 둘째는 문자는 인간 생활의 편의성을 위한 것이므로 모든 계층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어야 한다. 곧 활용의 과학성이다.
두 조건을 만족시켰다면 그것은 이론적인 측면에서의 만족이다. 문제는 실제로 역동적인 삶의 변화 속에서 제대로 부려쓰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론적인 측면에서의 과학성이 추상적 과학성이라면 실제 실천을 통해 그 과학성을 이루는 것은 구체적 과학성이 된다. 다시 말하면 앞에서 언급한 문자의 내적 체계의 과학성이 추상적 과학성이고 구체적인 현실에서 어떤 조건과 방식으로 쓰이느냐는 것이 구체적 과학성이다. 그러니까 훈민정음은 이론적, 추상적 과학성을 갖춘 문자이며 그 때의 과학성은 자연과학에 가까운 것이며, 구체적 과학성은 자연과학을 포괄할 뿐 아니라 사회 맥락 속에서의 자리매김이 강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훈민정음 문자과학의 실체
훈민정음이 문자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보편적인 문자 과학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지만 그것은 철저히 한국(조선)이라는 특수 조건을 전제로 한 것이다. 현실에서 쓰이지 않는 인공문자는 존재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과학이라는 말과 우월주의로서의 우수라는 말을 혼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글이 과학적이기 때문에 우수하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한글이 한자나 일본 가나보다 더 우수한 문자라고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다. 서로 개별적인 문자는 굳이 문화 상대주의 관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 우월성을 따질 수 없다. 극단적으로 일본 사람들에게는 일본의 가나 문자가 가장 우수한 문자이며 중국 사람들에게는 한자가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글이 한자나 가나보다 더 과학적인 글자라고 얘기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과학은 보편적인 인식의 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이 보편적인 문자과학으로 정초될 수 있다는 것은, 훈민정음을 세계 모든 나라의 문자로 해야 한다든가 하는 국수주의 입장이 아니고, 보편적인 문자과학으로 볼 때 이상적인 과학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입말 수용의 과학성에 대해서 알아 보자.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의 분절성을 문자화시킨 음소문자(낱소리글자, 자모문자) 체계를 적용하였다. 앞에서 얘기하였듯이 한글이 일본의 가나보다 더 과학적이라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일본 가나가 한자보다 더 과학적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단어 문자보다는 음절 문자가, 음절 문자보다는 음소 문자가 더 과학적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것은 자소의 수가 적을수록 좋다는 자소 최소주의와 풍부한 음성언어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그렇다.
다음으로는 소리(음성, 입말)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문자는 단순히 음성언어의 보조적 수단이 아니라 독자적인 기능을 갖지만 일단은 음성언어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음성언어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이 아니라 음성언어와 문자언어가 효율적인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음성언어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분석하는 것은 필수 요소이다. 15세기에는 중국의 글말을 빌려 쓰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중국 글말과 우리 입말과의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였다. 먼저 창제 배경과 취지가 나와 있는 ‘세종 어제’ 부분을 보자.
〈해례본 ‘본문’ 중 세종 어제〉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 故 愚民 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 予 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언해본 ‘분문’ 중 세종 어제〉
나랏말미 中國귁에 달아 文문字와로 서르 디 아니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배 이셔도,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 내 이 爲윙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듧 字 노니 사마다 수 니겨 날로 메 便뼌安킈 고져 미니라. (방점 생략)
〈현대말 옮김〉
우리 나라의 말(한국어)이 중국과 달라서, 한문과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런 처지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히어 날마다 사용할 때 편안하게 하고자 할 뿐이다.
그 당시는 소중화를 자처하던 시기다. 그렇지만 아무리 정치적으로 학문적으로 소중화를 내세워도 문화, 특히 언어는 비슷해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위 글은 정치적 자주 의식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문화의 자주 의식을 언어를 통해 인식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문자의 과학성은 철저히 해당 문화를 과학적으로 인식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종은 문화의 자주 의식이 투철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보기로 제례 음악 따위에서 중국식 음악을 버리고 한국식 음악을 정리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文字以通其用 是猶枘鑿之鉏鋙也 豈能達而無礙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정 인지 꼬리말)
그런데 사방의 풍토가 따로 나누어 있고, 소리도 또한 따라서 다르다. 무릇 다른 나라의 말은 소리는 있어도 글자는 없어서 중국 글자를 빌려서 씀에 통하였다. 이는 마치 도끼 자루가 구멍이 맞지 않아 흔들거림과 같으니 어찌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겠는가? 모두 각각 입장에 따라서 편안하도록 함이 필요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吾東方禮樂文章 侔擬華夏. 但方言之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 (정 인지 꼬리말)
우리 나라는 예와 음악과 문화가 중국과 흡사한 수준이나 오직 우리말이 중국과 같지 않아서 글을 배우는 이는 그 뜻을 깨침이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를 다스리는 이는 사유를 통찰하기가 어려움을 안타까워 하였다.
이러한 과학적 인식은 음절에 대한 삼분법 인식과 분석으로 이어졌다. 곧 중국말은 성모와 운모로 이분법적으로 분석되었는데 운모를 다시 중성과 종성으로 갈라 결국 초, 중, 종성으로 분석해 낸 것이다. 그 동안 끊임없이 지적되어 온 것처럼 이러한 삼분법은 단순히 한 음절을 초, 중, 종성으로 갈랐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 음운 체계를 독창적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소리와 관련된 훈민정음의 과학성은 다른 문자와는 달리 음성 기관에서 출발하였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곧 자음의 경우 원형 문자를 발음 기관에서 추상화하였다.
〈표 1〉 글자 만든 방법에 따른 초성 17자 분류
원형 문자 |
상형 원리 |
명칭 |
가획자 |
이체자 |
ㄱ |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象舌根閉喉之形) |
아음, 엄쏘리 |
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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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혀끝이 윗 잇몸에 닿는 모양 (象舌附上愕之形) |
설음, 혀쏘리 |
ㄷ, ㅌ |
ㄹ (반설음) |
ㅁ |
입의 생긴 모양 (象口形) |
순음, 입시울소리 |
ㅂ, ㅍ |
|
ㅅ |
이의 생긴 모양 (象齒形) |
치음, 니쏘리 |
ㅈ, ㅊ |
ㅿ (반치음) |
ㅇ |
목구멍의 둥글게 생긴 모양 (象喉形) |
후음, 목소리 |
ᅙ,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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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방식이 문자 과학성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정 희성 교수는 이런 내용은 과학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렇게 과학이 아니라고 본 것은 과학을 자연과학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문자과학으로 보면 상관이 있다. 원형 문자를 발음 기관에서 추출한 것은 문자를 음성언어와의 합리적(과학적) 관계 설정으로 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음 기관을 체계적으로 표상화하였기 때문에 음성언어(한국말)를 효율적으로 적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다른 기본 문자를 생성하는 데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발음 기관 모방은 자음에만 한정하고 모음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도 과학성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자음은 발음 기관에서의 위치가 분명한 데 반해 모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곧 자음과 모음의 분절성을 인식한 것뿐만 아니라 그 차이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문자에 반영하였다는 것이다. 대신 모음의 원형 문자는 하늘 땅 사람을 형상화하였다. 이는 소리와는 전혀 별개의 상징화처럼 보이지만 하늘이 양성을, 땅이 음성을 상징하므로 이도 소리의 성질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곧 우리말의 주요 특징인 모음조화를 문자에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음과 모음의 차이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자음과 모음을 아예 기하학적 구조를 달리하여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다.
자음 - ㄱ, ㄴ, ㄷ, ㄹ, ㅁ, ㅇ, …
모음 - ㅏ, ㅑ, ㅓ, ㅕ, ㅗ, ㅛ, …
훈민정음은 결국 자음과 모음을 분리함으로써 최소주의의 1차 조건을 만족하였다. 다음 2차 조건으로 자음, 모음 각각 복합 자소 생성주의를 채택하였다. 이는 원형 문자를 만들어 복합 자소를 생성해 가는 방식이다. 최소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체자도 같은 계열로 보면 이체자이지만 전체 연관관계로 보면 획 더하기와 다를 바가 없다. 이 밖에 겹치기 방법을 추가시켜 초성 23 체계를 얻는다.
ㄱ → ㅋ
→ ㄲ
ㄴ → ㄷ → ㅌ
→ ㄸ
→ ㄹ
ㅁ → ㅂ → ㅍ
→ ㅃ
ㅅ → ㅈ → ㅊ
→ ㅉ
→ ㅆ
→
ㅇ → ㆆ → ㅎ → ㆅ
→ ㆁ
소리 성질
소리내는 자리 |
전청(全淸) 예사소리 |
차청(次淸) 거센소리 |
불청불탁 (不淸不濁) 울림소리 |
전탁(全濁) 된소리 |
牙音 엄쏘리 |
ㄱ |
ㅋ |
|
ㄲ |
舌音 혀쏘리 |
ㄷ |
ㅌ |
ㄴ |
ㄸ |
脣音 입시울쏘리 |
ㅂ |
ㅍ |
ㅁ |
ㅃ |
齒音 니쏘리 |
ㅅ, ㅈ |
ㅊ |
|
ㅆ, ㅉ |
喉音 목소리 |
ㆆ |
ㅎ |
ㅇ |
ㆅ |
半舌音 반혀쏘리 |
|
|
ㄹ |
|
半齒音 반니쏘리 |
|
|
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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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초성 23 체계의 소리 성질에 따른 분류
그 밖에 일상어에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ㆀ, ㅥ도 있었다. 그리고 또 연서법(위 아래 합치기)에 의해 네 개의 복합 자소를 얻는다.
ㅁ → ㅂ → ㅍ → ㆄ
→ ㅃ → ㅹ
→ ㅸ
→ ㅱ
다음으로는 옆으로 합치는 방법(합용 병서)에 의해 10개의 복합 자소를 만들었다.
, , , ᄩ
, ᄮ, ᄮ,
ᄢ, ᄣ
이로써 자음을 만들 수 있는 생산적인 방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필요한 자음을 충분히 만들어 냈다.
모음은 하늘, 땅, 사람을 추상적으로 본뜬 원형글자 , ㅡ, ㅣ를 조합하여 기본 모음 11자를 만들었다.
〈표 3〉 모음의 기본자와 합용자 분류
구분 |
양성모음 |
음성모음 |
중성모음 |
기본자 (基本字) |
∙ 하늘의 둥근 모양 |
ㅡ 땅의 평평한 모양 |
ㅣ 사람의 서 있는 모양 |
초출자 (初出字) |
ㅗ, ㅏ |
ㅜ, ㅓ |
|
재출자 (再出字) |
ㅛ, ㅑ |
ㅠ, ㅕ |
|
위 11자를 서로 합성하여 복합 모음 14자를 만들었다.
두세 글자: ㅢ ㅚ ㅐ ㅟ ㅔ ㅒ ㅖ: ㅘ ㅝ: ㅙ ㅞ
자소 최소주의를 위해 마지막으로 택한 원리는 종성 글자를 따로 만들지 않고 초성 글자를 그대로 갖다 쓴다는 원칙이다.
終聲 復用初聲者 以其動而陽者乾也 靜而陰者亦乾也,乾實分陰陽而無不君宰也. 一元之氣 周流不窮 四時之運 循環無端 ,故貞而復元 冬而復春. 初聲之復爲終 終聲之復爲初 亦此義也. (합자해)
종성에 초성을 다시 씀은, 그것이 움직여 양이 된 것도 건(乾)이요, 멎어 음이 된 것도 건 때문이니, 건은 실로 음양으로 나뉘어 주재하여 다스리지 않음이 없음이라. 태초의 기운이 두루 흘러 다하지 않으매, 4철의 운행이 순환하여 끝이 없으므로 정(貞)에서 다시 원(元)이 되고, 겨울이 다시 봄이 되노라. 초성이 다시 종성이 되고 종성이 다시 초성이 됨도 역시 이러한 이치니라.
그 동안 여러 사람이 강조했지만 만일 우리 나라 말에서 유난히 발달되어 있는 종성을 따로 문자로 만들었다면 훈민정음의 자소는 무척 늘어나 실용성을 크게 훼손했을 것이다.
종성
1) 단자음: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2) 중자음: 없음.
3) 복자음: ㄳ, ㄴㅅ, ㄴ, ㄵ, ㄶ, ㄺ, ㄺㅅ, ㄹㄷ, ㄻ, ㄻㄱ, ㄼ, ㄼㅅ, ㄹ, ㄽ, ㄾ, ㄿ, ㅀ, ㅁㄱ, ㅁㅅ, ㅁ, ㅄ, ㅅㄱ, ㅅㄷ, ᄝ, , ㅇㄱ, ㅇㅅ.
자음과 모음의 결합 방식에서도 과학성은 드러난다. 곧 자음에 모음을 결합하고 다시 자음을 결합하는 방식에서 체계적인 구조를 이루게 하였다. 특히 초성에 중성을 결합하는 방식이 위상 구조(topology)로 설계되었다. 쉽게 말하면 ‘ㅏ’를 90도씩 회전시키면 ‘ㅜ, ㅓ, ㅗ’ 등이 생성되는데 이는 최소 공간 속에서 최대 음절을 생성하는 원리로 이어진다.
가 각
고 거 곡 걱
구 국
정 희성(1994:205)에서는 위상 구조를 6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수학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1형 : (ㄱ ㅏ ) → (가)
2형 : (ㄴ ㅗ ) → (노)
3형 : (ㄱ ㅗ ㅏ) → (과)
4형 : (ㄷ ㅏ ㄷ) → (닫)
5형 : (ㄹ ㅗ ㄹ) → (롤)
6형 : (ㄱ ㅗ ㅐ ㄴ ㅎ) → (괞)
결국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때 훈민정음은 소수의 자모와 소수의 규칙으로 최대한의 음절을 생성할 수 있는 문자의 과학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입말 수용 측면에서 보았지만 더불어 중요한 것은 입말을 기록한 문자를 읽어내는 방식에서의 합리성도 주목할 일이다. 이런 특성에서도 훈민정음은 과학성을 지니는데 그것은 1자 1음주의 원리를 최대한 지켰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문자의 구체적 작동으로 볼 때 1자 1음주의를 완벽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지킬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문자가 입말과의 연계 속에서 작동되는 것이라면 한 자소가 한 음소를 나타내는 것이 이상적이다. 왜냐 하면 문자는 단지 음소를 적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다시 읽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한 소리가 여러 문자로 표기되거나 한 문자가 여러 소리를 표상한다. 이를테면 a는 열 가지 정도의 발음으로, e, o는 열세 가지 정도, u는 아홉 가지 정도로 발음된다. 거꾸로 [o]라는 발음은 “all, caught, poll”와 같이 다양한 문자로 표기된다. 그래서 발음 기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글은 몇 가지 예외는 있으나 한 음소가 한 문자로 표상되고(/a/-ㅏ), 거꾸로 한 문자는 한 음소(ㅏ-/a/)로 표상된다. 이 원리가 지켜진다면 배울 때 좋고 표기법 수립에서 많은 장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생물학자인 다이아몬드의 아래와 같은 체험적 고백은 주목할 만하다.
“영어를 읽고 쓸 줄 아시오?”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의당 이렇게 답할 것이다. “물론이지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잡지를 어떻게 읽고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영어의 글말에 숨어 있는 규칙(맞춤법)을 남에게 설명해 보려고 한 적이 있어요? 말하자면, ‘seed'란 낱말은 왜 ‘cede'나 ‘ceed', 또는 ‘sied'로 쓰지 않고 하필 그렇게 적으며, [sh] 소리는 왜 ‘ce'(ocean)나, ‘ti'(nation) 또는 ‘ss'(issue)같이 여러 가지로 적을 수도 있는 것인지 말이오.” 물론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모두 영어의 글말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드러내고 있는 악명 높은 보기들이다. 요즘 내가 1학년에 다니는 우리 집 쌍둥이 아들들을 통해서 새로이 느끼고 있는 바이지만, 영어의 맞춤법은 너무나 일관성이 없어서 비록 맞춤법의 기본 규칙(그런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을 익힌 어린이라고 해도, 아직도 읽지 못하는 낱말이 많을 뿐 아니라, 들은 말을 글로 적지 못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덴마크의 글자살이 역시 어렵고, 중국과 남한은 더 어려우며, 일본은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글자살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프랑스 어린이들은 적어도 글말을 거의 다 읽을 수는 있으나, 말을 듣고 맞춤법으로 적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 핀란드와 북한에서는 말소리(발음)와 글자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이 낱말을 어떻게 맞춤법으로 적느냐?"와 같은 질문은 아예 있을 수가 없다. (남한이 중국과 마찬가지로 글자살이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결국 남한이 한자를 섞어 쓰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북한에서 발음과 글자가 일치한다는 것은 북한이 한자를 쓰지 않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왜냐 하면, 한자를 접어둔다면, 남한과 북한의 글자살이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옮긴이) ‘개명한’ 사람들은 글자살이야말로 자기들을 미개 야만인과 구별해 주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만일 개명한 영어 사용자들이 앞으로 새로운 글자 체계를 고안해 낸다면 핀란드 사람이나 북한 사람들같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Diamond, Jared, 1994,〈Writing Right〉, Discover, June/ 이 현복 옮김,《한글 새소식》1994년 8월호.)
다음으로, 훈민정음은 철저히 역학 원리를 적용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므로 글쓴이가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런 원리는 단지 추상적인 상징 부여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문자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역학은 자연의 질서와 변화는 일정한 조화와 통일 속에 이루어진다는 사상을 뼈대로 한다. 음양오행론은 그 핵심 이론인 것이다. 먼저 이러한 사상의 배경에 대한 훈민정음 구절을 보자.
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 坤復之間爲太極 而動靜之後爲陰陽. 凡有生類在天地之間者 捨陰陽而何之. 故人之聲音 皆有陰陽之理 顧人不察耳. 今正音之作 初非智營而力索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理旣不二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제자해)
천지의 도는 오직 음양오행일 뿐이다. 건과 복 사이에서 태극이 생겨 움직이고 멎고 한 뒤에 음양이 생긴다. 무릇 어느 생물이든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은 음양의 이치를 버리고 어찌 가겠는가. 그런 고로, 사람의 말소리에도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는데, 다만 사람이 살피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정음을 만듦은 처음부터 지혜로써 계획하고 힘을 써서 찾아 낸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소리에 따라 그 이치를 밝혀 냈을 뿐이다. 이치란 본래 둘이 아니니, 곧, 어찌 천, 지, 귀, 신과 더불어 씀이 같지 않겠는가.
夫人之有聲本於五行. 故合諸四時而不悖 叶之五音而不戾. (초성해)
무릇, 사람이 소리를 가짐은 오행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네 계절에 맞추어도 어긋나지 않으며, 오음에 맞추어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보려 한 까닭은 무엇인가. 다음 정 인지 꼬리말에서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정 인지 꼬리말)
천지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 자연의 글이 있다.
소리가 천지 자연의 질서 중의 하나라면 글(문자)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리의 세계를 최대한 정확하게 문자에 반영하려는 의도이다. 한국어의 소리(정확히는 음소) 세계를 과학적으로 전사할 수 있는 문자 체계를 이룬 것은 바로 이러한 철학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훈민정음에 적극적으로 적용된 음양 이론은 단순히 추상적 상징 체계가 아니라 구체적 문자 효과를 보여 주는 원리라는 점이다. 실제로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보자.
〈표 4〉 자음의 음양 오행론 분류
오음 구분 |
아음 |
설음 |
순음 |
치음 |
후음 |
초성 |
ㄱㅋㄲ |
ㄷㅌㄸㄴ [ㄹ] |
ㅂㅍㅃㅁ |
ㅅㅆㅈㅊㅉ [ㅿ] |
ㆆㅎㆅㅇ |
오행 |
木 |
火 |
土 |
金 |
水 |
사시 |
春 |
夏 |
季夏 |
秋 |
冬 |
방위 |
東 |
南 |
映 |
西 |
北 |
오음 |
角 |
徵 |
宮 |
商 |
羽 |
모음도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상형 원리와 합성(결합) 원리, 그리고 음양 사상의 생성 원리에 의해 정밀하게 구성되었다. 하늘을 형상한 아래아는 양성 모음이고, 땅을 형상한 ㅡ는 음성 모음, 사람을 형상한 ㅣ는 중성 모음이다. 이러한 음양론은 양성은 양성끼리, 음성은 음성끼리 어울린다는 모음조화 취지를 구체적 문자 실현으로 반영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역학 원리는 자연의 소리와 원리를 문자에 그대로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그렇다면 역학 적용은 문자학적으로 볼 때 소리(한국인이 인식하는 소리일지라도)를 가장 잘 반영하려는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의 소리, 한국인의 자연스런 소리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이 성공하였기에 다음과 같은 자신감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字韻則淸濁之能辨 樂歌則律呂之克諧. 無所用而不備 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戾 鷄鳴狗吠 皆可得而書矣. (정 인지 꼬리말)
글자의 소리는 청음과 탁음을 분별할 수 있고 노래는 율과 여를 조화시킨다. 씀에 갖추지 않는 바가 없다. 비록 바람 소리, 학의 울음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라도 다 적을 수 있다.
다음으로 훈민정음은 조형 원리 측면에서도 과학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자는 기호다. 기호는 판별이 빨라야 하고 아름다울수록 좋다. 훈민정음은 그래픽 글자라고 할 만큼 그러한 점이 뛰어나다. 먼저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의 형체를 확연히 구별되게 하였다. 자음은 직선, 네모, 세모, 동그라미를 통해 만들었고 모음은 긴 직선과 짧은 직선, 그리고 점을 통해 만들었다. 그리고 자음의 경우는 발음이 비슷한 같은 계열의 문자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판별이 쉽게 하였다. 이러한 문자의 실용주의 과학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아래와 같은 선언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정 인지 꼬리말)
28자로써 둘러바꿈이 그지없고 간단하고 요약되었으며 자세하고 두루 통하므로 지혜로운 이는 아침 나절이 다하기 전에 이해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쯤이면 배울 수 있는데 이것으로써 글을 풀이하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것으로써 소송에서 사유를 들으면 그 사정을 알 수 있다.
遂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集賢殿應敎臣崔恒 副校理臣朴彭年 臣申叔舟 修撰臣成三問 敦寧府注簿臣姜希顔 行集賢殿副修撰臣李塏 臣李善老等 謹作諸解及例 以敍其梗槪. 庶使觀者不師而自悟.(정 인지 꼬리말)
드디어 상세히 풀어 새겨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라고 명하셨다. 이에 저와 집현전 응교 최 항, 부교리 박 팽년, 신 숙주, 수찬 성 삼문, 돈녕부 주부 강 희안, 행집현전 부수찬 이 개, 이 선로 들이 삼가 여러 풀이 등과 보기를 지어서 그 줄거리를 서술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승 없이도 스스로 깨치도록 하였다.
若其淵源精義之妙 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정 인지 꼬리말)
그것의 일어남과 정밀한 내용의 세밀함 따위는 저희들이 드러낼 수 없는 바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훈민정음의 과학성은 피지배 계층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이다. 문자의 과학성은 당연히 문자가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라는 기능적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보 전달과 정보 저장이 문자의 핵심 기능이라고 했다. 정보 저장도 결국은 정보 전달이다. 저장하는 목적은 자기가 다시 보건 남에게 남겨 주려 하건 결국 전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자는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문자의 존재 이유를 완전히 충족할 수 있다.
문자가 대개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결국 문자는 특히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피지배 계급이 쉽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을 훈민정음 창제자들은 훈민정음 해설서인《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언급하고 있다. 철저한 민본주의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문자(한문)를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려운 한문 때문에 자기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는 실제 사례가 최 만리, 정 창손 등과의 논쟁에서 드러난다. 곧 재판 따위에서 백성들이 자기 뜻을 제대로 못 펴 억울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吾東方禮樂文章 侔擬華夏. 但方言之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
우리 나라는 예와 음악과 문화가 중국과 흡사한 수준이나 오직 우리말이 중국과 같지 않아서 글을 배우는 이는 그 뜻을 깨침이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를 다스리는 이는 사유를 통찰하기가 어려움을 안타까워 하였다. (정 인지 꼬리말)
형살(形殺)에 대한 옥사 같은 것을 이두문자로 쓴다면 문리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한 글자의 착오로 혹 원통함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이제 언문으로 그 말을 직접 써서 읽어 듣게 하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모두 다 쉽게 알아들어서 억울함을 품을 자가 없을 것이라. (최 만리 상소문의 인용문 재인용)
물론 최 만리는 백성들의 억울함이 문자에 있지 않고 인간(양반 관리)에게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올바른 지적이다. 계급 모순에 의한 인권 탄압이 극심하던 시절이다. 양반들은 각종 조세, 부역, 공물 납부 등을 하지 않았으며, 양인(백성)과 천민들을 제멋대로 다룰 수 있었다. 이런 실정이었으니 피지배 계급이 문자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려 한들 제대로 먹혀들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지건 안 받아들여지건 간에 자신의 뜻을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상황과 그럴 수 없는 상황은 차원이 다르다. 문자로 표현하는 것은 기본 전제일 뿐이다. 최 만리 논리대로 인간이 문제라고 해서 그것을 근거로 문자 창제까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
서문의 구절이 창제자 스스로 밝혀 놓은 동기와 목적이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지 모르나, 최 만리와의 논쟁이나 세종의 다방면의 업적과 치적으로 볼 때 민본주의로 해석하는 데 아무 이의가 없다. 민본주의는 지배 계급 위주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피지배 계급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세종은 지배 질서 확립을 위해서나 백성들을 위한 정책적인 측면에서나 쉬운 문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자연과학 측면과 그런한 과학성이 작동되는 맥락을 문자과학으로 자리매김해 보았다. 이러한 과학성은 실제 언어 생활에서의 과학성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실제로 훈민정음이 피지배 계층의 주요 표현 도구로 되기는 했지만 우리 겨레의 독립된 문자로 500년이 넘도록 자리잡지 못했다. 지금도《조선일보》와 같은 수구 보수 신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일부에서는 한글을 독립된 문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과학성을 우리 현실에서 제대로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4. 한글의 구체적 과학성을 위한 교육 전략
훈민정음의 과학성이 한글의 과학성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구체적 과학성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때 훈민정음과 한글의 과학 담론은 제대로 된 생명력을 얻게 된다. 문자는 시대 변화에 잘 적응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두 가지 교육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이 글 맥락과 같이 설명하되 아래와 같은 대립 논쟁을 유도해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전략이다. 토론이나 논술 주제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한글, 이래서 우수하다/ 이 광형 9일은 한글날. 유네스코가 최근 조선 왕조 실록과 함께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 올해 한글날은 더욱 뜻깊은 날이 되었다. 한글이 과학적이고 우수한 글자라는 것을 배웠지만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그 우수성을 증명하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첫번째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프랑스어와 영어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등학교 정도의 교육만 충실히 받으면 한글의 맞춤법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은 대학교 졸업자는 물론이고 교사들까지도 자주 철자를 틀리게 쓰는 경우를 보았다. 그런데 거의 모든 교사들이 그렇고, 또 그들 모두가 자격증 소지자라는 것을 알고는 그들의 글자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발음할 수 있는 말은 모두 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발음을 해도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말과 글이 얼마나 일치하느냐, 일치하지 않느냐를 잘 나타내 주는 것으로 한글이 쉬운 글자라는 것을 증명한다. 한국의 문맹률이 0%에 가까운 데 반하여 서양의 문맹률은 20%를 웃도는 현실은 이런 관찰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두번째 우수성은 컴퓨터 공부를 하다가 발견했다. 정보화 시대에는 문자 인식이라 하여 컴퓨터가 사람이 쓴 글자를 읽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의 원리는 컴퓨터가 문자(패턴)를 기억하고 있다가 읽은 내용을 이 기억된 문자와 비교하여 일치하면 해당 문자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 때 인식하는 단위를 어느 것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학교(School)」라는 단어를 인식한다고 해 보자. 영어에서는 알파벳 문자(s, c, h 등)와 단어(School) 단위 등 두 가지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알파벳 문자 단위로 읽으면 글자 획이 단순해서 다른 문자와 구별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알파벳 문자 P와 R는 비슷해서 혼동하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단어 단위로 인식하게 하려면 기억하고 있어야 할 단어가 수십만 개나 되어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알파벳 문자 단위로 읽는다. 즉「학교」를 영어로 인식하게 하려면 s, c, h, o, o, l의 6개 문자를 각각 읽어 이것들을 기억된 알파벳 모양(패턴)과 비교하게 한다. |
그런데 한글에서는「모아쓰기」라는 특징이 있다. 영어에서처럼 자모를 옆으로 나열하지 않고 모아서(「학」,「교」등으로) 쓰는 것이다. 그래서 한글에서는 컴퓨터가 인식하는 단위를 정할 때 세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는 한글 자모 단위(ㅎ, ㅏ, ㄱ 등), 둘째는 글자 단위(학, 교 등), 셋째는 단어 단위(학교, 소년 등)로 읽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영어에서처럼 획이 너무 단순하여 구별이 잘 안 되고, 셋째 방법은 기억해야 할 단어가 너무 많게 된다. 그런데 두 번째 방법인 글자 단위로 하면 글자 하나 하나가 적당히 복잡하여 다른 글자와 구별이 잘된다. 또한 한글 자모로 이루어지는 글자가 3만 자가 안 되기 때문에 컴퓨터가 기억하기도 쉽다. 앞의「학교」를 읽게 하려면「학」,「교」라는 두 개의 글자를 받아들여 이것을 기억하고 있는 패턴과 비교하면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동일한 수준의 문자 인식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영어와 한글을 인식하게 하면 한글 인식률이 더 높다. 위와 같은 비교 관찰은 전문적이고 종합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조건 한글이 우수하다고 가르치는 것보다는 외국어와 비교해서 이 같은 장점이 있음을 설명해 주며 가르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동아일보, 1997. 10. 8.) |
한글 우수성 살리려면/ 이 한우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알려진 한글이야말로 한국 문화의 가장 훌륭한 ‘작품’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글만큼 효율적이고, 과학적이고, 철학적이면서 멋있는 글자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한글을 한국에 와서 처음 배웠다. 가끔은 각 나라 외국사람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면서 한글의 우수성에 놀란다. 외국사람들이 다른 어느 외국어보다 한글을 빠르게 배운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말 자체는 복잡해 외국사람이 배우기 어렵지만 문자인 한글은 음소글자로서 발음 기호 익히기가 너무나 쉽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말을 전혀 접해 보지 않은 외국사람들은 한글 구조에 대한 설명을 한 시간만 듣고도 한글을 떠듬떠듬 읽기 시작한다. |
그것은 한글의 글자꼴 디자인이 매우 논리적․체계적이기 때문이다. 글 모양에 그 글을 발음하는 혀나 입의 구조가 표현된다. ‘ㄱ’ 자의 모양은 ‘ㄱ’을 발음할 때, ‘ㄴ’ 자의 모양은 ‘ㄴ’을 발음할 때 혀의 구부러진 모양이다. 한글의 모든 자음(닿소리)은 혀의 모양이나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반면 한글의 모음(홀소리)은 발음할 때 입의 모양 그리고 그 소리의 방향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ㅏ’는 입을 크게 벌리며(수직의 긴 획) 앞으로 나가는 소리를(앞으로 향하는 작은 수평의 획) 표현한다. 한글의 그런 발음 원리들은 음소로 이뤄진 세계 어느 나라 말과도 꼭 같은 원리다. 그래서 외국 학생들은 한글에 대한 이런 발음이 나오는 구조적 원리에 대한 설명을 한 번만 들으면 너무 인상적이어서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느리게라도 한글을 읽기 시작한다. 한글의 발음 기호 체계는 정렬돼 있어 우수하며,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한글의 가능성은 무한하며, 이를 갈고 닦아 세계에 보급해야 한다. 그러나 한글에도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주 한글날에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이야기 손님으로 나온 한글학자는 이렇게 말을 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로서 세계 어느 나라 말이든 그 발음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한글은 사람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꼭 그렇지는 않다. 한글은 한국말의 발음을 완벽하게 나타내지만 외국어마다 한글이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영어만 봐도 한글로 그 발음을 표현하면 매우 어색하다. 영어의 ‘R'과 ’L'의 구별이 한글로 어렵고(red나 led를 한글로 어떻게 구별하나?) ‘F', 'V', 또는 ’th'의 정확한 영어 발음은 한글로 거의 불가능하다. 독일어의 ‘ch' 등의 발음은 부자연스럽다. 이런 한글의 한계를 볼 때 몇몇 학자들이 주장하는 한글의 세계적인 보편성이 나 같은 외국사람들에게는 좀 엉뚱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글이 세계적인 발음 기호가 되려면 한국말 자체가 세계적 공통어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
그러나 최근에 한글이 세계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분야가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컴퓨터 합성 발음을 만들 때 한글이 매우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글로 쓴 글을 합성 발음을 만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로마자로 된 글을 그 나라 말 발음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보다 훨씬 쉽다. 한글로 된 글을 완벽하게 합성 발음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비교적 쉽게 다른 나라 말에 응용할 수 있다. 영어 ‘발음 규칙’ 프로그램도 조금만 확장된 한글 ‘발음 규칙’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다 발음을 바꾸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다. 한글의 세계적인 우수성을 보여 주려면 한글학자나 정부가 나서서 이런 한글 정보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글날에 ‘우리끼리 하는 연설’에서처럼 위에서 말한 좀 엉뚱한 주장을 하기보다는 음성 합성 발생 기술과 같은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신문, 1999. 10. 12.) |
첫 번째 글은 전통적인 철자법과 최신 정보화 시대 컴퓨터의 문자 인식까지 아울러 한글의 우수성을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 또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이라는 점과 국어학자가 아닌 전산학자가 쓴 글이라는 점에서 보통 학생들에게 설득력을 줄 수 있다. 다만 영어 글자와의 비교에서는 단순 비교 우월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문자를 부려쓰는 사회적 맥락이 다르므로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글은 무조건적인 한글 우수성론이나 우월주의를 경계할 수 있는 칼럼이다. 훈민정음이 과학적인 문자과학을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 적용 맥락에서의 문제는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 문자는 지극히 보수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한우의 글은 외국인으로 한국에 오래 살면서 느낀 점이라 막연한 한글 과학주의나 우월주의를 경계하기에 좋다. 물론 이 한우도 지적했지만, 이 한우가 지적한 한글의 단점 그 자체 때문에 한글의 과학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변화되는 삶 속에서 한글의 과학성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두 글 모두 정보 시대 한글의 장점과 적응 방향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훈민정음 과학성에 대한 두 번째 교육 전략은 정보 시대 한글의 위상과 반드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전산학자들은 훈민정음의 과학적 체계는 컴퓨터 원리에 그 어떤 문자보다도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지적해 왔다. 그래서 세종은 정보 시대 도래를 예견해서 훈민정음을 만든 거 아니냐는 농담까지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이다. 다만 컴퓨터와 운영 소프트웨어가 영어권에서 주로 개발되다 보니 완성형이나 조합형이니 하는 코드 갈등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물론 기본 전제가 그렇다 하더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훈민정음과 한글의 구체적 과학성은 현실 속의 실천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고 볼 때, 성공한 점도 있지만 실패한 점도 꽤 크기 때문이다.
한글이 진정 과학적인 글자라면 정보 시대에도 잘 적응되어야 한다. 정보 시대에 한글을 어떻게 접목시키느냐에 따라 구체적 과학성의 성격이 결정될 것이다. 그동안 숱하게 지적되어 왔듯이 컴퓨터 보급률이나 인터넷 활용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 것은 한글의 과학성에 크게 힘입었다. 그렇다고 한글 때문만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글의 역할이 컸다 할지라도 다른 요인과의 복합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인터넷 보급률이 높다고 해서 인터넷을 좋은 쪽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의미 있는 지적이다. 어차피 양적 팽창은 긍정, 부정 양쪽의 질적 측면을 함의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한글 과학성의 장점과 컴퓨터 연계성을 강조하되 절대화시키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문자가 컴퓨터에서 제대로 자리매김되는 분야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문자를 컴퓨터로 입력하기 위한 자판의 과학성이며, 또 컴퓨터 내부에서 글자를 처리하는 코드의 과학성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컴퓨터로 구현되는 글꼴의 과학성이다. 이 세 분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은 없다. 자판의 경우, 현재 남한 표준인 2벌식은 독재 정권 아래서 졸속으로 제작되어 현재 북한의 표준 자판보다도 효율성이 20%나 뒤진다. 마침 1996년 중국 연변 자치주에서 중국, 북한, 남한의 학자들이 만나 자판 공동 시안을 마련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곧 자판구조와 배치 구조는 2벌식을 기준으로 26 타건에 24개의 홑글자와 2개의 겹모음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옛글자 4자는 현대글과는 별도로 처리하되 각각 해당 음가와 유사한 위치에 배치키로 하고 쌍자음 5자는 사용자 선택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합의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된 새로운 공동 자판(통일보다는 ‘공동안’이란 표현을 쓰기로 하였다.)은 아래와 같다.
〈그림 1〉공동 자판의 배치도
ㅁ |
ㅃ ㅂ |
ㄸ ㄷ |
ㅉ ㅈ |
ᅙ ㅎ |
ㅕ |
ㅜ |
ㅓ |
ㅐ |
ㅔ |
[ |
] |
||||||||||||
|
ㄹ |
ㄲ ㄱ |
ㅇ |
ㄴ |
ㅆ ㅅ |
ㅗ |
ㅡ |
ㅏ |
ㅣ |
; |
‘ |
|
|||||||||||
|
|
ㅋ |
ㅊ |
ㅍ |
ㅌ |
ㅠ |
ㅛ |
ㅑ |
, |
. |
/ |
|
|
그러나 이러한 합의안도 남‧북 당국의 성의 부족으로 교착 상태에 있다. 코드의 경우는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한글 구현만이 문제가 아니고 다른 언어와의 교환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글은 영어와는 달리 모아쓰기 때문에 완성형과 조합형이라는 두 코드가 생겼는데, 영어와의 호환을 생각하면 완성형이 편하고 한글만의 구현을 위해서라면 조합형이 합리적이다.
한글 모아쓰기는 그 동안 같은 음소 문자인 영어와는 다른 장점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컴퓨터와 관련해서는 이런 갈등 유발 요인이 되었다. 다만 그것은 컴퓨터 자체 원리로 인한 갈등은 아니다. 영어 중심의 국제 코드나 운영 체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에선 모아쓰기 때문에 한글 기계화나 정보 시대 적응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풀어쓰기를 주장하지만 현실성은 없는 얘기다. 컴퓨터 원리 자체로만 본다면 모아쓰고 모아쓰지 않고는 상관이 없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컴퓨터는 복잡한 과정이나 결과를 해결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영어 중심의 컴퓨터 시스템 문제와 혼동하지 않도록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다만 요즘은 확장 완성형으로 글자 실현이 안 되는 갈등은 없어졌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안고 있는 셈이다.
5. 맺음말
한글은 한국의 문자이고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자랑스럽다는 차원을 떠나 인간의 삶 속에서 인간의 문자가 삶의 구성 요소로서의 과학적인 도구라는 측면에서 교육 전략을 세워야 한다.
문자는 인간의 삶을 생산적으로 구성해 가는 주요한 실천 요소이다. 문자는 사회 역사적 배경 아래 생겨나 역시 그런 배경 아래 발전하기도 퇴보하기도 한다. 훈민정음은 봉건주의라는 차별적 계급 사회 모순을 최대한 딛고 창제된 문자이다. 문자가 지향해야 할 세 가지 원칙인 다양한 계급의 포용성, 음성언어와의 과학적 관계 설정과 교육과 보급․실천의 대중성, 실용성 등을 훈민정음은 두루 충족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충분 조건이 어떻게 실현되는가는 문자를 다뤄 나가는 사람과 사회에 달려 있다. 남한은 한자를 아직도 섞어 쓰는 등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이르러서는 독재 정권(5, 6 공화국)이 서구의 컴퓨터에 한글을 맞추는 완성형 코드를 채택함으로써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제대로 발휘 못하게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시련 속에서도 한글은 영어권 문자 외의 다른 어떤 문자보다도 적응을 잘해 정보 문화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글의 과학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할 문제이다. 훈민정음과 한글 과학성의 교육 전략을 고려해 본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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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슬옹: 목원대 겸임교수, 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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