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풍속화에 대하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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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 

 

(1) 기방도

국어 사전에도 기생은 가무를 팔아 사는 계집이라고 풀이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아마 몸을 팔아서 사는 여인이 아니라는 말이 되는 것 같다. 언제부터 유리 사회에 이러한 기생이 생겨났는지 분명히는 알 수 없지만 이미 고려시대 초기에 일종의 관기를 교육하고 또 거느리기도 하는 교방이란 것이 있었던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아마 한국 기생 제도의 역사도 줄잡아 천 년 이상의 전통을 쌍은 셈이 된다.

 

이미 옛날에도 이러한 기생뿐만 아니라 기생보다 한 계단 떨어지는 지체의 여성, 즉 몸을 팔아서 세상을 사는 여인 중에 은근짜라는 계층이 있었고 그 아래에 또 갈보라고 불리는 창부의 부류가 있어서 그 무리들 속에서 올바른 기생 대접을 받으려 스스로 그럴 만한 몸 다스림을 지녀야만 되었을 것이다. 한때 기생을 일패, 은근짜를 이패. 그 다음을 삼패라고도 불렀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것은 물론 그들이 지닌 몸 다스림의 척도에 따라 층하를 지어서 부른 오입쟁이들의 은어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혜원의 속화에도 물론 이러한 기생과 은근짜를 다룬 장면이 적지 않았고 말하자면 일패들일 경우는 대개 야연이나 회음하는 장면의 뭇 사나이들 틈바구니 속에서 오히려 마음의 자세를 조출하게 가다듬어야 했던 그들의 의젓한 자태가 한층 애틋하게 표현되어 있을 때가 많다. 속기 속에서 세워진 사랑의 질서라고 할까 즉 서민이 세상을 살아가는 꽃다움과 흥겨움의 일면이 혜원의 그림 속에서는 언제나 은은하게 넘쳐나고 마치 강원도 아리랑 가사에 나오는 흙 물의 연꽃은 곱기만 하다. 세상이 흐려도 나 살 탓이지 아리 아리 쓰리 쓰리 아라리요 아리 아리 얼씨구 놀다가세. 감 꽃을 주으며 헤어진 사랑, 그 감이 익을 땐 오시만 사랑 아리 아리 쓰리 쓰리 아라리요라 한 대목이 문득 연상되기도 한다. 세상에는 기생들의 이러한 참사랑을 못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흙탕물 속에서 알뜰한 봉오리를 맺는 청정한 연꽃처럼 평생에 간직할 참사랑을 남 몰래 가꾸는 그 뜻이 아름다워서 작가 혜원은 그의 그림 속에 그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의 생활 속에 뛰어들고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혜원은 희떱고 멋지고 또 한 걸음 앞서서 그들과 스스로의 발판을 의식한 위대한 서민의 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혜원의 그런 작품 속 인물들이 대개 그러하지만 이 기생방 그림에서도 답답한 19세기 초의 한국 서민사회를 늠름하고 즐겁게 살아 나간 유쾌한 인간상들이 흥겹게 잘 부각되어 있을 때가 많다.

 

작가 혜원은 이렇게 세상을 헤치며, 걸어가는 유쾌한 사나이들의 타입을 좋아했던 것 같고 따라서 이들 그림 속 사나이들 속에 어느 사이엔가 뛰어든 자기 자신의 영상을 발견하고 혼자 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때로는 풍자하고 때로는 박수를 보냈을 그의 많은 작중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인생이란 그다지 고달플 것도 슬플 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갖게 되는 것도 말하자면 그러한 작가 혜원의 예술과 인생관이 지닌 일종의 마술의 힘이 아닌가 한다.

이 기방도에서 보더라도 넓고 큰 값을 비스듬히 비껴쓰고 흰 도포 위에 검은 항라 갓끈을 질끈 매어 늘인 풍채 좋은 사나이들의 맵시라든지 젊은이들에게 감싸여 한 무릎을 세우고 날아갈 듯 연연한 기생의 앉음새라든지 이 좌중에 떠도는 싱그럽고도 화기에 찬 분위기 속에 혜원이 추구하는 가림 없는 인간성의 아름다움이 살아 움직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생이 있으니 기생 어미가 있어야 하고 기생 어미에게는 벌거숭이 어린 딸이 또 있어서 스산하면서도 흠흠한 기생 어미의 미묘한 감정의 일면마저 이 작은 한 폭 그림 속에 함께 담고 있는 점은 혜원이 지닌 작가적인 양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을 듯싶다. 크고 화려한 트레머리와 화사한 비단옷 차림의 아리따운 현실적인 기생살이의 요람이 이 벌거벗은 어린 여동생의 자태 속에 반영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고 어린 것이 장래가 함께 예견된다고도 할 수 있어서 숙명적이던 당시 기생 사회의 양상을 볼 수 있는 듯도 싶다.

 

화면 전체의 색채도 조선 시대 서민 사회의 담담한 색채 호상을 매우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어서 그림의 형상이나 주제를 덮어놓으라고도 색감만 보고서도󰡐이것이 한국이다라는 생각을 대번에 느낄 수 있는 점도 이 그림이 지닌 즐거움의 하나이다.

 

(2) 고누

단원의 풍속화 중에는 요새말로 서민들의 레크리에이션을 주제로 삼은 그림들이 더러 있다. 순박한 서민 사회에서 즐길 수 있는 이러한 놀음이라 하면 우선 간편해야 되고 또 짧은 여가에 어느 곳에서라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이라야 했으므로 기껏해야 씨름이나 고누 정도의 소박한 주제로 되어 있다. 이 고누 그림은 그러한 서민 오락의 본바탕을 허식 없이 관찰한 작품의 하나로 더벅머리 총각 머슴들을 둘레로 한 서민 생태의 한 단면이 생생하게 잘 사실되어 있다.

 

어느 동구 밖 나무 밑에서 기약 없이 벌어진 이 고누 놀이의 정경은 무거운 지게를 방금 벗어 놓고 잠시 숨을 돌리는 후련한 심정과 하찮은 승부지만 그런 대로 한 곳으로 쏠리는 흥겨움이 있어서 고누를 두는 사람이나 훈수를 하는 둘레의 열띤 감정을 자못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겉부시시한 총각머리의 흐트러진 모습들이나 앞가슴을 풀어 헤쳐서 배꼽까지 드러내 놓고 희희낙락해하는 그들의 자세 속에는 마치 과거 한국 사회의 밑바닥 길을 소박하게 걸어 간 수 없는 머슴살이의 스산스러움과 흥겨움이 함께 어울져 보이기도 한다.

 

단원의 풍속화에서는 세상을 이렇게 어설피 살아간 서민들이라 할지라도 모두 표정이 밝고 뜬 세상을 흥겨움 같은 아련한 즐거움이 감돌고 있다는 것을 항상 느끼게 된다. 이것은 작가 단원의 인생관에서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무렵의 사회상을 반영한 어질고 너그러운 서민 생활 감정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가난 속에서 그렇게 너그러운 표정들이 신기롭다는 생각을 갖게 될 때가 많다. 장죽을 물고 노송 그루에 비스듬히 기대어 젊은이들의 자태를 묵묵히 바라보는 맨상투 차림의 어른과 턱없이 희희낙락해 하는 젊은이들의 감흥도 매우 대조적이지만 길가에 벗어 놓은 나무지게의 맵시는 한국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우리 사회가 어서 이 지게 신세를 벗어나야만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지게의 영상이 도사리고 있을 것임이 분명할 뿐 아니라 산촌에 가면 지금도 이러한 나무지게의 대열이 끊이지 않고 있음 흔히 볼 수 있다. 지난 겨울 지리산 화엄사에 갔을 때보고 놀란 일이지만 아침마다 수십 명의 소년들이 지게를 지고 장장행렬을 이루어 산곡으로 변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우리 산촌의 연료 조달 수단은 예나 지금이나 산을 헐벗겨 먹는 자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단원의 풍속화에는 목수미장이기와장이도부꾼머슴살이대장장이주모엿장수마부뱃사공어부 등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 생업을 즐기는 서민들이 너그러운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이 머슴살이 소년들의 인상은 그 중에서도 출중한 표현을 보여 준 것이라고 느껴진다. 마치 단원의 신선도에 나오는 선동들의 얼굴처럼 천진하고 태평스러워 보여서 땀내가 몸에 절어 있는 머슴들의 얼굴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이 즐겁다.

 

말하자면 머슴살이 초동들의 풍모와 행색을 가장 잘 사실한 이 그림에 오히려 선동의 모습이 연상된다는 것은 작가 단원의 사람됨과 그 덕기의 힘으로 땀에 젖은 초동의 뭇 얼굴 속에서 천진한 맘씨와 소박한 모습을 간추린 까닭이라고 하고 싶다.

 

(3) 금강산 만폭동도

풍경화란 사진 같아도 재미가 없고 또 너무 상상적으로 그려도 현실과 동떨어져서 흥미를 잃기 쉽다. 겸재 정선의 한국 풍경화는 이러한 두 가지 폐단에서 벗어나서 한국 산천의 아름다운이 지닌 뼈대와 그 정기를 집약해서 가장 신선하게 표현한 점에서 주목을 받기에 족하다. 이 분이 사생한 풍경화는 거의 전국 방방곡곡에 발길이 이르지 않은 곳이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작품은 금강산과 서울시의 풍경이다.

 

이 만폭동도는 겸재 선생이 몽매간에도 못 잊을 대금강산 봉우리 봉우리와 굽이굽이의 편모를 가장 신선하고도 요약된 필치로 그린 소품으로 비록 화폭은 좁다 하지만 변화무쌍하고 심원유수한 만폭동 계곡 풍경의 골수를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 걸작이라 할 것이다. 물소리 산 소리가 한데 어울려 이루어내는 신비로운 화음이 마치 이 작은 화폭에서 넘나드는 듯 신비로운가 하면 실상 그림 속에 아무런 비밀도 있을 수 없고, 현실적인가 하면 현실보다도 크고 맑고 더 흥겨운 생명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촉촉이 돋친 아득한 만 이천봉 위에 훤하게 솟아난 비로봉, 청송이 우거진 계곡에는 자욱한 안개 속에 녹수청산을 구가하는 폭포와 여울물 소리의 억척스러운 화음이 있으니 필시 겸재는 비 갠 후의 금강산이 보여 주는 청정한 모습을 그린 것임이 분명하다.

 

작은 화폭에 깊고 멀고 큰 대자연의 모습을 이렇게 실감나게 집약해 넣은데서 당시 겸재가 도달한 놀라운 경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필시 겸재가 금강산을 얼마나 깊고 뜨겁게 사랑했던가,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오래오래 금강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바라보았던가를 입증해 주는 것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이 화폭의 중앙 너럭바위 위에 동자를 거느리고 손을 들어 가리키는 한 선비의 모습, 그것은 이 아름다운 만폭동을 현실 속에서, 그리고 그의 시정 속에서 수없이 소요했던 겸재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나싶다.

 

(4) 미인도

서양에서는 중세나 근세의 초상화 하면 으레 아름다운 여인을 연상할 만큼 미인들의 초상화가 많다.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경우는 왕가나 사대부 선비들의 집안에서 부인들의 초상화를 남긴 예가 거의 없었고, 있었다고 하면 춘향이니 계월향이니 운낭자 최홍현이니 하는 의기들의 초상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초상화들도 오래된 초상화는 거의 없어져서 조선 말에 채용신이 그린 최홍련의 초상화 한 폭이 겨우 조선 미인 초상화의 여운을 남겨 주었을 뿐이다.

 

혜원 신윤복은 풍류 남아나 기녀들의 생태를 그려서 조선 시대 화류계의 연연한 생활 정서를 뛰어난 솜씨와 장애로써 후대에 전해 준 귀한 업적을 남긴 분이었는데, 이 작가가 실존 인물 특히 초상화적인 미인도를 많이 남겨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고 전형필씨 소장품 중에 이러한 미인도 한 폭이 있음이 알려졌을 때, 우리는 이 미인도가 지니는 초상화적인 뜻이 매우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느꼈다. 비록 그 화제에서 그림의 본인이 누구였는가를 밝힐 수는 없었지만, 필시 어느 풍류남아의 소첩일 수도 있겠으나, 순정적이고 앳된 얼굴에 나타난 미소의 품위로 보나 옷맵시에서 느끼는 세련된 풍김으로 보나 오히려 지체 있는 어느 선비의 소첩이었으리라고 상상하고 싶어진다. 삼단같이 윤나는 큰 트레머리의 한 쪽에 자줏빛 댕기가 살짝 내비꼈고, 자주고름에 달린 수마노 삼작노리개를 그 희고 연연한 손으로 매만지는 포즈가 이만저만한 태고사 아님을 알 수 있다. 초생달같이 길고 가는 실눈썹과 귀 뒤로 하늘거리는 잔 귀밑 머리털에 이르기까지 이 초상에서 풍기는 연려하는 신선한 풍김을 바라보고 있으면 혜원이라는 작가가 수많은 풍속도를 그린 것은 어쩌면 이러한 본격적인 미인도를 그리기 위한 발돋음과도 같은 작업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이 미인도에는 난숙한 느낌이 넘치고 있다.

고려 때 풍류 왕자였으며 뛰어난 화가였던 공민왕이 열애하는 그의 아내 노국 대장공주가 앳된 나이에 산고로 죽어가자, 상심한 나머지 그린 애절한 초상화가 지금도 남아 있었다면 아마 혜원의 이 미인도와 함께 한국의 여인을 그린 초상화로써 쌍벽을 이루었을 것이지만 노국대장공주의 초상은 한 줌 재로 변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지금 그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 혜원의 미인도 앞에 끌리는 어리석은 사나이의 향수만이 담담하게 서린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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