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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성에 대하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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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성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일상의 언어생활에서는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는미덕으로 존중되지는 않는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나 감언이설(甘言利說)’과 같이 부정적 함의를 내포한 말이나 눌언민행(訥言敏行)’ 이라는 덕목이 암시하듯 유창성이 오로지 미덕이기만 하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말을 잘 한다 못 한다 하는 판단에서 유창성보다 진실성이 더 강력한 기준으로 작용해 왔던 전통이 살아 있는 것이다. 실제적으로도 우리는 지나친 달변의 화술을 가진 사람에 대해 경계심 또는 거부감을 가지기도 한다. 가끔은 유창성이 진실성을 배반하기도 하기에 유창성에 대한 경계가 있어 왔다. 물론 유창성이 어디까지나 언어의 발화 국면에 관련된 능력이나 성질인 한은 이러한 관점의 타당성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언어 표현 이전의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유창성, 즉 사고의 유창성마저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여기에서 사고의 유창성이란 기억의 경제성이 보장해 주는 앎의 범위와 직결된다. 기억이 경제적으로 이루어질수록 앎의 범위는 넓어질 것이고, 앎의 범위가 넓을수록 표현이 유창해질 가능성은 높은 것이다. 물론 그 기억의 경제성은 질서화와 구조화의 수준에 정비례한다. 각종 사상에 대한 폭넓은 앎, 그 앎의 질서화 및 구조화가 유창성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면, 기억의 경제성을 사고의 유창성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판소리 창자들이 유창성을 발휘하는 모습은 어디까지나 표현의 국면에서 드러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 사고의 유창성은 모든 일반 화자들에게도 유용한 덕목이라 판단된다. 이는 물론 말하기만이 아니라 글쓰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논리이다.

 

류수열, 판소리 연행의 유창성에 대한 인지적 관심, 국어 교육학 연구 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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