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暴君) / 줄거리 및 해설 / 홍성원
by 송화은율폭군(暴君, 1969년, <창작과 비평>,한국 중편 소설 전집)
폭군(暴君) : 홍성원 중편 소설(1969)
차가 강변에 도착했다.
해가 막 지고 있어서 강변이 온통 놀빛이다. 일행 세명은 차를 내려 훤한 강가로 다가간다. 햇빛에 바랜 흰 자갈들이 강가로 질펀하게 깔려 있다. 일행들이 서 있는 발밑의 자갈들은 작은 둑처럼 약간 높게 싸여있다. 둑은 붉은 황토길에서 시작되어 살얼음 잡힌 강가에가지 연결되어 있다.
<중략>
짙은 눈보라가 눈앞으로 몰아쳐서 10 미터 앞도 잘 안 보였다. 노인은 이제 범을 뒤따라 거의 뛰다시피 계곡으로 달려 내려갔다. 그는 자기의 이틀간의 추적이 이렇게 허망하게 보람없이 끝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거대한 짐승, 그 놈은 정말 얼마나 끈덕진가 ? ···· 노인은 갑자기 짐승을 향해 진정에서 우러나온 경탄을 보냈다. 그놈은 정말 노인이 겪어 본 어느 짐승보다도 끈덕지고 대담했다. 그놈은 결국 노인을 거느리고 이틀간 산중으로 산 구경을 시켜준 셈이었다. 그리고 이제 구경이 끝나자 다시 마을로 늠름하게 내려오는 것이었다. 노인은 나무에 얼굴을 찢기었으나 상처에는 곁눈도 주지 않았다. 범이 다시 마을로 향한 이상 그는 한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갑자기 부락 숙소에 남아 있을 사나이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는 지금쯤 노인을 이를 갈 정도로 원망할 것이었다. 아니 지금쯤은 부락을 떠나 서울로 다시 돌아갔을지도 알 수 없었다.그리고 저 부락 사람들, 그들은 정말 양처럼 온순했다. 담장이 무너지고, 가축이 물려 가고, 팔뚝이 찢겨지고,
가족이 물려 죽고 ······ 그러나 그들은 누구 한 사람 불평 한 마디 내뱉지 않았었다. 그들은 마치 폭군 밑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백성들과 흡사했다. 공포와 절망과 슬픔에 짓눌린 채 오히려 그 폭군을 떠받드는 착한 백성들 ······ 그들은 정말 백성 같았다. 착하디착한 백성들이었다.
(중략)
노인이 범을 올려다 본 것과 범이 일어선 것과는 완전히 동시였다. 그들은 마치 쌍둥이 인형처럼 나란히 동시에 고개를 마주 돌렸다. 바위는 약 8미터 높이로 위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 있지 않았다. 범은 커다란 머리통에 가려 어깨 뒤쪽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그림에서만 보아온 거대한 괴물의 탈처럼 느껴졌다. 노인은 약 너댓 평 억새숲 한복판에 서 있었다. 바위와 노인과의 직선 거리는 미처 3미터가 될까 말까 했다.
그들은 지금 누가 먼저 움직일 것인가 꼼짝없이 대기한 상태였다. 노인은 짐승과 눈이 마주치자 머릿속이 갑자기 얼음처럼 맑아졌다. 그는 짐승이 왜 자기를 덮치지 않는지 잘 알았다. 짐승은 지금, 노인이 놀랄 만큼 자신도 노인에게 놀란 것이었다. 사실 범들은 사람과 마주치면 사람 못지않게 끔찍이 놀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표정만 변치 않을 뿐 사람을 사실은 엄청나게 두려워했다. 범은 지금 자기가 움직이면 노인이 공격해 오리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더구나 노인의 한쪽 손에는 '그' 쇠붙이가 들려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노인도 역시 범과 같았다. 그는, 조금만 움직여도 범이 자기에게 덮치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지금은 하늘에서 벼락이 치더라도 그는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 감상 : 중편소설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장편보다 단편에 가깝지만, 작품을 이끌어 가는 중심적 갈등의 줄기에 부수적 갈등이나 삽화가 첨가되어 사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 단편과의 차이 다. 이 작품의 중심되는 문제는 늙은 포수와 호랑이의 대결이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포수와 호 랑이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늙은 포수는 호랑이의 무서운 힘과 지혜에 경탄하면서 강력 한 적수와의 싸움에서 자신의 생애를 마쳐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포수는 가장 어려운 상대와의 치열한 싸움 속에 사냥꾼으로서의 삶을 마감할 만한 장엄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다. 이와 함께 진행되는 또 하나의 부수적 갈등은 사냥을 단순한 스포츠나 재미를 위한 살상 으로 여기는 중년 사냥꾼의 속물적 행동과 늙은 포수 사이의 긴장이다. 작품 서두에서 늙은 포수는 초라하고 호화로운 장비를 갖춘 중년 사나이의 기세는 당당하다. 그러나 호랑이와의 대결이 진행되는 동안 이 관계는 역전된다. 이부수적 갈등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진정한 용기 와 지혜란 무엇이며, 참다운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소설적 질문으로 제시한다. 즉 이익이나 재미, 취미로서가 아니라 생의 과제와의 대결에 자신을 바침으로써 삶의 의미를 발 견하고 있는 작품이다.
* 줄거리
· 어떤 산촌에 호랑이가 출현하여 사람들을 해친다.
· 마치 폭군처럼 이 호랑이를 잡기 위하여 두 사람의 포수가 파견된다.
· 한 사람은 사냥만으로 평생을 살아온 노인이고, 또 한사람은 퇴역 장군으로서 대기업을 경영 하며 사냥을 취미로 하는 사나이다.
·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여러 방법으로 잡을 궁리를 한다.
· 이에 갈등(중년 사나이의 성급한 욕심과 속물적 태도 때문에 노인과 갈등)이 생긴다.
· 호랑이의 공격을 받아 사나이는 다친다.
· 노인은 눈온 뒤 호랑이를 추적하는데 이를 눈치챈 호랑이가 마을로 내려오자 노인은 뒤를 따른다.
· 피할 수 없는 곳에서 노인과 호랑이는 대결하는데 이것이 서로에게 마지막임을 알고 노인은 방아쇠를 당긴다.
· 마을 사람들이 가보니 총에 맞은 호랑이와 노인이 한 덩어리로 엉켜 죽어 있었다.
* 주제 :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전생애를 걸고 묵묵히 행동하는 정신(숭고미)
* 출전 : 창작과 비평(1969)
--- 문학이론 <집념과 좌절>
작가:홍성원(洪盛原, 1937 - )
경상남도 합천 출생. 1958년 고려대 영문과 중퇴. 1964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빙점지대」로 당선. 장편 「 D 데이의 병촌(兵村)」을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96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전쟁」이 가작으로 당선된 적도 있음. 주요 작품으로 「빗돌 고개」(1965), 「종합 병원」(1966) 등의 단편과 장편 「남과 북」(1977)이 있다.1977년 제2회 반공문학상 대통령상 수상. 1985년 장편「마지막 우상」으로 제 30회 현대 문학상 수상.
등장인물
노인: 포수. 호랑이와 함께 죽음
퇴역 장군: 사냥꾼. 호랑이에게 죽음을 당함.
줄거리
차가 강변에 도착했다.
해가 막 지고 있어서 강변이 온통 놀빛이다. 일행 세명은 차를 내려 훤한 강가로 다가간다. 햇빛에 바랜 흰 자갈들이 강가로 질펀하게 깔려 있다. 일행들이 서 있는 발밑의 자갈들은 작은 둑처럼 약간 높게 싸여있다. 둑은 붉은 황토길에서 시작되어 살얼음 잡힌 강가에가지 연결되어 있다. <중략>
짙은 눈보라가 눈앞으로 몰아쳐서 10 미터 앞도 잘 안 보였다. 노인은 이제 범을 뒤따라 거의 뛰다시피 계곡으로 달려 내려갔다. 그는 자기의 이틀간의 추적이 이렇게 허망하게 보람없이 끝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거대한 짐승, 그 놈은 정말 얼마나 끈덕진가 ?
어느 산골 마을에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해친다. 마치 폭군처럼 날뛰는 이 호랑이를 잡기 위해 두 사람의 사냥꾼이 파견된다. 한 사람은 사냥을 하며 평생을 살아온 노인이고, 한 사람은 퇴역 장군(退役將軍)으로 대기업을 경영하며 사냥을 즐기는 중년 사나이다.
현지 주민들은 신비로운 존재인 호랑이 사냥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두 사냥꾼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호랑이의 자취와 습성을 살피고 잡을 방법을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중년 사나이의 성급한 욕심과 속물적 태도 때문에 두 사람은 호랑이 잡는 방법에 의견 충돌을 가지며 결국 중년의 사내는 호랑이의 공격으로 다친다. 때마침 눈이 내린 날 노인은 홀로 호랑이를 추적하고, 사냥꾼이 따르는 것을 알고 교묘히 마을 쪽으로 내려오는 호랑이와 뜻밖에 피할 수 없는 곳에서 마주친다. 노인은 이것이 서로에게 마지막 순간임을 느끼면서 방아쇠를 당긴다. 마을 사람들은 후에 호랑이와 노인이 한 덩어리로 엉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노인은 마치 악기라도 다루 듯 천천히 단호히 방아쇠를 당겼다. 그것은 모두 5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중략>
“범이 참, 몸 어딘가에 커다란 상처가 있었다면서요.”
“겨드랑이 밑일세. 부락민들의 말로는 덫에 친 상처라는군.”
“크던가요. 상처가?”
“고름이 뼈속까지 가득 찼었어. 어떻게 그런 꼴로 걸어다녔는지 알 수가 없네.”
차가 거의 비탈길을 다 올라 산 굽이를 커다랗게 돌고 있다. 청년이 다시 사나이를 향해 턱으로 불쑥 차창 밖을 가리킨다.
“저 꼴들을 보십쇼. 피난 갔던 사람들이 이제야 모두 제 집들을 찾아 가는 모양입니다. 아마 오늘부턴 두 다리 쭉 뻗고 마음편히 잠들을 잘겝니다.”
해설
이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우리는 중편 소설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하게 된다. 중편소설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장편보다는 단편에 가깝지만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심적 갈등의 줄기에 부수적 갈등이나 삽화(揷話)가 첨가되어 사건의 폭이 넓어진다는 데에 단편과 차이점이 있다.
이 작품은 늙은 포수와 호랑이 사이의 끈질긴 싸움을 그린 이색적 제재를 지니고 있다. 외딴 산촌을 배경으로 하여 맹수와의 투쟁에 인생의 마지막을 거는 포수의 집념이 인상 깊게 그려져 있는 이 작품은 늙은 포수와 중년 포수의 갈등(부수적 갈등), 중년 포수와 호랑이의 싸움, 늙은 포수와 호랑이의 싸움(중심 갈등), 이 세가지의 갈등 - 싸움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움직이고 있다.
중심 갈등을 통해서 우리는 포수가 가장 어려운 상대와의 싸움에서 자신의 생애를 마쳐도 좋다고, 그럼으로써 사냥꾼으로서의 삶을 마감할 만한 하다는 장엄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부수적인 갈등을 통해서 작가는 인간의 진정한 용기와 지혜란 무엇이며, 참다운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소설적 질문으로 제시한다.
(주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묵묵히 행동하고 전 생애를 그것에 바치는 숭고한 정신.
(갈래) 중편 소설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