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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포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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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포네  


제우스에게는 새로운 적들이 있었다. 튀폰, 브리아레오스, 엔칼라도스 같은 거인족으로서 불을 뿜기도 하고 어떤 자는 팔이 백 개나 되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에는 패배해 아이트나산 아래에 생매장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화산폭발이나 자진의 원인은 여기에 갇힌 괴물들이 몸부림치며 거친 숨결을 토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괴물의 추락으로 가장 놀란 신은 암흑의 신인 하데스였다. 거대한 괴물들이 땅에 떨어지자 그는 온 땅이 뒤흔들려 그 의 왕국이 햇빛 아래 드러날 것 같아 노심초사했다. 견딜 수 없게 된 그는 어느 날 그의 검은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곳곳을 순시하였다. 그가 순시하는 그 시간에 아프로디테가 에릭스 산에서 아들 에로스와 같이 있었다. 그녀는 평소 좋지 않게 생각해온 하데스의 모습을 발견하고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에로스야, 참 좋은 기회가 왔구나. 너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요즘 이 엄마는 한 가지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단다. 그 걱정은 하늘에 있는 신들이 우리의 영토를 넘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아테네나 아르테미스조차 우리를 얕보고 있단다. 뿐만 아니라 저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조차 이 두 신을 믿고 따르니 이 어찌 그냥 넘길 일이냐, 저기 보이겠지만 저기 타르타로스의 지배자가 있다. 너는 지금까지 저자만을 그대로 두었는데 자 에로스야, 쏘아라. 더 이상 우리의 영토가 위협 당하지 않으려면 저 하데스와 어린 계집을 한데 묶어놓아라."

어머니의 말을 따라 에로스는 가장 날카로운 화살을 꺼냈다. 무릎으로 활을 고정한 뒤 시위에 살을 먹였다. 그러자 비늘 달린 이 살은 소리도 없이 날아가 하데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한편 페르세포나는 친구들과 함께 엔나 골짜기에 있었다. 엔나 골짜기는 늘 꽃이 피어있어 일년 내내 봄의 여신은 이곳에 거주하였다. 페르세포나는 이 골짜기에 백합이나 오랑캐꽃을 앞치마에 따 담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좀전에 강한 화살을 맞은 하데스가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한눈에 반해 그녀를 납치하려고 작정하였다.

그는 그의 사나운 말들을 몰아 단숨에 그녀를 나꿔챘다. 앞치마에 모은 꽃들이 산산이 흩어졌다. 그녀는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기쁨에 찬 하데스는 말 이름을 하나씩 크게 부르면서 내달렸다. 이윽고 한참을 달려 키아네스강에 이르렀다. 하데스는 강이 자기 앞길을 막자 서서 삼지창으로 강가를 두드렸다. 그러자 땅은 입을 벌려 지하의 통로를 드러냈다.

테메테르는 사라진 딸을 찾아 온 땅을 헤매었다. 새벽녘 에오스가 나을 때도, 저녁 무렵 헤르페로스가 테메테르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슬픔에 겨워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엘레우시스에 와서 그만 돌 위에 주저앉아 햇빛과 달빛을, 그리고 비를 맞으며 아흐레를 보냈다. 이 근방에 켈레오스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들에 나가 야생의 식물과 열매를 따다 생활을 해온 노인이었다. 어느 날 그의 어린 딸들이 양을 몰며 집에 가다 테메테르를 보았다. 그녀들은 테메테르 곁을 지나치다 이렇게 물어보았다.

"아, 무슨 일로 이렇게 홀로 앉아 계시나요?"

그때 무거운 짐을 지고 오던 켈레오스도 이 여인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그도 비록 누추하나마 자기의 오두막집에서 하룻밤 쉬어가라고 했다. 이 말에 테르테르는 고마운 눈으로 그와 딸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진 분이시여, 제발 내 걱정은 마시고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고운 딸이 옆에 있다는 사실을 행복으로 생각하세요. 나는 딸을 잃었답니다."

이렇게 말하는 동안 눈물에 범벅이 되었고 눈물은 뺨을 타고 가슴까지 흘렀다. 노인도, 딸들도 눈물을 흘렀다. 노인이 말했다.

"갑시다. 비록 누추하지만 같이 가서 오늘 밤 쉬어 가십시오. 혹 우리 집에 계시면 딸이 무사히 당신 곁으로 돌아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
"갑시다."
"그럼 안내해 주십시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더 이상 거역할 수가 없군요."

노인의 집은 어린 외아들이 중병에 걸려 있어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노인의 아내는 이 손님을 따뜻하게 맞아들였다. 테메테르는 이 아이에게 다가가 앓는 입술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이의 창백한 얼굴은 곧 화기가 돌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몹시 기뻐했다.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했다. 식탁에는 치즈, 버터, 사과, 크림, 꿀이 놓였다. 식사를 하다가 테메테르는 식구들 몰래 아이의 우유 속에 양귀비 열매즙을 섞었다. 이윽고 밤이 되자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아이를 껴안고 는 두 손으로 아이의 사지를 주무른 뒤 주문을 세 번외고 화로의 재위에 아이를 눕혔다.

이때였다. 지금까지 손님이 하는 모양을 은밀히 지켜보던 아이의 어머니가 기겁을 하고는 재빨리 화로 속에서 아이를 끄집어냈다. 그러자 테메테르는 그녀의 원래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하늘의 빛이 그녀의 주위를 휘황찬란하게 감쌌다. 식구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테메테르는 말했다.

"어미여! 그대의 사랑은 너무 지나쳤구나. 내 그대 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려 했는데, 일을 그르치게 만들었네. 그래도 그대의 아들은 훌륭하고 유능한 인물이 될 것이오. 이 애는 장차 쟁기 쓰는 법과 농작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리라."

이 말이 끝난 후 테메테르는 구름에 쌓인 마차로 그곳을 떠났다. 그녀는 다시 딸을 찾아 사방을 헤맸다. 그러다 처음 길을 떠났던 시실리아 땅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망연자실하게 키레네강 언덕에 섰다. 그곳은 페르세포네가 납치당해 지하 세계로 들어간 지점이었다.

이 강의 요정들은 몹시 답답하였다. 요정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보아온 하데스의 납치사건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하데스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테메테르의 가엾은 모습은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한참을 궁리하던 끝에 요정들은 페르세포네가 납치당할 때 떨어뜨린 허리띠를 그녀의 발끝으로 떠오르게 했다. 이 허리띠는 테메테르에게 딸의 죽음을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영문 모르는 그녀는 땅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이 배은망덕한 녀석아, 나는 너를 비옥하게 만들었고 네 위에 풀과 나무와 많은 곡식을 덮어 주었다. 그런데 너는 내게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이 배은망덕한 땅아, 이제 더 이상 너에게 은총은 없을 것이다."

그러자 가축은 모두 죽어버렸고, 땅은 단단해져 초목의 싹이 돋지 않았으며 쟁기 날은 부러졌다. 가뭄이 계속되었고 장마가 계속되었다. 땅에서 자랄 수 있는 것은 엉겅퀴와 가시덤불뿐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샘의 요정 아레투사가 이렇게 말했다.

"여신이여! 땅을 저주하지 마십시오. 땅은 어쩔 수 없었답니다. 제가 따님의 이야기를 해 드리지요. 저는 땅 밑으로 흘러 알페이오스에서 이곳 시실리아 지방으로 흘러옵니다. 그러다 보니 땅밑에서 테메테르님의 따님인 페르세포네님을 보았습니다. 따님께서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무서움에 떨지는 않았습니다. 따님은 지하세계의 여왕이 되신 듯하였습니다. 에레보스의 여왕, 사자의 나라를 통치하는 자의 왕후 말씀입니다."

테메테르는 이 말을 듣고 한동안 얼이 빠진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마차를 타고 제우스신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납치 당한 딸의 사정을 말하고 딸이 되돌아오게끔 해달라고 했다. 제우스는 이 청을 수락하면서 한가지 조건 을 달았다. 그것은 페르세포네가 지하에 있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아야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먹는다면 '운명의 여신'들이 페르세포네가 자유로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중계하기 위해 헤르메스가 사자로 나섰다. 그는 곧 '봄의 여신'들과 함께 지하로 갔다.

하데스는 쾌히 승낙 했다. 페르세포네가 이미 그가 준 석류를 받아먹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따라서 완전한 구출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반 년은 어머니와 반 년은 하데스와 사는 타협안이 만들어졌다. 테메테르는 다시 전과 같은 은총을 땅에 내렸다. 그때서야 켈레오스와 그 가족, 그리고 아들과의 약속이 기억났다. 그녀는 그들의 어린 아들 트리프톨레모스가 성장하자 쟁기 사용법, 파종법을 가르쳤다. 또 자신의 용이 끄는 마차에 그를 태워 지상의 각 나라에 이 지식을 전수했다.

이 긴 여행에서 돌아온 트리프톨레모스는 엘레우시스 땅에 커다란 신전을 세우고 이 신전을 테메테르에게 바쳤다. 이것은 바로 여신 숭배의 비교의 창시가 된 '엘레우시스 비의'라는 제사다. 이 숭배의 식은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떤 종교의식보다도 장엄했다 한다. 이 테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이야기가 우화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페르세포네는 곡식의 씨를 뜻한다.

모든 씨앗은 땅 속에 묻혀 그 모습을 숨긴다. 지하의 신에게 납치 당한다는 뜻이다. 그러다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페르세포네, 즉 씨앗 은 어머니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또 '봄의 여신'은 그녀를 햇빛 비치는 곳으로 데려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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