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에 대하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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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리나 / 톨스토이  

  1992년 2월 중순 어느 날, 나는 아내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생트페테르스브르크로 가는 야간 열차 ‘붉은 화살’호에 몸을 싣고 있었다. 열차의 창 밖에는 언제부터 내렸는지 잘 모르겠으나 흰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서울보다 한 배 반이나 넓다는 모스크바는 도착했을 때부터 흰 눈속에 파묻혀 있었다.

우리는 그 눈속의 도시를 밤늦게 떠난 열차안에서 그날 낮에 가 보았던 톨스토이의 집 이야기와 〈안나 카레리나〉의 여주인공 안나가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나는 모스크바에서 생트페테르스브르크에 가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던 것이다. 1873년 어느 날 신문 사회면에 보도된 한 고관부인의 자살사건을 모티브로 톨스토이는 거대한 장편소설 〈안나 카레리나〉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미 〈전쟁과 평화〉로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떨쳤던 톨스토이(1828~1910)는 이 〈안나 카레리나〉로 인해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러시아가 낳은 대문호의 반열에 입성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극찬한 이 〈안나 카레리나〉는 세 가족의 연대기로 볼 수 있는 가정 소설이면서 사회소설이다. 여주인공 안나가 중심인 〈안나 카레리나〉는 소설의 소재면에서 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하다. 고관대작의 부인 안나는 남편과 자식을 두고 젊고 매력적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간통을 저지른다는 지극히 통속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연애소설은 한 남자가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며 사랑하는 것이 특징인데 반해 서구의 연애소설은 한 여자가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며 사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양의 3대 연애소설이라고 일컫고 있는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D. H 로렌스의 〈차타레이 부인〉 그리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가 다 그렇다. 아예 소설의 제목부터 여주인공 이름을 붙였다. 이 세 편 가운데서 〈안나 카레리나〉는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연애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안나는 세계문학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주인공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숙모의 중매로 화려한 경력을 가진 관리 카레닌과 결혼한 안나는 아들 세료샤를 낳아 행복한 나날을 보내었다. 비록 스무살이나 연상인 남편이었지만 존경하였고 페테르스브르크의 사교계에서도 활기찬 교제로 만족한 일상생활을 하였다. 더구나 안나의 성격이 타고난 낙천적인 기질이어서 모든 생활이 즐거움에 가득 찼었다. 적어도 브론스키를 만나기 전까지 그랬었다. 그러나 여성의 운명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날 모스크바 여행길에 만난 브론스키에게 안나는 격렬한 사랑을 느낀다. 안나는 브론스키를 사랑한 후에는 모든 것이 송두리째 뒤바뀌어 버렸고 모두가 잘못된 것으로 보였다. 심지어 존경하던 남편까지 볼품없이 보였다. 브론스키를 만나기 전까지 남편 카레닌을 한 번도 비판적인 눈으로 본 적이 없었는데 남편이 한 사물로만 보이게 된 것이다. 브론스키의 등장은 안나의 모든 것을 변하게 하였다.

안나는 〈보바리 부인〉의 보바리와는 다르다. 보바리는 정부의 침실로 몰래 들어가는 타락한 여인상이지만 안나는 속임수나 비밀이 없다.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브론스키와 처음에는 이탈리아에서, 다음에는 중앙아시아에 있는 브론스키의 영지에서 공공연한 정사를 한다. 안나의 모든 생활이 브론스키에게로 옮겨가 버렸다. 물론 사교계에서는 부도덕한 여인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안나는 사교계의 분노와 노여움을 사서 냉대와 버림받는 신세가 된 데 반하여 브론스키는 남자이기에 오히려 여러 곳에서 초대받는 신세가 된다. 이것이 1860년대 러시아의 사회상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세속적인 정신의 소유자인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자주 화를 내게 되고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사랑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결국은 남녀간의 부도덕한 사랑은 여자만의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절망 상태에 빠진 안나는 5월의 어느 일요일 밤 열차에 몸을 던져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였다.

톨스토이는 안나를 자살시켜 놓고 일주일을 울었다는 일화가 있다. 아무리 작중 인물이지만 인도주의자인 톨스토이는 안나의 자살을 안타깝게 여겼던 것이다. 이 〈안나 카레리나〉는 톨스토이의 3대 장편소설 가운데서 문학적인 완성도가 가장 높은 소설이며, 톨스토이즘을 형성시킨 작품이다.

안나의 죽음은 브론스키로 하여금 큰 상처를 입혔지만 그때 마침 터키와의 전쟁(1867년)이 시작되어 브론스키는 의용군 부대를 이끌고 전선으로 향해 떠났다. 브론스키는 늠름한 기사답게 행동한 근위장교 출신이었다. 안나의 남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은 고고한 성격의 훌륭한 남자로 톨스토이는 묘사하였지만 아내의 부정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비통하고 우스꽝스러운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자신의 대변자 격인 한 인물을 별도로 등장시켰다. 콘스탄틴 레빈이라는 안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자 주인공을 등장시켜 톨스토이 자신의 자화상을 설정하였다. 톨스토이의 작가로서의 위대성이 이러한 이중 구도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톨스토이는 대비법을 사용하여 이 작품의 다양성을 독자에게 보여준 것이다. 브론스키와 안나의 구제받을 수 없는 불행한 사랑에 레빈과 그의 아내 키치의 행복한 사랑을 대비시켰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열정적이고 고뇌에 찬 사랑이 진행되는 것과 동시에 레빈과 키치의 축복받는 사랑으로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설정한 것이다. 이 러한 이질적인 사랑의 흐름은 오블론스키 부부에 의해서 서로 관련지어지면서 하나의 통일된 작품세계를 형성하였다.

톨스토이는 모스크바와 페테르스부르크, 그리고 러시아의 농촌과 외국으로까지 작품의 무대를 넓혔다. 톨스토이는 4년간에 걸쳐 이 〈안나 카레리나〉를 완성시켰고 몇 년후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모스크바로 이주, 모스크바의 집에서 그 유명한 〈부활〉을 1899년에 썼던 것이다. 이 〈부활〉 한 편만으로도 문호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나는 모스크바에 있는 톨스토이의 집을 네 차례나 방문하였다. 목조건물인 2층집의 톨스토이 집은 톨스토이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5월 23일 방문하였을 때는 수리중이었다. 이 톨스토이 박물관에는 톨스토이가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 침대는 물론 우산과 장화까지 다 그대로 있다. 그러나 대문호 톨스토이가 태어난 야스나야 폴랴나의 대저택에는 아직 못가보았다. 톨스토이는 백만평이 넘는 땅에 수 백명의 농노(머슴)를 거느리고 괴롭게 고민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1910년 톨스토이가 타계할 때까지 노벨문학상이 어째서 그를 외면하였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 김문기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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