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에 대하여 / 조지 오웰
by 송화은율
현실의 삶과 이상의 삶, 그리고 인간의 삶
동물 농장은 영문으로 먼저 본 책이다. 아니 그렇게 영어를 잘 했단 말야? 오해할 필요는 없다. 영어를 잘 해서가 아니라 영어를 잘 하려고 영한대역판을 읽은 것이니까. 표지가 빨갛던 책으로 왼쪽의 영문과 오른쪽의 한글이 서로 부담없이 어울렸던 시사영어사 발간판이었다.
이렇게 손바닥에 꼭 들어오는 100쪽도 안 되는 얇은 부피로 만나게 된 동물 농장. 당시에는 영어 표현을 익히느라 제대로 의미를 새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등장 인물 아니 등장 동물들의 이름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떠 오른다. 나폴레옹과 스노볼, 그리고 복서와 벤자민 등...
이번에 독서 일기를 쓰려고 다시 뒤적인 책은 민음사판 동물 농장이었다. 가장 최근에 번역되었고 문학 평론가로 탄탄한 활동을 보여 주는 도정일 교수의 번역이라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번역은 반역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훌륭한 번역자가 옮긴 책은 읽어낼 만하다. (물론 시는 절대 안 되겠지만!)
동물농장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메이너 농장에서 어느날 동물들의 폭동이 일어난다. 폭동은 성공하고 인간들은 쫓겨난다. 일찍이 사태를 예견했던 메이저라는 늙은 돼지의 충고에 따라 나름대로 준비해 왔던 돼지들은 동물 농장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느 틈에 돼지들은 다른 동물들을 속이고 착취하며 끝내는 팔아먹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농장에서 쫓겨난 인간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인간을 닮아간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한 줄거리 속에는 당시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비판의 칼날을 매섭게 휘두르는 이는 바로 조지 오웰. 사회주의자인 그는 동물 농장의 여러 인물들, 아니 동물들을 현실과 똑같이 배치시키며 풍자의 진수를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풍자의 미학으로 가득하다.
작품 속에 나오는 동물들의 '일곱 계명'은 작품 해석을 위하여 눈여겨 볼 만하다.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동물 농장의 금과옥조인 일곱 계명. 자세히 보면 두 가지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 두 가지는 모두 '~은 ~이다'꼴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적과 친구로 채워져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적 아니면 친구라는 생각, 바로 전형적인 흑백 논리 아닌가.
그리고 나머지는 5계명은 모두 '~ 안 된다' 꼴로 끝난다. 뭐가 그렇게 안 되는 게 많누?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가정에 보내는 통신문 역시 그런 식으로 쓰여 있다. 이러면 좋고 저러면 나쁘고! 이러면 안 되고 저러면 역시 안 되고!!
흑백 논리와 금지 사항으로 가득찬 세상. 동물 농장의 세상은 그래서 답답하고 기계적이며,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이다.
그 결과 나타나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와 몽매한 프롤레타리아를 뜻하는 말(馬) 복서의 슬로건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라는 획일적, 전제적 사회가 등장한다. 이쯤 되면 계급 혁명의 이상은 사라진다. 새로운 착취 계급의 등장에 불과한 쇼로 사회주의 혁명은 전락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전락하는가 통탄하며 동물농장을 집필한다.
풍자의 미학으로 가득찬 이 소설은 앞으로도 계속 읽혀질 가능성을 곳곳에 가득 담고 있다. 당장 떠오르는 예만 들어도 분단 현실에서 남과 북의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를 읽어갈 때 우리는 동물 농장의 갈피갈피를 되새기며 쓴 웃음과 함께 오웰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고개를 흔들게 될 것이다. 당장 위대한 수령의 아드님으로 추앙되는 '지도자 동지'와 아버지가 대통령이라고 정도를 벗어났던 전직 대통령 아들의 일은 분단 현실의 슬픈 코메디 아니었던가. 특히 북쪽의 정권 세습은 비판적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이 보았을 때 동물 농장의 후속편을 썼음직도 하다. 그래도 그 때가 나았나 봐요! 미스터 오웰! (이밖에도 스퀼러의 행동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언론 조작, 민중 세뇌... , 존스가 다시 온다면서 모든 모순과 부조리를 은폐하는 행태 등은 어쩌면 그리 우리의 경우에도 잘 들어 맞는지... )
동물농장을 읽다 보면 인간 삶의 현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리고 적확하게 묘파된 것 같아 섬찟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다시 중얼거리게 된다. 조지 오웰, 대단하군요. 몇 마리의 동물들로 인간 삶을 이토록 우화적으로 풍자하다니!
덧붙이는 말:
혁명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민중이 깨어있지 않으면 그 혁명의 정신을 지속시킨다는 것이 어렵다. 작품을 읽다 보면 돼지들에게 속고만 사는 동물들이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한데, 과연 민중이 살아 있으면 지도자들을 계속 감시, 비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것은 가능할까?
끝으로 놓치고 싶지 않은 등장 동물. 벤자민. 이 당나귀는 어느 쪽에도 속해 있지 않으면서 언제나 동물의 삶을 비관적으로 본다. 그러면서도 사태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 그렇지만 행동하지도 않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벤자민이 보여 주는 무관심과 자조적인 태도, 이는 우리 시대의 지식인의 모습과 같지 않은가. 지식인들이여, 당신들은 누구인가!
동물농장을 다시 뒤적이면서 현실과 비교해 보는 시간은 재미있다. 아, 그렇지! 그렇지! 역시 오웰이야! 그러나 그 재미는 슬픔과 탄식 위에 놓여 있기에 피하고 싶다. 어쩌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숙명이라 피할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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