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신의 아들 파에톤, 태양 수레를 몰다
by 송화은율태양신의 아들 파에톤, 태양 수레를 몰다
태양신의 아들 파에톤은 에파포스와 나이나 기질이 비슷하다. 어느 날 파에톤은, 족보를 자랑하는 에파포스에게 지기 싫어 자기도 포에부스의 아들이라는 자랑을 내어놓았다. 그러자 에파포스가 말했다.
「이 멍텅구리, 너는 네 어머니 말을 고스란히 믿는구나. 네 아버지도 아닌 분을 네 아버지라고 우기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파에톤은 얼굴을 붉혔다. 너무 부끄러워 차마 화를 내지 못한 파에톤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클뤼메네에게 말했다. 「어머니, 정말 견딜 수 없습니다. 저는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큰소리를 쳐놓고도 말대답을 못하고 왔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런 모욕을 당했다는 게 부끄럽고, 말대답을 할 수 없었다는 게 창피합니다. 어머니, 제가 만일 신의 아들이라면 신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그래야 태양신의 아들로서 천계에서도 제 권리를 누릴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한 파에톤은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고, 자신의 머리, 메로프스의 머리, 혼인을 앞둔 누이의 행복에 걸고, 친부가 누구인지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아들 파에톤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들에 대한 모욕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고 화가 나서 그랬는지, 어쨌든 클뤼메네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작열하는 태양을 우러러보며 이렇게 외쳤다.
「나를 내려다보고 계시고, 내 말을 듣고 계시는, 찬연히 빛나는 태양에 걸고 맹세하거니와, 너는 네가 우러러보고 있는 태양, 온 세상을 밝히는 태양의 아들이다. 만일에 내 말이 거짓이면 그분이 내 눈을 앗아가실 것인즉, 내가 세상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네 아버지를 찾아가거라 네가 네 아버지 처소로 가는 일은 어렵지도 않고, 그 길이 그리 먼 것도 아니다. 우리 땅의 지경, 그분이 솟아오르시는 곳, 그곳이 네 아버지이신 그분이 계시는 곳이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파에톤은 곧 길을 떠났다. 그의 가슴은 천계에 대한 생각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는 고향 아이티오피아 땅을 지나고, 작열하는 태양에서 가까운 힌두스 사람들의 땅을 지났다. 그리고는 아버지 태양이 솟아오르는 곳으로 다가갔다.
태양신의 궁전은 원주에 떠받친 채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원주는 휘황찬란한 황금과 불꽃 빛깔의 적동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지붕은 윤나게 갈아낸 상아였다. 궁전 정면의, 은으로 만든 두짝 문은 태양신의 빛을 찬연하게 되쏘고 있었다. 재료도 좋거니와 그 만든 솜씨는 재료보다 윗길이었다. 이 문에는 물키베르의 부조가 펼쳐져 있었다. 이 부조에는, 대지를 가슴 가득히 안은 바다, 대지 자체, 그리고 대지 위의 하늘이 새겨져 있었다. 바다에는 뿔고둥 나풀을 부는 트리톤, 둔갑의 도사인 프로테우스, 두 마리의 거대한 고래를 타고 그 등을 채찍으로 갈기는 아이가이온 같은 해신들이 있었다. 헤엄치는 네레이데스, 물고기를 타고 노는 네레이데스, 바위에 앉아 파란 머리카락을 말리는 네레이데스 등 각양각색의 네레이데스가 보였다. 이들의 얼굴이 똑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도성이 보였다. 숲과 짐승, 강과 전원의 요정과 정령들도 보였다. 이 위로 빛나는 하늘이, 오른쪽 문에 6궁, 왼쪽 문에 6궁, 이렇게 12궁을 상징하는 그림의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클뤼메네의 아들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 아버지의 궁전으로 들어갔다. 저 에파포스가 그토록 의심하여 마지않던 아버지의 궁전으로, 파에톤은 당당하게 들어갔다. 파에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마자 조금 떨어진 곳에 우뚝 섰다. 아버지 태양신은 보라색 용포를 입고 빛나는 에메랄드 보좌에 앉아 있었다. 보좌 좌우로는 <날>,<달>,<해>,<세대>, 그리고 <시(時)>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사철도 있었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있는 것은 <이른봄>, 가벼운 차림에 곡식 이삭관을 쓴 것은<여름>, 포도를 밟다가 나왔는지 발에 보라색 포도즙이 묻은 것은 <가을>, 백발을 흩날리고 있는 것은 <추운 겨울>이었다.
파에톤은 이 기이한 광경에 놀라 떨면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태양신은 시종들에게 둘러싸인 채 만물을 꿰뚫어 보는 눈으로 아들을 보면서 말했다.
「내 아들 파에톤아, 왜 여기에 왔느냐? 내 성채에서 무엇을 얻기를 바라느냐? 내가 너를 내 아들이라고 부른다. 너는 내 아들이다. 아비가 자식을 알아보지 못할 리 있겠느냐?」
파에톤이 대답했다.
「신이시여, 이 넓은 우주에 고루 빛을 나누어주시는 신이시여, 아버지 포에부스시여, 저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권리를 허락하신다면, 제 어머니 클뤼메네가 허물을 숨기려고 저에게 꾸며서 이르신 것이 아니라면 징표를 보여주소서.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 분명하다는 증거를 보이시어 제 마음에서 의혹의 안개가 걷히게 하소서.」
파에톤이 이렇게 말하자 태양신은 사방팔방 쏘던 빛을 잠시 거두고 가까이 다가오라고 말했다. 아들이 다가가자 태양신은 아들을 안고 말했다.
「너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네가 내 아들 아닐 리가 있겠느냐? 네 어머니 클뤼메네가 네 출생의 비밀을 제대로 일러주었다. 의혹의 안개를 걷고 싶거든 내게 네 소원을 하나 말하여라. 내가 이루어지게 하겠다. 신들이 기대어 맹세하는 강, 아직 내 눈으로는 보지 못한 강이 내 약속을 보증하리라.」
태양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파에톤은 아버지의 태양 수레를 단 하루만 빌려주면 다리에 날개 달린 말을 몰아 수레를 끌어보겠노라고 말했다. 그제야 아버지 태양신은, 스튁스에 맹세한 것을 후회했다. 세 번이나 그 빛나는 머리를 가로젓고는, 그가 말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내가 경솔하게 말했다는 것을 알겠다. 내가 어쩌다 이런 약속을 했을꼬. 무슨 까닭이냐? 잘 들어라. 이것만은 내가 이루어줄 수 없는 소원이구나. 바라노니 네가 취소하여라. 네가 말하는 소원은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하다. 네가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것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권리다. 네 힘, 네 나이로는 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때가 되면 죽을 팔자를 타고난 인간이다. 네가 소원하는 것은 필멸의 팔자를 타고난 인간에게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네 소원은 다른 신들에게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신들이 각기 저희 권능을 뽐내지만 이 수레를 몰수 있는 신은 오직 나뿐이다. 저 무서운 벼락을 던지시는 전능하신 올륌포스 지배자도 이 수레만은 몰지 못한다. 너도 알다시피 유피테르보다 권능이 나은 자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
태양 수레의 길머리는 하도 가팔라 아침에는 원기가 충천하는 듯한 내 말들도 오르는 데 애를 먹는다. 길을 여기에서 천공으로 아득히 솟는데, 여기에서 대지를 내려다보면 늘 지나다니는 나도 겁을 집어먹는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공포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이다. 막판에 이르면 길이 아래로 급경사를 이루는데 여기에서는 힘들여 고삐를 잡아야 한다. 물 속으로 나를 받아주시는 테튀스 여신께서도 혹 내가 거꾸로 떨어질까봐 가슴을 졸이신다고 한다. 뿐이냐? 천공은 엄청난 속도로, 잠시도 쉬지 않고 돈다. 그냥 도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박힌 별을 싸잡아 안고 도는 것이다. 여기에서, 궤도에서 떨어져나가지 않으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돌고 도는 천궁 저쪽으로 수레를 몰고 나갈 수 있는 자는 오직 나뿐이다. 내가 너에게 태양 수레를 빌려 주었다고 치자. 네가 장차 어쩌려느냐? 돌고 도는 천체 축에 휘말리는 걸 피할 수 있을 성싶으냐? 회전하는 천궁에 휩쓸리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올 성싶으냐?
너는, 하늘에도 신들의 숲, 신들의 도성, 신들의 사당이 있으리라고 생각할 게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복병과 무서운 괴수들 사이로 길을 찾아 빠져나가야 한다. 요행히 궤도를 제대로 잡아 여기에서 이탈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무서운 황소, 하이모니아 켄타우로스, 사자 이빨, 전갈의 으스스한 집게를 피해 갈 수 있을 성싶으냐? 한쪽에서는 전갈이 집게를 휘두르며 너를 공격할 게다. 뿐만이 아니다. 천마를 다루는 것도 너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천마는 저희 가슴에 불길을 간직하고 있다고 이를 코로 내뿜고 입으로 내뿜는다. 천마가 이 불길에 스스로 흥분하면 다루는 게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꾀가 나면 내가 고삐를 채는데도 이를 모르는체하고 애를 먹이는 게 바로 이 천마들이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냐? 이 아비가 어떻게 자식의 소원을 들어준답시고 자식 죽일 일을 시킬 수 있겠는냐? 그러니 지금,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다른 소원, 이보다 나은 소원을 말해 보아라. 너를 내 아들로 용인하는 징표를 보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보이마. 보아라, 자식의 안위가 위태로워질가봐 이렇듯이 속을 태우는 이 아비를 보아라. 이 아비의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주려무나, 아, 그러면 좀 좋으랴!
살펴보아라. 이 세상에는 이보다 귀한 것이 얼마든지 있다. 하늘, 바다, 어디에 있어도 좋다. 네가 바라는 것이면 무엇이든 내 너에게 주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어쩔 수가 없구 . 이것은 명예가 아니고 파멸의 씨앗이다. 네가 소원하는 것이 은혜가 아니고 파멸이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
네가 바라는 것이 정말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아직도 이렇게 조르고 있는 것이냐? 할 수 없구나, 네 소원대로 해보려무나, 내 이미 스튁스에 맹세했으니, 내가 무슨 수로 이 약속을 번복하겠느냐? 네가 이보다 조금만 더 지혜로웠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포에부스의 경고도 이것으로 끝이었다. 아버지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은 끝내 제 고집을 꺾지 않았다. 파에톤은 기어이 태양 수레를 몰아보겠다는 것이었다. 힘닿는 데까지 아들을 타이르다 지친 아버지는, 불카누스가 만든 수레 있는 곳으로 아들을 데려갔다. 이 태양 수레는 바퀴 굴대도 황금, 뼈대도 황금, 바퀴도 황금이었다. 바퀴살만 은이었다. 마부석에는 포에부스가 쏘는 빛을 반사할 감람석과 보석이 나란히 박혀 있었다.
파에톤이 벅찬 가슴을 안고 태양 수레를 만져보며 찬탄하고 있을 즈음, 붉게 동터오는 동녘에서는 새벽잠을 깬 아우로라가 장미꽃이 가득 핀 방의, 눈부시게 빛나는 방문을 활짝 열었다. 별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루키페르가 긴 별의 대열을 거느리고 천계의 제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태양신은 이 루키페르가 떠나는 것과, 하늘이 붉어지면서 이지러진 달빛이 여명에 무색해지는 것을 보고는 발빠른 호오라이에게 분부하여 천마를 끌고 나오게 했다. 호오라이들은 천장이 높은 마구간에서, 암브로시아를 배불리 먹은 천마를 끌어내어 마구를 채웠다. 천마들은 숨쉴때마다 불길을 토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에다, 불길에 그을리는 것을 예방하는 신고를 바르고 잘 문질러주고는, 아들의 머리에다 빛의 관을 씌워주었다. 아버지는, 이러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던지 자주자주 한숨을 쉬었다. 오래지 않아 자식에게 닥칠 재앙과 이로인한 자신의 슬픔을 예견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포에부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비의 말을 잘 듣고 마음에 새기도록 하여라. 되도록 채찍은 쓰지 말고 고삐는 힘껏 틀어잡도록 해야한다. 천마는 저희들이 요량해서 잘 달리 게다만 이들의 조급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천계의 다섯 권역을 곧장 가로질러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세히 보면 세 권역의 경계선 안으로 조금 휘어진 샛길이 있다. 이 길을 잡으면, 설한풍이 부는 극남 권역과 극북 권역을 피해 갈 수가 있다. 이 길로 들어서면 수레의 바퀴자국이 보일 게다. 하늘과 땅에 고루 따뜻한 빛을 나누어주려면 너무 높게 몰아서도 안 되고 너무 낮게 몰아서도 안 된다. 너무 높게 몰면 창궁에 불이 붙을 것이고 너무 낮게 몰면 대지를 그을리고 만다. 그 중간이 가장 안전하니 명심하여라. 오른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는 또아리 튼 뱀이 있다. 왼쪽으로 너무 치우쳐 바로 아래 있는 신들의 제단을 태워서도 안 된다. 이 사이를 조심해서 지나가도록 하여라. 내 이제 너를 포르투나의 손에 붙이고 포르투나가 너를 도와주기를, 네가 너를 돌보는 것 이상으로 자상하게 너를 돌보아주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구 . 서둘러라. 벌써 밤이 저 멀리 서쪽 해변이 이르렀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제 태양수레가 나타날 차례다. 아우로라가 어둠을 몰아내고 있지 않느냐? 자, 고삐를 힘있게 쥐어라. 혹 내 말을 듣고 네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느냐? 변했거든 천마의 고삐를 놓고 내 말을 따르거라. 따를 수 있을 때 따르거라. 네 발이 이 단단한 태양신궁의 바닥에 닿아 있을 때 내말을 따르거라. 미숙한 너에게 하늘로 오르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 네가 이 위험한 일을 해보겠다고 우기기는 한다만, 대지에 빛을 나누어주는 일은 나에게 맡기고 너는 그 빛을 누리기나 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그러나 파에톤은, 제 젊음과 제 힘만 믿고 태양 수레 위로 올라가 아버지가 건네주는 고삐를 받았다. 그리고는 마부석에 앉아 어려운 청을 들어준 아버지에게 예를 표했다.
태양 수레를 끄는 네 마리의 날개 달린 천마, 즉 퓌로이스, 에오우스, 아에톤, 그리고 플레곤은 불을 뿜어 주위의 대기를 뜨겁게 달구면서 발굽으로 가로장을 걷어찼다. 데튀스는 외손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는 줄도 알지 못하는 채 그 가로장을 치웠다. 그러자 네 마리 천마 앞으로 하늘이 펼쳐졌다. 네 마리 천마는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앞길을 막는 구름의 장막을 찢었다. 이들은 단숨에, 이 직역에서 이는 동풍을 저만치 앞질렀다.
그러나 네 마리의 천마는, 수레가 엄청나게 가벼워진 데 놀랐다. 멍에에 느껴지는 무게가 전에 비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볍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파에톤의 무게가 포에부스의 무게보다 훨씬 가벼웠으니 당연했다. 네 마리의 천마에게는 저희가 수레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짐이 가벼웠던 것이었다. 바닥짐 없는 배가 거친 파도에 휩쓸려 바다 위를 이리저리 떠다니듯이, 마부의 무게가 전 같지 못한 이 수레도 하늘을 누비며 흡사 빈 수레처럼 흔들렸다.
일이 이렇게 되자 천마는 익히 알던 궤도를 이탈하여 제멋대로 날뛰었다. 마부석에 앉은 파에톤은 기겁을 했지만 그에게는 고삐로 천마를 다스릴 재간이 없었다. 그에게는 어디가 어딘지 위치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설사 분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천마를 다스릴 수 없었으니 결국은 분간이 되나 되지 않으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그 차갑던 북두칠성이 난생 처음으로 태양 수레가 내뿜은 열기에 달아올라 금단의 바다로 뛰어들고자 했다. 북극권에 바싹 붙은 채 혹한의 하늘에 똬리 틀고 있어서 별로 위험한 존재로는 알려지지 않던 뱀자리가 그 열기에 똬리를 풀고 일찍이 볼수 없던 포악을 부리기 시작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목동이 놀라, 그 느린 걸음으로나마 도망치다가 쟁기에 걸려 쓰러졌다고도 한다. 이윽고 이 불운한 파에톤은 아득히 높은 하늘에서 대지를, 아득히 먼 하계에 펼쳐진 대지를 보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의 무릎은 갑자기 엄습한 공포에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강렬한 태양의 빛줄기 때문에 눈을 뜨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제야 파에톤은 아버지의 천마에 손을 댄 것을 후회했다. 친부를 찾아내고, 그 친부로부터 소원성취의 약속을 받아낸 것 자체를 후회했다. 그는 메르프스의 의자로 평범하게 살 것을 그랬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수레에 실린 채 지향 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키도 쓸모없고, 밧줄도 하릴없어서, 신들의 자비에 몸음 맡기고 기도에 희망을 건 채, 북풍에 운명을 맡긴 소나무 쪽배의 사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손을 쓸 수도 없었고 손을 쓸 여지도 없었다. 온 거리가 적지 않았으나 가야 할 길은 이보다 훨씬 더 멀었다. 그는 도저히 이를 가망이 없을 듯한 서쪽 하늘과, 두고 온 동쪽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그 거리를 마음속으로 가늠해 보았다. 갈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고삐를 놓을 수도 없고, 고삐를 잡고 있을 힘도 없었다. 천마의 이름조차 잊어버린 판국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천계의 도처에서 출몰하는 거대한 괴물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그를 견디 수 없게 했다. 실제로 천계에는, 전갈이 두 개의 집게발로 두 궁의 자를 싸안 듯이 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파에톤은, 무시무시한 독을 품은 전갈이 꼬부랑한 독침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자 그만 기겁을 하고 고삐를 놓치고 말았다. 고삐는 그의 손에서 천마의 잔등으로 떨어졌다 이것을 채찍질로 안 천마는 궤도를 벗어나 질풍같이 내달았다. 이제 천마를 다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네 마리 천마는 생면부지의 공간을 누비며 그때까지 달려온 것만 가늠해서 그저 진동한동 달리기만 했다. 높디높은 창궁의 별 쪽으로 달려가는가 하면, 길도 없는 곳으로 수레를 끌고 가기도 했고, 창궁에 닿을 듯이 솟구치는가 하면 갑자기 대지의 사면에 닿을 만큼 고도를 뚝 떨어뜨리기도 했다. 달은 오라비의 수레가 자기보다 낮게 날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깜짝 놀라 낯빛을 바꾸었다. 구름에서는 연기가 올랐다. 대지는 높은 곳부터 불길에 휩싸였다. 습기가 마르자 대지가 여기저기 터지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푸른 풀밭은 잿빛 벌판으로 화했다. 나무, 풀 같은 것들은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다익은 곡식은 대지의 파멸을 재촉하는 화변의 불쏘시개 같았다. 그러나 이런 피해는 다른 것에 비하면 그대로 한찮은 피해였다. 거대한 성읍의 벽이 무너져내렸고 인간이 모듬살이를 하던 수많은 마을과 함께 나라가 잿더미로 변했다. 산의 수목도 불길에 휩싸였다. 아토스 산도 불덩어리로 화했다. 물 좋기로 소문난 길리기아의 타우로스 산, 트몰로스 산, 오이타 산, 이다 산에도 불이 붙었다. 후일 오르페우스와 인연을 맺게 되는 하이모스 산의 운명도 마찬가지엿다. 아이트나 산에서는 두 개의 불기둥이 솟아 하늘을 찔렀고 파르나소스 산의 쌍봉과, 에토스 산, 킨토스 산에도 불이 붙었다. 그 추운 스퀴티아 지방도 무사하지 못했고, 카우카소스도 불길에 휩싸였는데 오싸 산, 핀도스 산이 무살할 리 없었다. 이보다 훨씬 높은 올륌포스 산, 하늘을 지를 듯하던 알페스 산, 구름 모자를 쓰고 있던 아펜니노스 산도 불길에 휩싸였다.
파에톤은 불바다가 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열기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그의 숨결도 풀무에서 나온 공기처럼 뜨거웠다. 수레는 빨갛게 달아오른 것 같았다. 열기와 함게 올라온 재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똥도 그를 괴롭혔다. 뜨거운 연기로 주위가 칠흑 어둠이라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발 빠른 천마가 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티오피아 사람들 피부가 새까맣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열기 때문에 피가 살갗으로 몰려서 그렇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리뷔아가 사막이 된 것도 이때였고, 열기가 물을 말려버리자 물의 요정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샘과 호수 없어진 것을 애통해한 것도 이때였다고 한다. 보이오티아 땅이 디르케 샘을, 라르고 땅이 아뮈모네 샘을, 에퓌레 땅이 퓌레네 샘을 잃은 것도 바로 이때였다.
샘이 말랐는데 트인 물길을 흘던 강이 온전했을 리 없다. 강의 신 타나이스는 물 속 깊은 곳에서 진땀을 흘렸다. 연로한 페네이오스, 뮈시아의 카이코스, 흐름이 급하기로 소문난 이스메노스도 그런 고초를 겪었다. 아르카디아의 에뤼만토스 강, 후일 불길에 또 한번 마르는 크산토스 강도 이런 고통을 면하지 못했다. 누런 뤼코르마스 강, 꾸불꾸불 흐르는 마이안드로스 강, 트라키아의 멜라스 강, 스파르타의 에우로타스 강, 바뷔로니아의 에우프라테스 강, 오론테스 강, 흐름이 빠른 테르모돈 강, 강게스 강, 파시스 강, 히스테르 강도 변을 당했다. 알페이오스 강은 끓었고, 스페르케오스 강은 그 둑이 불바다로 변했다. 타고스 강 바닥의 금싸라기는 불길에 녹았고 노랫소리로 마오니아 강을 이름난 강으로 만들던 이 강의 새들은 퀴스트로스 호수로 뛰어들었으나 끝내 살아남지는 못했다. 네일로스 강은 기겁을 하고 땅끝까지 도망쳐 땅 속에다 그 머리를 처박았다. 네일로스 강 원류가 어디인지 모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쨌든, 당시의 네일로스 강 일곱 하구에서는 먼지가 일었고 물길에도 물은 없었다. 이스마로스 강, 헤브로스 강, 스트뤼몬 강, 헤스페리아 강, 레누스 강, 파오스 강, 강들의 지배자 자리를 약속받은 튀브리스 강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못했다.
대지가 곳곳에서 입을 벌리자 햇빛이 그 틈으로 타르타로스까지 비쳐드는 바람에 명왕과 왕비는 기겁을 했다. 바다가 마르자 바다였던 곳에 넓은 사막이 나타났다. 물 속 깊이 잠겨 있던 신들이 드러나자 퀴클라데스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물고기는 바다의 바닥으로 내려갔고 돌고래는 물 위로 솟구치지 못하고 수면에 등을 대고 가만히 떠다녔다. 해표의 시체가 뒤집힌 채 무시로 물결 위로 떠올랐다. 전해지기로는, 네레우스와 도리스 부부와 딸들은 바다 속의 동굴에 숨어서도 열기 때문에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바다의 지배자 넵투누스는 세 번이나 물 밖으로 팔을 내밀어보려고 하다가 세 번 다 너무 뜨거워 팔을 거두어들였다고 한다. 대지의 여신은, 물이 자기 발밑으로 흘러와 고이는 것을 자주 보았다. 바다의 물, 샘의 물이 열기를 피해 대지의 품안으로 스며들어와 잔뜩 몸을 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지의 여신은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는 잿더미 위로 고개를 들었다. 대지의 여신이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부르르 떨자 만물이 모두 부르르 떨었다. 여신은 머리를 조금 낮추고 위엄 있는 음성, 노기 띤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이것이 운명의 여신이 정한 길이고, 내가 이 같은 파멸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 죄를 지었다면, 전능하신 유피테르 신이여, 왜 벼락으로 나를 치지 않고 이토록 욕을 보이십니까? 불로써 나를 치시려거든, 전능하신 유피테르 신이여, 당신의 불로 치세요. 같은 파멸의 불이라도 당신이 내리는 파멸의 불이 차라리 견디기 쉽겠습니다. 아, 몸이 타는 듯하여 이 말씀 드리기도 힘이 듭니다.」
지상의 열기가 여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여신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을린 이 머리카락을 보세요. 이 눈, 이 그을음을 보세요. 이 땅을 풍요롭게 하고 당신을 섬겨온 나에게 내리는 상, 나에게 베푸는 은혜가 겨우 이것입니까? 괭이에 긁히고 보습에 찢기면서까지 참아온 보람이 이것입니까? 한해 내내 마음놓고 쉬어보지도 못한 나를 이렇게 대접합니까? 육축에게 나뭇잎과 부드러운 풀을 대어주고 인간에게는 곡물을 베풀고, 신들을 위해서는 향나무를 기른 나를 이렇듯이 대접합니까?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고 칩시다. 하면 저 물을 다스리는 신, 당신의 형제는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당신의 형제가 다스리는 물이 왜 바다를 등지고 땅 밑으로 움츠러든 답니까? 내가 말해도 소용없고 당신의 형제가 말해도 소용없다면 당신이 사는 천궁을 걱정하세요. 둘러보세요. 남극권과 북극권에서 뜨거운 연기가 오릅니다. 이 불길을 잡지 않으면 다음으로 무너질 것은 당신의 신궁입니다. 보세요. 어깨로 떠받치고 있는 하늘 축을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듯이 아틀라스가 괴로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지와 바다와 천궁이 무너져 내린다면 우리는 옛날의 카오스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만이라도 이 겁화에서 건지세요. 우주의 안위를 생각하세요.」
이 말을 마치자 대지의 여신은, 땅 위의 열기를 도저히 더는 견딜 수 없었던지 땅 속으로 들어가 저승 가까운 곳에 있는 동굴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신들의 전능한 아버지 유피테르는, 자기가 손을 쓰지 않으면 천지 만물이 비참한 지경을 당할 것으로 생각하고는 서둘러 신들의 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는, 파에톤에게 태양 수레를 맡긴 태양신도 나왔다. 유피테르는 춘궁 꼭대기에는 대지 위에다 펼 구름도, 대지에다 쏟을 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벼락을 하나 집어, 오른쪽 귀 위까지 들어올렸다가 태양 수레의 마부석을 향해 힘껏 던졌다. 벼락 하나에 파에톤은 수레를, 그리고 이승을 하직했다. 파테톤 자신이 불덩어리가 됨으로써 우주의 불길을 잡은 것이다.
천마는 벼락소리에 몹시 놀라 길길이 뛰다가 멍에에서 풀려나고 고삐에서 풀려나 뿔뿔이 흩어졌다. 마구와 수레의 바퀴, 굴대, 뼈대, 바퀴살 파편이 사방으로 날았다.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가는 파편도 있었다. 파에톤은 금발을 태우는 불길에 휩싸인 채 연기로 된 긴 꼬리를 끌면서 거꾸로 떨어졌다. 별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가 보았으면 마른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을 여겼을 터였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에리다노스 강이 벼락의 불길에 그을릴 그의 시신을 받아주었다. 헤스페리아의 요정들은 그을린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고 비석을 세웠는데, 비석의 명문은 이러하다.
아버지의 수레를 몰던 파에톤, 여기에 잠들다. 힘이야 모자랐으나 그 뜻만은 가상하지 아니한가.
헤스페리아의 요정들이 파에톤을 후히 장사지내 준 것은 파에톤의 아버지인 태양신이 얼굴을 가린 채 숨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날 하루만은 태양이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타오르던 불길이 세상을 비추었더란다. 세상을 태우던 불길이 하루만이나마 세상을 비추었다는 이야기가 묘하다. 그런고 보면, 재앙이라고 해서 반드시 유익한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모양이다.
심화 자료
물키베르 : 그리스 신화의 헤파이토스에 해당하는 불카누스의 별명. '불막이'라는 뜻
아이가이온 : 에게 해의 여신
네레이데스 : 해신 네레우스의 딸들
내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강 : 저승을 돌며 흐르는 스틕스 강
올륌포스 지배자 : 유피테르
테튀스 여신 : 바다의 여신
무서운 황소 : 즉 황소 자리. 이하 12궁 별자리를 지칭한다.
불카누스 : 그리스어로는 헤파이토스. 올륌포스 천궁의 대장장이 신
아우로라 : 새벽이라는 뜻. 새벽의 여신
루키페르 : 금성. '빛을 부르는 자'라는 뜻
호오라이 : '때'의 여신들
암브로시아 : '신식'. 혹은 불로초
뱀 : 뱀자리 성좌
포르투나 : 튀케. 행운의 여신
아우로라 : 에오스. '새벽'
테튀스 : 바다의 여신. 파에톤의 어머니 클뤼메네는 이 여신의 딸이다.
목동 : 목동자리
전갈 : 전갈자리
집게발로 두 궁의 자리를 싸안 듯이 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 옛날에는 천칭자리를 전갈자리의 일부로 보았음.
오라비의 수레 : 달의 여신과 태양신은 쌍둥이 남매간이다.
무사이 : 뮤즈, 예능의 여신들
아이트나 산 : 활화산으로 유명한 산
카오카소스 : 코카서스
알페스 : 알프스
아펜니노스 : 아페닌
타나이스 : 돈 강
크산토스 : 뒷날의 트로이아 전쟁 때 이 강은 불카누스에 의해 또 한번 마르는 변을 당한다.
바뷜로니아 : 바빌로니아
에우프라테스 : 유프라테스
강게스 : 갠지스
히스테르 : 다뉴브
네일로스 : 나일
레누스 : 라인강
파도스 : 포 강
튀브리스 : 티베리스
타르타로스 : 무한 지옥. 여기서는 저승땅이라는 뜻
아틀라스 : 그리스 신화의 거인신으로 이아페토스와 클리메네의 아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의 형제이며 티탄신족(神族)의 한 사람이다. 그 일족이 제우스와 싸워 패하자, 천계를 어지럽혔다는 죄로 어깨로 천공(天空)을 떠받치는 벌을 받게 되었다. 페르세우스가 괴물 고르곤을 퇴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를 찾아가 잠자리를 청하였다가 거절당하자, 화가 나 고르곤의 죽은 머리를 내보였는데 그것을 본 아틀라스는 놀라서 돌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아틀라스산맥이라고 하는데, 대서양(Atlantic Ocean:아틀라스의 바다)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는 하늘이 왜 떨어지지 않느냐는 의문에 대한 해석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높은 산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고대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또 영웅 헤라클레스가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구하러 갔을 때 아틀라스가 그에게 사과를 따다 주었는데, 그 동안에 헤라클레스가 대신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들로는 헤스페로스와 히아스가 있고, 헤스페리데스는 그의 딸들이라고 한다. 근세에 와서 만들어진 지도책에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그의 그림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아틀라스는 ‘지도서(地圖書)’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에리다노스 : 대양신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의 아들 에리다노스가 다스리는 세계의 먼 서쪽에 있는 것으로 믿어지던 큰 강. 에리다노스와 클뤼메네가 남매간이니까 이 에리다노스는 파에톤의 외숙이 되는 셈이다.
헤스페리아 : 저녁의 나라. 즉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가리킨다.
태양
Ⅰ. 어원
‘태양’은 해를 가리키는 한자어이다. 본래 해를 본뜬 한자는 ‘일(日)’이다. 천지 만물의 근본을 이루는 음양(陰陽) 중에서 ‘양(陽)’의 정수(精髓)를 해[日]로 생각하여 ‘태양’이라 일컬었다. ‘해’는 한자어 태양에 대한 고유어이다. <陳泰夏>
Ⅱ. 신화
[태초의 혼돈] 무속 신화 천지왕 본풀이에서는 태초의 혼돈 상태 때에 2개의 태양이 있었다. 이 두 태양의 열의 과잉 공급으로 사람이 타 죽게 되어, 하늘의 천지왕은 아들에게 명하여 1개를 없애 버렸다. 이로써 인간계는 질서 있게 정리되어 번성했는데, 나라와 고을, 마을로 갈리어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함경 남도 지역에서 채록된 서사 무가 창세가(創世歌)에도 이와 같은 2개의 태양이 뜨는데, 여기서는 미륵님이 혼돈을 정리했다. 두 무속 신화의 공통된 주제는, 태초의 혼돈을 정리하고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근원적 해석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2개의 태양은 태초의 혼돈을 상징한다.
[천제자, 국조, 신성함] 개국 신화에서의 태양은 현대인이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불덩이 형태가 아닌 알[卵]이나 일광(日光) 등으로 나타나며, 하느님 또는 그 아들[天帝子]이나 국조(國祖)를 상징한다. 이 같은 선인들의 의식에 내재하는 천제자로서의 태양 묘사가 단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이다. 해모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처음 하늘에서 내려올 때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왔다. 그를 따르는 100여인은 모두 흰 고니를 탔으며, 채운(彩雲)이 위로 뜨고, 음악 소리가 구름 속에서 울렸다. 웅심산(熊心山)에 머무르며 10여 일이 지나 내려오는데, 머리에는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龍光劍)을 찼다. 그리고 아침에는 인간 세상에서 살고, 저녁에는 천궁(天宮)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해모수의 오룡거, 오우관, 용광검 등은 모두 태양이나 일광의 변형된 상징이다. 아침과 저녁의 거처가 다르다는 그의 거동 역시 하루 동안의 태양 운행을 상징하고 있다. 광개토 대왕의 비문에는 고구려의 시조 추모(鄒牟), 곧 주몽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다. ‘모두루묘지(牟豆婁墓誌)’에도 그가 일월(日月)의 아들이라 하니, 일월의 ‘월(月)’은 자수를 맞추기 위한 허자(虛字)에 불과하므로 곧 태양의 아들이다. 이것은 중국의 사료인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에도 주몽이 햇빛의 작용으로 잉태했다 하고, 논형(論衡), 후한서(後漢書) 등에도 유사한 뜻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권] 태양의 화신인 군왕에 관한 것은 주몽뿐만 아니라, 신라의 박혁거세(朴赫居世)와 김알지, 가락국의 김수로왕의 탄생에서도 나타난다. 혁거세가 태어날 때에는 하늘에서 땅으로 전광(電光)과 같은 빛이 수직으로 내려왔으며, 그 곳에 알이 하나 있었다. 이 알에서 나온 이가 바로 혁거세이며, 동천(東泉)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는 광채가 나고, 일월도 청명(淸明)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赫居世’란, “빛과 밝음으로 세상을 다스린다[光明理世].”는 뜻이다. 김알지는 금빛 찬란한 궤에서 태어났고, 김수로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금합자에 든 알에서 태어났다. 이것으로 보아, 신화에서는 왕이 곧 태양이었고, 왕도 스스로 태양의 아들이라 하여 절대적 권능과 신성함을 나타내었다. 이 밖에, 태양에 관한 설화로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하는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태양과 달의 정(精)인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신라에서는 빛을 잃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이름에 나타나는 까마귀 오(烏)는 바로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조(三足鳥)임을 알 수 있다.<曺喜雄>
Ⅲ. 무속·민속
[기복신] 동해안 별신굿 절차에 일명 세존(世尊)굿이라고 하는 ‘일월맞이굿’이 있다. 이것은 별신굿 진행에서 둘째 번에 행해지는데, “해 돋아 일월맞이, 달 돋아 월광맞이굿을 올린다.”는 사설로 시작하여 만사 형통의 축원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일월맞이굿을 달리 세존굿, 중굿이라 하는 이유는 일신(日神)이나 월신(月神), 세존이 모두 천상에서 내려온 신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근원은 청배 무가(請拜巫歌)로 부르는 당금애기 풀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당금애기가 태몽을 꾸는데, “한짝 어깨에는 해가 돋구, 한짝 어깨에는 달이 돋구, 하늘의 별 세 낱이 입으로 들어가구.” 한 것이 삼형제로 태어나며, 이들이 훗날 ‘삼제석(三帝釋)’이 된다. 이것은 풍습에서의 꿈풀이와도 연관된다. 또, 황해도의 무속에서도 이러한 일월맞이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일월대를 세운다. 이 일월대는 큰 소나무에 일월과 칠성의 무늬가 있는 일월명두(日月明斗)를 달고, 옥황선녀를 위한 치마 저고리와 일월성신을 위한 도포를 매단다. 그리고 “해는 따다 일월명두, 달은 따다 소슬명두.”로 사설을 시작하여 자손 만대의 부귀 영화를 축원한다. 이 같은 굿의 내용으로 보아, 우리의 무속에서는 태양이 신으로서 인간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기복의 상징적 대상이었음을 알게 한다. 민간의 주술적 치료 방법에서, 아이들이 눈에 삼이 들었을 때,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曺喜雄>
Ⅳ. 풍습
[아들] 무속 신앙을 저변에 깔고 민간에 전래되는 꿈풀이법에는 태양이 남성을, 달이 여성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즉, 꿈에 태양을 삼키거나 달과 합쳐지는 것을 보면 아들을 낳고, 해와 달이 한꺼번에 방 안에 드는 꿈은 귀한 아들을 낳을 징조라 하였다. 반대로, 태양과 달이 떨어지는 꿈은 부모에게 근심이 생긴다고 하여 근신하였다.
[서조] 태양을 보는 꿈은 좋은 일이 있음을 예고하는 서조(瑞兆)로 믿었다. 꿈에 태양이 뜨고 구름이 걷히면 좋은 일이 있을 길조이고, 햇빛이 집 안을 비추면 귀인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태양이 단독적으로 등장하는 것보다는 달과 결합되면 그 의미가 강해진다. 일월이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꿈은 벼슬을 얻고, 일월이 처음 나오는 것을 보면 집안이 번성한다고 하였다. 또, 해와 달을 등에 지거나 가슴에 안거나, 보고서 절을 하는 꿈은 대길한 것으로 여겼다. 속담에서도 서조에 비견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아, “9년 장마에 해 돋는다.”라든지, “구름이 지나면 해가 뜬다.”는 말이 있다.
[청춘, 진리] 태양은 청춘을 상징한다. “해가 서산에 기운다.”는 말은 사람이 늙어 죽을 때가 되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줄로 해를 잡아맨다.”는 말은 늙어 가는 청춘을 아쉬워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속담은 세상의 이치가 뒤바뀐다는 뜻이니, 이 때의 태양은 진리를 상징한다 하겠다.<曺喜雄>
Ⅴ. 종교
[유교: 충과 효] 유교에서는 태양을 임금, 부모, 남편에 비긴다.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불사이군(不事二君)’, ‘불경이부(不更二夫)’와 통하는 것으로서, “하늘에는 해가 둘이 없고, 사람에게는 아버지가 둘이 없듯이, 신하에게는 임금이 둘이어서는 안 된다.”는 신조가 있다. 이는 태양을 임금과 부모에 비겨 동격으로 생각한 충효(忠孝) 사상의 발로이다.
[불교: 진리, 광명] 불경에서는 “사막의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의 불꽃은 오묘한 진리와 지혜와 같아 잡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 태양의 형상을 조형(造形)으로 재구성해 나타내었는데, 불상의 광배(光背)가 대표적이다. 이 광배는 사바세계를 비추는 부처의 진리와 광명을 상징한다.<崔來沃>
Ⅵ. 동양문화
[국가의 영원함] 우리 나라의 태극기는 태양을 바탕으로 한 원과 음양의 이분법적 조화로 형성되어 있고, 중화 민국의 청천백일 만지홍기(淸天白日滿地紅旗)와 일본의 일장기(日章旗)는 태양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청천백일 만지홍기의 백일은 하늘 한가운데에서 빛나는 태양을 상징하여 스스로 중화(中華)라 하였고, 일본도 태양의 제국이라 했다. 이렇게 한·중·일의 기에 나타난 태양은 “조국은 태양과 같이 빛나고 영원하다.”는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
[중국: 세발까마귀] 중국의 신화에서 태양은 황금색 세발까마귀[三足烏]로 나타난다. 그래서 태양을 양오(陽烏, 暘烏)라고도 한다. 옛날 하늘에는 10개의 태양이 떠 있어서 작열하는 열기로 사람이 타 죽었다. 그 때 예가 나타나, 흰색의 화살을 시위에 재어 태양을 향해 쏘자, 불덩이가 폭발하여 땅에 떨어졌다. 사람들이 달려가 보니, 그것은 화살에 맞아 죽은 거대한 황금색 세발까마귀, 즉 태양의 화신이었다. 이렇게 해서 하늘에는 1개의 태양만 남게 되었다.
[남편] 황도(黃道)의 해석에 의하면, 해는 남편과 연계되고, 달은 아내와 연계된다. 일식은 황제가 가려진 것을 상징하는데, 그가 황후의 영향을 너무 받는 것으로 풀이된다. 월식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에 생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본: 광명] 일본의 ‘고지키(古事記)’에는 일신(日神)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가 천신 이자나기 노미코토의 왼쪽 눈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그는 동생 스사노 오노미코토 때문에 화가 나, 하늘의 바위 굴[天石窟] 속에 들어가 문을 걸어 닫고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온 세상이 캄캄해지고, 낮과 밤이 바뀌는 줄도 모르게 되어 혼란해졌다. 이에 하늘의 80만 신이 숙의 끝에 수탉들을 모아 울게 해 그가 다시 세상에 나오게 했다. 이로써 온 세상은 다시 빛으로 충만하게 되었다고 한다.<崔來沃>
Ⅶ. 역사·문학
[임금] 태양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시가에 나타난다.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서산에 해 지다 하니 눈물 겨워하노라.<조식> 월출산이 높더니마는 미운 것이 안개로다./천왕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었다./두어라, 해 퍼진 후면 안개 아니 거두랴. <윤선도> 여기서 볕뉘, 해, 월출산 등은 임금이나 임금의 은혜[聖聰]를, 구름, 안개는 간신배를 상징한다. 태양이 유일무이한 존재로 높은 곳에서 따뜻한 빛을 온 세상에 보내듯이, 임금도 그러한 상징체로 생각했다.
[풍요, 자애] 태양은 임금이라는 도식적인 상징이 현대 문학으로 오면서 보편적 관념이나 개인의 심상에 비추어 노래되었다. 해는 모든 것에게 젖을 주었나 보다./동무여, 보아라./우리의 앞뒤로 있는 모든 것이/햇살의 가닥 가닥을 잡고 빨지 않느냐. <이상화, 비 갠 아침>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여기 피비린 옥루(玉樓)를 헐고,/따사한 햇살에 익어 가는/초가 삼간을 나는 짓자. <조지훈, 흙을 만지며> 이상화는 태양이 주는 풍요와 자양분을, 김영랑은 봄 햇살의 다정함을, 조지훈은 햇살 속의 휴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태양은 만물을 생육하는 어머니의 품이며, 그 품에서 만물은 영글어 가고 휴식을 취한다. 햇살의 자애는 결코 편벽되거나 조급하지 않다.
[영원성, 광명, 역동성] 태양은 태고의 영원과 함께 오랜 어둠을 물리쳐 깨뜨리는 희망으로서 존재한다. 머언 태고 적부터 훈풍을 안고 내려온/황금가루 화분(花粉)은 분분히 이글거리던 그 태양이로다.쬤처음 꽃이 생겼을 때,/서로 부르며 가리켜 조화(造化)를 찬탄하던/그 아름다운 감동과 면면(綿綿)한 친애를 아느뇨.<유치환, 오오랜 태양>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박두진, 해>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박두진, 묘지송> 동천이 불그레하다. 해가 뜬다. 시뻘건 욱일(旭日)이 불쑥 솟았다. 물결이 가물가물 만경창파(萬頃蒼波)엔 다홍 물감이 끓어 용솟음친다. 장(壯)인지 쾌(快)인지 무어라 형용하여 말할 수 없다. <박종화, 청산 백운첩(靑山白雲帖)> 유치환은 태고의 창조와 유구한 역사의 증인이던 태양을, 박두진은 억압과 탄압의 세월 속에서 다시 살아 숨쉬는 광명을, 박종화는 솟아오르는 태양의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다.
[좌절, 상실]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해지면서 나가 버린다.<이상, 날개> 날이 저문다./먼 곳에서 빈 뜰이 넘어진다./무한천공(無限天空) 바람 겹겹이/사람은 혼자 펄럭이고,/조금씩 파도치는 거리의 집들/끝까지 남아 있는 햇빛 하나가/어딜까 어딜까, 도시를 끌고 간다. <강은교, 자전(自轉) Ⅰ> 태양은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은 소실을 뜻하며, 좌절과 상실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상과 강은교의 경우는 이것이 두드러지게 형상화된 예이다.<曺喜雄>
Ⅷ. 현대·서양
[멀고도 영원한 사랑]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에게는 안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정사를 헤파이스토스에게 일러바친 것도, 데메테르에게 그녀의 딸을 납치한 포세이돈을 일러바친 것도 그였다. 그 복수로 아프로디테는 헬리오스로 하여금 바빌론왕의 딸 레우코테아에게 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레우코테아의 언니 클리티에는 그보다 앞서 헬리오스의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를 억울하게 여긴 클리티에는 아버지에게 고자질하여 동생을 죽게 만들었다. 헬리오스는 죽은 레우코테아를 향나무로 변신시켰다. 대신에 클리티에는 헬리오스의 사랑이 완전히 식은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발가벗은 채 쓸쓸한 들판에 누워 9일간을 이슬과 눈물로 목을 축이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마침내 몸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혈색은 빠지고, 사지는 변하여 광채 없는 나무 줄기가 되고, 머리는 아름다운 꽃송이로 변하여 그리운 헬리오스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 꽃이 해바라기이다.
[이상적 남성] 아폴로는 완벽한 남성미를 갖춘, 그리스`인들의 이상적 청년신이었다. 그의 명철과 예지를 높이 산 그리스`인들은 아폴로를 태양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는 젊음과 힘과 예능을 한몸에 지닌 궁술, 의료, 음악, 시, 예언의 신이기도 했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그의 아들이고,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자손이라 한다. 그리스 조각에서는 늠름하고 명랑한 나체의 청년으로서, 은(銀)으로 만든 활과 화살통을 메고 있거나 황금 리라를 들고 있다. 그의 성조(聖鳥)는 백조이고, 성수는 월계수이다. 그 유명한 델포이 신전은 그를 모신 곳으로, 이 신전에서 아폴로가 내린 신탁(神託)은 그리스인의 생활을 규정할 정도로 권위가 있었다.
[왕] 바빌론에서는 왕이 태양이었고, 잉카 제국과 이집트의 왕은 태양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왕은 머리에 햇빛의 관을 쓴 태양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유럽의 절대 왕정기에는 왕이 태양과 동격이었다. 그들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국가의 중심이었으며, 그의 위대함은 만방에 빛을 발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스스로 태양왕이라 불렀다. 이것은 천상의 태양이 하나이듯, 지상에는 프랑스 황제만이 유일하며, 여타의 유럽 국왕들은 한낱 주위를 맴도는 위성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창조, 신성, 영광, 질서, 자유 의지] 태양은 구약 성서에서 여호와의 창조 능력을 상징하고 있다. 또,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정의의 태양’이라 부른다. 그래서 성스러운 주일을 태양의 날(Sunday)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신과 신의 창조를 상징하는 태양은 신성, 권위,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회화에도 나타나,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 부처, 마호메트, 그리고 호머나 버질 같은 대시인을 그릴 때에는 태양의 변형인 후광을 몸에서 내비치게 하여 영광을 상징하였다. 태양은 만물을 비추고 세상의 운행을 다 알고 있다는 뜻에서 만능, 직관, 지혜, 진리도 상징한다. 또,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은 가장 규칙적이며, 예측할 수 있는 현상이므로, 절대의 신뢰와 불변의 우주 질서를 상징한다. 그리고 위대한 나그네, 고독한 탐험가, 자기의 길을 가는 자유 의지를 상징한다.
[생명의 원천, 권력 권화, 신의 눈] 태양 숭배가 가장 발달한 곳은 멕시코와 페루였다. 엘리아데(Eliade,M.)는 태양 숭배야말로 인간의 역사적 존재 양식의 발달과 병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생명을 주는 원천, 세계를 밝히는 빛으로서, 인간에게 신같이 보고 깨닫는 힘을 주고, 질서 의식을 찾아 주는 태양은, 같은 남성 원리인 정치 권력의 더없는 상징으로서 지금도 위력을 지니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 근대 프랑스에서 최고 권력의 권화는 태양 이미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특히, 현대 북한 정권의 ‘수령’ 부자의 이름에 태양[日]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부자를 호칭할 때에 태양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다. 피그미족과 부시맨에게 태양은 가장 위대한 신의 눈이다. 사모예드족은, 해는 좋은 눈으로, 악령과는 다른 눈으로 구별했다. 그러나 동서 사상계에 깊은 영향을 준 인도 고전 리그베다에서의 태양은 양의적인 존재이다. 생명의 충만과 검은 것,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표상했다. 태양이 말이나 뱀 등 장례식에 쓰이는 동물과도 관련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삼손, 헤라클레스, 지그프리트 같은 영웅의 죽음은 해의 돌연한 잠적과 관련지어졌다. 연금술에서는 태양이 정상으로 떠오르기까지의 고된 과정을 검은 원형 물질이 백열화하고 붉은색을 발하며, 마침내 황금이 되는 과정으로 상징화되었다. 보들레르는 그의 서한집에서 이러한 이미지를 바그너의 음악을 예찬하는 데 쓰고 있다.<李昌培>
Ⅸ. 도상
[삼족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일월상(日月象)이 그려져 있다. 태양 속에는 세발까마귀[三足烏]가 들어 있는데, 이 삼족오는 태양의 상징이다. [장생불사] 장생 불사를 상징하는 열 가지 물건 중에 태양이 들어 있다. 이 십장생 그림을 궁전이나 관청 건물에 표현한 까닭은 지상 최고 권좌의 상징으로서, 또 관리들에게 공명 정대한 행정을 펼 것을 촉구하는 뜻에서이다.<林永周> (동아대백과 사전에서)
참고 문헌 *김부식, 삼국사기. *일연, 삼국유사. *이규보 東國李相國集. *노사신, 東國輿地勝覽. *허웅, 龍飛御天歌, 정음사, 1955. *장덕순, 韓國文學史, 동화문화사, 1975. *현용준, 제주도 神話, 서문당, 1976. *한국의 굿9, 열화당, 1986. *구약 성서. *陳壽, 三國志. *范曄, 後漢書. *王充, 論衡. *袁珂 編著, 中國神話傳說詞典, 上海辭書出版社, 1985. *張健·鄭傳寅 主編, 中國民俗辭典, 民俗苑,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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