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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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루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곡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음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후략>

 


작가 : 김지하(1941)

시인. 목포 출생.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 졸업. 1969’, ‘황톳길’, ‘녹두꽃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그의 시는 억눌린 자, 못 가진 자의 한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정치사회적 모순에 대한 풍자와 비판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1975년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의 로터스(LOTUS)을 수상하고, 1981년 국제시인회의가 주는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위원회의 크라이스키인권상 등 수상.

 

작가 : 김지하는

본명은 김영일. 필명은 김지하(芝河). 194124일 전남 목포에서 출생해 1966년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633<목포문학>에 김지하(之夏)라는 이름으로 시 '저녁 이야기'를 발표한 이후, 196911<시인>지에 '황톳길', '', '녹두꽃' 등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등단했다.

 

64년 대일굴욕외교 반대 투쟁으로 첫 옥고를 치렀으며, 70<사상계>에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담시 '오적(五賊)'을 발표하고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같은 해 희곡 <나폴레옹 꼬냑>, <구리 이순신>을 집필했고, 대표적인 평론인 <풍자냐 자살이냐>를 발표했다. 12월에는 처녀시집 <황토>를 간행했다. 19724월 권력의 횡포와 민심의 방향을 그린 담시 '비어(蜚語)'를 발표해서 다시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된 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언도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복역후 1980년 석방되었다.

 

1960-70년대의 정치적, 사회 현실에 대한 그의 야유와 비판이 유발한 필화 사건은 그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함께 문명(文名)을 가져다 주었고, 문제의 시 '오적'은 정치적, 사회적 물의를 일단 제쳐놓는다면, 우리나라 고유의 판소리 형식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80년 이후 생명사상운동 전개했으며 98년 율려학회를 결성했다.

 

1999년에는 '지하'라는 필명에서 본명 '영일'로 돌아갈 것을 선언, 시집 <꽃과 그늘>에서는 '김영일 시집'으로 표기했다.

1975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상, 1981년 국제시인회의의 '위대한 시인상'을 수상했다.

 

김지하는 첫 시집 <황토>에서부터 서정 시집 <별 밭을 우러르며>에 이르기까지 서정시, 담시, 서사시, 대설, 희곡, 산문 등에 걸쳐 광범위한 문학 세계를 펼쳐왔고, 속에는 가톨릭, 동학, 증산, 화엄, , 미륵 사상 등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시는 대부분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시집인 <황토><타는 목마름으로> 등에서는 사회 현실에 대한 시인 자신의 울분이 서정적으로 그려졌음에 비해, 담시인 '오적', '비어' 등은 판소리 가락을 도입하고 난해한 한문을 차용해서 귄력층의 비리와 부정부패를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김지하에 대한 평론가들의 작업

김주연 : 김지하의 시적 상상력이 '죽음을 딛고 피어나는 원죄'라고 규정하고, 그의 시세계가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연결되는 역동적인 과정을 추적했다. 김지하의 시세계의 핵심적인 미적 요소는 마당극, 담시 등에서 보여주는 극적인 반전의 기법인 바, 이것이 결국 그의 시세계의 변모의 극단적 역동성을 추동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지적했다.

최동호 : 죽음이 삶으로 생성되는 순환적 인식을 밝혀내고, 이를 오늘날 우리 문학이 지향해야 할 '정신주의' 시의 한 표본으로 평가했다.

남진우 : 김지하는 강렬한 불의 이미지에 의해 추동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그의 시적 역정은 '불과 싸우고 불을 다스려 가는 과정'의 기록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구모룡 : 근대성에 대한 부정과 저항을 도모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역정이라고 파악했다.

임우기 : 김지하의 시의 특징적인 미적 요소를 '활동하는 무'의 시학으로 보았다.

정효구 : 김지하 문학은 생명사상의 형상화이다.

신덕룡 : 자아의 현상학이란 관점에서 그가 실존적 삶과 정신적 지향을 일치시키는 자기 고투를 통해 실존적 위기를 극복하고 무궁한 생명의 세계에 도달해가고 있다고 평했다.

 

시어 풀이

신 새벽 : 이른 새벽

호르락 : 호루라기

치떨리는 : 분노로 감정 상태가 격앙됨.

 

 

시구 풀이

신 새벽 뒷골목 : 생명이 탄생하는 시간으로서의 새벽의 신성한 이미지와 감추어지고 그늘진 공간으로서의 뒷골목의 이미지를 복합시킴으로써 민주주의가 압살된 어둠을 강조한 구절이다. , 희망적 이미지와 자유스럽지 못한 이미지가 대비된 표현으로 불 수 있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 내 기억 속에 민주주의인 네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는 뜻으로서 서정적 자아가 민주주의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토로하고 있는 표현이다.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 : 현실의 억압 때문에 잊고 있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기억을 갈망의 힘으로 끈질기게 되새긴다는 표현이다.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 :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바람직한 사회의 구현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는 표현이다.

푸르른 자유의 추억 : 민주주의 자유 시대에 대한 희망스런 기억. 자유 민주주의 실현 열망이 감각적으로 나타난 표현이다.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염원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시적 자아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탄식 소리 : 독재 정권과 이에 맞서 싸우는 민주 인사들의 쫓고 쫓기는 긴박한 모습이 소리를 통해 표현되었다. 독재 정권의 가혹한 탄압과 그로 인한 급박하고 불안하고 위태로운 시대적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민주주의 회복의 당위성을 재확인하는 구절이다.

서툰 솜씨로 / 쓴다. : 민주주의를 빼앗긴 지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에 민주주의라고 쓰는 일도 자연히 서투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구성의 분석

1 : 내 머리와 발길은 너를 잊은 지 오래지만 오직 한 가닥 목마른 기억이 있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2 : (1 연의 내용이 더 구체적인 진술로 확대되고 있을 뿐 기본적인 시상의 전개는 동일하다.) 아직 동트지 않은 신새벽의 뒷골목, 압제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우리들의 삶의 아픔, 그에 비례하여 커지는 너에 대한 그리움을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민주주의여.

3 : (역시 동일한 시상의 변주. 더욱 간결하지만 절절하다.) 목마른 그리움으로 너를 기다린다, 민주주의여 만세.

 

시상의 전개

이 시에서 시인은 자유 민주주의의 시대의 도래를 최고의 지향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1연에서는 밝은 곳에서 떳떳하게 민주주의를 부르지 못하는 시대 현실이 암시되어 있다. 오직 마음 속 갈망으로만 민주주의를 부르고 쓸 뿐이다.

2연에서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형상이 소리에 의해 구체화되고 있다. 서정적 자아의 가슴 속 깊이 억압의 상처가 스며드는 가운데 서정적 자아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더욱 심화된다.

3연에서는 가슴 속 강한 열망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서정적 자아의 모습이 역력히 드러난다. 특히 이 시는 프랑스의 시인 엘뤼아르의 자유라는 시와 내용과 표현에서 유사한 발상을 보인다.

 

 

< 감상의 길잡이 1 >

이 시는 1975년에 발표된 것으로 1970년대 중반, 이른바 ‘10월 유신(維新)’이라는 군사 독재 정권의 강압이 극에 달한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담아 노래한 작품이다. 무력으로 집권한 군사 독재 정권이 자신들의 영구 집권을 목표로 해서 단행한 10월 유신은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를 압살(壓殺)한 계기였다. 시인은 그와 같은 군사 독재 정권의 강압적인 통치에 맞서 민주주의의 회복을 부르짖어 왔고, 그로 인해 거듭되는 체포와 구금에 시달렸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시인은 또다시 체포, 구금되는 상황을 맞게 되고, 이 작품은 이른바 불온(不穩)한 작품으로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독재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은밀하게 읽혀졌고, 급기야는 노래로까지 만들어져 수많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심어 주었다.

 

이 시가 널리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우리의 불행한 정치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나, 그것이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이 시의 문학성 또한 시대적 효용성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는 자칫하면 추상적인 구호의 수준에 그치기 쉬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생경하고 공허한 구호의 수준에 그치지 맞고, 그것을 시인 자신의 개인적 서정으로 육화(肉化)시켜서 표현함으로써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가 1970년대 저항시의 정점(頂點)에 서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 감상의 길잡이 2 >

김지하 시인은 ‘6·3 사태’(1964) 당시 대일(對日) 굴욕 외교 반대 투쟁에 참가한 이후 1970년대를 온통 도피와 체포와 투옥을 거듭하며 살아왔다. 오로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만세를 부를 날을 애타게 염원하며 절규하듯 살아왔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엔 많은 말이나 수사보다도 그의 양심 선언의 한 구절을 읽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 19752<동아일보>에 발표된 고행 1974와 인혁당 사건에 관한 내외 신문 기자 회견 내용이 문제가 되어 재수감되었을 때, 정부에서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세웠는데, 그 때 김지하는 방대한 분량의 양심 선언을 하게 된다.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내가 요구하고 내가 쟁취하려고 싸우는 것은 철저한 민주주의, 철저한 말의 자유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이다. 내가 카톨릭 신자이며, 억압받는 한국 민중의 하나이며, 특권, 부패, 독재 권력을 철저히 증오하는 한 젊은이라는 사실 이외에 나 자신을 굳이 무슨 주의자로 규정하려고 한다면, 나는 이 대답밖에 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백성을 사랑하는 위정자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피와 시민의 칼을 두려워하는 권력을 바란다.”

 

 

< 감상의 길잡이 3 >

전체적으로는 3연으로 되어 있지만 동일한 진술 내용을 반복 변주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신새벽 뒷골목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 땅에 도래할 민주주의의 새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시간적 배경이 신새벽임으로 해서 화자가 기다리는 그 아침이 이제 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그 아침이 쉽게 주어지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뒷골목이라는 공간 설정과 타는 목마름으로 남몰래그 이름을 쓴다는 행위를 통하여 부각시키고 있다. 즉 민주주의의 새날은 서툰 솜씨로나마, 그러한 세상이 있고 또 우리도 얼마든지 그러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신념을 써서 알리고 전파하는 힘든 행위를 통해서 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3공화국이 자행했던 파행적인 억압 정치와 유례없는 인권의 유린 아래에서 그러한 상황을 세상에 알리고, 그럼으로써 당대를 살았던 많은 지식인 혹은 민중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데 많은 노력을 경주했던 시인의 열정이 뜨겁게 드러나 있는 시이다. 특히 문두드리는 소리, 비명소리, 신음 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가 환기(喚起)하는 치떨리는 분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숨죽여 흐느끼며나무판자에 쓴다라는 문자 행위의 차가움으로 치환시킴으로써 그러한 뜨거운 분노가 냉정한 반추(反芻)를 통해 표출되어야 하는 것임을 독자들에게 암시하는 어법이 특출하다. 70년대 이후 민주화의 과정에서 이 시인이 맡았던 역할을 웅변해주는 시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4 >

이 시는 70년대를 온통 수형(受刑) 생활로 보낸 시인이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유신 체제의 질식할 듯한 폭압 속에서 민주주의 회복의 열망을 온몸으로 절규함으로써 그를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우뚝 서게 한 이 시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신 새벽 뒷골목에 남 몰래 쓰는 시적 상황 속에 당시의 현실이 선명하게 집약되어 있다.

 

시인은 첫째 연에서 신 새벽이라는 시간과 뒷골목이라는 공간이 갖는 복합적 의미 구조를 통해 화자가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신새벽은 순수와 자유의 생명이 탄생하는 시간이고, ‘뒷골목은 그늘지고 어두운 공간을 표상하므로 시인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에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역설적 원리를 대입한다면,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의 폭압이 심할수록 조국의 민주주의도 그 속에서 싹을 틔운다는 의미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뒷골목 같은 후미진 곳에서만 간신히 행해지는 민주화 투쟁을 보여 줌으로써 현실 상황이 얼마나 폭압적인가 하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둘째 연은 여러 가지 소리의 중첩을 통해 이 시대의 공포와 고통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발자욱 소리에서부터 탄식 소리에 이르기까지 구체적 사건의 서술은 일절 배제되어 있으면서도 그 소리들 사이에 놓여 있는 살벌한 상황이 읽는 이의 상상 속에서 생생하게 떠오르도록 해 주고 있다.

 

화자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의 분노와 비통함으로 흐느끼면서 뒷골목의 나무 판자에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쓴다. 뒷골목에서 숨죽여 흐느끼며 / 남몰래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만세를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보여주는 이 구절은 그 어떤 산문적 서술보다 뚜렷하게 당시의 정치적 현실을 증언하고 있으며, 아울러 시대의 아픔을 넘어 저 푸르른 자유로 달려가겠다는 비장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 감상의 길잡이 5 >

이 시는 유신 체제의 억압 속에서 민주주의 회복의 열망을 절규한 1970년대의 기념비적 작품의 하나다. 가슴 속에 목마른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이른 새벽 뒷골목에서 남 몰래 써야 한다는 시적 상황 속에 당시의 현실이 집약되어 있다.

 

이 시대의 공포와 고통은 발자욱 소리에서부터 탄식 소리에 이르기까지 아무 구체적 사건 진술 없이 나열되었지만, 이 소리들 사이에 있는 무서운 사태가 독자들의 상상 속에 생생히 떠오르도록 한다.

 

이런 험한 상황 속에서 서정적 자아는 분노와 비통함으로 흐느끼면서 남 몰래 민주주의여 만세를 쓰는데, 이는 당시의 정치적 현실을 증언하면서,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비장한 결의를 보여준다.

 

 

< 감상의 길잡이 6 >

유신체제가 강화되던 19741월은 숨가쁘게 긴급조치가 발령되었다. 김지하는 이 달을 한마디로 죽음이라고 불렀다. 그 해 4, 그는 긴급조치 4호로 기소되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19752월 출옥한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옥중기 <고행(苦行)>(1974) 이 문제되어 또다시 투옥되고 7년 선고를 받는다. 그 때 옥중에서 자유와 정의를 위한 양심선언을 작성했다. 그것은 3.1운동 당시 만해의 <조선독립의 서>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옛 만해(萬海)의 아픔

가슴 속 타는 촛불의 아픔

 

그는 <여울>에서 풍란화 매운 향내의 지사, 만해 한용운을 이와 같이 회상하며 속마음으로 경의를 표했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암울한 유신시대, 긴박한 긴급조치의 시대에 우뚝 선 기념비적 저항시다.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애타는 갈망을 몹시도 심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아울러, 목메이고 가슴막히는 상황에서도 불멸하는 치열한 시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이시는 폴엘뤼아르의 절창인 <자유>를 연상케 한다. 다음은 불문학자 박은수가 옮긴 것이다.

 

 

내 학생 때 공책 위에

내 책상이며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도 눈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읽어본 모든 책장 위에

공백(空白)인 모든 책장 위에

, , 종이나 재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숯칠한 조상(彫像)들 위에

전사들의 무기들 위에

왕들의 왕관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4연에서 19연까지 중략)

 

다시 돌아온 건강 위에

사라져 간 위험 위에

회상도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 마디 말에 힘입어

나는 내 삶을 되시작하니

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다

네 이름을 지어 부르기 위해

자유여.

 

불행이 지난 자리에 침묵의 조종(弔鐘)을 구가한 하이네와 달리, 이 시는 다분히 요설적인 교술양식에 의존하고 있다. 김지하는 풍자만이 현실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으며 올바른 저항적 풍자는 시인의 민중적 혈연을 창조한다고, 일찍이 그의 시론(時論) <풍자냐 자살이냐>에서 밝힌 바 있거니와, 반복적으로 형용하며 열거되는 말투에서 민요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그의 표현대로 찢겨진 영혼으로 승리하는, 생생한 불꽃처럼 타오르는 정신이다. 그리고,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낌으로써, 절망적인 죽음의 상황에서도 생명의 되살림을 예감하고 있다. 따라서, 타는 목마름으로 처절하고 격렬하게 외쳐 본 민주주의 만세는 단순한 구호의 차원을 넘어선다. 여기에 분노와 적개심의 앙금이 남아 있지 않다.

 

()가 내게로 올 때

나는 침을 뱉었고

떠나갈 때

붙잡았다 너는 아름답다고 --- <>에서

 

그는 이미 시와 행동의 경계에서 번민한 자취를 보이고 있었다.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정치적이고 시사적인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삶을 온건하게 정관(靜觀)하는 서정시의 영역으로 환원했다. 그 결과가 <애린>, <별밭을 우러르며>이다. 겨울날에 목련의 꽃핌을 환각하며 그의 생명사상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점은 꽤 인상적이다.

 

눈을 뜨면 시커먼 나무등결

죽음 함께 눈 감으면

눈부신 목련

내 몸 어딘가에서 아련히

새살 돋아 오는 아픔

눈부신 눈부신 저 목련. --- <목련> 전문

 

 

김지하와 민주주의

한국 민주화 운동사에서 상징적인 존재인 시인 김지하는 1970년대를 온통 감옥에서 보내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살았다. 이 시에서 시인은 군사 정권 아래서 압살당해서온 민주주의를 라고 지칭하며 애타게 부르고 있는데, 거기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절규, 자유를 원하는 신앙적 기다림이 표출되어 있다.

 

특히 이 시는 절실하면서도 자칫하면 추상적인 구호의 수준에 그치기 쉬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라는 생경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막연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시인 자신의 개인적 서정으로 육화(肉化)시켜서 표현함으로써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작품 해석의 성격

한 편의 작품은 그것이 어떤 문맥이나 상황 속에서 독자들과 만나게 되느냐에 따라 그 해석 내용은 물론 울림의 폭이나 깊이가 다르게 마련이다.

 

김지하의 작품 타는 목마름으로는 특히나 당대의 시대적 문맥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탄생된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와 시대적사회적 문맥이 달라진 시점에서 감상을 할 때에는 그만큼의 절실성이나 시적 울림이 일어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훌륭한 작품은 시공을 초월하여 생명력을 지니며 독자들에게 파고들 수 있는 것이거니와, 김지하의 이 작품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민주주의에의 소망을 기원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참여시, 저항시

성격 : 의지적, 저항적, 비판적

운율 : 내재율

어조 : 민주주의를 간절히 열망하는 목소리.

심상 ; 감각적, 비유적

표현 : 반복법, 상징법

구성 :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으로 민주주의를 써봄.(1)

떨리는 손,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민주주의를 써봄.(2)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기다림.(3)

의의 : 시대 정신을 직접적이고 치열하게 반영함.

특징 : 민주주의를 너로 의인화시킴.

제재 :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목마름

주제

참민주주의 세상의 도래에 대한 열망.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간절한 열망.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애타는 기다림.

출전 : <타는 목마름으로>(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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