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케익스와 알키오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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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익스와 알키오네  


케익스는 테살리아의 왕이었다. 그는 그 나라를 어떤 폭력이나 부정에 의하지 않고 평화롭게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금성 헤스페로스의 아들로서, 그의 빛나는 아름다움은 부친이 누구인가를 짐작케 했다. 그의 아내는 아이올러스의 딸 알키오네였는데, 그를 끔찍이 사랑했다. 그런데 최근 케익스는 형을 잃고 깊은 고뇌에 잠겨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형의 죽음에 뒤이어 일어난 여러 가지 무섭고 괴상한 일들은 그로 하여금 신들이 자기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케 했다. 그래서 그는 이오니아 지방에 있는 클라로스로 건너가서 아폴론의 신탁을 받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아내 알키오네에게 고백하자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안색이 창백해졌다.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당신의 애정에 제게서 떠나게 되었나요? 당신 생각 중에서 언제나 가장 최우선이었던 저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이제 어디로 갔나요? 저와 떨어져 있어도 편하게 느낄 만한 수양을 하셨나요? 저와 이별하시려는 거죠?"

그녀는 또한 무서운 바람의 위력을 설명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의 여행을 막으려고 했다. 바람을 제지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않 된다는 것을 그녀가 부친의 집에 있을 때 - 그녀의 부친 아이올러스는 바람의 신이었으므로 - 몸소 체험하여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바람이 서로 싸우고 맞부딪칠 때에는 불꽃을 튀길 정도랍니다. 그러나 당신이 정히 가시겠다면, 사랑하는 사람이여, 제발 저를 데리고 가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당신이 실제로 당하실 재난의 고통뿐만 아니라 제가 두려워 상상하는 재난의 고통까지 겪게 될 거예요."

이런 말들은 케익스 왕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물론 그 역시 아내를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아내가 바다의 위험에 노출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내를 달래며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아버지 금성을 두고 약속하겠소. 운명이 허락한다면 달이 궤도를 두 번 돌기 전에 돌아오리다." 그렇게 말하고 왕은 창고에서 배를 내어 오도록 명령한 뒤 노와 돛을 달게 했다. 알키오네는 이런 준비가 진행되는 것을 보며 마치 재난을 예감이나 한 듯이 몸을 떨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면서 이별을 고하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케익스는 배에 오르기는 했지만 출발을 늦추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이미 노를 손에 잡고 서서히 질서 정연하게 힘껏 파도를 헤쳐 나아갔다. 알키오네는 눈물이 흐르는 눈을 들어 남편이 갑판 위에 서서 자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도 배가 멀리 사라져 남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배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그녀는 돛대가 가물거리는 것이라도 보려는 마음에서 눈을 긴장시켜 크게 떠 보았지만 마침내 그것마저도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한편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를 빠져나가자 돛폭 사이로 미풍이 불었다. 그리고 목적지까지 반 정도 왔을 때, 밤이 가까워지면서 바다에는 흰 파도가 일기 시작하더니 동풍이 강하게 불며 폭풍으로 변했다. 선장이 돛을 내리라고 명령을 했으나 폭풍 때문에 그 것조차 내릴 수 없을 정도였다. 바람과 파도 소리가 요란해서 명령조차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선원들은 저마다 노를 단단히 쥐고 배를 보강하고 돛을 줄이기에 바빴다. 그러나 선원들이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동안에도 폭풍은 점점 거세졌다. 선원들의 고함소리, 덜컥거리는 돛 줄 소리, 파도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천둥치는 소리와 뒤섞였고, 엄청난 파도를 하늘까지 치솟았다가 구름 사이로 거품을 내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는 칠흙 같은 어둠이 시야를 덮었다.

선원들과 더불어 배 역시 이 모든 변화를 함께 경험했다. 그것은 마치 사냥꾼들의 창 끝에 찔려 돌진하는 야수처럼 보였다. 비는 마치 하늘이 바다와 합치기라도 하려는 듯 엄청나게 쏟아졌다. 그리고 잠시 동안 벼락이 멈출 때는 밤이 폭풍우에 어둠을 덧칠했다. 그러나 다시 번쩍하면서 어둠이 한쪽으로 밀려나고 섬광처럼 벼락이 떨어졌다. 기술도 용기로 모두 사라지고 죽음만이 파도를 타고 다가오는 것 처첨 보였다. 선원들은 공포로 망연자실해졌다. 저마다의 가슴속에는 집에 남겨두고 온 부모와 가족과 맹세가 떠올랐다. 케익스는 알키오네를 생각했다. 오직 그녀의 이름만을 입술에 올리며 그녀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녀가 이곳에 없는 것을 기뻐했다. 이읅고 돛대는 벼락을 맞아 산산조각이 났고 키도 부서졌다. 어떤 선원들은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그대로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한편 알키오네는 이런 무서운 사건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남편이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신들에게 자주 분향을 하며 특히 헤라(이 여신은 부부애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여신에게 정성을 다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남편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그가 무사히 귀가하고, 객지에서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모든 기도 중에서 받아들여질 운명에 있는 것은 오직 마지막 바람뿐이었다. 여신은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한 탄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장례식에서 분향해야 할 손이 자기의 제단에 대고 간절히 기원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던 여신은 이리스(무지개의 여신)을 불러 말했다. "나의 충실한 사자 이리스야. 히프노스가 사는 잠의 나라로 가서 알키오네에게 꿈을 보내라고 일러라. 그리고 그 꿈 속에 케익스가 나타나 사건의 전말을 그녀에게 알리도록 해라."

이리스는 일곱 색깔 무늬의 옷을 입고 공중을 무지개로 물들이면서 잠의 신의 궁전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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