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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후예(後裔) / 해설 / 황순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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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후예(後裔) / 황순원


내용 연구

카인의 후예(이 소설의 제목인 '카인의 후예'는 8·15전후의 시대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카인은 성서에서 인류 최초로 형제를 살해한 인물이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가 다 카인의 일면을 지니고 있다. 광복과 좌·우익의 싸움과 토지 개혁의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카인'은 당시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저녁상을 보아 들여놓고, 오작녀는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

아버지네 집으로 가 보지 않고는 못 견딜 심사였다. 누구와 결판을 내고만 싶었다. 글쎄 삼득이(오작녀의 남동생) 그 애가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할까. 남의 뒤를 밟다니 될 말인가. 그것도 다른 사람 아닌 박 선생의 뒤를.

오작녀 아버지네 집은 훈네 집에서 왼편으로 한 오십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함석집이었다.

오작녀는 아버지네 집 마당에 들어서며 잠깐 망설였다. 바둑이가 와 다리에 감겼다. 가슴이 더 뒤설레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어먹고 문고리를 가 잡았다.

방에는 어머니 혼자뿐이었다. 남폿불 앞에 동그마니 앉아 바느질손을 잡고 있다가 방문 여는 소리에 놀라는 눈을 들었다.

"너 오니?"

"다들 어디 갔소?"

"저녁 먹구들 나가드라." - 오작녀가 아버지네 집으로 감

어머니는 말소리마저 무엇을 염려하고 겁내 하는 빛이었다. 그게 요새 와서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소녀 시절에는 웃기 잘 하기로 유명했던 오작녀 어머니였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웃음이 앞서곤 했다. 갓 시집와서도 그랬다. 웃어른 없는 시집살이라 흉허물 없어 동네 젊은 여인들과 만나면, 무슨 이야기 끝에고 곧잘 웃음을 터뜨리곤 하는 것이었다.

이렇던 웃음이 어느 새 그네의 동글납작한 얼굴로부터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살림이 고된 탓은 아니었다.(남편으로 인한 성격의 변화)

뻑뻑한 바위 밑 같은 남편의 그늘('뻑뻑한 바위 - 남편의 그늘' 대응)이 그리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무어 남편 되는 도섭 영감이 유별나게 아내를 들볶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바위편에서 무슨 생각이 있어 그 밑의 풀나무를 어쩌는 것이 아니듯이. 그저 남편의 바위 밑에서 이 여인은 차차로이 제 웃음을 잃고, 그 자리에 어떤 그늘이 대신한 것이었다. 그것은 요즘 와서는 더 심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깜짝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 오작녀 어머니의 성격 변화

"삼득인 늘 밤 늦게 댕기우?"

"글세 그러누나."

늘 삼득이가 그러는 것도 아니건만, 누이 되는 사람이 걱정 비슷이 하는 말에 어머니도 덩달아 이렇게 말을 하고는 이번에는 혼자말로,

"밤엔 집에들 있어 줬으면 도캇는데……."

"아바진 또 요새 왜 그러우?"

"글쎄 말이다."

"오마니가 좀 말을 해요."

어머니가 놀라는 눈을 이리 돌렸다.

"요새 아바지가 박 선생한테 너무해요. 디나간 일두 생각해야디 나빠요. 이제 토디 개혁인가 뭔가 된다구 해서 그럴 수가 이시오? 오마니가 좀 말을 해요. 오마닌 왜 아버지한테 말 한 마디 못 하구 삽네까?"(문학 작품에서는 문학적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사투리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향토색을 짙게 나타내어서 작품의 주제를 구현하거나 배경을 사실적으로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작녀 아버지 도섭 영감(원래 부유한 집 아들이었으나 가산을 탕진하고 떠돌아다니다가 훈의 집에서 열심히 일을 하여 마름이 된다. 광복 후 토지 개혁에 앞장 서서 지주인 훈을 배신하고 자신의 이득을 추구해 나간다.)은 이십여 년 동안이나 훈네 토지를 관리해 온 마름(지주의 위임을 받아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 동안(훈네 토지를 관리해 오는 동안) 웬만한 지주 못지않게 잘 살아왔다. 그것이 요즈음 토지 개혁(이 글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단어)이란 걸 앞두고는 모든 행동에 있어서 달라진 것이었다. 그게 오작녀에게는 못마땅했다.

딸의 말에 오작녀 어머니의 눈이 더 놀라고 겁먹어 갔다. 이 애가 어쩌자고 갑자기 이런 소릴 해쌓는지 모르겠다. 가만 있지 못하고. 이 애가 이러다간 집안에 큰 풍파를 일으킬라.

"그리구 또 삼득인……."(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어머니에게 말하는 오작녀는 박 선생을 궁지에 몰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음)

오작년 어머니의 손이 가늘게 움직였는가 하자. 손은 그대로 있는데 바느질 감만이 무릎에서 흘러 떨어졌다.

"가만!"

그리고는 떨리는 손길이 딸의 팔을 와 붙들며 나직한 말로,

"아바지다!"

오작녀도 그만 흠칫하고 귀를 귀울였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바지야!"

어머니가 다시 숨소리만으로 속삭였다.

수십 년 같이 살아오는 동안, 이 여인은 이처럼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남편의 인기척을 알아듣는 것이었다.

좀만에 과연 뜰로 들어서는 인기척이 들렸다. 오작녀는 저도 모르게 훌 일어섰다. 그리고는 문고리를 잡고 생각난 듯이,

"삼득이 들어오믄 낼 바주('바자'의 평안도 방언으로 대, 갈대 등을 엮어 울타리처럼 만든 것) 엮게스리 좀 보내 주우."

그러나 어머니는 그저 바느질감만 뒤적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 자기네가 나타내고 있는 낯빛을 남편에게 눈치 채이지 않기 위한 몸짓이기도 했다.(남편을 바라보는 오작녀 어머니의 심리는 무슨 일을 저지를까 하여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 -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감

- 이글의 서술 방법은 간접 화법으로 인물의 내면 심리를 드러내기도 하고, 짧고 간결한 문체로 사건 전개에 긴장감을 주고 있으며,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독자들이 중심 사건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며, 사투리의 사용으로 지역적인 배경을 알 수 있게 하고 사실감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이해와 감상

  소설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다. 시대의 변화 가운데 쉽게 눈에 띄는 것은 제도의 변화, 풍속의 변화 등이다. 이 소설에서는 8·15 광복 직후 북한의 토지 개혁을 중심으로, 시대의 변화를 따라 이전의 계층이 혼란을 겪게 되고 거기서 갈등하는 인간들을 잘 그리고 있다.

지주의 아들이며 지식인인 박훈과 소작인의 딸이며 남편과 별거하고 있는 오작녀 사이에는 계층 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사랑의 감정이 성숙한다. 그러다가 광복 직후 혼란 속에서 진전되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랑의 제약 조건이 해소되면서 둘 사이의 사랑은 비극적 결말을 향해 진전된다. 변화하는 시대의 제도 문제와 사랑의 구도가 긴장감 있게 제시되어 있다.

 


이해와 감상1

 광복 직후의 북한의 공산 정권 치하에서 정치적 시련을 겪던 끝에 자유를 찾아 남하할 것을 결심하게 되는 한 지식인의 삶의 과정을 통해 당시의 이념 대립의 격동적인 현실을 그린 저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유년기의 성숙에로의 통과 제의를 기조로 하는 초기 단편의 시(詩)의 세계를 청산하고 인간의 근원적인 악의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가치를 물음으로써 역사적 현실을 인식하게 하여 주어 그의 장편 소설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고향 회귀와 식민지 시대의 결산과 함께 해방 문학의 주요 제재였던 남북 분단 이후의 고통을 그림으로써 고발 문학적 성격을 가지기도 한다. 작자의 초기 작품에서는 단순히 주인공의 좌절감의 대상으로 그려졌던 배경적 요소가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장애 또는 거부의 상황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급박한 격동의 시기를 배경으로 삼음으로써 오작녀의 사랑, 서사와 서정, 겨울과 봄, 원죄와 속죄 등의 양면성이 이 작품을 관류한다. 박훈과 오작녀의 사랑은 역사적 인식의 추구를 원하는 지성인에게는 시대적 상황의 기대에 벗어난 비겁한 태도라고 지적되는 한편으로 인간의 선(善)과 사랑을 악을 위시한 모든 것을 포용함으로써 승리를 구가하게 한 근원적 정서로 표출되었다고 긍정되기도 하였다.

 


이해와 감상2

 이 소설은 해방 전후의 시대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그려 낸 수작 중의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토지 개혁이 실시되어 지주 제도가 몰락하는 과정이 이 작품에서 재판의 장면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묘사된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급변하는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눈앞의 이익을 좇아 행동하며, 마름들은 과거의 소행이 두려워 지주 비판에 앞장선다. 이 작품에서 도섭 영감이 어떤 이유로 토지 개혁을 강행하는 세력의 앞잡이가 되었는가 하는 점은 이 소설의 주제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큰 의미가 있다. 즉, 도섭 영감을 무자비한 토지 개혁의 행동대원으로 내몰아 버린 것은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동조가 아니라 생존 본능으로 인한 불안감와 공포였던 것이다. 박훈은 토지 개혁에 직면하여 삼촌 박용제와 같이 일말의 미련을 보이지 않고, 관망과 체념의 상태에 기울어짐으로써 비겁하고 소심한 태도를 보인다. 이에 반해 오작녀는 매사에 적극적이면서 열정적이고 게다가 모험적이면서 분명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이들의 성격상의 대립은 박훈에게 오작녀의 의미가 단순한 여성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게끔 한다. 즉 오작녀는 박훈에게 '구원의 존재'로 서의 여성상과 더불어 '모성'까지도 부여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3

 황순원(黃順元)이 지은 장편소설. 1953년 9월부터 1954년 3월까지 ≪문예 文藝≫에 연재되었고, 1954년 중앙문화사(中央文化社)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광복 직후 북한의 공산정권 치하에서 정치적 시련을 겪던 끝에 자유를 찾아 남하할 것을 결심하게 되는 한 지식인의 삶의 과정을 통해 당시의 이념대립의 격동적 현실을 그린 저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유년기에서 성숙기로의 통과제의를 기조로 하는 초기 단편의 시(詩)의 세계를 청산하고 근원적인 악의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가치를 물음으로써 역사적 현실을 인식하게 하여준다. 그의 장편소설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말 전쟁을 피해 고향에 내려와 야학을 하다가 광복을 맞은 박훈은 토지개혁의 실시나 반동지주의 숙청 단행 등의 소문이 실현되면서 급박한 처지에 놓인다.

 지주계급인 박훈에게 가해지는 박해에서 오는 갈등은 충직한 마름이었다가 농민위원장이 된 도섭 영감의 노골적인 적의와, 그러한 아버지의 변심을 탓하는 오작녀의 사랑의 대립 속에서 고조된다. 농민대회가 벌어진 날 훈의 조부의 송덕비마저도 도섭 영감의 도끼에 넘어지고 만다.

 이웃 여인은 훈의 집 살림을 훔치려 들고, 조부의 엄한 가르침 속에 자라난 당손이까지도 염탐꾼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등 고통은 나날이 가중된다. 반동지주의 아들로 전락해버린 훈의 사촌동생 혁마저도 ‘저쪽 사람들’ 못지 않게 뜨거운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음을 알게 된 훈은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러한 아수라장 속에서도 끝내 한결같은 순정으로 훈을 돌보는 오작녀는 그와의 신분상의 차이도 차이지마는 이미 남의 아내인 윤리의 장벽을 넘지 못해 속으로만 뜨겁고도 애처로운 사랑의 불꽃을 태운다. 반동지주의 숙청이라는 사나운 회오리바람이 훈의 집까지 밀어닥친 그날, 오작녀는 훈과 이미 부부사이가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훈의 위급을 모면시킨다.

사촌동생도 미쳐 날뛰는 도섭 영감을 보다 못해 죽이려 계획하고, 이를 눈치챈 훈은 차라리 자신이 그 일을 대신하리라 결심한다. 그러나 훈의 결행이 실패로 돌아가 오히려 도섭 영감에게 살해를 당할 위기에 처하고 그 순간에 나타난 오작녀의 동생 삼득은 훈을 살려주며 누나와 함께 떠나라고 당부한다. 훈은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닫고 오작녀에게로 달려간다.

 이 작품은 고향회귀와 식민지시대의 결산과 함께 해방문학의 주요 제재였던 남북분단 이후의 고통을 그림으로써 고발문학적 성격을 가지기도 한다. 황순원의 첫 장편소설인 〈별과 같이 살다〉(1950)에서 단순히 주인공의 좌절감의 대상으로 그려졌던 배경적 요소가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장애 또는 거부의 상황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급박한 격동의 시기를 배경으로 삼음으로써 오작녀의 서정적 사랑을 대비적으로 강조하였고, 피비린내 나는 숙청과 오작녀의 사랑, 서사와 서정, 겨울과 봄, 원죄와 속죄 등의 양면성이 이 작품을 관류한다. 박훈과 오작녀의 사랑은 역사적 인식의 추구를 원하는 지성인에게는 시대적 상황의 기대에 빗나간 비겁한 태도라고 지적된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선(善)과 사랑이 악을 위시한 모든 것을 포용함으로써 승리를 구가하게 한 근원적 정서로 표출되었다고 긍정되기도 하였다.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부르는 상황적인 악이, 천성적으로 선하나 다만 기회주의적 인물인 도섭 영감을 살기로 충만시키면서 주인공 훈은 관조적이고 수동적인 인간형에서 점차로 카인의 피가 되살아난 행동형의 인간으로 변신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악에 내몰린 훈은 그 악을 대신하여 스스로 속죄양(贖罪羊)이 될 각오를 하지만 이들을 구제하는 것은 오히려 사랑과 관습에 구속되어 끝까지 자기동일성을 지킬 수 있었던 오작녀와 삼득이, 당손이 할아버지들 쪽이다.

 작품의 중반 이후부터 전개되는 피와 살육·자살·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을 빚는 인간의 근원적인 악의 문제는 그 뒤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등의 전쟁이라는 극한상황 속에서의 인간구원의 문제를 다룬 일련의 작품에서도 지속되었다. 1950년대 한국 전후문학에서 문학사적 의미를 가지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참고문헌≫ 植物的 人間像-카인의 後裔를 中心으로-(李御寧, 思想界, 1960.4.), 분단현실과 문학(千二斗, 한국소설의 관점, 文學과 知性社, 1980), 實存的 現實과 美學的 顯現(李泰東, 現代文學, 1980.11.), 韓國 戰後小說의 現實克服意志(韓承玉, 崇實語文 3, 崇田大學校國語國文學會, 198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카인의 후예"의 시대적 배경

 이 소설을 잘 이해하려면 우선 배경이 되는 시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무력 강압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채 36년 간 식민 통치를 받은 끝에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었다. 그러나 그 해방은 아쉽게도 우리 민족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2차 대전 중 일본과 대항해 싸웠던 연합국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일본이 항복을 하자 연합국을 대표해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군대를 진주시켰다. 한반도 안에 있는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킨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일본군 무장 해제가 완료된 뒤에도 연합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역량이 부족하여 곧바로 독립 국가를 건설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가운데 소련군이 진주한 삼팔선 이북 지역에서는 서방식 자유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체제가 태동했다.

그 중에서도 삼팔선 이북 지역의 변혁은 급격했다. 해방 이듬해에 접어들자마자 무산 대중(無産大衆)인 인민이 주인 되는 나라를 세운다는 명목을 내세워 이른바 '인민의 적'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자들이 정한 인민의 적은 지주, 자본가, 일제 시대의 관리, 무당, 점쟁이, 종교인, 지식인 등이었다.

 소련의 군정이 급조해 놓은 이북의 임시 정권은 1946년 3월 5일, 전격적으로 토지 개혁을 발표해 지주들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했다. 이처럼 이 소설은 해방 직후 삼팔선 이북에 세워진 공산주의 정권이 정한 인민의 적 숙청과 토지 개혁의 소용돌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대를 증언하는 문학

 소설은 시대를 증언하는 기능과 예술 형상화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래서 소설(또는 문학)을 반(半)예술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카인의 후예"는 시대를 증언하는 역할에 상당한 무게를 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카인의 후예"를 읽으면 해방 직후 삼팔선 이북에서 있었던 독특한 소용돌이가 선연하게 드러나 보인다.

 시대를 증언하는 방법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거울처럼 비쳐 보여 주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그림을 그려 보여 주는 방법이다. 거울처럼 비쳐 보여 주는 방법은 시대상을 보여 주되 작가의 주관을 배제하고, 있는 사실 그대로 객관적으로 정확하고 냉정한 태도를 취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듯 보여 주는 방법은 작가의 주관적 평가를 개입시켜 그 시대의 현상을 증언하는 태도이다.

"카인의 후예"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거울에 비치듯 보여 주면서도 아주 객관화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작가의 주관이 어느 정도 가미되어 있다. 즉 "카인의 후예"에서는 박훈을 비롯한 지주 계급 쪽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작품을 전개했다.

또한 작품 내용의 입장에서 볼 때 작가가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삼팔선 이북에 자리 잡은 공산당 지도부는 혁명처럼 갑작스러운 변화를 일으켰다.

 과거의 상층 계급을 갑작스럽게 하층 계급으로 끌어내리고 과거의 하층 계급을 갑자기 부상시켜 놓았다. 오랫동안 지녀 온 풍속과 관행도 갑작스럽게 깨 부숴 놓았다. 사회는 가둬 놓았던 물을 별안간 쏟아 낸 듯한 그리고 물길을 거꾸로 돌려 놓은 듯한 혼란이 일어났다. 급하더라도 순리에 따라 해야 하는데 그러한 변혁은 순리와는 상관없는 무리와 억지여서 부작용이 낙석처럼 떨어져 굴러다녔다. 또한 친밀하던 인간 관계가 갑작스럽게 깨어져 적대 관계로 바뀌고 폭력과 살육이 자행되었다. 따라서 양식과 지성을 갖춘 작가로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개성적인 성격 묘사

 이 작품에 빛을 더해 주는 것은 등장 인물의 성격 묘사이다.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는 소설에는 필수적으로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등장 인물을 통해서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 또는 작품 속의 해설자는 '작가의 대리인'이라고도 말해진다.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뚜렷한 개성으로 부각되지는 못한다. 어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개성을 지니지 못하고, 사건을 진행시키고 매개하는 역할만 담당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는 작가가 인물 성격 부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인물 성격 묘사를 게을리했기 때문에 생긴다. 어쨌든 성격이 잘 묘사된 인물은 소설에 생기과 흥미를 더해 주고 소설을 풍요롭게 한다.

 "카인의 후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뚜렷한 개성을 지녔다. 주인공 격인 박훈은 전형적인 지식인의 한 유형이다. 대지주의 아들이지만 가난한 시골 사람들을 위해 야학을 개설하고, 정직하고 검소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오작녀와 한 지붕 밑에서 3년을 함께 지냈으면서도 속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우유 부단함 속에 갇혀 지낸다. 또 한 사람의 주인공 격인 오작녀는 사랑하는 박훈에게는 온순하고 헌신적이면서, 박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모든 위험에 용감하게 맞서는 당찬 여인이 된다.

 오작녀의 아버지 도섭 영감은 냉혈한 기회주의자다. 박훈네 집 토지를 관리하는 마름일 때는 소작인에게는 냉혹하면서도 지주에게는 개처럼 충성스럽더니, 해방이 되고 세상이 뒤집어져 지주가 괄시 받고 매도되는 상황이 되자 주저없이 공산당에 붙어 과거의 주인인 박훈을 앞장서서 비난하고 매도한다. 한편 오작녀의 남편은 건달이면서도 나름대로 멋과 의리를 지닌 시대다. 박훈의 삼촌 용제 어른은 토지를 몰수당하고 끌려가 광산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주도해 건설하다가 끝을 맺지 못한 상태로 있는 저수지를 못 잊어서였다. 어떤 사업을 일으키면 거기 속속들이 빠져 들고야 마는 뛰어난 장인(匠人) 같은 인물이다. 용제 어른의 아들이며, 박훈의 사촌 동생인 혁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적극적 성격의 인물이다. 그 밖에 고전적 도리(道理)의 인물 당손이 할아버지, 이중 성격의 기회주의자 흥수, 말 없고 단순하고 힘센 곰 같은 청년 삼득이, 전형적인 공산당 조직의 하수인인 공작원 등, 수많은 등장인물의 다양한 성격을 뚜렷하게 색색으로 구별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인물들은 그냥 성격만 다른 것이 아니다. 해방 직후 평안도 순안 부근의 어느 시골에 몰아 닥친 공산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상처 입거나 죽지 않으려고 허둥거리는 모습으로 부각된 인물들이다. 격변기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해 가는가. 물론 성격에 따라 자기 나름의 대응을 하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거꾸로 대응하는 과정을 통해서 각자의 독특한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격변기에 적응하고, 적응하려고 허둥거리고, 적응하지 못해 낙엽처럼 떨어져 짓밟히는 사람들은 앞선 시대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이 소설이 마치 정말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실감 나는 것은 등장 인물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각기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소설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이 다른 인물과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은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되고... 하는 식으로 전개가 된다. "카인의 후예"에서는 박훈과 오작녀의 만남이 기본적인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 속에 도섭 영감과 오작녀 남편을 비롯한 많은 인물이 연루됨으로써 사건이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건이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되는 것은 소설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 거의 필수적인 사항이며, 또한 거기에는 인물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꼭 필요한 인물들을 가려내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는 것은 고도의 용병술에 견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 비극의 상징

 작가는 이 소설에 왜 "카인의 후예"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소설의 제목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사람의 이름처럼 다른 소설들과 구별하는 역할도 하고, 독자의 흥미를 끌어 소설을 읽도록 만드는 역할도 하고, 그 소설의 내용을 집약하는 역할도 한다.

 "카인의 후예"는 소설의 주제를 강하게 암시하는 제목이다. 카인은 하느님이 창조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 중 맏이이다. 그리고 아우인 아벨을 죽임으로써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을 저지른 인물이다. "카인의 후예"란 최초의 살인자이며 형제를 질투하고 증오한 카인의 피를 받은 후손이라는 뜻이다.

 박훈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념의 도입으로 인해 질투하고 증오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은 형제와 다름없는 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이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는 박훈의 고향 마을에 국한되지 않는다. 삼팔선 이북 지역 전체에서 일어난 일이며, 나아가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우리 민족 안에서 빚어진 질투, 증오, 살인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 안에서 빚어진 이런 비극과 범죄는 카인과 아벨, 아담과 이브에게로 소급되어 인류의 원죄와 연결된다.

 소설은 구체적인 사건, 개개인의 이야기로 꾸며지지만, 그 구체적인 사건, 개개인의 이야기는 어떤 지역 사회, 민족, 국가, 인류에게로 연결되는 보편적 의미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소설 "카인의 후예"는 그렇듯 해방 직후 평안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을 인류의 원죄까지 연결시키고, 또 거꾸로 인류의 원죄라는 거대한 주제를 평안도 시골 마을의 조그만 사건으로 상징화시키는 작업을 해냈다. "카인의 후예"는 역사적 사건을 보편적 의미로 확대시켜 형상화한 훌륭한 작품인 것이다.(출처 : 독서평설 1996. 11)

 

황순원의 작품 세계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의 정신,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춤으로써, 황순원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 소설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의 소설들이 예외 없이 보여주고 있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은 소설 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시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소설 문학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주력할 경우 자칫하면 역사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동반될 수 있지만 황순원의 문학은 이러한 위험도 잘 극복하고 있다. 그의 여러 장편 소설들을 보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살려놓으면서 일제 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까지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황순원(黃順元)에 대하여

  2000년 9월14일 소설가 황순원이 85세로 작고했다. 황순원은 평남 대동 출신이다. 평양 숭실중학교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서 공부했다. 문학적 출발은 동요와 시였으나, 1940년 단편집 ‘늪’을 내면서 소설 쪽으로 건너왔다.

 광복 직후 북한의 토지개혁을 배경으로 이데올로기와 사회 변동 속에서 상처를 주고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카인의 후예’(1954), 6ㆍ25와 전후(戰後)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내면 풍경을 그린 ‘나무들 비탈에서다’(1960) 같은 작품들이 황순원의 대표적 장편으로 꼽힌다. 일반 독자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황순원 작품은 단편 ‘소나기’(1953)일 것이다.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그 마을 소년과 서울에서 온 소녀의 애틋하고 아릿한 사랑을 그린 이 소품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다. 그 시대의 뛰어난 소설가들이 흔히 그랬듯, 황순원도 단편과 장편에 모두 능했다. 잘 알려진 또 다른 단편 ‘독 짓는 늙은이’에서, 작가는 아내에게 버림받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독을 구우며 불꽃의 아름다움 속에 비루한 현실을 용해하는 옹기장이 노인의 탐미주의를 그리고 있다.

 황순원의 문학적 위치에 대해서는 평자들에 따라 견해가 갈릴 수 있겠지만, 그가 격동으로 점철된 20세기 한국사에서 흙탕물을 피해가며 ‘학처럼 살았다’는 데는 모두 동의한다. 조금 이름을 얻은 문인이라면 친일을 피하기 어려웠던 일제 말기에 그는 성장지인 평양에 은거해 발표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소설들을 썼다.

 그는 일제와 싸우지도 않았지만 협력하지도 않았다. 해방 이후의 독재 정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예술가의 자부심에 기대어 늘 현실의 어수선함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했다는 점에서 그는 진정한 순수예술가였다. (고종석 )[한국일보 2003-09-13 17:57]

 

 

황순원(黃順元 1915-2000)

 평남 대동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경희대학 교수. 예술원 회원을 역임함. 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1934년 첫 시집 <방가(放歌>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활동함.

 1935년 <삼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와 소설을 함께 발표하고, 1940년 단편 소설집 <늪>을 간행하면서 소설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에는 교직에 몸담으면서 "독짓는 늙은이"(1950), "곡예사", "학", 등의 단편 소설과 "별과 같이 살다"(1947), "카인의 후예"(1953), "인간접목"(1955) 등 장편 소설을 발표함.

 그의 작품 세계는, 초기에는 단편 소설의 완결성과 단일성에 걸맞는 개인의 문제에, 장편 소설을 발표하면서부터는 삶의 총체적 인식에 주력하여 많은 문제작을 남겼다. 그리고, 시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문체와 스토리의 조직적인 전개를 그 특징으로 삼았으며, 그의 문체는 설화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인간의 본연적인 심리를 미세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비극적인 현실을 심원한 사상이나 종교로서 감싸고 이해하려는 주제 의식의 확대를 보여 주고 있다.

 


 '카인의 후예' 비평문

 "카인의 후예"는 황순원의 문학적 궤적에서 볼 때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나는, 앞서서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그의 여러 작품들 가운데서는 드물게 당대 현실의 정치적 이슈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고, 따라서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는 드물게도 고발 문학적 경향을 띠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그의 단편 작가로서 추구하여 오던 문학적 과제가 한 정점의 성취를 이룩하면서 장편 작가에로의 지표를 열어주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별과 같이 살다"에 이은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별과 같이 살다"는 애당초, 개개의 부분들을 독립시켜 발표한 사실로서도 알 수 있듯이, 장편소설로서의 뚜렷한 서사적 골격을 갖추었다고 하기 어렵다. '곰녀'라는, 그의 단편 문학에 곧잘 등장하는 토속적 여인상의 인생의 여러 단면들이 그 자체로서는 아름다운 서정시적 정경을 펼쳐 보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일종의 연작소설 같은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곰녀'라는 인간상 자체가 장편소설적 전개를 보이기에는 너무도 마뜩지 않은 폐쇄성을 지니고 있다. '곰녀'의 생애의 과정과 병행하여 식민지 시대에서 8·15 해방이라는 역사적 전환기가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사적 전환기를 자신의 생애의 과정 속에 탄력 있게 수렴하면서 대응해 나가기에는 그녀는 너무도 완강한 성격적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이러한 커다란 변혁을 치르면서도 한결같이 소박하고 어리석고 착하고 따뜻한 자기 속성만을 간직한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여기 비하면 "카인의 후예"에 있어서는 8·15 직후의 북한에 있어서 살벌한 격동기를 한 지식인 '박훈'의 시선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곰녀'의 경우에는 볼 수 없는 중요한 계기가 열리게 되는데, 그것은 작중 인물 '박훈'과 당대 현실 사이의 갈등 관계가 심화되고 또 내면화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의 장편 문학에의 지평은 이런 계기에서 열리게 된다. '박훈'의 모습에서 우리는 살벌한 사회적 격동기 속에 부대끼며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식인의 갈등의 생태를 볼 수 있다. 가혹한 격동기에 대응하는 '박훈'의 자세는 정면 대결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극적이며 방관자적인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김병익'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행동주의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 순응주의자, 체념주의자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는 끝내 격동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는 방관자의 위치를 고수함으로써 '침묵자로서의 부정의 행동'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극적인 듯하면서도 완강히 자기 내면의 순결성을 지켜 가는 박 훈의 모습은 그의 그 뒤의 장편소설의 긍정적 인물들, 예컨대 "인간접목"의 '종호', "나무들 비탈에 서다"의 '동호', "일월"의 '인철' 등에도 투영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면은 앞서의 '원응서'의 증언에서 볼 수 있는 바 작가 황순원 자신의 인간적 변모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이 작품은 고발 문학적 성격이 짙다고 했지만, 그러나 물론 이 작품은 그런 차원을 훨씬 넘어서 있다. 박 훈의 생태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가혹한 시대를 이겨내는 한 지식인의 갈등과 모색의 생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 작품에 있어서 더 큰 흥미의 초점이 되는 것은 '오작녀'의 모습이다. '오작녀'는 '곰녀'를 비롯한 많은 그의 단편소설의 토속적 여인상들과 진한 혈연을 맺고 있다. 그녀 역시 '곰녀'가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시대적 소용돌이와는 아무 상관없는 자리에 위치해 있는 인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작녀'는 '박훈'에게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강렬한 원시적 생명력이 발산하고 있다. 이 작품의 작중 현실이 대체로 박 훈의 시선에 의하여 관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오작녀'의 강렬한 생명력이 발산하는 빛에 의하여 '박훈'의 모습은 희미하다. 독자 앞에 정면으로 나타나는 '박훈'보다도 그의 자의식의 시선을 거쳐서야 독자에게 전달되는, 따라서 그의 자의식의 피사체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는 '오작녀'의 모습이 더 신선하게 독자에게 인상지워진다는 것은 분명 이 작품이 갖는 독특한 아이러니다.

 그 아이러니의 비밀은 어디 있을까. 역시 실체 그 자체보다도 그것의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이 작가의 예술적 특질 탓이 아닐까. '오작녀'는 분명 오늘의 여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배후에는 무수한 세월의 부피가 깔려 있다. 그녀의 배후에는 큰 아기 바윗골의 전설, 뻐꾸기 울음, 망부석의 이미지 등등 무수한 한국적 여인상들이 무수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 이룩하여 놓은 농도 짙은 환상의 여울이 깔려 있다. 그녀의 모습은 당대 현실의 산문적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시적 이미지로서의 그것이다. 예술가로서의 황순원의 매력은 '오작녀'에 이르러 한 분수령을 이룩하게 된다. 동시에 그것은 단편 작가로서의 이 작가의 문학적 과제의 한 장점이기도 하다.  (출처 : 평론가 '천이두')



카인(Cain)

〈구약성서〉에서 아담과 이브의 맏아들(창세 4:1~16)로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인 사람.

 농부였던 카인은 야훼가 자신의 제물보다 목동인 동생 아벨의 제물을 기쁘게 받자 격분하여 아벨을 살해했다. 야훼에 의해 자신이 살던 땅에서 추방된 카인은 도망다니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워했다. 이에 야훼는 보호받을 수 있는 표를 주면서 만약 누가 카인을 죽이면 그는 7배의 복수를 당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성서의 이 이야기는 카인이라는 부족이 특별한 문신을 몸에 새긴 이유와, 이 부족이 살인자에게 가혹한 복수를 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던 것 같다. 또한 왜 이 부족이 정착하지 않고 방랑생활을 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일부 성서 비평가들은 카인 부족이 켄족이었다고 믿는다. 이레나이우스와 초기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에 따르면 2세기에 카인파라고 불리는 영지주의 종파가 있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아벨(Abel)

〈구약성서〉에서 아담과 이브의 2번째 아들.

 그는 형 카인에게 살해당했다(창세 4:1~16). 〈창세기〉에 따르면 목자였던 아벨은 가축들 가운데 처음 난 것을 골라 야훼에게 제물로 드렸다. 야훼는 아벨이 드린 제물을 기쁘게 받았지만, 카인이 드린 제물은 받지 않았다. 시기심으로 화가 난 카인은 아벨을 죽였다. 그뒤 카인은 동생의 무고한 피가 자기를 저주했기 때문에 도망자가 되었다. 〈창세기〉에서는 세상에는 대립되는 가치들이 있다고 전제하며, 하느님은 자제심과 형제애는 뒷받침해주지만 질투와 폭력은 징벌한다고 역설한다. 카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창세 4:7) 죄의 다스림을 받았다. 그리고 카인이나 아벨과 같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위험하게 보면서 인간의 상황을 우울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순교당한 사람 편에 서서, 카인과 같은 사람을 멸망시킴으로써 아벨과 같은 사람의 죽음에 보복해준다. 〈신약성서〉는 아벨이 흘린 피를 예로 들어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한 죄악은 반드시 그 값을 치르게 된다고 가르친다(마태 23:35, 루가 11:51).(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카인콤플렉스 (Cain complex)  

 형제간의 경쟁심·적대감·공격성 등을 일컫는 심리학의 한 개념. 형제콤플렉스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부모의 애정과 인정을 독점하려는 성향을 말한다. 아담과 하와의 큰아들 카인이 아우 아벨을 질투하여 살해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지고 어머니를 사모(思慕)하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의 한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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