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풍의 처 (春風의 妻) / 본문 일부 및 해설 / 오태석
by 송화은율춘풍의 처 (春風의 妻) / 오태석
등장 인물
춘풍, 처, 이지(李知), 덕중(德中), 부(父), 자(子), 추월(秋月), 화조(花鳥) 외 다수
1장
((이지와 덕중이 부자를 결박해서 앞세우고 들어온다.))
[부] 아니 이것들이 한양으로 간다더니 여태 물가를 따라왔네.
[이지] 한양이 물가에 있다 하구서는
[부] 저건 동네 물이고 한양을 끼고 도는 물은 한강이고
[덕중] 이 물이고 저 물이고 다리 아파 죽겠소. 성님, 저것들 놔주고 그만 갑시다.
[부] 그 좋은 소리다. 여기서 한양이 여러 달 걸린다. 그러니 한양까지 갈 것이 없이 여기서 너희가 재판을 해서 우리 부자 중에 하나는 풀어를 다고. 우리 부자한테 딸린 차자가 스물이 넘어. 하나는 결단을 내더라도 하나는 처자께로 보낸다고. (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덕중] 재판을 한다.
[이지] 천자문 한 권 없는 니가무얼 해?
[덕중] 하다가 맥히면 이것들한테 물어봐 가면서 해보십시다.여보게, 시작이 어떻게 되나?
[부] 이 두 놈 부자가 나라에서 금하는 은을 내다가 왜놈한테 흥정을 붙여 팔아먹은, 시쳇말로 밀수꾼이라. 한양에서 백냥 돈을걸고 수배한 자들로 이 화상하고 꼭 닮았소.
[덕중] (붓으로 그린 화상을 펴 보인다.)
[이지] 그래 너희 두 놈 중에서 어느 놈이 먼저 수모를 했더란 말이냐?
[자] 내가 관지기를 찾아가서 왜놈하고 거래를 터 달라고 일렀으니 내가 수모요.
[부] 그렇지가 않소. 관지기가 은값으로 받은 세포를 가지고 왔기로 은을 내주었으니 이놈이 수모로다.
[덕중] 그럼 둘 다 소모로구나. 일을 어찌하면 좋소, 형님.
[자] 아범이 비록 은을 내주었다 하나 말을 꺼낸 것이 이놈이니, 이 몸이 수범이오 아범이 하수인이라.
[부] 자식이 말을 먼저 꺼냈다 하나 이 사람이 내준 은은 가중(家中) 의 것이다. 그러하다면 집안의 물건이 분명한데 자식놈이 애비의 허가 없이 어찌 은을 팔겠다고 말을 냈겠느냐. 자식놈은 종범이요, 이 몸이 수모자로 이치에 맞다.
[이지] 그러면 둘 다 죄가 없다. 자식은 애비의 말을 듣고 흥정을 했으니 죄가 없고, 애비는 자식이 흥정해 논일에 물건을 내줬을 뿐이니 또한 죄가 없다.
[덕중] 옳다, 너희 둘 다 면죄로구나. 애비는 하수인으로 무죄여, 자식은 종범으로 무죄다.
[이지] 포승을 끊고 방면해라.
[덕중] 어어, 시원히 잘 됐다. 어서들 가거라.
포승줄을 풀려고 허니 처가 등장.
[처] 너희가 우매하기로 조정에서 법을 제정한 뜻을 그르치는구나. 너희가 미물로 인간의 지혜를 따르지 못하는구나. 아이고, 일을 어찌하면 좋다는 말이냐. (그 자리에 덥석 앉아 퍼 질러 통곡을 한다.)
[덕중] 이것이 계집이오 사내요, 참 못두 생겼소.
[처] 내 너희가 영험하다는 말을 듣기로 한양에서 예까지 죽을 고생을 하고 왔더라만, 아이고 일을 어찌여. 아이고.
[이지] 그러면 너는 이 둘 중에 누가 수범인 줄 아느냐?
[처] 법에 이르기를 집안사람 중에 공범이 있을 때는 가장을 죄준다 했으니 그 아범이 수모지, 그럼 자식이 수모란 말이냐. 너희들은 애비보다 자식을 윗사람으로 치느냐.아이고, 엇다 저런 후레자식들을 만난다고, 아이고.
[이지] 정히 합당하다.
((덕중이 불식간에 달려들어 부의 면상을 박치기하니 부는 눈을 잡고 뒤로 넘어간다.))
[이지] 그러다가 봉사가 되면 어찌하려고 그러느냐.
[부] 봉사가 됐소.
[덕중] 제 자식놈 못된 짓 하는 것 보고도 놔뒀으니 그 눈은 둬서 뭣해. 어서 데려가거라.
[자] 꼭 좋은 말씀이오. (부를 끌고 나간다.)
[이지] 그러니 일을 어찌한다는 말이냐. 농약이나 얻어다 죽는 도리밖에 없다.
[처] 너희는 또 왜?
[이지] 저것들을 돌려보냈으니 한양 가서 받을 돈 백냥은 어디 가서 받겠소.
[처] 돈 백냥은 무엇에 쓰게?
[이지] 저 물 속에, 우리 팔순 노모께서 중환으로 누운 지가 수삼 년. 하루는 의원이 와서 하는 소리가 지상에 가서 더덕을 구해다가 구워 먹으면 회생하겠다고 해서, 저것이 내 외사촌이요. 저것하고 내가 문중에서 뽑히어, 그게 벌써 작년 이 맘때, 영산포로 인간이 되어 올라왔더니만, 더덕은 고사하고,아직 더덕이 어찌 생겨 먹은 형체도 모르고서, 그래 하도 답답해서 돈 백냥이나 손에 쥐면 구하지 아니할까 하고서. 그러니 이제는 죽을밖에.
[처] 그까짓 더덕을 구하는데 돈은 뭘해?
[덕중] 값이 그만하답니다.
처 : 너희 외사촌 간에 내 말을 또 들어 보거라. 내가 길쌈장사 수삼 년 만에 천하 부자 석숭이도 못 당할 만큼 쇠값은 벌었으니 세상 부러울 일이 있겠느냐마는 똑 한 가지로 내가 태냇병신으로 서방한테 소박을 맞았어.
덕중 : 언청이냐?
처 : 육손이다.
덕중 : 어디 보자. 말이 좋다. 이것은 곰배팔이로구나.
처 : 내 형색은 이래도 우리 서방님이 웬만한 계집은 깔고 앉는다.
이지 : 함자가 무어요?
처 : 춘풍이, 이춘풍.
이지 : 지금 어딨소?
처 : 나랏돈 집엣돈 다 긁어서 가지고서는 장사를 한답시고 평양 가서는 평양 명기 추월네로 작은집을 삼아 날 가는 줄 몰라. 내가 지난 달에 홧병으로 숟가락을 놓았다, 그렇게 기별을 보냈더니.
덕중 : 숟가락을 놨어?
처 : 식은 방귀뀄어.
덕중 : 냄새가 났어?
처 : 아, 이 자가 말을 어찌 듣나, 노랑머리 박박 긁구 두 손뼉 탁탁 치구 벽제로 갔어. 그렇게 기별을 보냈더니, 아이고, 저게 오는구나. (당당하던 기세가 까무라져 발까지 절며 서둘러댄다.) 내 두 눈 성한 걸 보면 개잡듯이 두들겨 팰 것이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나 좀 살려 다고.
덕중 : 그러면 식은 방귀 새 나가지 못하게 밑구멍을 꼭 잡으시오.
처 : 꼭 잡고,
덕중 : 숟가락을 꼭 잡고.
처 : 숟가락이 어딨나?
덕중 : 짚세기라도 벗어 잡구려.
처 : 짚세기 벗어 잡고.
덕중이 박치기를 하니 처는 벌렁 나자빠진다.
이지 : (염을 하며 곡을 한다.) 가련하다 춘풍의 처, 침제 길쌈 능란하여, 오푼 받고 새 버선 짓고 서 푼 받고 한삼을 짓고…….
춘풍이 등장한다. 염을 하는 것을 보고 슬피 운다.
춘풍 : 어이, 어이!
덕중 : 두 푼 받고 헌 옷을 깁고……
춘풍 : 어이, 어이!
이지 : 겨울이면 무명 나이, 여름이면 삼베 길쌈, 가을이면 염색을 하기, 이럼서 사시 장철 주야로 쉴새없이 거둔 돈을 장리에 월수 일수 놓아 수천 금을 모았구나.
춘풍 : 잠깐, 이보게 그것이 무슨 소린가?
덕중 : 염라국 십전대왕께 제문을 올리시는 중이오. 참견을 하려거든 글로 하시오.
춘풍 : 추월의 얼굴 모습 들어 보게. (곡을 붙여서) 사챙을 반개하고 녹의홍상 두르고 천연히 앉았으니 영광은 십오세라. 해당화 저리 가고, 서시는 이리 가고, 양귀비는 이저리 가고, 세월 가고, 소리도 다 가고 나서 남은 것이 추월이다. 내 이것을 천자문 보듯 두고 보려고 그러한다. 그 돈 수천 금은 꼭 나를 다고.
덕중 : 원, 사람이 누웠거든, 문상은 놔두고 문안이나 한마디 해 보시오.
춘풍 : 내가 지금은 상거지가 돼서 그 집 물 져 나르는 사환 노릇을 하고 있어. 먹느니 이 빠진 헌 사발에 누른밥에 토장덩이 한 가지로 연명을 하는 지경이여. 그 돈 수천 금은 나를 꼭 다고.
처 : 애고, 이것이 무슨 소린가. 어디 마모색이나 봅시다. (형색을 살피고 내처 운다.) 애벌레 망건 쥐꼬리 당줄 통영갓은 어디 두고 파립 파관이 웬일이오?
춘풍 : (귀찮아서 뿌리치며) 그래, 내가 집 나올 적에 돈 한 푼 팔 푼이며, 자식 삼 형제를 살기 좋게 마련을 해 주고 훨훨 단신 나온 나를 웬 송장 시늉까지 해가며 이리 추잡하게 찾아다닌단 말인가.
처 : 그래, 그 돈 한 푼 팔 푼은 당신이 집 떠날 적에 하도 섭섭해서 청어 한 못 사가지고 당신 한 마리 나 아홉 마리 안 먹었소.
춘풍 : 그래, 자식 셋은 다 어쨌나?
처 : 큰놈은 나무하러 가서 정자나무 밑에 낮잠 자다가 솔방울 맞아 죽고.
춘풍 섧게 운다.
처 : 둘째 놈은 앞 도랑에서 미꾸라지 잡다가 물에 빠져 죽고.
춘풍 섧게 운다.
처 : 셋째 놈은 하도 귀여워 어루다가 경끼로 풍에 걸려 죽었소.
춘풍 섧게 울다가 홧김에 휘둘러치니 처는 졸도를 한다.
이지 : 아니, 돈 수천 금을 꼭 달라고 해서 말을 붙여 보라고 살려 놓았더니 기껏 도루 죽이나.
춘풍 : 아들 삼 형제 죽어 버렸는데 세간은 남겨서 뭘해.
덕중 : 세간 없이 추월이는 어찌 보구?
춘풍 : 아참, 그렇지. 의원, 의원!
이지 : 급상한이라 난치병이여.
춘풍 : 봉사, 봉사님.
부 : (지팡이로 앞을 더듬거리며 나온다.) 어디서 불렀소?
춘풍 : 여기요 여기. 어서 죽은 사람 살아나는 경을 읽어 주시오.
부 : 성씨가 무엇이오?
춘풍 : 심달래 심씨.
부 : (지팡이 끝에 달린 요령 소리를 내고) 해동 조선국 서울시 남산 거주 심달래 신운이 불길하여 우연졸도, 명재경각하였으니 천지 신명은 대자대비하옵소서.
(요령 소리)
돈부 따는 저 처자야
니 머리 끝에 드린 댕기
공단이냐, 아하하 헤헤이요.
비단이면 무얼 하고 공단이면 무엇을 할까. 아하하 헤이요.
춘풍 : 경을 다 읽었소?
부 : 경을 다 읽으면 살겠소.
춘풍 : 경을 얼마나 읽었나?
부 : 경을 꼭 절반.
춘풍 : 어서 읽게.
부 : 복채를 내시오.
춘풍 : 얼만가?
부 : 돈 꼭 천 냥.
춘풍 : 그만둘라우. 치우시우.
부 : 이대로 중도막에 끝내두면 죽었다 살아났다 이승 저승을 오락가락하여 나중에 성가셔서 어쩔라고.
춘풍 : 수천 금 너 다 주고 나는 이 병신 업고 장마다 구걸을 다니고? 치워. 갖다 묻어야겠어
부 : 그럴라면서 뭐하러 경을 읽으라고 불렀나. 그냥 편케 가게 놔두지.
춘풍 : 이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네. 이것이 생기기는 찌그러졌어도 명색이 처자여. 가 향도꾼이나 부르게, 출상을 하여야겠네.
부 : 출상은 뭣하러 하나, 여게 그냥 묻지.
춘풍 : 내가 이것이 죽었단 소릴 듣고 와서 아직 후행을 못하였어. 내 저를 버린 것은 기왕지사요. 내 후행이나 한자리 신명지게 놀아야겠네. (안에 대고 소리친다.) 향도, 향도꾼!
옥리 차림새를 한 세 장정이 지쳐 들어온다.
상청에 절하듯 곡하고 큰 절.
옥리 1 : 내가 솔방울에 맞아 죽은 자식이오, 아부님 데릴러 왔소.
옥리 2 : 내가 미꾸라지 잡다 죽은 자식이오, 큰성님 따라왔소.
옥리 3 : 내가 경끼로 풍에 걸려 죽은 자식이오, 두 성님 쫓아왔소.
옥리들 슬피 울더니 불식간에 달려들어 춘풍을 떠멘다.
<하략>
작자 : 오태석(吳泰錫 1940- )
형식 : 희곡. 희극
성격 : 구성의 해체. 즉흥적 대사
특징 : 전통극인 탈춤의 극적 형식을 창조적 원천으로 하였음
주제 : 세속적 인물의 허위 폭로
출전 : <오태석 희곡집>
성격
이춘풍 : 장사하는 시장 건달. 세속적 인물
춘풍 처 : 전통적인 여인상과 달리 직접 현실 생활에 뛰어들어 남편에 대한 열(烈)을 실현하는 새로운 타입의 여인
덕중, 이지 : 춘풍의 허위를 폭로하며 극에 희극적 성격을 부여하는 인물
줄거리
평양에 장사하러 갔다가 기생 추월에게 빠져 돌아오지 않는 춘풍을, 그의 처가 찾아 나선다. 도중에 수중(水中) 세계에서 노모를 살리기 위해 더덕을 구하러 지상에 나온 이지와 덕중을 만난다. 이들은 은(銀)을 밀반출한 부자(父子)를 서울로 압송하는 중인데 그 상금으로 더덕 구입비를 마련하려고 한다. 부자(父子)를 놓아 주고 서로 신세 한탄을 하는 데 춘풍이 나타나고 춘풍에게 맞아 그 처는 졸도한다. 춘풍의 처가 죽은 줄 알고 출상을 하려는데 옥리들이 춘풍을 평양으로 잡아간다. 독경하러 왔던 봉사가 춘풍 처의 돈을 빼앗아 가고, 춘풍 처는 미물들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덕중 조카의 자식을 낳아준다. 평양 감사가 된 춘풍 처는 재판 중에 추월을 만나 싸우다 쓰러진다. 춘풍은 추월이가 죽은 줄 알고 곡을 하는 중에 처가 일어난다. 춘풍의 처는 춘풍과 한바탕 어울려 놀고 난 뒤 기함(氣陷)하여 정말 죽는다. 굿이 치러진 뒤 이지와 덕중만 남는다. 본문에 수록된 부분은 제1장의 한 부분이다.
내용 : 탕아(蕩兒)인 춘풍과 가정을 정상적으로 꾸려 가고자 하는 처 사이의 갈등을 중심 갈등으로 한다. 그러나 희극적 분위기 속에서 춘풍, 처, 추월의 삼각 갈등도 파국에 이르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운 연상과 전환을 통한 즐거움이 잘 드러난다.
구성 : 고전 소설 “이춘풍전”의 내용을, 서구에서 들여 온 무대의 틀을 고집하지 않고 전통극인 탈춤의 극적 형식에 따라 재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전체의 줄거리보다는 각 장면이 주는 즉흥적인 놀이로서의 즐거움이 중시된다.
표현 : 현대 희곡의 주류인 사실주의 계통에서 벗어나 구성의 해체와 즉흥적인 해학적 대사를 통해 희극성을 실현했다. 비극을 웃음으로 감싸는 서민적 정서를 대변함.
소재 : 이 작품의 소재가 된 우리 고전 작품은 여러 가지이다. ‘이춘풍전’에서 소재를 취했지만 ‘봉산탈춤’의 ‘미얄과장’의 내용과 구성을 수용했다. 이지와 덕중은 용왕의 약을 구하러 나온 자라를 연상케 한다. 그러면서 이 두 사람은 ‘봉산탈춤’의 말뚝이와 같은 역할을 하며 극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춘풍의 처가 남편의 구출을 위해 다른 사람의 애를 낳아 주는 것은 바리 공주와 닮았다. 또 애를 낳는 장면은 ‘구지가’를 이용하고 있다.
형식적 특징 :
우리의 현대 희곡은 사실주의 계통이 주류인데 오태석의 작품은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구성의 해체, 즉흥적 대사가 그 특징이다. 그리고 그는 서구에서 들여온 무대의 틀을 벗어나 우리 전통극인 탈춤의 극적 형식을 창조적 원천으로 삼고 있다.
고전 소설 「이춘풍전」을 「봉산 탈춤」의 ‘미얄 과장’의 형식으로 변용한 현대 희곡 작품이다. 심각한 사연이나 상황을 희극으로 감싸거나 전환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표현과 구성 방법에 주목해 보자.
등장 인물 춘풍 처 이지(李知) 덕중(德中) 부(父) 자(子) 추월(秋月) 화조(花朝) 외 다수 |
제1막
<전략>
처 너희 외사촌간에 내 말을 또 들어 보거라. 내가 길쌈장사 수삼 년 만에 천하 부자 석숭[중국 진(晉)나라 때의 대부호.]이도 못 당할 만큼 쇠값[돈]은 벌었으니 세상 부러울 일이 있겠느냐마는 똑 한 가지로 내가 태냇병신으로 서방한테 소박[처나 첩을 인정 없이 모질게 대함.]을 맞았어.
덕중 언청이[윗입술이 선천적으로 세로로 갈라진 사람. 또는 그런 입술. 결구(缺口). [속담][언청이 아니면 일색] 결점만 없으면 좋을 것이라고 칭찬하는 듯하면서 사실은 결점이 있으니 어쩌겠냐고 비꼬아 이르는 말.]냐?
처 육손이[손가락이 여섯 개 달린 사람]다.
덕중 어디 보자. 말이 좋다. 이것은 곰배팔이[팔이 꼬부라져 붙어 펴지 못하거나 팔뚝이 없는 사람.]로구나.
처 내 형색은 이래도 우리 서방님이 웬만한 계집은 깔고 앉는다.[여자를 부리고 유혹하는 재주가 능란하다.]
이지 함자[남의 이름을 높여 일컫는 말]가 무어요?
처 춘풍이, 이춘풍.
이지 지금 어딨소?
처 나랏돈 집엣돈 다 긁어서 가지고서는 장사를 한답시고 평양 가서는 평양 명기 추월네로 작은집[첩 : second]을 삼아 날 가는 줄 몰라[이춘풍의 낭비벽과 주색잡기를 말함]. 내가 지난 달에 홧병으로 숟가락을 놓았다[스트레스로 죽었다는 의미, 죽었다는 의미의 대유], 그렇게 기별을 보냈더니.
덕중 숟가락을 놨어?[죽었다는 뜻을 잘못 알아들음. 문자 그대로 이해함..]
처 식은 방귀뀄어.[죽었다는 관습적 표현을 사용]
덕중 냄새가 났어?[죽었다는 뜻을 잘못 알아들음. 문자 그대로 이해함.]
처 아, 이 자가 말을 어찌 듣나[관습적 표현을 문자 그대로 이해했기 때문에], 노랑머리 박박 긁구 두 손뼉 탁탁 치구 벽제로 갔어. 그렇게 기별을 보냈더니, 아이고, 저게 오는구나. (당당하던 기세가 까무러져 발까지 절며 서둘러 댄다.) 내 두 눈 성한 걸 보면 개 잡듯이[죽일 것처럼] 두들겨 팰 것이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나 좀 살려 다고.
덕중 그러면 식은 방귀 새 나가지 못하게 밑구멍을 꼭 잡으시오. - 춘풍의 처가 남편에게 거짓 기별했음을 고백
처 꼭 잡고.
덕중 숟가락을 꼭 잡고.
처 숟가락이 어딨나?
덕중 짚세기라도 벗어 잡구려.
처 짚세기 벗어 잡고.[익살스러움과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의 연속]
덕중이 박치기를 하니 처는 벌렁 나자빠진다.[가사(假死) 상태에 빠지게 함] - 우수꽝스런 상황
이지 (염[죽은 사람의 몸을 씻은 뒤에 수의를 입히고 염포로 묶는 일.]을 하며 곡을 한다.) 가련하다 춘풍의 처, 침제[침자나 침선을 의미하는 말인 듯으로 바늘과 바느질] 길쌈[실을 내어 옷감을 짜는 모든 일]능란하여, 오푼 받고 새 버선 짓고 서 푼 받고 한삼을 짓고…… - 춘풍 처의 거짓 죽음
춘풍이 등장한다. 염을 하는 것을 보고 슬피 운다.
춘풍 어이, 어이!
덕중 두 푼 받고 헌 옷을 깁고……
춘풍 어이, 어이!
이지 겨울이면 무명 나이[무명 낳이 : 물레를 실을 뽑아 베틀로 무명을 짜는 일], 여름이면 삼베 길쌈, 가을이면 염색을 하기, 이럼서 사시 장철 주야로 쉴새없이 거둔 돈을 장리[곡식을 꾸어 주고 받을 때 붙는 한 해 이자로, 1년에 본디 곡식의 절반이 되는 변리.]에 월수 일수 놓아 수천 금을 모았구나.[제문의 일부]
춘풍 잠깐, 이보게 그것이 무슨 소린가?[유산(遺産)이 많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하여]
덕중 염라국 십전대왕께 제문을 올리시는 중이오. 참견을 하려거든 글로 하시오.
춘풍 추월의 얼굴 모습 들어 보게. (곡을 붙여서) 사챙[비단으로 바른 창. 사창]을 반개(半開)하고 녹의홍상(綠衣紅裳 : 연두저고리에 다홍치마라는 뜻으로, 젊은 여자의 고운 옷차림을 이르는 말.) 두르고 천연히[시치미를 떼어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다] 앉았으니 영광(년광으로 젊은 나이)은 십오세라. 해당화 저리 가고, 서시[중국 월(越)나라의 미인.]는 이리 가고, 양귀비는 이저리 가고[추월이 꽃보다 아름답고, 미인으로 유명한 서시나 양귀비보다도 더 예쁘다는 뜻으로 한 말 / 엉뚱한 말이나 행동], 세월 가고, 소리도 다 가고 나서 남은 것이 추월이다[추월의 얼굴 모습 ~ 추월이다.: 춘풍은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거짓 통곡을 한다. 이는 '봉산탈춤'에서 영감이 본처인 미얄 할미의 죽음을 겉으로는 슬퍼하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것에서 빌려 온 모티브이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 오로지 기생 추월이 생각만 하는 부분이다.]. 내 이것을 천자문 보듯 두고 보려고[추월이를 가까이 두고 자꾸 바라보고 싶다는 뜻으로 한 말로 춘풍의 방탕한 성격이 잘 드러난다] 그러한다. 그 돈 수천 금은 꼭 나를 다고.[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 타인의 불행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임]
덕중 원, 사람이 누웠거든, 문상은 놔 두고 문안이나 한 마디 해 보시오.
춘풍 내가 지금은 상거지가 돼서 그 집 물 져 나르는 사환 노릇을 하고 있어. 먹느니 이 빠진 헌 사발에 누른밥에 토장[된장]덩이 한 가지로 연명을 하는 지경이여. 그 돈 수천 금은 나를 꼭 다고. - 처의 죽음 앞에서 추월만 생각하는 춘풍
춘풍의 처가 이 소리를 듣고 의식을 찾아 몸을 일으킨다.[춘풍이 ‘내가 지금은 상거지가 돼서 그 집 물 져 나르는 사환 노릇을 하고 있어. 먹느니 이 빠진 헌 사발에 누른밥에 토장덩이 한 가지로 연명을 하는 지경이여. 그 돈 수천 금은 나를 꼭 다고’라고 말하자 춘풍 처는 곧바로 죽은 척하는 자세를 풀고 일어나 춘풍을 걱정한다. 춘풍이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이다. 이를 보면 춘풍의 처는 춘풍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 애고, 이것이 무슨 소린가. 어디 마모색[말의 모색. 모색은 얼굴의 생김새나 차림새]이나 봅시다. (형색을 살피고 내처 운다.) 애벌레 망건 쥐꼬리 당줄 통영갓은 어디 두고 파립[찢어진 헌 갓] 파관이 웬일이오?
춘풍 (귀찮아서 뿌리치며) 그래, 내가 집 나올 적에 돈 한 푼 팔 푼이며, 자식 삼 형제를 살기 좋게 마련을 해 주고 훨훨 단신 나온 나를 웬 송장 시늉까지 해 가며 이리 추잡하게[지저분하고 잡스럽게] 찾아다닌단 말인가.
처 그래, 그 돈 한 푼 팔 문은 당신이 집 떠날 적에 하도 섭섭해서 청어 한 못[두름의 방언, 물고기 스무 마리를 엮은 것] 사가지고 당신 한 마리 나 아홉 마리 안 먹었소.[웃음을 유발시킴]
춘풍 그래, 자식 셋은 다 어쨌나?
처 큰놈은 나무하러 가서 정자나무 밑에 낮잠 자다가 솔방울 맞아 죽고.
춘풍 섧게 운다.
처 둘째 놈은 앞 도랑에서 미꾸라지 잡다가 물에 빠져 죽고.
춘풍 섧게 운다.
처 셋째 놈은 하도 귀여워 어루다가 경끼[경기 : 갑자기 의식을 잃고 경련하는 행동]로 풍에 걸려 죽었소.[자식들의 죽음을 전하는 대목을 과장된 표현으로 해학성들 드러내고 있음]
춘풍 섧게 울다가 홧김에 휘둘러치니 처는 졸도를 한다.[춘풍의 매를 맞고 졸도 / 해학적으로 형상화, 보기에 따라서 심각할 수도 있는 내용을 웃음을 유발하면서 처리하는 것은 한국 문학의 전통적인 표현 기법의 하나임. 이런 표현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려는 낙관적인 세계관에 대한 소망과 함께 세계의 무질서함에 대처하는 현대적 예지를 드러내고 있음 ] - 춘풍과 처의 재회 및 갈등
이지 아니, 돈 수천 금을 꼭 달라고 해서 말을 붙여[사람이 상대에게 말을 하여 어떤 대화가 이루어지게 하다] 보라고 살려 놓았더니 기껏 도루 죽이나.
춘풍 아들 삼 형제 죽어 버렸는데 세간은 남겨서 뭘해.
덕중 세간 없이 추월이는 어찌 보구?
춘풍 아참, 그렇지[자신의 방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춘풍이는 자기중심적 난봉꾼으로 여윳돈이 있어야 추월이와 만나기가 편하다는 것을 깨달음].. 의원, 의원!
이지 급상한[외부의 나쁜 기운으로 갑자기 생기는 병]이라 난치병이여.
춘풍 봉사, 봉사님. - 처가 죽은 줄 아는 춘풍
부 (지팡이로 앞을 더듬거리며 나온다.) 어디서 불렀소?
춘풍 여기요 여기. 어서 죽은 사람 살아나는 경을 읽어 주시오.
부 성씨가 무엇이오?
춘풍 심달래 심씨.
부 (지팡이 끝에 달린 요령 소리를 내고) 해동 조선국 서울시 남산 거주 심달래 신운[사람의 운수]이 불길하여 우연 졸도, 명재경각[(命在頃刻) : 거의 죽게 되어 숨이 곧 넘어갈 지경에 이름.]하였으니 천지 신명은 대자대비(大慈大悲 : 부처님이 중생을 사랑함)하옵소서.
(요령 소리[종 흔드는 소리])
돈부(동부로 팥과 비슷한 식물) 따는 저 처자야
니 머리 끝에 드린 댕기
공단이냐, 아하하 헤헤이요.[‘부’가 처음에는 제대로 명복을 비는 듯하다가 이 대목에 와서는 처녀를 유혹하는 총각이 부름직한 민요를 부르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대사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고 있음. 관객은 박장대소(拍掌大笑)할 것임 / 봉사가 죽은 아내 대신 춘풍을 놀려 웃음을 유발하려는 의도]
비단이면 무얼 하고 공단이면 무엇을 할까. 아하하 헤이요.
춘풍 경을 다 읽었소?
부 경을 다 읽으면 살겠소.
춘풍 경을 얼마나 읽었나?
부 경을 꼭 절반.
춘풍 어서 읽게.
부 복채[점을 쳐 준 값으로 점쟁이에게 주는 돈. 복차]를 내시오.
춘풍 얼만가?
부 돈 꼭 천 냥.
춘풍 그만둘라우. 치우시우.
부 이대로 중도막에 끝내 두면 죽었다 살아났다 이승 저승을 오락가락하여 나중에 성가셔서 어쩔라고.[이대로 ~ 어쩔라고.: 죽은 처를 살리는 주문의 대가를 천냥이나 요구하자, 춘풍은 그만 두고 그냥 출상하자 한다. 그러자 '부`가 춘풍을 협박하는 말이다. 주문을 중간에 끝내면 춘풍 처가 귀신이 되어 헤매며 괴롭힌다는 은근한 협박의 말고 보아 '부`는 엉터리 무당이다. 게다가 협박의 말이나 그에 대한 춘풍의 반응이나 모두 해학적이고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
춘풍 수천 금 너 다 주고 나는 이 병신 업고 장마다 구걸을 다니고?[아내의 목숨보다 돈을 소중히 여기는 춘풍의 이기적 태도가 드러남] 치워. 갖다 묻어야겠어.
부 그럴라면서 뭐하러 경을 읽으라고 불렀나. 그냥 편케 가게 놔 두지.
춘풍 이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네. 이것이 생기기는 찌그러졌어도 명색이 처자여. 가 향도꾼[상여(喪輿)꾼. 행상(行喪)때 상여를 메는 사람.]이나 부르게, 출상[상가(喪家)에서 상여가 떠남.]을 하여야겠네[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 - 아내의 죽음을 대하는 춘풍의 무관심한 태도
부 출상은 뭣하러 하나, 여게 그냥 묻지.[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춘풍의 진심을 알았기 때문에 냉소적으로 반응].
춘풍 내가 이것이 죽었단 소릴 듣고 와서 아직 후행을 못하였어. 내 저를 버린 것은 기왕지사요. 내 후행[나중에 행함]이나 한자리 신명지게 놀아야겠네[내 저를 ~ 놀아야겠네.: 춘풍이 아내의 죽음을 거짓으로 슬퍼했음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 (안에 대고 소리친다.) 향도, 향도꾼![죽은 아내를 보내기 위해 향도꾼을 부름]
옥리[감옥에 딸리어 있던 아전.] 차림새를 한 세 장정이 지쳐 들어온다.[세 장정이 나타난 것은 향도꾼과의 관계는 우연의 일치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상청[죽은 이의 영위를 두는 영궤와 그에 딸린 물건을 차려 놓는 곳.]에 절하듯 곡하고 큰 절.
옥리1 내가 솔방울에 맞아 죽은 자식이오, 아부님 데릴러 왔소.
옥리2 내가 미꾸라지 잡다 죽은 자식이오, 큰성님 따라왔소.
옥리3 내가 경끼로 풍에 걸려 죽은 자식이오, 두 성님 쫓아왔소.
옥리들 슬피 울더니 불식간에 달려들어 춘풍을 떠멘다.
춘풍 (소리친다.) 이것들아 죽은 것이 내가 아니여![춘풍은 옥리를 향도꾼으로 착각해서 하는 말이다.] 저기 죽거 자빠져 누웠는 너희 어멈이 안 보인다 말이냐, 어째 생사람을 떠메느냐! 고려장[(高麗葬) : 고구려 때에, 늙어서 쇠약한 이를 산 채로 묘실(墓室)에 옮겨 두었다가, 죽은 뒤에 그 곳에서 장사 지내던 풍습.]을 간다는 말이냐!
옥리 평양을 가오.
춘풍 아니, 그러면 너희가 추월이가 보낸 사환[관청이나 사삿집에 고용되어 잔심부름을 맡아 하는 사람.]이로구나[춘풍은 평이란 말에 자기가 사랑하는 추월이가 있는 공간인 것만을 생각하고, 옥리들이 평양에 있는 감사가 보낸 것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이렇게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는 춘풍의 모습에서 웃음이 유발된다. 따라서 해학적임.].. 옳거니, 추월이가 내 본마누내 보러 갔다고 앙탈이 났구만 그것이.
옥리 평양감사가 보냈소. 나랏돈 썼다고 국문[(鞠問) : 옛날 중죄인을 국청(鞠廳)에서 심문하던 일.]을 하잡디다.[평양 감사가 ~ 하잡디다.: 춘풍의 죽은 자식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던 앞의 대사와 비교해 볼 때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이 작품이 전통극을 창조의 원천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 준다. ]
춘풍 아이고, 영낙 죽었구나.
상여를 메듯 메고 나간다.
<후략>
<오태석 희곡집>
참고
○ 오태석(吳泰錫, 1940~ ) : 극작가. 충남 서천 출생. 1967년 「웨딩 드레스」로 등단. 전통 연희의 놀이적 요소를 원용하여 현대 연극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작품에 「초분(草墳)」(1973)을 비롯하여, 「태(胎)」(1974), 「사추기(思秋期)」(1979),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1990) 등이 있다.
친해지기
1. ‘춘풍’과 ‘처’의 대화 부분을 2명씩 짝지어 즉흥적으로 연기해 보자.
지도 방법 : `춘풍‘과 `처’는 서로 불신하면서도 그들의 행동이 과장적이고 해학적이어서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볼 때,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표현의 효과를 이해하고 소화할 것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이 작품은 리얼리즘 계열이 아니라 우연하게 이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고 그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심리적 경향에 따라 창작된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연기를 하도록 지도한다. `춘풍‘은 아내를 싫어하여 자기를 집요하게 찾아다니는 아내의 모습을 비난하며, 우연한 행동으로 처를 때려 졸도시킨다. `처’는 남편에게 절대로 밀리지 않는 익살맞고 해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춘풍의 과장적 행동 때문에 졸도하고 만다.
꼼꼼히 읽기
춘풍과 추월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고전 소설 「이춘풍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춘풍전」에서 이춘풍은 부인이 애써 모은 돈과 빌린 돈을 가지고 평양에 장사하러 가서는 방탕한 기질 때문에 기생 추월에게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는 추월의 사환 노릇을 하게 되는데, 「춘풍의 처」는 이 상황을 극의 배경 상황으로 삼고 있다. |
1. 이춘풍의 방탕한 기질을 잘 나타내는 대사를 찾아보자.
지도방법 : 고전소설 `이춘풍전‘과 현대 희곡의 연속성을 인물의 성격이라는 구체적인 기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춘풍은 기생 추월을 만나 놀다가 아내가 죽었다는 기별을 받고서야 돌아오며,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기는커녕 아내가 남긴 돈을 갈취하여 추월을 데려오려는 고약한 성품의 소유자임을 확인하게 한다.
풀이 : 춘풍은 아내의 죽음 앞에서 `추월을 천자문 보듯 두고 보려‘ 하므로 아내가 모은 `수천 금은 꼭 나를 다고.’ (p. 84 : 9~10)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춘풍의 방탕한 성격이 잘 드러난다. 또한 추월을 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덕중이의 말에 처를 살려내려고 하는데 `아참, 그렇지 의원, 의원!‘ (p. 85 : 8 ), 이는 자신의 방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춘풍이 얼마나 자기중심적 난봉꾼인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 춘풍의 처의 대사와 행동은 성실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았다는 내용에서 받는 이미지와 어긋난다. 근면, 성실의 이미지와 어긋나는 대사와 행동을 지적하고, 그것이 유발하는 효과를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작품은 희곡이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정보가 지문과 대사를 통해서만 나타나는데, 그 특징이 모순을 통한 웃음 유발에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활동이다. 춘풍의 처는 단순히 난봉꾼인 악인 춘풍에게 희생되는 근면, 성실한 선인의 이미지가 아니라는 점을 본문에서 찾아보게 한다. 남편을 잡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익살맞은 수다쟁이 여자의 느낌을 주며, 이것은 이 작품에 나타난 두 사람의 갈등이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해학적인 기법을 보여 주기 위한 수단임을 암시한다.
풀이 : 춘풍의 처는 남편을 불러오기 위해 자기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는데, 그 때문에 남편이 실제로 나타나자 `내 두 눈 성한 걸 보면 개 잡듯이 두들겨 팰 것이니‘ (p. 83 : 11~12)라 하면서 두려움에 떤다. 이것은 처가 근면 성실하기보다는 거짓말을 잘 하는 성격이라는 점을 나타낸다. 또한 남편을 만나서는 있는 돈으로 청어를 사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p. 84 ; 21~22) 실제로 매우 낭비벽인 심한 여성임을 드러낸다. 이처럼 자기에 대한 소개와 실제 행동의 모순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유발하며 두 사람의 긴장된 갈등 관계를 이완(弛緩)시킨다.
탐구 / 한국 문학에서 희극적 정신의 전통
춘풍의 처가 춘풍을 찾아 나섰다가 이지와 덕중을 만나 수작을 하는 중에 춘풍이 등장하여 서로 만나고, 또 춘풍의 처가 춘풍에게 맞아 졸도하는 장면의 설정은 「봉산 탈춤」의 ‘미얄 과장’에서 미얄과 영감의 상봉 대목을 응용한 것이다. 즉 춘풍은 영감으로, 처는 미얄로 그 성격이 전환된 것이다. 또 춘풍의 처가 죽은 척하거나, 춘풍과 처가 대화하는 것이나, 춘풍에게 맞아 처가 졸도하고 춘풍이 의원을 찾아가는 것 등도 ‘미얄 과장’의 사건에서 가져온 것이다. 소설 「이춘풍전」은 춘풍의 방탕함과 춘풍 처가 계략을 써서 남편을 구출하고 또 망신을 준다는 이야기 자체가 희극적이지만, 「춘풍의 처」에서는 사건만이 아니라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 모두가 희극적이다. 이와 함께 극중 상황의 빠른 전환도 탈춤의 극중 상황의 자유로운 변환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독자나 관객은 춘풍 처의 심각한 상황과 사연을 무겁게 인식하지 않고, 희극적 난장 속에서 웃음과 함께 되새길 수 있게 된다. |
지도 방법 : 한국 문학에 나타난 희극적 정신의 전통은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으며, 그것은 장르와 시대를 불문하고 발현되어 왔다. `춘풍의 처‘는 첩의 존재로 인한 부부 갈등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두 사람의 행동에서 과장적인 제스처로 인해 예기치 못한 사건이 전개되고, 심각한 행동을 해야 할 상황에서 말을 못 알아듣거나 엉뚱한 일이 일어남으로써 긴장이 풀리는 식의 구조가 반복된다. 이러한 방식은 심각한 고민을 표출하는 해학적인 방식이며, 전통극인 `봉산 탈춤’을 비롯하여 각종 판소리 사설 등에서 발견되는 기법이다.
교사는 이러한 기법을 지도할 때에 이들 방식이 단순히 기법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낙관론적, 현실 중심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 문학은 조선 후기의 비판적 문학에서도 결코 파국적인 결말을 이끌지 않으며, 웃음을 유발하는 간접적인 비판을 선호해 왔다. 이는 이인직 등 신문학이 `춘풍의 처‘에 나타난 부부 갈등을 파국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급격히 전환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희극적 정신 : 심각한 고민 속에서도 그것을 표출하는 방법은 흥겨운 놀이인 양면성을 견지.
풍자와 해학 : 비판적 발언을 할 때에도 웃음을 유발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활용.
비극의 부재 : 일원론적 현실주의에 근거하여 슬픔 자체보다 슬픔의 극복을 강조.
3. 「봉산 탈춤」의 ‘미얄 과장’에서는 미얄과 영감이 만나는 장면에서 탈춤의 반주를 맡은 악공이 작중 현실에 개입한다. 춘풍과 처가 만나는 장면에서 악공과 같은 역할을 하는 두 인물을 지적해 보자.
지도 방법 : 작품의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춘풍의 처‘가 고전 작품인 `봉산 탈춤’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활동이다. 교사는 `봉산 탈춤‘의 `미얄 과장’에 대해 미리 설명해 준다. `봉산 탈춤‘에서는 악공이 미얄과 영감이 만나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즉 악공은 번갈아 가며 무대에 등장하는 미얄과 영감을 한 번씩 만나고 둘이 상봉하도록 하며,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두 인물의 상봉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유발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풀이 : 춘풍과 처가 만나는 장면에서 악공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지‘와 `덕중’이라는 수중 세계의 존재들이다. 이들은 먼저 춘풍 처를 만났다가 처가 죽은 시늉을 하고 있는 동안 춘풍을 만나 두 사람을 서로 연결시켜 준다.
도우미
`봉산 탈춤‘의 `미얄 과장’
`봉산 탈춤‘전체 7과장 중 마지막 과장으로, 조선 후기 민중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망을 쪼는 일을 하는 영감과 무당 할멈인 미얄 부부가 전란으로 인해 헤어지고, 영감의 첩인 덜머리집이 등장하여 미얄과 싸운다. 이어 영감이 나타나 미얄과 다투다가 미얄을 마구 때려죽인다. 이 가운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개 인물이 악공이다. 미얄과 영감은 악공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재회하며, 이들의 익살맞은 대화 내용이 작품의 분위기를 해학적으로 이끌어 부부의 다툼과 아내 살해라는 비극적 사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희극적으로 이끌고 있다.
4. 춘풍이 그 처가 죽었다고 보고 향도꾼을 부르는 데서부터 옥리가 춘풍을 떠메고 나가는 데까지는 다음 두 가지가 웃음을 유발한다. 구체적으로 지적해 보자.
지도 방법 : 작품의 표현상의 효과 가운데 해학의 구체적 양상을 확인하고 원인을 찾아내는 활동이다. 인물이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착각, 과장, 의도적으로 잘못 알아듣기, 엉뚱한 말하기, 우연히 일어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 등이 작품의 본질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며, 이는 웃음을 통한 슬픈 상황의 극복이라는 고전적 지혜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1) 춘풍이 예측 못한 상황의 전개
춘풍은 처의 장례를 치르고 신명나게 놀아 보기 위해서 향도꾼(상도꾼)을 불렀으나, 때 마침 죽은 춘풍의 아들들이 옥리가 되어 춘픙을 잡으러 온다. 향도꾼을 불렀을 때 마침 옥리가 등장하는 우연히 웃음을 유발한다.
(2) 춘풍의 착각
춘풍은 이들이 평양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추월이 자기를 데리러 온 것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춘풍이 나랏돈을 훔쳐 썼기 때문에 처벌하러 온 것이다. 춘풍은 이를 모른 채 평양이라는 말만 듣고 자기를 모시러 온 것으로 착각하는 상황이 웃음을 유발한다.
시야 넓히기
다음 글은 「흥부전」 중 흥부의 가난을 묘사한 부분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집안에 먹을 것이 있던지 없던지, 소반이 네 발로 하늘께 축수하고, 솥이 목을 매여 달렸고, 조리가 턱걸이를 하고, 밥을 지어 먹으려면 책력을 보아 갑자일이면 한 때씩 먹고[삼순구식(三旬九食) ], 새앙쥐가 쌀알을 얻으려고 밤낮 보름을 다니다가 다리에 가래톳이 서서 파종(破腫)하고 앓는 소리, 동리 사람이 잠을 못 자니, 어찌 아니 설울손가. 파종(破腫) : 종기를 터트리는 것. 흥부전 : 작자 미상의 판소리계 소설로 조선 후기 서민들의 가난과 그 해결을 둘러싼 우애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형 놀보와 흥보의 심성과 행위를 극명하게 대조, 과장하는 수법을 통해 두 사람의 우애의 위기를 희극적인 골계미로 표현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인과응보(因果應報)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주제를 담고 있어 고전 소설의 전형성을 갖추고 있다. |
지도 방법 : 웃음을 통한 슬픔의 극복이 우리 고전 문학 전반에 나타나는 모티프라는 점을 심화된 구체적 자료로 확인하는 활동이다. 전체적으로 가난으로 묘사하는 이미지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들이 사실적인 가난의 모습을 보여 준다기보다는 과장적이고 웃음을 유발하는 형태로 변형되어 있음을 주지시킨다.
풀이 :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 상황의 슬픔에만 집중하지 않고 상황이 가져다 두는 해학적인 변화에 주목하고 그것을 과장하고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새앙쥐가 쌀알을 얻으려고 분주히 다니다가 다리에 종기가 나고, 그것을 터뜨리는 소리 때문에 이웃 사람들이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은 실제는 아니지만 고통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고 웃음을 유발하는 과장과 해학인 것이다.
도우미
한국 문학의 전통으로서 웃음의 문학
우리 문학 속에서 차단의 구조를 통해 웃음을 자아내는 전형적 인물로 `춘향전‘의 `방자’와 `적벽가‘의 `정욱’ 같은 유형을 들 수 있으며, 가면극에 나오는 `말뚝이‘ 또한 이러한 인물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인물들은 문맥의 차단이라는 구조를 통하여 신분의 열세를 역전시키는 우월성을 형성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들이다. 현대에 와서 채만식의 소설 `치숙’이 보여 주는 웃음의 구조도 이러한 예라 할 수 있다.
문학 속에 나타나는 차단 구조가 실은 일상의 어법 속에 널리 유용될 정도로 뿌리가 깊은 것임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상을 갔을 때 상주를 웃기는 것이 훌륭한 문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전통이라던가, 쩔쩔맬 정도의 일을 당했을 때 함께 그 당혹감 속으로 몰입하는 대신에 바라보는 입장이 되어 말을 던짐으로써 그 당혹으로부터 빠져 나오게 하는 사례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한 예로 문에 머리를 부딪치고 쩔쩔매는 아이에게 “그렇게 해서 머리가 깨지겠니?” 해서 어처구니없이 웃게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는 차단을 통한 국면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김대행, `거리두기와 바라보기의 노래‘, `노래와 시의 세계’, 역락, 2000.
표현하기
춘풍이 봉사를 찾아가 죽은 사람 살아나는 경을 읽어 달라 하자 봉사는 요령을 흔들고는 엉뚱한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 대신에 같은 효과를 내는 다른 노래를 찾아 넣거나 새롭게 만들어 넣어 보자.
지도 방법 : 한국 문학의 전통인 웃음을 통한 슬픔의 극복 모티프를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구체적인 표현 활동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이다. 슬픈 상황에서 맥락이 닿지 않는 사물을 연상하여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노래를 찾아 넣어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되어 있음에 각별히 유의하도록 지도한다.
예시 답안 :
저녁에 마실을 즐겼더니
홍당목 치마가 열두 챌레
저녁을 먹구서 썩 나서니
이웃집 김도령 눈짓하네
손짓을 하여도 모르는데
눈짓을 하여서 누가 알가
총각 낭군을 좋다 했더니
우리집 서방님 상투 벴네
상투만 베며는 총각인가
뒷머리 따야만 총각이지
-`각시타령‘, 김태갑, 조성일 편, `민요집성’, 한국 문화사, 1996.
죽은 사람을 살려 내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타박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봉사가 죽은 아내 대신 춘풍을 놀려 웃음을 유발하려는 의도를 담을 수 있다.
더 읽을거리
서대식, `한국 무가의 연구‘, 문학사상사, 1980.
오태석,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오태석 희곡집2’, 평민사, 1994.
주강현, `우리 문화의 수수깨끼2‘, 한겨레신문사, 1997.
고전 소설 “이춘풍전(李春風傳)”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봉산 탈춤”의 미얄 과장의 내용과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중심 갈등은 탕아(蕩兒)인 춘풍과 가정을 정상적으로 꾸려 가고자 하는 그 처 사이의 갈등이다. “이춘풍전”에서 춘풍은 희극적 인물이고 그 처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두 사람 모두 희극적이다. 게다가 등장 인물의 대사가 골계로 일관되어 있다. 작품의 희극성은 덕중과 이지의, 탈춤에서의 말뚝이 같은 역할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춘풍, 처, 추월의 삼각 갈등도 첨예한 직선적 충돌을 거치지만 파국으로 가지는 않는다. 일관된 갈등의 추구보다 오히려 이 작품은 자유로운 연상과 전환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한다. 비극을 웃음으로 감싸는 우리의 서민적 정서를 잘 재현했다.
오태석(吳泰錫 1940- )
극작가. 1967년 “웨딩드레스”로 등단. 전통과의 연관을 통해 새로운 연극 세계를 구축했다. 한국 최초의 해외 공연 작품인 “초분(草墳)”(1974)을 비롯하여 “태(胎)”, “사추기(思秋期)”,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등이 있다.
오태석의 작품 세계
오태석은 1967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휘곡 '웨딩 드레스`로 등단한 이래 주목받는 극작가 ·연출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토속적인 민속극을 서구적 형식으로 과감히 전환시킴으로써 새로운 발전을 모색했다. 그의 작품은 기성 관념으로는 연출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진취적이며 전위적이다.
전통극과 현대극의 관계
한국의 전통극은 민간에서 행위로 전승되는 연극으로서 민속극이라고도 불린다. 본래 한국에는 전통적으로 창작 연극이 없었다. 민간에서 세시 풍속으로 전승되거나 떠돌이 연예인들이 마을로 다니며 연행하던 자료, 그리고 무당굿에서 놀이되던 자료가 현재까지 전해져서 학자들이 채록에 소개한 것이 한국의 전통 연극이었다. 따라서, 이들 전통극에는 작가 개인에 의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스토리나 플롯이 없다. 다만, 양반이나 중 등 이 지닌 권위나 허위 의식을 부분적으로 풍자하는 단편들이 삽화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정도이다.
20 세기에 들어와서 극장이 세워지고 신극 운동이 전개되면서 판소리를 각색한 창극과 소설 등을 각색한 신파극 등이 공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극은 한국의 전통극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서구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현대적 의미의 연극이었다.
(재미 있게 감상하기)
오태석 연극의 재미와 실험성
고려대학교 교수 서연호
30년이나 넘게 오태석의 연극을 보았지만, 그의 연극이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별로 없다. 아마 그의 모든 작품이 달랐고, 동일 작품도 매 공연마다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좀 수선스럽고 난해하다는 인상은 받은 적은 있다. 어떤 연극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소간의 실험성을 띠게 마련이고, 어느 연극인이나 젊은 시절에는 기성의 세계에 도전심을 갖는 것이 상례이지만, 오태석 같이 평생 실험성에 충만된 연극을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설험성에 대하여 '실험도 실험 나름'이라 하면서 실험 자체에 이의를 제기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내 관찰에 의하면, 한국연극계가 워낙 실험적 풍토가 취약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의 실험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30년이나 넘게 숱한 문제작을 써냈고, 그것도 공연할 때마다 새롭게 만들어냈다 는 사실은 개인적인 기호여부를 떠나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동시대의 환경 속에서 의미 있는 실험을 지속해 왔다는 것도 그를 획기적인 연극 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근거이다.
그는 언제나 실험을 표방한 실험주의자는 아니었다. 연극 자체가 언제나 실험으로 충만 되었을 뿐이다. 그의 연극은 기성품이나 재고품이나 일시적인 수선품이 아니었다. 한국의 고전이나 서양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경우에도 항시 그는 새로운 해석과 변화를 시도했다. 다시 만들고. 새롭게 만들고. 뜻있게 만들고자 했다. 이처럼 지독한 창조정신과 끈질긴 실험성이 그의 연극에 대한 재미를 점증시켰고. 아울러 재미를 제공해 온 요인으로 생각된다. 그의 <춘풍의 처>는 1976년 가을 창곡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수차례 공연되었다. 고전소설 <이춘풍전>에는 숙종 때 서울에 살았던 이 춘풍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놀러 다니다 가산을 탕진하고, 아내가 날품을 팔아 얻은 돈까지 다 날리는가 하면, 나중에는 빚까지 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춘풍의 반성에 감동하여 아내는 다시 큰 돈을 모아 주었지만, 춘풍은 장사를 빌미로 평양으로 가서 기생 추월과 방탕하다 거지신세가 되고, 그녀의 하인노릇까지 한다. 아내는 감사의 비장으로 변장하여 평양으로 가서 춘풍과 추월을 재판하고 개과천선시킨다. 춘풍은 나중에서야 아내의 존재를 깨닫고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
<춘풍의 처>에는 이상의 세 주인공이외에 모친의 치병을 위해 수중에서 올라온 이지와 그녀의 외삼촌이자 박치기꾼인 덕중, 밀수꾼 노릇을 하다가 잡혀온 부하 자, 자의 아내인 화조, 옥리들이 등장하여, 새로운 패러디 극을 연출해낸다. 공연할 때마다 관중을 포복절도시킨 이 작품은 작가에게 멍석 한 장의 공간에 사방을 다양한 몸짓으로 처리하는 것이 과제였다. 동시에 전통극이 지녀온 그 익살스럽고 능청맞고 변덕스럽고 표리부동한 말짓을 새롭게 되살려내고자 하는 것이 작가적인 탐구의욕이었다. 이런 방향에서 모색된 것이 바로 전통극의 방법 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키는 작업이었고,
그 화소는 <이춘풍전>에서 구해진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근현대연국사에서는 매우 희귀한 마당극. 놀이극. 변신극. 재담극이라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평범한 인간들이 멍석 한 장의 공간에서 수시 로 맡은 역할과 말을 바꾸어가며, 골계스럽게 놀아나는 한국형 코미디다.
인물 가운데 이지는 심청이 같은 심성을 지녔다. 위급할 때마다 출현하여 박치기 로 혼내주는 덕중은 꼭두각시놀음과 홍동지를 닮았다. 부는 그의 박치기에 봉사가 되고 다시 독경사가 된다. 탈춤에 등장하는 독경사와 흡사하다. 자는 나중에 화조 의 남편이 되고, 다시 춘풍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역시 화조는 기생 추월로 오인 된다.
마치 탈춤의영감과 할미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처럼, 정자나무 밑에서 낮잠 자다가 솔방울에 맞아죽은 춘풍의 장자와 미꾸라지 잡다가 물에 빠져 죽은 차자, 하도 귀여워 어르다가 경기로 풍에 걸려 죽은 삼자는 모두 평양성의 옥리가 되어 등장한다.
다양한 역할 바꾸기를 통해서 인간의 내면성은 다각도로 투영되고, 익살 과 풍자는 농도를 더해간다. 이 작품은 전통 탈춤과 꼭두각시놀음의 미학을 기본으로 <이춘풍전>을 환골탈퇴 시킨 현대적인 골계극이다. 등장인물들은 고전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만 행동의 의미가 동시대적인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화적인 원형 성을 지적할 수 있고, 춘풍처의 삶과 죽음을 일관해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제의극이라 할 수 있다.
이지와 부의 상면.처의 넉두리. 처의 춘풍의 상면. 춘풍의 구금. 처의 재판. 처와 추월과 춘풍의 갈등. 처의 죽음과 장례마당 등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처첩의 갈등이 고전과 같고 아울러 그 갈등을 표현하는 방법이 민속극과 같다. 민속극의 할미는 꼭두각시가 처와 같고, 영감과 박첨지가 춘풍과 같으며, 덜머리집(제물포 집)과 피조리가 추월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인형같은 과감하고 투박한 몸짓. 물리적인 저돌성과 솟구치는 에너지. 거짓의 대담한 폭로와 통쾌성 같은 것이 관객과 이 작품의 거리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면서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된다. 춘풍과 처가 수시로 장면에 끼어들면서 혹은 타인을 휘둘러 치면서 극적인 아이러니를 극대화 시키는 방법은 과연 그의 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이다.
결정적인 장면에서도 춘풍은 아내를 추월로 착시하고, 부부는 격정적인 성희롱을 벌리다가 서로 탕인과 같은 관계가 되며, 처는 춘풍을 아이처럼 낳는다. 죽은 자식 들은 옥리노릇 하다가 나중에는 상두꾼으로 변한다. 마지막에 추월은 진오귀굿을 하는 무녀가 된다. 아이러니가 극을 낳고, 극은 다시 아이러니로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국면의 매듭과 매듭을 어어가는 과정이 애매하게 처리된 것은 보완되어야 할 것이고, 인물들을 보다 객관화 시키는 작업이 요청된다.
그의 <부자유친>은 1987년 9월 서울연극제에서 무대화 되었다.
영조의 후계장인 사도세자의 사건을 세자빈인 홍씨가 <한중록>이라는 내용으로 기술해 놓은 고전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기존의 여러 동일. 동명 각색작품들과 공연양식이 현격히 다르고, 또한 해석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독창성이 보인다.
사실적인 이야기와 원인. 결과를 중시하는 연극구조를 중시하는 사람들 혹은 역사 적 정통성을 중시하는 사라들에게는 이 작품이 황당. 무원칙하고 낯설다는 비판을 수밖에 없었다. 일관된 줄거리도 없고. 세자의 광기에 이유도 없으며, 동시에 왕의 자식에 대한 증오와 학대에도 분명한 동기부여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존의 <한중록>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라는 점이다. 문예회관 소극장의 초연에서는 사람과 인형들이 공존하는 무대에 배우들이 섬세한 연기와 마치 인형이 움직이는 듯한 거칠고 투박한 연기가 적절하게 조화되어 신선 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세자의 역할(한명구)이 보여주는 박진감 있는 연기는 관객들의 숨을 죽이게 하고,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를 처절하리만큼 생동감 있게 표현 해냈다. 연극이 진행되어 갈수록 무대는 온통 정신병동의 내부 같은 분위기를 드러내고, 왕과 세자는 마치 경쟁이라도 벌리듯이 서로 광기를 뽑내었다. 등장인물들이 왕과 세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순간순간 함께 놀아나고, 끝내는 집단적인 최면상태에서 꼭두각시화 되어가는 과정은 이러한 이미지를 강렬하게 느끼게 했다.
『오태석희곡집2』에 거재된 <부자유친>은 초연의 무대와 일치하지 않는다.
초연 당시의 사진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지만, 그가 늘 그렇듯이, 연출과정에서 그의 희곡에는 새살이 붙게 되고, 행동의 구체성이 보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연극이 지향하는 정신과 방법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투시된다. 부자유친,이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매우 복잡한 의미와 미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과거 오륜적 개념의 부자유친이 있는가 하면, 부자간의 혈연적 애정도 있고, 보편적인 사랑으로서의 어른과 아이의 관계도 있다. 한 걸음 나아가서 생각하면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로서의 부자를 연상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불가피하게 갈등하고, 갈등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염려 하는 관계, 바로 이런 인간관계를 <한중록>의 사건을 빌어 생동하는 존재의 문제 로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 그의 <부자유친>이 아닌가 여겨진다.
극중에서 왕은 세자를 아사시키고, 세자는 죽으러 가면서 '세손이 보고싶다'고 외친다. 부자간의 원형적인 애증관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방법으로 치자면, 이 작품은 패러디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록>의 패러디. 그렇지만 부분의 페레디도 아니고, 전체의 페러디도 아니다. 환골탈퇴이자 원작을 뒤집은 아이러닉 패러디이다. 무대는 온통 익살스런 놀음을 보여주고, 사람들은 권력과 삶의 욕망으로 날뛰며, 행동 속에서는 현실에 대한 불만. 반항. 분노가 지속 적으로 노출된다. 모두가 죽음에 직면하여 살길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의 허우적거림이 부자간 권력의지의 그물망 속에서 처절한 익살로 전개된다. 세자의 자아 분열은 극중극으로 투영된다.
세자가 중심축을 이루고, 아울러 세자의 존재성이 분명해 질 때 작품의 의미창출이 선명해질 수 있다는 전망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극중극을 보다 구조화 하고, 극중극을 통해서 세자의 내면성을 보다 구체화 하는 대안이 실현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출처 : http://uucm.hihome.com/play/play0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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