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 본문 일부 및 해설 / 윤봉춘
by 송화은율유관순 / 윤봉춘
등장 인물
유중권 (관순의 아버지) 조(趙)속장 (유중권의 친구)
이 씨 (관순의 어머니) 간난이 (관순의 친구)
관 순 오줌제기 방우리 (관순의 친구)
관 복 (관순의 동생) 옥 자 (관순의 친구)
관 석 (관순의 동생) 에 순 (관순의 친구)
애 더 (관순의 사촌 언니) 하야시[林] (통역)
윌 터 (교장) 요시다[吉田] (오장, 헌병 분견대장)
순 덕 (관순의 친구) 강(姜) (수금하는 사람)
고마도 (일본인) 그 외 여러분
S# 1. 독립문(獨立門), 경회루(慶會樓), 고궁전(古宮殿), 창의문(彰義門), 성벽이 순차로 보인다.
독립문이 보이면서부터 해설 시작.
[해설] 왜적의 독아(毒牙)는 빛나는 반만 년 역사를 간직한 한국을 완전히 병탄(倂呑)코저, 일본의 흉적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우리 민족의 반역자 이완용(李完用), 이근택(李根澤), 박제순(朴齊純) 등의 흉계로 광무(光武) 9년 11월 17일 오후 3시 덕수궁에서 어전회의(御前會議)를 열어, 왜적의 무력적 위협으로 천추의 한이 되는 치욕의 소위 5조약은 체결되었다. 그 후, 1907년 7월 19일, 덕수궁 고종(高宗) 황제 폐하를 강제로 퇴위하시게 하고, 창덕궁 순종(純宗) 황제 폐하를 즉위하시게 하였다. 융희 4년 8월 29일, 한일 합방으로 인하여 삼천리 금수 강산은 드디어 일본에 예속되었다. 우리 민족은 자손 만대에 치욕적 노예가 되고 말았으며, 이조(李朝) 오백 년의 사직은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토 히로부미와 역적 이완용 무리의 흉계로 인하여, 1919년 고종 황제 폐하께옵서 돌연 승하(昇遐)하셨다. 의외의 비보(悲報)를 들은 이천 만 동포들은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애통을 금치 못하였다. 서울 대한문 앞에서는 수많은 백성들이 불철주야 통곡하고, 그 구슬픈 소리에 일월(日月)이 흐린 것 같았다.
S# 2. 대한문 앞
수많은 남녀 노소, 망곡(望哭)한다.
S# 3. 국장일(國葬日) 실황
[해설] 오늘은 고종 황제 폐하의 옥구(玉柩)를 모시는 날이다. 이조 오백 년의 역사를 마감하시고, 덕수궁의 옥좌(玉座) 용상(龍床)을 떠나시는 날이다. 오랫동안 왜적에게 갖은 풍운을 겪으시고, 한 많은 최후의 길을 가시는 것이니, 방방곡곡에서 운집한 백성들은 서울 장안에 수십만에 달하였다. 옥구는 종로(鐘路)를 지나, 창덕궁 앞에서 순종 황제 폐하께 마지막의 고별을 드리고, 동대문을 향하여 엄숙히 모시는 것이다. 거리거리에 모여든 동포들은 애도의 구슬픈 울음 소리, 비분함을 금할 길 없었고, 산천 초목도 눈물을 머금은 듯하였다. 말없이 타오르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는, 원한의 왜적에게 적개심은 더 한층 용솟음쳤던 것이다.
S# 4. 신문지
윌슨 미 대통령은 파리 강화 조약에서 14조 원칙을 발표, 약소 민족 국가의 해방을 주장. 미국 대통령 윌슨 씨는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한 14개 원칙 중의 하나로 민족 자결주의를 부르짖었다.
S# 5. 독립 운동의 각종 협회
[해설] 국권마저 빼앗긴 우리 민족은 각종 협회를 조직하여 민족의 단결을 도모하고, 여러 지사(志士)들은 중국, 미국 등지로 망명하고, 종교가, 교육가 할 것 없이 비밀히 민족 사상을 고취하였던 것이다.
‘독립 운동’의 자막(字幕)과 더불어 언론, 종교, 교육 등의 활동, 흥사단(興士團), 의사단(義士團), 신간회(新幹會), 건우회(健友會)의 자막과 더불어 국내 인물들의 운동을 노출.
S# 6. 인서트
50여 세의 장년(壯年), 큰 횃불을 들고 산언덕 밑 길에서 점점 가까이.
S# 7. 남대문
큰 자물쇠로 잠겨진 남대문(南大門), 보신각(普信閣) 종과 더블된다.(D.E.) 종은 사라지고, 굵은 종대가 남대문을 울리며 문은 왈칵 열린다. 동시에, 문 안에서 자막이 튀어 나온다. ‘기미년(己未年) 3월1일’, 점점 화면에 꽉 찬다.
[해설] 왜적에게 침략을 당한 지 10년 되던 해, 고종 황제 폐하의 국장(國葬)으로 인하여 서울로 모여든 기회를 이용하여, 기미년 3월 1일 우리 배달 민족의 울분은 드디어 터졌다.(이펙트로)
S# 8. 파고다 공원
파고다 공원 팔각정(八角亭)에서 대한 독립 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를 낭독한다. 손병희(孫秉熙) 선생을 비롯한 33인의 성명이 더블되며, 수많은 군중들의 흥분된 얼굴과, 일제히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는 장쾌한 모습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S# 9. 공원 정문 앞
군중들은 공원 정문으로 몰려나오며 만세를 부른다.
S# 10. 큰 길거리(종로 거리)
미칠 듯이 만세를 부르며 몰려간다.
S# 11. 상점 거리
상점들은 모조리 문을 닫는다.
S# 12. 어느 학교 정문
학생들, 몰려나오며 만세 부른다.
S# 13. 경찰서 정문
몰려나오는 무장 경관들, 더블되며, 전화하는 순사 얼굴, 전화를 받는 일본 헌병 얼굴, 이중 삼중된다.
S# 14. 종로 거리
일본 경찰관, 군중을 향하여 몰려온다.
한편, 헌병들 달린다. 만세 부르는 소리, 천지를 진동하며 들려 온다.
S# 15. 어느 길거리
군중과 학생들 합류되어, 만세 부르며 몰려온다.
한편, 헌병과 순사 달려온다. 일본 순사 한 명, 만세 부르는 학생을 환도(環刀)로 내리친다. 학생은 국기 든 손이 거의 끊어질 지경이다. 국기, 땅에 떨어지며 쓰러진다. 쓰러졌던 학생, 엉금엉금 기어서 왼손에 국기를 집어 들고, 억지로 힘차게 만세를 부르다 쓰러진다.
이 광경을 본 군중은 달려들어 순사를 얼싸끼고, 수라장이 된다.
S# 16. 큰 길거리 파출소 앞
군중, 만세를 부르며 몰려온다. 파출소 정문 앞에 어리둥절하고 서 있는 한인(韓人) 순사를 본 군중 한 사람, 소리친다.
“너는 배달 민족이 아니야, 이놈아.”
이 소리를 들은 한인 순사, 깜짝 놀라 모자와 웃옷을 벗어 던지고, 군중 쪽을 향하여 뛰 어오며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른다.
S# 17. 이화 학당 앞
이화 학당 정문의 간판을 바라보고 카메라 이동되면, 교정이다.
유관순, 제일 앞에 서고, 윌터 교장 선생님을 둘러싼 여학생들, 흥분에 넘친 얼굴. 그 중 관순이 교장 선생님을 바라보고,
관순 : 선생님, 저희들도 종로로 나가 만세를 부르겠습니다.
교장 : 안 됩니다. 거리는 위험합니다. 일본 순사들이 총칼을 들고 있습니다.
관순 : 선생님, 총칼이 무서워 못 나가면, 이 나라 삼천리 강산은 누가 찾아 주겠습 니까? 네―선생님.
교장 : 너무 흥분하지 말고, 좀더 침착하게 행동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소.
관순은 참을 수 없는 이 순간, 동무들을 바라보며,
관순 : 오늘만은 선생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밖에 없다. 우리 일은 우리들이 하자.
외치며 뛰어나간다. 뒤이어 학생들,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뛰어나간다. 교장, 물끄러미 멍하고 바라본다.
S# 18. 화로와 주전자(인서트)
화로에 얹혀 있는 물이 펄펄 끓는다. 뚜껑이 들썩들썩하며 대소동을 상징한다.
S# 19. 어느 길 골목
큰길 모퉁이에 일본 헌병이 무장을 하고, 오고 가는 행인들을 경계하고 있고, 이 거리 저 거리는 매우 삼엄하다.
S# 20. 어느 학교 정문
어느 학교 정문, 닫혀 있고, 일본 헌병이 경비한다. 이화 학당 정문에는 가로로 나무를 대어 촘촘히 못을 박아 놓았고, 일본 헌병이 경비하고 있다.
S# 21. 서울 전경
남산(南山)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전경.(PAN.)
S# 22. 남대문역 폼
열차에 타고 있는 관순과 애더는 창 밖 앞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고, 창 앞에는 순덕이와 동무들이 서 있다.
순덕 : 관순아, 애더야, 잘 가거라. 또 언제나 만날까.
관순 : 글쎄, 언제나 만날는지, 그럼 잘들 있어. 몸조심해라.
기차는 증기를 뿜고 기적 소리 울리며 바퀴는 돌기 시작한다. 창 밖에 머리를 내민 관순이와 순덕이 들은 서로 손을 흔들며, 차는 멀리 사라진다.
S# 23. 천안역(天安驛) 폼
기차가 천안역 표지 간판과 더블되어 도착되면, 애더와 관순이 내린다. 동시에 화면 사라지며, 고향길을 걷는다.
S# 24. 고향 길
산언덕 비스듬한 길. 멀리 집 동리를 바라보며 걸어오는 관순과 애더, 동구 안으로 점점 가까이 온다.
S# 25. 동구 앞길
물레방아는 돈다. 나무 그늘 밑에서 황소 새김질하며, 지나가는 관순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애더는 관순과 작별하고 저 편 길로 간다.
S# 26. 냇물가
냇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관복이와 관석이는 관순이를 보고, 고기 잡던 삼태기를 집어 던지고 누나 앞으로 뛰어가며, 일제히 “누나!”를 부르며 달려간다. 관순은 관복이와 관석이, 두 동생의 손을 잡고,
관 순 : 잘들 있었니?
두 동생 : 응, 누나, 어서 가. 집에서 엄마가 감자 삶아 놓고 기다리고 있어.
동생들은 누나의 손을 잡고, 너무도 기뻐 어쩔 줄을 모르며 동네 길을 걷는다.
<하략>
작자 : 윤봉춘(尹逢春 1902-1975)
형식 : 창작 시나리오
성격 : 사실적. 역사적. 전기적 경향 : 현실 참여와 고발
제재 : 3·1 운동과 유관순의 순국(殉國)
주제 : 일제의 무자비한 만행과 유관순의 고귀한 순국 정신
출전 : <한국 시나리오 대표 선집>
의의 : 광복 직후에 나왔던 항일 전기 영화의 대표작
줄거리
서울에서 벌어진 독립 만세 운동에 당황한 일제는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린다. 이화 학당에 다니던 유관순도 일제의 휴교령으로 고향 아오내로 내려온다.(발단) 유관순은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마을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을 계획한다.(전개) 마침내 아오내 장터에서 독립 운동 만세 소리가 터진다. 그러나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유관순의 부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유관순은 체포된다.(위기) 유관순은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 못 이겨 참혹하게 순국(殉國)하고,(절정) 일터 교장이 시신(屍身)을 인수하여 정동 교회에서 진혼 예배를 드림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결말)
특징
도입부의 삼일 운동 묘사가 매우 서사시적(敍事詩的)이다. 여기에서는 시나리오가 지닌 기법상의 특징인 내레이션이 유감없이 사용된다. 자막에 비친 사건의 배경은 내레이터가 충분히 해설함으로써 다큐멘터리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
사실(史實)을 근거로 하여 당시의 시대 상황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해방 영화’에 속한다.
대화와 해설을 통해 일제의 잔혹한 탄압과 우리 민족의 분노, 저항을 자세하고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영상 기법을 염두에 두고 실제 이야기의 줄거리와 관계없이 삽입된 장면에 의해 사건을 예고하는 표현이 나타난다.(예 : #18. 화로와 주전자) 이러한 표현은 연극 무대에서는 불가능하다.
문학사적 의의 : 광복 직후에 나왔던 항일 실록 전기 영화의 대표작이고, 역사의 재평가라는 과제를, 영화를 통하여 충실히 수행한 작품임.
독아 : 독이 든 이빨. 남을 헤치려는 악랄한 손아귀
병탄 : 남의 영토나 재물을 강제로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림.
광무 9년 : ‘광무’는 조선의 고종의 연호(1897-1907년까지 사용됨). 광무 9년은 1905년임.
독립문 - 순차로 보인다 : 독립문이 제일 먼저 나온 것은 이 작품이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와 그 투쟁 과정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천추의 한 : 오랫동안 남을 한.
그 구슬픈 소리에 일월이 흐린 것 같았다.: 일종의 과장법으로, 백성들의 슬픔과 그 곡소리를 강조하고 있다.
융희 4년 : ‘융희’는 조선 순종 때의 연호. 융희 4년은 1910년으로 우리 민족이 일제에 강점당한 해임
망곡 : 국상을 당하여 대궐문 앞에서 백성들이 모여 우는 일
옥구 : 임금의 시신을 모신 관
월슨 미 대통령은 - 부르짖었다 : 국제 사회의 여론이 개별 민족의 자결을 지지하는 쪽으로 흘렀고 우리의 삼일 운동도 이에 자극 받았음을 의미한다.
50여세의 장년 - 점점 가까이 : 3·1운동의 점화를 뜻한다. 여기서의 ‘횃불’은 독립 혹은 독립 운동의 상징이다.
큰 자물쇠로 - 화면에 꽉 찬다 : 일제의 사슬을 끊고 독립 투쟁이 힘차게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의 ‘자물쇠’는 일제의 강압 정치를 상징하며, ‘종대’는 독립을 염원하는 민족에게 독립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암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환도 : 옛 군복에 갖춰 차던, 군대에 쓰는 칼
수라장 : 전란이나 싸움 등으로 뒤범벅이 되고 끔찍스럽게 야단이 난 곳.
몰려나오는 무장 경관들과 겹치어 : 몰려나오는 무장 경관들 여럿의 모습이 겹치면서 경찰들의 당황하고 부산한 움직임의 노출이다.
이 소리를 들은 한인 순사, 깜짝 놀라 모자와 웃옷을 벗어던지고 -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른다. : 만세 군중의 함성과 위엄에 압도된 한인 순사가 각성하는 감격적인 장면이다.
쓰러졌던 - 부르다 쓰러진다. :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만세 운동을 전개한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삼엄 : 질서가 바로 서고 무서우리만큼 매우 엄숙함.
오늘만은 - 우리 일은 우리들이 하자 : 교장선생님의 인자한 만류보다는 조국의 해방이 더 큼을 상시시키며, 만세를 부르러 가겠다는 관 순의 의지를 표현
화로에 얹혀 있는 물이 - 대 소동을 상징한다. : 온 나라가 주전자에 갇혀 있는 뜨거운 물처럼 밖으로 뛰쳐나오기를 바라는 열기로 가득 찼음을 표현
어느 학교 - 일 헌병 경비하고 있다 : 3·1운동 직후 우리나라의 중요한 각급 학교가 일제 의해 폐쇄되었던 장면을 표현
남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전경 : 한 차례의 격랑이 지나고, 또 다른 사건을 예비하며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기 위해 전체적 구도를 설정하는 부분이고, 일제의 삼엄한 경계망을
보려주려는 장면이다.
동구 : 동네로 들어가는 길의 첫머리
새김질 : 소나 양 등이 먹은 것을 퇴내어 씹어 먹는 일.
삼태기 : 삼면으로 울이 있도록 대오리, 싸리, 짚, 새끼 등으로 엮어 만든 그릇.
물레방아는 - 동네 길을 걷는다. : 예나 조금도 다름없는 매우 평화롭고 서정적이며 목가적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평화로운 조국이 일제의 압제 아래 시달려야 한다는 사실에 유관순
은 가슴 아픈 것이다. 아직 만세 운동의 열기가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고향 마을이기에 유관순은 자신의 사명감을 느꼈을 것이다.
오, 너 왔구나 ― 죽일 놈들 : 3?1운동 후 서울의 모든 학교가 강제로 휴교될 줄 알았다는 말이다. 일제의 속성을 꿰뚫어 보고 있을 뿐 아니라 분노에 찬 목소리로 보아 민족의식이 매우 투철함을 알 수 있다.
학교 빚 - 또 왔지 뭐요 : 유관순의 아버지가 교육 사업에 투신하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빚을 져서 일본인 악덕 고리 대금업자에게 시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주면 - 잡아 하겠소. : 일제의 무력 통치에 편승하여 설치는 일본인들의 횡포를 짐작할 수 있다.
본전 3 백 냥 - 너무 하지 않소. : 당시 일본인 고리 대금업자들의 횡포가 잘 드러나 있다.
속장 : 기독교 감리 교회에서 속회(감리회에서 구역을 나누어 모이는 기도회)를 맡아 인도하는 사람.
오장 : 일제 강점기 때의 일본군 계급의 하나.
유상은 - 다 믿습니다. : 말로는 추켜세우고 인격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위험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은근한 위협으로 이해해야 할 대사이다.
저번 3월 1일 - 어치들 생각허시유 : 유중권과 조 속장의 반응을 은근히 떠보는 말이다. 그들의 반응을 통하여 그 속마음을 알아내어 대처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그런 짓을 획책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위협과 경고를 담고 있다.
오챠 : ‘엽차’에 해당하는 일본어
나마가시 : ‘생과자’에 해당하는 일본어
동이고 : 흩어지거나 떨어지지 않게 묶고.
요시찰 인물 : 행정·경찰상의 주의를 살 만한 사람. 일제는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몸을 바치는 한국 사람들을 요시찰 인물, 또는 불령선인이라고 분류하여 끊임없이 감시하고 괴롭혔음.
달걀로 - 치는 격 :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을 가리키는 속담으로 풍유법이다.
원래, 대대로 - 형편이랍니다 : 유중권의 지사다운 면모가 드러난 구절이다.
걸머메고 : 걸머지어 어깨에 메고
공론 : 사회 일반의 공통된 평론.
헌병대 개 노릇 : 일제 치하에서 일제에 빌붙어 애국지사들을 감시하고 밀고하는 등 반민족적 행위를 자행하던 한국 사람을 비꼬아 이르는 말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도 있어서 민족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고 그 결과 원망과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 되찾아야 한다. : 유관순의 강인한 독립 정신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우리들의 약한 힘이나마 뭉치면 못할 리 없어 : 독립 운동에 대한 유관순의 굳은 결의와 신념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신념과 의지가 그녀로 하여금 아오내 장터의 만세 운동을 주동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개흙칠 : 개흙을 마구 바르는 일. ‘개흙’은 강가나 개천가의 거무스름하고 고운 흙.
본전 턱은 - 갑절이나 되지 않았소. : 일본인이라는 자부심과 권력의 비호를 등에 업고, 한국인들을 괴롭히던 일본인 악덕 고리 대금업자들의 횡포를 잘 드러낸 부분이다.
순국 :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
진혼 예배 :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올리는 예배
관 순아! 어쩌자구 - 처녀 아니냐 : 만세 운동을 주도하려는 어린 딸이 걱정스럽고 불안스러워서 어머니는 은근히 그만두기를 권유한다. ‘큰일을 저지른다’는 ‘서슬 퍼런 일제의 감시 아래에서 만세 운동을 일으킨다.’를 의미한다.
어머니, - 큰일이 아니에요 : 자기희생을 각오한 유관순의 굳은 의지가 드러나 있다. 조국 강토를 찾는 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거룩하신 - 믿어요 : 유관순의 독실한 종교적 믿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만세 운동이 꼭 성공하리라고 믿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신념이라기보다는 신의 가호를 확신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작품은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만큼 읽는 이에게 보다 큰 공감과 감동을 느끼게 한다. 또한, 유관순의 일대기(一代記)에 초점을 맞추어 구성함으로써 사실감을 더하였으며, 3?1 운동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빠른 장면 전환으로 제시하여 긴장감과 위기감을 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은이는 이 작품을 8·15 광복으로 온 국민이 들떠 있던 시기에 발표함으로써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동시에 이런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나리오도 희곡과 마찬가지로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성 단계를 갖는 것이 일반적인데, 교과서에 수록한 부분은 발단과 전개의 일부이다.
광복 영화
‘해방 영화’라고도 불리는데, 8·15광복 직후의 감격으로 일제 강점기의 고통과 투쟁을 재현한 영화들이다. 1945-1950년 사이 우리 나라 영화계의 주류를 형성했다. 전창근의 ‘자유 만세’, ‘불멸의 밀사’, ‘이구영의 ’안중근 사기‘, 윤봉춘의 ’유관순‘, 이구영?윤봉춘 합작의 ’애국자의 아들‘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시나리오 ‘유관순’에 대하여
‘유관순’은 광복 직후의 용솟음치는 감격 속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도입부의 삼일 운동의 묘사가 매우 서사적이고, 이화 학당을 뛰쳐 나오는 16세 처녀 유관순의 열정도 감동적이다. 삼일 운동의 좌절과 일제의 탄압으로 전국의 학교가 휴교도자, 고향인 천안군에 내려가 음력 3월 1일을 기한 또한 차례의 삼일 만세 운동을 주모하는 관순의 활약이 자세히 그려진다.
이 작품에서 가장 격렬한 충격과 통분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일헌에 잡힌 관순이 재판정에서도 항일 절규하는 열화 같은 모습과 옥중 투쟁, 그리고 끝내 간독한 일제의 천인 공노할 만행으로 고문 치사당하는 부분이다.
‘유관순’이 허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사실에 의한 실록전기 영화이니만큼, 이 겨레를 능욕한 일제의 독정과 만행이 어떠했는가를 사실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화 학당의 월터 교장이 전옥으로부터 관순의 일곱 토막난 시체를 받아 내 정동 교회에서 진혼 예배를 보는 라스트 신은, 필자도 잊을 수 없는, 만감이 사무친 장면이었다. 윤봉춘 원로는 ‘유관순’을 59년도와 65년도에 다시 제작해, 전후 세 번이나 영화화했다. 이 작품에 대한 그의 애착과 집념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 준다. (출처 : 이영일의 ‘하국 시나리오 선집’에서)
윤봉춘(尹逢春 1902-1975)
1902∼1975. 영화감독배우. 함경북도 회령 출신. 회령보통학교를 나와 회령신흥보통학교 고등과에 진학하였는데, 이때 이 학교로 편입해 온 나운규J08349(羅雲奎J08349)를 만나게 되었다. 몇 해 뒤 나운규는 항일사건으로 회령을 떠나 북간도로 갔고, 윤봉춘은 태극기사건으로 청진형무소로 수감되었다.그 뒤 윤봉춘이 북간도 명동중학(明東中學)에 입학하였을 때 여기에서 또다시 나운규와 재회하였다. 그가 영화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나운규와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나운규가 그의 작품 〈들쥐〉(1929)에 윤봉춘을 연기자로 데뷔시켰기 때문이다. 〈잘있거라〉(1927)〈옥녀 玉女〉(1928)〈사랑을 찾아서〉(1928)〈사나이〉(1928)〈벙어리 삼룡(三龍)〉(1929) 등의 나운규의 영화에 계속 출연함으로써 연기자로서의 자리를 굳혔고, 그 뒤에도 이구영(李龜永)의 〈승방비곡 僧房悲曲〉(1930), 그리고 나운규의 마지막 작품인 〈오몽녀 五夢女〉(1937)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연기자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1930년에는 〈도적놈〉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이어서 〈큰무덤〉(1931)〈도생록 圖生錄〉(1938)〈신개지 新開地〉(1942) 등을 일제하에서 만들었는데, 그 작품들에는 그의 민족주의자로서의 자유사상이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제2차세계대전 말기에 일제의 어용영화단체인 조선영화인협회(朝鮮映怜人協會)의 가입을 거부하고 낙향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던 중,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영화활동을 다시 시작하였다. 1945년부터 1965년에 이르는 약 20년 동안에 20여 편에 가까운 작품을 연출하였다.광복 직후 1940년대 후반의 작품들은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광복영화(光復映怜)’라고 할 수 있는데, 〈윤봉길의사 尹奉吉義士〉(1947)〈31혁명기 三一革命記〉(1947)〈유관순 柳寬順〉(1948)〈백범국민장실기 白凡國民葬實記〉(1949)〈애국자의 아들〉(1949) 등을 들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1960년대에는 민족의식을 담은 사극을 많이 만들었는데, 〈처녀별〉(1956)〈논개 論介〉(1956)〈한말풍운 韓末風雲〉과 〈민충정공 閔忠正公〉(1959)〈황진이J37174(黃眞伊J37174)의 일생〉(1961)〈여인천하 女人天下〉(1962)〈애정삼백년〉(1963) 등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고향의 노래〉(1954)〈다정도 병이런가〉(1957)〈영원한 내사랑〉(1958)〈승방비곡〉(1958)〈인생대학 일년생〉(1959) 등은 당시의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관순
1902∼1920.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흥(高興). 충청남도 천안 출신. 아버지는 중권(重權)이며,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다. 1916년 기독교감리교 공주 교구의 미국인 여자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J53944(梨花學堂J53944) 교비생으로 입학하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 학교 고등과 1년생으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그 뒤 일제가 이화학당을 휴교시키자 고향으로 돌아와 교회와 청신학교(靑新學校)를 찾아다니며 서울에서의 독립시위운동 상황을 설명하고, 이 곳에서도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조인원(趙仁元)김구응(金球應) 등의 마을 지도자를 규합한 뒤 연기청주진천 등지의 교회와 유림계의 뜻을 합쳐, 이 해 음력 3월 1일 아오내〔橙川〕장날에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추진하였다.
이 날 수천 명의 군중이 모이자 맨앞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격렬하게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시위에서 일본 헌병의 총칼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살당하고, 그녀는 아오내 만세시위 주동자로 잡혀 일제의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다.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으나 이에 불복, 항소하여 경성복심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 소리높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일제의 한국 침략을 규탄, 항의하였다. 그리고 일제의 법률에 의해 일제 법관에게 재판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다 법정모욕죄까지 가산되어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중에도 틈만 있으면 큰소리로 독립만세를 불렀고, 그때마다 형무관에게 끌려가 모진 악형을 받았다. 그렇듯 불굴의 투혼으로 옥중 항쟁을 계속하다 1920년 19세의 나이로 끝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유관순이 참살된 지 이틀 뒤에 이 소식을 들은 이화학당 교장 푸라이와 월터 선생은 형무소 당국에 유관순의 시체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일제는 이를 거부하였다. 유관순의 학살을 국제 여론에 호소하겠다고 위협하고 강력하게 항의하자 석유상자 속에 든 시체를 내주었는데, 열어 보니 토막으로 참살된 비참한 모습이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獨立血史(서울文化情報社編, 1949), 殉國先烈全書(趙靈岩, 世代社, 1967), 韓國近代人物百選(東亞日報社, 1970), 독립운동사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金厚卿申載洪, 韓國民族運動硏究所,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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