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마을 / 오영수
등장 인물
해순이 : 23세. 청상 과부 성칠 : 28세. 어부. 성구의 동생
해순모 : 해순이의 어머니. 해녀 성구 : 30세. 어부. 해순의 남편
상수 : 34세. 뜨내기 어부 어린 해순 : 8세
칠성네 : 41세. 수절 과부 기타 : 엑스트라 다수
앞부분 줄거리
경부선 기차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남해안 이천리라는 평화로운 갯마을에 어부인 성구와 해순이 살고 있다. 마을 남자들과 함께 고기잡이를 나간 성구가 풍랑에 휩싸여 죽자, 해순은 시어머니와 시동생 성칠이와 함께 살아간다. 같은 마을에 사는 뜨내기 어부인 상수가 해순에게 접근해 오면서, 일부러 해순은 장차 자기 아내가 될 것이라는 소문을 동네에 퍼뜨린다. 형수를 끔찍이 생각하는 시동생 성칠은, 주막에서 상수와 맞닥뜨리자 그의 멱살을 잡고서 돌각담 옆으로 간다.
S# 115. 돌각담
(상수를 끌고 와서 돌각담에 세워 놓고 있는 힘을 다해서 후려친다. 다시 한번 크게 치려는 성칠이 주먹을 불끈 쥔다. 그러나 손이 나가지 않고 눈물부터 흘린다.)
성칠 : (울먹이며) 이 자식아 아 가만히 데불고 가지 않고 소문부터 내나 말이다. 응, 이 자식아…….
상수 : …….
(형수를 아끼는 성칠의 마음에 감탄하는 상수)
성칠 : 마, 알고 있는 기다. 내사 처음부터 알고 안 있었나.
(조용히)……. 상수야, 소문을 내면 우리 형수가 우예되노 말이다. 와 그냥 데불고 가지 않았노 말이다.
상수 : 성칠아…….
성칠 : (눈물이 주룩 흐른다.) 어무니한테 얘기해 볼 테니, 내일 아침에 데리고 떠나거라. (울먹인다). 우리 형님만치 끔찍히 생각해 주란 말이다. 망할 자식. (조용히 자리를 뜬다.)
상수 : …….
(바보같은 자기 생각을 후회하는 듯하다.)
S# 116. 바닷가
(칠성네를 중심으로 아낙들이 걸어온다.)
아낙A : 점잖은 개가 뭘 어쩐다고 망칙한 소문도 다 있재.
칠성네 : 와, 배 아프나? 지금 세월은 수절하는 게 자랑이 못된다.
아낙 B : 그래도…….
칠성네 : 버려라, 해순이 같은 젊은 애를 청상으로 늙으란 말가? 차라리 순임처럼 미쳐 죽는게 나은기라. 서방 없이 살아서 뭘 할끼고.
(이때 해순이가 다가온다. 해구를 들고 있다.)
해순 : (멋모르고) 지금들 오십니까?
(아낙 A, B는 새침하다.)
칠성네 : 지금 나가는 길이가?
해순 : 예.
칠성네 : 퍼덕 다녀옹이라.
(해순은 의아한 얼굴로 아낙 A, B를 둘러보면서 걷는다.)
S# 117. 해순의 집(마루)
(어머니와 성칠이가 앉아 있다.)
성칠 : 어무니요. 아무래도 형수더러 개가하라고 해야 안되겠습니꺼?
어머니 : 개가야 제 마음인데, 내가 우예 그런 소리를 하겠노?
성칠 : 청상으로 늙으라기에는 나이가 아깝기도 하고, 형수는 수절하기 어려울 겁니더.
어머니 : 하지만서도 네 형 삼 년 상은 보내야 안 되겠나?
성칠 : 그까짓 혼백도 없는 제사는 차려서 뭘 합니꺼? 저녁이라도 형수 오거든 마땅한 자리에 개가하라고 하시소.
어머니 : (무엇인가 생각하는 게 있는 듯) 와, 무슨 소리가 들리더나?
성칠 : 아니라예. 상수가 형수를 좋아하고 있는 눈칩디더.
어머니 : 그래? 상수란 놈도 미쳤지. 첫제사도 안 지난 상주를 갖고…….
성칠 : 어무니예. 요즘 세월에는 수절하는 여자는 없심더. 형수 장래를 봐서 보내 드립시더. 상수도 형수를 끔찍이 생각하고 있습디더.
어머니 : ……. (한숨을 쉰다.)
S# 118. 방바위 위
(해순이가 쓸쓸히 앉아 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다닌다. 깊은 한숨을 쉰다.)
S# 119. 노송이 있는 곳(밤)
(상수가 누굴 기다리는지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다. 어둠 속에서 해구를 든 해순이가 나타난다.)
상수 : (반갑게) 해순이!
해순 : …….
(그냥 선다.)
상수 : 아무래도 내일 아침에는 여기를 떠나야겠어.
해순 : 무슨 일로?
상수 : 글쎄, 그런 일이 있다니까. 같이 가주겠어?
해순 : 난 못가예, 어머니를 두고는 못 갈기라예.
상수 : 집에는 성칠이가 안 있나? 어머니는 성칠이가 편안하게 모실기다.
해순 : 그래도 …….
상수 : 마을에 소문이 쫙 깔렸다. 이젠 창피해서도 여긴 못 있는기다.
해순 : 소문 안 내기로 했는데……. 누가?
상수 : 내가 낸기 아니야. 성칠이도 벌써 알고 있던데…….
해순 : 네? 도련님이…….
상수 : 그러니 할 수 없지 않어. 내일 새벽에 이리로 나와, 내 기다리고 있을께.
해순 : 나는 못갈깁니더. 혼자서 가시소.
(걷는다. 상수가 길을 막는다.)
상수 : 고집피우지 말구. 철천지 원수가 진 바다에서 뭣 때문에 살어? 해순인 과부가 되면 못써.
해순 : 듣기 싫어예.
(손을 뿌리치고 간다.)
상수 : (해순이 등에 대고) 내일 새벽에 기다릴 끼다. 꼭 나온나, 어이…….
(해순이 대답 없이 총총 걸음을 옮긴다.)
S# 120. 해순의 집(밤)
(대문을 들어서는 해순. 성칠이 나타나며)
성칠 : 늦었심더. 해구 이리 주소.
해순 : 괜찮아예.
성칠 : (친절하게) 이제부터 바닷일 그만 두시소. 제가 안 있습니까, 이리 주시소.
(반 강제로 해구를 받아 들고 가며)
성칠 : 형수예, 어무니방에 들어가 보시소.
해순 : (조심스럽게) 와예…….
성칠 : 어머니가 말씀드릴 게 있다 합디더.
(걱정이 태산처럼 스쳐간다. 해순은 조용히 안방 쪽으로 간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S# 121. 해순의 집 안방(밤)
(누워 있던 어머니가 들어오는 해순이를 보고 일어난다.)
해순 : 그냥 누워 계시소. 부르셨습니껴?
어머니 : 오냐. 게 좀 앉거라!
(해순은 겁을 집어먹은 듯 앉는다.)
어머니 : 성구 첫제사나 지내고 개가를 시키려고 마음먹었다만…….
해순 : (소스라치게 놀라며) 네?
어머니 : 새파란 청상이 어지 혼자 늙겠노!
해순 : 어머니!
어머니 : 가면 편한 자리가 있을 낀데, 니도 짐작이 가는 데가 있을 기라.
해순 : 으흐흐흐…….
(참았던 울음이 터진다.)
어머니 : 얘. 나도 지금까지 수절해 왔다만 그것처럼 참기 어려운 일도 없느니라. 하긴 말이 있을 때 훌쩍 떠나는게 편킨 하지.
해순 : 아니예요. 어머니. 어머니, 잘못했어요.
어머니 : 과부가 과부심정 안닥하는데, 이걸 가지고 상수를 따라 가거라.
(끼고 있던 은반지를 빼서 해순의 손에 꼭 쥐어 주며)
어머니 : 얘야, 상수만한 사람도 쉽지 않을기라.
해순 : 어머니…….
(그만 어머니의 무릎에 엎드려 서럽게 느껴 운다.)
어머니 : 객지에 들어온 뜨내기가 돼서 께름칙하다만은 바닷놈이 아닌데, 그만하면 됐지…….
S# 122. 동(同) 밖(밤)
(마루에 앉은 성칠이도 눈물을 흘리며 방안에 얘기를 듣는다.)
어머니 : 아가야! 성구 아버지가 안 계신데 널 맞어 들였구나!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아느냐! 그런데 석 달을 못채우고 헤어지는구나…….
해순 : 어머니 안 가요. 전 안 갈랍니더. 어흐흐…….
어머니 : 가야 한다. 네가 잘 되는 길을 내가 왜 막니? 네 시동생 성칠이도 형수를 끔찍이도 생각했느니라.
(성칠이도 눈물을 흘린다.)
S# 123. 다시 방 안(밤)
(아직도 시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는 해순)
어머니 : 그만 해둬라. 세월이 달라졌으니까 새서방 찾아 개가하는 게 조금도 흉이 못된다.
―O·L―
<하략>
뒷부분 줄거리
상수를 따라 갯마을을 떠난 해순은, 채석장에서 일자리를 구한 상수를 도와, 채석장 대포집의 일을 거들어 주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채석장 감독이 해순에게 수작을 걸며 접근해 오고, 이를 본 상수가 감독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는 또다시 그 곳을 떠난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깊은 산속에 들어간 해순과 상수는 화전민이 살던 곳에서 단둘이 살게 된다. 해순은 옛날 자기가 살던 바닷가를 그리워하면서도 상수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지질 조사를 나온 채석장 감독이 해순의 집을 발견하고 혼자 있는 해순에게 달려 든다. 감독을 피해 집밖으로 뛰쳐나온 해순의 고함 소리를 듣고, 달려온 상수가 감독을 뒤쫓다 절벽에 떨어져 죽고 만다. 상수의 장례를 치른 해순은 또다시 갯마을로 돌아오고, 이를 성칠이 반갑게 맞이한다.

작자 : 오영수(吳永壽) 원작 신봉승(辛奉承) 각색

형식 : 각색 시나리오

성격 : 토속적, 서정적

제재 : 바닷가 서민들의 삶과 애환

주제 : 존재의 근원인 바다로의 회귀와 원시적이고 건강한 삶의 추구

축항 : 갯가에 항구를 만드는 것, 또는 그런 항구

전별 : 떠나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어 이별하여 보냄

우예되노 말이다 : 어떻게 되느냐 말이다.

점잖은 개가 뭘 어쩐다 :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즉, 지금껏 얌전하다고 소문이 났던 해순이 상수와 염문을 퍼트린 데 대한 풍유.

해구 : 해녀들이 물질할 때 사용하는 도구

퍼덕 다녀옹이라 : 얼른 다녀 오너라.

우예 : 어떻게

혼백도 없는 제사 : 해순의 남편인 성구가 바다에서 죽었기 때문에 하는 말

하긴 말이 있을 때 훌쩍 떠나는 게 편킨 하지 : 수절 자체가 어려운데 개가 역시 어려우므로 상수와 얘기가 있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개가하라는 뜻

초례상 : 혼인 예식을 할 때 차려 두는 상

부감 :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봄
시나리오는 희곡과 더불어 극 문학의 한 장르이다. 희곡이 오랜 역사를 가진 데 비하여 시나리오는 근대 과학 문명의 발달 이후에 발생하였기 때문에, 그 역사가 상대적으로 매우 짧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 기계 장치를 동원한 영상 효과를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에 역사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희곡이 갖는 제약들을 벗어날 수 있다.
'갯마을'은 오영수의 단편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서, 바닷가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담고 있다. 각색되는 과정에서 원작의 내용이 다소 바뀌었지만, 전체적으로 기계 문명보다는 자연을, 현대적 세련미보다는 토속적인 소박미에 대한 애정을 바탕에 깐 원작의 의도와 주제를 살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토속적이고 서정적인 작품 세계는, 인정이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 준다.

오영수(吳永壽: 1914-1979)
경남 울주 출생. 일본대학 전문부 중퇴. 194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남이와 엿장수>가 입선되고 1950년 <머루>가 다시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제22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그는 토속적인 생활을 배경으로 향토적인 서정성과 순박한 인간상을 그린 작가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메아리>, <수련>, <어느 나무의 풍경>, <종군>, <추풍령>, <바가지>, <코스모스와 소녀>, <화산댁> 등이 있다.

신봉승(1933 - )
평론가. 시나리오 작가. 1957년 '현대문학'에 시와 평론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으나 시나리오 창작으로 전환하였다. 창작 시나리오 '말띠 여대생' 등이 있으며, 주로 우리의 소설 작품들을 시나리오로 개작하여 영화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상의 '날개', 김유정의 '봄봄' , 황순원의 '독짓는 늙은이' 등이 있으며, 그 외 100여 편의 각색 작품이 있다.

'갯마을'의 줄거리
동해의 H라는 조그만 갯마을에 사는 해순이는 나이 스물 셋의 청상(靑孀)이다. 보자기[海女]의 딸인 해순이는 '어머니를 따라 바위 그늘과 모래밭에서 바닷바람에 그슬리고 조개 껍질을 만지작거리고 갯냄새에 절어서' 성장한 여인이다.
열 아홉 살 되던 해 '성구(聖九)'에게 시집을 가자 어머니는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로 가 버린다. 그러나 해순이를 아끼던 착한 성구가 칠성네 배를 타고 원양(遠洋)으로 고등어 잡이를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되자, 해순이는 물옷을 입고 바다로 나가 시어머니와 시동생을 부양한다.
어느 날 밤 잠결에 상고머리 사내에게 몸을 빼앗긴 해순이는 그것이 '상수'였음을 알게 된다. 그는 2년 전 상처(喪妻)하고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니다가 그의 이모집인 후리막에 와서 일을 거들고 있었다. 해순이와 상수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돌고 다시 고등어 철이 와도 칠성네 배는 소식조차 없다. 시어머니는 성구 제사를 지내고 해순이를 상수에게 개가(改嫁)시킨다. 해순이가 떠난 쓸쓸한 갯마을에 고된 보릿고개가 지나고 또다시 고등어 철이 돌아온다.
성구의 두 번째 제사를 앞두고 해순이는 시어머니를 찾아온다. 상수가 징용으로 끌려간 뒤 산골에서 견디다 못한 해순이는 훤히 트인 바다를 그리워하던 끝에 매구혼이 들렸다고 무당굿을 하는 틈을 타 마을을 빠져 도망쳐 온 것이다.
달음산 마루에 초아흐레 달이 걸리고 달 그림자를 따라 멸치 떼가 든다. 드물게 보는 멸치 떼였다.

희곡과 시나리오의 비교
희 곡 |
시 나 리 오 |
① 연극 상연을 목적으로 함. ② 대사 지문 해설로 이루어짐. ③ 무대 조건으로 장면 시간 제한을 받음. ④ 장과 막으로 나누어짐. ⑤ 인물의 제한이 따르고, 관객과 배우가 직접 대면함. ⑥ 행동이 압축되어 있음. ⑦ 희곡 자체가 독자적 문학임. ⑧ 장면의 분화가 적음. |
① 영화 상영을 목적으로 함. ② 대사 지문 해설 장면 표시로 이루어짐. ③ 장면 시간 제한 없음. ④ 마디와 장면으로 나누어짐. ⑤ 인물의 제한이 없고, 관객은 기계를 통해 연속된 사진을 봄. ⑥ 행동이 확산적임. ⑦ 상대적으로 독자성이 약함. ⑧ 장면이 세분화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