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肝) / 분석 / 윤동주
by 송화은율간(肝) / 윤 동 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쓰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肝)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龍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푸로메디어쓰
< 작가소개 >
윤 동 주(尹東柱(1917-1945) : 북간도 출생. 항일 민족 운동의 사상범 혐의를 받고 일경(日警)에 피검되어 2년 언도를 받고 복역 중 옥사했다. 유고 30편을 모아 친구와 아우의 주선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했다. 허망한 존재 의식, 자아에 대한 내적 응시와 분열, 일제의 감시를 받는 강박 관념과 조국의 광복을 염원한 것이 그의 시의 내용이다. 한국 민족의 슬픈 자화상을 간결하게 그린 ‘슬픈 족속’, 자아에의 애증과 내적 갈등을 그린 ‘자화상’, 어린 시절의 회상과 조국의 광복을 염원한 ‘별 헤는 밤’ 등의 수작을 남겼다.
<작품 해설>
간(肝)이란 시가 갖는 특이성은 동.서양의 두 고전-‘토끼전’과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혼합하여 썼다는 데 있다. 두 고전을 차용한 이유는 ‘토끼전’에서는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층의 항거 의식을 나타내기 위함이고,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는 속죄양 의식을 나타내기 위함으로 간주된다.
토끼는 현실에 대해 회의하고, 현실 아닌 다른 세계를 절실히 갈망한다. 그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자라이다. 자라에 의한 용궁의 제시는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용궁에 가서 비로소 그는 도피처로 택한 용궁이 결코 바람직한 장소가 되지 못하며 자기가 살던 곳이 지상 낙원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발전적 인물’이 된 것이다. 그 ‘발전적 인물’이 된 토끼가 육지로 돌아와 우선적으로 행한 것이 습한 간을 펴서 바닷가 바위 위에 말리는 행위였다. 이 행위는 빼앗길 뻔 하였던 간의 소중함에 대한 재인식과 간이 있어야만 힘을 지녀 그가 사는 곳을 지키며 그들과 대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1연은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2연에 이르러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끼여든다. ‘토끼전’과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교차될 수 있는 것은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간’ 때문이다. 두 고전에서 ‘간’은 곧 힘을 의미한다.
3연에는 ‘나’라는 시적 자아가 등장한다. 그는 스스로 기른 독수리에게 자기 간을 뜯어 먹도록 요구한다. 여기서 독수리는 스스로에게 아픔을 주는 자아의 예리한 의식이다.
4연에는 ‘너’와 ‘나’가 등장한다. 여기서 ‘너’는 정신적 자아이고, ‘나’는 육체적 자아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육체를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의식은 예리하게 지키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 대한 전적인 포기는 아니다. 끝머리의 ‘그러나’가 이를 대변해 준다. ‘그러나’는 여위어 힘은 없지만 어는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겠다는 의지, 뜯어 먹히더라도 간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결의를 표명한 것이다.
5연에서 시적 화자는 실존의 문제를 제기한다.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고 한 것은 존재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존재의 방법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이 시인은 자기 희생을 존재의 방법으로 삼았다. 그의 속죄양 의식은 이로부터 나온다.
6연에는 바로 속죄양 의식이 드러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가 비참해질 뻔한 것을 구해 주고 자신은 그 죄로 바위에 묶여 매일같이 간이 쪼아 먹히는 고통을 당하는 인물이다. 그는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해 십자가에 고통을 지는 예수와도 같다. ‘목에 맷돌을 달고/끝없이 침전’한다는 것은 자기 희생 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시인은 자기 동일성으로 이 프로메테우스를 선택한 것이다.
<감상의 길잡이>
1941년 11월 29일 연희 전문학교 졸업반 때 쓴 작품으로 알려진 이 시가 갖는 특수성은 각기 다른 동․서양의 두 고전을 형상화한 점에 있다. 즉, 거북이의 꾐에 빠져 간(肝)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토끼가 특유의 기지(機智)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지는 내용의 ‘귀토지설(龜兎之說)’과 인간을 위해 제우스를 속이고 불을 훔친 죄로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묶여,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다가 밤에는 그 간이 되살아나 영원히 고통을 겪는다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교묘히 결합하여 현실적 고난을 극복하는 의지를 밝힌 작품이다. 이 두 고전을 차용한 까닭은 ‘귀토지설’에서는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항거 의식을,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는 속죄양 의식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윤동주는 벼랑 끝에 몰린 위기에서도 슬기롭게 자기의 ‘간’을 지킨 토끼와, 죄 아닌 죄를 짓고 속죄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프로메테우스를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을 지키며 식민지 시대를 살아야 했던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두 고전의 문면(文面)을 글자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적절히 변용하여 작품 속에 투영시키고 있다.
먼저 1연에서는 거북의 유혹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 했던 토끼, 즉 화자가 지상 낙원이 용궁이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산중임을 깨달은 후, 그 곳으로 돌아와 ‘간’을 꺼내 바위 위에 말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토끼의 행동은 바로 간의 소중함에 대한 재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간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보다도 간이야말로 거북에게 맞설 수 있는 가장 크고 효율적인 무기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간’이 ‘습한’ 것은 한때 유혹에 빠졌기 때문이며, 그것을 햇빛에 말리는 것은 다시는 유혹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욕망의 절제를 통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2연에서는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귀토지설’ 속에 끼어들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두 고전에 공통적으로 ‘간’이 등장하기 때문이며, 또한 이 ‘간’은 모두 상대와 맞설 수 있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3연에서는 화자가 자신이 기른 독수리에게 자기의 간을 뜯어 먹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 독수리는 4연에서 ‘너’로 지칭되고 있는데, ‘나’가 육체적 자아라면 ‘너’는 정신적 자아라 할 수 있다. 결국 ‘너’라는 독수리는 화자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자아의 예리한 의식이 된다. 그러므로 ‘너는 살찌고 / 나는 여위어야지’라는 구절은 자신의 육체는 희생되더라도 정신만은 지키겠다는 의미이다. 한편, 끝머리의 ‘그러나’는 여위어 대항할 힘은 없어도, 정신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뜯어 먹히더라도 간은 결코 내놓을 수 없다는 결의를 표명한 것이다.
5연에서 화자는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며 자신의 의지를 확인하고 있다. ‘용궁의 유혹’에 떨어진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양심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6연에서는 불쌍하기는 하나, 프로메테우스처럼 화자도 인간을 위한 속죄양이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목에 맷돌을 달고 / 끝없이 침전하’는 것은 그 같은 거룩한 자기 희생 정신의 표현이다.
1.말하는 이는 누구인가 ? -- 나
2.말하는 이는 무얼하고 있는가 ? -- 습한 간을 말리고 뺏기지 않기 위해 지키고 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고 있다)
3.나의 간을 노리는 자는 누구인가 ? --- 거북이
4.거북이에게 말하는 이는 뭐라고 말하는가 ? --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5.그것을 근거로 이 장면 이전의 상황을 짐작해본다면 ? -- 말하는 이가 거북이의 꾐에 빠져 용궁에 가서 간을 빼앗길 번한 적이 있다.
6.간을 빼앗기면 어떻게 되는가 ? --- 죽는다.
7.그렇다면 간을 무얼 의미하는가 ? --- 생명. 생명의 정수,원천
8.이 시의 시적 정황이 사실적인 사건은 아닐 듯한데 그렇다면 ‘간’을 육체적 의미에서의 생명이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다. 그렇다면 정신적인 의미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되면 반드시 지켜야할 ‘간’은 어떤걸 의미할까 ? --- 양심, 자존심, 인간 존엄성....
9.말하는 이의 간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 --- 습하다. 쪼그라 들어 있다.
10.그렇다면 화자는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나 ? --- 정신적 생명인 인간 존엄성과 양심을 훼손당한 후 다시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11.자. 그런데 지금까지의 분석으로 보아서 이 시는 어떤 옛날 이야기와 관련이 있지 ? -- 예. 구토설화요. 수궁가요.
12.그래 거기에 나오는 소재들을 시적화자는 자신의 처지에서 변용해 다른 의미들을 부여해 놓고 있다. 정리해보면 ? 간 -- 정신적 생명. 인간의 존엄과 양심.
토끼 -- 존엄과 양심을 지키려고 애쓰는 존재. 화자 자신.
용궁 -- 현실적인 안락함이 보장되는 공간.
거북이 -- 존엄성과 양심을 버리고 현실적 안락함을 누리라고 유혹하는 존재.
#.화자가 곧 시인은 아니지만 이 시에서는 시인 자신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시인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 ‘간’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13.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던 젊은 지식 청년에게 지켜야 할 존엄성과 양심은 어떤 것이었을까 ?
--- 민족적 양심. 당당한 자기 주체성. 굴복하지 않는 민족정신.
14. 그래! 그런데 이 시는 또다른 설화를 차용하고 있는데 뭔지 알것나 ?
--- 예! 프로메테우스 설화요.
15. 그 이야기 내용 아나 ?
--- 예 ! 이러쿵 저러쿵. 어쩌고 저쩌고. .......
16.두개의 설화가 동시에 차용되고 있는데 두 설화가 함께 얽혀 돌아갈 수 있는 연결고리는 ?
--- 간, 간의 상실
17.공통점이 있긴한데 간의 상실을 둘러싼 상황이 좀 다르지 뭐가 다른가 ?
--- 구토설화 : 토끼가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 죽을 줄도 모르고 용궁에 갔다가 간을 뺏길번 함.
--- 프로메테우스설화 : 위험한 일인줄 알면서도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죽음과도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됨.
18.그래 그런데 프로메테우스 설화도 구토설화처럼 약간씩 변용되고 있다. 실제 설화와 다른 부분을 찾아보자.
--- 3연요. ..
19.어떻게 다르지? --- 내가 기른 독수리에게 스스로 간을 쪼아 먹히고 있음.
20.자 그런데 ‘독수리’의 의미가 아리송한데.....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는다면 그 사람은 어떨까 ?
--- 아이고 따꼼. 뜨끔. 무척 아프겠지요. 끔찍하지요. 눈에 불이 번쩍....
21.말하는 이는 애써 지킨 간을 독수리에게 쪼아먹으라고 하고 있다. 왜 그럴까 ?
--- 독수리를 살찌우기 위해. 독수리가 무척 야위어 있으니까 ..
22.이 역시 사실적인 상황은 아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면서 당하는 화자의 고통은 어떤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눈에 불이 번쩍) ? --- 정신적 각성...
23.그렇다면 이 독수리를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인가 ? --- 정신적 각성을 주는 존재.
24.그런데 이 독수리가 지금 어떻다고 ? --- 무척 야위어 있어요.
25.그 의미는 ? --- 정신적 각성의 힘이 약하다.
26.그러면 그 독수리를 살찌운다는 것은 ? --- 정신적 각성의 힘을 강화시킨다.
27.그럼 애써 되찾은 간을 지켜서 독수리를 살찌운다는 이 이야기의 의미를 정리해 보면. ?
--- 애써 되찾은 민족적 양심과 인간 존엄의 정신으로 미약해진 정신적 각성의 힘을 되살린다.
28.자신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독수리는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 --- 내가 오래 길러 온 것이다.
29.내가 오래 길러왔다고? 도대체 독수리의 정체가 뭘까? ......
#.인간은 흔히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실제의 삶을 살아가는 겉으로 드러난 ‘현실적 자아’와 그가 내면에 간직한 자신의 이상화된 모습 즉 ‘내면적 자아’ ‘정신적 자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시에서 독수리는 바로 나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내가 오래동안 내 내면에 길러온 정신적 내면적 자아이다. 이 정신적 내면적 자아는 자신의 이상과 거리가 멀어진 현실적 자아를 끊임없이 질책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내면적 자아가 야위었다는 말은 현실적 자아가 지나치게 비대해져 자신의 이상과는 다른 추하고 악한 모습을 띠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간을 쪼아 먹힌가는 건 간을 빼앗기는게 아니라 오히려 지키는 행위가 되는 거지.
30. 자 이렇게 되면 이 시의 토끼(화자)는 구토설화의 토끼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보이지? 어떻게 다른가?
--- 자기 반성과 삶의 각오를 분명히 보여주는 존재.
31.그렇다면 화자(토끼)는 누구와 같은 삶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나 ?
--- 프로메테우스
32.화자와 프로메테우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 죄아닌 죄, 옳은 길을 걷은 것 때문에 고통 받으나 굴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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