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 안도현 산문집
by 송화은율안도현 산문집 『짜장면』
짜장면 냄새, 그 속에 섞여 있는 알싸한 양파 냄새. 이런 냄새들은 언제 어디서 맡아도 입 안 한가득 고이는 군침과 함께 어린 시절의 구수한 추억을 우리에게 안겨 준다.
생일날 혹 은 어린이날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 하면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짜장면!을 외치던 그 시절의 추억을 말이다. 그 기억 탓인지 많은 '나이먹은 어린이'들은 더 맛있는 음식들 로 입맛이 길들여진 후에도 여전히 먹고 싶은 음식 명단에서 자장면을 지우지 못한다.
자장면은 우리 어린 시절의 한 부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 무엇이지만, 이 책의 저자 안 도현에게 있어 자장면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이런 저런 기억들을 되살려 주는 수단의 하나 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열일곱. 난생 처음 목격한 아버지의 폭력성과 그 아래서 피흘리던 어 머니. 안도현은 그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오고 만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해서 그동안 자신을 규정하고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인간이 되어 살기로 한다.
그 새로움의 자유를 얻기 위해 안도현이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짜장면'이었다. '안도 현'대신 '노랑머리 철가방'이 되어 125cc 마그마를 타고 만리장성과 나이아가라 사이를 1분만에 날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중국집 '만리장성'의 자장면 배달원인 노랑머 리 철가방은 그동안 학교에서 배우던 영어, 수학 등의 지식 대신 단무지를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써는 법, 양파와 단무지를 손님 앞에 보기좋게 배열하는 법, 기름기 가득한 그릇을 씻 어 엎어 놓는 법 등을 배웠다.
어디 그뿐인가. 또래 아이들과 한밤중에 요란한 경적 소리와 현란한 불꽃 가루들을 날리며 폭주를 하고, 미용실 보조 여자 아이와 사랑에 빠졌다 헤어지 고, 이 모든 것들이 안도현이 노랑머리 철가방으로 살았던 몇 개월 사이에 있었던 일이 었다.
실패로 돌아간 마지막 폭주와 첫사랑 여자애와의 이별, 노랑머리 철가방은 이제 이러한 상 황에서 탈출하기 위한 통로로 귀가를 선택한다. 노랑머리 철가방에서 안도현으로 돌아가기 위해 질주하던 그는, 그러나 그 과정의 통과의례라도 치르듯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 대신 그가 아끼던 오토바이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난 그는 이제 정말 안도현이, 몇 개월 전과는 전혀 다른 안도현이 되어 있었다.
안도현의 '짜장면'에서 자장면은 과연 무엇인가? 열 일곱에서 열 여덟, 암갈색 자장면발 속에 감춰진 양파를 찾아내듯 자기를 벗고 자기를 찾아가는 한 소년의 끈끈한 이정표가 아 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안도현은 책 말미에서 선언한다. '어떤 책을 쓰더라도 짜장면을 자 장면으로 표기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나는 우리 나라 어느 중국집도 자장면을 파는 집을 보지 못했다.
중국집에는 짜장면이 있고,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다. 이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는 어른들이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배워서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을 사주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자신이 진정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준 '짜장면'에 대한 그의 한가닥 애정 표현이라고나 할까. 문득 자장면에 양파를 섞어 한입 가득 물고 우물거려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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