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 어른을 위한 동화 / 안도현
by 송화은율안도현이 쓴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한쌍의 연어가 인간에게 선사한 아름다운 삶에 대한 욕망과 의지 내용과 형식이 서로 잘 어울려
좋은 책의 기준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리고 내용이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편집자 출신인 나의 경우에는 좋은 책의 기준으로 책을 둘러싼 형식적 측면, 책의 장정, 지질, 글씨체, 편집 등을 그 세목으로 추가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선택할 때 내용은 좋아 보이는데 편집이 형편없으면 짜증을 부리거나 그 책을 펴낸 출판사를 원망하게도 된다. 또한 형편없는 내용을 편집만 잘해 그럴 듯하게 꾸며놓은 책을 보면 앞의 경우보다 한 두배쯤 불만을 쏟게 된다. 내용과 외양이 잘 어우러진 정말 좋은 책 한권이 만들어지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잘 만들어진 훌륭한 내용의 책을 만나게 되면 나의 행복감은 보다 더 증폭된다.
안도현이 쓴 「연어」(문학동네)는 앞서 나의 좋은 책 기준까지를 만족시키는 좋은 책이다. 시인의 시적 감수성이 투명하게 내비치는 이 동화는 화가 엄택수의 펜화가 매쪽마다 삽입되어 있어 한눈에도 어여쁜 책임을 간파할 수 있다.
「연어」에는 은빛연어, 눈맑은 연어, 턱큰 연어, 빼빼마른 연어, 주둥이 큰 연어, 지느러미 긴 연어 등의 긴 이름을 가진 연어들이 등장한다. 이런 이름들은 각각의 연어들의 생긴 모양에서 연유하는 것인데 동화적인 상상력의 진폭을 크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동화속의 주인공인 은빛연어는 등푸른 여느 연어들과는 달리 등이 온통 은빛 비늘로 덮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연어의 세계에서는 별종으로 일컬어진다.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떼들 가운데서 밝은 빛을 내며 헤엄치는 이 은빛연어는 그 튀는 모양새 때문에 마음의 눈을 하나 더 갖게 된다. 뭇 연어들과 다르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에서 외로움을 하나 더 갖는 것이 된다.
『내 몸의 비늘보다 마음속을 들여다 봐주렴』하고 당부하는 은빛 연어는 그 삶의 전제조건이 바로 삶의 의미를 거듭해서 탐구해야 하는 존재의 이유가 된다.
외로움의 깊이에 비례하여 사색의 깊이도 더해가는 은빛연어는 알래스카 불곰의 습격때 상처를 나눠가진 눈맑은 연어와 사랑에 빠진다. 이제 은빛연어에게는 모든 것이 경이다. 작은 돌멩이 하나, 가녀린 물풀 한가닥,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사물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사랑은 은빛연어의 마음에 갖은 보물들을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강 상류에 알을 낳기 위해 사랑하고, 또 먼길을 떠나는 것, 그것만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여느 연어들의 생각을 부정하는 은빛연어는 또다른 삶의 이유를 찾아 헤맨다. 강을 거슬러오르는 동안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이유일 수 있다는 초록강의 말에서 은빛연어는 삶의 철학적 사유들을 풀어나간다.
보통 연어들에게 주어진 쉬운 길을 거부하고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산란을 꿈꾸는 이 한쌍의 연어에게서는 사랑의 환희와 고통이 고스란히 보인다. 산란을 마치고 거룩한 죽음으로 물위에 떠올라 삶의 모든 에너지들을 세상에 되돌려주는 이 연어들은 삶의 고통과 기쁨의 의미를 온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강물을 거슬러오르는 행위가 왜 중요한 것인가를 알고 그 강물이 흐르는 동안 연어들의 삶도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을 깨닫는 이 한쌍의 연어에게서는 자연의 신비가 밝게 보인다.
길지 않은 분량의, 이 읽기 쉽고 알기 쉬운 동화는 그러나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이 담겨져 있다. 한나절쯤 남한강의 언저리에 앉아 있다보면 산다는 것이 무척 초라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사무치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연어」는 꼭 그런 선물같은 느낌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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