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삼이사 / 줄거리 및 해설 / 최명익
by 송화은율장삼이사 / 최명익
작가소개
(1903-?) 평양 출생의 소설가로 1928년경부터 평양에서 <백치>라는 동인지에 참가하여 작품 발표를 했으나 서울의 중앙 문단과는 별다른 교섭이 없었다. 그는 1936년 단편 <비 오는 길>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 후 <무성격자> <심문> 등의 작품에서 지식인의 불안 의식과 그 내면 세계를 심리주의적 수법으로 잘 묘사하였다. 특히 사회주의 운동가의 몰락과 그를 둘러싼 여인 여옥과의 갈등을 심리주의적 수법으로 형상화한 <심문>과 기차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방관자적으로 관찰하면서 일어나는 인물의 심리를 그린 <장삼이사>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 편 해방 후 평양에 잔류하였던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줄거리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곳은 열차안이다. `나‘는 우연히 한 젊은 여인을 동반한 중년 신사와 동석을 하게 되는데 얼핏 보아도 두꺼비를 연상시키는 얼굴의 이 중년 신사는 처음에는 별난 행동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나, 얼마 후에는 분위기가 바뀐다. 그와 주위 사람들 사이에는 술잔과 더불어 우호적인 톤의 대화가 오고가게 되는 것이다.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나’는 이 판에 끼어들지 않고 냉정한 관찰자로 머무르는데 이야기를 들어본 즉 중년 신사는 만주와 북지를 무대로 오래 장사를 해 온 포주였다. 그는 자기의 유곽에 있다가 달아난 여자를 추적한 끝에 드디어 붙잡는 데 성공하여 도로 끌고 가는 길이었다.
이 사실을 안 주위 사람들은 모두 중년 신사의 편이 되어 @여인의 얼굴을 보이지 않는 말의 채찍으로 후려 갈기@는 언동을 서슴지 않는다. 열차가 계속 나아가면서 주위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내리고 그 중년 신사 또한 어느 정거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기 아들에게 여자를 맡기고 내린다. 떠나면서 그는 여자들의 관리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아들을 때리는데, 그렇게 맞은 화풀이를 아들은 여자에게 한다. 빰을 세 대나 맞고 눈물을 흘리면서 여자가 화장실로 가버리자 `나‘는 그녀가 화장실 안에서 혀를 깨물고 자살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아무 일도 없이 돌아 왔을 뿐 아니라, @어느새 화장을 고쳤는지 그 빰에는 손가락 자국도 눈물 흔적도 없이 부우옇게 분이 발려 있@기까지 하다.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젊은이와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을 보며 나는 @웬 까닭인지 껄껄 웃어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제@한다.
@:본문 중에서.
해설
이 소설에서 맨 먼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작품의 무대가 달리는 열차의 내부로 한정되어 있으며, 시간적인 범위도 상당히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의 결과로인지, 이 작품은 첫눈으로 보기에도 짙은 상징성을 띠고 있음을 그 중요한 특징으로 한다. 또한 그 상징성의 비밀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흥미의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겠지만 열차의 내부를 인간사회 자체의 한 축도로 보고 풀어나가 보자. 먼저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을 유형별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약 네 개의 유형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네 유형은 그대로 최명익이 생각한 현실사회의 중심적 구성분자가 아니었을까 짐작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네 유형을 하나씩 차례로 살펴보자. 1.중년 신사와 그 아들:무자비한 폭력이라는 것이 존재 자체의 한 부분을 이룸으로써 섬뜩하고 무서운 느낌을 독자들에게 전달. 그런데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이들이 그처럼 동물적이고 폭력적이며 가학적인 존재이면서도 강자에게는 형편없이 비굴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전혀 당치 않은 자기연민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는 점이다. 전자는 차장에 대한 중년 신사의 비굴한 말과 표정에서 증명되며, 후자는 그가 주위 사람들을 향해 자기의 직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푸념조로 얘기하는 대목에서 생생하게 나타난다.
지은이 최명익은 동물의 이미지를 동원하여 자기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능하다. 이 작품에서도 중년 신사를 두꺼비에 비유한 것은 기법적 장치임을 알 수 있다.
2.중년 신사와 대화를 나누며 술을 얻어먹는 주위 사람들: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며 그 성분(?)도 농부에서부터 학식 있는 청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하나로 동일되어 나타난다. 그 행동이란, 앞의 줄거리 요약에서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처음에는 중년 신사에게 적대감을 보이다가 곧 그와 한편이 되어 맞장구를 치며 여자를 모욕하는 말을 해대는 것인데, 이런 행동을 통하여 그들은 중년 신사와 그 아들에 못지 않게 부정적인 인간임을 스스로 폭로한다. 또한 약자인 여자를 자기와 대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멋대로 괴롭혀도 무방한 노리개 정도로 간주하는 점에서 강자에겐 타협하고 약자에겐 몰인정한 비인간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폭력적인 지배를 자행하는 바로 그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러한 지배를 승인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첫째 유형의 인간에 못지 않게 부정적인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3.중년 신사에게 끌려가는 여자:탈출에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포주에게 끌려가는 [못 가진 자]요. [약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리는 그녀를 청순 가련형의 여인으로 상상하기 쉽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 반대 쪽으로 힘을 쏟고 있다. 우선 그녀가 처음부터 피어대는 줄담배와 마지막 부분에서 방금 자기를 때렸던 남자와 태연히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4.이 소설의 화자인 `나’:자기 주변의 사건에 가시적으로 관련을 맺게 되는 것을 철저히 피하고 있지만, 그는 놀랄만한 집요함을 가지고 자기의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관찰하느라 자못 바쁘다. 그리고 여자에 대한 동정이 들리지 않는 소리를 지르고 있다. 화자가 이상과 같이 보여주는 면모-사건들로부터의 자발적 소외, 집요한 관찰력, 무력한 수난자에 대한 동정-에서 우리는 그의 정체가 현대 지식인의 여러 가지 유형 가운데 하나를 대표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지식인으로 짐작되는 인물이 여럿 보이지만 그 칭호에 진정으로 값하는 사람은 오로지 화자 하나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가는 이처럼 화자를 지식인으로 설정해 놓고 그로 하여금 실컷 여자를 동정하게 한 후 맨 마지막에 이르러 실로 인상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그것은 여자의 생존을 위한 내적 무장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 `나’의 상상력 속에 감상의 유희를 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화자가 느낀 [껄껄 웃어보고 싶은 충동]이란 자신의 허위의식이 폭로되었음을 시인하는 셈이 된다. 화자가 느낀 그 동정의 노릇이 허위의식에 불과한 것이라니, 도대체 그가 세게 되는 자리는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소외의 극점일 것이다. 처음 화자(지식인)의 자발적 소외가 스스로 선택했음에 비해 이번의 소외는 본의아니게 강요당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어쨌든 지식인을 대표하는 화자의 위치가 이중의 소외로 규정된다는 사실에서 지은이 최명익의 지식인관이 얼마나 비극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이상으로 우리는 네 가지 유형의 인물에 대해 살펴 봤다. 지금까지의 고찰에서 얻어진 결과를 가지고 판단해 보면, 우리가 작품의 분석에 들어가면서 전제로 삼았던 내용들이 거의 그대로 입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최명익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장삼이사>는 일제 강점기의 한 시대를 지배했던 분위기의 단면을 증언해 주는 기록이면서, 동시에 현재적인 문제의식으로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소설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도전의 핵심은 바로 현실세계의 폭력적 구조와 지식인의 소외라는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 끝으로 우리는 이 작품이 무척 높은 수준의 기법적 성취를 이룩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구체적인 면모는 앞에서 인물 유형 정리를 시도하는 가운데 이미 어느 정도 언급되었으리라 믿거니와 특히 결말부의 반전은 소설미학에서 얘기하는 현현의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좋은 예로써 주옥에 값한다.
참고 문헌 : 권영민, 월북 문인 연구,문학 사상사, 8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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