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작은 이야기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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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기차역도 없는 시골 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20년 넘게 도시에서만 자란 내게는 고요한 시골 생활이 몹시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휴일만 되면 서울로 올라갈 궁리를 하면서 지냈다.

 

그 해 가을이었다. 하루는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로 오는데, 평소 말이 없던 내 반의 미순이가 수줍어하며 반 아이들이 한 개씩 가져온 것이라면서 큰 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무얼까 궁금해하며 묵직한 봉지를 받아 들고 교무실 내 책상에 와서 뜯어보니 노랗게 익은 탱자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마치 교실에 가득히 들어찬 일흔 명의 아이들처럼.

 

나는 그걸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예쁜 바구니 하나를 구해서 칠십 개의 탱자들을 쏟아 넣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마치 마치 탱자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다투어 진한 향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온 방안이 탱자 향기로 진동했다.

 

내 몸은 온몸에 꽃가루를 묻힌 한 마리 꿀벌처럼 향기에 휩싸였다. 그것은 행복감 그 자체였다.

 

그 날 밤 나는 이 향기 드높은 행복에 겨워하다 탱자가 무엇인지도 모를 서울 친구를 생각해 내고는 반쯤 골라서 서울로 보냈다. 여러 겹으로 포장해 탱자 향기가 중간에서 새나가지 못하도록 해 가지고.

 

<가을이 깊어진 것을 아니? 시골 아이들이 모은 탱자 향기를 네게 가을 선물로 보낸다.>

 

이런 내용의 쪽지와 함께.

 

(‘작은 이야기’, 정채봉류시화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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