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카 / 미상
by 송화은율자타카 / 미상
4. 황금 백조의 본생 이야기
그 옛날, 바라나시 고을에서 브라흐마닷타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보디삿타는 어느 바라문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성년에 달했을 때, 같은 계급에 속하는 집안에서 아내를 맞아들였습니다. 이 아내의 몸에서 난다, 나다바티, 슨다리난다라는 세 딸이 태어났습니다. 이윽고 보디삿타가 죽자 아내와 세 딸은 남의 집에 가 살게 되었습니다.
보디삿타는 금(金) 백조 탯속에서 태어나 다시 숙명지(宿命智)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성장하자, 금빛 깃털에 둘러싸인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는 장엄한 자기 모습을 보고, '대체 나는 어디서 죽어 이 곳에 태어났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인간의 세계다.'라고 깨달았습니다. 또 '예전의 아내나 딸은 어떻게 지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다가 남의 품삯 일을 해서 겨우 지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조는 '내 몸의 금으로 된 깃털은 두드리면 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제부터는 이 깃털을 한 장씩 주자. 그렇게 하면 내 아내나 딸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 생각하고 백조는 거기로 날아가서 창문 위의 대나무 가지 끝에 앉았습니다. 바라문의 아내와 딸은 보디삿타를 보고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백조는 "나는 너희들의 아비로서, 죽어 금 백조의 탯속에서 다시 태어났는데 너희들을 만나러 왔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남의 삯일을 하며 괴로운 생활을 해 나갈 필요가 없다. 나는 너희들에게 깃털 한 장씩을 주마. 그것을 팔아서 편안하게 살아라." 이렇게 말하고 깃털 한 장을 주고 나서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백조는 이따금씩 와서는 깃털 한 장씩을 주고 갔습니다. 바라문 모녀는 넉넉한 살림에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딸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짐승 따위의 마음은 믿을 것이 못 된다. 너희들 아버지라고 한 백조는 언젠가는 여기 안 오게 될 것이다. 이번에 그 백조가 오거든 깃털을 남김없이 뜯어서 갖고 말자." 딸들은 "그렇게 한다면 아버지가 불쌍해요." 하고 말하며 듣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리문의 아내는 욕심꾸러기였기 때문에 어느 날 금백조 왕이 왔을 때, "자, 오세요."하고 백조를 자기 곁으로 불러들이고 나서 두 손으로 붙들어 깃털을 모조리 뜯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보딧삿타가 원하지 않는데 폭력으로 뽑았기 때문에 모두 두루미의 깃처럼 희게 되었습니다. 보딧삿타는 날개를 펼쳐도 날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백조를 큰 항아리 속에 넣어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백조의 다시 난 깃털은 모두 희게 되었습니다. 날개가 생긴 백조는 하늘로 날아 올라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작자 미상 / 서경보 옮김
갈래 : 인도 민간 설화·우화
성격 : 우화적, 불교적, 교훈적
사상 : 윤회 사상
주제 : 욕심으로 인해 일을 망침, 지나친 욕심은 불행의 원인이 된다.
줄거리 : 그 옛날, 바라나시 고을의 보디삿타는 결혼을 하여 딸 셋을 낳고 살다가 죽어서 다시 금 백조로 환생하였다. 그는 자신의 전생을 알 수 있었는데 , 아내와 딸들이 무척 고생하며 산다는 것을 알고는 깃털을 하나씩 뽑아 주어서 가족들이 부유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인 것을 알면서도 욕심에 눈이 어두워 백조를 잡아 털을 모두 뽑아 버린다. 억지로 뽑힌 털은 하얗게 변하고, 하얀 백조가 된 보디삿타는 하늘로 날아 올라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의의 : 서구의 전래 동화 중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짐.
내용 연구
바라문 : 브라만(Brahman)으로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승려 계급으로 주인공 보디삿타가 바라문교의 가정에서 태어남을 말함.
숙명지 : 불교 용어로 자기의 전생을 알 수 있는 지혜. 즉 불교의 윤회설을 설명하는 언어
자타카 : 본생경, 전생물화 등으로 불리는 인도 고대의 설화집이다. 자타카의 문학 기원은 인도의 원시 불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자타카' 속에는 인도의 설화와 우화, 옛날 이야기가 547가지나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은 석가모니의 전생과 현샐을 설명한 인연설화이다. 우리 나라 조선조의 '월인천강지곡'의 근본도 이 자타카 문학에 시발이 있는 것으로 알려 지고 있다.
이해와 감상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이 일을 그르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동물에 대한 인간의 불신을 통해 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작품은 우화적 수법을 통해 인간의 탐욕스러움을 꼬집고, 인간의 폭력은 더 많은 것을 잃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심화 자료
자타가
일명 본생담(本生譚)으로 석가의 전생의 생활을 묘사한 설화.
이 설화가 생겨난 의의는 일찍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석가의 깨달음은 만고불변의 진리로서 너무나도 위대하고 장엄한 것으로, 단지 출가 후 6년의 고행만으로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그의 고행은 무한한 시간 위에 끝없이 연결되고 무수한 세계 가운데로 한없이 확대되어 전생의 모습이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지게 되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습은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동물 ·조류 ·신화 ·전설에 이르기까지 당시 유행하던 구비전승담(口碑傳承譚)은 모두 부처의 전생의 모습에 가탁(假託)되어 본생설화로 구성되었다. 한편 부처는 오랫동안 브라만교(敎)의 사상에 물들어 있다가 전향한 교도(敎徒)들을 일시에 불교사상으로 변혁시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고, 이같은 본생설화의 형식을 써서 “현재의 선악업(善惡業)은 과거의 선악업의 결과”라 설명하고, 그 설화를 통하여 인과(因果)의 진리를 분명히 해설하여 불교의 대도(大道)에 들어오도록 시도하였다.
경전 중에는 이같은 설화가 일종의 삽화로서 들어가 있는 것도 있으나 《육도집경(六度集經)》 《보살본연경(菩薩本緣經)》 《본생경(本生經)》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 《보살본생만론(菩薩本生캐論)》 같이 집중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도 있으며, 또 남방불교의 소전(所傳)인 《소아함경(小阿含經)》 중에는 550편이나 되는 본생설화가 들어가 있다. 이 설화의 구성은 대개 서분(序分) ·본분(本分) ·유통분(流通分)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분은 설화의 인연유래(因緣由來)를 설한 것으로, 본생설화를 설한 경위와 장소 등을 밝힌 부분이며, 다음 부분은 정종분(正宗分) 즉 본론(本論)으로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석가의 전생의 경력을 설한 부분이며, 끝으로 유통분은 결론 부분으로서 본 설화 가운데 나타난 인물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부분이다.
이 설화의 내용은 위로 불도(佛道)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도(菩薩道)를 표방한 것으로서 다 같이 권선징악(勸善懲惡)의 행(行)을 실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그 배역에 나타나는 주인공들은 다양하여 위로 천인(天人)으로부터 아래로 용(龍)이나 뱀[蛇]에 이르기까지 3계 6도(三界六途)의 모든 중생이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본생설화는 경전에 있는 다른 모든 설화들, 즉 비유설화 ·인연설화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로 갖추어진 것이 아니고, 처음 《아함경(阿含經)》 등의 옛 경전에서는 일종의 훈화(訓話)로 간략히 설해져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새로운 비유가 부설되고, 또 그 비유가 사실적 설화로 구성되면서 새로운 글[偈頌] 등이 쓰여지고, 여기에 서분과 유통분이 가해져서 본생설화가 구성된 것이다.
이 같은 설화가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 여러 나라에 유포된 것은 2∼3세기로부터 5∼6세기에 이르기까지로 보며, 사실적으로 신봉되었다고 한다. 중국은 267년에 축법란(竺法蘭)이 도래한 때로부터 285년 축법호(竺法護)의 《생경(生經)》 번역본이 나온 때까지 약 218년간 다섯 차례에 걸쳐 20권 700여 편의 본생설화가 번역되었다. 또 540년경 페르시아왕(王) 아누시루반 때에 중세 페르시아어로 번역되어 나왔고 그것은 다시 아라비아어 ·근세 페르시아어 ·그리스어 ·에스파냐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어 《아라비안나이트》를 비롯하여 유럽 여러 나라의 속담 ·동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 불교문화에도 불탑(佛塔)이나 석굴 등의 미술 조각을 중심으로, 시 ·소설 ·전기 ·속담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구비 전승되어 오는 설화 가운데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불교설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인도의 예술과 문화
인도의 예술과 문화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전통예술에서 현대예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독립이래 연방정부와 여러 주정부는 랄리트칼라아카데미(국립 미술 아카데미)·상게트나타크아카데미(음악·무용·드라마 아카데미)·사히티아아카데미(국립 문학 아카데미) 등 여러 문화·예술 관련기관을 설립하여 예술·문화활동을 촉진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랄리트칼라아카데미는 1954년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미술발전에 도움을 주고자 설립되었다. 오늘날에는 매년 전국미술전람회를 개최하고 인도의 미술품 및 공예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한편 동서양의 작품들을 한데 모아 전시회를 개최한다. 1968년부터는 3년에 1번씩 국제적인 규모의 현대미술박람회를 개최해왔다. 이 단체에서는 해마다 전국미술전람회 출품작 중 뛰어난 작품들을 골라 상을 수여하기도 한다.
연극·무용·음악 등은 1953년에 설립된 상게트나타크아카데미에서 주로 관장한다. 이 단체에서는 주로 연극·무용·음악 부문의 연구를 촉진시키고 극장과 예술가양성소 설립, 세미나 및 축제 개최, 우수한 작품에 대한 시상, 여러 방면의 문화적 교류 등을 추진한다. 또한 음반·서적·영화 도서관과 음반제작소 및 악기·가면·무대의상 전시실 등을 운영한다. 상게트나타크아카데미에 부속된 예술가 양성소로는 뉴델리의 국립 드라마 학교와 인도무용을 가르치는 카타크 켄드라(뉴델리에 있음), 임팔에 있는 자와할랄 네루 마니푸리 무용 아카데미가 있다.
이러한 문화활동은 힌디어나 각 지역방언을 이용, 인도의 드라마 및 문학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전인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전인도 라디오 방송은 주간 또는 월간으로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년 음악 축제를 개최하여 젊은 음악가 및 극작가들을 발굴하기도 한다.
인도 문학은 사히티아아카데미(1954 설립)와 함께 발전해왔다. 이곳에서는 4권으로 된 〈인도문학도서목록 National Bibliography of Indian Literature〉(1901~53)을 간행했으며 인도를 포함한 세계문학작품들을 인도에서 통용되는 여러 언어로 번역·출간했다. 또한 시인 타고르의 작품을 출판하기도 했다. 잡지로는 격월간 문학지 〈인도문학 Indian Literature〉과 계간지 〈산칼렌 바라티야 사히티아 SanKbleen Bhbratiya Sbhitya〉, 1년에 2번 나오는 〈산스크리타 프라티바 Sanskrita Pratibha〉가 각각 영어·힌디어·산스크리트로 발행된다.
국립서적공사는 1957년 문학작품 창작 및 출판을 북돋우고 저렴한 가격으로 책들을 도서관이나 교육기관, 일반대중에게 보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교육·과학·문화·인문 관계 서적들과 인도 및 세계 고전문학을 인도의 주요언어들로 소개하는 한편 격년제로 국제서적전람회를 개최한다. 전국 또는 지방별로 서적전시회, 세미나, 작가 캠프 등의 행사를 주최한다. 또한 해외에서 열리는 주요 국제서적전람회에 인도의 서적을 전시하는 일도 담당하고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인도 문학
인도의 여러 민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학.
Ⅰ. 개관
인도의 여러 민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학.
4,0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지닌 인도의 문학은 그 언어의 다양함이나 문학의 배경을 이루는 종교 ·사상의 복잡성 등 다른 나라의 문학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언어상으로는 인도의 문학을 인도-유럽어계(語系)와 드라비다어계로 크게 나누며, 전자는 그것을 다시 연대적으로 고대(베다 문학)·중고(고전 산스크리트 문학) 및 근세의 각종 방언문학(方言文學)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드라비다어 계통의 문학도 몇 가지 방언문학으로 나눌 수 있지만, 그 고전작품은 전하지 않는다. 종교면에서 살펴볼 때, 최고(最古)의 베다문학은 브라만교(Brahmanism:婆羅門敎)를 배경으로 하고, 중고기(中古期)의 산스크리트 문학은 주로 힌두교의 문학이지만, 이와 병행하여 각종 프라크리트어를 사용한 불교와 자이나교의 문학도 있다. 근세문학 역시 그 주류는 힌두교를 배경으로 하나, 이슬람교 문학의 비중을 소홀히 다룰 수 없으며, 현대 문학에서는 그리스도교적인 서구문학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Ⅱ. 고대
BC 2000년경 중앙 아시아로부터 이란을 거쳐 인도 북서부로 이주해온 아리아인들은 인더스강(江) 상류지방에 정주하게 되면서 아리아 문화의 기초를 뿌리박았다. 인도의 가장 오랜 문헌인 《리그 베다》는 그들이 대자연의 현상을 신격화하고 그것을 찬미한 서정적인 시가(詩歌)를 주로 하여 집대성한 것이다. 이를 중심으로 하여 찬가집(讚歌集)인 《사마 베다》, 제사(祭詞)를 모은 《야주르 베다》, 재앙을 쫓고 복을 비는 주사(呪詞)를 모은 《아타르바 베다》를 합쳐 4베다라 일컫는다. 여기에 이어서 4베다 본집(本集)을 해설, 제식(祭式) 때 그것을 적용할 수 있도록 서술한 ‘브라마나’와 철학적 문헌인 《아라냐카》 《우파니샤드》가 만들어지고, 베다 시대 말기(BC 500년경)에는 제식에 필요한 보조적인 지식으로서 6종의 ‘베당가’에 관한 수트라 문학이 탄생하였다. 약 l,000년에 걸쳐 전개된 방대한 베다 문학은 바라문교의 종교문학이지만, 특히 《리그 베다》의 소박하고 웅대한 서정적 찬가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높다.
Ⅲ. 서사시 시대
고대문학과 중고문학 사이에는 인도의 국민적 2대 서사시(敍事詩)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로 대표되는 서사시 시대가 있다. 이 2대 역사시(歷史詩)는 태고로부터 전승되던 옛 사건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신화 ·전설들을 읊은 것인데, 기원전 수세기경까지는 이미 정돈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마하바라타》가 지금과 같은 시형(詩形)을 갖춘 것은 4세기 무렵이며 《라마야나》는 2세기경에 이미 현전(現傳)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전자는 바라타족(族)의 대전쟁을 주제로 하고, 후자는 영웅 라마왕(王)의 무용담을 발미키가 엮은 것으로 이들 2대 역사시는 후대의 사상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Ⅳ. 고전산스크리트
BC 4세기경 문법학자 파니니가 나타나 산스크리트라는 문장어(文章語)의 기초를 확립시켰다. 이 언어는 속어를 기초로 하는 프라크리트의 여러 회화어(會話語)와 함께 중고 문학의 용어로 널리 사용되면서 ‘카비야’라고 일컬어지는 여러 문예작품을 탄생시켰다. 중고 문학에서 최초의 작가로는 불교 시인인 아슈바고샤(2세기)를 들 수 있다. 극작가 바사(3세기경), 슈드라카(4세기경)가 나타난 뒤, 산스크리트 문학은 ‘인도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칼리다사(4∼5세기)의 등장으로 융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칼리다사는 걸작 희곡 《샤쿤탈라》 외에도 서정시 ·서사시 ·희곡 등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 인도의 고금을 통하여 첫손으로 꼽히는 작가의 자리를 누리게 되었다.
칼리다사 이후 약 800년간은 고전문학의 최성기로서, 각 장르에 걸쳐 수많은 작가들이 배출되었다. 서정시에서는 바르트리하리(7세기)·아마루(8세기)·빌하나(11세기)를 비롯하여 자야데바(12세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인이 출현하였고, 서사시에서는 바라비(6세기)·바티(7세기)·마가(8세기) 등의 기교파 시인, 희곡에서는 하르샤(戒日王:606∼47)가 《프리 야다르시카》 등 3편의 작품을 남긴 이외에도 칼리다사에 버금가는 바바부티(7∼8세기) 등이 배출되었다.
또한 전기소설(傳奇小說)에서는 7세기경 단딘, 수반두, 바나 등 세 거장(巨匠)이 나타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설화문학(說話文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발달하였으나, 세계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판차탄트라》, 지금은 실전(失傳)된 대설화집 《브리하트카타》의 개작본(改作本) 《카타사리트사가라》를 비롯, 크고 작은 설화집들이 완성되었다. 산스크리트 문학은 이상과 같은 순수 문예 작품 이외에도 철학 ·문전(文典:문법)·수사학(修辭學)·시론(詩論)·연극론(演劇論)을 위시하여 법제(法制)·치세(治世)·미술 ·음악 ·수학 ·천문 ·의학 ·성애(性愛) 등 학술 기타 갖가지 방면에 걸친 방대한 작품을 낳게 했다.
Ⅴ. 불교 · 자이나교
원시 불교의 경전(經典)인 《삼장(三藏):Tipitaka》은 프라크리트의 고형(古形) 팔리어(語)로 쓰였으나 불전(佛典) 중에는 설화집 《자타카[本生經]》와 같이 문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 적잖이 포함되었다. 불교문학은 뒤에 산스크리트도 사용하게 되면서 아슈바고샤[馬鳴] 이후 많은 불교 시인들을 속출시켰다. 자이나교 또한 여러 가지 프라크리트 방언을 사용하여 독자적인 종교문학을 성립시켰다.
Ⅵ. 근세 이후
13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 문학을 대신하여 각 지역 방언에 의한 문학이 발생하면서, 그것은 페르시아 문학의 이입(移入)과 어울려 다채로운 근세 문학의 시대를 열게 된다. 여러 방언 문학 가운데에서도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북부 인도의 힌디 문학, 이슬람교도에 의한 우르두 문학, 벵골어에 의한 벵골 문학 등이다.
힌디 문학은 인도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북부 인도의 중앙부에서 전개된 문학으로, 최대의 종교 시인 툴시다스(1532∼1623)의 《람 차리트 마나스》는 ‘북인도의 성서’로 불릴 만큼 널리 애송되었다. 또한, 프렘찬드(1880∼1936)는 주옥 같은 단편소설 작품을 중심으로 현대 힌디 문학의 새로운 장(章)을 열게 한 작가이다. 벵골 문학은 15세기경부터 융성하기 시작하여 일찍부터 산문작품을 발달시켜 오더니, 마침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타고르(1861∼1941)를 배출하였다.
그는 근대 벵골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동서 문화 융합에 큰 발자취를 남겼으며, 한국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 3·1운동이 실패하자 이를 격려하는 《패자(敗者)의 노래》(1919)에 이어 《아시아의 등불》(24)이라는 시를 동아일보(東亞日報)에 기고하기도 하였다. 한편, 남부 인도의 드라비다어에 의한 문학은 4세기 무렵부터 점차 발달하여 그 중의 한 어족인 타밀어 문학이 대표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독자적인 작품을 남겼으나, 나중에는 산스크리트 문학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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