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인권의 측면에서 본 낙태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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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측면에서 본 낙태

 

 

자식을 원하는 부부 가운데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와는 달리 많은 경우 아들 낳기를 바란다. 이것이 여태까지 우리 사회의 솔직한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경제 형편이 나아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또 근대적 민주 시민으로서의 훈련을 통해 전통적인 남아 선호 의식이 덜해질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예측이나 기대와는 달리 거꾸로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내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사라지는 태아가 상당수 될 것이라거나 중학교에 '홀아비 반'이 따로 있다는 등의 이야기는 얼마 전부터 있어 왔지만, 권위 있는 국책 연구 기관이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면서 정확한 현실은 드러나게 되었다.

 

지난 95 7월에 보건 사회 연구원에서 발표한 <성비 불균형 해소 방안>의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출생 성비(출생 여아 1백 명 당 남아 수)는 정상적인 106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유교 문화권인 중국, 대만, 한국 등에서만 현저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성비의 불균형 현상은 출산력이 급격히 저하된 80년대부터 야기됐으며 날로 그 비율이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80년에는 출생 성비가 104.3이었으나 그 이후로 급격히 증가하여 93년에는 115.6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2010년이면 결혼 적령기 남자 중 23%가 신부감을 구하지 못할 전망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의 근심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남녀 성비의 불균형이 일으키는 문제로, 장차 결혼을 못할 남성이 많아질 것이며 그 때문에 야기될 사회적 긴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이미 각급 학교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교육 현장의 지적도 들려오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태어날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태아에 관한 것으로 그것은 이미 태어나 살고 있는 여성들의 처지와도 연결되어 논의되고 있다. 동전의 안팎이라 할 이러한 문제점들을 일으키는 태아 성 감별과 여태아 낙태는 어떤 연유로 생기고 있으며 그것을 근절할 처방은 과연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남아 선호 의식을 문제 발생의 주범으로, 그리고 부도덕한 일부 의사들을 종범으로 간주하고 있는 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체로 동의하지만, 널리 행해져온 낙태(인공적 임신 중절) 전반에 대해서는 언급이 적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낙태 찬반에 관련된 '생명의 시작' 문제는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끝'과 마찬가지로 과학이나 종교나 법률 가운데 어느 한 가지로 규정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야말로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와 동의를 전제로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러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인권에 대한 척박한 인식 수준을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주로 경제 성장의 한 전술로 행해진 인구 억제에서는 성공했지만, 대신 인구 정책의 윤리적, 인권적 측면에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서 인구 억제의 중요한 수단으로 쓰여 온 낙태와 무관한 부부가 얼마나 될까. 의사, 산모, 가족 모두 별 문제 의식 없이 행해 온 낙태 관행은 사내아이를 낳기 위한 여태아 낙태(전체 낙태 가운데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남녀 평등 사회를 앞당기는 모든 법률적, 사회적 조처의 강력한 시행과 더불어 낙태 문제를 주로 국가 경쟁력 관점에서 바라본 데에서 벗어나 태아의 생명권과 부모의 출산권이라는 인권을 중심으로 접근할 때 남아 선호라는 전근대적인 굴레와 그것의 비인간적인 결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태아가 아무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는 미숙한 인간이지만, 태아 또한 엄연한 생명체이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천부인권설의 측면에서 볼 때, 인권의 범위를 확대시켜 낙태의 문제까지도 인권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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