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이야기 / 본문 일부 및 해설 / 피천득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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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 피천득

 

 

 '태초(太初)에 말씀이 계시니라.'

 

 사람은 말을 하고 산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생각까지도 말을 빌어 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꿈 속에서도 말을 하는 것이다. 물건 매매도 교육도 그 좋아들하는 정치도 다 말로 한다. 학교는 말을 가르치는 곳이요, 국회는 시저 때부터 지금까지 말을 하는 곳이다. 수많은 다방도 다 말을 하기 위한 곳이다. 런던에서 맨 먼저 개점한 월리라는 커피 하우스는 에디슨과 스틸이 만나서 말하던 장소이었다. 가정 부인들은 구공탄, 빨랫비누, 그 어휘는 몇 마디 안 되지만 하루 온종일 말을 하고 있다. 이삼 일이면 끝낼 김장을 한달 전부터 김장이란 말을 자꾸자꾸 되풀이하고, 그 김장을 다 먹을 때까지 날마다 날마다 '김치'라는 말을 한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 하는 말은 '나는 무식한 사람이다. 둔한 사람이다.' 하는 소리다. 화제(話題)의 빈곤은 지식의 빈곤, 경험의 빈곤, 감정의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요, 말솜씨가 없다는 것은 그 원인이 불투명한 사고 방식에 있다.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후진 국가가 아니고는 사회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진부(陳腐)한 어구, 애매한 수식어, 패러그래프 하나 구성할 수 없는 지도자! 그렇지 않으면 수도에서 물이 쏟아지듯이 말이 연달아 나오지마는, 그 내용이야말로 수돗물같이 무미(無味)할 때 절망 정나미가 떨어진다. 케네디를 케네디로 만든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말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같은 성인(聖人)도 말을 잘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이 전파 계승된 것이다. 덕행(德行)에 있어 그들만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나, 그들과 같이 말을 할 줄 몰라서 역사에 자취를 남기지 못한 것이다. 결국 위인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말은 은(銀)이요, 침묵은 금(金)이다.' 라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침묵은 말의 준비 기간이요, 쉬는 기간이요, 바보들이 체면(體面)을 유지하는 기간이다. 좋은 말을 하기 위해 침묵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긴 침묵을 필요로 한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요, 농도 진한 말을 아껴서 한다는 말이다. 말은 은같이 명료할 수도 있고, 알루미늄같이 가벼울 수도 있다. 침묵은 금같이 참을성 있을 수 있고, 납같이 무겁고 구리같이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나 금강석 같은 말은 있어도 그렇게 찬란한 침묵은 있을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은 말로 이루어지고 말로 깨어졌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초대를 받았을 때 우선 그 주인과 거기에 나타날 손님을 미루어 보아 그 좌석에서 전개될 이야기를 상상한다. 좋은 이야기가 나올 법한 곳이면 아무리 바쁜 때라도 가고,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 비록 성찬(盛饌)이 기다리고 있다하더라도 아니 가기로 한다. 피난 시절에 음식을 따라 다니던 것은 슬픈 기억의 하나다. 나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추운 날 먼 길을 간 일이 있고, 밤을 세우는 것도 예사였다. 차 주전자에 물이 끓고 방이 더우면 온 세상이 우리의 것인 것 같았다. 한밤중에 구워 먹을 인절미라도 있으면 방이 어두워 손을 데이더라도 거기서 더 기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눈 오늘 날 다리 저는 당나귀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림이 있다. 만나서 즐거운 것은 청담(淸談)이리라. 말없이 나가서 술을 받아 오는 그 집 부인을 상상한들 어떠리.

 

 <후략>

 


 작자 : 피천득
 형식 : 현대 수필, 경수필
 성격 : 신변잡기적, 정감적
 문체 : 우유체, 간결체
 표현 : 예시와 열거의 방법이 쓰임
 제재 : 이야기
 주제 : 진실한 대화의 중요성
 출전 : 금아시문선(1959)
 구성 : 두괄식

 

 태초(太初) : 천지가 처음 열린 때, 천지가 창조된 때.
 시저 : 로마의 장군. 정치가
 구공탄 : 구멍이 여럿 뚫린 원기둥 모양의 연탄을 두루 이르는 말.
 말주변 : 말을 막힘이 없이 잘 둘러대는 재주.
 진부한 : 케케묵고 낡은
 패러그래프 : 긴 문장에, 내용상으로 일단 끊어지는 곳. 단락
 무미 : 맛이나 재미가 없음.
 덕행 : 어질고 착한 행위
 명료 : 분명하고 똑똑함.
 클레오파트라 :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은 마케도니아의 왕가,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가문이 이집트에서 애용한 여성의 이름이다.
 성찬(盛饌) : 푸짐하게 잘 차린 음식
 피난(避難) : 재난을 피하여 여기저기 옮김
 예사(例事) : 예상사(例常事). 보통 있는 일
 청담(淸談) : 속되지 않은 청아한 이야기
 험담(險談) : 험악한 이야기
 전기 : 한 개인의 일생의 사적을 적은 기록


 좋은 이야기가 - 가기로 한다. : 비록 좋은 음식이 나오는 곳이라도 진정한 의미의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 음식이나 어떤 이해 관계보다 진정한 친구와 만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더 행복하다.
 피난 시절에 - 기억의 하나다. : 6·25 때 즐겁고 진실한 대화보다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던 기억을 말한다. 이야기 없는 삶의 비참함을 6·25를 회상하며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적 동물'이며, 인간에게서 언어가 박탈된다면 인간과 동물이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밑에 깔려 있다.
 눈 오는 날 - 그림이 있다. :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눈 오는 날 친구와의 정담은 맑고 속되지 않아서 한밤을 새울 듯하다.
 이해 관계 없이 - 일이다. : 남을 비판하는 내용의 이야기도 때로는 즐거운 일이라는 말로서, 이 말은 남의 험담을 해도 좋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속담에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는 말이 있으나 이 수필에서는 대화, 이야기의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물론 '침묵은 금'이라는 속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인간 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의사 소통이다. 그러나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반드시 필요한 말을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이 작품에서는 여러 가지 사례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비유적인 표현도 적지 않다. 간결하면서도 변화 있는 문체, 재치 있게 생각을 표현하는 유려한 필치가 이 작품의 특징이다.

 

  세월이 흐르면 우리의 모든 경험은 다 이야기로밖에 남지 않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어 줄 수 있는 정담,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적절한 예시를 들어가며 말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남의 말이나 험담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정담을 나누며 살아감으로 마음의 여유를 갖자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과 험담까지도 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자의 개성적인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거짓말과 험담도 긍정하는 까닭은 그만큼 이야기와 대화에는 개인 간의 친밀성과 진실성이 가장 가까운 친구끼리 대화를 나누듯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은 피천득이 수필을 쓰는 자세이기도 하다.

 

 

 클레오파트라 7세 (Cleopatra VII) [BC 69~BC 30.8.30]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은 마케도니아의 왕가,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가문이 이집트에서 애용한 여성의 이름이다. 그녀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오보에를 부는 왕)의 둘째 딸로서, BC 51년 이후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여 이집트를 공동통치하였다. 그 후 한때 왕위에서 쫓겨났으나, BC 48년 이집트에 와 있던 G.J.카이사르를 농락하여 인연을 맺고 복위하였으며,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카이사르와 싸우고 죽은 뒤인 BC 47년에는 막내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재혼하여 공동통치하였다. 카이사르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낳아, 카이사리온(프톨레마이오스 15세)라 불렀으며, 그녀는 한때 빈객으로서 로마에 가 있었으나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에 이집트로 돌아왔다.

 

BC 41~BC 40년 M.안토니우스와 소아시아의 타르소스 및 알렉산드리아에서 인연을 맺었다. BC 37년 옥타비아누스와의 협조가 결렬된 안토니우스는 재차 그녀 앞에 나타나 결혼함으로써 두 사람의 정치적 ·인간적 유대가 심화되었다. BC 34년 안토니우스는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에게 로마의 전체 속주(屬州)를 주었다(알렉산드리아의 기증). 그러나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와의 대립은 BC 31년의 악티움 해전으로 번졌으며, 이 해전에서 그녀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은 패배하였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안토니우스와 재기를 꾀하였으나, BC 30년 옥타비아누스군의 공격을 받고 독사로 가슴을 물게 하여 자살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죽음은 프톨레마이오스 왕가 300년의 종말이고, 로마에 의한 지중해 세계 지배의 일단의 성공이며, 또한 옥타비아누스에 의한 로마제국의 개막을 뜻하는 것이 되었다.

 

그녀는 용모와 자태에 있어서의 여성적 매력과 수개 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외교 수완을 발휘하여,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두 사람의 로마의 영웅을 자유자재로 조종하여 격동기의 왕국을 능란하게 유지해 나간 여왕이었다. 그러나 재색을 겸비한 이 여성에 대해서는 단지 고혹적인 매력만이 강조되어, 오늘날까지 요부 ·간부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제정(帝政)의 창생신화(創生神話)를 형성하기 위하여 꾸며낸 설화로 보는 견해도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생애는 많은 문학 작품의 좋은 소재로서 등장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안토니우스전》과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있으며, 근세에 와서는 G.B.쇼의 《시저와 클레오파트라》(1868) 등이 유명하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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