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전문 및 요점정리 / 알베르 카뮈
by 송화은율이방인 / 알베르 카뮈
오늘, 어머니가 죽었다. 아니면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아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경백(敬白),'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양로원은 알제이 시에서 팔십 킬로미터 떨어진 마랑고에 있다. 두 시에 버스를 탄다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곳에서 밤을 새우고 내일 저녁쯤에는 돌아올 수 있다. 나는 사장에게 이틀 동안의 휴가를 신청했는데, 그로서도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며 휴가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나는 이런 말까지도 했다. "그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컨대, 나는 변명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가 나에게 애도의 말이라도 해 줘야 마땅했다. 하지만 모레, 내가 상장(喪章)을 단 것을 보면 틀림없이 무슨 말이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어쩐지 어머니가 죽은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장례식이 끝나고 나면, 그 죽음은 기결 사건이 되고, 모든 것이 보다 의례적인 격식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두 시에 버스를 탔다. 날씨는 몹시 무더웠다. 나는 늘상 하던 대로 셀레스트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들은 모두 나를 매우 측은하게 여겼으며, 셀레스트는 "어머니는 오직 한 분뿐이죠."라며 나를 위로했다.
내가 레스토랑을 나올 때 모두들 나를 문까지 바래다 주었다. 나는 좀 경솔했었다. 왜냐하면 도중에서야 겨우 생각이 나서 엠마뉘엘에게 들러 검정 넥타이와 상장을 빌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엠마뉘엘은 서너 달 전에 그의 삼촌을 잃었다.
나는 출발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달렸다. 내가 깜빡 잠이 든 것은 아마 그러한 서두름, 달음박질, 그리고 그에 덧붙여 차의 덜커덩거림, 기름 냄새, 도로와 하늘에서 반사하는 햇빛, 이런 모든 것들 때문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거의 내내 잤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어떤 군인의 어깨에 기대 있었는데, 그는 웃으면서 멀리서 오느냐고 물어 보았다. 나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대답해 버렸다.
양로원은 마을로부터 이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나는 그곳까지 걸어서 갔다. 나는 곧바로 어머니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수위는 원장을 먼저 만나야 된다고 했다. 원장은 바빴으므로 조금 기다려야만 했다. 그 동안에도 수위는 줄곧 지껄여 댔으며, 마침내 나는 원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의 사무실로 나를 불러 들였다. 키가 작은 늙은이였는데, 레죵 도뇌르 훈장(프랑스의 최고 훈장. 5급으로 나뉘어 군사상·문화상의 공로자에게 줌-역주)을 달고 있었다. 그는 또렷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내 손을 붙잡고 하도 오랫동안 놓지 않았으므로, 나는 어떻게 손을 거두어 들여야 할지 매우 난감했다. 그는 서류를 뒤적거리고 나서 말했다. "뫼르소 부인은 삼 년 전에 이곳에 들어 오셨읍니다.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었지요." 나는 그가 나를 책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가 나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봐요, 젊은이. 변명할 필요는 없어요. 나는 이미 당신 어머니의 서류를 읽어 보았읍니다. 당신으로서는 어머니를 부양할 수 없었더군요. 어머니는 돌보아 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당신의 수입은 보잘것이 없었지요. 결국 어머니는 이곳에서 훨씬 더 행복하게 지내신 셈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원장 선생님." 내가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잘 알고 계시지겠지만 어머니께서는 이곳에서 같은 연배의 친구분들과 사귀셨읍니다. 그들과 함께 지난 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요. 당신은 젊은이고, 그래서 당신과 같이 사셨더라면 더 적적하셨을 겁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집에 있을 때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하면서 줄곧 시간을 보냈다. 양로원으로 들어간 후 처음 며칠 동안은 가끔 울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습관에 지나지 않았다. 만일 몇 달이 지난 후 양로원에서 나오게 했다면 그때도 울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저 습관일 따름이다. 지난 해에 내가 양로원에 거의 들르지 않은 데는 그런 이유도 약간은 있다. 그리고 또 일요일을 허비해야 하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버스표를 사서 무려 두 시간씩이나 버스를 타는 일이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원장은 다시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는 거의 듣고 있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를 뵙고 싶으시라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잠자코 일어나서 문께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계단에서 그가 내게 설명을 해 주었다. "시체는 작은 빈소로 옮겨 놓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죠. 사망자가 생길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신경이 날카로와지거든요. 그래서 매우 난처한 일이 생기게 되죠." 우리는 안뜰을 가로질러갔다. 그곳에는 상당히 많은 늙은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갈 때는 말을 멈추었다가 우리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앵무새가 지저귀는 소리처럼 들렸다. 작은 건물의 문 앞에 이르자, 원장은 나를 내버려두고 가 버렸다. "뫼르소 씨,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 사무실에 있을께요. 원칙적으로 장례식은 내일 아침 열 시로 정해져 있습니다. 당신께서 밤샘을 하시리라 생각해서 저희가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장례를 종교 의식을 갖추어 해 주었으면 한다고 친구분들에게 말씀 하셨던 모양입니다. 필요한 준비는 모두 해 놓았습니다. 미리 알고 계시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는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물론 무신론자는 아니었지만 생전에 종료에 대해 생각한 적도 없었다.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다. 하얗게 회칠을 하고, 그 위에 그림 유리창을 덧붙인 매우 밝은 방이었다. 거기에는 의자들과 엑스(X)자 모양의 받침대들이 놓여 있었다. 방 가운데 두개의 받침대 위에 뚜껑이 덮인 관이 놓여 있었다. 호두 기름을 칠한 관 위로 대충 박아 놓은 나사못만이 번쩍거렸다. 관 옆에는 흰 가운을 입고 짙은 색깔의 모리수건을 쓴 아랍 인 가호원이 앉아 있었다.
그때, 수위가 내 뒤쪽에서 들어왔다. 마구 뛰어온 모양이었다. 그는 조금 더듬거리며 말했다. "입관을 마쳤습니다만, 보실 수 있도록 뚜껑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그가 관 옆으로 다가섰을 때 나는 그를 가로막았다.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그가 물었다. "네, 보지 않겠습니다."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몹시 어색해지고 말았다. 잠시 후에 그는 나를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그러나 비난할 의무도 없고, 단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 듯했다.
"저도 잘 모르겠군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하얀 수염을 배배 꼬면서 내게서 눈길을 거두고 말했다. "이해할 것 같군요." 그의 하늘색 눈은 아름다웠고, 그의 얼굴은 약간 붉은빛이 감돌았다. 그는 나에게 의자를 권하고, 그 자신도 내게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간호원은 일어나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수위가 나에게 말했다. "종기 때문에 저런답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간호원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눈 밑을 붕대로 감고 있었는데, 붕대는 머리 뒤까지 돌아 가며 감겨 있었다. 오똑한 코도 붕대로 싸여 판판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흰 붕대뿐이었다.
간호원이 나가 버리자 수위가 말했다. "저도 인젠 가 보겠습니다." 그때 내가 어떤 몸짓을 해 보였는지, 그는 그 자리에서 선 채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내 등뒤에 서 있다는 사실이 나는 몹시 거북스러웠다. 방 안에는 해질 무렵의 아름다운 빛이 가득 흘러들었다. 말벌 두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치며 윙윙 소리를 냈다. 졸임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수위에게로 얼굴을 돌리지 않고 말을 꺼냈다. "이곳에 오신 지 오래 되셨습니다?" "오 년이 되었습죠."라고 그가 즉시 대답했다. 마치 오래 전부터 그렇게 물어 주기를 기다리고 나 있었던 것처럼.
그러고 나서, 그는 곧 수다스럽게 지껄여 대기 시작했다. 만일 자신이 마랑고 양로원의 수위로 일생을 마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더라면, 자신은 큰 충격을 받았으리라. 자기는 예순 네 살이며 파리 태생이다. 그때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아다. "아, 그러면 당신은 이곳 사람이 아니셨군요?" 문득, 그가 나를 원장실로 안내하기 전에 나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 주던 것이 생각났다. 그는 산이 없는 평야 지대에서는, 특히 이 고장은 날씨가 더우므로 서둘러 매장을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는 파리에서 살았으며, 파리를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파리에서는 시체를 사나흘씩이나 내버려둘 수도 있다. 이곳에서는 머뭇거릴 시간도 없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영구차 뒤를 따라가야 한다. 그때 그의 아내가 끼여들었었다. "여보, 그만 해요. 그런 이야기는 점잖은 분에게 할 게 아니잖아요." 그러자 영감은 얼굴을 붉히며 내게 사과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그들 사이에 끼여들어 한 마디 했다. 나로서는 수위의 이야기가 그럴 듯하게 들렸으며, 재미있기조차 했었던 것이다.
빈소 안에서, 그는 극빈자로서 이 양로원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이 건강하다고 느꼈으므로 수위 자리를 자청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도 결국은 재원자(在院者)가 아니냐고 했다. 그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나는 그가 재원자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 '그 사람들', 또 이따금은 '그 늙은이들'이라고 해서 매우 놀랐었는데, 재원자들 중에는 그보다도 나이가 적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물론 그들과는 달랐다. 그는 수위였으므로 그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권리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간호원이 들어왔다. 갑자기 날이 저물어다. 그리고는 곧 어둠이 유리창 위로 짙게 내렸다. 수위가 스위치를 올렸다. 나는 갑자기 쏟아지는 불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제대로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전혀 식욕이 없었다. 그랬더니 그는 밀크 커피를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나는 밀크 커피를 아주 좋아했으므로 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잠시 후에 그는 쟁반을 하나 들고서 돌아왔다. 나는 밀크 커피를 마셨다. 밀크 커피를 마시고 나자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그러나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좋을지를 몰라서 잠시 머뭇거렸다. 곰곰 생각해 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수위에게도 담배를 권하고, 함께 담배를 피워다.
갑자기 그가 말문을 열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어머님의 친구분들께서 밤샘을 하러 오실 겁니다. 그게 관습이니까요. 저는 의자와 블랙 커피를 가져 와야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전등을 하나 끌 수 없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하얀 벽 위에 반사되는 강렬한 불빛이 나를 피곤하게 했다. 수위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전기 설비 자체가 모두 켜든지 아니면 모두 꺼 버리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방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는 의자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한 의자 위에는 커피 포트 하나와 그 주위에 찻잔들을 놓아 두었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시체를 사이에 두고 나와 마주 앉았다. 간호원도 등을 돌린 채로 방 구석에 앉아 있었다. 나로서는 그녀가 무얼 하고 있는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팔이 움직이는 걸로 보아, 뜨개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날씨는 따뜻했고, 커피를 마신 덕분에 몸도 훈훈했으며, 열려진 문틈으로 밤 공기와 꽃 냄새가 흘러들어 왔다. 아마도 나는 깜박 졸았던 것 같다.
무언가 가볍게 스치는 소리에 잠을 깼다. 눈을 감고 있었던 탓으로, 방안의 흰 빛이 더욱 눈이 부셨다. 내 앞에는 그림자 하나 없었으며, 모든 사물이, 모서리 하나하나다. 모든 굴곡이 눈이 아플 정도로 확실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때, 어머니의 친구분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여남은 명 가량 되었는데, 눈부신 빛 속으로 소리조차 내자 않고 앉았다. 나는 그때처럼 사람을 자세히 쳐다보았던 적이 없다. 그들의 얼굴, 옷차림은 하찮은 부분까지도 자세히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도 말이 거의 없었으므로 이 세상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여자들은 거의 모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끈으로 허리를 졸라 맨 탓으로 배가 더욱더 두드러져 보였다. 나는 그때처럼 늙은 여자들의 배가 크게 부풀어오른 것을 본 일이 없었다. 반대로 남자들은 대개가 몹시 말라 있었으며,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몹시 놀랐는데, 왜냐하면 눈은 보이지도 않고 다만 주름살 속으로 희미한 빛이 보일 따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자리에 앉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빨이 빠져 버린 입 속으로 입술이 말려들어간 얼굴들을 하고 어색하게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나를 바라보았는데, 나는 그것이 나에 대한 인사인지 아니면 그저 버릇 때문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모두 수위를 중심으로 나를 마주 보고 앉아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한순간 나는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다는,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느낌을 받아다.
잠시 후에, 한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둘째 줄에 앉아 있었으므로 앞에 앉은 그의 동료에 가리워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소리를 내며 규칙적으로 울어 댔다. 나에게는 그녀의 울음이 결코 멈춰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울음 소리를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맥없이 우울한 얼굴로 잠자코 앉아만 있었다. 모두들 관이든지 지팡이든지, 아무튼 무언가를 멍청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울어댔다. 그런 여자를 내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몹시 놀라게 했다. 나는 그 울음 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그녀에게 할 수는 없었다. 수위가 그녀에게로 얼굴을 돌리고 뭐라고 말을 했지만, 그녀는 머리를 흔들고 한두 마디 중얼거리더니 다시금 그 규칙적인 울음을 계속했다. 그때 수위가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한참 후에 그가 내게 얼굴을 돌리지 않은 채로 얘기했다. "저분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매우 친하게 지내셨답니다. 어머니는 양로원에서 자기와 유일한 친구였는데, 돌아가셨으니 이젠 정말로 혼자가 되고 말았다는군요."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녀의 한숨 소리와 흐느낌 소리도 차츰 뜸해져 가다. 그녀는 꽤나 코를 훌쩍였다. 마침내 울음이 멈췄다. 나는 더 이상 졸리지는 않았지만, 몹시 피곤했으며 허리가 아팠다. 그 순간에는 오직 마주하고 있기가 힘든 그 사람들의 침묵이 있을 뿐이었다. 단지 이따금 이상한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어떤 늙은이들이 볼을 안쪽을 쭉쭉 빨아 대서 나는 이상한 소리였다. 그들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으므로, 자신들이 그런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 놓여진 시체가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우리는 모두 수위가 따라 주는 커피를 마셨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밤이 지났다. 내가 잠깐 눈을 떴을 때 늙은이들은 모두 쭈그린 채 잠들어 있었는데, 한 늙은이만이 지팡이를 쥔 손등 위에 턱을 괴고 앉아서 내가 잠에서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잠에 빠져 버렸다. 허리의 아픔이 더욱 심해져서 나는 잠을 깨고 말았다. 유리창 위로 아침 햇살이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조금 후에, 늙은이 한 사람이 잠에서 깨어 기침을 했다. 그는 줄무늬가 있는 커다란 손수건에 침을 내뱉었는데, 침을 뱉는다기보다는 차라리 잡아 뽑는 것 같았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깨웠고, 수위가 떠날 시간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괴로운 밤샘으로 그들의 얼굴은 잿빛이 되어 있었다. 방을 나서면서 그들은 모두 나와 악수하였다. 나는 매우 놀랐다. 말 한 마디 주고받지 않은 그 날 밤이 오히려 우리들 사이의 친밀감을 두텁게 해 준 듯싶었다.
나는 피곤했다. 수위가 나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갔고, 덕분에 나는 간단히 세수를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매우 맛이 좋은 밀크 커피를 마셨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날이 완전히 밝아 있었다. 바다와 마랑고 사이에 펼쳐진 언덕들 위로 하늘 가득 붉은빛이 퍼져 있었다. 언덕 위로 부는 바람이 이곳에서 소금내를 묻혀 왔다. 아름다운 하루가 막 열리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들에 나간 일이 없었으므로 어머니 일만 아니라면 얼마나 즐겁게 산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뜰의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선한 흙 냄새를 들이마셨다. 졸음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회사의 동료들이 생각났다. 바로 그 시간에, 그들은 출근하기 위해 일어났을 것이다. 나로서는 그때가 언제나 몹시 힘들었다. 나는 그런 일들을 조금 더 생각해 보았으나 건물 내에서 울린 종소리 때문에 주의가 산만해져 버렸다. 창문 안은 한동안 소란스럽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해가 좀더 높이 솟아올랐다. 햇빛이 내 발등을 덥히기 시작했다. 수위가 뜰을 건너 와서 원장이 나를 찾는다고 말했다. 나는 원장실로 갔다. 그리고는 원장이 시키는 대로 갖가지 서류에 서명을 했다. 원장은 줄무늬가 진 바지에 검정색의 윗도리를 입고 있었다. 그는 전화기를 손에 들고 내게 말했다. "장의사 사람들이 조금 전에 왔습니다. 관을 닫아야 하는데, 그 전에 한 번 더 어머니를 보시렵니까 ?" 나는 보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원장은 수화기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피쟈크, 인부들에게 일을 하라고 말하게나."
그러고 나서 그는 나에게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책상 뒤에서 짧은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었다. 그는 우리 두 사람 말고도 담당 간호원이 참석하게 되리라는 말을 덧붙였다. 원칙적으로 다른 재원자들은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밤샘만이 허용될 뿐이다.
"그건 인정 문제지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어머니와 절친했던 토마 페레 노인에게 장지까지 따라가도록 허락했다고 했다. 여기서 원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건 좀 유치한 감정이지요. 그와 어머니는 떨어져 있는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장난삼아 놀리느라고 '당신의 약혼자로군.' 하고 페레에게 말하면, 페레는 슬며시 웃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는 게 그들로서는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는 뫼르소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데에 몹시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장례식에 참석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하지만 왕진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여서 지난 밤의 밤샘만은 금했습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원장이 일어나서 원장실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때 그가 말했다. "마랑고의 주임 신부께서 벌써 오시네. 매우 빠르시군." 그가 마을에 있는 성당까지는 적어도 사십 오 분은 걸릴 거라고 알려 주었다. 우리는 내려가기 시작했다. 빈소가 마련된 건물 앞에 신부와 복사 아이 두 명이 서 있었다. 복사 한 명은 향로를 들고 있었는데, 신부는 은줄의 길이를 조절하기 위해 그에게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우리가 앞으로 다가가자 신부가 굽혔던 허리를 폈다. 신부는 나를 '내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몇 마디를 건네었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를 따라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가자, 나사못이 박혀 있는 관과 네 명의 인부가 대번에 눈에 띄었다. 그때 나는 길에서 영구차가 대기하고 있다는 원장의 말과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는 신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너무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인부들이 커다란 보자기를 관 앞으로 가지고 갔다. 신부와 그를 뒤따르는 복사들과 함께 원장과 나는 바깥으로 나왔다. 문 앞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웬 여자가 서 있었다. "뫼르소 씨입니다." 원장이 나를 소개했다. 나는 그 여자의 이름은 듣지 못했지만 그녀가 당번 간호원임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조금도 웃지 않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길쭉한 얼굴을 숙여 보였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시체가 지나갈 수 있도록 나란히 비켜섰다. 우리는 인부들을 뒤쫓아서 양로원 밖으로 나왔다. 문 앞에서 영구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영구차는 길쭉한 모양이었는데, 와니스칠을 해서 몹시 번쩍거려 얼핏 필통을 생각나게 했다. 영구차 앞에는 십장이 서 있었는데, 그는 기괴한 옷차림을 한 키가 작은 남자였다. 그 옆에는 행색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늙은이가 한 명 서 있었다. 나는 그 늙은이가 페레 영감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위가 둥글고 챙이 넓은 펠트 모자를 쓰고 있었고(관이 문을 통과할 때는 그 모자를 벗어 들었다), 바지는 구두 위로 쭈글쭈글하게 늘어져 있었으며, 커다란 흰 칼러가 달린 셔츠에는 지나치게 작은 검정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가느다란 흰 머리털은 못생긴 귀 밑으로 맥없이 흘러내렸다. 창백한 얼굴에 이상하게 귀만이 선혈처럼 붉은빛을 띠고 있어서 더욱더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신부가 맨 앞에서 걸어갔고, 영구차가 그 뒤를 이었다. 그 영구차 주위엔 네 명의 인부가 따라갔다. 그 뒤로 원장과 나, 그리고 당번 간호원과 페레 씨는 행렬의 맨 끄트머리에 섰다.
하늘에는 벌써 햇볕이 가득 차 있었다. 햇볕은 땅 위로 뜨겁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으며, 어느 새 끔찍한 더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출발에 앞서 상당히 지체했는데, 그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검은 옷을 입은 탓으로 나는 몹시 더웠다. 모자를 썼던 그 조그만 늙은이는 모자를 벗어 버렸다. 그에게로 얼굴을 돌리고 잠시 그를 보고 있으려니까 원장이 그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나에게 어머니와 페레 영감이 간호원과 함께 매일 저녁 마을까지 산책을 하곤 했었다고 말했다. 나는 주변에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았다. 하늘과 맞닿은 언덕까지 죽 펼쳐진 편백나무 숲과 붉고 푸른 땅, 그림 같은 집이 가끔씩 눈에 띄는 풍경을 보며, 나는 어머니를 이해할 것 같았다. 이 지방에서 황혼은 막연히 서글픈 휴식 시간과도 같았을 것이다. 오늘, 쏟아져 내리는 햇빛 속에서 어른거리는 풍경은 몹시 무정하고 쇠잔해 보였다.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페레가 다리를 조금 전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구차의 속도가 점점 빨라질수록 늙은이는 뒤쳐지기 시작했다. 영구차 옆에서 걷던 인부 한 명도 지금은 뒤로 처져서 나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나는 해가 그렇게 빨리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들녘에서는 벌써 한참 전부터 윙윙거리는 벌레 소리와 풀잎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부산하게 들려 오고 있었다. 뺨으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모자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손수건으로 부채질을 했다. 내 옆에서 걷고 있던 인부가 뭐라고 말을 건넸으나 나는 잘 듣지 못했다. 인부는 말을 걸면서 오른손으로 모자의 앞을 들어올리고는 왼손에 들고 잇던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셨죠 ?" 그는 하늘을 가리키며 되풀이했다. "끔찍하게도 내리쬐는군요." "그렇군요." 하고 내가 말했다. 잠시 후에 그가 다시 물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까 ?" "그래요." 하고 나는 또다시 간단히 대답했다. "연로하셨던가요 ?" "그런 편이었죠." 하고 내가 대답했다. 나는 어머니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고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더니, 페레가 우리보다 오십 미터쯤 처져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모자를 벗어 들고 두 팔을 이리저리 내저으며 바삐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원장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원장은 불필요한 몸짓은 전혀 하지 않고 점잖게 걷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서도 땀이 흘러내렸지만, 그는 굳이 땀을 닦으려 하지 않았다.
행렬의 속도가 조금 빨라진 듯싶었다. 주위로는 햇볕이 넘치는 눈부신 들판이 한결같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볕은 감당해 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한순간, 우리는 최근에 포장이 끝난 도로를 지나가게 되었다. 아스팔트가 뜨거운 햇볕에 끈적끈적하게 녹아 버렸다. 발이 움푹 빠져 들어가 번쩍거리는 아스팔트의 맨살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영구차 위로 드러나 보이는 마부의 가죽모자는 마치 검은 역청으로 이겨놓은 듯했다. 푸르고 흰 하늘과 그 단조로운 색깔들, 갈라진 아스팔트의 끈적거리는 검은색, 옷들의 흐릿한 검은색, 영구차의 옻칠이 된 검은색들 틈에서 나는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햇볕, 가죽과 영구차의 말똥 냄새, 옻칠 냄새와 향 냄새, 잠을 자지 못한 지난 밤의 피곤, 이런 따위의 것들이 내 눈과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뒤를 돌아다보았다. 페레 영감이 까마득하게 보였다가 한 무리의 열기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찾았더니, 길을 벗어나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때야 나는 길이 굽어 있음을 알았다. 영감은 이 지방을 환히 알고 있을 터였으므로 지름길로 우리를 뒤쫓아오려는 것이었다. 길이 굽어진 곳에서 페레 영감이 우리와 합류했다. 그러더니 다시금 사라져 버렸다. 그는 또다시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러기를 몇 차례나 하였다. 나는 관자놀이에서 핏줄이 불끈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에는 모든 일이 재빠르게, 그리고 순조롭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으므로 지금 내 기억 속에는 달리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마을 어귀에서 당번 간호원이 내게 했던 말이다. 그녀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목소리, 낭랑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천천히 걸으면 더위를 먹을 염려가 있어요. 또 너무 빠르게 걸으면 땀을 많이 흘리게 되므로 성당 안에 들어서면 오한이 난답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정말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이 외에도 그 날의 몇몇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를테면, 페레 영감이 마을 어귀에서 마지막으로 우리와 합류했을 때의 얼굴 말이다. 영감의 볼 위에 흥분과 슬픔의 눈물이 가득 번질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은 주름살 때문에 주르륵 흘러내리지 못하고 쭈글쭈글한 얼굴 위에 그대로 모여서, 마치 그의 얼굴에 물칠을 해 놓은 듯했다. 그 밖에 또 성당과 길 위에 서 있던 마을 사람들, 무덤 위에 붉은 제라늄, 페레 영감의 기절(그는 마치 인형이 부서져서 쓰러지듯 했다), 어머니의 관 위로 뿌려지던 핏빛 흙, 그 속에 섞여 있던 하얀 살의 나무 뿌리, 그리고 사람들의 웅성거림, 어느 카페 앞에서의 기다림, 끊임없이 웅웅거리던 엔진 소리, 그리고 마침내 버스가 알제이의 시가지에 도착하여 이제는 드러누워서 열 시간쯤 실컷 잘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의 나의 기쁨 같은 것들이 기억난다.
2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내가 이틀 동안의 휴가를 신청했을 때 사장이 달갑지 않은 눈치를 보였던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오늘이 토요일이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그것을 잊고 있었는데, 잠에서 깨어나셔야 겨우 그 생각이 났다. 사장은 당연히 내가 일요일까지 무려 나흘씩이나 쉬려고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런 까닭에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장례식이 오늘이 아니고 어제였던 것은 내 잘못이 아니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일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어차피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장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어제 하루 동안의 일로 몹시 피곤했으므로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이 들었다. 면도를 하면서, 오늘은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결국 해수욕을 가기로 작정했다. 항구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서 전차를 탔다. 그곳에 도착해서는 곧바로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해수욕장에는 젊은이들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물 속에서 전에 우리 회사에서 타이피스트로 일했던 마리 카르도나를 만났다. 그 당시 나는 그녀에게 매력을 느꼈었다. 그녀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녀가 조금 후에 회사를 그만두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만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녀가 부표 위로 올라가는 것을 도와주면서 그녀의 가슴을 슬쩍 만졌다. 그녀가 부표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을 때에도 나는 그대로 물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가 내게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눈가에 흐트러진 모습으로 웃어 보였다. 나는 부표 위로 올라가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날씨는 때마침 알맞았고, 나는 장난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머리를 뒤로 젖혀 그녀의 배 위에 올려 놓았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대로 있었다. 내 눈 속으로 하늘이 가득 들어왔다. 푸른 하늘에 황금빛이 번지고 있었다. 마리의 배가 내 목덜미 아래에서 가볍게 오르내리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부표 위에 누워 한동안 어렴풋한 잠에 빠졌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지자 마리가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고, 내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나는 그녀 곁으로 다가가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고 함께 수영을 했다. 마리는 끊임없이 웃어 댔다. 해변가로 나와 몸을 말리면서 마리가 나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보다 더 탔군요." 나는 그녀에게 저녁에 영화나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 봤다. 그녀는 웃으면서 페르낭델이 출연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옷을 다 입었을 때, 마리는 내가 검정 넥타이를 매고 있는 것을 보더니 매우 놀란 몸짓을 해 보이며, 혹시 상을 당하지 않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나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언제였는가를 알고 싶어했으므로, 나는 그저 "어제."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녀는 조금 멈칫했으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장에게 그런 소리를 지껄여 댔던 일을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그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 어쨌든, 사람은 언제나 조금은 잘못이 있기 마련이다.
저녁이 되자 마리는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영화는 이따금 웃음을 자아냈지만 아주 싱겁게 끝났다. 마리는 자기 다리를 내 다리에 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젖가슴을 어루만졌다. 영화가 끝날 무렵, 그녀에게 키스를 했는데, 멋있게 되지는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는 함께 내 집으로 왔다.
눈을 떴을 때, 마리는 이미 가 버리고 없었다. 그녀는 아주머니 댁에 가야 한다는 얘기를 했었다. 일요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몹시 지리해졌다. 왜냐하면 나는 일요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침대 위에 돌아 누워서 베개에 묻은 마리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소금 냄새를 맡으며, 열 시까지 내처 자 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로 열 두 시까지 담배를 피웠다. 나는 보통 때처럼 셀레스트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들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레스토랑의 사람들어 던질 여러 가지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계란을 부쳐서 빵도 없이 접시에 입을 대고 먹었다. 빵이 없는 것은 알았지만 사러 내려가기가 귀찮았다.
아침을 들고 나자 조금 심심해졌다. 그래서 아파트 안을 서성거렸다. 어머니가 계셨던 동안에는 알맞은 크기였다. 하지만 이제 나 혼자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편이었으므로, 식당 테이블을 내 방으로 옮겨 놓았다. 나는 오직 이방, 즉 약간 기울어진 의자와 유리가 누렇게 변색된 옷장과 화장대, 그리고 구리 침대 속에서만 살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내버려둔 채로 있다. 잠시 후에, 나는 할 일이 없어 지난 신문을 들춰 읽었다. 크뤼셍 소금의 광고를 오려 내어, 재미있는 기사들을 모아 두는 낡은 노트에
(32-43 생략)
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죠. '왜 하루의 반 나절이라도 일을 하지 않는 거지? 용돈이라도 벌어 쓰면 나도 한 짐 덜게 될 텐데. 이 달에는 옷도 한 벌 사주었고, 게다가 하루에 이십 프랑씩 용돈도 주고, 방세도 지불해 주고. 당신은 오후에 친구들과 커피도 마시잖아. 당신 친구들에게 커피와 설탕을 대접해 주는 사람은 당신이지만, 돈을 대는 장본인은 바로 나란 말이야. 난 당신한테 해 줄 수 있는 만큼 다 해 주었어. 그런데도 당신은 나한테 너무 섭섭하게 하고 있다구.' 그러나 그년은 여전히 일은 하지 않고, 그 돈으로는 마침내 내가 속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는 나에게, 그녀의 핸드백 속에서 도박용 복권을 한 장 발견했는데, 그녀는 무슨 돈으로 그것을 샀는지 자기에게 설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여자의 방에서 또 팔지 두 개를 저당잡힌 전당표 쪽지를 하나 발견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그 사내는 여자에게 팔찌가 두 개씩이나 있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난 속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았지요. 그래서 그년과의 관계를 끊어 버렸습니다. 물론 헤어지기 전에 그년을 죽도록 패 주었지요. 그리곤 사실대로 다 말해 버렸죠. 나는 그년에게, 너란 계집은 좋지도 않는 네 물건을 갖고 노는 짓밖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년이라고 말했어요. '네가 나한테서 받은 행복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걸 모르냐 말야. 조금 있으면 지난 날의 행복을 알게 될 테니 두고 보란 말이다.' 라고 욕을 퍼부었죠."
그는 피가 나도록 여자를 팼다. 그 전에는 결코 여자를 때려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기야 전혀 손을 대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말하자면 부드럽게 건드리는 정도였지요. 그년은 약간 소리를 지르곤 했죠. 내가 문을 닫아 버리고, 그러면 그럭저럭 끝나곤 했지요. 그런데 이번엔 좀 달라요. 난 아직도 그년을 더 못살게 굴고 싶거든요."
그래서 바로 내 충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을음이 나는 램프의 심지를 조절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술을 거의 한 병이나 마셔 버렸기 때문에 관자놀이가 달아올랐다. 나는 내 담배가 떨어져서 레이몽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마지막 전차들이 지나가며 이제는 이 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소음들을 실어갔다. 레이몽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정말 난처하게도, '아직도 그년과의 섹스를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는 그녀를 혼내 주고 싶다. 자기 먼저 여자를 호텔로 끌어다 놓고, 풍기 문란 담당 순경을 부른 다음, 상스러운 스캔들을 일으켜서 그 여자를 카드에 오르게 할 생각이었다. 마침내 자기는 창녀 사회에 관계하고 있는 자기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도 별로 뾰족한 수를 알지 못했다. 레이몽도 말했지만, 사실 소문 난 바람둥이들이 그런 방법 하나쯤 모르고 있을 리 만무였다. 레이몽의 얘기를 듣고 난 그들은, '그년의 몸에 문신(文身)을 새기라.'고 했다. 하지만 자기는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다. 그러기 전에 나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러면서 그걸 묻기 전에, 지금까지 자기가 한 이야기들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나는 별 생각도 없고, 그저 재미있다고만 대답했다. 자신이 정말로 속았던 것 같으냐고 내게 물어서,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해 주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그년을 혼내 주겠느냐고 묻기에, 나로서는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지만, 당신의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또 술을 마셨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자기는 '절교를 선언함과 동시에 그녀로 하여금 뉘우치게 만들 수 있는' 내용의 편지를 그 여자에게 보낼 생각이다. 그러면 그 여자가 자기에게로 돌아올 것이므로, 옛날처럼 같이 침대에 올라 가서는 '그 짓이 바로 끝나 갈 때' 여자의 얼굴에다가 침을 내뱉고, 그 여자를 밖으로 내쫓겠다. 그렇게 하면 정말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나에게도 들었다. 그렇지만 레이몽 자신은 그런 편지를 쓸 수가 없으므로 나에게 부탁하려 했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으려니까, 그는 지금 당장 편지를 써 달라면 귀찮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묻는 것이었다. 별로 그럴 것도 없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술을 한 잔 마시고 일어나서는 접시들과 먹다 남은 소시지를 한쪽으로 치워놓았다. 그러더니 테이블을 씌운 방수된 천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의 테이블 서랍에서 모눈종이 한 장과 노란 봉투, 붉은 나무 철필, 보라색 잉크가 든 네모난 병들을 꺼냈다. 여자의 이름을 듣고 보니까, 그녀는 무어 인이었다. 나는 편지를 썼다. 되는 대로 쓰기는 했으나, 굳이 레이몽의 기분을 거슬리게 할 까닭은 없었으므로 레이몽의 마음에 들도록 애썼다. 다 쓰고 나서는 큰 소리로 편지를 읽어 주었다. 레이몽은 담배를 피우며 고개를 끄떡거리며 듣고 나서, 한 번만 더 읽어 달라고 했다. 그는 아주 만족했다. "자네가 세상물정에 밝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네." 그가 말했다. 그가 나를 보고 자네라고 부른 것을 처음엔 그저 무심히 듣고 넘겼다. 그가 "자네는 이제 내 친구야." 하고 말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그가 말을 놓았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놓았고, 나는 "그런 거지 뭐." 하고 대답했다. 나로서는 그와 친구가 되더라도 별로 싫을 건 없었으며, 정말로 그는 나와 친구가 되고 싶은 것 같았다. 편지를 봉하고 나서 우리는 남은 술을 마저 마셨다. 그리고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담배를 피웠다. 바깥은 너무도 고요했으며, 간혹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 왔다. "시간이 너무 늦었군." 내가 말했다. 레이몽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다고 말했는데, 어쩌면 그건 맞는 말이었다. 졸음이 쏟아졌지만 선뜻 일어서기가 힘이 들었다. 내가 몹시도 피곤해 보였는지 레이몽이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어머니가 죽은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런 일이야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되는 게 아니냐고 부드럽게 말해 주었다. 그건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일어서자, 레이몽은 내 손을 굳게 잡으며, 사나이 대장부끼리는 언제나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방을 나와서 문을 닫고, 나는 층계참 위의 어둠 속에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집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층계 밑에서부터 어둑하고 눅눅한 바람이 올라 오고 있었다. 관자놀이의 핏줄이 뛰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냥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살라마노 영감 방에서 낑낑거리는 개 소리가 낮게 흘러 나왔다.
4
한 주일 내내 몹시 바쁘게 일했다. 레이몽이 와서 그 편지를 부쳤다고 말해 주었다. 엠마뉘엘과 함께 두 번 영화구경을 갔었는데, 엠마뉘엘은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곤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설명을 해 주어야 했다. 어제는 토요일이었고, 약속했던 대로 마리가 찾아왔다. 마리를 보자 참을 수 없이 욕정이 끓어올랐다. 그녀는 붉고 흰 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가죽 샌들을 신고 있었다. 단단한 젖가슴이 옷 바깥으로 완연히 드러나 보였고, 햇볕에 알맞게 그을은 피부가 그녀의 얼굴을 꽃처럼 피어나게 했다. 우리는 곧 버스를 타고 알제이로부터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사방에는 바위가 솟아 있고 기슭에는 갈대숲이 우거진 바닷가로 갔다. 오후 네시의 태양은 그렇게 따갑지는 않았지만 물은 미지근했고, 길게 펼쳐진 게으른 파도가 나직이 넘실거렸다. 마리가 놀이를 하나 가르쳐 주었다. 헤엄을 치다가 파도의 꼭대기에서 물을 들이마신 후, 입 속에 거품을 가득 채운 다음, 반듯이 누워서 하늘을 향해 그것을 내뿜었다. 그러면 물거품이 레이스처럼 아름답게 공중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보슬비처럼 따뜻한 물이 되어 얼굴로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그러다 조금 후에는 소금 맛에 입 안이 탔다. 그때 마리가 다가오더니 물 속에서 나에게 달라붙었다. 마리가 자기의 입술을 내 입술 위에 포갰다. 그녀의 혀 끝이 내 입술에 산뜻하게 닿았고 우리는 얼마 동안 파도 속을 딩굴었다.
바닷가로 나와서 옷을 갈아 입을 때, 마리가 빛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곧 버스를 타고 돌아와서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침대 속으로 뛰어들었다. 창문은 열린 채로 있었다. 우리의 그을은 몸 위로 여름 밤이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음을 느끼는 건 아주 상쾌했다.
오늘 아침, 마리가 머무르게 되어서 나는 같이 식사하자고 말했다. 나는 고기를 사러 내려갔다. 올라올 때 레이몽의 방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뒤에는 살라마노 영감이 개를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 계단 위에서 구두창 소리와 개의 발톱 긁는 소리가 나더니, "빌어먹을 놈의 개새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곧 거리로 나갔다. 마리에게 그 영감 얘기를 해 주었더니, 마리는 마구 웃어댔다. 마리는 내 잠옷을 입고, 소매를 걷어올린 채였다. 그녀가 웃었을 때 나는 또다시 정욕을 느꼈다. 조금 뒤에, 마리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것은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점심 준비를 하는 동안 그녀는 아무런 까닭도 없이 그저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어댔고, 나는 그녀에게 또 키스를 했다. 바로 그때 레이몽의 방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여자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더니 레이몽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네가 날 속였지, 네가 날 속였어. 이제 그 맛이 어떤가 한 번 봐라, 이년아." 곧 뭔가가 부딪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소리가 흘러 나왔는데, 그 소리는 어찌나 끔찍했던지 금방 사람들이 층계참으로 몰려들었다. 나도 마리와 함께 복도로 나갔다. 여자는 소리를 질러 댔고, 레이몽은 연신 그 여자를 패고 있었다. 마리는 내게 순경을 불러 오라고 했으나 나는 순경을 싫어한다고 대답했다. 조금 있자, 삼층에 사는 용접공과 함께 순경이 한 사람 올라 왔다. 순경이 방문을 두드렸으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순경은 조금더 세게 두드렸다. 잠시 후에 여자의 울음 소리가 터져 나오고, 레이몽이 문을 열었다. 레이몽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아주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자가 방에서 뛰쳐 나와 순경에게 레이몽이 자기를 때렸다고 말했다. "이름이 뭐야?" 순경이 물었다. 레이몽은 대답해 주었다. "대답할 때는 입에서 담배를 떼!" 순경이 말했다. 레이몽은 망설이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담배를 문 채로 그냥 서 있었다. 그러자 순경이 그의 두꺼운 손바닥으로 레이봉의 따귀를 보기 좋게 올려붙였다. 순간 레이몽의 낯빛이 흐려졌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그는 아주 유순한 말씨로 꽁초를 주워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순경은 그렇게 하라고 대답하고는 덧붙여 말했다. "다음부터는 순경이 절대로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해." 그러는 동안에도 여자는 계속 울면서 주절거렸다. "날 때렸어요. 이 나쁜 놈팡이 녀석이." 그러자 레이몽이 따져 물었다.
"순경 나리, 남자한테 함부터 놈팡이 녀석이랑 말을 해도 법에 안 걸리나요?" 그러나 순경은 레이몽에게, "아가리 닥쳐." 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레이몽이 여자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내뱉었다. "잠자코 있어, 이년아. 네가 날 다시는 안 만날 줄 아니?" 순경은 레이몽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하더니, 그 여자는 돌아가고 레이몽은 경찰서에서 부를 때까지 자기 방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레이몽에게 그렇게 몸을 떨릴 정도로 술에 취했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노릇이라고 훈시했다. 그 말에 레이몽은 항의했다. "순경 나리, 전 절대로 취하지 않았다구요. 나리 앞에 서 있으려니까 무서워서 떨리는 거예요. 당신이 그렇게 무섭게 난리를 치니 어쩔 수 없잖습니까?" 레이몽이 방문을 닫자 구경꾼들은 모두 흩어져 버렸다. 마리와 나는 식사 준비를 모두 마쳤으나 마리가 먹고 싶지 않다고 해서 나 혼자 모두 먹어치웠다. 한 시에 마리는 가고, 나는 조금 잤다.
세 시쯤,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나더니 레이몽이 들어왔다. 나는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는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가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에게 일이 어찌 되었나 물어 보았다. 그는 모두 다 계획대로 잘 되었는데, 여자가 따귀를 갈기기에 화가 나서 때려 주었다고 했다. 그 뒤의 일은 내가 본 대로였다. 내가 그에게 여자가 혼줄이 났을 테니 이제는 더 바랄 게 없겠다고 하자,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리 순경이 자기를 야단쳤다 해도 그년이 당한 창피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는 순경이란 작자들의 생리를 환히 알고 있어서, 그들과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순경이 자기 따귀를 갈겼을 때, 자기가 거기에 맞서기를 기대했었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런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으며, 애당초 순경이란 작자를 싫어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적이 만족한 듯 했다. 그가 함께 나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일어나서 머리를 빗질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나보고 자신의 증인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 증인이 되더라고 별 상관은 없었지만, 나는 무슬 말을 해야 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레이몽은, 그저 그년이 못되게 굴었다고만 얘기해주면 된다고 일러 주었다. 나는 그의 증인이 되기로 했다.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갔다. 레이몽이 권해서 상품(上品)의 독한 술을 마셨다. 그리고는 당구를 한 게임 쳤는데, 나는 근소한 차이로 졌다. 레이몽이 이번에는 매음굴에 가자고 했으나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싫다고 거절했다. 그래서 우리는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는 그 못된 계집을 혼내 주어서 매우 흡족하다고 말했다. 레이몽은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고, 나는 잠시나마 재미있게 지냈다고 생각했다.
문간에서 살라마노 영감이 흥분하여 서 있는 모습이 멀리서부터 눈에 띄었다.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보니, 그는 개를 데리고 있지를 않았다. 영감은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둘러보더니,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면서 컴컴해진 복도를 들여다보고, 또다시 충혈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거리를 훑어보았다. 레이몽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았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의 개새끼 같으니라구." 얼핏 욕지거리를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에게 개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뜸 도망쳤다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늘도 여느때처럼 연병장엘 데리고 가지 않았겠어요? 노점들 근처에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탈주왕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길래, 그걸 좀 보려고 잠시 멈춰 서 있었지요. 그리고 다시 발을 옮겨 놓으려는데, 그놈의 개새끼가 없어져 버린 게 아니겠어요? 진작부터 좀 작은 목걸이를 사 주려고 별렀었는데······. 하지만 그놈의 개새끼가 그렇게 쉽사리 도망쳐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단 말입니다."
레이몽이 어쩌면 개가 길을 잃어 버린 건지도 모르니까 조금 있다 돌아올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주인을 찾아서 수십 킬로미터나 헤맨 개의 이야기까지 들려 주었지만, 영감의 흥분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분명히 잡히고 말 거요. 누가 데려다 길러 준다면 또 모르지만, 대체 어느 누가 그러겠느냐 말요. 그렇게 상처투성이인 지저분한 개를 누가 좋아하겠소? 순경한테 붙잡히고 말 거요. 틀림없이 붙잡히고 말 거라니까요." 나는 영감에게 경찰서의 개 보관소에 가 보는 것이 좋을 거라고, 벌금은 약간 물면 개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영감은 그 벌금이 오르지 않았느냐고 물었는데, 실상 나는 전혀 아는바가 없었다. 그러자 영감은 버럭 성을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 빌어먹을 개새끼 때문에 돈을 내야 하다니, 참, 차라리 죽어버리라지!" 레이몽이 웃으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우리는 이층 층계참에서 헤어졌다. 조금 뒤에 영감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문을 열자, 영감은 잠시 동안 그대로 문간에 서 있다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내가 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그는 좀처럼 들어오려 하지 않고 구두코만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딱지투성이인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얼굴을 푹 숙인 채로 영감이 나직하게 말했다. "개를 빼앗지는 않을 거예요, 뫼르소 씨. 아마 저한테 돌려 줄 거예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어떻게 되라구요?"
나는 그에게 경찰서의 개 보관소에선, 잃은 개를 주인이 찾아갈 수 있도록 사흘 동안 매어두며, 사흘이 지나도록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며, 경찰서에서 적당히 처리해 버린다는 말을 해 주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맥없이, "안녕히 계십쇼." 하고 가 버렸다. 이윽고 영감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영감이 자기 방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벽을 통해 이상한 소리가 조그맣게 새어 나왔다.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왜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별로 배가 고프지도 않길래 저녁도 먹지 않고, 그냥 내처 자 버렸다.
5
레이몽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왔다. 그의 친구들 가운데 한사람(그 친구에게 내 이야기를 했었다는 것이다.)이 알제리 근처에 조그만 별장을 갖고 있는데, 이번 주 일요일에 그곳에서 같이 지내자고 나를 초대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만 어떤 여자 친구와 약속이 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레이몽은 선뜻 그 여자 친구와 함께 와도 좋다고 말했다. 친구의 부인도 사내들 틈바구니 속에 혼자 있지 않게 된 데 매우 만족해할 것이라고 했다.
근무 시간에 외부에서 전화가 걸려 오는 것을 사장이 매우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싶었다. 그러나 레이몽은 잠깐만 기다리라며, 이 초대 건은 저녁에도 얘기할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자기는 오늘 하루 종일 지난 번 혼내 준 여자의 오라비가 낀 아랍 사람들 패거리에게 미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오늘 저녁에 퇴근하다가 집 근처에서 그놈들을 보거든 나한테 알려 줘."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조금 뒤에 사장이 나를 불렀다. 사적인 전화는 좀 삼가고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채근하는 걸 테지,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확 잡쳐 버렸다. 그런데 막상 사장의 얘기는 그게 아니었다. 그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어떤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 계획에 대한 내 의견을 듣고 싶어했다. 자기는 파리에 지사를 설치하여 대기업들과 직접 거래를 트려고 하는데 내가 그곳에 가서 일해 볼 생각이 없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러면 나는 파리에서 살 수 있고, 일 년에 얼마 동안은 여행도 할 수 있을 거다. "자네는 아직 젊으니까 그런 생활이 마음에 들 거라고 생각하네."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한테는 결국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생활의 변화에 매력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람이란 어떻게 살든 결코 생활 그 자체를 바꿀 수도 없고 생활이란 결국 다 그런 것에 지나지 않으며 게다가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아무런 불만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못마땅한 기색이 되더니 내 대답은 언제나 동문 서답일 뿐이며 야망이 없어서 큰일이라고 투덜거렸다. 그때 나는 일을 계속하려고 자리로 되돌아왔다. 구이 사장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 불만도 없는 지금의 생활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학생 시절에는 그런 종류의 야망도 꽤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해야 했을 때 결국은 그런 것도 하찮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내 알아버렸던 것이다.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는 자기와 결혼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고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전에도 한 번 얘기했던 것처럼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나하고 결혼을 하죠?" 그녀가 물었다. 나는 결혼 역시 전혀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리가 원한다면 결혼할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한편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녀였고 나는 기꺼이 승낙했다 그때 마리가 결혼은 일생의 중대사라고 나를 나무랐다. 나는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자기는 단지 내가 자기와 같은 관계가 있던 다른 여자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아도 역시 승낙했을 것인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물론 그랬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리는 내가 정말로 자기를 사랑하는 건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는 듯했다. 나로서는 그것을 뚜렷하게 구분 지을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묵묵히 앉아 있다가 내가 무척이나 이상한 사람이며 아마도 그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또 바로 그런 까닭으로 내가 싫어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더 대꾸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있었는데 마리가 웃으면서 내 팔을 붙잡더니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마리가 원한다면 아무 때라도 금방 결혼하자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장이 꺼냈던 얘기를 해 주니까 마리는 파리를 알고 싶다며 뛸 듯이 좋아했다. 내가 전에 잠깐 동안 파리에서 산 적이 있었다고 얘기했더니 그녀는 대뜸 어떤 곳이냐고 물었다. "더러운 데야. 비둘기가 좀 있고 뜰은 어두컴컴하고 사람들은 모두 하얀 피부를 갖고 있지."
그러고 나서 우리는 큰길을 골라 거리를 돌아다녔다. 여자들은 아름다웠고 나는 마리에게 그렇게 느끼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다. 마리는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잠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 같이 있고 싶었으므로 셀레스트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함께 하자고 말했다. 마리는 그러고 싶지만 할 일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내 집 앞에 이르렀고 나는 그녀에게 잘 가라고 인사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내 볼일이 문지 알고 싶지도 않아요?" 나는 그것을 알고 싶지만 미처 물어 볼 생각을 못 했던 것인데 마리는 섭섭해하는 눈치였다.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마리는 웃으면서 내 앞으로 불쑥 다가서더니 입술을 내밀었다.
나는 셀레스트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음식을 막 먹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생긴 키 작은 여자가 들어와서는 합석해도 좋으냐고 물었다. 나는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발작적인 몸짓을 해 보였는데 사과같이 생긴 얼굴에서는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녀는 재킷을 벗고 나서 자리에 앉은 다음 열에 들뜬 듯한 몸짓으로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셀레스트를 불러 명쾌하고 빠른 목소리로 요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오르 되브르를 기다리는 동안 핸드백에서 네모난 메모지와 연필을 꺼내어 음식값을 모조리 합산해보더니 지갑에서 팁까지 한친 금액을 정확하게 꺼내어 놓았다. 오르 되브르가 나오자 재빨리 먹어치웠다. 다음 요리가 나올 때까지 그녀는 또 핸드백에서 푸른색 연필과 일 주일 동안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실려 있는 잡지를 꺼내어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정성스럽게 체크했다. 잡지는 무려 십 이 페이지나 되는 것이었으므로 그녀는 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그 일을 해 나갔다. 내가 식사를 끝마쳤을 때까지도 그녀는 여전히 체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서 꼭두각시처럼 정확한 동작으로 재킷을 입고 나서 레스토랑을 나갔다. 나는 특별히 해야 할 일거리도 없었으므로 잠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보도의 가장자리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와 정확한 걸음걸이로 옆으로 비켜서거나 뒤를 돌아다보는 일도 없이 곧장 걸어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는 그녀를 놓쳐 버리고는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참 이상한 여자란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그것조차 잊어 버렸다.
내 집 문간에 살라마노 영감이 서 있었다. 나는 그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는데 그는 개 보관소에 가 봤으나 개는 그곳에도 없더라며 결국 잃어 버리고 말았다고 말했다. 개 집합소의 직원들은 아마 차에 치어 죽어 벼렸을 거라고 얘기했다. 경찰서에 가면 혹시 알 수 있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그런 일은 매일 일어나므로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내가 살라마노 영감에게 다른 개를 기르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그 개와 너무 오래 정이 들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았고 살라마노 영감은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영감은 누런 수염 밑으로 말을 씹어 삼키듯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그와 마주 보고 있기는 좀 따분한 노릇이었으나 그밖에 달리 할 일도 없었고 졸음도 오지 않았다. 아무 이야기라도 해야 하겠기에 나는 그 개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 개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마누라가 죽은 다음이라고 영감이 말을 시작했다. 자기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젊어서는 연극을 좋아해서 군대에서는 보드빌에도 출연했었다. 그러나 결국은 철도청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지금은 비록 얼마 되지는 않지만 연금을 타 쓰고 있으니까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마누라와의 금슬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차츰 익숙해지고 정은 들었었다. 마누라가 죽고 나자 자기는 새삼 외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개 한 마리를 구해 달라고 부탁해서 아주 어린 강아지를 한 마리 얻었다. 처음에는 우유를 먹여 길러야 했다. 그러나 개의 수명은 사람보다 엄청나게 짧아서 마침내는 둘이서 같이 늙고 말았다. "그놈은 성질이 좀 못된 편이어서 가끔 나는 사람들과 하듯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습지요."
살라마노 영감이 말했다. "그래도 참 좋은 개였어요." 내가 혈통이 좋은 개였다고 말해주자 살라마노 영감은 기분이 좋아졌다. "저 그 개가 병들기 전에는 본 일이 없으시죠? 그 털이 정말 아름다웠지요." 그가 덧붙여 말했다. 개가 피부병을 앓기 시작하자 살라마노 영감은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포마드를 발라 주었었다. 영감의 말에 따르면 사실은 피부병이 문제가 아니라 늙은 게 병이었는데 늙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때 내가 하품을 했으므로 영감은 이제 그만 가 보겠다고 했다. 내가 괜찮으니 좀더 있으라고 하면서 개를 잃게 되어서 매우 안됐다고 말해 주자 영감은 무척 고마워했다. 그는 나에게 나의 어머니도 그 개를 귀여워했었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얘기를 하면서 그는 '가엾으신 자당님' 이란 표현을 썼다. 그는 어머니가 죽어서 매우 슬플 거라고 말했으나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거북한 낯빛이 되어 마을에서는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냈다고 나를 몹쓸놈이라고들 하지만 자기 자신은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재빠르게 지껄였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그런 일로 인해 내가 욕을 먹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어머니를 간호해 드릴 만큼 돈이 없었으므로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대답했는데 거기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진작부터 그녀는 저와 얘기할 거리마저 없어서 매우 외록ㅂ고 적적해했거든요." 내가 덧붙여 말했다. "그렇고 말굽쇼. 양로원에서는 적어도 친구는 저절로 생기는 법이지요." 그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영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기 방으로 가서 자려는 것이었다. 이제 그의 생활은 변했는데 그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를 도통 모르고 있었다. 영감과 알게 된 이후 처음으로 그는 슬그머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통해 그의 피부의 비늘이 느껴졌다. 영감은 조금 웃어 보이며 방을 나서려다 말했다. "오늘밤에는 제발 개들이 집어 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럴 때마다 혹시 내 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예요."
6
일요일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데 유난히 힘이 들었다. 그래서 마리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흔들어 깨워야만 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해수욕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아침을 거르기로 했다. 나는 속이 텅빈 것을 느꼈고 머리가 조금 아팠다. 담배 맛까지 씁쓸했다. 마리는 내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며 놀려 댔다. 그녀는 하얀 옷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칼을 풀어 놓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아름답다고 말해 주었고 그녀는 아주 좋아하며 웃었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레이몽의 방문을 노크했다. 레이몽이 곧 내려가겠다고 대답했다. 거리로 나서자 피곤했던 데에다 덧문을 열어 두지 않았던 탓으로 하늘 가득히 퍼져 있는 햇살에 마치 따귀라도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마리는 기분이 좋아서 팔짝거리며 날씨가 좋다고 거듭 종알거렸다. 기분이 좀 풀리자 배가 고파졌다. 내가 배가 고프다고 말하자 마리는 우리 두 사람의 수영복과 수건이 들어 있을 뿐인 헝겊가방을 열어 보였다. 결국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마침내 레이몽의 집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푸른색 바지에다 짧은 소매의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밀짚모자를 쓰고 있어서 마리는 깔깔거리며 웃고 난리를 쳤다. 레이몽의 팔은 희었으나 검은 털이 수북이 나 있었다. 나는 그런 게 좀 보기가 싫었다. 그는 휘파람을 불면서 내려왔는데 아마 매우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레이몽은 나에게 "안녕하시오 영감." 하고 말한 다음 마리를 '마드므와젤'이라고 불렀다.
바로 전날 나는 레이몽과 함께 경찰서에 가서 그 계집이 못되게 굴었다는 증언을 했었다. 레이몽은 훈방되었다 나의 증언을 트집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문간에서 레이몽과 의논하여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바닷가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으나 우리는 좀더 빨리 그곳에 닿고 싶었다. 레이몽은 자기 친구도 우리가 일찍 오는 것을 좋아하리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막 길을 떠나려고 하는 순간에 레이몽이 건너편을 보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람 인 패거리들이 담배 가게의 진열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그들은 묵묵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치 돌이나 죽은 나무 토막 따위를 보고 있는 표정이었다. 레이몽은 왼쪽에서 두 번째 놈이 바로 그놈이라고 말했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그건 이미 끝난 일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리는 무슨 영문인지 잘 몰랐으므로 우리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아랍 놈들이 레이몽한테 원한을 품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마리는 서둘러서 어서 떠나자고 했다. 레이몽도 서두르자며 몸을 젖히고 웃어되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조금 덜어져 있는 정류장으로 갔다. 레이몽이 내게 아랍 놈들이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고 일러주었다.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우리가 떠나 온 곳을 막연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마음이 푹 놓인 듯 레이몽 은 마리에게 줄곧 농담을 지껄여 댔다. 아마도 마리가 마음에 들었던 듯싶었는데, 마리는 별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그녀는 웃으면서 레이몽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알제이의 교외에서 버스에서 내렸다. 바닷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별로 멀지 않았다. 그렇지만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그 아래로는 해변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이 되는 작은 언덕을 지나가야만 했다. 이미 짙푸른 하늘 아래로 언덕은 노란 돌들과 하얀 수선화로 뒤덮여 있었다. 마리는 방수 처리가 된 헝겊 가방을 힘껏 내두르며 꽃잎을 떨어뜨리는 장난질을 쳤다. 우리는 푸르고 흰 울타리 베란다까지 타마리스나무로 뒤덮여 있었고, 또 어떤 별장은 자갈들 위로 동그만이 서 있기도 했다. 언덕 꼭대기에서, 멀리 깨끗한 물 속으로 거대한 육지가 곶이 되어 조는 듯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경쾌한 모터 소리가 조용한 대기를 가르며 우리가 있는 곳까지 들려 왔다. 저 멀리서 고깃배 한 척이 움직이는 듯 마는 듯, 반짝이는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리는 바위 틈에서 붓꽃을 몇송이 꺾어 들었다. 바닷가로 내려가며 보니, 벌써 꽤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레이몽의 친구는 바닷가의 목조로 된 조그만 별장에서 살고 있었다. 별장은 바위를 등지고 서 있었는데, 집의 전면을 받친 기둥은 물 속에 잠겨 있었다. 레이몽이 친구에게 우리를 소개했다. 친구는 마송이라고 불렸다. 그는 건장한 타입으로 어깨가 넓고 키가 컸으며, 파리 말씨를 쓰는 포동포동 살찌고 예쁘게 생긴 작은 여자와 함께 있었다. 그는 대뜸 우리에게 편한 자세로 쉬라고 말한 다음, 바로 그 날 아침에 낚아 온 생선을 프라이한 것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별장이 참 예쁘다고 말했다. 그는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마다 이곳에 내려와 지낸다고 알려 주었다. "제 아내하고라면 누구든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지요." 그가 덧붙여 말했다. 바로 그때, 그의 아내는 마리와 함께 웃고 있었다. 나는 정말 난생 처음으로 진지하게 마리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마송이 수영하러 가자고 했으나 그의 아내와 레이몽은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우리들 셋이서 바닷가로 내려가자 마리는 곧장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얼마 동안 마송과 나는 그대로 있었다. 그는 말을 아주 천천히 했는데, 꼭 덧붙여 이야기할 것이 없는데도 말끝마다 '그뿐만 아니라'라고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마리에 관해서는, "아주 멋진 여자예요. 그뿐만 아니라 매력도 있고 말예요." 라고 말했다. 마침내 나는 햇볕이 내 몸으로 기분좋게 스며드는 것을 느끼는데 정신이 팔려서, 그의 말버릇에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발 밑에서 모래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있었는데, 마침내 마송에게, "들어가지 않을 거요?" 하고 말하고서야,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송은 천천히 물 속으로 들어가서 발이 바닥에 닿지 않게 되고서야 비로소 몸을 던졌다. 그는 매우 서투르게 개구리 헤엄을 쳤고, 그래서 나는 그를 내버려두고 마리에게로 헤엄쳐 갔다. 물이 차가와서 오히려 상쾌했다. 마리와 나는 멀리까지 헤엄쳐 갔는데, 우리는 서로의 몸짓과 만족한 표정 속에서 어떤 일체감을 맛보았다.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러 우리는 바닷물 위에 누웠다. 하늘로 향한 얼굴 위로 햇볕이 내리쬐어 입으로 흘러드는 물을 마르게 했다. 멀리 마송이 모래사장으로 나가 햇볕을 쬐려고 눕는 것이 보였다. 그와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음에도 그는 큼직하게 보였다. 마리와 나는 같이 헤엄을 치고 싶어했다. 나는 마리 뒤로 돌아가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녀가 팔을 내두르며 헤엄치는 것을 발로 물장구를 쳐서 도와 주었다. 내가 완전히 지쳐 떨어질 때까지 우리는 밭은 물소리를 내며 아침 바다를 헤엄쳤다. 그러고 나는 마리를 남겨 두고 혼자서 숨을 크게 쉬며 규칙적으로 헤엄을 쳐서 돌아왔다. 모래사장으로 나와서 나는 마송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려 모래밭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가 기분이 정말 좋다고 말하자 그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조금 후에 마리도 물 속에서 나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마리가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은 바닷물에 젖어 미끈거렸으며 머리칼이 목 뒤로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다. 마리와 나는 허리를 맞대고 누웠는데, 그녀의 체온과 뜨거운 햇볕 때문에 나는 잠깐 동안 잠에 빠졌다. 마리가 나를 흔들어 깨워서, 마송은 벌써 별장으로 돌아갔으며, 이젠 그만 점심을 먹어야 된다고 말했다. 나는 배가 몹시 고팠으므로 금방 일어섰다. 그러자 마리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키스해 주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녀와 키스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우리 물 속으로 들어가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뛰어가서 첫 번째 조그만 파도속에 몸을 뉘었다. 우리는 몇 번 팔을 내저었는데 그녀는 내게 바싹 달라붙었다. 그녀의 다리가 내 다리에 휘감기는 것을 느끼자, 새삼 정욕이 끓어올랐다. 마송이 우리들 이름을 불러 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우리는 별장으로 돌아왔다. 내가 배가 몹시 고프다고 하자, 마송은 대뜸 그의 아내에게 내가 정말 마음에 들었노라고 얘기했다. 빵이 맛있었다. 나는 내 몫의 생선 프라이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곧 이어 고기와 감자 프라이가 나왔다. 우리는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 마송은 술을 많이 마셨고, 내 잔에도 연신 술을 부어 주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머리가 좀 아팠는데 담배를 많이 피웠다. 마송과 레이몽, 그리고 나는 비용을 공동으로 부담하여 이번 팔월을 이 해변에서 지낼 일을 의논했다. 갑자기 마리가 말했다. "지금이 몇 시인지나 아세요? 겨우 열 한 시 반이에요." 우리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마송은, 너무 일찍 점심을 먹은 게 사실이지만, 시장할 때가 바로 식사 시간이니까 별로 이상할게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제 아내는 점심을 들고 나서는 반드시 낮잠을 자죠. 전 그 버릇이 정말 맘에 들지 않아요. 나는 걸어야 하거든요. 건강에는 걷는 편이 좋다고 늘상 일러 줍니다만, 제가 하고 싶다는 짓을 억지로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마리는 남아서 마송부인의 설거지를 거들겠다고 했다. 그 조그만 파리 여자는 그러자면 남자들은 모두 바깥으로 내쫓아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남자 셋이서만 바닷가로 내려갔다. 햇볕은 모래밭에 거의 수직으로 내리쬐고 있었고, 바닷물에 반사된 그 빛은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 바닷가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언덕을 따라 바다 위로 불쑥 솟은 작은 별장들 안에서 접시와 포크, 스푼 따위가 부딪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모래 바닥에 깔린 자갈들로부터 후끈거리는 열기가 솟아올라와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레이몽과 마송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 알고 있었고, 한때는 같이 기거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물가로 가서 바다를 끼고 걸었다. 때때로 잔 물결이 밀려 와서 우리의 헝겊으로 된 신발을 흠뻑 적시곤 했다. 나는 모자를 쓰지 않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 때문에 반쯤 잠들어 있었으므로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때, 레이몽이 마송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데, 나는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와 동시에, 멀리 바닷가 저쪽에서 운전사들이 입는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두 명의 아랍인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레이몽을 쳐다보자 그는 나에게, "바로 그놈이야." 하고 말했다. 우리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마송은 그들이 어떻게 이곳까지 우리를 뛰쫓아올 수 있었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우리가 해수욕 가방을 들고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보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구태여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아랍 놈들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는데도 어느 새 벌써 우리들 가까이에 와 있었다. 우리는 걷는 속도를 바꾸지는 않았다. 레이몽이 말했다. "만일 싸움이 벌어지거든, 마송, 너는 두 번째 놈을 맡아. 그놈은 내가 맡을께. 그리고 뫼르소, 자네는 또 다른 놈이 나타나거든 그놈을 맡아줘." 나는 "좋아, 그렇게 하지." 하고 대답했고, 마송은 두손을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가 그 순간 나에게 붉은색으로 보였다. 우리는 일정한 걸음으로 아랍 놈들에게로 걸어갔다. 그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가 자꾸만 좁혀졌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간격으로 서로 가까워졌을 때, 아랍 놈들이 먼저 걸음을 멈췄다. 마송과 나는 더욱 느리게 걸었다. 레이몽은 자신이 맡기로 한 놈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그 아랍 놈에게 뭐라고 했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상대편은 곧 머리로 한 방 박을 듯이 보였다. 그러자 레이몽이 먼저 그놈을 한 대 올려붙이고 나서 마송을 불렀다. 마송은 미리 지정받은 놈에게로 다가가서 그놈을 힘껏 두 대나 갈겼다. 그놈은 얼굴에 바닥에 처박고 물 속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리고는 얼마 동안 그대로 있었는데, 그놈의 머리 위로 거품이 부글부글 솟아올랐다. 그 동안에도 레이몽은 그놈을 연신 후려쳐서 그놈은 마침내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레이몽이 나를 향해 몸을 돌리고 말했다. "못난놈, 꼴을 좀 보게나." 나는 그에게, "조심해, 그놈은 단검을 지니고 있어." 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레이몽이 그놈의 칼에 팔과 입을 찢기고 난 다음이었다. 마송이 앞으로 뛰쳐 나왔다. 그러나 또 다른 아랍 놈도 일어나서 단검을 가진 놈 뒤로 가서 버티고 섰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놈들은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단검으로 위협을 하면서, 천천히 뒷걸음질치더니 마침내 우리와의 거리가 충분해지자 냅다 도망쳐 버렸다. 그동안 우리는 쏟아져 내리는 햇볕 속에서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레이몽은 피가 흐르는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 마송이 일요일마다 언덕의 별장에 와서 지내는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레이몽은 곧 거기로 가자고 했는데, 레이몽이 입을 열 때마다 상처에서 흘러 나온 피가 거품이 되어 뿜어 나왔다. 우리는 레이몽을 부축하여 급히 별장으로 되돌아왔다. 레이몽은 상처가 그리 크지 않으므로 의사에게 갈 수 있다고 했다. 마송이 그를 데리고 의사에게 가고, 나는 남아서 여자들에게 사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마송 부인은 놀라서 울고 있었고, 마리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여자들에게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기가 싫어졌다. 마침내 나는 이야기를 그만두고 담배를 피우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 시 반쯤에 레이몽이 마송과 함께 돌아왔다. 그는 팔에 붕대를 감고 입가에는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의사는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지만 레이몽의 얼굴은 아주 어두었다. 마송이 레이몽의 기분을 풀어 주려고 여러 모로 애를 썼으나 레이몽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바닷가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에게 어디에 갈거냐고 물었다. 마송과 내가 같이 가겠다고 하자, 레이몽은 화를 벌컥 내며 우리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마송이 말렸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뒤따라갔다. 우리는 오랫동안 바닷가를 거닐었다. 이제 태양은 모든 것을 부숴 버릴 듯이 내리쪼였다. 햇빛이 모래와 바다 위에 부서져 하얗게 반짝였다. 나는 레이몽이 목적지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바닷가의 끝에 이르러서, 우리는 마침내 커다란 바위 뒤에서 솟아 나와 모래 속으로 흘러가는 작은 샘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 아랍 놈들을 다시 만났다. 놈들은 기름때가 밴 푸른 작업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 이제는 마음이 푹 가라앉은 듯 아주 평온한 표정들이었다. 레이몽을 찌른 놈도 아무말 없이 레이몽을 올려다보았다. 또 한 놈은 작은 갈대 피리를 불고 있었는데, 곁눈질로 우리를 흘끗거리며 갈대 피리로 낼 수 있는 세 가지 소리를 번갈아 내고 있었다. 그 동안, 그곳에는 햇볕과 침묵, 그리고 쫄쫄거리는 샘물 소리와 갈대 피리가 내는 세 가지 소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레이몽이 주머니 속의 권총에 손을 대었지만, 놈들은 꼼짝도 않고 서로 마주 보고만 있었다. 나는 피리를 불고 있는 놈의 발가락이 몹시 벌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레이몽이 놈들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고 나에게 물었다. "쏠까?" 쏘지 말라고 하면, 그는 제풀에 화가 나서 기어코 쏘고야 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만 그에게, "저놈들이 저렇게 가만히 있는데 쏜다면 좀 비겁하잖아." 하고 대꾸했다. 여전히 침묵과 뜨거운 햇볕 속으로 물소리와 피리소리만 들렸다. 참다 못해 레이몽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저놈한테 욕을 해 줘야겠군. 대꾸를 하거든 쏘아 버리지."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그래, 그렇지만 놈이 단검을 꺼내 들지 않으면 쏠 필요까진 없지." 하고 말했다. 레이몽은 약간 흥분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여전히 피리를 불면서 레이몽의 하는 양을 눈여겨보고만 있었다. "쏘지는 말게. 차라리 사내답게 맞상대를 하라구. 그리고 그 권총은 이리 줘. 만일 다른 놈이 뛰어든다거나 저놈이 단검을 꺼내든가 하면 내가 즉시 쏘아 버릴 테니까." 내가 레이몽에게 말했다. 레이몽이 권총을 나에게 건넬 때, 그위로 햇볕이 반사되어 권총이 번쩍거렸다. 우리는 마치 무엇이 우리들 주위를 둘러친 것처럼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모든 것이 바다, 모래와 태양, 피리소리와 물소리의 이중 침묵 사이에서 멈춰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권총을 쏘아도 그만이고 쏘지 않아도 그만이란 생각을 했다. 갑자기 아랍 놈들이 뒷걸음질을 쳐서 바위 뒤로 도망쳐 버렸다. 레이몽과 나는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기분이 좀 나아진 듯 레이몽은 집으로 돌아갈 버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별장까지 그와 함께 갔다. 그리고 레이몽이 나무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나는 첫 번째 계단 앞에 그냥 서 있었다. 햇볕 때문에 몹시 어지러웠으며, 게다가 또 나무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여자들과 마주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그만 맥이 탁 풀려 버렸던 것이다. 그렇지만 끔찍하게 더운 날씨여서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볕 아래 마냥 서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못할 노릇이었다. 거기 그대로 서있거나 어디 다른 데로 가 버리거나 결국은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에 나는 다시 돌아서서 바닷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불게 타오르고 있었다. 바닷물은 모래 위에서 잘게 부서지며 가쁘게 헐떡거렸다. 나는 천천히 바위를 향해 걸었다. 햇볕에 머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열기가 나를 짓누르며 내 걸음을 방해했다. 얼굴 위로 무더운 바람이 닿을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주머니속의 주먹을 그러쥐며, 태양과 태양이 뿜어내는 불투명한 취기를 이겨 내려고 바짝 긴장했다. 모래와 하얀 조개 껍질, 또는 유리 조각에 햇빛이 부딪쳐서 칼날처럼 번뜩일 때마다 턱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햇빛과 바닷물 부스러기에 의해 이루어진 눈부신 햇무리에 둘러싸인, 조그맣고 거무스름한 바위 덩어리가 멀리서 눈에 띄었다. 나는 그 바위 뒤에 있는 차가운 샘을 생각했다. 나는 그 샘물이 졸졸거리는 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고, 태양, 더위와의 싸움, 여자들의 울음 소리 따위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으며, 그늘과 휴식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바위에 가까이 갔을 때, 나는 레이몽과 싸우던 놈이 그 자리에 다시 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혼자였다. 그놈은 번듯하게 드러누워서, 두손을 목덜미 밑에 넣고, 얼굴만 바위 그늘속에 숨기고는, 온몸에 햇볕을 받고 있었다. 푸른 작업복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 일을 일단 모두 끝난 것으로 단정해 버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그 일이 내 앞에서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보자, 그는 몸을 조금 일으켜 세우더니 주머니 속에 손을 찔러 넣었다. 물론 나도 옷도리에 들어 있는 레이몽의 권총을 그러쥐었다. 다시금 그가 벌렁 누워 버렸으나 여전히 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채였다. 나는 그에게서 십미터쯤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반쯤 감은 그의 눈까풀 사이로 이따금씩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내 눈앞에서, 타오르는 대기 속에서 어른어른 흔들리고 있었다. 파도소리는 아까보다도 좀더 게으르고, 좀더 늘어져 있었다. 똑같은 태양, 똑같은 모래밭 위에 똑같은 햇볕이 펼쳐져 있었다. 벌써 두 시간 전부터 태양은 움직임을 멈추었고, 벌써 두 시간 전부터 태양은 끓는 금속의 바다 속에 그 닻을 내리고 있었다. 수평선 위로 작은 증기선 한 척이 지나갔다. 그것을 내가 검은 얼룩처럼 느꼈던 것은, 내가 그놈에게서 잠시도 눈길을 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뒤로 돌아서 걷기만 하면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햇볕에 펄펄 끓어오르는 모래밭이 뒤에서 나를 압박해 왔다. 나는 샘을 향해 서너 발짝 걸어갔다. 아랍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그놈은 나로부터 꽤 멀찌감치 떨어져있었다. 얼굴은 덮은 그늘 때문인지 그놈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 때문에 볼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이 눈썹 위로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태양은 어머니의 장례식이 있던 그날과 똑같았다. 그 날처럼 나는 머리가 몹시 쑤셨고, 이마 위의 모든 힘줄이 살갗을 뚫고 나올 듯 곤두서서 나를 못살게 굴었다.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나는 한 걸음 옮겨 봐야 똑같은 태양 아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분명히 단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아랍 녀석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로 단검을 꺼내어 햇빛 속에서 나를 겨누었다. 햇빛이 단검 위에 부딪치자 번쩍거리는 긴 칼날이 내 이마 위로 와서 꽂히는 것만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방울이 일시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장막이 되어 나를 덮어 버렸다. 눈물과 소금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서 태양이 부딪치는 심벌즈의 금속성과, 단검에서 날아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뜨거운 칼날은 나의 속눈썹을 끊고 어지러운 내 눈알을 파헤쳤다. 바로 그때, 모든 것이 흔들렸다. 바다는 뜨겁고 두터운 바람을 실어 왔다. 하늘은 활짝 열리며 불길을 내리 쏟았다. 내 몸이 잔뜩 긴장해서 권총을 힘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권총 자루의 뜨뜻해진 배가 어루만져졌다. 그리고 그 건조하고 귀를 째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나는 내가 대낮의 균형과 행복을 느꼈던 바닷가의 특이한 침묵을 깨뜨려 버렸음을 깨달았다. 이어서 나는 빳빳해진 몸뚱아리 위에 네 방을 더 쏘았다. 총탄은 겉으로는 보이지도 않게 깊이 박혀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짧은 네 마디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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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되자마자 곧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심문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경찰서에서 아무도 내 사건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 주일 후, 예심 판사는 나를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도 역시 처음에는 내 이름과 주소, 직업, 생년 월일과 출생지 따위에 관해서 물어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가 개인 변호사를 선정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고, 굳이 개인 변호사를 선정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요?" 그가 말했다. 나는 내 사건은 아주 간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 문제삼고 있는건 법이에요. 만일 당신이 개인 변호사를 대지 않는다면, 우리는 관선 변호사를 선정할 것이오." 하고 말했다. 재판이 그런 하찮은 일에까지 신경을 써 주다니, 참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생각을 판사에게 말했다. 그는 내 의견에 동의를 표하면서, 법률은 참 훌륭하게 만들어져있다고 결론짓듯 말했다.
처음에 나는 그를 별로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는 커튼이 둘러쳐진 방으로 나를 불러들였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램프에서 흘러 나오는 빛이 내가 앉은 안락 의자만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을 뿐, 그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묘사한 글을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날은 아무튼 이런 것들이 어린애 장난 같이 유치하게만 느껴졌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그를 살펴보니까, 그는 싶고 푸른 눈과 커다란 키, 은빛의 긴 수염을 갖고 있었으며, 더부룩하게 자란 머리털은 거의 반백이 다 되어있었다. 그는 분별이 있어 보였고, 요컨대 입을 삐죽거리는 신경질적인 버릇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호감이 가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방을 나오면서 자칫 그에게 악수를 청할 뻔했는데, 바로 그 순간,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이튿날, 변호사 한 사람이 형무소로 나를 찾아왔다. 작은 키에 몸집이 뚱뚱한 사내로 무척이나 젊어 보였고, 머리칼은 정성스럽게 빗어 넘기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나는 저고리를 벗고 있었다) 검은 양복에 빳빳한 칼러의 셔츠를 받쳐 입고, 검은색과 흰색의 줄무늬가 있는 이상한 모양의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는 겨드랑이에 끼고 들어왔던 가방을 내 침대 위에 내려놓더니, 자기 소개를 하고는 나에게 이미 내 서류를 충분히 검토해보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몹시 까다로운 편이지만, 내가 자기를 신뢰하고 따라 준다면 재판에서 이길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내가 고마운 말씀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문제의 요점으로 들어갑시다." 하고 말했다.
그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서, 사람들이 내 사생활에 관해 여러 정보를 수집했노라고 얘기했다. 최근에 내 어머니가 양로원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알아 냈다. 그리하여 직접 마랑고로 조사를 하러 내려갔었다. 그들은 어머니의 장례식 날, 내가 몹시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당신한테 이런 것까지 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만일 내가 이 문제에 관해 적절한 변론을 펼 수 없다면, 이것으로도 기소의 유력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변호사가 나에게 말했다. 그는 나에게 다시 한번 협조를 요청했다. 그는 나에게 장례식 날 슬펐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은 나를 몹시 놀라게 했고, 내가 그와 같은 질문을 해야 하는 처지였더라면, 나 역시 대단히 거북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스스로 자문 자답하는 습관을 버린 지 오래 되어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해 버렸다. 물론, 나는 어머니를 무척 사랑했지만, 그건 아무 의미도 없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어느 정도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바랐던 경험이 있다. 여기에서, 변호사는 대단히 흥분된 표정으로 내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리고 나에게 법정에서나 예심 판사의 방에서는 절대로 그런 말을 꺼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극구 당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에게는 때때로 어떤 육체적인 욕구에 의해 감정이 교란되는 경우가 일어나곤 한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어머니를 땅에 묻던 날, 나는 몹시 피곤해서 연신 졸음에 쫓겼었다. 그래서 그 날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별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가 죽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 답변에 대해 변호사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 정도로는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 날 내가 자연스런 감정을 일부러 억제시켰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건 옳지 않거든요."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는 내가 몹시 못마땅하다는 듯,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에게 어쨌든 양로원 원장과 그곳 직원들이 증인으로 나설 거고, 그러면 나에게 퍽 불리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야멸차게 말을 맺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내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겠느냐고 내가 말하자, 그는 내가 재판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알겠다고, 애매한 말로 대답했을 뿐이다.
그는 화가 난 듯 가 버렸다. 나는 그를 조금 더 붙잡아두고, 그가 나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해 주고 싶다고, 결코 유리한 변론을 끌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러고 싶을 뿐이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괴롭혔다. 그는 나를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원망하는 눈치였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 그들과 거의 똑같은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에게 납득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결국 뾰족한 수는 없었고, 귀찮다는 생각도 들어서, 나는 곧 단념해 버렸다.
조금 후에, 나는 또다시 예심 판사에게 불려 갔다. 오후 두 시였는데, 이번에는 그의 사무실은 엷은 커튼으로 새어 드는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몹시 무더운 날씨였다. 그는 나를 자리에 앉게 한 다음, 내 변호사는 '사고가 생겨서' 부득이 나오지 못했다고 퍽 정중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자신의 심문에 묵비권을 행사하며 변호사의 도움을 기다릴 수도 있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혼자 대답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 위의 벨을 눌렀다. 이내 젊은 서기가 들어와서, 내 등뒤에 붙어 앉았다.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안락 의자에 편히 앉았다. 심문이 시작되었다. 먼저 판사가 나에게, 사람들은 내가 말수가 적으며 몹시 내성적인 성격이라고들 얘기하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난 언제나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말을 안 할 수 밖에요."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는 첫 번째 심문 때와 마찬가지로 빙긋 웃으면서, 그건 참 지당한 말씀이라고 말한 다음, 덧붙였다. "그리고, 그건 별로 대수로운 문제도 아니구요." 그는 말을 끊고,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만 갑자기 머리를 우뚝 쳐들고서 재빠르게 말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바로 당신입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알 수가 없어서, 아무 말도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당신의 행동 중에는 나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이 좀 있는데 말이오, 그런 것들을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신이 날 도와 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나는 그런 것들은 모두 대단히 간단하다고 대답했다. 판사는 그 날 일어났던 사건을 설명해 달라고 채근했다. 나는 전에도 한 번 그에게 이야기해 주었던 것들을 다시금 간추려서 말해 주었다. 레이몽, 바닷가, 해수욕, 또다시 바닷가, 작은 샘물, 태양, 다섯 방의 권총. 내가 말을 할 적마다 그는 "네, 네." 하며 듣고 있었다. 시체가 쭉 뻗어 버린 것까지 얘기를 하자, 그는 "됐습니다." 하며, 지금까지 했던 나의 이야기를 확인시켰다. 나는 그처럼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일에 그만 지쳐버렸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끔찍하게 지리했다.
한참을 잠자코 앉아 있던 그가 마침내 일어서면서, 자기는 나를 도와 주고 싶으며 나를 퍽 재미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과, 아울러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나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해 주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몇 가지를 더 물어 보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거 갑자기 엉뚱하게도, 어머니를 사랑했느냐고 물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어머니를 사랑했습니다."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규칙적으로 타이프를 두드리고 있던 서기가 키를 잘못 눌렀는지, 당황해하며 급히 고쳐 치느라고 리듬을 깨뜨리고 말았다. 여전히 두서 없이, 판사는 다섯 방을 연달아서 쏘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처음에 한방을 쏘고 몇 초 지난 후에 잇달아 나머지 네 방을 쏘았다고 대답했다. "첫 번째 방아쇠를 당기고 나서 왜 기다렸지요?" 하고 그가 물었다. 다시 한번 그 붉게 타오르던 바닷가가 내 눈앞에 펼쳐지고, 뜨거운 햇볕이 이마 위로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계속되자 판사는 점점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다시 의자에 풀썩 주저 앉더니,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어 머리를 벅벅 긁어 대며, 이상스런 눈초리로 나를 굽어보았다. "당신은 왜, 도대체 왜 이미 죽은 시체에다 총을 쏘았느냔 말이오?" 이번 물음에 대해서도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판사는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목소리까지 변해 가지고는, "왜 그랬지요? 당신은 그걸 설명해야만 합니다. 도대체 왜 그랬느냔 말이오?" 하고 다그쳤다. 나는 도저히 대답할 수가 없어서 그저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사무실 구석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서류함의 서랍을 열었다. 그는 서랍에서 은으로 만든 십자가를 꺼내더니, 그 십자가를 휘두르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이 십자라를, 이 사람을 아십니까?" 나는 "물론 알고 있지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몹시 흥분한 그는. 자기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죄를 회개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 무구해져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재빠르게 말했다. 그는 온몸을 책상 너머로 기울여 십자가를 거의 내 머리 위에서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그의 의견을 그대로 신봉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날씨가 너무 무더웠고, 그의 사무실에서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던 쉬파리들이 내 얼굴에 달라붙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한 나는 그의 태도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나는 예심 판사의 그러한 짓거리가 우습기조차 했다. 왜냐하면 죄를 지은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 이야기만을 계속해서 지껄였다. 그의 얘기 중에서 내가 대충 알아들은 것은, 내 고백에서 애매 모호한 점이 꼭 한가지 있다는 것, 즉 두 번째 총알을 쏘기 전에 잠시 멈칫거렸다는 점이었다. 그 밖에 점들은 다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오로지 그 점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자기 의견만을 고집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즉, 그 문제는 아주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말을 가로막고, 온몸을 곧추세우더니, 다시 한번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며 일장 훈시를 시작했다. 나는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는 분연한 태도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결코 그럴 수는 없다고, 비록 하나님을 보지 않고 외면해 버리는 사람일지라도 하나 님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신념이며, 만일 이를 의심해야 한다면, 지금까지의 그의 생애는 일시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거라는 것이었다. "당신은 내 생애가 한낱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길 바랍니까?" 그가 고함을 질렀다. 내 생각에는, 그건 나와 아무 상관이 없었고, 나는 그 말을 그에게 했다. 그러자 그는 또다시 십자가를 내 눈 밑으로 들이대고 어처구니없이 흥분하여 괴성을 질러 댔다. "이봐, 나는 크리스찬이야. 지금 나는 그분한테 자네의 죄를 빌고 있단 말야. 어째서 자네는 그리스도가 자네 자신을 위해 괴로움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말야?" 나는 그가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나는 이제 모든 것에 넌덜머리가 나 있었다. 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렷다. 별로 듣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껄여 대는 사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예전부터 내가 흔히 사용하던 방법을 떠올리고, 이번에도 그의 말을 수긍하는 척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는 마치 승리라도 한 듯, "글세, 그렇다니까. 자네는 믿고 있잖아. 이젠 하나님께 자네 마음을 바칠 수 있지?" 하고 말했다. 물론 나는 다시 한번 아니라고 했다. 그는 또다시 의자 위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몹시 피곤한 듯했다. 그가 말을 멈추고 있는 동안에도 서기는 타이핑하기를 멈추지 않고 우리가 나누었던 마지막 이야기를 계속 두드려 대고 있었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당신처럼 고집이 센 사람은 정말 처음이오." 하고 중얼거렸다. "내게 불려 왔던 죄인들은 모두 이 십자가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소." 그 순간 나는, 그들은 죄인이었으니까 그랬던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문득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익숙해질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때, 판사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제 가만 심문이 끝났다는 걸 나타내 주기라고 하듯. 그러나 판사는 여전히 지친 표정으로 내가 내 행동을 뉘우치고 있느냐고 물어 볼 뿐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하고 나서, 뉘우친다기보다 차라리 귀찮은 기분이 든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날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은 채 그 날의 심문은 그것으로 끝이 나 버렸다.
그 후로도 나는 여러 차례 그 예심 판사와 만났다. 다만 그때마다, 내 변호사와 함께였다.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라고는 기껏해야 지난 번 진술중의 어떤 점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하는 정도였다. 그렇지 않으면 판사와 변호사가 서로 직무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실제로 그들은 나를 전연 도외시해 버렸다. 어쨌든 심문의 방식이 자꾸만 달라졌다. 판사는 이미 내 사건에 대해 일말의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는 이미 이번 사건의 성격을 자기 나름으로 규정해 버리고 만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그는 다시는 하나님의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그 날처럼 흥분하는 일도 없었다. 덕분에 우리 사이의 대화는 점점 더 다정해졌다.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고, 내 변호사와 이야기를 조금 나누는 것으로 심문은 끝이 났다. 내 사건은, 판사 자신이 말한 대로 하자면, 착착 잘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어쩌다 대화가 일반적인 주제에 이르면, 나도 거기에 끼여들곤 했다. 비로소 나도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그럴 때에는 아무도 나한테 심하게 굴지 않았으니까. 모든 일이 너무 자연스럽고 규칙적으로, 점잖게 진행되어서, 나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듯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느낌에 빠져들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열 한 달씩이나 계속된 예심을 받으면서 나는, 이따금 판사가 그의 방문 앞까지 나를 배웅해 주고 어깨를 툭툭 치며, " 오늘은 끝이 났습니다. 반(反)그리스도 인 양반." 하고 다정하게 말해 주던 순간을 무척이나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판사의 방문을 나서면 나는 또다시 간수의 손에 맡겨졌다.
2
결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벌어졌었다. 막상 교도소로 들어와 며칠이 지났을 때, 나는 내 생애의 그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혐오감은 점차 사그라져서 대수롭지 않게 느끼게끔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내 자신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실감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막연하게 어떤 새로운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 것은 처음이자 단 한 번뿐인 마리의 방문을 받고 난 다음부터였다. 마리의 편지를 받은 날부터(마리는 편지에 자기가 나의 부인이 아니어서 면회를 할 수 없다고 썼다) 나는 이 감방이 바로 내 집이고, 내 삶이 그 속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포되던 날에, 나는 우선 이미 여러 명이 수감되어 있는 유치장으로 보내졌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아랍인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웃어대더니,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랍인을 한 명 죽였다고 대답하자 그들은 일시에 잠잠해졌다. 마침내 저녁의 어스름이 내려앉았다. 그들은 누워서 잘 돗자리 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돗자리의 한끝을 둘둘 말아서 베개로 써야 했다. 밤새도록 빈대가 얼굴을 기어다녔다. 며칠이 지나자, 나는 독방으로 격리되어 판자 위에서 잘 수 있게 되었다. 변기와 쇠로 만든 대야가 있었다. 교도소는 도시의 꼭대기에 있었으므로 작은 창문을 통해 바다가 내다보였다. 어느 날, 내가 철창에 매달려 빛을 향해 있다고 말해 주었다. 마리겟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마리였다.
면회실로 가기 위해 긴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오르고, 마지막으로 다시 복도를 지났다. 그래서 마침내 커다란 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큰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두 개의 거대한 철책에 의해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철책과 철책은 팔 미터 내지 십 미터쯤 떨어져 있어서, 자연히 면회인과 죄수를 갈라 놓았다. 내 앞에는 햇볕에 그을은 얼굴의 마리가 줄무늬진 옷을 입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쪽에는 죄수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거의가 아랍 인들이었다. 한 명은 입술을 꼭 다물고 검은 옷을 입은 작은 키의 할멈이었고, 또 한 명은 머리에 모자를 쓰지 않은 뚱뚱한 여자였는데, 이리저리 몸짓을 해 대며 소리 높여 지껄이고 있었다. 철책 사이의 거리 때문에 면회인이나 죄수나 모두 목청을 돋궈 얘기해야만 했다. 면회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방음이 되지 않은 커다란 벽에 반사되어 우렁우렁하는 소란스런 음성과, 하늘로부터 유리창 위로 쏟아져내려 방 안 가득히 퍼지는 강렬한 햇살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감방은 이보다 훨씬 조용하고 어둑했다. 그곳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마침내 환한 햇빛 속으로 드러난 얼굴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간수가 한 사람, 철책 사이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아랍 인 죄수들과 그의 가족들은 쭈그리고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소리를 질러 대지는 않았다. 그처럼 주위가 시끄러운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나직나직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그들의 가는 목소리가, 그들의 머리 위에서 소리내며 부딪치는 고함들을 베이스처럼 받쳐 주었다. 그러한 것들 모두를 한순간에 파악하고 나서, 나는 마리에게로 갔다. 마리는 어느 새 철책에 찰싹 달라붙어서 있는 힘을 다해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되었으나 그런 말을 하지는 못했다.
"어떻게 지내세요?" 마리가 큰 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불편하지 않으세요? 뭐 필요한 건 없구요?" "아니, 다 좋아."
우리는 말을 멈췄다. 마리는 여전히 웃어 보였다. 그 뚱뚱한 여자가 내 옆의 사내를 보고 울부짖었다. 여자의 남편인 듯한 그는 솔직해 보이는 눈과 큰 키에 금발이었다. 이미 시작되었던 대화를 다시 계속해 나가고 있었다.
"쟌느는 그를 맡으려고 들질 않는단 말예요." 여자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알았다구." 사내가 말했다. "당신이 나오시면 다시 되찾을 거라고 아무리 얘기해봐도 도대체 소용이 없다니까요."
그 옆에서 마리가 레이몽이 안부를 전하더라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고맙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그 녀석은 잘 있나." 하는 옆의 사내의 목소리에 가려지고 말았다. 그의 부인은, "몸이 아주 좋아졌어요." 하며 웃었다. 내 왼쪽의, 손가락이 가늘고 키가 작은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키 작은 할멈과 서로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데 나로서도 그들을 더 이상 관찰할 여유가 없었다. 마리가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외쳤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이지." 하고 대답했다. 동시에 나는 그녀를 쳐다보며 옷이 걸쳐진 그녀의 어깨를 껴안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나는 그 얇은 옷감에 욕정을 느꼈고, 그것 말고 다른 무엇에 희망을 가져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리가 말하고 싶었던 것 역시 그런 것이었으리라. 그녀는 줄곧 웃어 보이고 있었다. 이제 내 눈에는 그녀의 반짝이는 이빨과 눈가의 잔주름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리가 또다시 "나오시면 우리 결혼해요!" 하고 외쳤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하고 내가 대답했는데, 그것은 달리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마리는 재빨리 여전히 그 높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소리치고, 석방되면 같이 해수욕을 가자고 했다. 옆에 있던 여자도 고함을 지르며 서무과에 보따리를 맡겨 두었는데, 그 속에 무엇무엇을 넣어 두었노라고 주워섬겼다. 많은 돈을 들여서 마련한 것이니 없어진 것이 없나 확인해 보라고 했다, 왼쪽의 청년과 그 어머니는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랍 인들이 웅얼거리는 소리가 우리들 다리 밑에서 여전히 계속되었다. 바깥에서는 햇빛이 유리창에 부딪쳐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햇빛이 사람들 얼굴 위로 마치 갓 짜 놓은 즙(汁)처럼 흘러내렸다.
나는 좀 피곤해서 바깥으로 나가고만 싶었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마리를 좀더 오래 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리는 자기의 일에 관해 지껄여 가며 줄곧 웃었다. 속삭이는 소리, 고함치는 소리,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서로 부딪쳤다. 오직 내 옆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던 청년과 할멈만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랍인들이 하나씩하나씩 끌려서 나갔다.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끌려 나가자, 거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얘기를 멈추었다. 키 작은 할멈이 철책의 창살 앞으로 바짝 붙어 섰다. 그와 동시에 간수가 그녀의 아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아들이, "안녕히 가셔요, 어머니."하고 인사하자, 그 할멈은 창살 틈으로 손을 비집어 넣고 아들을 향해 천천히 조그맣게 손짓을 보냈다.
할멈이 나가는 동안에, 또 다른 남자 하나가 모자를 손에 들고 들어와서 그 자리에 섰다. 곧 죄수가 한 명 끌려 들어왔다. 그들은 활기 있게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면회실 안은 또다시 조용해졌다. 내 오른쪽에 있던 사내가 불려 나갈 차례가 되자, 그의 부인은 이제 큰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어졌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듯, 여전히 큰 소리로 말했다. "몸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마침내 내 차례가 됐다. 마리는 키스를 보내는 시늉을 했다. 면회실을 나서다 말고, 나는 잠깐 뒤를 돌아다보았다. 마리는 얼굴을 창살에 들이댄 체 여전히 그 어색하게 굳어진 미소를 지으며 꼼짝도 않고 있었다.
마리가 편지를 보내 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일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어쨌든 무슨 일이든지 과장은 삼가야 하는 법인데, 그건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내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도소에 수감되고 난 초기에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이 있다면, 그건 내가 자유인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나는 바닷가로 달려가서 물 속으로 첨벙 뛰어 들어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발바닥 밑에서 물결이 부서지는 소리, 물속에 몸을 깊이 담글 때 느끼는 해방감 등이 떠오를 때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감방의 벽이 얼마나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는가를 느끼곤 했다. 그런 고통이 여러 달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죄수로서의 생각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매일같이 교도소 안뜰에서 산책을 즐기거나, 변호사가 찾아오길 기다리며 지냈다. 나머지 시간은 또 그럭저럭 흘러갔다. 그 당시, 머리 위의 하늘에서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는 일밖에는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런 생활에 익숙하게 길들여졌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마치 이곳에서 변호사의 이상야릇한 넥타이를 기다리거나, 혹은 저 바깥 세상에서 마리의 싱싱한 몸을 껴안을 수 있는 토요일을 기다리면 지냈던 것처럼, 지나가는 새나 구름 따위를 기다렸으리라.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마른 나무의 줄기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어머니의 생각도 마찬가지였고, 그녀는 그걸 이따금 되뇌곤 했는데, 사람은 무슨 일에든지 결국 익숙해지고 마는 법이었다.
게다가, 나는 흔히 있는 일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다. 처음 서너 달 동안은 몹시 고통스러웠으나, 바로 그 고통을 이겨내는 노력 덕분에 세월은 더 빨리 지나갔다. 예를 들면 여자에 대한 욕망은 큰 고통거리였다. 나는 젊은 사내였으므로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굳이 마리만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다. 나는 한 여자, 그 여자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지내 왔던 모든 여자들, 그들과 사랑을 나누었던 모든 상황들을 머리에 가득 찼고, 내 정욕으로 출렁거렸다. 어떤 의미에선, 이런 생각은 나의 마음을 교란시켰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선,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침내 나는 식사 시간에 주방의 보이와 함께 오곤 하던 간수장의 동정을 사게 되었다. 처음에 여자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바로 간수장이었다. 그는 다른 간수들도 제일 못 견뎌 하는 것이 바로 그 점이라고 말했다. 나는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서 그런 대우가 영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요, 당신네들을 감옥에 가두어 두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라오." 그가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하지만 그건 맞는 말이에요. 자유란 그런 것이니까요." 그때까지도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그렇군요. 그렇지 않다면 벌이랄 게 어디 있겠소?" 하고 말하며 맞장구쳤다. "그렇고 말고, 당신은 뭔가 아는군. 다른 죄수들은 별로 그렇지를 못하오. 하지만 결국은 그들도 스스로 만족을 구하게 되고 말지." 그러고 나서 간수는 가 버렸다.
담배도 역시 고통거리였다. 교도소에 수감이 되면서, 나는 혁대, 구두끈, 넥타이,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자질구레한 소지품들, 특히 담배마저 빼앗겼다. 감방에 수감이 된 뒤에 담배를 돌려 달라고 해 보았으나 금지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내가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고통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침대의 판자를 뜯어 내서, 그 나무 조각을 빨아가며 고통을 참아야 했다. 온종일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 가 없었다. 아무한테도 해를 끼칠 것이 없는 담배를, 왜 빼앗아 가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하는 그것이 바로 징벌의 한 가지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일에 익숙해진 뒤라, 이미 내게는 아무런 징벌의 의미도 갖고 있지 못했다.
이런 정도의 불편함을 제외하면 나는 그다지 불행하지는 않았다. 거듭 말하지만, 문제는 다만 시간을 때우는 데에 있었다. 지나간 일들을 추억하며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익히게 된 순간부터, 심심해서 견딜 수 없다거나 하는 일은 없어졌다. 때때로 나는 나의 아파트를 생각했다. 아파트의 한 구석에서 시작해서 아파트 전체를 한 바퀴 빙 돌아서 처음의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인데, 그 동안에 방의 모든 것을 머리 속으로 따져 보았다. 이 일도 처음에는 매우 빨리 끝나 버렸으나 자꾸만 되풀이하는 동안에 조금씩 조금씩 그 시간이 질어져 갔다. 왜냐하면 나는 방 안의 가구들을 모두 생각해 내고, 다시 그 가구마다 들어 있던 물건들을 모두 생각해 내고, 또 물건들마다의 특이한 점들을 따져 보고, 그것들의 조각, 흠집, 깨어져 나간 귀퉁이, 그것들의 색깔과 나무결까지도 모두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완전한 재산 목록을 만들도록 애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몇 주일 후에는 나는 내 방 안에 있던 생각하는 일만으로도 꽤 여러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는 내가 그 동안 소홀히 지나쳐 버렸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단 하루를 살았을 뿐인 사람도 백 년 동안을 감옥에서 힘들이지 않고 보낼 수 있으리란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 사람일지라도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추억거리가 있을 테니까. 어찌 생각해 보면 그건 매우 편리한 일이었다.
잠을 자는 일도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조차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나 차츰 밤에 잘 자는 데 익숙해졌으며, 낮에도 잘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의 몇 달 동안에는 하루에 열 여섯 시간 내지 열 여덟 시간씩이나 자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하루에 여섯 시간 정도가 남았을 뿐인데, 그것은 식사와 배설, 추억, 체코슬로바키아의 이야기 따위로 소일하면 그만이었다.
사실, 밀집을 엮어 만든 돗자리와 침대의 판자 사이에서, 나는 옛날 신문 한 장을 발견해 냈던 것이다. 천에 딱 들러붙은 그 신문은, 앞뒤가 비춰 보이고 색깔도 누렇게 바래 있었다. 거기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났었음에 틀림없는 한 잡보 기사가 첫 대목이 잘린 채 실려 있었다. 어떤 남자가 돈을 벌기 위해 체코의 어떤 마을을 떠났었다. 이십 오 년 후에 그는 아내와 어린애 하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모친은 고향에서 그의 누이와 함께 여관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그는 아내와 어린애를 다른 여관에 남겨 두고, 모친의 여관으로 갔는데,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장난을 칠 생각으로, 그는 방을 하나 잡아 들고, 돈을 꺼내 보이며 자랑을 했다. 그 날 밤, 그의 어머니와 누이는 그를 망치로 때려 죽이고 돈을 훔친 다음, 그의 시체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 이튿날 아침, 이 사실을 모르던 그의 아내가 찾아와서 그 남자의 신분을 밝혔다. 그의 어머니는 목을 매어 죽었다. 누이는 우물 속에 몸을 던졌다. 나는 그것을 아마 일천 번쯤 읽었을 게다. 어찌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또 달리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 사건의 책임은 그 남자에게도 있다고 보는데, 장난이란 함부로 칠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잠자고, 지난 일을 추억하고, 신문을 읽는 동안에, 빛과 어둠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감방에 있으면 시간에 대한 관념이 없어진다는 얘기를 어느 글에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나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한나절이 얼마나 길고, 또 얼마나 짧은 건지, 나로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한나절을 보내기는 매우 지리했지만, 하루 하루가 모두 길게 늘어져서 서로 잇달아 긴 하루가 되고 마니까. 세월은 이제 그 이름을 잃어 버렸다. 단지 어제 혹은 내일이라는 이름만이 내게서 그래도 의미를 잃지 않고 있었다.
내가 감옥에 들어온 지 벌써 다섯 달이나 되었다는 말을 간수에게서 듣던 날, 나는 그의 말을 믿기는 했으나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게는 언제는 똑같은 나날, 똑같은 일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 간수가 가 버린 뒤에 나는 쇠로 만든 밥그릇에 비친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내 얼굴을 향해 웃어 보이려 했으나, 그릇에 비친 얼굴을 무뚝뚝하고 슬픈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날이 저물고 있었고, 이제 나로서는 뭐라 말하고 싶지 않은 시간, 저녁의 소음들이 교도소의 각 층마다에서 침묵의 행렬을 지으면서 올라오는 이름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천장으로 뚫린 창문께로 다가가서 마지막 햇빛에 다시 한번 내 얼굴을 비춰 보았다.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는데, 그때 내가 그랬다고 해서 놀랄 일이 뭐 있겠는가?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여러 달 만에 내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내 귓가에서 울리고 있던 소리였음을 깨달았다. 그 동안 나는 혼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어머니의 장례식 날, 간호원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렇지만 정말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잖는가. 그리고 교도소 안의 저물녘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니까.
3
사실 여름과 여름이 너무도 빨리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첫더위와 더불어 나에게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 사건은 중죄 재판소의 최종 회기에 심의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회기는 유월이 끝이었다. 밖에서는 햇볕이 가득한 속에, 공판이 열렸다. 변호사는 나에게 재판은 이삼 일 이상은 계속되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말요, 당신 사건이 이번 회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아니니까 재판정에서도 서둘러 끝낼 거요. 곧바로 부친 살해 사건을 심의해야 하니까 말요."
나는 아침 일곱 시 반에 불려 나가 재판소까지 호송차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두 사람의 간수가 지시하는 대로 어두침침하고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죄수들은 모두 그곳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는데, 방의 옆에 있는 문으로 이야기 소리, 호명하는 소리, 의자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마을 축제 때 전주곡이 끝나고 춤을 출 수 있게끔 방 안을 정돈하는 듯한 소리들이 뒤엉겨서 새어 들어왔다. 간수들은 내게 재판이 열릴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일러 주었고, 그들 주 한 명은 나에게 담배를 한 대 권했는데,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조금 뒤에 그가 나보고 겁이 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재판을 구경한다는 것이 재미있기조차 했다. 지금까지 나는 그럴 기회를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구경할 만하지. 하지만 나중엔 싫증이 나고 말아." 하고 다른 간수가 참견을 했다.
이윽고 방 안에 조그만 벨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간수들은 내게서 수갑을 풀어 주고, 문을 열고는 나는 피고석으로 들여 보냈다. 사람들이 법정에 가득히 앉아 있었다. 커튼이 쳐져 있었음에도 햇빛은 여기저기서 새어들어 방 안의 공기는 숨이 막힐 만큼 후덥지근했다. 유리창은 닫혀져 있었다. 내가 의자에 걸터앉자 간수들도 내 양옆에 따라 앉았다. 그제서야 비로소 내 앞으로 나란히 줄을 지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그들이 배심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얼굴에 서로 구별되는 점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들로부터 받은 인상은 오직 한 가지, 말하자면 내가 전차에 올라탔을 때, 이름 모를 모든 승객들이 웃음거리라도 찾으려고 새로이 전차에 올라탄 승객을 훑어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배심원들이 찾고 있는 것은 웃음거리가 아니라 바로 죄였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큰 차이도 아니고, 그저 내 머리 속을 그런 상념이 스쳐갔던 것뿐이다.
나는 또한 법정을 가득 메운 사람들 때문에 좀 어리둥절했다. 법정을 휘둘러보았지만 아는 얼굴은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기 위해 몰려 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었다. 그런 법석의 원인이 나라는 것을 이해하기까지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한 간수에게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하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신문 때문이라고 대답하면서 배심원석 아래의 책상 옆에 자리잡고 있는 한 패거리를 가리켰다. "저기들 와 앉았잖아." 하고 그가 말했다. "누구 말이에요?"하고 내가 묻자 그는, "신문 기자들이야."하고 대답했다. 그는 기자들 중의 한 사람을 알고 있었던 듯, 기자가 산수를 보더니 우리에게로 걸어왔다. 꽤 나이가 든 사내로 표정을 조금 찌푸리고 있기는 했으나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그는 매우 다정하게 간수와 악수를 나눴다. 그때 나는 마치 클럽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 즐거워하듯이 사람들이 서로 아는 얼굴을 찾아 말을 걸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나는 왠지 내가 침입자 같은, 그리고 필요 없는 존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신문 기자는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모든 것이 나에게 이롭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 내가 고맙다고 인사하자, 그는 "우리가 당신 사건을 좀 요란하게 떠들어되었습니다. 여름에는 기사거리가 모자라거든요. 요즘 기사가 될 만한 것은 당신 사건하고 부친 살해 사건뿐이거든요." 하고 덧붙여 설명을 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방금 전까지 자기가 끼여 있던 무리들 속에서 검은 테의 큰 안경을 쓴 두더지처럼 생긴 뚱뚱한 사내를 가리키며 《파리》 지의 특파원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그는 당신 사건 때문에 온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는 부친 살해 사건의 공판 과정을 보고할 임무를 띠었으므로, 동시에 당신 사건도 알려야겠지요." 나는 하마터면 그 말에 고맙다고 말할 뻔했다. 그런데 문득 그건 아무래도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나에게 다정한 손짓을 해 보이고 나서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는 몇 분쯤 더 기다렸다.
내 변호사가 법의를 입고 여러 동료들에 둘러싸여 법정으로 들어왔다. 그는 기자들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나누었다. 그들은 서로 농담을 건네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 마침내 요란스런 벨 소리가 법정 안에 울려 퍼졌다. 모두들 제자리에 앉았다. 내 변호사는 나에게 다가와서 나에게 악수를 하고는, 질문을 받으면 짧게 답변하고, 먼저 얘기를 꺼내지 말 것이며, 나머지는 모두 자기에게 맡기라고 말했다.
왼편에서 의자를 뒤로 끄는 소리가 나더니, 붉은색의 법의를 입고 코 안경을 걸친, 키가 크고 마른 사내가 옷을 조심스럽게 추스리며 자리에 앉는 것이 보였다. 그가 바로 검사였다. 서기 한 사람이 곧 개정된다고 예고했다. 그때 대형 선풍기 두 대가 부르르 날개를 떨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세 명의 판사가, 두 사람은 검은색의 법의를 입고 또 한 사람은 붉은색의 법의를 입고 서류를 갖고 들어서더니, 법정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연단으로 재빠르게 걸어갔다. 붉은 옷의 판사는 중앙에 자리잡고 앉아, 법모를 자기 앞에 벗어 놓고는 대머리가 된 작은 머리통을 손수건으로 닦고 나서, 개정을 선언했다.
신문 기자들은 이미 손에 펜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무심하면서도 약간 비웃는 듯한 태도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플란넬 옷을 입고 푸른 넥타이를 맨 아주 젊은 청년 하나는 만년필을 앞에 놓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약간 일그러진 듯한 그의 얼굴에서, 나는 맑게 빛나는 두 눈밖에 볼 수가 없었다. 그 눈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을 뿐 이렇다할 아무런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눈에서 내가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꼈다. 아마 그 눈 때문에 그리고 법정의 풍습에 낯설었기 때문에, 뒤미처 일어난 일들을 여간해서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배심원들의 추첨, 변호사, 검사, 배심원에 대한 재판장의 질문(그때마다 배심원들의 머리가 일제히 재판장에게 돌려지곤 했다.), 내가 아는 지명이나 인명이 튀어나오곤 했던 공소장의 재빠른 낭독, 그리고 또다시 변호사에 대한 질문.
재판장이 증인 호출을 하겠다고 말했다. 서기가 이름을 호명했다. 그것은 내 관심을 끌었다. 이제까지 형태가 가물가물하던 방청객들 속에서 한 사람씩 일어나서는, 옆의 문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양로원장, 수위, 페레 영감, 레이몽, 마송, 살라마노, 마리. 마리는 내게 근심스럽다는 시늉을 조그맣게 해 보였다. 그때까지 그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니 참 이상도 하다는 생각을 한 순간, 마지막으로 셀레스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옆에는 언젠가 셀레스트 레스토랑에서 본 적이 있는 키 작은 여자가 전에 입었던 그 재킷을 입고는 정확하고 결단력 있는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재판장이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이제 진짜 재판이 시작될 거라며, 방청객들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요청은 할 필요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한 사건의 재판을 공명정대하게 진행시키는 것이 바로 자기의 할 일이며, 자기는 객관적인 눈으로 이 사건을 볼 것이다. 배심원들의 결정은 정의에 입각한 것이어야 하며, 아무리 하찮은 사고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방청객들에게 퇴장을 명할 것이다.
더위가 점점 더 심해져서 어떤 방청객들은 신문을 접어 들고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구겨진 종이가 떠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재판장이 손짓을 보내자, 서기가 짚을 엮어 만든 부채를 세 개 가져 왔다. 즉시 세 사람의 판사가 그 부채를 사용했다.
곧 심문이 시작되었다. 재판장은 나에게 부드럽고, 심지어는 다정하기조차 한 말투로 질문을 했다. 나는 또다시 내 신분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화가 나면서도, 사람을 잘못 알고 재판한다는 것은 너무나 중대한 문제이므로 그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재판장은 내가 저질렀던 일들에 대해 얘기했는데, 서너 마디 얘기하고는 반드시 "그렇죠?"하고 내게 다짐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변호사의 지시에 따라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재판장은 대단히 세세한 내용까지도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신문 기자들은 계속해서 우리의 얘기를 받아 쓰고 있었다. 나는 그 젊은 청년의 시선과 키 작은 꼭두각시 여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전차의 좌석에 앉아 있는 배심원들은 모두 재판장에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는 기침을 하고 서류를 뒤적거린 뒤에 부채질을 해 가며 내게로 얼굴을 돌렸다.
재판장이 지금부터는 표면적으로는 나의 사건과 무관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해 심문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또다시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내려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러자 그런 일이 몹시 귀찮게 여겨졌다. 그는 왜 어머니를 양로원으로 보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를 부양할 만한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것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고통을 주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어머니도 나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서로에 대해서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았고, 각자 자신의 새로운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재판장을 그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검사에게 다른 질의 사항이 없느냐고 물었다.
검사는 나에게 반쯤 등을 돌리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재판장이 허락한다면 자기는 내가 애초에 그 아랍인을 죽일 셈으로 혼자 샘까지 갔었던 건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아닙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무기를 가지고 갔지요?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되돌아 간 까닭은 무엇이오?" 나는 그것은 그저 우연이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검사는 딱딱한 말투로,
"지금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좀 이상했다. 그렇지만 재판장은 잠깐 동안 무엇을 의논하더니 곧 폐정을 선언하고, 오후에는 증인 심문이 있겠다고 발표했다.
나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나는 법정에서 끌려 나와 호송차에 실려 교도소로 돌아온 뒤에 점심을 먹었다. 내가 피곤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만큼의 시간이 지나자마자, 나는 곧 또다시 불려 나가야 했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 됐다. 나는 같은 방, 같은 사람들 앞에 앉혀졌다. 다만 더위만이 아침보다 한결 심해져서 마치 놀라운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배심원들이나 검사, 변호사, 몇몇의 신문기자들까지도 한결같이 밀짚 부채로 부채질을 해 대고 있었다. 젊은 기자와 키가 작은 여자도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부채질을 하지도 않은 채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양로원 원장의 이름이 호명되는 것을 듣고서야 비로소 나와 그곳과의 '관련성에 대해 어느 정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어머니가 나에 대해 불평을 했느냐는 질문에, 원장은 그렇긴 했지만 재원자들이 그들의 친척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재판장은 내가 그녀를 양로원으로 보낸 것에 대해 그녀가 섭섭하게 생각했었냐고 물었고, 원장은 또다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다. 또 다른 질문에,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 날 내가 너무 냉정해서 몹시 놀랐었다고 대답했다. 냉정하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는 자신의 발끝을 잠시 내려다보고 나서, 내가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묘소 앞에서 묵념 한 번 올리지도 않고 곧바로 돌아가 버렸다고 말했다. 자기가 놀랐던 일이 또 한 가지 더 있었는데, 자기는 장의사의 일꾼에게서 내가 어머니의 나이를 모르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재판장은 원장에게 지금까지의 증언이 모두 사실이냐고 물었다. 원장이 재판장의 묻는 뜻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 같자 재판장은, "법률상 이렇게 하는 겁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재판장은 차장 검사에게 증인한테 질문할 게 없느냐고 물었는데, 검사는,
"아, 없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고 외쳤다. 그의 목소리가 하도 우렁차고, 나를 향해 내보이는 득의 만면한 승리의 표정에 질려서, 나는 어리석게도 정말 몇 년만에 처음으로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를 얼마나 미워하고 있는지를 너무도 잘 느낄 수 있었다.
배심원들과 내 변호사에게 질문할 사항이 없느냐고 묻고 나서, 재판장은 이번에는 수위의 증언을 들었다. 다른 증인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똑같은 절차가 되풀이 됐다. 증언대에 나와 서서, 수위는 나를 잠시 바라보고는 이내 눈길을 돌려 버렸다. 그는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했다. 그는 내가 어머니의 시체를 보고 싶어하지 않았고, 빈소에서 담배를 피웠으며, 밤샘을 하며 졸고, 밀크 커피를 마셨다고 증언했다. 그때 나는 법정을 들뜨게 하는 어떤 낌새를 느꼈으며, 처음으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재판장은 수위에게 밀크 커피와 담배에 대해 한 번 더 얘기하게 했다. 차장 검사는 경멸의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때 내 변호사가 수위에게, 당신도 함께 담배를 피우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검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도대체 누가 죄인이란 말입니까? 증언의 불리함을 은폐시키기 위해 죄과를 증인에게 뒤집어씌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증언이 치명적인 점에는 결코 변함이 없을 거요." 하고 큰 소리로 항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장은 수위에게 변호사의 질문에 답변하라고 지시했다. 수위 영감은 놀란 표정으로, "제가 잘못했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저분이 권하는 담배를 감히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하고 더듬거렸다. 마지막으로 재판장은 나에게 무슨 덧붙일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증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그에게 담배를 권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수위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감사하다는 눈짓을 보내 왔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더니, 밀크 커피를 권했던 사람은 바로 자기였다고 말했다. 내 변호사는 그 얘기에 희색이 만면해져서, 배심원들께선 그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검사는 우리들 머리 위로 벼락이 내려치듯 고함을 질렀다. "배심원들께서는 물론 그 점을 충분히 고려하실 겁니다. 하지만 현명하신 배심원들께서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으로서는 커피를 권할 수도 있으나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자식이라면 마땅히 그를 거절했어야 한다는 점도 고려하시리라 믿습니다." 수위는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토마 페레가 증언할 차례가 되었을 때, 서기 한 명이 그 영감을 증언대까지 부축해야만 했다. 영감은, 자신은 어머니를 매우 잘 알고 있었으나 나는 그 날 처음 보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날 내가 어떻게 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저는 그 날 너무 슬퍼서 다른 것은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가슴 속에 슬픔이 가득해서 아무것도 눈에 보이질 않았거든요, 내게는 아주 슬픈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기절까지 했습지요. 그래서 저분도 잘 보지 못했습니다." 하고 말했다. 차장 검사는, 혹시 내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보았느냐고 물었다. 페레 영감은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검사는 "배심원들께서는 이 점도 고려하시길 바랍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 변호사가 성이 나서 지나치리만큼 목청을 돋구어서, 그러면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은 보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페레 영감은 그것도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변호사는 한쪽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단호한 어조로, "이 사건은 모두 이 모양입니다. 모든 것이 사실이면서, 그러나 실제로 사실인 것은 하나도 없단 말입니다!" 하고 말했다. 검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서류의 제목들을 연필로 짚어 나가고 있었다.
오 분간의 휴정 시간 동안에 변호사는 나에게 모든 것이 썩 잘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휴정 시간이 끝나자 곧 피고측의 요구로 호출된 셀레스트의 증언이 있었다. 나를 변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셀레스트는 이따금 내게로 시선을 던지며 두 손으로 파나마 모자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는 새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은 일요일에 가끔씩 나와 함께 경마장에 갈 때 입곤 하던 옷이었다. 그런데 미처 칼러를 달 수가 없었던지 셔츠를 구리 단추로 채우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손님이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사나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재판장이 사나이란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는 그게 무슨 뜻인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속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내가 별로 말을 많이 하지는 않는 편이었다고 대답했다. 차장 검사가 식사대는 제대로 지불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면서 "그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사사로운 일일 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는 다시 내 범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증언대 위에 자시 손을 올려 놓았는데, 할 말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제 생각으로는 그건 확실히 하나의 불행한 사건입니다. 불행이 어떤 것인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불행은 어쩔 도리가 없는 노릇이죠. 확실히 그건 불행이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더 계속 하려고 했으나 재판장은 그의 증언을 가로막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수고했다고 말했다. 셀레스트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 그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그에게 간단히 말하도록 하라고 했다. 그가 또다시 그건 불행이었다고 되풀이해서 말하자 재판장은, "네, 그것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그러한 불행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말했다. 셀레스트는 온갖 지혜를 짜내고 선의(善意)를 다했었지만 어쩔 수 없게 되자,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눈은 번쩍이고 입술은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나에게 자기가 더 해 줄 수 잇는 일이 있는지 더 묻고 잇는 듯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리 어떤 몸짓도 보이지 않았지만, 한 사나이를 껴안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것은 그때가 생전 처음이었다. 재판장은 그에게 증언대에서 물러나 주길 요청했다. 셀레스트는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 앉았다. 나머지 심문이 모두 끝나도록 그는 몸을 약간 앞으로 구부려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모자를 두 손으로 잡고 앉아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마리가 들어왔다. 그녀는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머리칼을 풀어 놓고 있을 때가 더 좋았다. 내가 앉아 있는 곳에서도, 나는 그녀의 젖가슴의 경쾌한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아랫입술이 약간 부풀어오른 듯한 모습은 여전했다. 그녀는 신경이 매우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녀는 언제부터 나를 알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녀는 우리 회사에서 나와 함께 근무했던 때를 알려 주었다. 재판장은 그녀와 나의 관계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그녀는 친구 사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나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대답했다.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던 검사가 갑자기 우리들의 관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 날짜를 말해 주었다. 그러자 검사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그건 아무래도 어머니의 장례식 이튿날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조금 비웃는 듯한 말투로 그같이 미묘한 문제는 더 이상 묻고 싶지도 않았으며, 마리의 기분을 모르는 바도 아니자만(여기부터 그의 말투는 더 딱딱해졌다), 자신이 맡은 임무이므로 어쩔 수 없이 예의를 지킬 수가 없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검사는 마리에게, 나와 관계를 맺었던 그 날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간추려서 얘기해 달라고 했다. 마리는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검사의 강력한 요구를 이기지 못해 결국은 우리가 해수욕을 갔던 일, 영화를 보러 갔던 일, 그리고 둘이서 함께 내 아파트로 돌아왔던 일들을 얘기했다. 차장 검사는 이미 예심에서 마리의 진술을 듣고 그 날의 영화 프로그램을 조사해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무슨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는지 마리 자신이 직접 말해 보라고 덧붙여 말했다. 마리는 겁을 잔뜩 집어먹어 질린 목소리로, 그것은 페르낭델이 출연한 영화였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대답을 마치자 법정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러자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단한 감동을 받은 듯한 목소리로, 매우 심각하게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또박또박 말을 끊어 가며 천천히 말했다. "배심원 여러분, 어머니가 돌아가신 바로 다음 날에 이 사람은 해수욕을 즐기고, 부정한 남녀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코미디 영화를 보고 좋아했습니다. 여기에서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여전히 침묵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는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마리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건 그렇지가 않고, 사실과 다르며, 사람들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의 이야기를 억지로 시킨 것이며, 자기는 나를 잘 알고 있는데, 결코 나쁜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장이 그녀를 저지시키라는 손짓을 했으므로, 서기가 그녀를 데리고 나갔고, 심문은 다시 계속 되었다.
마송이, 나는 성실한 사람이며, '뿐만 아니라 대단히 정직한 사람'이라고 말했으나 거의 아무도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살라마노 영감도 내가 자신의 개한테 매우 친절했다고 말했다. 나와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받자 그는, 내가 어머니와 함께 나눌 이야기거리가 없어서 어머니를 양로원으로 보낸 것이라고 대답했으나, 그 말 역시 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걸 알아 주셔야 합니다. 반드시 알아 주셔야 해요." 하고 살라마노는 애써 말했으나 아무도 알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도 끌려 나갔다.
뒤이어 레이몽의 차례가 되었는데, 그가 마지막 증인이었다. 레이몽은 내게 슬쩍 손짓을 해 보이고는, 무턱대고 나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재판장이,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은 판정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증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레이몽에게 질문에 대한 답변만 하라고 주의시켰다. 피해자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레이몽은 기회가 왔다는 듯이 자기가 피해자의 누이의 따귀를 갈긴 이래 피해자는 바로 자기를 증오해 왔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도 불구하고, 재판장은 피해자가 뫼르소를 증오할 까닭은 전혀 없었느냐고 물었다. 레이몽은 내가 그 날 바닷가에 같이 갔던 일은 단순한 우연이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검사는 그럼 어째서 사건의 발단이 된 그 편지가 내 손에 의해 씌어졌느냐고 물었다. 레이몽은 그것도 우연이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검사는, 이번 사건에서 이미 여러 차례 우연이 진실을 왜곡시켰다고 흥분해서 반박했다. 그는 레이몽이 그의 정부의 따귀를 갈겼을 때 가서 증인을 서 준 것도 우연인지, 그때 내가 했던 호의적인 증언도 우연인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레이몽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레이몽이 창고업자라고 대답하자, 차장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증인이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한 레이몽의 공범자이며 친구이다. 이번 사건은 가장 파렴치한이다. 이에 레이몽이 변명을 하려 했고, 내 변호사도 항의를 했으나, 재판장은 그들에게 검사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 검사는, "나는 이 이상 더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하고 말한 다음, 레이몽에게, "피고는 당신의 친구였습니다?" 하고 물었다. 레이몽이, "그렇습니다. 내 친구였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차장 검사는 이번에는 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레이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검사는 배심원석으로 돌아서며 말을 계속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튿날에 가장 수치스러운 정사를 벌인 바로 이 사람은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이유로, 풍긴 문란 사건의 결말을 지으려고 무모한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검사가 이야기를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참다 못한 내 변호사가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 바람에 소매가 흘러내려 풀 먹인 셔츠의 주름이 밖으로 드러났다.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매장한 일로 기소된 것입니까? 살인죄로 기소된 것입니까?" 순간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검사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법의를 제대로 고쳐 입고서, 존경할 만한 변호인이 그 두 사실 사이에 내재하는 심오하고 감동적이며 본질적인 관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그렇습니다." 하고 그가 힘차게 말을 계속했다.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를, 나는, 범죄인의 정신 상태로 매장한 한 사나이를 고발하는 겁니다." 검사의 이러한 논고는 방청객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준 듯했다. 내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나서 이마에 흐르고 있는 땀을 닦았다. 하지만 그 자신도 몹시 동요된 것 같았다. 나는 사태가 나에게 결코 유리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폐정(閉廷)이 선언되었다. 재판소에서 나와 호송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매우 짧은 순간에 여름날 저녁의 냄새와 빛깔을 느꼈다. 어두컴컴한 호송차 안에서, 나는 좋아하던 어떤 도시의 거리며, 이따금 혼자서 만족해하던 어떤 시각의 귀에 익은 친숙한 소리들을 피곤에 지친 마음 속에서 하나씩하나씩 건져 올려 다시 되새겼다. 이미 햇볕의 열기가 죽어 버린 하늘로 울려 퍼지는 신문팔이들의 외치는 소리, 공원 숲에서 우는 새들의 마지막 울음 소리, 샌드위치 장사의 소리, 시가지의 높은 빌딩 사이의 구부러진 골목길에서 울리는 전차의 기적소리, 그리고 항구에 어스레한 밤이 내리기 전에 하늘로 반사되는 불분명한 어떤 소리들 - 그러한 모든 것들이 떠올라 나는 장님이 길을 더듬어 가듯 추억을 더듬었다. 그 길은 바로 내가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에 잘 지나다니던 길이었다. 그러한 때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언제나 꿈도 꾸지 않는 아주 가벼운 수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일에 대한 기대와 함께 별 수 없이 감방으로 되돌아왔으니까. 마치 여름 하늘에 그려진 낯익은 길이 순결한 수면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어두운 감방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처럼.
4
비록 피고석에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법이다. 검사와 변호사의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쩌면 내 범죄 이야기보다도 나 자신의 이야기가 더 많았을 것이다. 한편, 검사와 변호사 사이의 변론에 별다른 차이가 있었던가? 변호사는 팔을 높이 쳐들고, 변명을 섞어 가며 유죄를 인정했다. 그런데 나로서는 조금 난처한 일이 하나 있었다. 불안 속에서도 나는 이따금 끼여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그때마다 변호사는 내게 "가만히 좀 있으시오. 그게 당신한테 이로울 테니." 하고 나를 말렸다. 어떻게 보면, 사건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모든 일이 나는 조금도 참여하지 못한 채 이루어졌다. 그들은 내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내 운명을 결정짓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도대체 누가 피고란 말이오? 피고도 중요하지 않소? 내게도 할 말이 있단 말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할 말이 없기도 했다. 한편 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흥밋거리는 그리 오래 계속도지 않는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이를테면, 검사의 논박도 내겐 곧 시들해지고 말았다. 나의 관심을 끌거나 흥미를 일으킨 것은 단지 단편적인 어떤 말이나 몸짓, 또는 전체와는 동떨어진 한 토막의 얘기 따위였다.
내가 옳게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검사의 논고 요지는 내가 범죄를 미리 계획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는 그것을 증명하려고 애썼으며,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나는 그것을 이중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 그 자체로, 둘째는 이 흉악한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음흉한 심리에 비추어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죽은 뒤에 일어났던 일들을 요약해서 말했다. 그는 내가 어머니의 죽음에 냉담했었다는 것, 어머니의 나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 장례식 다음 날 여자와 해수욕을 갔다는 것, 페르낭델이 출연한 영화를 구경했다는 것과 마리와 함께 내 아파트로 돌아왔다는 것을 지적해 말했다. 그때, 나는 검사가 얘기하는 바를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정부'란 말을 썼기 때문인데, 그녀는 내게 있어서 그저 마리였을 따름이다. 이어서 검사는 레이몽의 얘기를 꺼냈다. 사건을 해석하는 그의 두뇌는 보통 명석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그럴 듯했다. 내가 그의 정부를 꾀어내어 '성품이 흉포한' 사내의 흉악한 행위에 맡기려고 레이몽과 짜고 편지를 썼다. 바닷가에서는 내가 레이몽의 상대편에게 시비를 걸었다. 레이몽이 다쳤다. 나는 레이몽에게서 권총을 달라고 해서 그걸 갖고 혼자서 그들을 처치하려고 샘으로 되돌아갔다. 그리하여 계획했던 대로 그 아람 인을 쏘아 죽였다. 그리고 조금 기다렸다가, '일이 성공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금 네 방의 총알을 태연하게, 명료한 의식으로 쏘았다.
"이상과 같이 나는 여러분에게 이 사람이 계획대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경위 일체를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특히 이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보통 저질러지는 살인 사건이나 정상을 참작하여 관대하게 처벌 할 수도 있는 무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그 뜻도 제대로 헤아릴 줄 압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저지른 일을 결코 모르고 한 짓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귀를 기울여 듣고 있던 나는, 검사가 나를 지식인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기 마련인 그런 정도의 능력이 어째서 나 같은 죄인에게는 대단히 불리한 조건이 된다는 것인지, 나는 그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생각이 머리 속에 꽉 들어차서, 그 다음에는 검사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거의 들을 수가 없었다. 한참만에 다시 그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행여 뉘우치는 기색이라도 보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이 사람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예심 때에도 이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가증스러운 범죄에 대해 단 한번도 뉘우쳐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나에게로 돌아서서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에 대한 비난을 계속했는데, 왜 그가 그래야만 했는지 나로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나는 그의 지적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는 내가 저질렀던 일에 대해 별반 뉘우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처럼 노발대발 성을 내야하다니, 아무래도 이상했다. 나는 그에게 다정하게, 그리고 애정이 깃 든 말씨로,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뉘우치지는 않는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앞으로 일어날 일, 오늘이나 내일의 일 따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내 처지에서는 아무에게도 그런 투로 말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누구에게 다정함을 보인 다거나 호의를 베풀 궐 리가 없었다. 검사가 나의 영혼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다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배심원들에게, 나의 영혼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에 의하면, 나에게는 애당초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으며, 인간미란 조금도 없고, 인간다움을 지켜 주는 도덕적인 원칙조차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하고 그가 말을 이어서. "우리는 그런 것을 비난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서, 그에게 그런 것들이 없었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이 신성한 법정에서는 관용이라는 소극적인 미덕을 그보다 더 까다롭긴 하지만 고양된 형태인 정의라는 미덕으로 바꾸어야만 합니다. 더군다나 이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심리적인 공허감이 사회 전체를 좀먹어 버릴 수 있는 불안의 근원이 될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어머니에 대한 나의 태도에 대해 논고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까 논박 중에 했던 말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나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더 길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나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더 길었다. 어찌나 길고도 긴지, 결국 나는 그 날 아침의 끔찍한 더위밖에 다른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 차장 검사는 잠깐 동안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매우 낮게, "내일, 바로 이 법정에서 가장 가증스러운 범죄인 부친 살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열립니다." 하고 말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 잔혹스러운 범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간 사회의 정의가 엄중한 처벌을 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 하지만 그 잔혹한 범죄에서 느끼는 전율보다는 오히려 나의 무감동에 대해 느끼는 전율이 훨씬 더 크다고 서슴지 않고 지껄였다. 여전히 그의 말에 의하면, 정신적으로 어머니를 살해하는 것은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에서 종식되어야 했다. 결국 전자는 후자의 준비 단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앞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겠다는 예고와 공인(公認)이었다. "여러분, 나는 확신합니다." 그가 목청을 높여 덧붙였다. "내가, 이 의자에 앉아 있는 바로 이 사람이 내일 이 법정에서 심판을 받게 될 부친 살해죄를 범한 피고라고 말하더라도, 여러분은 나를 보고 지나치다고 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과중한 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여기에서 검사는 땀으로 번질거리는 얼굴을 닦았다. 끝으로 자신은 그 어려운 일을 해 내고 말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란 존재는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있으므로, 결국 사회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자이고, 인간의 마음에 대해 기본적인 반응조차 없는 인간이므로 인정에 호소할 수도 없다고 했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사형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사형을 요구하면서도 내 마음은 전혀 무겁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짧지 않은 재직 기간 중에 이미 여러 번 사형을 요구한 적이 있었으나 오늘처럼 이 괴로운 임무가 말할 수 없이 신선한 지상 과제라 느껴 본 일이 없으며, 또 흉악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한 사람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무서운 전율에 대한 상쾌한 징벌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검사가 자리에 앉고 난 뒤에, 꽤 오랫동안 침묵이 계속 되었다. 나는 더위와 놀라움으로 얼이 빠져 있었다. 재판장은 기침을 몇 번하고 나서, 나에게 더 할 말이 없느냐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뭔가 얘기하고 싶었으므로 일어서서 그저 생각나는 대로, 그 아랍인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그건 나의 주장일 뿐이라고 말한 뒤, 자기는 아직 나의 변호 내용을 모르고 있으니까 변호사가 변론을 시작하기 전에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본인이 직접 이야기 해보라고 했다. 나는 나 자신이 놀림을 당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허둥거리며 그건 태양 때문이었다고 재빠르게 말해 버렸다. 법정 안에 웃음소리가 가볍게 일었다. 내 변호사는 으쓱하고 어깨를 추켜 올렸다. 뒤미처 그는 발언하라는 지명을 받았으나, 이미 시간도 늦었고 자기의 변론은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오후로 연기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재판장은 이에 동의했다.
오후에도 여전히 대현 선풍기가 실내의 후덥지근한 공기를 휘젓고 돌았으며, 배심원들은 각양 각색의 작은 부채들을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변호사의 변론은 언제 끝이 나려는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문득 내 두 귀가 모아졌다. "내가 살인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고 그가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식으로, 나를 가리킬 때는 언제나 자기가 나라는 식의 어투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나는 무척 놀랐다. 나는 간수에게로 몸을 굽혀,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 보았다. 간수는 잠자코 있으라고 말하더니, 조금 후에 덧붙여 말했다, "변호사들은 으레 그런 식으로 말해요." 나는, 그렇다면 그것은 나를 사건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나를 영(零)으로 만들어 버리며, 그가 내 역할을 대신하는 꼴이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나의 관심은 법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 있었다. 나는 변호사가 몹시 우스워 보였다. 그는 빠른 말투로 내가 저질렀던 가해 행위를 변호하고 나서, 검사와 마찬가지로 내 영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검사의 말솜씨에 감히 견줄 바가 못 되는 듯싶었다. "나 역시 피고의 영혼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서 탁월하신 검사님께서도 미처 보지 못하셨다 그 무엇을 찾아냈습니다. 아니 펼쳐 놓은 책을 보듯이 그것을 환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내가 성실하며, 규칙적이고, 근면하며, 회사 일에 충실하고, 모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고, 또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동정하는 마음을 읽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나는 힘이 닿는 데까지는 성심 성의껏 어머니를 모셨던 극히 모범적인 아들이었다. 나중에 어머니를 양로원으로 보냈던 것은, 내 힘으로서는 어머니를 안락하게 모실 수가 없었고, 또 양로원이 그 일을 제대로 해 내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그 양로원에 대해 그토록 이나 논의가 많았던 것이 내게는 참으로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만을 그러한 복지 기관의 유익함과 고귀함을 증명해야 한다면, 나로서는 그런 시설들이 국가의 재정을 받고 있다는 말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끝내 장례식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점이 그의 결론의 결정적인 결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끝없이 긴 변론과 여러 날 동안 계속된 내 영혼에 관한 논쟁 탓으로 나는 모든 것이 무색 투명한 물이 되고, 그 속에서 내가 현기증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변호사가 변론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마침내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 소리가 거리로부터 다른 방들과 법정의 무거운 공기를 건너 내 귀까지 들려 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미 내 것일 수 없는 삶, 별로 보잘것은 없지만 그래도 충일된 기쁨을 느꼈던 순간들을 추억하기 시작했다. 여름날의 냄새, 내가 좋아하던 거리, 어느 날 저녁의 하늘, 마리의 웃음과 옷, 그곳에서 내가 했던 하찮은 일들 모두에 대한 역겨움이 목구멍까지 치밀러 올라서, 나는 그저 모든 것이 어서 끝나 감방으로 돌아가 자고만 싶었다. 변호사는 끝으로 배심원들에게, 한때의 실수로 잘못을 저지를 한 성실한 근로자를 사형에 처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소리 높여 말하고, 내가 이미 영원한 뉘우침이라는 형벌을 받고 있으므로 이에 대해 정상을 참작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내 귀에는 그런 말들마저 들리지 않았다. 재판장은 잠시 심문을 정지시켰으며, 변호사는 피곤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그의 동료들이 달려와서 그의 손을 잡았다. "참 잘 했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나를 증인이나 삼으려는 듯, "정말 그렇지요?"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기는 했으나 물론 본심에서 우러난 것을 아니었다. 나는 너무나 피곤했던 것이다.
그런데, 밖에는 시간이 흘러 더위도 한결 힘을 잃고 있었다. 나는 큰길에서 올라오는 소리들을 듣고 저녁의 부드러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단지 나에 관한 문제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재판정 안을 휘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첫 번째 날과 똑같았다. 회색 옷을 입은 기자, 그리고 꼭두각시 같은 여자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러자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마리를 찾아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사이 마리를 잊어 버렸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로서는 할 일이 너무 많았었다. 마리는 셀레스트와 레이몽의 사이에 앉아 있었다. 마리는 '이제야 겨우 끝이 났군요,' 하는 표정으로 조그맣게 손짓을 보냈다. 그녀는 조금 걱정이 되는 듯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 그러나 나는 내 마음이 굳게 닫혀 있음을 느끼며, 그녀의 미소에 아무런 반응도 보일 수가 없었다.
드디어 공판이 재개되었다. 배심원들에 대하여 일련의 질문 사항이 매우 빠른 속도로 낭독되었다. '살인죄'……, '예비 음모'……, '정상 참작'……, 그런 말들이 내 귀로 들어왔다. 배심원들이 나가 버렸고, 나는 먼저 기다리고 있었던 방으로 끌려갔다. 변호사가 내 뒤를 때라와서는 여느 때보다도 더욱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다정스레 말을 걸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으니까, 몇 년 동안의 금고형이나 징역 정도를 언도 받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 판결이 불리할 경우 이를 파기시킬 수도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럴듯하게 생각되었으므로 나는 순순히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사태를 냉철히 관찰해 보면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서류는 몽땅 쓰레기가 되고 말 테니까. "어쨌든, 상고는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결과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변호사가 확신한다는 투로 말했다.
우리는 매우 오랫동안, 거의 사십 오분이나 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종이 울렸다. 변호사는, "이제 배심원장이 의견서를 낭독할 겁니다. 당신은 판결을 언도 할 때에야 비로소 법정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한 다음, 나를 내버려두고 가 버렸다.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계단을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그들이 다가오는 것인지 멀어져 가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법정으로부터 무언가를 읽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 왔다. 다시금 종이 울리고 내가 피고 석으로 들어섰을 때, 무거운 침묵과 그 젊은 신문 기자의 흘깃거리는 눈초리의 섬뜩함이 나를 맞아들였다. 나는 마리가 있는 쪽을 보지 못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재판장이 야릇한 목소리로, 피고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광장에서 목이 잘릴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나는 사람들 얼굴에 나타난 감정을 모두 읽어 내릴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 나를 존경하는 기색을 보였던 것 같다. 간수들은 나에게 공손하게 굴었으며, 변호사는 내 손목 위에 자시 손을 올려놓았다. 나는 달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재판장이 무슨 말이든지 더 할 게 없느냐고 물었으므로, 나는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곧이어 나는 끌려나갔다.
5
나는 교도소 소속 신부의 면회 신청을 세 번째 거절했다. 나로서는 그에게 이야기할 것도 없고, 또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서둘러 그를 만나야 할 까닭이 없다. 요즘 나의 유일한 관심거리는 기계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그리고 어떻게 하면 불가피한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일, 그리고 어떻게 하면 불가피한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생각하는 일이다. 감방이 바뀌었다. 지금의 이 감방에서는 번 듯이 드러누우면 하늘이 내다보이는데, 보이는 것이라곤 그것뿐이다. 낮과 밤이 교차되면서 하늘에 어떤 색깔을 그려 넣는지를 지켜보노라면 하루 하루가 흘러가 버린다. 머리 밑에 손을 괴고 누운 채로, 나는 기다리고 있다. 나는 사형 선고를 받은 자로서 그 무자비한 메커니즘에서 벗어났던 예가 있는지, 처형 직전에 종적을 감춰 버리거나 탈출을 해 버린 예가 있는지에 대해 벌써 여러 차례 자문해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형 집행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몹시 후회스러웠다. 그런 문제는 누구나 관심을 기울였어야 마땅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신문에 난 기사를 읽어 본 적은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자세히 쓴 책들이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한번도 그것을 보고자 하는 호기심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 책들이라면 탈출에 관한 내용도 씌어 있을 텐데. 적어도 한 번쯤은 운명의 바퀴가 멈추고, 그래서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전락 속에서도 우연한 행운을 만날 수 있을 텐데. 단 한 번만이라도! 어쩌면 내게는 그것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다. 그 나머지는 내 마음에 의해 보상되어질 수 있으니까. 신문들은 이따금 사회에 대한 죄과에 대해 떠들어 대곤 했다. 그들에 의하면 그 죄과는 꼭 치러져야 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내 상상력에 아무런 호소력도 갖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탈출의 가능성과 무자비한 의식(儀式) 밖으로의 도약, 끝없는 희망을 가져다 주는 광포한 도망 같은 것이었다. 물론 희망이라고 해 봐야 힘껏 달리다가 길 모퉁이에서 날아오는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하지만 곰곰이 따져 생각해 보면, 그런 상상은 모두 지나친 사치일 뿐으로, 나는 다시 메커니즘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 준다 해도, 나는 그렇게 터무니없는 확실성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확실성의 기초가 되었던 선고와, 그의 냉철한 전개(展開) 사이에는 실로 엄청난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이 오후 다섯 시가 아니라 여덟 시에 낭독되었다는 사실, 그 판결문이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 또 그것이 속옷을 갈아 입는 인간들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과 프랑스 국민(혹은 독일 국민이나 중국 국민)이라고 하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관념에 의해 언도되었다는 사실, 이 모든 것들 때문에 그러한 결정은 진지함이 상당히 결여된 듯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선고의 결과는 내가 몸뚱이를 비벼 대던 벽만큼이나 확실하고 준엄한 존재가 되어 버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즈음, 나는 어머니가 해 주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잘 몰랐다. 그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때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이 이야기뿐인 것 같다. 아버지는 어떤 살인범의 사형 집행을 구경하러 갔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보러 간다는 생각만 해도 병이 날 것 같은 위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구경을 갔었고, 돌아오는 길엔 결국 아침에 먹은 것을 토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아버지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사형 집행보다 더 중대한 일은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유일한 일인데, 왜 지금까지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만일 이 감옥으로부터 나갈 수만 있다면 나는 사형 집행이라면 모두 다 빠짐없이 보러 갈 텐데. 내가 이런 가능성을 생각했던 것은 잘못이었던 듯싶다. 왜냐하면 나는 이른 아침에 경계선 저편에서 자유롭게 서 있는 나 자신을 생각만 해도, 그리고 사형 집행을 구경하러 갔다가 구토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만 해도, 내 가슴 속에서는 그 동안 억눌렸던 기쁨이 일순간에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런 상상에 이끌려 가서는 안 될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나는 너무도 추워서 몸을 웅크리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야만 했으니까. 차라리 나는 턱을 덜덜 떨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논리에 맞는 생각만 하고 지낼 수는 없는 일이다. 예를 들면, 나는 한때 법률의 초안을 작성해 보기도 했다. 형법을 뜯어 고쳤던 것이다. 그 요지는 사형 선고를 받은 인간에게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천에 하나, 그것은 갖가지 일을 해결하는 데 충분했다. 따라서, 수형자(受刑者) 나는 수형자라는 말을 찾아 냈다 들이 그 약을 먹으면 열에 아홉 명쯤 죽는 화학 약품이 있음직했다. 수형자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 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조건이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단두대는 어떠한 요행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두대는 수형자의 죽음을 확실하게 예고한다. 그것은 이미 매듭지어진 일이며, 기정 사실이고, 확정적인 조치이며, 결코 다시는 취소될 수도 없는 일이다. 만일의 경우 어쩌다가 목이 잘 베어지지 않는 일이 생기면 다시금 목을 칠 뿐이다. 그러므로 수형자가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기계가 아무 탈 없이 한 번에 자기 목을 베어 주길 바라는 일뿐이다. 나는 그것이 바로 단두대의 결점이라고 감히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정말 사실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보자면 바로 그점에 훌륭한 조직의 모든 비결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수형자는 자신의 사형 집행에 정신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만이 그에게 득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문제들에 관해서 지금까지 상당히 그릇된 견해를 갖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오랫동안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단두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계단을 걸어 올라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1789년의 대혁명, 다시 말해서 그것은 사람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고 보여 주었던 모든 것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소문이 파다하게 번졌던 어느 사형 집행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사실, 그 기계는 땅바닥에 아주 단순한 꼴로 놓여 있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이나 협소했다. 나는 내가 좀더 일찍 그런 것을 떠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의아했다. 사진 속의 기계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정밀했으며, 규모 있게 번쩍거리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사람이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언제나 지나친 상상을 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와는 반대로 모두 단순한 그 무엇에 불과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두대도 목을 잘리러 걸어가는 사람의 키만 하다. 수형자는 마치 누구와 만나러 가듯 기계와 부딪치게 된다. 어찌 생각하면 그것도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단두대로 오르는 것은 하늘로 날아 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런 생각도 메커니즘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우리의 생명은 그저 조금 부끄러워하면서 정확하게 끊어져 버릴 뿐이다.
이 외에도 줄곧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그것은 새벽과 상고(上告)였다. 그 동안 나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더 이상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누워서 하늘을 보며 온 정신을 그리로 모으려고 애썼다. 저녁이 되면 하늘은 초록색으로 변했다. 그러면 나는 생각의 방향을 돌려 보려고 무진 애를 써야 했다. 나는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오래 전부터 나를 따라다니던 소리가 이제 곧 나를 떠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나는 진정한 의미의 상상을 해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는 순간을 상상해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새벽과 상고가 나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내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제일 현명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들이 새벽에 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새벽을 기다리며 매일 밤을 지낸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고 싶지 않았다. 이왕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낮에 미리 잠을 자 두고, 밤에는 하늘로 뚫린 유리창으로 새벽빛이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그들이 그 일을 집행하기 위해 흔히 선택하는 시간이 내가 알기로는 불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자정이 지나면서부터 나는 그들을 기다리며 동정을 살폈다. 일찌기 내 귀가 그렇게 많은 소리, 그렇게 작은 소리까지 들었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동안 발걸음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으니, 나는 참 억세게도 재수 좋은 사내였다고 할 수도 있다. 어머니는 사람은 완전히 불행하게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었다. 하늘에 새벽의 빛깔이 번지어 하루가 훤히 밝아 올 때면, 나는 감방 안에서 그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곤 했다. 왜냐하면 결국 나는 발걸음소리를 듣고 놀라서 내 심장이 터져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문으로 달려가서 나무 문에 귀를 대고 넋이 나간 듯이 기다리다 보면, 미친 개처럼 헉헉거리며 내쉬는 내 숨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 심장은 터지지 않고 다시 한번 스물 네 시간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낮 동안에는 늘 상고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내가 상고에 대한 생각을 매우 적절히 이용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생각으로 얻는 효과를 미리 곰곰이 따져 보고 최대의 능률을 얻도록 했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늘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었다. 그것은 상고가 기각되는 경우였다. ‘그래, 나는 결국 죽고 말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죽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인생이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서른 살에 죽거나 일흔 살에 죽거나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사실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는데, 그건 왜냐하면 어떤 경우에든지, 그 뒤에는 다른 남자들과 다른 여자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것은 마찬가지이며, 그런 일은 앞으로도 수천 년 동안이나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것은 지극히 명백한 일이었다. 지금이건 혹은 이십 년 후이건, 내가 죽을 것임엔 다를 바가 없었다. 이때, 나의 추론(推論)에 있어서 약간 거북스러운 게 있었다면, 그건 바로 내가 앞으로 올 이십 년 동안의 삶에 대해 생각할 때, 내 마음 속에 느껴지는 끔찍한 용솟음이었다. 하지만 이십 년이 지난 뒤에도 그러한 지경에 이르면 그때도 내 상상 속에서 그러한 생각을 억누르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죽고 마는 것이라면 언제 죽든지 또는 어떻게 죽든지, 그런 따위가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그러므로(문제는 바로 이 ‘그러므로’라는 말이 가리키는 모든 추론을 내 시야로부터 잃어 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사고가 기각되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그 두 번째 가정에 대해 소위 말하는 권리를 가졌는데, 다시 말해서 나는 그것에의 접근이 허용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특사였다. 이번에는 이 터무니 없는 상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기쁨이 피와 육신을 들끓게 하는 것을 가라앉히는 일이 큰 어려움이었다. 나는 용솟음치는 기쁨을 억누르고 자신을 타일러야만 했다. 첫 번째 상상에서 얻은 나의 체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번에도 태연스레 나를 달래야만 했다. 어떤 때는 한 시간쯤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 정도라면 꽤나 의연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럴 즈음, 나는 신부의 면회를 또다시 거절했다. 나는 누워서 하늘이 금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면서 여름 저녁이 가까와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상고를 포기하고 난 직후였고, 내 몸 속에서는 혈액이 규칙적인 파동을 일으키며 온몸을 순환하고 있었다. 나는 신부를 만날 필요가 없었다. 참으로 오랫만에 나는 마리를 생각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마리에게서는 편지가 없었다. 그 날 저녁, 나는 여러 모로 생각해 본 끝에, 아마도 이제 마리도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의 애인 노릇에 지쳐 버린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마리가 병이 났거나 혹은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서로 떨어져 있는 우리 둘 사이에는 우리를 서로 묶어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어찌 내가 마리에 대해 알수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죽으면 사람들도 모두 나를 잊어 버릴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더 이상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이런 일은 생각하기도 괴로운 일이라고, 그렇게 말할 것까지도 없다. 어차피 사람들은 어떤 생각에라도 익숙해지기 마련이니까.
신부가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신부를 보는 순간, 나는 몸을 약간 떨었다. 신부는 그것을 알아채고는 나에게 겁내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여느 때와 다른 시각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면회는 내 상고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자기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고, 자기는 나의 상고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 침대에 앉고 나서,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권했다. 나는 거절해 버렸다. 하지만 그는 무척 다정하게 보였다.
잠시 동안, 그는 앉은 채로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고 머리를 숙여 그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손은 매우 말라서 힘줄이 퍼렇게 드러나 보였는데, 나는 문득 두 마리의 민첩한 짐승을 연상했다. 신부가 두 손을 천천히 비볐다. 그러면서 여전히 머리를 숙인 채로 앉아 있었다. 그가 하도 오랫동안 그렇게 하고 있어서, 그가 나를 잠시 잊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갑자기 그가 머리를 쳐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왜 저의 면회를 거절하셨지요?”하고 그가 물었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가 그것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어했고, 나는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듯싶어서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몸을 뒤로 젖혀 손바닥을 자신의 넓적다리 위에 넓게 펼쳐 놓았다. 벽에 등을 기댔고, 그는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사람이란 때로 자기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법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죠?”나는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어쨌든, 나는 진실로 나의 관심을 끄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내 관심 밖의 일에 대해서는 명백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문제는 바로 내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는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여전히 그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너무 절망해서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나는 단지 두려울 뿐이고,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와 주실 겁니다.”하고 그가 말했다. “당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로서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 갔습니다.”그것은 그들의 권리라고, 내가 말했다. 또한 그것은 그들이 그럴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갖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누구의 도움 따위는 받고 싶지도 않았고, 또 내게는 관심이 가지 않는 것에 굳이 관심을 기울일 시간적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그의 손이 화가 난 듯한 시늉을 해 보였으나, 그는 곧 몸을 들고 신부복의 주름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는 나를 ‘친구’라고 부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자기가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사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은 아니다. 그의 의견에 의하면, 우리들은 모두 죽음을 선고 받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고, 그것은 나와는 사정이 다른 이야기일 뿐이며, 무엇보다도 내게는 그런 것이 위안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야 물론 그렇지요,”하고 그가 내 말을 수긍했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당장 죽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결국 죽게 될 겁니다. 당신은 그 무서운 시련을 어떻게 받으시렵니까?”나는,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것과 꼭같이 그 시련을 받겠노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벌떡 일어나서 내 눈을 쏘아보았다. 그것은 내가 잘 알고 있는 놀이었다. 예전에 나는 흔히 엠마뉘엘이나 셀레스트와 그 놀이를 했었는데, 대개의 경우 먼저 눈을 돌리는 것은 그들이었다. 신부도 지금 그 눈싸움이란 것을 하고 있었고, 나는 이내 그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눈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면 당신은 아무 희망도 없이 죽으면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도,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습니다.”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금 내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그는 내가 불쌍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견뎌 낼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 그 신부가 귀찮게 생각되었다. 나는 돌아서서 천정으로 뚫린 창 밑으로 갔다. 나는 어깨를 벽에 기대고 섰다. 그는 불안한 음성으로 간곡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감동되었음을 느끼고, 나는 귀를 바짝 기울였다.
그는 나의 상고는 받아들여지겠지만, 그래도 무엇보다도 나는 죄의 짐을 지고 있으므로 그것부터 벗어 버려야 한다고 자신의 신념을 말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심판은 아무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나는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바로 인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해서 내 죄가 씻어진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는 도무지 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단지 내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범인으로서 형벌을 받는 것이니까 나에게 그 이상 더 요구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자 신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워낙 좁을 감방이라 아무리 그가 움직이려고 해도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앉든지 일어서든지, 가능한 건 그뿐이었다.
나는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한 걸음 내 앞으로 다가서더니 더 이상 가까이 올 용기는 없었던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창살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하고 그가 말문을 열었다. “당신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끝내 요구하게 될 겁니다.” “아니, 무엇을 요구한단 말이죠?" "보는 것입니다." "보다니, 무얼 본단 말이오?"
신부는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갑자기 지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에 있는 모든 돌에는 괴로움이 배어 있습니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죠. 나는 이것들을 바라볼 때마다 고통을 느껴요. 그렇지만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당신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비참한 사람일지라도 이 돌의 어둠에서 벗어나 성스러운 얼굴을 갖게 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당신에게서도 바로 그런 것을 보고 싶습니다."
나는 좀 흥분했다. 나는 이미 여러 달 전부터 그 벽을 보아 왔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그것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래 전부터 나는 거기에서 어떤 얼굴을 찾아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얼굴은 태양의 빛깔과 정욕의 불길을 갖고 있을 뿐인데 그것은 바로 마리의 얼굴이다. 나는 그것을 찾으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도 모두 끝났다. 그리고 어쨌든 나는 그 땀이 배인 돌로부터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신부는 슬픈 빛을 따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벽에 등을 대고 완전히 기대어 있었고 햇빛이 내 이마 위로 흐르고 있었다. 신부가 뭐라고 몇 마디 지껄였으나 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나를 껴안아도 괜찮으냐고 매우 빠르게 물었다. "싫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는 돌아서서 벽 쪽으로 걸어가더니 천천히 손을 벽에 갖다 대고는, "그래, 당신은 그렇게도 이 땅을 사랑하십니까?"하고 조그맣게 물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돌아서 있었다. 나는 감방 안에 그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내가 혼자 있고 싶으니 제발 돌아가 달라고 막 말을 하려던 참에 그가 갑자기 내게로 돌아서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정말로 나는 당신을 믿을 수가 없군요. 당신도 역시 제 이의 삶을 바랐던 적이 있었을 거요 반드시." 나는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건 부자가 된다거나 보다 빨리 헤엄칠 수 있게 된다거나 더 멋진 입 모양을 갖게 되길 바라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결국 마찬가지다. 그러자 그는 나의 말을 가로막고 그런게 아니라 내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 이 생애를 회상할 수 있는 생애겠지요."라고 소리질러 대꾸하고 나서 그런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또다시 하나님 얘기를 꺼내려 했으므로 나는 그에게 다가서서 내게는 남아 있는 시간이 아주 조금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말해 주려 했다. 그러자 그는 화제를 바꾸어 왜 자기를 '신부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머시외'(선생이라는뜻-역주)라고 부르는가를 물었다. 나는 화가 나서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일 뿐이라고 소리를 내질렀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그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려 놓으며 말했다.
"오 내 아들이여 나는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어둡기 때문에 그걸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내 마음 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목청을 높여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기도 따위는 그만두라고 소리를 지르고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불에 태워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나는 신부복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용솟음과 함께 나는 마음 속의 것을 모두 그에게 쏟아 부었다. 너는 너무 자신 만만하다. 하지만 그게 다 뭐란 말이냐? 네가 자랑하는 신념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계집의 머리카락만한 가치조차 없기 십상이다. 너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그렇다면 살아 있다는 확신조차 없는게 아니냐? 네 눈에는 내가 빈털터리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뚜렷한 확신이 있단 말이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 다른 모든 것에 대한 확신 이런 건 너 보다도 훨씬 강하다. 그리고 또 내 인생과 닥쳐 올 죽음에 대해서도 명확한 의식이 있다. 그래 내게 있는 모든 것이라고는 이것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들이 나를 놓지 않는 것처럼 나도 이 진리를 굳게 붙잡고 있다, 지금까지의 내 생각은 모두 옳았으며 그건 지금도 그렇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지만 또 다르게 살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은 했지만 또 어떤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어떻다는 말이냐? 나는 그 순간 나의 정당함이 인정될 그 새벽을 기다리며 지금까지 살아온 셈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물론 너도 알고 있을 거다. 내가 이 부조리한 삶을 살아 오는 동안 내내 나의 미래의 심연으로부터 한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 다가오지 않은 세월을 뚫고 내 쪽으로 거슬러 올라왔고 그 바람은 지나가는 도중에 내가 살고 있던 것보다 더 현실적이지 못한 세월 속에서 내게 제시된 모든 것을 아무 차이도 없게 만들었단 말이다. 타인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따위가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 잘난 너의 하나님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 그따위들이 뭐가 그리 대단하단 말이냐? 단지 하나의 운명이 나를 사로잡고 나와 더불어 너처럼 '나의 형제'라고 하는 특권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거 아니냐? 누구나 특권을 갖고 있다. 이 세상엔 모두 특권을 가진 사람들 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결국 죽음을 선고받을 것이다. 당신도 역시 마찬가지다. 살인범으로 기소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는다고 한들 그게 무 그리 중요하단 말이냐? 살라마노 영감의 개도 그 마누라만큼이나 가치가 있는 거다. 그 작은 꼭두각시 여자도 마송과 결혼했던 파리 여자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던 마리와 마찬가지로 모두 죄인이다. 셀레스트의 성품은 레이몽보다 훌륭하지만 셀레스트와 마찬가지로 레이몽이 내 친구라고 해서 다를 게 뭐 있는가? 마리가 오늘 또 다른 뫼르소에게 입술을 내어준다고해서 뭐가 어떻단 말이냐? 사형 선고를 받은 놈아 너는 도대체 알고있기나 한 거냐? 미래의 심연으로부터....... 이렇게 외치면서 나는 숨이 막혀 버렸다. 어느 새 신부는 내 손에서 떼어져 있었고 간수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부가 그 들을 진정시키고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마침내 그가 돌아서서 나가 버렸다.
그가 나가 버리자 내 마음도 차츰 가라앉았다. 나는 기운이 빠져 침대 위에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는 얼핏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뜨자 별이 보였으니 말이다. 교외의 소리들이 내 귀까지 들려 왔다. 밤의 향기, 흙 냄새, 소금 냄새가 머리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여름밤의 신비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그때 밤의 끝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생각했다. 왜 만년에 어머니는 '약혼자'를 정했는지, 왜 새로운 삶을 꾸며 보려고 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 생명들이 꺼져 가는 양로원 근처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처럼 느껴졌었다. 그런 죽음 근처에서, 어머니는 오히려 생의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새롭게 살아 보고 싶었던 것일 게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내 괴로움을 씻어 주고 희망을 없애 준 것처럼, 표적과 별들이 드리운 밤을 지켜보며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이 세상의 다정스런 무관심에 내 마음을 열었다. 이 세상이 그처럼 나와 동일하며 형제 같다는 생각에 나는 행복했으며, 또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마지막 소원은 내가 사형을 당하는 날 보다 많은 구경꾼들이 나를 증오의 함성으로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출처 : 알베르 카뮈 / 김병일 옮김)
요점 정리
지은이 : 알베르 카뮈 / 김병일 옮김
형식 : 소설
성격 : 실존적,
사상 : 실존주의
주제 : 인간은 이 세계가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하고, 자기 운명의 불합리함에 대해 끊임없이 반항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내야만 함을 보여줌
인물 : 뫼르소는 언제나 현재의 욕망에 강하게 지배되어 이해타산도 없이 행동에 몰입하는 인간이며, 그런 의미에서는 순진하고 자신에게 정직한 인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를 부조리(不條理)한 인간의 전형(典型), 즉 인간 존재의 무상성(無償性)을 자각한 인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러한 의식이 그에게 있는지 없는지는 의문이며, 오히려 알제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무책임한 청년들과 공통된 점이 많다. 그러나 뫼르소를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비극적 인간상(人間像)'(反小說作家 로브그리예의 말)으로까지 승화시킨 것은 카뮈의 작가적 역량이다. 카뮈 자신이 영어판(英語版) 서문에서 뫼르소는 현대에 있어 유일한 그리스도일 수 있다고 한 것은 흥미 있는 말이다.
줄거리 : 1942년 발표. 카뮈의 처녀작으로, 그의 명성을 일약 세계적으로 떨치게 한 작품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북아프리카의 알제에 사는 평범한 하급 샐러리맨인데, 양로원에서 죽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이튿날, 해수욕장에 가서 여자 친구인 마리와 노닥거리다가, 희극 영화를 보면서 배꼽을 쥐는가 하면, 밤에는 마리와 정사(情事)를 가진다. 며칠 지난 일요일에 우연히 불량배의 싸움에 휘말려, 동료 레이몽을 다치게 한 아라비아인을 별다른 이유도 없이 권총으로 사살한다. 재판에 회부된 그는 바닷가의 여름 태양이 너무 눈부시기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주장하고 속죄의 기도도 거부하며, 자기는 과거에나 현재에도 행복하다고 공언한다. 처형되는 날은 많은 군중이 밀려들 것을 기대하며 이 수기(手記)는 끝난다.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귀머거리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초등학교 시절 L.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으며,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서 평생의 스승이 된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이 보이고 있다.
1942년 7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방인'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하여 완전히 무관심한 태도로 살다가, 살인죄를 범하고 사형을 선고 받은 사나이가 세상에서 버림받고 죽음에 직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의미와 행복을 깨닫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은 부조리성과 반항의 의욕을 철학적으로 설명한 것이 '시지프의 신화(神話)'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정의와 진리 및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독자적인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그 악성과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1956년 <전락>을 발표하여 샤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 동안 알제리 독립전쟁에 대해서도, 알제리에 거주하는 친척과 친지들을 생각하여 정치적 발언을 일체 삼가는 태도를 고수하였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최초의 본격 장편소설 <최초의 인간> 집필 작업에 들어갔으나 1960년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쳤다.
이해와 감상2
1942년 발표된 알베르 카뮈의 처녀작이자 출세작.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평범한 샐러리맨인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죽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 여자 친구인 마리와 해수욕을 하고 희극영화를 본다. 그리고 밤에는 마리와 정사(情事)를 가진다.
며칠 뒤 일요일에는 해변에서 우연히 친구 레이몽과 다투고 있는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다.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된 그는 왜 죽였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햇빛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재판관, 검사, 변호사는 물론, 일상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태도를 나타내고 사형이 선고된다.
그는 재판과 세상의 부조리를 느끼며, 속죄의 기도를 거부하고 고독한 이방인으로 사형집행일을 기다린다. 감방의 창을 통해 보이는 별과 하늘과 자연이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그가 인생에 대해 무관심한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처형되는 날은 많은 군중이 밀려들 것을 기대하며 이 소설은 끝난다.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뫼르소의 행동을 그려, 근원적인 인생의 부조리를 나타낸 작품이다. 앙드레 말로에 의해 발간되었다. (출처 : 한메디지털백과사전)
이해와 감상3
소설 '이방인'은 뫼르소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이 세계가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부조리에 눈을 뜬 뫼르소는 허망을 경험하게 되어 허무주의자가 되고, 삶에 대한 의욕을 포기했다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 생의 거부가 아닌 수용의 철학을 비추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이 부조리의 세계를 거부했다면 우리는 희망의 부재만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조리한 이 사회를 받아들인 '뫼르소'에 의해 삶이란 결국 허무의 연속이 아니라 존재할만한 가치 있는 사회로 인식되는 것이다.
심화 자료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 11. 7 알제리 몽도비~1960. 1. 4 프랑스 상스 근처. 프랑스의 소설가·수필가·극작가. 〈이방인 L'Etranger〉(1942)·〈페스트 La Peste〉(1947)·〈전락 La Chute〉(1956) 등의 소설과 좌파적 현실 참여 활동으로 유명하다. 195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초기 생애
알자스 태생의 궁핍한 노동자인 아버지와 스페인계 후손인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카뮈가 태어나서 돌도 되기 전에,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벌어진 마른 전투(1914. 9)에서 전사했다. 과부가 된 어머니는 두 아들(카뮈와 형 뤼시앵)을 데리고 알제리의 노동 계급이 모여사는 빈민굴로 이사하여 외할머니와 불구자인 외삼촌과 함께 방이 2개뿐인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정부로 일했다. 카뮈가 처음으로 발표한 수필집 〈표리 L'Envers et l'endroit〉(1937)는 어린시절의 어둡고 가난한 생활과 어머니와 외할머니 및 외삼촌을 묘사하고 있다. 2번째 수필집 〈결혼 Noces〉(1938)에는 알제리의 시골에 대한 서정적인 명상이 담겨 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도 누릴 수 있는 부(富)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2권의 수필집은 모두가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약함과 물질 세계의 영속성을 대비하고 있다.
1918년에 카뮈는 공립국민학교에 들어가, 뛰어난 교사 루이 제르맹의 가르침을 받는 행운을 얻게 된다. 카뮈가 1923년에 알제 리세(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제르맹이었다. 34년 뒤에 카뮈는 노벨 문학상 수상연설을 제르맹에게 바쳤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스승에 대한 카뮈의 존경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이어서 카뮈의 지성이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카뮈는 스포츠, 특히 축구와 수영 및 권투에도 열중하게 되었다. 그러나 1930년에 결핵 증세가 나타나는 바람에 카뮈는 운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공부도 중단했다. 그후 결핵은 여러 차례 재발하여 카뮈를 괴롭혔다. 아파트 생활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여 카뮈는 15년 동안 살았던 그곳을 떠나야 했다. 카뮈는 잠시 푸줏간 주인이며 열렬한 볼테르주의자인 친가 쪽 아저씨 집에 얹혀 살다가 자립하여 살기로 결심하고, 알제대학 철학과에 등록하는 한편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알제대학 재학중에 카뮈는 평생 동안 스승으로 여기게 된 철학 교수 장 그르니에를 만나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르니에는 카뮈가 문학과 철학 사상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축구에 대한 열정을 나누었다. 카뮈는 플로티노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에 나타나 있는 헬레니즘과 그리스도교 사상의 관계를 다룬 논문으로 1936년에 고등교육수료증을 받았다. 그는 교수자격심사(이 심사를 통과했다면 그는 대학교수로서의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름)에 응하려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프랑스 알프스 지방에 있는 휴양지로 떠났고(첫 번째 유럽 방문), 이탈리아 피렌체와 피사 및 제노바를 거쳐 결국 알제리로 돌아왔다.
문학 활동
1930년대에 카뮈는 관심의 범위를 넓혔다. 그는 당시의 작가들, 특히 앙드레 지드, 몽테를랑, 앙드레 말로 등의 작품을 비롯하여 프랑스 고전문학을 두루 섭렵했으며, 서서히 알제리의 젊은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다. 1934~35년에 그는 잠깐 알제리 공산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그는 노동 계급의 관객들에게 훌륭한 연극을 보여줄 목적으로 '노동 극단'(Theatre du Travail:나중에는 작업반 극단[Theatre de l' Equipe]으로 이름을 바꿈)을 조직하여 손수 각본을 쓰고, 연출과 각색 및 연기까지 맡았다. 연극에 대한 그의 애정은 일생 동안 계속되었다. 그의 문학작품 가운데 희곡은 다른 작품만큼 높은 평가를 얻지 못했지만 〈오해 Le Malentendu〉(1944 초연)와 〈칼리귈라 Caligula〉(1945 초연)는 부조리 연극의 이정표로 남아 있다. 그밖에 포크너의 〈한 수녀를 위한 진혼곡 Requiem for a Nun〉(1956)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Besy〉(1959)을 희곡으로 각색한 것도 연극 부문에서 기념비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2년 동안, 카뮈는 진보적 신문 〈알제 레퓌블리캥 Alger-Republicain〉에 참여하여 언론인 수업을 쌓았다. 그는 수석(논설) 위원, 편집부원, 정치부 기자 및 서평 담당자 등 다양한 일을 도맡아 해냈다. 그는 사르트르의 초기 작품 가운데 몇 편의 서평을 썼고, 카빌리아 지역의 이슬람교도들이 처해 있는 사회적 상황을 분석한 일련의 중요한 논설을 썼다. 〈시론집 3 Actuelles Ⅲ〉(1958)에 요약된 형태로 전재된 이 논설들은 1954년의 알제리 전쟁으로 이어진 수많은 불공평에 대해 15년이나 앞서서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카뮈는 정치 이데올로기적 입장보다 인도주의적 입장에 서 있었고, 프랑스 정부의 불공평한 식민정책을 비난하면서도 앞으로 알제리에서 프랑스가 맡게 될 역할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해 있던 마지막 몇 년과 해방 직후에 언론인으로서 가장 큰 영향력을 누렸다.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나중에는 파리에서 일간지로 발간된 〈콩바 Combat〉의 편집장으로서, 카뮈는 정의와 진리 및 모든 정치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독자적인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후 카뮈는 좌파와 우파의 구태의연한 편의주의에 차츰 환멸을 느끼고, 1947년에 〈콩바〉와 관계를 끊었다. 이무렵 카뮈는 이미 프랑스 문단을 이끄는 주요인물이 되어 있었다. 카뮈가 전쟁 전에 쓰기 시작하여 1942년에 발표한 첫번째 단편소설 〈이방인〉은 아랍인을 쏘아 죽였다는 범행 사실보다 오히려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려 들지 않고 사회의 요구에 따르기를 거부한다는 사실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은 한 '아웃사이더'의 초상을 통하여 20세기의 인간 소외를 탐구한 뛰어난 작품이다. 같은 해에 영향력 있는 철학 평론인 〈시지프의 신화 Le Mythe de Sisyphe〉도 발표했는데, 여기서 카뮈는 당시의 허무주의와 '부조리' 의식을 상당한 공감을 가지고 분석했다. 그는 이미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으며, 그의 첫번째 장편소설 〈페스트〉(1947)는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전염병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투쟁을 매우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전염병을 퇴치하는 데 불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우애를 역설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카뮈는 이제 초기의 주요개념인 부조리에서 또다른 주요개념인 도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반항'으로 옮아갔다. 그는 2번째로 발표한 장편 평론 〈반항적 인간 L'Homme revolte〉(1951)에서 이 반항이라는 개념과 정치적·역사적 혁명을 대비했다. 이 평론은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들은 물론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친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에게 격렬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그밖에 카뮈의 중요한 문학작품으로는 기법이 뛰어난 장편소설 〈전락〉(1956)과 단편집 〈유배와 왕국 L'Exil et le royaume〉(1957) 등이 있다. 〈전락〉은 그리스도교적 상징주의에 대한 열중을 보여주며, 세속의 인도주의적 도덕성이 가질 수 있는 좀더 기분 좋은 형태들을 풍자적으로 재치있게 드러내준다. 1957년에 카뮈는 44세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겸손한 카뮈는 자신이 심사위원이었다면 분명 앙드레 말로에게 표를 던졌을 거라고 선언했다. 그후 3년이 채 안 되어서 교통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평가
알베르 카뮈는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모랄리스트이자 정치이론가로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 나아가서는 전세계에서 그의 세대의 대변가이자 다음 세대의 스승으로 추앙되었다. 그의 글들은 주로 낯선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개인의 소외, 악의 문제, 그리고 죽음이라는 임박한 파국을 이야기함으로써 전후 지식인들의 소외 의식과 환멸을 정확하게 반영했다. 카뮈는 많은 동시대인의 허무주의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진실과 중용 및 정의 같은 가치에 대해서도 옹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후기 작품에서 그는 그리스도교 사상과 마르크스주의의 독단적 측면을 모두 거부하는 자유주의적·인도주의의 모습을 제시했다. (출처 : J. Cruickshank 글,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이방인'과 '페스트'에 대하여
카뮈의 생애와 작품 세계
조화(調和)와 균형(均衡)의 작가
전후 프랑스 문학에 있어 최대의 존재는 사르트르지만 어떤 의미에서 현대인에게 사르트르보다도 카뮈가 더욱 호소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그의 성실성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카뮈에게 '신(神)없는 성인(聖人)' 또는 '현대의 증인'이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부여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타계하기까지 업적을 다시 한 번 살핀다는 것은 곧 우리들 자신의 고민과 희망과 위대성을 재확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카뮈는 1913년 11월 7일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콩스탕틴 현 몽드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사꾼이었던 아버지 뤼시앵 카뮈는 아들이 태어난 다음 해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였다가 마른 전투에서 전사했다. 어머니 카트린 생투아는 스페인 출신으로 프랑스어를 전혀 몰랐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 두 아들 뤼시앵과 알베르를 기르기 위해서 갖은 고생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두 아들을 데리고 알제리 시의 서민들이 사는 동네 벨쿠르에 있는 친정 어머니의 아파트로 가서 배우 출신의 오만한 늙은 친정 어머니와 포도주 통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거의 벙어리와 다름없는 남동생과 함께 방 두 개에 다섯 식구가 사는 가난한 생활을 해 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불만을 품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고 빈곤을 견뎌 나갔다. 후에 카뮈가 "내가 자유를 마르크스 속에서 배우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나는 가난 속에서 자유를 배웠다"고 술회했듯이 가난한 생활이었지만 카뮈는 고향에 대해서 일평생 변함없는 사랑을 바쳤다.
카뮈는 1918년에서 1923년까지 초등학교 과정에서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어 담임교사 루이 제르맹의 총애를 받았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담임 교사가 그에게 특별히 개인지도를 해 주기까지 하였다.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이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 카뮈는 이 책을 옛 스승에게 바쳐 깊은 감사를 표명했다.
1923년에서 1930년까지 알지에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성적이 우수하여 장학생으로 공부했으며 축구팀에서 골기퍼로 활약하면서 운동에 열중했다. 그러나 17세 되던 해에 폐결핵의 첫발작이 일어나서 좋아하던 운동을 단념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1930년에서 1936년까지의 대학생활에도 적지 않은 지장을 받았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철학자이며 교수인 장 그르니에를 알게 되어 그의 영향을 받고 철학과 문학에 뜻을 둔 사실이다. 이 스승과 제자간의 우정은 평생을 두고 꾸준히 계속되었다.
한편 20세에 결혼했으나 1년만에 이혼하고 공산당의 회교도 해방운동에 공면하여 알지에 지구 공산당에 입당한다. 거기서 그는 공산당의 회교도에 대한 선전을 맡게 되지만 곧 당의 정책 변경에 싫증을 느껴 탈당, 공산당과의 관계를 끊어 버린다.
알지에 대학교의 학생시절에 그는 장학금을 받았으나 집으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수 없었던 그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대학의 기상반에 들어 남부 지방의 기압 상태 조사에 참가하기도 하고, 자동차의 부품 판매원 노릇도 하고,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해운업자에게 고용되기도 하고, 현청의 사무원 노릇을 하기도 하면서 순수한 대학생활에서는 해볼 수 없는 귀중한 체험을 했다. 이렇게 힘들고 바쁜 생활 가운데에서도 지드, 말로, 몽테블랑 등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했고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로 여행을 했고, 알지에 문화관을 주관하기도 했으며, 특히 연극 활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아마추어 극단을 꾸며서 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하고 연출도 했으며 말로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각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 수필집 《표리(表裏)》를 쓰기 시작하면서 정치극 《아스튀리의 반란》을 공동집필했다.
1936년 플로티노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을 통해 본 헬레니즘과 그리스도교와의 관계를 쓴 졸업논문 <그리스도교와 신 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이 통과되었다. 이 시기의 카뮈는 앙드레 말로에 관한 평론을 쓰려고 시도해 보기도 했다. 당시의 대학교수 자격시험 응시는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17세 때 앓던 폐결핵 재발에 시달려 철학교수 자격시험을 단념했다. 졸업 후에는 파스칼 피아의 추천으로 극좌파의 기관지인 일간지 「알지에 레퓌블리캥」 신문사에 입사하여 잡보기사에서 논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의 기사를 쓰면서 여론의 옹호자로서의 태도를 견지해 나갔다.
1938년에는 인생과 자연의 결합을 주제로 한 서정적 에세이 《결혼》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알제리 풍경의 강한 인상을 정열적으로 그리고, 반짝이는 대낮의 태양을 쬐며 미지근한 바닷물에 잠겨 자연과 한 덩어리가 되는 인간의 희열(喜悅)을 그렸다. 이 싱싱한 청춘의 노래는 그보다 한 해 전인 1937년에 나온 최초의 수필집 《표리》와 죽은 후에 출판된 수첩 1 <태양의 찬가>와 함께 그의 지중해적인 사상과 감정의 형성을 보이는 중요한 문헌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카뮈는 군대에 들어가기 위해 지원했으나 건강 상태가 나빠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40년에는 오랑 출신의 처녀 프랑신 포르와 재혼한다. 그들 사이에는 나중에야 아들 딸 쌍둥이가 태어났다. 그 해 「알지에 레퓌블리캥」에 카뮈가 집필한 북아프리카 문제에 관한 기사가 당국의 비위를 건드려서 카뮈는 알지에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한 번 파스칼 피아가 추천하여 「파리 수아르」신문사의 기자로 입사하여 1941년 6월까지 근무했다. 그는 이 때 《이방인》을 탈고하여 에세이 《시지프스의 신화》를 쓰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독일군의 파리 입성이 있었다. 에세이 《시지프스의 신화》가 탈고되었으며 1942년 갈리마르 출판사를 통해 《이방인》을 출간하는 한편, 말로, 지드, 사르트르 등과도 사귀었다. 당시에 그는 「콩바」지에 관여하며 독일군 점령하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이 때 비밀리에 출간된 《이방인》은 2차 세계대전 전후에 발표된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보다도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방인》은 현대사회의 메커니즘 속에 처져 있는 모순과 현대인의 생활감정 가운데에 잠긴 부조리(不條理)의 의식을 명확하게 표현한 작품이며. 고독감과 인생의 모순을 고백적 감상 형식으로 해설한 《시지프스의 신화》와 함께 큰 감동을 불러일으켜 광범위한 독자를 확보하여 일약 카뮈의 이름을 국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카뮈는 빈곤과 병고를 철저히 체험한 소년 시절부터 끊임없이 죽음의 관념에 위협당하며 생과 사, 자신의 세계와의 모순, 대립에 괴로워했다. 자연 속에 묻혀 있을 때에도 도취와 불안을 깨닫고, 사회에 있어서는 절망을 느끼면서도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숙명적인 부조리의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자기의 사색과정으로부터 인간은 생과 사의 모순사이에서 살도록 운명지어졌다고 생각하여 죽음이 있음으로써 삶에 가치가 있고 삶은 사랑스러운 것이라고 논했다. 삶에의 절망이 없이는 삶에의 희망도 없다. '부조리의 철학'은 이러한 인식에 바탕하여, 인간은 싸우고 반항하면서 살아야 함을 가르치는 사상이다. 커다란 바위를 이를 향해 끝없이 밀어올리는 시지프스, 모든 것을 거부하고 사형대에 오르는 《이방인》의 뫼르소는 카뮈가 창조한 이 부조리의 인간 전형, 바로 그것이다. 그 후 카뮈의 부조리의 사색은 전쟁, 점령, 수용소, 저항 운동 등 극한상황 속에서 보고 들은 것과 체험에 의해서 더욱 다듬어진다. 그 이후 그는 폭력과 부정을 제거하고, 인간을 비참한 경지에 빠뜨리며, 인간성을 빼앗고, 인간의 존엄을 더럽히는 등의 사태에 의연히 맞서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가 「콩바」지의 파리 주재 기자로 있으면서 갈리마르 출판사의 교정위원으로 입사하고 「콩바」지의 지하 발행을 꾀하는 한편 《독일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비밀 간행한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그 동안에도 작품은 쉬지 않고 발표했다. 1944년에 발표된 희곡 《오해》는 고향의 암담한 잿빛 생활을 피하여 남쪽의 밝은 빛을 미치도록 동경하는 여인 마르타의 범죄를 그린 것으로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1945년에 제라드 필라프가 주연을 맡아서 공연한 《칼리귤라》가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희곡작가로서의 재능도 인정받게 되었다. 《칼리귤라》는 숙명에 반항하여, 사회의 관례와 도덕에 역행하여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다 자멸하는 폭군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1947년에 이르러서는 장편 《페스트》가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은 《이방인》 이상으로 카뮈의 명성을 높였다. 이 작품이 간행된 며칠 후에 '비평가 상'이 수여되었을 때 이 때문에 이 상도 유명해질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했을 정도로 《페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 작품에 이르러서는 사회악에 도전하는 그의 적극적인 태도가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부조리의 체험과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을 절멸시키는 악과의 투쟁을 우의(寓意)적으로 다루었다. 카뮈는 전쟁 반대, 사형 반대의 입장에 섰으며, 특히 전쟁에 의한 인간의 대량학살이나 사상범의 극형에 반대했다. 이 소설에서는 이제까지와 같은 인간의 부조리에 대한 개인적인 저항이 아니라 집단적인 반항이 그려져 있다. 페스트 균에 의해 한 도시가 봉쇄되어 유언비어가 나돌고 암시장이 번창하는 상태는 바로 전시의 파리이고, 선의의 사람들이 괴질과 싸우다 쓰러져가는 광경은 전시의 저항운동이나 혁명기의 내란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이 소설의 우의(寓意)는 장소나 시간을 초월하여 각국의 유사한 사건에 적용되고, 여기에 그려진 동지적 연대감과 희생적 정신에 의한 행동은 숱한 독자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카뮈는 이 작품의 성공으로 전후세대의 정신적 지주로서 부각되었다.
계속해서 발표한 《계엄령》은 같은 주제를 극화한 희곡이며, 평론 《반항적 인간》은 근대의 니힐리즘의 비판이며, 그것에 대한 반항을 논한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반항은 결코 혁명적인 행동이 아니라 차라리 점진적인 개혁을 지향하여, 극좌(極左)와 극우(極右)의 절대주의에 굴하지 않고 항시 폭력을 부정하며 중용을 터득한 수단을 사용하는 끈질긴 저항이다. 무신론자인 그는, 신을 절대시함으로써 인간다운 자유와 희망이 사라지게 되는 것을 싫어하지만 마찬가지로 역사를 절대시하는 마르크스주의, 스스로를 절대시하는 사상적, 예술적 니힐리즘에도 반대한다. 혁명가는 결국 권력을 동경하여 압제자가 되지만, 반항적 인간은 정의를 바라고 인간성을 존중하며 미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그 근본적인 사고방식이다. 즉 그에 있어서는 내일의 정의를 위해서 오늘의 부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희곡 《정의의 사람들》 가운데의 테러리스트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혁명가들과는 달리 폭군을 암살하는 경우에도 죄없는 사람이 말려들 위험이 있으면 그 행동을 단념한다. 여기서 그와 같은 반항적 태도는 자기기만이며 소극적인 것이라는 장송의 비난을 계기로 사르트르와의 사이에 사상적, 정치적인 논쟁이 벌어져 10년 가까이 계속된 두 사람의 우정은 깨어지고 말았다.
격렬한 논쟁을 치르고 나서 카뮈는 몇 편의 번안극을 발표했을 뿐 문학, 정치면에서 몇 해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인간의 비참에 대항하는 운동에는 적극 참여하여 1954년에는 7명의 튀니지아 인 사형수 구호운동에 서명하고, 1953년의 동베를린 폭동, 1956년 10월의 부다페스트 봉기 때에도 공식적인 태도를 표명했다. 그러나 카뮈에게 있어서 가장 괴로운 시련은 그 후에 일어난 알제리 전쟁이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개인적인 불행이다'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그의 고통은 가히 짐작이 간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알제리 전쟁 때는 가능한 한 정치적 발언을 삼갔다. 모두가 그의 '반항적 인간'으로서의 사고방식의 소산이다. 알제리 문제에 대한 1939년에서 1958년까지의 카뮈의 태도는 《시사론집》 제3권에 수록되어 있다.
4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1956년에는 '반항적 인간'의 논리를 거꾸로 써서 그린 풍자소설 《전락》을 발표했다. 이어서 1957년에는 단편집 《추방과 왕국》을 발표했다. 이 밖에도 카뮈는 많은 소설, 희곡, 수필집을 발표하고 사르트르와 더불어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1957년 10월 17일 카뮈의 전작품에 대하여 노벨 문학상 수상이 결정되었다. 이 때 카뮈의 나이는 44세였고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 중 최연소자였다. 같은 해 12월 10일 수상식 석상에서 행한 연설에서 카뮈는 '나로서는 내 예술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와는 반대로 그것이 나를 어느 누구와도 갈라 놓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수준에서 내가 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태도를 밝혔다.
카뮈는 새로운 장편소설 《최초의 인간》의 구상을 마치고 집필을 시작했을 때, 프로방스 지방의 루르마랭에 있는 소유지에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1960년 1월 4일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친구 미셀 갈리마르가 운전하던 차가 파리 동남방 몽트로의 빌르블레뱅 근처 르 그랑 프로사르에서 플라타너스를 들이받았다. 이 때 카뮈의 웃옷주머니에는 파리 행 비행기표가 들어 있었다.
《이방인 L'Etranger》
평범한 월급쟁이 뫼르소는 어머니가 죽은 다음 날 여자 친구와 해수욕을 하며, 희곡 영화를 본 뒤 하룻밤을 같이 지낸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친구와 말다툼을 하고 있던 아라비아 사람을 권총으로 사살한다.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지만 왜 죽였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태양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재판관에게도, 검사에게도, 변호사에게도, 나아가서는 모든 일상사에 대해서까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판결은 사형이었다. 그는 재판도, 세상도 얼마나 부조리하고 우스꽝스런 것인가를 느끼고 교화신부(敎化神父)도 거부한 채 고독한 이방인으로서 사형날을 기다린다. 사형집행의 전날 밤 '과거에도 행복했지만 지금도 역시 행복하다'고 말하며 '증오심을 발하여 자기의 사형 집행을 보기 위하여' 단두대 둘레에 많은 군중이 모여 줄 것을 원한다. 그리고 독방의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별빛 찬란한 하늘, 자연,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고, 그것이 그의 인생에 대한 무관심과 일치한다고 생각되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방인》은 그리 긴 소설은 아니지만 상당한 기간을 두고 구상되고 집필된 것으로 여겨진다. 카뮈의 '비망록'을 보면 1935년 5월부터 벌써 '여러 해를 비참하게 살고 난 다음에 아들이 어머니에게 보이는 야릇한 감정'이라는 것을 적어 놓았고, 1936년 1월에는 간결하게 적혀 있는 여섯 개의 이야기 속에 사형수의 이야기가 나오며 또 한두 부분이 대칭을 이루는 형태를 갖추도록 소설이 구상된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1939년에 완성되었으나 포기하고, 1971년에야 사후 발표된 습작 《행복한 죽음》의 주인공은 뫼르소라는 이름이었는데 그것은 카뮈가 항상 매혹된 우주의 두 가지 위대한 힘, 바다(mer)와 태양(solei)을 합성하여 만든 것으로 생각되며, 그 후신이 바로 《이방인》의 뫼르소인 것이다. 1936년 3월에는 벌써 '비망록'에 중요한 주제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8월의 기록에는 《이방인》이라는 제목까지 찾아낸 흔적이 있다.
1938년 5월에는 마랑고의 양로원에 은퇴한 노파의 죽음과 장례에 관한 이야기가 있고, 1940년에는 살라마노와 그의 개 이야기가 나오며, 5월에는 '이방인은 끝났다'는 말이 적혀 있다. 카뮈 자신은 《이방인》에 대해서 '이 책의 의미는 두 부분의 대응 속에 들어 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똑같은 살인 이야기를 제1부에서는 그것을 저지른 사람이 이야기하고 제2부에서는 사회가 판단하는 것으로 전개해 나가려고 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여러 가지 사회적 상황이 자신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사회는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자식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감정을 나타내 보이고 장례식이 끝난 다음에는 어느 정도의 근신 기간을 두었다가 여자 친구와 관계를 맺어야 하며 직장에서는 승진하고 싶어한다는 시늉을 해 보이고 여자 친구에게는 빈 말로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뫼르소는 시종 무감각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아랍인과 시비를 벌이고 있으며 별로 떳떳하지 못한 직업에 종사하는 아파트의 이웃 사람이 졸라대는 바람에 그와 친구가 되고 그 친구와 반목하고 있는 아랍인과 마주쳐 대치하다가 대낮의 사정없이 내리쬐이는 태양 때문에 눈이 아물거려서 아랍인을 사살하게 된다. 이 우발사고는 일련의 비합리적 상황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재판에서는 살인이 계획적인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서 유죄 또는 무죄의 판결이 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검사가 밝혀 낸,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 때 보인 감정적 반응과 장례식 직후의 뫼르소의 행동은 사회가 위험시하고 충분히 적대시할 만하다. 따라서 배심원들은 그에게 사형판결을 내린다. 뫼르소 자신은 전에 자기가 저지른 행동과 검사가 법정에서 재구성한 자신의 범죄 사이에 아무런 관련도 찾아낼 수 없어서 마치 방관자 같은 심정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을 본다. 일단 사형선고가 내리자, 뫼르소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처해 있는 상황의 부조리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이에 반항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카뮈가 《이방인》에서 취급한 주제는 이와 같은 부조리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이며 가장 신랄한 고발인 것이다.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면 《이방인》은 '건조하고 깨끗한 작품, 외관상으로는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잘 짜인 작품이며 너무나 인간적인' 작품인 것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사회적·정신적으로 혼란한 기류에 휩싸여 있었다. 양차대전을 통하여 인간의 가치관은 급변하였고, 사람의 목숨이란 그렇게 귀중하지 않은 것처럼 수없이 죽어 갔다. 《이방인》이 발표되자 실존주의의 문학적 승리로써 세계적으로 실존주의 작품의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이방인》이 현대의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로 애독되는 것은 그것이 부조리에 직면한 인간의 굴욕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스트 La Peste》
알제리의 오랑 시에 페스트가 만연했다는 가정을 설정하고 그것을 기록해 나가는 형식으로 된 장편소설로서, 그 서술법이 극적 효과를 자아낼 만큼 사실적 묘사에 그 바탕을 두고 전개된다.
어느 날 아침 의사 베르나르 류가 자신의 진찰실에서 나오다가 한 마리의 죽은 쥐 때문에 놀라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뒤이어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환자들이 속출하여 시내는 일대 혼란에 빠진다. 이윽고 페스트의 선고가 내려지고 오랑은 다른 지역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버린다. 도시의 폐쇄는 어머니와 아들, 남편과 아내, 연인들 등, 그럴 생각은 꿈에도 없었던 사람들을 용서없이 분리시켜 버리고, 모든 시민들은 제각기 페스트와 대결하게 된다. 몇 개의 군상이 그려지고 몇 개의 인간의 극한 상황에 수반되는 본질 노정이 이루어진다. 교회 수뇌부는 집단 기도 주간을 마련하고, 판느루 신부는 모든 것 속에 선과 악, 노여움과 연민을 내리시는 신이 커다란 자비를 위해 지금 죄많은 시민 위에 페스트와 구제를 내리신 것이니 죽음과 오뇌와 규환(叫喚)의 걸음을 통해 본질적인 정적으로 모든 생의 본의(本意)로 돌아가라고 설교한다. 오랑의 호텔에 몇 주 전부터 숙박하고 있던 타루라는 사나이는 류를 방문하여 지원 보건대를 조직하겠다며 나서며 활발히 일을 진행한다. 그들은 페스트라는 악과 부정과 폭력을 앞에 두고 강한 결속을 이룬다. 특히 류와 타루는 굳은 우정으로 맺어져 필사적으로 페스트와 싸운다. 오랜 투쟁 활동 뒤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 생기에 찬 쥐들이 다시 모습을 나타내고, 그와 함께 페스트도 쇠멸해 간다. 이 때 타루와 신부는 병에 걸려 류의 간병도 헛되이 숨을 거둔다. 도시는 다음해 2월 어느 맑게 개인 날 새벽에 드디어 폐쇄된 문을 연다. 사람들은 뿌옇게 솟아오르는 햇살 속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류는 해방을 축하하는 사람들의 환성을 들으면서 페스트가 상징하는 악은 결코 멸망하지 않고 또다시 어딘가에 행복해 보이는 도시에 불쑥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페스트》는 2차 세계대전 때의 카뮈의 체험을 상징하고 있는 작품이다. '페스트'란 전쟁을 위시해서 우리를 부정하는 모든 폭력을 의미한다. 이 끔찍한 불가항력 앞에서 인간들은 여러 가지 태도를 취한다. 달아나려는 사람, 절망하는 사람, 남의 죽음을 기뻐하는 사람, 그리고 재해를 정당화하는 사람……카뮈는 이 모든 사람을 이해한다. 그들을 고발하기 전에 이해한다. 그러나 이 무서운 전염병과 그 전염병이 상징하는 인간 부정의 모든 악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올바른 태도는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 힘이 무서울지라도 끝까지 버텨 보는 것이다.
주요 인물의 하나인 신문기자 랑베르는 취재차 파리에서 오랑에 특파되어 머무는 동안, 페스트가 발생하여 시의 출입이 차단되고 그 곳에서 감금상태가 된다. 파리에는 약혼녀가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오랑 시를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즉 부조리한 것의 해소를 갈망한 것이다. 그러나 페스트가 기승을 떠는 앞에서 오랑 시민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마침내 그는 윤리적 부조리에 직면한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욕망과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무관심할 수 없는 인간적 심정의 이율배반에 봉착한다. 인간이 느끼는 유혹은 우리를 거부하는 세계로부터의 도피이며 랑베르의 경우 그것은 오랑 시로부터의 탈출이다. 그것은 마치 형이상학적 부조리에 직면한 의식이 인간의 합리욕을 거부하는 뜻없는 세계로부터 종교적 희망인 탈출의 유혹을 느끼는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막상 탈출이 가능하게 되자 랑베르는 그대로 머물러 보건대에 참가할 결심을 한다. 그가 행복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랑 시로부터의 탈출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자살도 거부함으로써 카뮈의 철학적 반항이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생의 부조리성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일 뿐이다. 그 현실에서 한 걸음도 떠나지 않고 모든 비약과 추상을 배격하여 이 신 없는 원죄(原罪)를 살아가려는 반항적 인간상을 《페스트》에서 보여 주고 있다.
'부조리'와 '반항'의 사상
카뮈의 소설들은 모두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가상 사이에, 혹은 그 두 가지에 걸쳐서 구성되어 있는 독특한 경지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그 속에 숨은 상징적인 의미와 배면의 세계를 찾아내는 것이 그를 보다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다. 이러한 카뮈 문학의 사상적 배경은 그의 수필집 《시지프스의 신화》나 《반항적 인간》에서 볼 수 있는데, 그것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 소위 '부조리'와 '반항'의 사상이다.
그렇다면 부조리와 반항이 어떤 개념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카뮈는 세계에 있어서의 인간이라는 존재를 모순된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세계에 있어서의 존재라는 것은 한 마디로 인생이다. 다시 말하면 인생을 모순에 찬 것으로 본다. 인생에서의 모순적인 것들이란, 예컨대 '죽음에 대한 절망과 삶에 대한 기쁨', '고독과 사랑', '선과 악', '암흑과 광명', '절망과 건강', '겨울과 여름', '바다와 감옥'……등이다. 이 같은 용어를 카뮈는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작품 속에서도 무수히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카뮈에 의하면 이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에게는 합리의 욕망이 있는 까닭에 모순된 세계의 뜻을 알아내고자 한다. 그런데 세계에서는 인간의 이성으로서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아무런 뜻도 없다. 카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그것을 고백한다. '나는 이 세계가 그것을 조절하는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어떤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그 의미를 알지 못하면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나의 조건 밖에 있는 의미가 나에게 무슨 뜻이 있단 말인가? 나는 인간의 용어로서밖에 이해할 수가 없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른바 합리의 욕망과 세계의 몰이해라는 두 개의 상반된 것, 그러한 이율배반으로부터 생기는 모순, 그것이 바로 카뮈의 부조리이며 인간의 피치 못할 숙명인 '인간조건'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나가 언제나 느끼는 것은 아니다. 흔히 우리는 부조리를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의식이 졸고 있는 것이다. 그저 습관에 의하여 기계적으로 일상 생활의 쳇바퀴를 돌며 인생의 뜻이 있는지 없는지 그러한 것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처럼 졸고 있는 의식은 실존자(實存者)의 의식일 수 없으므로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서 부조리를 명확히 의식할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인간다울 수 있다. 그러므로 카뮈에 의하면 부조리의 인식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이기도 한 것이다.
카뮈의 부조리라는 것이 해결할 수 없는 것, 재차 해결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인생의 뜻이고 뭐고 다 귀찮고 괴로우니 그저 편히 살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런 경우 의식으로서는 자살이다. 바로 그것이 허망(虛妄)에 직면한 의식을 끌어당기는 또 하나의 유혹이다. 그러나 카뮈는 그렇지만 살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여기에 카뮈 문학의 열쇠가 있다.
'그렇지만 살아야 한다'는 대답에는 어느 정도의 비약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생명의 약동이 숨쉬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긍정이기 때문이다. 부조리와 직면하여 모순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을 긍정하는 태도, 그것이 다름아닌 카뮈의 이른바 '반항'이다. 그러므로 반항은 삶의 의지와 폭발인 동시에 삶의 가능하고 유일한 자세이다. 《시지프스의 신화》의 제1장 <부조리의 이론>을 카뮈는 '그러나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말로 끝맺고 있으며 '산다는 것은 부조리를 살리는 것이다. 부조리를 살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카뮈는 부조리의 해결을 꾀하지 않고, 부조리에 반항함으로써 가치를 창조하여 그것을 극복하려 한다. 즉 해결될 회망이 없는 부조리에 반항할 수 있는 힘은 인간의 생명이며, 부조리의 초극을 준비하는 가치를 낳을 수 있는 것도 인간의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 속에 고귀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카뮈는 믿고 있으며, 그것만이 그가 부조리와 대결하는 유일한 무기인 것이다.
이처럼 카뮈는 인간의 세계에 있어서의 존재를 모순적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형이상학적 인생관일 뿐만 아니라 그의 윤리관이기도 하다. 집단 속에서 살아야 하는 개개인은 논리적인 면에서도 숙명적으로 모순과 부닥치게 되어 있다. 그 같은 모순에 직면하여, 모순을 이루고 있는 상반되는 진리를 부조리한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인간 속에 있는 고귀한 그 무엇의 힘으로써 극복하려는 그의 반항적 태도는 윤리적 부조리에도 적용되고 있다.
그 고귀한 무엇은 정의(正義)라고 해도 좋고 넓은 의미의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카뮈는 '인간 속에는 경멸받을 것들보다는 더 많은 찬양 받을 것들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지금까지 까뮈의 기본적 태도인 모순의 명철한 인식과 부조리에 대한 올바른 반항을 기본으로 전개되는 그의 사상의 일단면을 살펴보았다. 결국 카뮈는 모순을 이루는 두 기본적인 인식의 어느 한쪽으로도 쏠리지 않은 긴장의 모랄, 그가 '정오(正午)의 사상'이라고 부르는 한계의 모랄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방인》에서는 부조리에 《페스트》에서는 반항에 더욱 많은 강조를 두면서 사상의 경과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황량한 페허에서 인간 정신의 위기를 간파하고 그것의 극복을 위해 카뮈가 제시한 '부조리'와 '반항'의 사상은 중세의 종교 이상으로 힘을 가지고 독자들을 감동시켰고 영향을 끼쳤다. 혼란하고 무질서한 정신적 풍토 위에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확립시킨 그의 문학적 공로 외에도 자기에의 성실과 인간의 존엄성을 기초로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는 그의 작가적 정신은 충분히 한 세대의 정신을 대표하고 지배했다는 의미를 영원히 잃지 않을 것이다. (출처 : 혜원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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