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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솔제니친(A. Solzhenitsyn)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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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솔제니친(A. Solzhenitsyn)

 



오전 다섯 시, 언제나처럼 기상 신호가 울렸다. 본부 막사 앞에 매달아 놓은 레일 토막을 망치로 치는 소리다. 손가락 두 개 두께로 두껍게 성에가 얼어 붙은 유리창을 통해서, 끊어지듯 이어지듯 희미한 음향이 흘러 들어오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날씨가 추우니까 간수(看守)도 망치를 오래 휘두르기가 싫었던가 보다.

기상 신호는 울렸으나 창 밖은 한밤중과 다름없다. 슈호프가 밤중에 소변을 보러 일어났을 때처럼 바깥은 여전히 캄캄한 암흑, 암흑이다. 유리창에는 세 개의 누르스름한 불빛이 어려 있다. 두 개는 수용소 외곽에 달아 놓은 것이고, 하나는 철조망 울타리 안에 달아 놓은 것이다.

어쩐 일인지 막사 출입문을 열러 오는 인기척도 없고, 당번 죄수들이 막대기로 똥통을 들어 내는 소리도 아직 들리지 않는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기상 시간에 늑장을 부리는 일이라곤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기상 신호가 울리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작업 출동까지는 한 시간이라는 자유 시간이 있다. 수용소 생활에 익숙해진 죄수라면 이 시간을 이용해서 언제나 '부업'을 할 수도 있다. 누구한테서든 주문을 받아 낡은 안감으로 벙어리장갑에 씌울 주머니를 만들어 주는 것도 벌이가 되고, 고향에서 자주 소포를 보내 오는 '부유한' 동료가 자리에서 일어나 수북이 쌓인 신발 더미 앞에서 맨발로 서성거리지 않도록 밤새 말린 그의 방한화를 찾아 침상 앞에다 잽싸게 갖다 바치는 일도 할 만하다. 그렇지 않으면 일손이 모자라는 보급계 창고로 달려가서 청소를 하거나 무엇을 날라 주거나 하는 일도 좋다. 아니면 식당에 가서 먹고 난 식기를 거둬 모아 한 아름 안고 설거지통으로 갖다 주는 일 역시 괜찮다.

그러나 거기는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귀찮아 할 지경이다. 어쩌다 먹다 남은 찌꺼기라도 얻어걸리면 그릇을 들고 밑바닥을 박박 핥는 재미가 있으니까. 하지만 슈호프는 처음 수용소 생활을 시작할 때의 그의 작업 반장이던 꾸쪼민의 말을 언제까지나 깊이 명심하고 있었다. 1943년에 이미 강제 노동 수용소 생활이 3년째라던 꾸쪼민은 수용소의 늙은 늑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언젠가 그는 밀림 속 공지(空地)의 모닥불 옆에서, 전선으로부터 압송되어 온 신입 반원인 슈호프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여보게, 여긴 법이라는 게 없단 말이야. 있다면 이 밀림과 같은 거야. 그렇지만 이런 데서도 얼마든지 목숨을 부지해 갈 수는 있어. 수용소에서 죽는 놈이 있다면, 그건 남의 죽그릇을 핥으려 드는 친구들, 뻔질나게 의무실에 드나들며 편히 누워 있을 궁리만 하는 친구들, 그리고 쓸데없이 간수장(看守長)을 찾아 다니는 친구들, 바로 이런 친구들뿐이지."

간수장을 찾아다닌다는 건 밀정 노릇을 한다는 뜻인데, 물론 이것은 은연중에 그의 울분을 토로하는 말이었다. 밀정 노릇을 하는 자들은 처세술이 능란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동료들의 피를 희생으로 하여 일신의 안전만을 꾀하는 놈들이다.

언제나 기상 신호만 울리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슈호프가 오늘은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않고 있다. 엊저녁부터 오슬오슬 추운 것 같기도 하고, 어디가 쑤시는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몹시 언짢았는데, 밤중에도 좀처럼 몸이 녹지 않았다. 잠을 자면서도 꼭 무슨 병에 걸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제발 날이 새지만 말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온 것이다.

하기는 막사 안에 그냥 누워 있을 수 있다 해도 몸이 녹을 리는 만무하다. 창문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붙고, 천장이 가까운 벽에는 온통 흰 거미줄 모양의 성에가 주렁주렁 늘어붙어 있다. 말이 막사지 이건 한데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슈호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잠자리는 다락처럼 된 위쪽 침상에 있었다. 그는 담요와 작업복을 머리 위에서부터 푹 뒤집어쓰고, 솜저고리 소매 속에 두발을 넣은 채 그냥 누워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해도, 귀에 들어오는 소리로 막사 안의 동정을, 그리고 자기가 속해 있는 작업반원들의 움직임을 환히 알 수 있었다.

흠, 지금 늙은 당번 죄수들이 여덟 말(斗)들이 묵직한 똥통을 복도로 들어 내고 있구나. 작업 불능자(不能者)라 해서 가벼운 일을 시킨다는 게 기껏 똥통을 나르는 일이냐! 그득 들어 있는 똥물을 흘리지 않고 나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게다. 그건 그렇고 제75 작업반에서 건조기에 말린 방한 장화를 한아름 갖다 던지는 소리가 난다. 그 다음은 우리 작업반에서 가져올 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우리 반도 신발을 말릴 차례로구나.' 반장과 부반장이 지금 말없이 신발을 신고 있다.

침상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어 알 수 있다. 부반장은 곧 반원들에게 분배할 빵을 수령하러 갈 것이고, 반장은 명령을 수령하러 본부 막사에 있는 생산 계획부(生産計劃部)로 가겠지.

하지만 오늘은 여느 날처럼 단순히 명령 수령만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슈호프는 오늘 자기들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상기했다. 상부에서는 우리 제104 작업반을 현재의 공장 건설 작업으로부터 새로운 건설 지구인 '사회주의 단지(團地)'로 배치를 변경시킬 작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단지'라는 것은 눈에 덮인 허허벌판이어서, 우선 구덩이를 파고 말뚝을 세워, 우리들 자신의 탈주를 막기 위한 철조망부터 쳐놓아야 한다. 그 다음에야 본격적인 건설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거기 가면 영락없이 한 달 동안은 몸을 녹일 만한 장소도 없을 것이다.― 움막집 한 채 없는 곳이라니까, 불을 피울 수도 없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으로 불을 피운단 말인가? 빳빳한 동태가 되지 않으려거든 죽어라고 곡괭이를 휘두르는 수밖에.

반장은 어떻게든 이 문제를 좋게 해결해 보려고 지금 생산 계획부의 작업 할당계(作業割當係)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우리 작업반 대신에 어수룩한 다른 작업반을 보내려는 속셈이다. 물론 빈손으로 가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돼지 기름이라도 반 킬로쯤 갖다 바쳐야 한다. 아니, 한 킬로는 채워 줘야 할 게다.

그보다도 온 몸이 금방 부서질 것만 같으니 큰일이다. 의무실을 찾아가서, 하루만이라도 작업을 면제시켜 달라고 부탁해 볼까? 밑져야 본전 아닌가!

그런데 오늘 당직 간수(當直看守)는 누구더라?

그렇지, 눈깔이 새까만 키다리 하사(下士)가 당직 근무를 할 차례다. 얼른 보기엔 굉장히 무서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간수 중의 누구보다도 이해심이 있는 친구다. 영창에 집어 넣는 일도 없고, 감독관한테 끌고 가는 법도 없다. 하여튼, 제 구호 막사 죄수들이 조반을 먹으러 갈 차례가 돌아올 때까진 좀더 누워 있어도 무방하겠지.

침상이 삐걱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가 했더니 한꺼번에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쪽 침상에서는 슈호프 곁에 누워 있던 침례교(浸禮敎) 신자 알료샤가 일어나고, 밑의 침상에서는 전직 해군 중령인 부이놉스끼가 일어난 것이다.

똥통을 두 개 다 들어 낸 당번 근무 노인들이 서로 욕지거리를 하며 다투기 시작했다. 누가 더운 물을 떠오느냐 하는 것으로 싸움이 붙은 모양이다. 여편네들처럼 시끄럽게 입들만 놀리고 있구나. 제20 작업반의 전기 용접공이 버럭 고함을 친다.

"왜들 시끄럽게 구는 거야!"

방한화 한 짝을 홱 집어던졌다.

"닥치지 못해!"

방한화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둥에 가서 부딪쳤다. 잠잠해졌다.

옆의 작업반에서는 부반장이 투덜거리고 있다.

"바실리이 포도르치이! 양식계 놈들이 또 속였어. 죽일 놈들 같으니! 구백 그램짜리 빵이 네 개 있어야 할 게 세 개밖에 없으니 어떡하지? 부족량을 누구 몫에서 떼란 말야?"

그의 음성은 나직했으나 반원들이 그 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다. 그들은 아마 침을 삼키며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을 게다. 누구든 한 사람 저녁엔 빵 한 조각을 덜 받아야만 하는 판이다.

그러나 슈호프는 톱밥을 넣어 만든 매트리스 위에 그냥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차라리 오한증이 확실해지든지, 그렇지 않으면 아주 몸이 개운해지든지, 어느 한쪽이 분명해졌으면 좋으련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 딱한 일이다.

옆의 침례교 신자가 중얼중얼 기도문을 외고 있는 동안, 밖에 나갔던 부이놉스끼가 다시 기어 들어와서, 누구보고 들으라는 소린지 자못 고소하게 됐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기운을 내라, 붉은 군대 수병(水兵)들아! 밖은 영하 삼십 도는 내려갔을 게다!"

이 소리를 듣고 슈호프는 정말 오늘은 의무실에 가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누군가의 위압적인 손길이 그의 담요와 솜옷을 낚아채듯 벗겨 버렸다. 슈호프는 얼굴에 덮었던 작업복을 끌어내리며 몸을 일으켰다. 침상과 같은 높이로 얼굴을 쳐들고 말라깽이 따따르 하사가 버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슈호프의 예상과는 달리, 오늘은 이 따따르가 당직인가 보다. 그래서 늦잠을 자는 놈을 잡으려고 살그머니 막사에 기어든 게 분명하다.

"CH-854호!"

슈호프의 검은 작업복 등덜미에 붙은 흰 번호표를 재빨리 읽고, 따따르는 판결문을 읽듯 뇌까렸다.

"너는 노동 영창(勞動營倉) 삼 일이다!"

쥐어짜는 것 같은 그의 독특한 음성이, 빈대가 들끓는 상하 오십 개의 죄수용 침상에 이백 명의 인원을 수용하고 있는 어두컴컴한 막사 안에 울려 퍼지자, 늑장을 부리고 있던 패들이 여기저기서 일시에 자리를 차고 일어나 황급히 옷을 꿰입기 시작했다.

"영창이라니, 간수님, 무엇 때문입니까?"

슈호프는 자기가 실제로 느끼는 것보다 더욱 애절한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노동 영창이라는 건 중영창(重營倉)에 비하면 그래도 약과다. 더운 음식을 얻어 먹을 수 있을 뿐더러, 첫째, 서글픈 생각에 잠길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게 좋다. 진짜 영창은 작업에도 내보내지 않는 중영창을 말한다.

"기상 신호가 울리면 곧 일어나야 한다는 걸 몰라? 자, 본부로 가자!"

하지만 따따르의 어조는 어딘지 시들하다. 어째서 영창이냐고? 그런 것쯤은 따따르 자신에게도, 슈호프에게도 그리고 막사 안에 있는 다른 죄수들에게도 뻔한 일이 아니냐.

수염 털 하나 자라지 않은 따따르의 밋밋한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두 번째 '집토끼'를 찾았으나 아직도 자리에 누워 있는 죄수는 하나도 없었다. 윗층에서도 아랫층에서도 왼쪽 무릎 위에 죄수 번호가 붙은 새까만 솜바지에 허둥지둥 다리들을 쑤셔넣는가 하면, 옷을 다 입은 패들은 앞깃을 여미며 밖으로 피해 달아나고 있다.

슈호프는 정말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다른 일 때문에 영창에 들어가게 되었던들 이렇게까지 분하지는 않았으리라.

여지껏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언제나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곤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따따르에게 사정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예의를 지키는 뜻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는 바지를 입고(그의 바지 왼쪽 무릎 위에도 역시 CH-854라는 번호가 찍힌 때묻은 헝겊 조각이 붙어 있었다.), 솜옷을 걸친 다음(거기에도 앞가슴과 잔등 두 곳에 똑같은 번호표가 붙어 있었다.), 마룻바닥에 쌓인 방한화 더미 속에서 자기 것을 찾아 신었다.

슈호프가 당직 간수한테 끌려 가는 것을 제104 작업반원들 중 못 본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그를 변호하려 나서지 못했다. 말해 봐야 소용도 없으려니와, 사실 뭐라고 할 말도 없지 않은가! 반장쯤 된다면 한두 마디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반장은 그 자리에 없었다. 슈호프 자신도 동료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연히 따따르의 비위를 건드릴 필요가 어디 있으랴. 그저 얌전히 따라나서는 게 상책이다.

아침밥은 반원들이 남겨 두겠지, 눈치가 빠른 친구들이니까.        (이동현 옮김)

(중략)

그들은 가엾은 인간들이다. 다만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이유만으로 아무에게도 나쁜 짓을 한 일이 없는데, 한결같이 25년을 선고받은 것이었다. 요즘은 걸려들기만 하면 무조건 25녕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우린 그런 기도를 드린 적은 없습니다. 데니소비치/"

알료사는 성격책을 들고 바싹 다가와서 똑바로 슈호프의 얼굴을 바라보며 열띤 어조로 말했다.

"하느님께선 이 속세의 모든 것 중에서 다만 그날그날의 양식만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라고 말이죠."

"말하자면 배급 빵 말인가?"

하고 슈호프는 물었다.

그러나 알료사는 쉽사리 단념하지 않는다. 말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눈으로써 타이르려 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슈호프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더니 팔을 쿡 찧고 이렇게 말했다.

"이반 데니소비치! 식량 소포가 오게 해 달라든가 국을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도록 해 달라든가 그런 식으로 기도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간이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하잘것없고 추악한 것입니다. 기도는 말입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문제, 즉 우리들의 영혼에 끼어 있는 때를 씻어 주기를 기원해야 합니다 ……"

"그보다 내 얘기 좀 들어 보렴/ 우리 고향 폴로므냐의 교화 신부는 ……"

"당신네 신부 얘긴 여기서 할 필요가 없어요."

알료사는 아픈 곳을 찔린 듯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애원하듯 소리쳤다.

"아니 그러지 말고 들어 보라니까!"

슈호프는 팔꿈치를 세우고 비스듬히 몸을 일으켰다.

"우리 폴로므냐 교구에선 그 신부만큼 돈이 많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네. 그래서 지붕을 이어주는데도 다른 사람한테선 하루 35루불리씩 받는다면 그 사람한테선 백 루불리나 받아 냈지. 저 쪽에서도 군소리 없이 달라는 대로 척척 내준단 말일세. 신부가 생활비를 대 주는 여자만도 그 고을에 셋이나 있었는데 네 번 째 여자는 아주 자기 집에 데려다가 함께 살았지. 주(州)의 주교도 그 신부한테는 곰짝 못 하거든. 그도 그럴 것이 그 신부한테 많은 뇌물을 받고 있는 처지니까 말이야. 다른 신부가 배치되어 와도 며칠을 못 가서 그 신부한테 쫓겨나고 말지. 말하자면 아무에게도 나눠 주지 않고 고스란히 혼자서만 먹겠다는 거야 ……"

"뭣 때문에 나한테 신부 얘길 하는 겁니까? 러시아 정교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고 있어요. 그들이 투옥되지 않고 편안히 지내고 있다는 건, 곧,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증겁니다."

슈호프는 알료사의 손을 옆으로 밀어내고 그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나도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아, 오히려 믿고 싶을 지경이야. 하지만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만은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그런 소릴 곧이 듣겠나? 어째서 자네들은 우리한테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걸 약속하느냐 말이야.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일세."

슈호프는 다시 자리에 반듯이 누웠다. 손을 머리 위로 뻗쳐 아래층 중령의 물건에 불똥이 떨어지지 않도록 창문과 침상 사이에 조심스레 담뱃재를 턴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긴다. 알료사가 뭐라고 열심히 지껄이는 소리도 이제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쨌든."

하고 그는 결론을 내리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기도를 드려 봐야 형기가 줄어들 리는 없지 않나! 형기가 끝나는 날까지 죄수살이를 할 수밖엔 없는 거야."

"아니, 그런 걸 바라고 기도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알료사는 펄쩍 뛰었다.

"어째서 자유를 그리워하죠. 자유의 몸이 된다고 해서 당신한테 이로울 건 뭡니까? 만일 자유의 몸이 된다면 당신의 그 마지막 남은 믿음마저 몹쓸 잡초들 사이에 끼어 말라 버리고 말 겁니다. 이런 데 갇혀 있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십시오! 그래도 여기서는 자기 영혼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있으니까요! '어째서 너희들은 눈물을 흘려 내 마음을 슬프게 하느냐? 즉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라면 감옥살이는 물론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리라.'고 하신 사도(使徒) 바울의 말씀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슈호프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가 과연 자유를 바라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이제는 그것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애타게 자유를 갈망했었다. 저녁마다 앞으로 남은 형기를 손꼽아 세어 보곤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엔 그것도 싫증이 났다. 그리고 또 얼마 후엔 형기가 끝나더라도 집에는 돌아갈 수 없으며 다시 유형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형지에서의 생활이 과연 여기보다 나을지 어떨지 그것도 그에게는 분명치 않다. 슈호프가 자유를 갈망한 것은 다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단 한 가지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형기가 끝나도 집으로 돌아갈 것 같지가 않다. (김종관 옮김)

알료샤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그의 음성이, 그의 눈이 그가 진심으로 감옥살이를 기쁘게 생각하고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알료샤."

슈호프는 변명 비숫이 말했다.

"자네는 감옥살이를 한다 해도 억울할 건 없을 거야. 자넨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감옥에 들어온 사람이니까. 하지만 나는 무엇 때문에 들어왔을까? 사십일 년에 우리 나라가 무방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말이야?"

"두 번째 점호는 없을 모양이군 .

키르가스가 자기 침상에서 중얼거렸다.

"그럴 것 같군!"

슈호프가 말을 받았다.

"굴뚝 속에다 숯덩어리로 써 놔야겠어, 두 번째 점호는 없다고."

하품을 하고 나서 중얼거렸다.

"아마 잠이 들어 버렸나 보지."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바깥쪽 문고리를 벗기는 소리가 조용한 막사 안에 들려 왔다. 방한화를 건조대에 가지고 갔던 죄수 두 명이 복도로 달려 들어오며 소리쳤다.

"두 번째 점호다!"

뒤이어 간수가 외치는 소리도 들린다.

"건너편 방으로 집하압!"

벌써 잠이 들어 버린 패들도 있었다. 투덜거리며 저리에서 일어나 방한화를 신는다(솜바지를 벗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담요 한 장만으로는 다리가 시려서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이다.)

"쳇, 제기랄!"

슈호프는 씹어 뱉듯 말했다. 그러나 아직 잠이 들었던 것도 아니니 너무 화를 낼 것까지는 없다.

체자리가 위층으로 손을 올려 밀었다. 비스킷 두 개와 사탕 두 덩어리, 그리고 소시지 한 개가 쥐어져 있다.

"고맙습니다, 체자리 마르코비치!"

슈호프는 통로 쪽으로 몸을 구부리고 말했다.

"자, 당신의 자루룰 이리 올려 보내세요. 내 베개 밑에 넣어 두면 안전하니까."(위층에 좋아 두면 지나는 길에 슬쩍 집어가려 해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더우기 슈호프 따위 가난뱅이의 침대에 눈독을 들일 놈이 어디 있으랴?)

체자리는 주둥이를 잡아맨 흰 자루를 슈호프에게 넘겨주었다. 슈호프는 그것을 매트리스 밑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도 마루 위에 맨발로 서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할 셈으로, 재촉이 심해질 때까지 그냥 침상에 앉아 있었다. 간수가 호통을 친다.

" 야, 거기 구석에 있는 놈!"

슈호프는 얼른 밑으로 뛰어내렸다. 발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방한화와 발싸개가 난로 바로 위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풀어 내리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남에게는 슬리퍼를 여러 켤레 만들어 준 슈호프였지만, 자신의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다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맨발로 실내 점호를 받는다는 것쯤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낮에는 슬리퍼를 신고 다닐 수 없게 되어 있다.

 방한화를 건조대에 보낸 반원들도 실내 점호라면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다. 슬리퍼를 신거나 발싸개를 감거나, 아니면 그냥 맨발로 나온다.

"야, 빨리 해!"

간수가 소리친다.

"막사 밖으로 나가고 싶으냐, 굼벵이 놈들아!"

막사장은 한 술 더 뜬다.

전원이 건너편 방으로 들어갔다. 뒤늦은 몇 명만이 복도 벽 밑, 똥통 옆에서 있어야 했다. 슈호프도 그들 사이에 끼여든다. 발 밑이 질퍽질퍽하고, 현관문 쪽에서는 얼음 같은 찬바람이 불어 온다.

 죄수들을 죄다 몰아 잰 다음, 간수와 막사장은 또 한 번 방 안을 살피고 나온다. 혹시 남아 있는 놈은 없는가,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그냥 자고 있는 놈은 없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인원수가 모자라서 다시 세어야 한다면 곤란하다. 하루 저녁에 세 번이나 점호를 되풀이하다가는 잠잘 새가 없다.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출입구로 돌아온다.

"하나, 둘, 셋, 넷 ."

 이번에는 한 사람씩 방으로 들여 보낸다. 슈호프는 열여덟 번째에 끼여들었다. 맨발로 곧장 침상에 달려와서, 한쪽 발로 발판을 짚고 훌쩍 위층으로 뛰어올랐다.

 이젠 살았구나! 솜옷 속에 다시 발을 쑤셔 넣는다. 담요를 덮고 그 위에 작업복을 덮는다. 이젠 이대로 잠들 수 있다! 이번에는 건너편 방의 죄수들이 전원 이쪽으로 들어올 차례다. 하지만 그런 것은 우리들이 알 바가 아니다.

 체자리가 돌아왔다. 슈호프는 그에게 자루를 도로 내준다.

 알료샤도 돌아왔다. 착하다할까 어수룩하다 할까,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풀어 주면서도 자기 자신은 아무런 벌이도 할 줄 모른다.

"이거 받게, 알료샤!"

 비스킷을 한 개 그에게 내준다.

 알료샤는 벙긋 웃는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먹을 것은 있습니까?"

 "어서 먹게!"

 우리들이야 없으면 또 벌면 되니까 염려할 건 없다. 그리고 자기는 소시지를 한 조각 입에  넣었다. 그것을 어금니로 지그시 눌러 본다. 향긋한 고기냄새! 달콤한 고기즙이 혀끝에서 녹는다. 아, 목구멍을 통해 뱃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벌써 '이상, 끝'이로구나. 나머지는 내일 아침 작업장에 가기 전에 먹기로 하자.

 그는 때묻은 얄팍한 담요를 머리서부터 푹 뒤집어썼다. 침상 사이의 통로는 점호를 기다리는 건너편방의 죄수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슈호프는 더없이 만족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루 동안 그에게는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재수가 썩 좋은 하루였다. 영창(營倉)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사회주의 단지'로 추방되지도 않았다. 작업량 사정도 반장이 적당히 해결한 모양이다. 오후에는 신바람 나게 블록을 쌓아 올렸다. 즐칼 토막도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기다려 주고 많은 벌이를 했다. 담배도 사왔다. 병에 걸린 줄만 알았던 몸도 거뜬하게 풀렸다.

이렇게 하루가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니 거의 행복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하루가 지난 것이다.

 이런 날들이 그의 형기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만 10년, 즉 3천 6백 53일이나 계속되었다. 사흘이 더 가산된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의 우수리가 붙었기 때문이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솔제니친(A. Solzhenitsyn)

 갈래 : 중편 소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성격 : 비판적, 사실적

 구성 : 시간적

 배경 : 시간(스탈린 시대의 하루). 공간(시베리아 수용소)

 경향 : 반체제적

 문체 : 간결체

 제재 : 수용소에서의 하루 생활

 주제 : 인간을 억압하는 체제의 진상, 강제 노동 수용소의 비인간적 삶

 특징 : 석방의 기약이 없는 슈호프의 수용소 생활의 실상을 단 하루의 시간으로 포착함으로써 그 하루하루 생존을 연장하는 속에 형기를 8년이나 채웠다. 물론 슈호프 외에도 그와 유사한 과정으로 수용소에 끌려온 인물들이 적지 않다. 내부의 적과 반대자를 끊임없이 억압해야만 유지되었던 스탈린 체제의 희생양들이다. 이 작품은 스탈린 시대의 억압적 체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인물 :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 : 순박한 농민으로 독일포로가 되었다는 죄목으로 복역중

알로샤 : 고향에서 기도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온 인물

카르가스 : 라트비아 출신 형기 2년 째의 인물

체자리 코비치 : 전직 영화 감독, 사상이 문제가 되어 끌려온 인물

 줄거리 :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러시아의 평범한 농민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출전했다가 포로로 잡혔던 것이 간첩으로 오판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수용소에 복역 중이다. 그는 배운 것이 별로 없고 성격이 단순하다. 따라서, 수용소의 비인간적 처우에 대해 맞서지도 않으며 탈출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 그는 다만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무사하게 10년을 채우는 것만을 바랄 뿐이다. 그는 기상 신호에 잠을 깨어 급식을 배당 받고 작업장에 나가 일을 한 후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잠이 든다. 그에게 오늘은 지극히 만족스런 하루였고 행복한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내용 연구

 자기가 과연 - 알 수 없게 되었다 : 자유를 바랐던 건 다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 한 가지 때문이었는데 형기가 끝나더라도 유형지 생활이 계속 이어질 것이어서 이제는 희망도 없이 사는 수용소 생활이 신물이 났음을 표현한 구절이다.

 하지만 나는 - 들어왔을까? : 독소 전쟁 중 포로가 된 사실을 솔직하게 밝힌 것이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 것이지만 그것은 자기의 죄과는 아니다. 그렇다면 자기의 죄과는 무엇일까? 스탈린 시대에 슈호프같이 죄과도 모르고 끌려온 사람이 많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 주는 표현이다.

 남에게 슬리퍼를 - 않았다 : 남을 챙길 줄 알지만 막상 자기 자신에겐 대범하고 이타적인 인물인 슈호프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표현이다.

 영창에도 - 않았다 : 이 부분의 앞에는 슈호프가 오한 때문에 기상 신호가 울렸는데도 누워 있다가 간수실에 끌려간 사건이 있었다. 그는 이것 때문에 영창에 끌려 갈 줄로 알았는데, 그 처벌이 청소 명령을 받는 것으로 끝나자 이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다.

 줄칼 토막도 - 들어왔다 : 부러진 줄칼 토막으로 신발도 고치고 바느질할 칼도 만들 수 있기에 소지가 불허되는 줄 알면서도 이것을 호주머니에 몰래 갖고 있었다. 그런데 무사히 검열에 통과되었다. 이를 자신의 행운으로 생각하는 구절이다.

 행복하기까지 한 - 지나갔다 : 절망적인 수용소 생활의 하루하루를 운수 좋은 하루였다고 반어적으로 표현하였다. 억압적인 수용소 생활을 날카롭게 풍자한 이 글의 표현상의 특징이 드러난다.

 사흘이 더 - 끼였기 때문이다 : 작가가 이런 좋은 날이 만 10년 3653일이나 계속되었다고 했다. 3일이 더 많은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끼었기 때문이라고 웃음 섞인. 그러나 결코 웃을 수 없는 시대의 아픔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이해와 감상

 스탈린 시대의 소설이 오로지 인간의 사회적 가치와 의무를 강조하는 장편 위주의 경향인데 반해, 1960년대 소설의 큰 특징은 개인적, 내면적 생활에 초점을 맞추는 중·단편이 주류를 이루었다.

 

8년 간의 강제 수용소의 체험을 통해 그 지옥 같은 생활의 하루를, 소박한 집단 농장의 농민을 주인공으로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는 중편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도 이러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1962년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지극히 평범한 죄수가 수용소에서 겪게 되는 하루의 생활을 유머러스하고 담담한 필치로 묘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수용소에 갇힌 죄수의 생활이라는 비극적 측면보다는 정해진 상황 속에서 안온함을 추구하는 희극적 측면이 표현에 떠오른다. 서술자의 인간적 면모와 대비되어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상황이 역설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문체적 특징으로 인해 이 작품은 회상록 정도의 기록 문학으로 떨어지지 않고, 부여된 생활 소재를 예술적으로 조명한 뛰어난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교과서 수록 부분은 이 작품의 발단과 결말).

 

 

이해와 감상2

 이 지문은 하루 일과가 지나고 잠자리 들기 전의 수용소 정경이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수용소의 하루를 담은 이 작품이 마지막 부분이다. 어김없이 수용소의 하루를 마감하는 점호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되풀이되고, 거기에 대처하는 죄수들의 민첩한 움직임에 대한 묘사가 사실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작가는 억압적 상황에 대한 일방적인 강조나 자유에 대한 추상적인 주장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어디서나 느끼게 되는 본능적인 욕구들을 표현함으로써 인간 삶의 전면적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

 

 즉, 이 소설이 억압적인 상황 그 자체만을 다루었다면, 일면적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수용소라는 한계적인 상황속에서도 발휘되는 인간적인 삶의 면모들을 구체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사실감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대목은 석방의 기약이 없는 슈호프의 수용소 생활의 실상을 단 하루의 시간에 압축함으로써 그 하루하루가 절망적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절망스런 하루를 작가는 운수 좋은 날로 묘사하고 있다. 석방될 기약 없이 갇혀 있는 주제에 죽을 두 그릇 먹은 것이 운수 좋은 것이라면 다른 모든 날은 어떤 것인가를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좋은 날이 만10년 ~ 3653일이나 계속되었다고 했다. 3일이 더 많은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끼었기 때문이라고 웃음 섞인, 그러나 결코 웃을 수 없는 표현을 구사하고 있다.

 

 여기서 주인공은 내부의 적과 반대자를 끊임없이 억압해야만 유지되는 스탈린 체제의 희생양을 상징한다. 그리고 작가는 실제로 겪은 수용소 생활의 하루를 사실적인 필치로 묘사하여 사회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생생히 드러낸 작품으로, 작가가 국외로 추방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다.

 

이해와 감상3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의 중편 소설로서, 사회주의에 대한 허상과 실상을 파헤친 작품이다.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소련의 강제 수용소 생활을 가벼운 해학적인 솜씨로써 다루고 있다. 이반의 눈을 통하여 많은 등장 인물들의 성격을 선명하게 그리면서 이른바 수용소라는 이름의 소련 사회를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스탈린 비판 후의 '해빙'에 의해서 개화된 소련 문학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으로서, 인도주의와 평화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여 인류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그의 간결하고도 힘찬 문체, 작품 전체에 흐르는 저항 정신이 소설을 돋보이게 한다. (출처 : 윤병로외 3인 저 노벨문화사 문학)

 심화 자료

 전면적 진실

 바다의 요정들에 의해 항해 도중 오디세우스의 가장 용맹한 동료 여섯 명이 잡혀 먹힌다. 그들은 오디세우스의 이름을 필사적으로 부르며 죽어 갔다. 위험이 지나자 오디세우스 일행은 밤을 지내기 위해 해안에 배를 대었다. 그리고 시칠리 해안에서 저녁 준비를 했다. "그들은 갈증과 공복을 채우자 다정한 동료들의 죽음을 생각하고 울었다. 눈물을 흘리는 동안 졸음이 조용히 그들을 빠지게 했다. "헉슬리는 이것을 전면적 진실이라고 했다. 동료의 죽음을 보고는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할 수도 있다. 이것만을 강조했다면 그것은 일면적 혹은 부분적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비통한 상태에 빠지더라도 식욕과 수면욕을 능가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모든 원칙을 동시에 포착했을 때 비로소 하나의 전면적 진리가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용소의 절망적인 삶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일차적인 욕구의 만족을 맛보며 행복을 느끼는 슈호프의 하루에도 이런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작품의 아우트라인

 1951년 초, 이미 라게리(수용소) 생활 8년을 맞이한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여느 때처럼, 오전 5시 기상의 신호가 되는 쇠조각을 두들겨 대는 망치 소리로 눈을 떴다. 기상 시간부터 점호까지의 1시간 반은 자기의 시간인데, 슈호프는 그 시간을 헛되게 보낸 일은 여태껏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 만큼은 그는 좀처럼 잠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어제부터 몸의 상태가 좋지 않고, 오한이 나고 있었다. 그래도 작업에 나갈 수 밖에 없다.

 

 만원의 식당에서, 생선 뼈다귀와 절반은 썩은 캐비지 잎을 넣어 끓인 죽의 아침 식사. 550그램의 빵을 두 조각으로 나누어, 그 한 조각은 침상(寢床)에 감춘다. 극지(極地)의 엄동 설한 속에서의 점호와 신체 검사. 슈호프가 속하는 104반은, 경찰견(警察犬)과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간수의 경비 속에 작업장을 향하여 천천히 행진한다. 모자와 가슴과 무릎, 그리고 잔등에 번호표가 붙여진 죄수들은, 황야에 있는 건설 중인 발전소(發電所)로 가는 것이다. 대열에서 이탈하면, 간수는 발포하게 되어있다.

 

 오늘의 일은, 철조망으로 포위된 작업장에서 시멘트를 이기어 블록을 쌓아, 두 달째나 방치되어 있는 발전소의 벽과 지붕을 만드는 것이다. 반장은 죄수들을 제설반(除雪班), 기자재와 물, 모래, 시멘트의 운반반, 블록 쌓기반, 시멘트 이기기반 등으로 각각 나눈다. 주식을 위한 짧은 휴식 시간, 슈호프는 작업장의 취사 담당 죄수를 속여서, 2인분의 죽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오후부터는 점호를 한 뒤, 다시 블록 쌓기. 이렇게 온 종일 작업을 하다가 해가 지면 숙사로 돌아간다. 저녁식사 때에는, 국자 가득히, 엷지만 뜨거운 스프를 얻어 먹는다. 그리고는 다시 점호와 신체 검사.

 

 중노동과 자질구레한 일들이 있은 하루를 끝내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슈호프는 병도 걸리지 않고, 중영창(重營倉)에도 들어가지 않고, 죽을 1인분 더 얻어 먹게 된 것에 대하여 만족감을 느낀다. 이리하여, 「거의 행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하루」가 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날이, 슈호프가 수용소에 들어와서 나가는 날까지 3653일간이나 계속되었다. 윤년(閏年) 때문에, 3일이라는 일수가 더 붙여져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조국에 대한 배신」이라는 죄명으로 라게리(수용소)에 수용된,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의 극히 자세한 면에 이르기까지의 하루를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스탈린 시대의 부정면(否定面)의 상징이었던 라게리의 실태를 폭로한 작품이다. 자신이 직접 라게리의 체험을 한 작자 솔제니친의 처녀작으로 1962년에 발표되었는데, 스탈린 사후의 해빙(解氷)에 의하여 개화된 소련 문학의 정점을 이루어, 발표가 되자마자 세계의 각국어로 번역되어, 높이 평가되었다.

 주인공 하이라이트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다른 죄수들과 다를바 없는 평균적인 러시아 농민이다. 그는 소박하기는 하지만, 나면서부터 빈틈없고 실리적인 정신을 가진 일꾼으로서, 비록 강제 노동이라 하더라도, 벽돌 쌓기 작업의 명령을 받으면, 만사를 제쳐 놓고 일에 몰두한다.

 

 전쟁 중, 슈호프의 부대는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그도 포로가 된다. 탈주하여 아군전선으로 돌아오자, 적의 스파이라는 명목으로 체포되어, 라게리로 보내어진다. 그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는다. 출신지인 콜호즈에는 처자도 있지만 자기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날 그날을 살아 남는데서 행복을 찾고 있다.

 

 이와 같은 타이프는, 투르게네프에서부터 톨스토이에 이르는 러시아 문학에서 사랑을 받아온 농민, 소박한 영혼의 소유자의 계열에 이어진다. 그리고 가혹한 조건 밑에서도, 끈질기게 살아가려고 하는 슈호프를, 담담하게 유머까지 곁들여서 표현한 작자의 시점(視點)과 창작 방법이 이 작품의 성공을 지탱해 준다. 라게리의 하루라는 지옥의 생활과도 흡사한 비정상적 상황 속에서, 평범한 일상의 진실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 라게리에 수용되고, 중노동에 종사하는 죄수들은 모두, 사소한 죄상으로 고발되거나, 권력의 희생이 된 자들이지만, 희망을 박탈당한 이름도 없는 민중의 생명력과 소외된 에너지가 작품 속에 충만하여, 러시아 문학의 전통의 부활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솔제니친[Aleksandr (Isayevich) Solzhenitsyn]

1918. 12. 11 러시아 키슬로보트스크~ . 소련의 소설가·역사가로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러시아 문예가로 197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카자크 혈통 지식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사고로 죽었으므로 주로 어머니 손에서 자라났다.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대학교를 다녀 수학과를 졸업했으며 모스크바대학교 문학과 통신과정을 밟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포병대 대령으로 진급했으나 1945년 스탈린을 비판한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8년간을 감옥과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보낸 뒤, 3년간 더 강제 추방당했다. 1956년 복권되어 러시아 중부에 있는 랴잔에 정착허가를 받아 그곳에서 수학교사로 있으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60년대초 탈(脫)스탈린화 정책의 뚜렷한 증거로서 문화생활에 관한 정부의 통제 완화에 힘을 얻은 그는 자신의 단편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Odin den iz zhizni Ivana Denisovicha〉(1962)를 대표적인 소련 문학지 〈노비미르 Novy Mir〉에 보냈다. 이 소설은 이 잡지에 실려 곧 인기를 얻었으며, 유명인사가 되었다. 솔제니친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스탈린 시대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한 수인이 겪는, 틀에 박힌 일상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직접 겪은 수용소 생활의 일상사인 싸움과 물질적 궁핍을 다룬 이 책은 간결하고 진솔한 언어와 뚜렷한 근거를 통해 대중들의 감동을 불러 일으켰고, 스탈린 이후 세대에 수용소 생활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최초의 소련 문학작품이기에 감동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 책은 소련 내부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정치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으며 소련의 많은 작가들에게 스탈린 체제 때 겪었던 수감생활에 관한 보고서를 쓸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그는 머지 않아 당국의 눈 밖에 났다. 1964년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실각한 뒤 소련은 문화활동에 대한 이념적 제재의 끈을 조이기 시작해 솔제니친은 처음으로 많은 비난에 부딪혔고, 이어서 정부의 탄압정책에 열렬히 항거하는 인물로 떠오르게 됨에 따라 공공연히 시달림을 받았다. 1963년 단편소설집을 출간한 뒤로는 공식적인 작품 출판을 금지당했으며 따라서 자신의 작품을 해외에서 펴내거나 사미즈다트('자비 출판') 문학 형태, 즉 은밀히 나도는 비합법적 문학 형태를 빌려 발표해야 했다. 이후 몇 년은 여러 편의 야심작을 외국에서 출판함으로써 솔제니친의 국제적 명성이 확립된 시기였다. 첫번째 장편소설이라 할 수 있는 〈제1원 V kruge pervom〉(1968)은 수학자로서 감옥의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보냈던 시절을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비밀경찰을 위해 연구활동을 하는 과학자들이 당국에 협력하여 감옥의 연구소에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협력을 거부하여 노동수용소의 짐승 같은 상황 속으로 되돌아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순간에 이르렀을 때 보여주는 다양한 반응을 추적하고 있다. 1968년 발표된 〈암병동 Rakovy korpus〉은 솔제니친 자신이 1950년대말 카자흐스탄에 강제 추방당해 입원해 있으면서, 말기라고 진단받았던 암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과정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주인공은 솔제니친 자신처럼 최근에 노동수용소에서 풀려나온 사람이었다.

 

솔제니친은 197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나 소련 정부가 그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을까봐 두려워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 다음 나온 장편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군이 러시아군을 박살내고 승리를 거둔 탄넨부르크 전투를 묘사한 역사소설 〈1914년 8월 Avgust 1914〉(1971)이다. 해외에서 출판된 이 소설은 러시아 장군 A.`V.`삼소노프 휘하의 불운한 제1군 소속의 몇몇 사람들을 중심으로 차르 체제의 약점을 간접적으로 탐사하여 마침내 1917년 혁명으로 차르 체제가 무너지는 과정을 그렸다. 1973년 12월에는 파리에서 〈수용소 군도 Arkhipelag Gulag〉 제1부가 출판되었다. 소련에서 KGB가 이 소설의 필사본 1부를 압수한 뒤였다. 1974~78년에는 전 3권에 이르는 이 소설 전체가 영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수용소 군도〉는 볼셰비키가 러시아에서 정권을 잡은 1917년 직후 생겨나 스탈린 시기(1924~ 53)에 엄청난 규모로 늘어난 감옥과 노동수용소의 방대한 체계를 문학적·역사적으로 기록하려는 그의 노력의 결과였다. 이 작품에는 소비에트 당국이 독특한 방식으로 40년간 행해왔던 체포·심문·정죄(定罪)·이송·구금이 여러 군데에 걸쳐 묘사되어 있으며, 역사적 해설과 솔제니친 자신의 진술이 수용소 시절에 사귀어 선명한 기억으로 간직한 여러 수인들의 방대한 개인적 증언들과 뒤섞여 있다. 그가 이 작품을 쓴 의도는 소련 당국이 수용소의 역사를 틀에 박힌 형식으로 쓰도록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리라 확신했으므로 그러한 형식의 역사서술을 대신하는 하나의 문학적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었다.

 

〈수용소 군도〉의 제1권이 출판되자마자 그는 소련 언론의 공격을 받았다. 서유럽에서는 그의 운명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그는 체포당해 1974년 2월 12일에 반역죄로 법정에 섰다. 이튿날 소련에서 추방당했고 나중에 스위스로 갔다. 12월에는 그때까지 받지 못했던 노벨상을 넘겨받았다. 이듬해에는 기록소설인 〈취리히에서의 레닌:여러 장들 Lenin v Tsyurikhe:glavy〉(1976)을 펴냈다. 이어서 미국을 여행하다 버몬트의 한적한 시골에 정착했다. 1980년에는 2권의 논픽션을 출판했는데, 〈졸참나무와 송아지 The Oak and the Calf〉에서는 소련에서의 문학적 삶을 묘사했으며 짤막한 〈치명적인 위험 The Mortal Danger〉에서는 미국이 러시아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생기는 위험을 본 그대로 분석했다. 그는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서유럽식 제도가 아니라 러시아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원천으로 하는 박애적·권위주의적인 체제 수립을 제시했다. (출처 브리태니커백과사전)

 명문구 낙수

 「여기는 말이다, 법도가 있다면 밀림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완전한 삶을 가지는 인간들은 있다. 라게리에서 신세를 망치는 놈은, 식기 그릇이나 핥는 자식, 의무실이나 드나드는 자식, 그리고, 동료를 밀고하는 자식 뿐이다.」('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출판 비화

 솔제니친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완성한 후, 몇몇 잡지사나 출판사에 가지고 갔지만, 그것을 게재하거나 출판해 주려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라게리가 주제가 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발표 불능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잡지 게재(揭載)의 최종적인 결단은 당(黨) 중앙 위원회의의 심리로 돌려졌다. 여기서도 찬반의 양론으로 갈려져 있었으나, 당시의 수상 흐루시초프의 결단으로, 활자화 되게 되었다고 한다.

 굴라크(Gulag)

 

 러시아어 'Glavnoye Upravleniye Ispravitelno - Trudovykh Lagerey'(교화노동수용소관리국)의 약어. 1930~55년 소련의 수용소 제도.

 

 1930년대에는 최고 수백 만 명을 수용하기도 했다. 굴라크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 1918~56〉(1973)가 나오고 나서 서방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제목은 소련 전역에 흩어져 있는 노동수용소들을 군도(群島)에 비유한 데서 나온 것이다.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 제도는 1919년 4월 15일자 소비에트 법령에 따라 시작되어, 1920년대에는 행정과 조직에 변화가 있어났고 1930년대 비밀경찰인 통합국가정치보안부(OGPU)의 통제 아래 굴라크를 설립함으로써 완결되었다(OGPU는 1934년 해체되어 그 기능이 내각부설 국가보안위원회로 넘어갔음). 굴라크에 수용된 사람들은 집산화 과정에서 체포된 농민들 외에 반체제 지식인, 반역 혐의가 있는 소수민족단체 구성원, 소련 공산당 내에서 세력을 잃은 사람, 외국 정부와 음모를 꾸민 혐의가 있는 여행자, 태업 혐의자 일 반범죄자 등 여러 부류였다.

 

 역사상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굴라크에 수용된 적이 3번 있었다. 즉 제1차 5개년 계획의 초기였던 1929~32년과 스탈린 숙청의 절정기였던 1936~38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몇 년 동안이었다. 솔제니친은 1928년~53년 동안 "약 4,000만 명에서 5,000만 명이 수용소 군도에서 장기복역을 했다"고 주장했으나 학자들은 대부분 1936~53년 동안 줄잡아 600만~1,500만 명이 수용되었다고 보고 있다. 굴라크는 스탈린 이후 '자유화시대'에 공식해체되어 그 업무는 여러 경제부처에서 흡수했으며 남아 있던 수용소들은 1955년에 구이테카(GUITK:교화노동정착촌관리국)라는 새로운 조직으로 재편되었다. (출처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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