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이녕 / 전문 / 한설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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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녕 / 한설야

 



1

민우가 석후에 식곤이 나서 시들푸러 한잠 자고 나니 정주에서는 지금 바로 아낙네들의 이야기가 한창이다.

단 두 간 방 집인데 전등은 웃방과 정주 어름에 하나뿐이다. 슴뜬 손님이 오기 전에는 항시 샛문을 열어 놓고 그 어간에 켜놓으면 아래웃방이 다 환하다.

그런데 오늘은 알심을 써서 민우를 편히 쉬라고 그런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입심 좋은 아낙네 마실꾼들이 한바탕 늘어지게 옥화사담을 펼 양으로 그런 것인지 샛문을 닫아 버려서 웃방은 아주 까마귀나라다.

어린애들은 벌써 한잠이 들었는지 아무 소리도 없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마 방 윗목에 덧놓인 윷가락처럼 널려서 혼곤히 자고 있으리라.

민우는 낮에 시장했던 탓인지 또는 다모토리(소주) 잔이나 좋이 걸었던 때문인지 물이 키이는 것을 눌러참고 있다. 아내의 들뜬 웃음 소리만 들어도 벌써 맘에 꺼름한 점이 있어서 약간 불쾌해질싸하였다. 아내가 어째서 저리 수선을 떠는지 민우는 그의 이야기를 차근히 밭아 들을 것도 없이 벌써 잘 안다는 듯이 혀를 한번 쩍 갈기고 저편으로 돌아누웠다. 아뭇소리도 듣지 말려는 거다. 그러나 기실 귀는 더 감가진다.

민우가 거기서 나온 지도 벌써 거의 반년이 된다. 민우가 돌아온 후 온 집이 다만 반가운 빛과 소리로 찾던 한동안이 지나간 그 뒤에 온 아내의 당부는 제발 이제부터 되지도 않을 딴생각 말고 살아갈 연구――아내는 늘 이렇게 말한다――를 하라는 거다. 민우가 낸들 어디 살 일 안 하고 죽을 연굴 하느냐고 웃으면 아내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인제 남의 일 다 아랑곳할 것 없이 집안일에만 고스란히 착념하라는 거다. 그리고 끼니마다 막 잠을 자고 난 누에처럼 밥을 처조기는 아이들을 보며 알아들으란 듯이,

"글쎄 저애들 먹는 것만 좀 보우."

하고 식성 좋은 아내는 제김에 침을 삼키며 흐뭇한 듯이 이번은 혼자말로 비젓이 발을 단다.

"참 좀좀이 벌어 가지구는 안 되겠다."

그러다가 낭중은 민우더러 글까지 쓰지 말라는 거다. 글 없는 사람은 글이 필요할 때면 아무데 가서도 돈 안 주고 얻어 오지만서도 곁집에 도끼 빌러 가면 있구도 없답디다, 하는 아내는 사실 민우가 그리로 가 있은 한 사 년 동안에 글보다 장작 팰 도끼가 더 필요하다는 걸 육신으로서 체험한 것이다. 민우도 그만 것은 듣지 않아도 잘 안다.

그래서 민우는 거기는 별로 할 말이 없고 또 애써 그렇지 않다고 타이르기도 싫어서 그런대로 잠자코 있다가 그 후 한번 아내가 맏놈이 인제 소학 졸업도 오라지 않았으니 중학교에 넣어야겠다, 재산증명을 맡을 수 없으니 누구 일가친척 중에서 돈냥 있는 사람을 미리 보호자로 당부해 두라는 말을 할 때, 왜 그전에는 글보다 도끼가 낫다고 했는데, 나은 걸 주지 않고 못한 걸 주자느냐고 웃으니까 아내는 글도 시속을 잘 맞춰서 쓰면 팔모야광주보다는 낫다는 거다. 그리고 실례로 왜 내지 신문을 보면 무슨 국민가요 한 수에 몇백 원 현상이 붙어 있고 무슨 시국 영화소설이니 논문이니 하는 글 한 편에 몇천 원 현상이 붙었으니 재주가 없어 그렇지 재주만 있으면 그게 다 제 주머니 돈이 아니겠느냐는 거다.

그러니 아내의 말을 따져 보면 민우는 결국 글재주가 부족하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민우라는 위인이 무슨 장사치가 되겠느냐 하면 노상 그렇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벼슬아치는 더욱 될 수 없고 보니까 결국 어디 허름한 취직이라도 하라는 말이 된다. 신이 나게 버쩍 떠들어 봤댔자 그저 제 손해고 미운 놈을 밉다고 했댔자 성나서 바위차기요 하늘을 우러러 침뱉는 격이다. 속담에 미운 놈 떡 한짝 더 주랬다고 아니꼬운 꼴을 당하더라도 더 좋게 해주라고 어디로 나갈 때마다 아내는 신신당부다.

아내는 본시 성미가 괄괄하고 왈패이나 애당초 켸가 안 될 일은 맘으로부터 항복하고 들지만, 민우는 그 반대로 약한 성격이면서도 제 맘에 못마땅하다고 생각는 사람이면 한때 그 서슬에 눌리고 무섬을 타면서도 한 대목 늦어만 지면 속으로라도 욕하고 미워해야 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아내는 요샛세상이란 그저 싫거니 좋거니 덮어놓고 단냥끔으로 청탁을 가리지 않고 두덮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민우는 실지에 있어서 아내의 말대로 그저 그렇게 벙어리 삼년, 장님 삼년 격으로 비위 상하는 일이라도 그런대로 보아 가고, 때로는 속에 없이 남 좋다는 대로 좋다, 옳다 하고 꾸벅꾸벅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아니꼬운 꼴, 옳지 못한 것을 보면 속으로 이따금 혼자 용굴대를 부려 보고, 하다못해 남 안 보는 그늘에 가서 침이라도 탁 뱉어 줘야 맘의 한구석이 좀 들린다.

그러자니까 자연 아내와는 더욱 위치가 맞지 않을 수밖에…… 그래서 민우는 이따금 속으로 '약자!'라고도 불러 보고 심하면 '소갈머리없는 것' 하고 기껏 업신여기기도 해본다.

그러나 아내는 또 아내대로 남편이 아주 하치않게 보이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재주도 없는 주제에, 아니 그보다 사람 모인 데 가선 변변히 말 한마디 못 하는 화상이 이불 속에서나 활개를 치면 무슨 소용이람, 똥 찌른 꼬쟁이 따위가 하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지만 겉으로는 아직 그까지 바닥을 들지는 못한다.

"당신은 마치 갑은 물 같소."

아내의 소견으로는 남편의 성미는 마치 충충 갑은 오랜 늪물처럼 만날 그대로만 있어서 언제 보든지 전장끔이다.

도대체 변할 줄을 모른다. 물로 치더라도 좔좔 흐르는 물이라야 맑고 씨원하다. 그래도 남의 말을 들으면 남편은 퍽 재미나는 사람이라는데 집에 들어서는 가타부타 쇠통 말이 없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불을 돌돌 감고 돌아누웠거나 그렇지 않으면 책과 씨름이다. 그래서 아내는 그놈의 책 죄다 살라 버리고 싶은 때가 적지 않다. 책이 아무리 좋다기로서니 온 아내까지 모르고 살게 할 말이면 그따위 것을 그대로 둘 수 있으랴 싶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민우는 그리로 갔다 온 후 성미가 변한 것도 적지 않다. 첫째 식성이 변했다. 김치깍두기만 먹고 제삿날에도 입쌀과 핍쌀을 섞고 게다가 콩팥을 둔 밥이라야 먹던 남편이 인제는 흰밥도 그만이요 길짐승, 물고기도 고작이다. 평생 국을 안 먹어서 허리가 한줌만하더니 인제는 제법 국맛도 아는 속이다. 식성 좋고 지방질적인 아내에게는 우선 이것이 저으기 기뻤다.

그리고 자식에게 대한 태도도 많이 변했다. 그전에는, 어려서 다리를 앓아서 끝내 한쪽 다리를 살룩거리는 맏놈은 물론, 그 다음 아이들 이름조차 잘 부르려고 안 하고 무슨 잘못이 있든가 울든가 하면 당장 욕하고 때리고 했는데 지금은 그 버릇이 없다.

민우는 무엇보다 우는 것이 제일 질색이다. 그래서 맏놈이 세 살 때엔가는 우는 아이를 앞 개천에 팡개친 일이 있고, 둘째놈은 한번 무슨 책장을 찢어 놓아서 마당 김칫독 파낸 구덩에 절반이나 파묻은 걸 아내가 파낸 일이 있고, 셋째놈은 방에다 잉크를 엎지르고 따귀를 맞아 코피 터진 일이 있고, 제일 귀염을 받는 것이 그 담 딸인데 그도 에밀 닮아서 울길 잘 하기 때문에 여러 번 휘태손이를 먹었다. 그 다음 다섯째놈은 민우가 그리로 가던 바로 그날 새벽에 낳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 안에서 이름을 지어 보내고 자주 안부를 물었는데 거기서 나와서 첨은 안아 보는 일도 없더니 다섯 살밖에 안 되는 놈이 제법 형놈들을 따라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흉내를 내어서 못내 만족해하는 속이다. 막내놈말고는 모두 학교에 다니는데 말로는 그까지 학교성적 같은 거야 나쁘면 어떠냐고 심상한 체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따금 아이들 몰래 아내에게 학교성적을 묻고 어느 놈이 제일 재주 있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또 요새는 회심이 들어서 취직운동을 하는 중이다. 그전에는 "내가 왜 무직업쟁이란 말이냐,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게 직업인 줄을 모르니 답답하지 않으냐" 하고 말하여 아내가 "그까짓 가난뱅이 되는 연구!" 하고 비꼬아도 끝내 직업 같은 데는 구미가 없었다. 그런데 요새는 별말 없이 취직운동을 다닌다. 더구나 그 취직운동은 예전과 달라서 재판소 판사니 검사니 하는 사람들이 배후에 있어 힘써 준다는 말을 민우에게서 직접 들은 건 아니로되 풍편에 들은 아내는 이런 별세상 별시대가 있느냐고 못내 놀랐다.

그러나 알고 보니 사실은 사실이다. 보호관찰소라는 것이 생겨서 직업을 주선해 준다는 말을 아내는 남편이 나와서 얼마 만에야 딱히 알았다.

또 오늘 낮에 민우가 그리로 갔다 온 것도 아내는 잘 안다. 민우는 딴 데 놀러갔다 온 체하지만 그건 집안에서 너무 조급해할까 봐서 위정 시치미를 떼는 거요 사실은 잠시 지나는 길에라도 들기는 꼭 들었으리라 싶었다.

"그래 만나 봤소?"

아내는 넘겨짚듯이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누굴 말요?"

"거기…… 왜 요전부터……."

"응, 거기 말이지…… 들르나마나 하지. 말은 다 해뒀으니까."

"그렇지만……."

아내는 이렇게 말하다가 민우의 동정을 살피며 더 묻지 않고 저녁상을 차리었다. 육중한 몸이 행결 개가워진다. 밥도 수둑이 담고 국도 남상남상이다.

민우는 그러한 아내의 성미가 비위에 맞지 않아서 때로는 좀 담박하게 해보라고 일깨워 주고 때로는 국을 조금 떠 마시고 삭은 코를 찌푸려 불쾌한 빛을 보이며 국그릇을 통으로 집어 내려놔도 아내의 타고난 지방질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저 수북수북 담아 놔야 맘이 놓이는 거다.

그런데 마침 오늘 저녁은 배가 몹시 고파서 아내의 떡심이 그다지 맘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오늘 밤 대단히 기분이 좋다.

 



2

정주에 모여 온 아낙네들이란 거의 다 민우의 아내와 처지가 어슷비슷한 사람들이다. 한때는 그 남편들이 역시 민우와 같이 나랏밥술이나 좋이 얻어먹은 일들이 있으나 지금은 대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옛날에는 어깨를 살리고 모여들 다니고 고작 형이니 아우니 하다가도 금시 핏줄을 세우고 말쌈질을 하고 직업 잡고 돈벌일 하라면 무슨 파문(破門)이나 당하듯이 꺼리던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어찌 된 바람인지 하다못해 단돈 이삼십 원 벌이라도 잡고 들었다. 그래서 아낙네들은 사람이란 나이 먹으면 지각이 드는 것이라는 옛사람 말을 여기서 또 한번 참답게 되씹어 본다.

"참 저어 김 무언가 그전 연극두 하고 하던 얼굴이 곱상한 사람 있지 않소. 그 사람이 자동차부엘 다니더군그래. 요전에 보니까."

수득이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고는 잇달아서,

"요전에 내호로 가자고 다꾸시 타러 갔더니만서두 그 사람이 자동차부에서 호각을 불구 있겠지."

하고 발을 단다. 그 자동차부에서 호각 부는 김동일이라는 사나이보다 갑절 나은 자리에 있는 자기 남편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던 것은 물론이지만 또 한편 어떻게 자기 남편 자랑을 터보았으면 해보기도 한다. 그의 남편은 어느 목재회사 무슨 주임으로 있다.

"그 사람 취직한 지 언제라구…… 건데 그 사람보다 청년회패 중에서는 그전에 극장에서 연설두 하구 제일 똑똑하다던 박의선인가 한 사람은 출옥하자 얼마 안 돼서 재판소 누구라나 한 사람의 소개로 도청 무슨 과에 취직했는데 월급도 그 패 중에서는 제일 많이 받는대."

민우의 아내 말이다. 아내는 인제 자기 남편이 그 사람보다도 나은 자리를 얻으리라 생각하니 속으로 슬며시 기뻐진다.

"참 세월이 좋아졌어. 그전 같으면 거게 한번 다녀오기만 하면 아무 데두 명함 낼 엄두를 못 하더니만서두 지금은 그런 사람이 외려 더 잘 씨이는구려 글쎄."

만수네 어머니 말이다. 만수네 아버지는 어느 촌 사립학교 교원을 무슨 일 때문에 밀려난 후 인차 목공을 배워 가지고 조고마나마 지금은 자영하고 있다. 살림은 교원 노릇 할 때보다 차라리 나은 편이나 아내는 역시 선생 노릇 하던 그 시절이 낫다고 생각한다. 학생 집에서 달걀꾸러미 가져오던 생각을 아무리 해도 잊을 수 없다. 그나 그뿐이랴. 그 동리에서는 모두들 안선생댁이라고 존대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지금은 쬐고만 까까중이 어린 놈이 와서도 여기 목수 어디 갔소, 하고 성씨조차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은 인물로 보든지 지식으로 보든지 수득이 아버지보다도 때가 벗었건만 그래도 수득이 어미 속성으로는 말 속에 늘 지질한 직업을 가질 때에는 사람 나위가 그만밖에 안되게 그런 거지 그럴싸하는 말투다.

"그때 그리구 다니던 사람들도 지금은 모두 돈벌이하고 얌전들 해 졌어. 철들이 나서 그런지 세월이 좋아서 그런지."

수득이 어미가 이렇게 말하자 곁에서 따라서 누구는 수리조합에 다니느니, 누구는 부청 토목계 칙량반으로 다니느니, 누구는 어느 회사 고원으로 다니느니, 누구는 무슨 장사를 하느니, 누구는 신문지국 기자로 다니느니 하는 이야기를 창황히 주워 댄다.

"글쎄 신문기자도 요새는 세목이면 횡재가 생긴다는구려. 관청에서랑 회사에서랑 다문 얼마씩이라두 찔러 준다니…… 그전에는 신문기자라면 제일 미워하더니만서두."

그전에 지방 신문지국 기자로 있은 일이 있는 민우의 아내에게는 이런 일도 한 가지 이문(異聞)이 아닐 수 없다. 그전에는 돈 생기기는 커녕 걸핏하면 때어가곤 하였다.

"그래 이 집 쥔은 어쩌우. 또 신문사 일을 보게 되우?"

제 집 자랑하고 싶은 수득이 어미가 목이 간질간질해서 민우 아내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묻는다.

"글쎄 아직 모르겠소만 인제 신문사에는 한사코 안 있겠다구 하고……."

그러면서 민우 아내는 싱긋 웃는다. 남편은 좋은 취직 희망이 있다는 의미리라.

"그래 몸은 건강하오. 몸이 제일이지요, 그까짓 벌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지만."

목수의 아내 말이다. 자기 남편이 교원 노릇 할 때보다 몸이 튼튼해진 것이 사실이고 또 각중에 그것이 제일 유복한 일이어니 생각해야 할 자기인 것도 그는 잘 안다.

"그럼 몸이 제일이지요, 우리 쥔도 나와서 첨은 창자에 털이 났다고 하며 안 자시던 고기도 자시고 국도 자시고 하더니만 지금은 몸이 팔팔결인데 글쎄, 잔밥(아이들)을 수두그러 늘어놓고 몸까지 성치 못해 보오. 어떻게 되나."

날마다 닭의 배를 만져 보고 알만 낳으면 남편 상에 올려놓는 민우의 아내도 목수 아내와 동감이다.

"아이규, 아일랑 인제 그만 좀 나소."

수득 어미가 위정 놀리는 투로 말해 놓고는 다음으로 제 집 이야기로 넘어간다.

"나는 아이 둘을 가지고도 아주 죽겠소. 복개고 성가시고…… 아이 보는 애년이 혼자 힘에 부쳐서 밥짓는 애까지 하나 더 두었는데 그래도 연극 구경 한번 맘놓고 못 다닌다우."

수득이 어미 팔자 늘어진 건 이만해도 알 일이지만 그에게는 그보다 더 나은 자랑이 또 있다. 그것은, 여태 별말 없이 듣고만 있는 덕근이 아내의 존재를 새삼스레 생각한 때부터 버쩍 더 말하고 싶어진 자랑이다. 그는 슬쩍 딴전을 써서 덕근이 아내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래 그 집 쥔은 요새 바람이 좀 잤소."

수득이 어미 남편 자랑하려는 차부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길 언제 자겠소. 제 말마따나 복상사하고야 그 버릇 떨어지지요."

덕근이 아내는 벌써 가슴이 화끈해난다. 눈밑에서 불이 튄다. 남편은 나이 먹을수록 외도가 더 심하다. 인제 나이 먹었으니 더 늙기 전에 하나만 더 하고…… 이렇게 염량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이나 그 하나라는 것이 바뀌고 바뀌어서 끝날 날이 없다.

덕근이 집은 선대 유산냥이나 있어서 지금도 꽤 유족한 편이다. 촌에는 열흘갈이도 넘는 과수원이 있다. 옛날, 청년들 호기 놀랍던 그 시절에는 돈드는 일은 누구보다 첫대 그가 대맡았다. 공용으로 쓰는 돈은 물론이지만 친구들 술밑천도 어지간히 대주었다. 그러나 그 낱용보다 남몰래 나가는 오입밑천이 훨씬 더 많았다. 가만히 따져 보면 그는 밭날가리, 논마지기를 소리 없이 져다가 숱한 계집에게 안겨 준 폭이다. 그때부터 계집이라면 오금을 못 추고 계집에게 던지는 돈은 아낄 줄을 몰랐다.

그러나 때가 때라, 그 당시는 쥐새도 모르게 하더니만 요새는 아내 소견으로 보면 아주 놓인 말이다. 삼십 넘은 여자의 남편 욕심이 남편 오줌 누는 소리에도 깊은 의혹을 가지게 하는 것까지 회계에 넣고 보면 사실 남편의 버릇이 더해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나 타고난 이 아내의 욕심이란 한이 없다. 그의 눈과 귀와 머리는 다른 데로는 꼼짝 돌아가지 않고 목고대로 오로지 남편 행장에만 쏠리고 있다.

남편이 아침밥만 좀 덜 떠도 흥 두 집에 신 벗고 두 벌 밥 먹을 사람 식사부터 다르군 하고, 오늘 밤쯤 남편의 발이 우선 제 이불 속의 다리를 건드리려니, "아이규, 추운 데 다녔더니 발이 꽁꽁 얼었어." 이런 헛소리를 하려니 하고 있는데 점도록 소식이 없으면 이 조죽놈이 일을 치고 왔구나 하고, 감기가 들어서 구미를 잃으면 어떤 년한테 잘 먹었구나 하지 않으면 아주 곤냐꾸 다 됐구나 다 됐어 하고 바지 고춤을 잡아흔들어 준다. 겨울 밤 어디 갔다가 늦게 들어오면 아내는 우선 술냄새 나는가를 맡아 보고, 그 다음으로는 발로 남편의 발다리를 진맥해 본다. 그래서 술이 취하고 또 발이 차야 말이지 좀 푸근히 녹았던 기미만 뵈면 어느 년 궁둥이에 엎더졌다 왔느냐고 낭중은 너 죽고 나 죽자고 칼까지 가지고 덤빈다.

그래서 덕근이가 아내를 광새 돋은 년이라고 욕지거리를 하면 아내는 으레 그래 내가 지금 몇 살이야, 마흔이야 쉰이야 하고 대들고 또는 반타작만 아니면사…… 그래 평생 한 계집 데리구 살아 본 일 있어? 하고 설친다. 그러면 덕근이도 악이 받치다 못해 "너 이년, 꿩 잡아서 복장, 밑구멍 다 들어내고 솔잎 처박은 걸 봤지. 네년도 아마 꿩이 되구라야 말이 없을까 부다." 이렇게 악다구니를 해도 아내는 여전하다. 덕근이는 사실 인제는 실속 없이 강짜받는 통에 머리가 셀 지경이나 그래도 놀기 좋아하는 버릇 때문에 여전히 밤늦도록 떠돌아다닌다.

"아니 그래 여태 그러오?"

민우의 아내 말, 민우도 얌전한 체하면서도 옛날에는 헐치 않는 색씨날뤼다. 그런데 그 버릇도 그리로 갔다 온 지 후로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곳이다.

"그래 이 집 쥔은 어떻소. 예전에는 우리집 쥔과 밤낮 얼려다니지 않었소. 뒤로 호박씨 잘 깐다구들 했는데."

덕근의 아내 말이 민우의 아내에게는 동무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 심사같이 들렸다.

"천만에 인제는 그런 버릇 다 없어졌다우. 요전에 한번 뉘 말을 하는데 그눔 여태 계집질하구 다닌다니 쳐죽일 놈 아니냐구."

"그래도 맘놓지 마우, 인제 돈벌이나 해보지. 말타면 견마잡이 생각 난다우."

여기서 엽때 대기(待機)하고 있던 수득이 어미가 자기 차례라고 나선다.

"우리 쥔은 평생 그런 법 모르지 않소. 처내없는 양귀비라도 제 계집만 못하다는구려. 그리고 술은 공짜 외에는 안 자시구, 연회 같은 데 갔다가두 슬쩍 먼저 빠져 오구 그러니 돈쓸 데가 있소. 월급, 상여금을 타면 꼭꼭 내게 갖다 맡기지요…… 참말 요전에 어떻게들 웃었는지. 숱한 돈이 모두 여자 손에서 죽는다고, 애써 벌어다 주면 모두 여자들 손에서 흩어져 나가니 대체 여자처럼 돈 많이 쓰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구."

수득이 어미 남편 자랑 첫 대문이다.

"나 같으면 남편이 만약 외입한다면 죽지 못 살겠소."

수득이 어미는 제김에 목을 쩔레쩔레 흔든다.

"외입 못 하는 사내 데리구 살 재미 있소."

만수 어미가 위정 내부쳐 보는 말이다. 그저 못난 체 별말 없이 제 직업이나 부지런히 하고 있는 남편을 가진 그는 수득이 어미처럼 남편 자랑할 재비도, 또 덕근이 아내 본으로 남편 패담할 건지도 없다.

그러니만치 그 어느 편에도 슬그머니 증이 났다. 남편 자랑에 아가리를 닫지 못해도 정작 알고 보면 그 남편이란 중학도 변변히 마치지 못한 뜨내기 골생원이요, 그 반대로 나무라는 남편을 알고 보면 의외로 싹싹하고 늠름하고 물리 탁 틔운 사나이가 많다. 그러니 도대체 자랑하는 것들도 얌치없는 계집이지만, 그렇다고 나무라고만 다니는 계집도 고얀 년들이라고 생각한다. 따져 보면 그 어느 편이고 홀쩨 남편 욕심이 육실하게 많아서 아가리를 가만두고 배기지 못하는 거라고도 생각해 본다. 또는 엉치를 분질러 계집 구실 못 하게 해야 할 따위 즌판들이라고도 생각해 본다.

"만수 어머니 말마따나 정말 외입두 좀 해야겠습디다. 그도 노비상 너무 안 하니까 어떤 때는 구찮어 죽겠습디다. 나만 가지고 못살게 구니까…… 글쎄 술잔이나 자시고 들어오면 귀를 다 깨물어 준달밖에."

수득이 어미 남편 자랑은 점점 더 진경으로 들어간다. 워낙 입심 좋고 육담 잘하고 중구메(뱀장어의 일종)같이 징그러운 아낙네가 남보다 내외간 정분 좋은 근경거리기가 천하일수다.

"그저 그도 저도 말고 농사꾼이 제일이겠습디다. 촌사람이 덥덥하고 진정이고…… 반질벌게 출입깨나 합네 하는 사내치고는 외도 안 하는 사내가 어디 있겠소. 아따 글쎄 사내들 혼 빼먹으랴는 갈보 칠보가 올빼미 눈처럼 노리고 있는데 반반한 사내치구 안 걸리는 장수가 있소. 열 번 찍어 안 드는 나무가 없다구."

남편 때문에 만날 속을 썩이는 덕근이 아내가 진심으로 세벌 상투 촌보리 동지를 데리고 가난하나마 비둘기처럼 구구구하고 살아 보고 싶은 토심으로 한 말인데 수득이 어미 귀에는 그 말이 제 남편 치는 언사로 들렸다.

그저 촌사람이 좋다는 것부터 위정 엇가는 말인데다가 사내 잘나면 외입 안 하고 배길 수 없다 한즉 외입 못 하는 내 남편은 무슨 얼간이나 사람사촌으로 치자는 심보가 아닌가…… 수득 어미는 이렇게 생각하고 못내 비위가 상한다.

"석 냥짜리 말 이두 들어 보지 말라구 흙내나는 촌사내 좋으면 얼마나 좋겠소. 그래도 사내랍시고 출입도 제법 하고 인물도 깨끗하고 지식도 상당하면서 외입 안 하고 아내 하정 잘 알고 해야지…… 아닌게아니라 사내 신사가 돌부처 아닌 담에야 계집들 꼬임 안 받을 사람 어디 있겠소만 그래도 거게 안 넘어가는 사람이라야 가위 진짜지요. 좋아하자는 여자가 없어서 외도 못 하는 거야, 못 하는 거지 어디 안 하는 건가, 그리게 우리 쥔 말이 우습지. 이제 늙어서 여자들이 본숭만숭할 때쯤 해서 한번 손을 써본다구."

수득이 어미 남편 자랑도 인제 종장인 줄 알았는데 또 발이 달린다.

"그리구 또 여자들이 지지리 따르는 까닭은 꼭 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맘이 내키다가도 그만 쑥 들어가 버린다는구려. 돈도 명색도 없이 돼서도 그렇게 따르는가 보구 싶다구. 글쎄 날더러 말이, 임자 내 돈 없으면 설마 죽두락 따라 살겠소. 그러니 조강지처가 그럴 바에야 장삼이사 놀어먹는 계집을 어떻게 믿는단 말이냐구."

이 여인들의 세계는 완전히 남편의 품행 여하로 어둡게도 밝게도 되는 것이다. 또 그들의 세계의 전부요, 그러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곧 세계의 문제요 또 그러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한량없이 심각하고 너르고 끝날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밤도 남편 자랑이나 험담이 다 끝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계집질 좋아하는 사내는 그저 한번씩 톡톡히 큰집 구경을 시켜야지. 그래야 버릇이 떨어진다니까."

민우의 아내가 이렇게 운을 떼자 모두 참 그렇다는 듯이 맞장구판이 벌어진다. 누구는 그리로 다녀오자마자 곧 취직해서 인제는 돈을 모으고, 누구는 책사를 해서, 누구는 토지 거간을 해서, 또 누구는 부자 과부를 얻어서 전장을 거느리고 아들 딸 낳고 깨고소하게 산다는 등, 어떤 사람은 지위 있는 관리들과 상종하고 무슨 대표로 동경까지 갔다 왔는데 누구만은 아직도 징역살이가 부족해서 길이 좀 덜 들어 궁을 못 벗은 것이라는 등 이야기가 한창이다.

 


3

민우가 맘 가운데 저울을 들고 정주에 모인 아낙네들의 머리를 달아 보기 시작한 지 이미 이윽하되 저울추는 거의 움직임이 없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일반이다. 그는 사막과 같이 텅 빈 공허감(空虛感)을 느끼는 한편, 사람의 지혜를 진창으로 반죽해 주려는 무서운 우치(愚痴)의 세계를 또한 본다. 그것은 지옥을 보는 것보다 더 싫고 미운 일이다.

아내는 동리 아낙네들을 보내자마자 쪽대문을 절컥 건 다음 잠시 뒷간에 들렀다가 우두두 떠는 시늉을 하며 웃방으로 들어왔다.

"여보오."

아내의 목소리는 사못 가늘다.

그러나 민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해 본다.

"여, 여보."

아내의 목소리는 더 가늘고 얀삽해진다. 그러나 약간 떨린다. 아내는 지금 제 목소리에 일종 매력을 느끼고 또 간드러지거니 그렇게 생각하렷다 하고 궁리해 보니 민우는 까닭 없이 이마에 핏줄이 선다.

"여보오, 일어나요…… 아이, 몸이 아주 반쪽이네, 어떻게 말랐는지."

아내는 민우의 몸을 매만지며 끔찍한 듯이 이런 말을 되풀이한다. 민우의 몸이 여윈 것을 오늘 첨 안 배 아니로되, 늘 하는 버릇으로 아내는, 이 몸이 언제 그전처럼 성해질까, 음식물이 나쁘니까 뼈만 남을 수밖에…… 나나 바꿔서 그 고생 했더면…… 이런 혀 아랫소리를 되씹으면서 민우를 흔들어 깨운다. 그러며 속으로는 민우가 "약하긴 왜 약해. 이래봬도 남만치 악세다네" 하고 손목을 꽉 쥐어 주었으면 싶었다.

아내의 말과 손이 좀 즘즛해진 때에 민우는 우뚝 일어났다. 밖에 나가서 오줌을 누고 들어오니 아내는 치마를 벗고 단속곳 바람으로 자리를 펴고 있다.

"방이 추어서…… 남들은 한 달에 이십 원 어치씩 불을 땐다는데 우리는 그 반에 반도 널락말락하니……."

아내는 또 혼자말로 중얼댄다.

"어서 어린애들이나 자라나야지, 혼자서 벌어서 숱한 식구를 살리자니 좀좀한가. 오만 세상에 우리처럼 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야. 사오 년을 그 고생 해도 누구 하나 들여다보는 친척이 있나. 계봉이(막내아들) 낳고 사흘 만에 쌀 꾸러 갔달밖에."

이 말은 아마 모르면 몰라도 벌써 열 번은 들었으리라. 그때마다 꼭 같은 음성과 꼭 같은 사설로 되씹고 또 되씹던 말이다. 그러니 너무 들어서 구찮은 것이야 물론이지.

그보다 같은 소리를 열 번, 스무 번, 또 앞으로도 무수히 들어야 할 그것과 그리고 무수히 외일 아내의 점액질(粘液質)이 찌끗찌끗하다.

아내는 남편에게 무슨 불만이 있든가 또는 남에게 무슨 앙치가 있으면, 그 날짜, 그 경위, 그 증인까지를 하나 빼지 않고 몇 번이든지 곱집어 외이고 사설한다. 그런데도 그것은 증오심으로 욕지거리하는 때는 아직 좋다. 그렇지 않고 비창해지는 때라든가 또는 나약해지는 때면 그 소리가 비리고 못생겨진다.

그런데 오늘 지금 아내가 하는 조는 그도 저도 아니고 딴에는 한가지 애교다. 사설은 열 번 듣던 그 소리 그대로이되 그 음성은 확실히 간드러져 보려는 청이다. 워낙 건강하고 덥덥스런 아내는 애교와 간드러진 목청에는 천은(天恩)이 없다. 그래서 거게다가 보고 들은 조로 다소 색채를 놓으려고 들면 얼른 듣기에는 하릴없는 신음 소리다. 그런 때는 응당 건강한 소리가 원수라는 듯이 비리고 뇌리치한 청을 내보는 것이다. 부드럽고 간드러진 음성을 용납할 줄 모르는 세괏은 건강이 때로는 원망스러우리라.

아내는 좀더 다정히 남편에게 묻는다.

"어디 몸이 아프오."

그러나 민우는 오줌을 누고 난 뒤처럼 몸을 한번 우두두 떨 뿐―― 그것은 아무렇지 않다는 대답도 되려니와 또 한편 몸이 저절로 아슬떼려지는 표이기도 하다.

따뜻한 가정이라는 말이 지금 세상에서는 벌써 자취를 감춘 지 오란, 수만 년 옛 일인 상싶다. 달과 같이 차고 수정과 같이 맑은 그 위에 이루어질 정열과 인정과 풍속은 없을까.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기분 여하를 알 까닭이 없다. 아니 좋거니 생각한다.

"계란 좀 잡숫고 자겠소?"

"아니 또 소화가 나쁜걸, 감기가 왔는지."

민우는 얼른 이렇게 대답하며 제 자리에 혼자 드러누웠다가 문득 생각이 들어 다시 일어나 솜보료를 집어다가 머리를 가리고 드러누웠다. 몸이 좀 불편하다는 표다. 그러나 그래 놓고도, 지금 바로 눈앞에서 무척 애교 있어지려 하고, 요사이 무슨 회리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서울 여편네들 옷매무새가 부러워나서 인조견 단속곳까지 해입은 아내를 생각하고는 또 한번 왕청되게,

"여보, 그런데 나 죽으면 임자 어쩔 테요."

이렇게 물어 놓고 다시 발을 달았다.

"암만해도 오래 살 상싶지 못해, 요새같이 버쩍 쇠약해져서는 아닌게아니라 몇 날 볕 못 보지."

오늘 밤 기분으로 말하면 민우는 이런 말 저런 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삼십 전후의 피등피등한 아내를 잡념 없이 수이 자게 하려니까 자연 이따위 된서리를 아내의 건강 위에 던져 두지 않을 수 없다.

"말을 해도 왜 해필 그따위 복받지 못할 소릴 한단 말요. 죽긴 왜 죽어요. 숱한 잔잡을 버려 놓고 죽었으면 꼴 좋겠소."

아내는 제 몸이 떨려졌다. 민우의 말투는 모르면 몰라도 신수에 무척 화를 불렀으리라. 그는 지금 바로 보이지 않는 앙화가 남편의 머리를 향하고 내려오는 것 같았다.

"나 죽어도 살기야 살겠지."

민우는 그렇다고 푸시시해 버리기도 무엇해서 뒤를 한번 더 조져놓고 나서 말을 슬쩍 돌려,

"여보, 나 등뒤로 바람이 들어오니 이불 좀 꼭 눌러 주오."

하고 저편으로 돌아누워 그리고는 암말도 더 묻지 않는다.

아내는 자리에 누워서 한참 좋이 신문을 버서석거리더니 그럭저럭 잠이 든 모양이요, 민우는 초저녁에 한잠 자고 난 탓인지 아닙때까지 이불 속에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민우는 아침에 어린애들 떠드는 소리에 눈이 띄었으나 보료 속에 얼굴을 파묻은 대로 있었다.

그는 떠들썩하는 어린애들 소리를 읽으면서 한 놈씩 성격을 생각해 본다.

맏놈은 그저 순하다. 맏이치고 얼뜨기 아닌 것이 없다는 속담을 생각한다. 그러나 음식 덜 먹고 말없는 것이 좋다. 둘째놈은 성미가 팩하다. 재주 있다. 하나 그보다 자존심이 강한 것이 좋다. 셋째놈은 역시 순하나 울컥이다. 비위성이 좋다. 그 담 딸년은 왈패다. 사내 형제들을 깔고 돌려는 게 좋다. 쌍까풀이 눈딱지도 이 집에서는 귀물이다. 또 단 하나 외갓집 모습을 닮지 않은 것이 좋다. 그 담 놈은 욕심이 많다. 어쩐지 애비 성미에 안 맞는다. 하나 다섯 살밖에 안 되는 놈이 무슨 글자든지 써주면 그대로 받아쓰고 그림도 곧잘 그린다. 그래서 요새 공책 하나를 사주었다.

어쨌든 두루두루 보니 모두 그만그만하다. 그러나 에미를 닮아서 울기를 잘한다. 민우에게는 우는 것이 제일 질색이다. 성격들이 어느 연놈 없이 모두 너무 약하다. 저희들끼리는 씨름도 하고 싸움도 하고 사무라이 놀음도 하고 꽤 영악한 것 같지만 정작 남과 맞서면 그저 베베하고 물러서리라고 애비는 생각한다.

 



그러게 동리애들과 다투는 소리만 나면 에미가 쫓아나가서 편역을 든다. 그래서 그 때문에 민우는 여러 번 아내와 말다툼을 하였다.

"제 자식 편역 드는 집 연놈 잘되는 걸 못 봤다."

하고 민우는 도거리로 욕하고 다음으로,

"못생긴 놈의 새끼들, 쩍하면 얻어패고 울고…… 그따위가 인간질하다 뒈지는 걸 못 봤다. 왜 그놈의 허벅다리라도 물어떼지 못해."

하고 아이들을 나무라는, 한편에는 그따위 약한 자식을 낳은 제 성격에 대한 발악도 다분히 있는 것이나 아내는 그걸 알 택이 없다. 덮어놓고 제 아이 편역이다.

"이애보다 곱절이나 되는 놈인데 당허길 어떻게 당해 낸단 말요. 온, 그놈의 새낄, 목댈 시들궈 놓지 못한 게 분해 죽겠는데 급살 맞을 놈의 새끼."

"듣기 싫어. 힘이 모자라 얻어팼으면 팼지, 울긴 왜 울어. 설사 분해서 울었다 치더라도 남 안 보는 데 가서 울 일이지 울면서 집으로 들어올 건 뭐람. 못생긴 망나니들 같으니라구."

"그래 그놈한테 맞아죽어도 알리지 않어야 옳겠소."

"에미란 게 저러구 주책없이 픽하면 새끼들 역성을 들고 나서니까 그렇지."

"참 답답한 소리 하구 있소. 양같이 순한 애들을 때리는 놈이 나쁘지 그래 얻어맞는 놈이 나쁘단 말요."

"얻어패는 놈이 더 나뻐."

"온 별말을 다 듣겠네. 제 새끼 편역 든다고 나무라는 양반이 남의 새끼 역성은 어째 들우, 온."

"나쁜 놈이면 이로 물어뜯어도 좋고 돌멩이로 대가릴 까도 좋지. 왜 되려 얻어패고 울며불며 집으로 쫓겨 들어오느냐 말야. 맞어죽는대도 불쌍한 꼴 하고 죽는 놈 하나도 불쌍할 거 없어. 기왕 죽을 바이면 우는 대신에 악을 좀더 써보는 게 옳지 울면 무슨 소용이란 말여."

"아이구, 참 답답허우. 당신 같은 사람 분복에 자식새끼 다섯씩 생기는 게 용소."

"그까짓 거, 대구처럼 무럭무럭 낳아서 남의 단밥 만들 거 뭐야. 그따위 새끼들 세상에 내놔 보지 어떻게 되나."

이것도 사실 민우의 뼈저린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그는 차라리 자기의 약한 성격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아이구, 그래 남의 새끼만 못 될 줄 알우. 그래두 당신은 자식 덕 입겠다니 걱정이지…… 그러나 그따위로 하다가는 말경에 자식들한테 들것에 들려나리다."

"제발 덕분에 그래 달래, 그만침 영악해지란 말야. 그러면 돌꼭대기에 올려논들 살아 못 갈까만 지금 그따위 새끼들은 밤낮 남의 손아귀에 들고 엉뎅이 아래 깔리고 짓밟히고 멸시받다가 마쳐 버리는 거야."

"제가 착하기만 하면 그만이지 누가 뭘 어쩐단 말요, 남한테 못 할 일 안 하니깐 아무 무서운 거 없습디다."

"착하고 악하고 간에 제 하는 일에는 그저 강해야 하는 거야. 극성스리, 악마같이 강해야 하는 거란 말야. 엉거주춤한 놈은 한평생 남에게 놀리다가 우물쭈물 죽어 버리는 법이니 그래 제 새끼가 그 꼴을 해야 옳단 말인가. 그리게 범을 낳아. 양을 낳더라도 범으로 기르란 말야, 범으로."

그전에는 이런 쌈이 며칠 걸러씩 있었다. 그러나 시실 따져 보면 민우의 이 쌈은 그가 약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삼십 년 동안 세상에서 받은 가지가지 체험에서 우러나온 울분에 지나지 않는다.

맘만은 늘 속에서 격분에 타면서도 천생 약한 성격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겉으로는 필요 이상으로 공손히 살아왔다.

맘속에는 도적놈이 두세 놈씩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그것을 용케 숨겨 가지고, 그리고 강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제 몸을 남에게 좋게 인식시키고, 그리하여 어진 사람보다 영화롭게 사는 것이다. 약하고 착한 사람은 못난이, 열패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제 자식이 그 꼬락서니로 일생을 살아야 옳을까.

목도래를 찬 강아지를, 목장에 갇힌 양의 새끼를, 암만 친들 무슨 소용이랴, 그따위 약한 놈의 새끼들, 얼간이 망나니들, 쩍하면 울고 약차하면 물러서고, 남의 힘 부러할 줄이나 알고, 일껀해야 그 잘난 에미 역성이나 바라고 에미 아니면 못 사는 줄 알고――배 밖에 떨어지면서부터 에미애비 없이도 사는 거 아닌가――뭐 바쁜 일이 있으면 에미부터 찾고 싸움하다 울고 들어오기 일쑤고, 울고 들어와선 편역 들어 줄까 바라고…… 이따위에 올 선물은 묻지 않아도 빤하다.

민우가 거의 반생을 살아온 경험으로 보아도 그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민우 자신이 그 성격 때문에 얼마나 가엾은 꼴을 당했는가. 비 오는 날 고무신을 끌고 가는데 자동차란 놈이 호기 있게 진창을 탁 끼얹고 지나가지 않았는가. 그러면 민우는 울상을 하고 입속으로 두덜거렸지 자동차 번호를 외워 가지고 자동차부에 가서 한바탕 후려대려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또 조고만 물건 하나를 사러 상점에 들어갔다가도 이것저것 주물락거리다가 종내 사지 못하고 돌아오는 때, 남의 조소나 손가락질을 꺼릴 것 없이 왜 버젓이 어깨를 살구고 나오지 못하는가.

길을 가는데도 하많은 사람 중에서 못생기고 순하고 늙은이는 자기를 보고 길을 묻는다. 자기는 그만치 남에게 물쩍해 보이고 만만해 보이고 어리무던해 보이는 것이다. 제 약점을 행길가에서도 남에게 들키는 것이다.

그러나 새끼들만은 좀 뼈대가 있는 연놈을 만들고 싶다.

민우는 마침내 이불을 탁 차고 일어났다. 괜히 속이 찌푸드하다. 날씨조차 흐리터분해서 집안은 더한층 침울하다.

4

그럴싸 보아서 그런지 아내의 서두는 품이 여느 날보다 행결 더 고분고분하다. 오늘 민우가 어디로 가는지 벌써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장차 민우가 돈벌이를 해서 한 집에는 늦게나마 안도와 즐거움이 오리라는 생활설계도가 지금 아내의 가슴에는 정녕 그려져 있으리라. 민우만 약게 돌아서 직업을 구하자고 하면 누구보다도 유력한 소개자가 있는 터이니 안 될 리 없다. 그런데 민우도 일자리를 잡으려고 하고 또 오늘은 그 유력한 소개자에게로 가는 것이다.

민우의 밥상을 차리는 아내의 손은 벌써 약간 떨리기까지 한다.

"생계란 가져올까요."

아내는 감기가 들었는지 코를 약간 들여그며 얕은 콧소리로 묻는다. 마땅히 애교가 없어선 안 될 마당이리라.

그러나 민우는 동작으로도 대답하려 하지 않는다.

"그 국에 말아 잡수시구려."

아내는 민우의 구미를 돋워 주려는 듯이 제가 먼저 입을 다신다. 민우는 역시 잠자코 국그릇을 비끗 내려놓고 숭늉이나 달라는 뜻으로 가마를 흘끔 본다. 아내는 꼭 밥상 곁에 붙어 앉아서 혼자말 모양으로 무슨 반찬을 좀 만들어야 하느니 사람이란 고기를 많이 먹어야 근력이 나는 법이니 하는 등 이러루한 소리를 되씹는다. 그리고 별안간 생각난 듯이 요사이 신문을 보니까 소위 무슨 강장제(强壯劑)라는 것은 대개 소족이나 소꼬리 같은 것을 고아서 만든 것이라는 것도 이어 말해 본다.

그러는 판에 저어편에서 밥을 먹고 있던 아이 연놈들이 얼려서 짝자그르 야단이다. 쌈이 생긴 것이다.

민우는 한번 찔 그편을 깔보고는 그대로 못 본 체한다.

아이들의 쌈은 더 법석판이 된다. 술치로 머리를 때리기도 한다. 필시 대가리 큰 놈들이 딸년의 밥이나 밥그릇 옆에 놓아 둔 누룽지나 반찬을 슬쩍 차다가 먹은 속이다. 그래서 서로들 그랬느니 안 그랬느니 하고 얼려 싸우는 모양이다. 결국 울음이 터졌다.

"얘, 울지 말어!"

민우는 대번에 소래기를 질렀다. 민우의 성미가 비록 제 자식일지라도 차곡차곡 타이를 줄을 모른다. 그래서 웬만한 일은 보고도 못 본 체해 버리고 매우 언짢은 일이면 한두 마디 툭 쏘아붙이고 만다.

"싸우면 싸웠지 쩍하면 울긴 왜 우는 거냐."

또 울면 진 놈 하나가 울겠지. 이긴 놈 진 놈 없이 쌍나팔을 부는 것이 더욱 언짢다.

울음 소리는 딱 그쳤다.

"계집애년이 툭하면 제 형들을 깔고 들려니. 저년 이 담에 시집가서도 저럴까."

아내는 역시 사내새끼들 편이다. 어쨌든 계집애부터 나무라는 것이 아내의 버릇이다.

"뚱뚱보, 데부짱."

계집애년이 눈을 깔뜨고 술치로 에미 때리는 시늉을 한다.

"내 아버지한테 일러 놀 테야. 점은 왜 치라 갔어. 아갸갸 죽겠지."

"저년 저 거짓말하는 것 봐. 너 어디 이따가 보자."

아내의 말을 민우가 차갔다.

"망할놈의 새끼들, 밖에 나가선 찍소리 못 하는 주제에 집에만 들면 쌈굿이야. 쩍하면 울구."

아이들의 쌈도 울음도 딱 그쳤다. 민우의 화닥닥하는 손택을 잘 아는 것이다.

"저 못난 놈의 새끼들, 꼴에 그래도 사무라이 노릇만 하지. 거 체격허구 훌륭허다."

민우는 한편으로 웃음이 났다.

아이들은 하나 영실한 게 없다. 모두 피들피들한 편편약질들이다. 아내의 설명을 들으면 맏놈은 먹성이 적어서 약하고 둘쨋놈 셋쨋놈은 어려서 젖이 모자라는 관계로 우유와 그도 없어서 설탕물을 먹여서 그렇고 딸년과 막냇놈은 어릴 적, 민우가 나랏밥 먹는 사이에 굶기를 부자 이밥 먹듯 해서 그렇다는 거다.

 



"저놈의 새끼들 암만해도 죄인의 간을 좀 뼈 멕여야겠어."

민우는 이렇게 말하며 아내에게 웃는다. 그리고 나서 또,

"글쎄 그러면 말야, 아무리 쪼무래기 시라소니라도 담이 커진다는 구려."

"아이규, 끔찍끔찍한 소리 그만 허우."

아내는 대번에 기급할 상이다. 그런 소리 듣는 것부터 무섭고 끔찍하다는 상이다. 그리고 아내의 속은 들여다 안 봐도 지금 "말해 먹는 것만 봐도 잘되기는 애당초 틀렸다. 돈 안 드는 말이사 푼푼히 못 해" 하고 있는 것이 민우에게는 정녕 들리는 듯하였다. 그것이 민우에게는 밉성이기도 하고 또 재미성도 있는 일이다.

"아니 그러니까 살인 죄수의 간쯤 뼈 먹었으면 어쩔 거야. 그러면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도 초라한 꼴은 안 하겠지."

민우의 눈에는 정말 아이새끼들이 너무 성질이 약해서 걱정이다. 그놈들이 범광장다리처럼 날쳐도 지금 세상에 나가서 가엾은 꼴 안 하고 살아가기가 나나한데 지금 보는 바로는 어디 가서 어떻게 곯아 떨어질지 알 수가 없다.

아이새끼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도 그렇다. 하나 민우 자신은 그래도 부모 덕에 공부깨나 착실히 했으니까 하다못해 대서쟁이 서사 노릇이라도 하겠지만 이놈의 새끼들이란 돈 없는데다가 외눈에 안질로 몸까지 약하고 보니까 어느 학교가 두드리라 열어 주리라 하고 받아 줄 것인가. 그러니 겨우 소학교나 마친 놈들이 낮거미같이 약한 팔다리로 이 산 눈 뺄 세상을 어떻게 걸어가랴. 그나마 타고난 배리들이나 영악했으면 하련만 그것조차 은혜받지 못했으니 그놈들 눈물이 오줌같이 흔한들 누가 불쌍히 생각해서 도와 줄 것이랴.

민우는 밥상을 탁 밀치고 다 떨어진 외투 주머니에 책 한 권을 찌르고 총총히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맨 첨으로 만나노라 만나니 보는 때마다 고연히 불쾌한 인상을 주는 돈비입은 그 사내다. 요새는 뉘게 붙어먹는지 되지 않게시리 목도리에 가짜 수달피까지 달고 무슨 대단한 소사나 있는 듯이 분주히 싸댄다. 그런데 여기 또 걸음을 어떻게 늘게 떼는지 낭자가 땅에 닿을 것 같은 느릉태가 지나간다. 중절모자를 사서 고대로 주름도 안 잡은 채 쓰고 다니는 무슨 관청에 스물 몇 핸가 다닌다는 치가 지나간다.

그 담 사람들은 또 어떤가. 오고 가는 사람이 모두 바보와 같다. 대체 무슨 생각이 있는지…… 저 퀭한 눈동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대가리가 돌멩이처럼 굳어 버린 치가 아니면 호박 속같이 서벅서벅한 축들이다. 좀 무얼 안다고 하고 뜻있는 구실을 하려는 사람들도 기실은 모두 머리가 새대가리만치 줄어들어서 양심도 비판도 없이 뉘 집 늙은이 상사인지도 모르고 진종일 어이퍼이를 부르는 강개 의사가 아니면 그저 남 좋다는 대로 덩달아 따라가는 친구들이다. 그 담 대부분의 인간들은 말하자면 기왕 살아 있으니까 그저 그런대로 할 수 없이 살아가는가 싶다.

촌사람들까지도 요새는 무슨 회장이니 위원이니 직원이니 또는 무슨 족보 편집이니 하고 동떠다닌다.

대체 그 오고 가는 사람들의 옷매무새와 걸음거리만 보아도 밉성이다. 아무 광채도 영리함도 사람다움도 찾을 수 없는 그런 따위 바보의 그림자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범 잡아먹는 주지와 같이 사나웁고 솔직하면 어떨까. 맹수도(猛獸島)가 그리울 지경이다.

차라리 보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놈의 눈은 어떻게 된 놈의 것인지 보지 말려면 더 똑똑히 본다. 민우는 급기야 제 눈을 미워해야 할 지경이다.

민우는 바로 관찰소 전촌 씨를 찾아갔다. 그는 매우 반가운 낯으로 취직은 전부터 말이 있던 창고회사에 거의 확정이 되었으나 자네 일이니만치 남보다 돈 좀 더 받게 하려고 지금 교섭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요새는 물가가 비싸지고 또 민우 집 식솔이 여느 사람 집보다 많으니까 소불하 오십 원은 굳겨 준다는 거다.

민우가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긴다는 뜻으로 녜녜 대답만 하고 돌아오려는 때에 역시 전촌 씨 소개로 도청 사회과에 취직한 박의선이가 카키빛도 새로운 쓰메에리 양복을 입고 늠름히 들어온다. 본시 친밀한 사이일 뿐 아니라 그 사람이 그전에 그 안에 있을 때에 민우가 서적이니 지리가미니 하는 것을 넣어 주었고 또 그 사람도 민우가 그 안에 있을 때에 편지와 서적 차입을 자루 해주었던 것도 물론이다.

그런데 하도 오래간만이어서 그런지 두 사람은 잠시 서로 얼굴을 붉히고 몇 마디 바꾼 담에 민우가 먼저 돌아서 나왔다.

나올 때에 얼른 본 박군의 왼편 뺨 모습이 이상스레 눈밑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깜박 그 생각을 잊었는데 별안간 무엇이 머릿속에서 번쩍한다.

"옳지, 꼭 그의 아버지 모습이야."

사람은 어쨌든 나이 먹으면 그 부모 모습을 나타내는 건가 보다고 민우는 생각하였다. 알은 작지만 그 씩씩하고 연설 잘하기로 이름난 박군도 어느새 늙었구나 싶었다. 그리하여 박군도 그렇게 서로 싸우던 그 아버지의 모습으로 차차 변하여 가는 것이라 생각하니 사람의 일이란 실로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그때 같아서는 박군과 그 아버지는 짜장 물과 불로 서로 그 일생을 마쳐 버릴 것만 같더니만 듣자니 지금은 그 아버지는 사남매 중에서 박군을 제일 사랑――사랑이라는 것보다도 요새는 명색이 그렇지 않아서 은근히 존경하는 터이라 한다.

민우는 뜻하지 않고 늙어죽을 그때를 생각하였다. 아직 그때까지는 삼사십 년이 남아 있는데, 지난 삼십 년 동안에도 그만치 헤아릴 수 없이 세사는 변하고 또 변했은즉 장차 앞으로 올 그 시간은 또 얼마나한 변천을 남겨 줄 것이랴. 실로 몸소름나는 일이다.

그는 또 뜻하지 않고 관 속에 가로누운 자기를 생각하였다. 그 관뚜께 위에 먹으로만 쓴 글씨――민우의 약력이 나타난다. 그 담에는 주묵글씨 또 그 담에는 백묵글씨…… 이렇게 수없이 바뀌어진다. 그러다가 이 가지가지 빛깔 글씨가 얼룩덜룩 섞여 쓰인 것이 보인다. 그는 또 한번 몸소름을 친다. 차라리 관뚜께에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5

그는 산에 올라가서 움푹하고 향양한 남역바위에 기대어 가지고 간 책을 한참 좋이 읽다가 거리에 내려와서 신문지국에 들러 요 며칠 동안의 신문을 대강 춰본 다음 책사에 들렀다가 석양편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쪽박 깨는 소리를 하며 울상을 하고 있다. 알고 보니 막냇놈이 이웃 아이들과 장난질을 하다가 길바닥에 넘어져서 무르팍을 벗긴 것이다.

"어느 놈의 새끼가 떠밀어 놨는 게지, 글쎄 이 피나는 걸 봐요."

그래도 민우는 잠시 암말이 없다.

"맨 무릎 고드리가 돼서 쉬 낫지 않을 건데…… 내복이 다 떨어진 걸 입었으니 다칠밖에……."

민우는 또 한번 일부러 잠잠해 본다.

"어쩌면 우리집 애들만 밤낮 다친단 말이냐, 온."

그제사 민우가 무중 툭 쏘아붙인다.

"거기 약 가져와."

아내가 어정어정 책궤를 드비더니 무슨 약병을 꺼내 왔다.

"이거 뭐야, 소독부터 해야지."

그러나 아내는 어느 건지 찾지 못하고 잠시 망설이고 있다.

"거, 붉은 물약을 가져와, 다친 데 만수나 부르고 있으면 되나."

아내는 성이 났는지 아까보다도 더 어물어물한다.

"이리 비켜. 거미장을 지져 먹었는지 왜 어름어름하고 있어."

"아이규, 찾아보구려. 그놈의 새끼들이 어디다가 처박았는지 알길 누가 알어."

아내도 대뜸 고들머리까지 약이 오른 상이다. 또 눈물이 나오나 하고 흘끔 쳐다보니 그런 내색은 없다. 민우는 좀 안됐다는 생각도 해 본다.

"글쎄 다치면 인차 약새질을 해줘야지 사설이 무슨 소용이란 말요."

말은 순하게 하였지만 속으로는 고연히 또 아내에게 일종 증오심이 났다.

그러고 나서 저녁을 먹는데 아내는 밥상을 비스듬히 내놓고 모른척한다. 모른 척할 이 저녁일 수 없는 판국에 모른 척하자니까 화가 더 난다.

민우도 별말 없이 밥을 먹는다. 여느 날보다 성찬이다. 아내는 저래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늘 갔다 온 경과를 알려고 매우 궁금증이 나리라. 그러나 좀처럼 성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눈결에 도적해 본 것이지만 아내의 눈은 약간 붉어진 듯하다. 노염만 풀린다면 아내는 곁에 다가앉아서 제 입을 씨루며 밥 많이 먹기를 권할 것이요 목소리를 병적으로 구슬려서 애교청을 낼 것이로되 성이 나면 사람이 좀 소갈머리가 서는지 시치미를 따고 있다.

민우는 저녁을 먹고 나서 곧 자리에 누워 책을 보다가 시더더 잠이 들었다. 얼마 만에 잠이 깨니 아내는 자리에 누워서 여태 자지 않는 속이다. 맘이 편해야 잠도 자지 오늘 밤은 또 자기 틀렸다. 밥 안 먹은들 누구 하나 알아줄 사람 있나 아이새끼들도 말이 자식이지 홀쩨 도리깨 아들이나 마찬가지다――하는 아내의 혼자 한탄이 고대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한참 동안 동정을 살피려니까 저편으로 돌아누운 아내는 이불 속에서 무엇을 부시적거리고 있다. 신문이나 무슨 잡지를 들추고 있는 것인가 하고 비슬떼려 넘겨다 본 순간, 민우는 입속으로 혀를 갈기고 제대로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아내는 이불 속에서 금년 민력(民曆)과 무슨 비결책인 듯한 것을 드비적거리고 있다. 그는 오늘 경과를 민우에게서 듣지 못하는 대신, 비결책에서 금년 신수를 찾아보는 속이다. 얼핏하면 잘 하는 버릇이다. 태세 월건, 일진을 아내는 잘 안다. 육갑 세는 것도 민우보다 훨씬 낫다. 그런데 만일 그 비결책에서 금년 신수 길하다는 것을 찾아낸다면 민우가 꼭 취직되리라 믿을 것이다.

이번에 화가 난 것은 민우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냈든지 민우는 아내의 아갸갸 하는 다급한 소리에 화닥닥 잠이 깨었다. 어인 영문은 알 수 없으나 대번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기가 칵 막히는 것을 느꼈다.

"아이규, 저걸 어쩌나."

그러며 아내는 단속곳 바람으로 정주 허릿문을 차고 나간다. 민우는 그제사 나무허청에서 닭이 꽥꽥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이놈의 쪽제비, 이놈의 쪽제비."

민우는 맨샤쓰 바람으로 우당탕 뛰어나갔다.

"거게 놔두고 가지 못하겠니, 이놈의 쪽제비."

아내는 나무허청에 가서 무슨 작대기 같은 것으로 나뭇단을 두드리며 소리소리 외친다. 닭이 쪽제비한테 물린 것이다.

"이눔, 이눔의 쪽제비 죽어 봐라."

민우도 손에 쥐는 대로 아무것이나 가지고 닭소리 나는 데로 뛰어가서 나뭇단을 때리고 헤쳤다. 닭은 닭의 우리에서 물려 가지고 나뭇단 속에까지 끌려 내려온 것이다. 민우는 재빠르게 나뭇단을 집어 넘겼다. 그러자 닭소리가 딱 멈추고 동시에 이번은 또 아내의 짝 짜개지는 소리가 난다. 쪽제비가 닭을 내버리고 도망간 것이다.

"이놈의 쪽제비 죽어 봐라."

그리자 대문이 짝 하고 소리친다. 쪽제비를 겨눈 작대기가 대문에 헛맞은 것이다.

"저놈의 쪽제비, 눈이 새파래서 도망을 가겠지, 아이 그저 그놈을……."

아내는 헐레벌떡거리며 못내 분해한다. 아내뿐이 아니다. 민우는 더 분하다. 민우는 닭을 찾으며 금시 손에 잡히기만 하면 그놈의 쪽제비를 오리가리 발겨 놓으리라 하였다. 어째서 이렇게 분한지 민우 자신도 알 수 없다. 한편 또 아내의 오늘 밤 무용전(武勇傳)을 어떻게 춰주었으면 좋을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닭은 어디로 갔나."

닭은 질겁을 했는지 찍소리도 없고 어디 가 박혔는지도 얼른 알 수 없다. 아내가 전등을 밖으로 내다 건다.

그러자 민우는 나뭇단 속에서 얼떠름해진 닭을 끄집어내 가지고 정주로 들어왔다. 바로 볏을 물려서 대골통이 왼통 피투성이다.

"참 그 약 좀 가져오우."

아내는 이번은 바로 그 붉은 물약을 가져왔다. 민우는 다시금 아내에게 감사했다. 그놈의 쪽제비를 놓치고 부들부들 떨던 아내가 어찌 고마운지 알 수 없다.

"인차 알았으니 말이지…… 그런데 참 그때까지 안 잤소."

"아니 어슴푸러 잠이 들었는데 어디서 꽥 소리가 나게 뛰어나갔지요."

"거 참 잘했소. 잠이나 깊이 들었더면 그놈이 물어 가고 말었지."

"한동안 그런 일이 없더니, 그놈이 또 냄새를 맡구 온 모양이야요. 그게 바루 저 건넌집 쪽제비라우."

"건넌집?"

그 집까지 못마땅하게 생각되었다.

"그럼요, 그게 아주 그 집 자릿쪽제빈데 똑 남의 닭만 물어 가요. 이 동리에서 얼마나 잃었는지 알우."

"저런, 그런 걸 그저 둬."

민우는 손아귀에 기운이 버쩍 솟았다. 손이 떨린다.

"그놈을 잡아 죽이지 못해. 당장 그 집 토고리라도 파헤치고 말지."

"글쎄 저놈이 인제 닭 있는 줄 알어 놨으니깐두루 밤마다 올 텐데…… 늘 꼭 같은 시각에 옵녠다."

"가만있어, 낼은 돝을 사다가 놔야겠어. 내 꼭 잡고 말지. 이눔 밤을 새여 가면서라도 내 잡구야 말걸."

닭은 정신이 뗑해서 세워 놔도 자꾸 모로 쓰러진다. 그리고 눈가물을 치는 꼴이 죽기가 십상이다.

"가만둬요, 흙냄샐 맡으면 살아납녠다."

"옳아, 흙냄새가 약이지."

민우는 정히 닭을 땅바닥에 뉘고 살아나기를 기다리나 좀처럼 일어날 상싶지 않다.

"설마 죽지야 않겠지."

민우는 날이 밝기를 고대하였다. 밤만 얼뜬 밝으면 돝을 사다가 밤을 기다려 쪽제비를 잡고 말리라 하였다.

*

아침에 민우는 닭이 눈을 뜨고 몸을 좀 가누는 것을 바라보며 어제 아침보다 매우 유쾌한 낯빛으로 집을 나섰다. 돝을 사러 나선 것이다.

출전:문장4(19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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