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아버지 / 전문 / 송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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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송영

 



1

서주사는 생각다 못해서 또다시 그의 아들 만식이의 책궤를 뒤져보았다. 조그만 책궤는 텅 비다시피 허룩했다.

얼마 전만 해도 금글자 놓은 두꺼운 책들이 가득 찼더니 지금에는 다― 떨어진 헌책 몇 권과 잡지, 원고지, 쓰다 버린 휴지 등속이 밑바닥에 조금 깔려 있었다.

만식이가 집을 떠나간 뒤로 벌써 일년이 넘었는데, 그 동안 이 책궤짝은 사오 차 이상이나 알알 샅샅이 뒤져 보곤 뒤져 보곤 했다.

처음 뒤졌을 때는 새로 정초해 놓은 '어서 막을 닫아라'라는 이 막짜리 희극 한 편을 얻어 냈었다.

다― 끝까지 마친 원고였으나, 맨 끝 페이지에는 '다시 써야겠다. 발표하기에는 부족하고 버리기에는 아까웁다. 계륵(鷄肋)이다'라고 씌어 있다.

서주사는 아들의 명예를 위하여 역시 그냥 두려고 생각하였으나 워낙 집안 형편이 절박하니까 할 수 없이 어떤 신문사에다가 약간의 원고료를 받고 팔아먹었다.

만일 그때 그 원고료가 없었다면 보통학교 삼학년 다니는 큰손녀딸이 월사금 밀린 것 때문에 쫓겨났을 것이다.

또는 새로 해산을 하고 드러누운 며느리 방이 냉방대로 그대로 있어서 산모 산아가 다 얼어 죽었을는지도 몰랐다.

만식이와 친한 동무들은 대개는 만식이와 함께 예심에 붙어서 고생을 했다. 그러나 그 외에도 형제같이 친하게 지내는 동무들도 몇 사람 남아 있었다. 그들 중에는 다달이 만식이 집에다 오 원씩 보내 주는 거룩한 우정을 발휘하는 동무도 있었다.

단 몇 푼 못 타는 월급에서 얼마씩 생으로 떼어서 보조해 주는 동무도 있었다.

또, 만식이의 두 딸의 학비를 책임지고 대주는 동무도 있었다.

사글세를 책임지고 내주는 동무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의 희생적인 인정이 넘친 원조가 있다 하여도 만식의 집 살림을 다 책임진다는 수는 도저히 없었다.

잡혀간 만식이에게는 사남매 외 어린것이 있다. 양친과 늙은 조모가 있다. 이 수많은 권속이 어떻게 동무들의 원조로서만 호구를 해갈 수가 있을까?

서주사는 날마다 아침이면 나가서 저녁이면 돌아온다. 하는 일이란 아들의 친구집으로 돌아다니는 것과 자기의 단 두 사람밖에 없는 친구인 사립학교 교장과 대서소하는 이의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몇 원간 생기면 활기를 띠고 돌아오고, 빈손이면은 고개를 처뜨리고 돌아왔다.

서주사의 아내도 돌아다녔다. 일갓집으로 돌아다니며 반찬 먹던 찌꺼기, 김치아랫도리, 쌀됫박 같은 것을 얻어서는 고개가 부러질 듯이 되어서 이고는 온다.

그들의 며느리, 즉 만식의 아내는 남의 집 바느질을 품팔아서 조금씩 살림에 보탠다.

이것이 다만 한 사람이었던 '버는꾼'을 잃어버린 이 집안의 지내 가는 모양이었다.

잡혀간 만식이는 가난한 소설가였다. 또, 그가 쓰는 소설은 가끔 압수도 되고 말썽도 일으켜서 가뜩이나 적은 원고료가 수입 안 되는 달이 더 많았었다. 그러나 어떻게든지 집안식구는 굶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는 지내 갔었다.

그래도 이 만식이만이 있으면 이같이 무더기 떼거지 꼴이 아니 되었을 것이다. 그만, 만식이는 그 압수 잘 되는 소설이 기어이 크게 말썽을 일으켜서 그 모양이 되어 버렸다.

2

서주사가 그 다음에 또 자기 아들의 책궤를 뒤졌을 때에는 삼분의 이쯤 쓰다가 내버린「간난이」라는 단편소설을 찾아냈다.

금이나 발견한 듯이 기뻐서 그는 그 나머지 삼분의 일을 자기 손으로 마치려고 계획을 했다.

서주사는 그래도 젊었을 때에는 신소설권이나 저작해서 팔아도 먹고 출판도 한 경험이 있다.

서주사는 젊었을 때 종로 정동 병문 안에서 커다랗게 책점을 낸 일이 있다.

출판도 수십 가지 이상이나 하고 흥정도 꽤 좋았었다.

그러나 젊은 기운에 어떤 기생에게 빠져서 출판권과 책권을 송두리째 테두리를 쳤다.

그때 그는 그러한 출판물의 작가로서 활약을 했다. 한문의 토대 지식이 있는지라 한문 고서를 번역도 하고 또는 그때 처음으로 유행하던 이인직, 이해조 일파가 창작하던 신소설 종류를 모방도 했다.

대개 그때 소설책 이름을 들자면 중국 소설을 번역(혹은 번안)한 것으로는「설인귀전」「조씨삼대록」「구래공전」「서한연의」「수호지」「서상기」등속이었고 신소설로는「강릉추월」「지지대」「옥중금낭」「설중매화」등속이었다.

번역한 소설도 그렇지만 소위 창작했다는 신소설도 실상은 이인직, 이해조 두 소설가의 작품들과 비슷비슷한 위조품이었다.

「치악산」이나「홍도전」「귀의 성」「혈의 누」「추월색」 들 같은 그때 항간을 울리고 웃기던 두 소설가의 작품은 서주사 같은 책점 소설가 솜씨로 이리저리 찢기기도 하고 변형도 되었다.

서주사는 이 같은 자기의 경험과 수완을 믿고서 이 아들의 작품을 완성시키려 했다.

물론 중요한 목적은 마쳐 팔아서 살림에 보태겠다는 데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도 너만한 소설가의 수완이 있다 하는 것을 뽐내 보겠다는 책점 소설가의 노파심도 있었다.

그리고 아들의 작품을 내 손으로 완성시킨다는 가족적 기쁨과 아울러 일종의 창조적 정열도 일어났었다.

깜박거리는 아기등잔불 밑에 가 앉아서 그는 조그만 안경을 썼다.

불 못 땐 겨울의 냉방은 천장에 얽힌 거미줄이 흔들릴 만치 외풍이 심하였다.

늙은 아내와 며느리는 네 어린것을 푹 껴안고 이불을 둘러쓰고 한편 쪽에 꼬부리고 누워 있었다.

얼어붙은 잉크를 흔들어서 겨우 풀고 꽁꽁 언 손으로 철필을 눌렀다.

먼저 원고를 읽어 보았다.

고무공장 다니는 간난이가 폐병이 들어서 시집도 못 가고 있는 판이나 그의 얼굴이 이쁘므로 어떤 동릿집 사내와 연애를 한다.

그 사나이는 전매국 다니는 직공인데 무슨 일엔지 잡혀가고 간난이는 인정 없는 자기 아비에게 팔아 먹히려고 한다.

소설은 여기에서 끊어지고 말았다.

서주사는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혼자말을 했다.

"그 녀석은 밤낮 쓴다는 것이 직공이고 잡혀가고 팔려가고 야단치고 하는 것뿐인가―---요새 소설 쓴다는 놈은 보이는 게 청승맞고 구저분한 가난뱅이밖에 없는 모양인가 봐."

하면서 아랫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그는 무슨 불평스런 일이나 우스운 일을 볼 때에는 으레 입술을 내민다. 이것이 정 심하게 되면 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입을 우물우물한다.

"할 수 있나. 세속이 그러니까…… 가만있자,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마칠까? 응, 가만있자, 딸을 팔어먹으려던 애비가 회개를 해서 눈물을 내고 잡혀갔던 동리 사나이는 무사백방이 되어 나와서 간난이와 혼인을 하고 간난이 병도 가을 하늘같이 말갛게 낫고, 게다가 돈벌이 자리도 생겨서 아들딸 낳고 일가 단란하게 지내 간다…… 옳아 이렇게 마치겠다."

서주사는 이렇게 구상을 마쳤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오늘 밤에 마치리라고 힘을 내었다.

그러나 제일의 난관이 닥쳤다.

아들의 작품은 문제가 모두 '하였다' '했다' '다'로 되어 있는데 자기는 아무리 '하였다' 식으로 쓰려고 해도 '하더라' '하였도다'로밖에 아니 된다.

그렇다고 아들의 '하였다'를 '하였도다'로 고칠 수도 없는 일이다.

쓰다가 찢고, 또다시 써보고 찢었다.

자정이 훨씬 지난 뒤까지 전력을 들여도 여전히 '하였도다'가 나오고 억지로 '하였다'를 써놓고 보면 당치도 않은 곳에 '하였다'가 붙어서 퍽, 어색하여 보였다.

이불 속에서는 간난애가 젖이 안 난다고 깽깽거리며 운다. 천장의 거미줄은 더 심하게 흩날린다.

날이 훤―하도록 써보아도 역시 마치지는 못했다. 그 이튿날 서주사는 할 수가 없어서 '아들의 작품을 완성시켜 보겠다는 기쁨'도 내버리고 그 미정고를 가지고 아들의 동무인 어떤 젊은 소설가에게 가지고 가서 마쳐 주기를 부탁했다.

며칠 뒤 신문에는 한 개의 완성된「간난이」가 신문에 발표되고 그에게 원고료 삽심 원이 서류로 왔다.

 



3

그 뒤에도, 또 몇 번 뒤져 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어서 인제는 궤짝 속에 대한 희망은 아주 끊어져 버렸다.

그러나 오늘 서주사는 하도 답답해서 또 이 궤짝문을 열었다.

인제는 헌 잡지도 없어지고 헌 휴지도 허룩해졌다. 이런 것들은 지난 겨울에 아주 궁극에 달했을 때에 군불 아궁이로 집어넣어 버렸던 것이다.

또는 쌀은 있고 나무가 없을 때 밥도 지어 먹었던 것이다. 두꺼운 책이면 다섯 권, 잡지면은 일곱 권만 가지면 한 끼 밥을 끓였다. 물론 한장 한장씩 떼어서 둥그렇게 말아서 불길을 일으키는 기술을 가지고 때어야만 말이다. 뭉텅이로 때었다가는 어림도 없이 모자란다.

그리고 이 궤짝 속에 남은 것은 철필로 잘디잘게 쓴 노트북 몇 권과 헌 소설책 중에서도 좀 성한 것 몇 권만이 남아 있었다.

서주사는 전과 마찬가지로 노트북과 헌 소설책을 몇 번 뒤적뒤적하였으나「간난이」같은 것이나마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낙망이 되어서 궤바닥에다 탁 던져 집어넣고 우두커니 앉았다.

다섯 살 먹은 손자녀석은 고개를 기울이고 옆에 섰다가는 시름없이,

"할아버지, 아버지 원고 팔 것 없소, 인제는."

비록 다섯 살밖에는 아니 되었어도, 몇 번 경험에서 이 같은 말을 할 줄 알았다. 으레 할아버지가 책궤만 열면은 아버지 원고를 찾는 줄을 안다. 어떤 때 밥을 못 짓는 때에는 배가 고파서 떼를 쓰고 울다가는 나중에는 궤짝을 가리키고 아버지 원고 꺼내서 쌀 팔아 오라고 야단을 친다. 그럴 때면 서주사는 기가 막혀서 허허 웃어 버린다.

지금도 서주사는 껄껄 웃었다.

"허, 네 아범 원고는 인제는 동이 났단다."

"동이 뭐야, 할아버지."

"없어졌단 말이란다. 인제 아빠가 오면, 또 원고를 쓴다. 그러면 우리 광희도 과자 많이 사다 주지."

"할아버지, 정말이지. 에구 좋아! 누나, 할아버지가 아빠 오면 나 과자 사준다고 하셨다."

하면서 좋아서 펄펄 뛰면서 냉방에서 산수 숙제를 하고 앉았는 큰누이에게로 들어갔다.

서주사는 여전히 허허거리면서 웃으나 그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그리고 또 한번 노트북을 헤쳐 보았다.

노트북 안에는 깨알 같은 글자가 가득 차서 있었다. 그리고 표지에는 창작각서(創作覺書)라고 흘려 썼다.

서주사는 워낙에 글씨가 잘고 또 공책에 쓴 것이므로 무슨 참고서인 줄만 알고 언제든지 자세히 읽어 보지를 않았다.

그러나 지금에는 한번 자세히 내용이 읽어 보고 싶었다.

그 중에 한 권을 가지고 예의 안경을 쓰고 읽어 보았다.

맨 처음 페이지에는 이러한 글발이 있었다.

끊이지 않는 노동은 생활의 법칙인 동시에 예술의 법칙이다. 예술은 관념화한 창조인 까닭이다. (발자크)

예술은 행동이다. (로맹 롤랑)

예술의 가치는 인습의 타파에 있다. 인습 속에서 헤매는 작품은 졸작이며 범작이다. (森漱外)

서주사는,

"왜? 인습이 나쁘담. 요새 젊은 축들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몰라."

혼자 중얼거리면서 또 한 장을 젖혔다.

거기에는 한 페이지를 잡아서 커다랗게, '아버지'라고 씌어 있다.

"아버지는 왜 커다랗게 써놨나."

서주사는 또 중얼거리면서 또 한 장을 젖혔다.

나는「아버지」라는 장편소설을 완성시키겠다. 조선에는 여러 아버지들이 있다. 투르게네프의「아버지와 아들」속에 나오는 아버지도 많고, 입센의「민중의 적」이나 하이엘맨스의「×××회」속에 있는 아버지도 많다.

조선의 아버지는 조선의 아들과 딴세상에 살고 있다. 감정과 사상이 다른 아버지와 아들의 나라 사이에는 다만 가느다란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는 인습의 줄이 얽혀 있을 뿐이다.

조선의 아버지에게도 큰 정이 있거라.

나는 이 소설의 완성을 위하여 내가 친히 보고 듣는 여러 수백 모양의 여러 수백의 조선의 '아버지들'의 모양을 이 책에 모아 보려 한다.

먼저 나는 나의 '아버지'의 모양을 적어 보려 한다.

그리고 그 아래는 뭔지 썼다가 까맣게 지워 버렸다. 서주사는 대단히 호기심이 났다. 그래서 안경을 벗어서 다시 닦아서 쓰고 그 다음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4

네 살 때.

이 칸이나 넘는 커다란 우리 방은 화류 의장과 사방 탁자와 문갑과 모본단 방장과 비단 이불 요로 화려하게 장식되었었다.

그때는 우리집도 잘살았고 우리 외갓집도 부자이었었다. 두 부잣집의 큰아들 큰딸이 서로 만나 부부가 된 나의 부모의 방은 화려하기가 짝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라고 부르고 덤벼들어도 한 번도 아버지는 나를 안아 주지 않았다.

낮에는 어른 앞에서 젊은 것이 자식을 안는 것이 뭐냐?는 할아버지들의 야단이 무서워서 그랬지만 밤중에까지 안아 주지 않을 게 무에 있나?

나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졌다. 어떤 때 밤중에 깨어 보면 어머니는 아버지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잔다. 나는 무섭고 분한 마음이 생겨서 '엄마'를 부르고 울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웃으면서 내 앞으로 돌아 드러누운다. 그래도 나는 분한 나머지에 어머니의 따뜻한 젖을 만지면서 그대로 울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어머니의 등뒤에다 무서운 얼굴을 쳐들면서 소리를 질렀다.

"울지 말어."

그때의 아버지의 얼굴은 무섭고 미웠다.

안아 주지도 않으면서도 악만 쓰는 아버지, 밤이면 어머니 젖을 못만지게 투덜대는 아버지는 네 살 먹은 나의 어린 머리에 깊이 미웁고 무서운 인상을 찍어 주었다.

다섯 살 때.

우리집은 따로 났다.

어머니는 부잣집 큰딸이라 금지옥엽같이 귀하게 자라났다. 손에다 물을 묻혀 보지 못하고 자라났다.

그러한 어머니가 역시 부잣집 큰며느리 노릇 하기에는 매우 고되었다. 침모가 있고 차집과 하님과 상노와 시비가 골고루 있기는 하지만 며느리 된 직책으로서 시어머니보다 먼저 자지도 못하며 시아버지 술상 심부름도 밤을 새워 가며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나의 할아버지는 글 짓고 술만 마시는 옛날의 선비요, 할머니는 엄정하고 예의만 찾는 역시 옛날의 주부였었다.

이러한 시부모 밑에서 어머니는 신음을 했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술을 좋아했다. 그러나 도저히 어른을 모신 한집안에서는 기를 펴고 맘대로 술을 먹을 수가 없었다. 엄부모의 기반 밑에서 해방되고 싶어하는 젊은 혈기는 뛰었다.

이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공모를 하고 더욱이 부자 외갓집의 경제적 원조 밑에서 따로 났던 것이다.

물론 파란과 곡절도 일어나기는 했었다.

따로 난 뒤의 아버지는 밤낮 술만 마셨다.

할아버지와 한집에 있을 때에는 혹 술을 먹어도 할아버지께 들킬까 봐서 몰래 방 속으로 들어가서 숨소리도 없이 자기만 했다. 그러나 걸리는 사람이 없어 자유스러워진 뒤에는 전에 눌렸던 반동으로 한갓 방종하여졌다. 주정은 나날이 늘었다.

그때는 겨울이다.

나와 어머니는 안방에서 자고 건넌방에는 안잠자기 마누라와 식모가 자고 있었다.

밤중쯤 되더니 대문짝 차는 소리가 난다.

나는 이런 때면 으레 잠이 깬다. 무섭기만 한 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사나운 짐승같이나 생각되었다.

언제든지 밤이면 취하여 돌아오면 어머니를 때린다, 세간을 깨뜨린다, 밥상을 동댕이를 친다, 온통 집안은 수라장이 된다.

그 이튿날이면 어머니가 야단치는 차례다. 그러면 아버지는 순한 양같이 다소곳하게 듣고만 있다가 깨어진 만큼 세간과 그릇을 그날 낮으로 다시 사들인다. 그러나 그날 밤이 되면 또, 어머니는 야단 만나는 차례다.

밤이면 아버지, 낮이면 어머니. 우리 집안은 밤낮으로 싸움이 벌어진다.

그 서슬에 나는 울기만 한다. 어린 마음이지만 집안이라고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안아 달라기는커녕 혹시 아버지가 불러도 달아나 버렸다.

밤마다 일어나는 야단 중에 그중 잊혀지지 않는 것이 다섯 살 먹던 이해 이밤의 일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싸우고 방망이로 세간을 들부시고 난 끝에 무슨 일인지 나를 죽인다고 야단을 쳤다. 나는 자리 속에서 옹그라져서 떨면서 느껴 울었다. 아버지는 방춧돌을 들고서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머니는 외마디를 쳤다.

"자식이 무슨 죄요."

울면서 아버지를 막았다.

안잠자기와 식모도 달려들어서 방춧돌을 빼앗았다.

그 바람에 방춧돌은 내 발치에 가 쿵 하고 떨어졌다. 만일 어머니와 식모들이 아니었더면 술취한 아버지는 정말 나에게 방춧돌을 내던졌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아버지에게 대한 정이 떨어졌다.

나는 아버지만 보면 호랑이 앞의 작은 토끼처럼 떨면서 무서워만 했다.

그리고 옆집 아이들이 저희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다니는 것을 보고는 한껏 부러워했다.

 



일곱 살 때.

그때는 가을이었다. 우리집 사랑 앞뜰에는 노란 국화가 그윽한 향내를 내뽑고 있었다. 나는 무심히 사랑 앞뜰로 놀러 들어갔다. 그때의 나의 귀에는 양금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버지 웃는 소리와 기생의 웃는 소리가 한데 섞여서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미닫이는 꼭꼭 닫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발소리를 죽였다. 가만가만히 발끝으로 걸어서 미닫이 밑까지 갔다.

그리고 가만히 엎드려서 틈바귀 사이로 들여다보았다.

아버지는 남치마 입은 기생과 마주 앉아서 양금을 친다.

조금 있더니만 아버지는 치던 양금을 내던지고 껄껄 웃으면서,

"요것아, 이번엔 네가 졌다. 징 칠 때에 홰 흥을 쳤어."

하면서 기생에게 달려들어서 입을 쭉 맞췄다.

기생의 얼굴은 새빨개지면서 색색거리고 웃는다. 기생을 쳐다보는 아버지의 얼굴은 봄동산같이 화창하고 나비 날개같이 가벼웠었다.

방춧돌을 들고 달려들던 무서운 표정은 찾으려야 없다.

왜? 이렇게 좋은 아버지의 얼굴이 나만 보면 짐승같이 찡그리기만 하였을까?

여덟 살 때.

어느 날 아침, 나는 발가벗겨서 건넌방 속에 갇혔었다. 방문 밖에는 기다란 회초리를 든 아버지가 섰다. 예의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회초리를 빼앗느라고 아귀다툼을 하고 섰었다.

나는 {천자}와 {계몽편}을 떼고 {동몽선습}을 배우고 있었다. 글방은 무섭다고 한 번 갔다가 도망을 해와서 할 수 없이 집에서 아버지에게 배우게 되었다.

아침이면 강을 한다. 글자가 한 자가 틀려도 금방 이와 같은 야단은 일어난다.

한 번도 웃지도 않고 악만 쓰고 가르치는 글이니 제대로 외워질 까닭이 없다.

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죄인 심문당하는 셈이다. 더욱이 글뜻을 모른다. 아버지는 한 식경씩이나 글뜻을 설명하여 주기는 하나 하나도 나에게는 이해가 아니 되었다.

한참 중언부언하면서 야단같이 설명을 하고 나서 '그러니까, 너도 그래야 한다' 하면 나는 그저 덩달아서 스러져 가는 소리로 '네―' 하고 대답을 한다.

'어쩌니까 그래라' 하는 것은 물론 티끌만치도 모른다.

"이건 자식을 죽이려우."

"걱정이 웬 걱정야, 똑똑 에미라고 이 모양이니까 자식이 점점 못되어 가지."

"못되기는 뭘? 못된다 말요. 어린것이 그만큼 배우면 그만이지."

"듣기 싫어."

"그러면 자식을 가둬 놔야 옳단 말요."

나는 벌벌 떨고서 울면서, 이야기가 어떻게 끝이 나나 하는 것을 한편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는 악마 같고 어머니는 천사 같았다. 나는 철이 날수록 아버지가 무서웠다. 변변히 '아버지' 소리 한마디를 못 하고 지냈다.

아홉 살 때.

머리 깎고 사포 쓰고 책 거저 주고 점심 거저 주는 보인학교로 입학을 하였다.

복건 쓰고 전복 입고 태사신 신고 다니던 도령으로부터 징신 신고 사포 쓴 소학생도가 되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무서웠으나 가끔 내가 곁눈으로 보면 나의 뒷모양을 보고 웃는다.

왜? 아버지는 나를 바로 보고 웃지를 않는가?

소학교 다닐 동안에도 아버지의 술주정이나 회초리질은 마찬가지였고 가끔 웃기는 하나 역시 말소리는 엄하기 짝이 없었다. 그 외는 다 마찬가지였으므로 열세 살까지 동안의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열네 살 때.

나는 소설책에 미쳐 지냈다.

학교에 갈 때에도 바지 속에다가 차고 가서 교실 뒷모퉁이에 가서 몰래 본다. 집에 있을 때에도 아버지 몰래 소설책만 읽었다.

그때에는 가끔 아버지에게 야단맞는 것이 이 소설책 때문이다. 학교 성적은 첫째 아니면 둘째로 줄곧 우등으로만 있었으니 야단맞을 일이 없다.

또 그때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따로이 한우당(韓于堂) 노인에게 논어를 배우러 다녔다. 이것은 이틀이나 사흘만큼씩 아버지에게 강을 하지만 역시 불통이 없었다.

이래서 나는 야단맞을 일이란 소설책 읽는 것밖에는 없다.「삼국지」,「수호지」,「서상기」,「비파기」,「서유기」,「홍루몽」같은 한문 소설도 원문으로 떠듬떠듬 읽었다.

그 외에는 모두 언문 길―책이다. 길―책이란 것은 인쇄된 책이 아니라 붓으로 베껴서 세주는 책을 말함이다.「조웅전」,「유충렬전」「심청전」,「춘향전」또 그리고 그때에 새로 생기기 시작한 신소설책들도 읽었다.

들키기만 하면 야단이 난다. 책은 갈가리 찢어지고 내 두 눈은 퉁퉁히 붓는다.

왜? 읽으면 안 된다는 이유도 없이 덮어놓고 금하기만 하는가?

순순히 앞뒤 조리가 분명하게 훈계했을 것 같으면 나는 그때 단연코 소설책과 발을 끊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 야만적으로 강압만 하였기 때문에 나는 반동으로 더 소설과 친하게 되었다.

똑같은 그해 겨울, 어느 날 밤이다.

나는 행랑방 계집애 내 동갑 먹은 복술이와 떡내기 화투를 쳤다. 마침 전날 밤에 고사를 지냈기 때문에 집에는 떡이 많았었다.

내가 한 목판 갖고, 또 복술이가 한 목판을 주고서, 한 번 지면 한 숟가락만큼씩 떼어서 주기로 작정했다.

복술이는 이름대로 얼굴이 복술복술했다.

두 눈이 어글어글하고 머리가 추렁추렁하게 늘어졌었다.

아랫목에서는 어머니가 책을 보시고 드러누워 계시다가 잠이 드셨다.

행랑방도 조용했다. 다만 시계 소리와 화투 치는 소리만이 짹각짹각 토닥토닥 하면서 밤의 정적을 가만히 깨뜨렸을 뿐이었었다.

"얘, 떡내기만 하면 심심하니 우리 다른 내기 할까."

"무슨 내기―"

"저어― 입, 입."

"입이 뭐냐?"

"저어 입맞추기 내기."

복술이 얼굴이 빨개졌으나 그대로 고개를 까닥까닥했다.

이래서 다시 화투 시작을 했다.

내가 져도 입을 맞추이고 이겨도 입을 맞춘다. 나와 복술이는 얼굴빛이 빨개 가지고 숨들을 쌔근쌔근 쉬면서 화투 치고 입맞추기에 정신이 빠졌다. 꿈 같고 무지개 같은 안개 속에 파묻혀 있었다.

내가 또 이겨서 막 복술이의 입을 맞출 때에 미닫이는 왈칵 열리면서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이 나타났다. 나와 복술이는 자지러졌다.

화투만 하여도 야단이 날 터인데 행랑 계집애와 입까지 맞추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열일곱 살 때.

××통 바람에 나는 배재학교의 모자를 벗어 버리고 새로 산 캡을 썼다.

인제는 아버지가 무섭지만은 않다.

답답해 보이고 민망해 보이고 또 노골적으로 말하면 우스워 보였다.

나는 가끔 아버지와 충돌이 된다.

열일곱 해 동안 눌려 오기만 하던 불평과 원망이 터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의 시작된 반항은 침묵의 반항이었다. 야단을 맞으면 속으로만 반항하던 마음이 불타고만 있었다.

말로 표현도 못 하고 동작으로 나타내지도 못했다. 나의 책상 위에는 일본말로 번역된 서양소설들이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과 투르게네프의「아버지와 아들」과 고리키의「삼인」등이 있었다.

소로의「나무 싹틀 때」도 있고 자크 론돈의「데부스의 꿈」도 있었다.

또「청년에게 소함」하는 따위의 팸플릿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에 나에게는 머리 기다랗고 단장 짚은 청년 몇 동무가 있었다.

내가 가진 이러한 책과 동무들은 나의 마음을 전과 다르게 해주었다.

그때에 아버지도 야단을 가끔 친다.

야단치는 내용은 아주 그전과 다르다.

'너는 제사 지낼 줄을 모른다.

너는 산소에 갈 줄을 모른다. 조상에게 정성이 없다.

너는 예의를 모른다. 사람은 첫째가 언어거동이 예법에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너는 집안 살림을 모른다. 부모를 공양하고 집안 다스리는 것이 모든 것의 근본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잊어서는 안 된다.

너는 세상을 모른다.

네 머리는 길다. 미친놈 같다.

너는 양책에만 미쳤다. 사서삼경이 제일이다.'

대개 이런 것들이 아버지가 나에게 야단치는 변한 내용이었다.

5

서주사는 여기까지 읽고 나서는 눈을 감았다.

더, 그 다음을 읽을 용기가 나지를 아니했다. 아들이 본 그의 지내간 자태는 그의 눈앞에 어른어른 나타났다.

귀여워도 야단을 치고 안고 싶어도 상을 찡그리고 지내 온 자기의 과거를 보아 왔다.

껴안고 싶도록 사랑스러운 때에도 역시 엄부의 표정을 지키기에 무한히 애를 썼었다.

한데 웃고 한데 뛰어 놀고도 싶은 때가 많았으나 한 번도 '아버지'로서의 위신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곤히 잠든 얼굴에다 입은 맞추어도 아버지 하고 달려드는 것은 본체만체를 했다.

아내와 같이 앉아서 아들 이야기로 웃음의 꽃을 피워 봤지만 마주 대놓고는 한 번도 웃지도 아니했다.

친구들과 만나면은 아들 자랑에 침이 말랐지만 직접 아들에게는 꾸짖고 훈계만을 해왔다.

그는 돌아간 자기 아버지를 생각했다. 자기의 어려서를 생각해 봤다.

그것은 지금 자기와 자기 아들과 사이보다도 더한 엄격한 생활이었었다.

예의를 지키기 위하여 정을 멸망시켜 버렸다.

자기의 아버지와 자기, 또 자기와 자기 아들, 이 층층이 내려오는 부자의 사이는 언제든지 겨울 같은 모양에 잠겨만 있었다.

서주사는 노트북을 다시 헤쳐 보고 다시 덮었다. 그리고 새카만 자기의 궤짝에다 넣었다.

이 궤짝은 돌아간 그의 아버지가 그중 귀애하던 {청련(靑蓮)시집}을 기념으로 보관해 두는 궤짝이다. 아버지의 {청련시집} 위에는 아들의 '창작각서'가 놓였다.

다섯 살 먹은 손자놈은 밥 달라고 악을 악을 쓴다. 그럴 때에 울타리 밖에서,

"편지 들어가요."

하는 배달부의 소리가 났다.

서주사는 아들의 편지를 받은 대로 또 눈을 감았다.

생각은 좋으나 집안을 몰라보는 놈이라고 다소 괘씸하게 알던 생각은 눈같이 사라졌다.

차디찬 마루에서 떨고 앉았는 아들의 고통을 뼛속들이로 멀리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 훌륭한 놈, 잘난 놈, 유명한 놈 하는 소리 없는 부르짖음이 가슴속에서 흘러나왔다. 이제까지 사랑하고 싶어도 못 해보던 사랑이 화산같이 폭발이 되었다.

그가 품고 있는 아들의 편지에는 어떠한 말이 씌어 있을까?

 

출전:중앙29(19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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