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은수저 / 해설 / 김광균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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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 김광균

 

 

요점 정리

 

지은이 : 김광균

성격 : 사색적, 상징적

구성

  1연 : 죽은 애기를 생각하는 슬픈 부정(父情)

  2연 : 애기를 잃은 아버지의 환상

  3연 : 죽음의 세계로 떠나는 애기의 영상.

제재 : 은수저, 아기의 죽음

주제 : 아이를 잃은 슬픔과 아버지의 정(父情)

표현 : 절제된 시어와 감정으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은수저'라는 매개물이 '아이의 부재'에 대한 슬픔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 행이 한 문장으로 이루어질 정도로 짧게 호흡이 되는데, 이는 비통한 심경을 매우 냉정하고 차분한 어조로 진술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이 작품은 죽은 아기에 대한 아버지의 그리움과 슬픔이 매우 절제된 감정으로 산뜻하게 그려지고 있다. 은수저 끝에 고인 눈물처럼 슬픔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부모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참척 (慘慽)’이라고 한다. 한자성어로는 西河之痛(서하지통 : '서하(西河)에서의 아픔'이라는 말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뜻한다. 이 말은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서하(西河)에 있을 때 자식을 잃고, 너무 슬피 운 나머지 소경이 된 옛일에서 온 말. 동의어로는 西河之淚(서하지루), 喪明之痛[상명지통 = 유사어로는 哭子而喪明(곡자이상명) : 자식의 죽음에 몹시 상심하여 비통함과 원통함에 소경이 됐다는 고사. - 출전 禮記], 慘慽之變(참척지변)

 

 

내용 연구

 

은수저[‘아기’의 상징으로 아기의 '장수와 복'을 기원하기 위한 은수저이기에 더 큰 처절한 절망감으로 다가옴]

 

산이 저문다.[‘아기’가 묻힌 산에 날이 저문다 / 하강과 소멸의 이미지로 '죽음'을 의미함]

노을이 잠긴다.[하강과 소멸의 이미지로 '죽음'을 의미함]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아기의 죽음을 암시]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백날이나 돌에 다른 사람이 壽福을 빌어서 준 선물 / 아기를 상징, 수복강녕(壽福康寧)의 의미 - 더 큰 처절한 절망감]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슬픔의 눈물 / 아버지의 눈에 어리는 눈물]

 

한 밤중에 바람이 분다.[아기가 있는 세계 (이승과 저승이 가까워지는 듯한 분위기)]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아기를 잃은 아버지의 환상 - 천진난만한 생전의 모습]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본다.[아기에 대한 아버지의 환상]

들창[이승과 저승의 경계]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바람 소리 때문에-안타까움]

 

먼 들길[죽음의 세계, 저승을 의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죽음의 세계로 떠나는 아이의 슬픈 모습 / 죽은 아기에 대한 애틋한 심정 /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슬픈 부정 - 아직도 부모를 찾아 어디를 헤매고 있을지 모름]

불러도 대답이 없다.[이승과 저승의 거리감에서 오는 절망 / 냉혹한 현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아기를 잃은 아버지의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과 현실로 돌아오는 시적 화자]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인의 이전 작품과는 경향을 달리하는 후기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1연은 화자가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는 모습이다. 저녁 식사 시간, 화자는 문득 아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잠깐 어디를 간 것이라고 믿어 왔지만, 저녁 밥상을 받고 아이의 빈 자리를 보며 그제서야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이의 방석에 놓인 주인 없는 '은수저'를 보며 화자는 눈물을 흘린다. '저무는 산'과 '잠기는 노을'은 하강․소멸의 이미지로서 아이의 죽음을 상징하며, 아기를 '애기'로 표현한 것에서 더 짙은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은수저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빌며 그가 아이의 돌잔치 때 선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화자는 그 은수저에서 더 깊은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은수저'에서 '애기'를 떠올리고, 다시 그것은 '부정(父情)'으로 확대됨에 따라 마침내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2연은 한밤중에 화자가 아이의 환영(幻影)을 만나는 모습이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화자는 들창을 열고 바람 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던 중, 불어 오는 바람과 함께 어디선가 방실방실 웃으며 방안을 들여다 보는 아이의 환영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화자가 반가와하기도 전에, 아이는 벌써 문을 닫고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3연은 아이가 죽음의 세계로 떠나가는 모습이다. 화자는 '먼 들길'로 제시된 죽음의 세계로 '맨발 벗은' 채 울면서 가고 있는 '애기'를 목메어 부르지만, 아이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그림자마저 아른거'릴 뿐이다.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던 2연의 '애기'가 3연에 와서는 사자(死者)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 있다. 아무리 목메어 부르며 그리워하더라도 이젠 더 이상 이 곳 이승의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아이임을 인정하고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데서 진한 육친애를 느낄 수 있다.

 

  시의 제재나 감정을 절제하고 담담하게 표현한 점에서 정지용의 <유리창Ⅰ>과 매우 닮은 작품이다.

   

 

이해와 감상2

 

 죽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은수저'에 의탁해서 표현한 작품이다. 시의 제재나 감정을 절제하고 담담하게 표현한 점에서 정지용의 <유리창Ⅰ>과 매우 닮은 작품이다.

 

 이미지즘 경향의 회화적 수법을 앞세운 이전의 시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김광균의 이 시는 자식 잃은 아버지의 뜨거운 부정(父情)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시는 해방공간의 정치성 짙은 시들과는 달리 김광균의 시적 관심사가 다시 시인의 내면의 문제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김광균이 문단에 처음 작품을 선보인 것은 불과 16세이던 1930년 동아일보 지면이었다. 그리고 첫 시집 {와사등}이 출간된 것이 25세 때인 1939년이고, 두 번째 시집 {기항지}가 나온 것이 33세 때인 1947년이었다. 결국 그는 서른 이전의 나이에 시인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한국 시사에서 확보했을 뿐 아니라, 해방을 전후해서 이미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거의 소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후 그는 시작 생활을 중단하고 실업계에 투신하여 역량 있는 실업인으로 활약하다가 문단 고별 시집인 {황혼가}(1957)를 출간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30년이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 생활을 재개하여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나, 예전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하고 말았다.

 

이 시는 두 번째 시집 ‘기항지’에 수록되어 있지만, 후기 작품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항지’ 발문에 '내 나이 스물여섯부터 서른까지의 것'이라고 기록된 것을 참고한다면, 이 시는 예전의 시와는 전혀 다른 경향의 작품으로 서른 이후에 창작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추보식 구성의 이 시는 화자인 아버지가 저녁을 먹으며 아이의 부재를 확인한 저녁에서부터 한밤중에 만난 죽은 아이의 환영과 죽음의 세계로 떠나는 아이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이 시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비통한 심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시어는 '눈물' 하나밖에는 없는 자식을 잃은 간결한 3연의 구성과 단문으로 행을 마감한 시 형식 속에는 자식을 그리워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아픔이 흠뻑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연은 화자가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는 모습이다. 저녁 식사 시간, 화자는 문득 아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잠깐 어디를 간 것이라고 믿어 왔지만, 저녁 밥상을 받고 아이의 빈자리를 보며 그제야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이의 방석에 놓인 주인 없는 '은수저'를 보며 화자는 눈물을 흘린다. '저무는 산'과 '잠기는 노을'은 하강하는 이미지로서 아이의 죽음을 상징하며, 아기를 '애기'로 표현한 것에서 더 짙은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은수저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빌며 그가 아이의 돌잔치 때 선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화자는 그 은수저에서 더 깊은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은수저'에서 '애기'를 떠올리고, 다시 그것은 '부정(父情)'으로 확대됨에 따라 마침내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2연은 한밤중에 화자가 아이의 환영(幻影)을 만나는 모습이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화자는 들창을 열고 바람 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던 중,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어디선가 방실방실 웃으며 방안을 들여다보는 아이의 환영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화자가 반가워하기도 전에, 아이는 벌써 문을 닫고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3연은 아이가 죽음의 세계로 떠나가는 모습이다. 화자는 '먼 들길'로 제시된 죽음의 세계로 '맨발 벗은' 채 울면서 가고 있는 '애기'를 목메어 부르지만, 아이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그림자마저 아른거릴 뿐이다.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던 2연의 '애기'가 3연에 와서는 사자(死者)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 있다. 아무리 목메어 부르며 그리워하더라도 이젠 더 이상 이 곳 이승의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아이임을 인정하고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데서 진한 육친애를 느낄 수 있다. 계에서의 <유리창>과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지만, <유리창>보다 화자의 감정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별다른 수사적 기교 없이 평이한 서술로 아픔을 토로하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이지만, 그것을 절제하고 여과하는 시인의 인간적 성숙도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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