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분석 / 박재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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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1.  작자 
  박재삼(朴在森, 1933~1998) : 일본에서 태어나 삼천포에서 성장.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수료. 1953년 <문예>지에 ‘강물에서’가 추천되고 1955년 <현대문학>지에 ‘섭리’로 등단했다. <60년대 시화집> 동인이었으며, 한의 정서를 노래함으로써 전통적 정서를 계승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으로는 <춘향이 마음>(1962),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바람>(1973), <어린 것들 옆에서>(1976) 등이 있다. 

2.  시구 이해
 (1)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 : 안정되지 않고 혼란된 상태의 마음 


 (2)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 : 그 불빛은 육친의 부재(不在)를 슬퍼하고  그 육친에 대한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오랫만에 일가 친척들이 모여 반가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임. 


 (3)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 이 시의 묘미는 저녁 노을이 울음으로 환치되는 상상적 변용에 있다. ‘가을’과 ‘노을’은 모두 사라져 가는 것들의 슬픔을 노래하기에 알맞은 배경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에 겪은 슬픈 사랑의 추억과 현재의 고독과 삶이 덧없음에 대한 한을 지닌 시적 화자의 눈에는 저녁 노을에 비친 강물이 울음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시각의 청각화) 


 (4)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 : 첫사랑의 황홀을 잘 표현한 구절, 첫사랑에 빠진 젊은 사람의 마음은 밝고 힘차다. 산골 물소리는 바윗돌 사이를 흘러 내리는 것이기에 그 또한 밝고 힘차다. 첫사랑의 기쁨을 산골 물소리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양자가 동질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  구성의 분석
  3연으로 된 자유시이다. 마치 한토막의 설화같은 구수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삶과 사랑의 한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아주 자연스러운 시상의 전개와 어휘의 구사가 특징적이면서도 낱말 하나 하나가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제 1 연 : 서정적 자아가 쓸쓸하고 마음 설레는 귀향길에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되살리다가 고향이 바라다 보이는 산등성이에 이르러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정경을 서술하고 있다. 


제 2 연 : 산등성이에 올라서서 마을을 바라보면서 제삿날인 큰집에 켜진 불빛과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의 저녁놀을 대비하여 제시한다. 제사를 맞아 고향에 찾아온 나의 삶의 고달픔 때문에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인 큰집의 불빛과 저녁놀은 울음으로 환치된다. 


제 3 연 : 가을 강의 추억이 슬프디 슬픈 것임을 제시한다. 기쁨만을 안겨주던 첫사랑의 산골 물소리도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까지도 실패로 돌아가, 이제는 미칠 일 하나밖에 남지 않은 씁쓸한 추억의 강으로 남아 여전히 도도하게 바다로 흘러가고 있음을 서술한다. 

 

 



4.  울음의 실체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이라는 다분히 객관 상관물적인 시 제목으로부터 비롯되는 서러움이나 울음의 실체는 이 시의 핵심적인 주제와 직결된다. 그런데 그 본체는 바로 이 시인의 가난하고 문학적이던, 시조풍(時調風)의 유년기 체험과 함께 생성된 예의 춘향(春香)과 남평문씨부인(南平文氏夫人) 및 누님의 예술적 재현인 것이다. ‘화상보(華想譜)’. ‘녹음(綠陰)의 밤에’, ‘한낮의 소나무에’, ‘자연(自然)’, ‘포도(葡萄)’ 같은 연작에서의 춘향과 어릴 적 시인을 사랑해 주던, ‘봄바다에서’, ‘어지러운 혼(魂)’, ‘밀물결 치마’의 가련한 남평 문씨 부인이요, 그녀의 변신(變身)일지도 모를 누님의 슬픔이나 참한 마음이 그 실체이다. 


  이렇게 박재삼 시학의 기본적인 형질을 이루는 여성적인 한(恨)이나 가녀린 정서는 그녀들 남평 문씨 부인과 춘향의 북받치는 설움들로 하여 곧잘 눈물겨운 울음으로 표출되는 것이요, 이 울음은 곧 시인 자신의 예술적인 카타르시스인 셈이다. 따라서, 박재삼 시에서의 울음은 참한 그녀들의 그것과 동질(同質)이어서, 따지고 보면 그다지 비탄일 수도 없고 저주나 오열일 수도 없는, 조촐한 정한(情恨)의 영역에서의 특별한 무상성(無常性)의 울음인 것이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의 울음도 이러한 순수하고 원초적인 인간의 본연한 사랑과 고독, 그리고 무상함에 대한 슬픔인 것이다. 이렇게 순정하고 원초적인 울음은 물질 공해와 세속에 물든 현대인의 정서나 마음 속을 닦아내고 함뿍 적셔 주는 감로수(甘露水)이거나 정화수 한 그릇일 수 있다. 이런 점에 한사코 신라나 고려 아니면 이조 여성의 정한 세계를 배회하며 재생시키곤 하는 박 시인의 희소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다. 그로 하여금 소월(素月)과 영랑(永郞) 및 목월(木月)에 잇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재, ‘자연 교감의 삶과 정한'에서> 

5.  작품 감상 (1)
  1974년에 간행된 시집 『천년의 바람』에 실린 시이다. 토속적인 언어와 한의 세계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사를 치르기 위해 고향에 찾아가는 길목에서 마을 앞을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그에 얽힌 어린 시절의 슬픈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시작도 끝도 불분명하고 리듬 역시 착 가라앉아 있다. 그러나 고향에서의 사랑의 실패라는 슬픈 한은 결코 만만치 않은 시적 모티프임에 틀림없다.

6.  작품 감상 (2)
  가을의 정취와 강물의 유장한 흐름을 통해 시적인 정감을 잔잔하게 노래하고 있는 이 작품은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시적 리듬의 효과가 뛰어나다. 비애의 정감이 소박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의 결합을 통해 시적 대상을 더욱 감각적으로 통합시킨 점이 주목된다. 한국 서정시의 전통 속에서 이 작품이 차지하는 위치는 바로 이러한 정서와 감각의 조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시상이 집약되고 있는 부분은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이다.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어 가는 강물을 보면서, 그 시각적인 이미지를 내면의 정서로 끌어 들여 ‘울음이 타는’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연의 정경과 시인의 정서가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1연은 제삿날을 맞아 큰집이 있는 고향을 찾아가다가 노을에 젖은 가을 강을 바라보며 친구의 슬픈 사랑의 추억을 되새기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 ‘-고나,-것네’와 같은 어미를 사용함으로써 현대시와 옛 노래 사이의 문체상 단절을 극복하고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가락을  이루어 내고 있다. 2연에서 이 시의 묘미는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 드러난 저녁 노을 이 울음으로 환치되어 있는 데 있다. 인간 본원의 사랑의 슬픔과 고독과 무상성에 대한 한(恨)을 지닌 화자의 눈에 저녁 노을은 울음으로 보인다. 3연에서는 사랑의 실패로부터 시작된 감정의 흐름은 강물의 흐름과 교차되며, 그것은 ‘소리 죽은 가을 강’이라는 자연적 배경이 단순히 토속적 정취를 불러 일으키지 않고  개인의 삶과 세월에 대한 담담한 성찰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7.  작품 감상 (3)
  박재삼의 시에는 짙은 한의 정조가 깔려 있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제삿날 큰집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 저녁 노을의 이상적 이미지, 그 노을에 젖은 강물의 울적함 등이 한스러움을 더한다. 


  이것은 물 이미지와 불 이미지의 교묘한 조응에서도 드러난다. 제삿날에 모이는 불빛, 노을의 서러운 정조가 무겁게 고인 강물이 나란히 흘러가는 것으로 그려, 무겁게 드리운 한의 세계를 극대화한다. 


  더구나 예스런 시어에 묻어 나는 영탄은 삶에 지친 화자의 심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한이 한국적 정서임을 고려할 때 이 고풍스런 시어와 한의 정서는 무척 잘 어울리는 것이다. 


  이 시는 크게 두 개의 의미 단락으로 형성돼 있다. 전반부는 큰집(고향)으로 향해 가는 자아의 내면 심경의 표출이며, 후반부는 가을 강을 바라보며 느끼는 마음이다. 전반부의 시상은 후반부에서 보다 심화된 인식으로 향한다. 화자가 전반부의 심경에서 후반부의 심화된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 매개체는 물론 ‘가을 강’이다. 이 가을 강의 의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해석의 요체가 됨은 말할 것도 없다. 


  화자는 고향 산골로 향하고 있다. 적어도 그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공간은 현재 고향이 아니다. 고향에서 떨어져 살아가는 존재인 만큼 그는 고독하며, 방황에 허덕이고 있다. 삶의 무게는 클 수밖에 없고, 무거운 삶을 살아야 하는 화자의 한이 전반부에 짙게 깔려 있다. 


  방황으로 갈피를 못 잡는 울적한 마음으로 친구의 서글픈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며 산길을 걷다 보면 산등성이에 이르러 눈물에 젖고 만다. 친구의 아픈 마음에 공감을 했다는 의미이지만 보다 정확한 의미는, 자신의 삶에 눈물지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친구의 서러운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서러운 삶과 동궤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화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겠다. 


  그리운 불빛도 불빛이지만 같은 색으로 불타고 있는 가을 강을 보게 된다. 화자가 포착하고 있는 강의 이미지는 인생의 편력과 동질의 것이다. ‘먼 과거(첫사랑)→과거(그 사랑의 뒤)→현재(그 후)’의 흐름은 ‘골짜기→강→하구’로 이어지는 공간적 이동과 교묘히 연합하면서 삶의 편력(遍歷)에 자연스럽게 합치된다. 기쁜 첫사랑이 지나가고, 그 사랑이 깨진 뒤에 오는 슬픔, 이제 걷잡을 수 없는 광기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어쩌면 인생의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고뇌는 소리치는 아픔이 아니다. 넓고 깊게 자리한 아픔이다. 그것은 ‘소리 죽은 가을 강’으로 표상된다. 삶은 서러운 것이다. 짙은 고뇌와 함께 흘러가는 것이 삶의 여정이다. 

8.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운율) : 내재율
 (성격) : 전통적, 서정적
 (특징) : (1) 판소리나 민요조의 종결 어미로 정감을 살림. (2) 반복에 의한 점층 효과
 (제재) :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든 가을 강
 (주제) : 삶의 서러운 한(恨). 인간의 본원적 사랑과 고독과 무상성. 귀향길에 바라본 가을 강과 한스러운 사랑의 실패
 (출전) : <춘향이 마음>(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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