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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촌(外人村) / 분석/ 김광균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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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촌(外人村) / 김광균


1.  시어 풀이
하이얀 : ‘하얀’을 강조한 표현.
모색(暮色) : 날이 저물어 갈 때의 희미한 빛.
산협촌(山峽村) : 산골짜기의 마을. 
역등(驛燈) : 역마차의 등불. 
달은 : 단.
전신주 : 전주(電柱). 전선 또는 통신선을 늘여 매기 위하여 세운 기둥.
화원지 : 꽃밭. 꽃 등의 식물 재배지.
외인 묘지 : 외국인 묘지.
공백 :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음.
고탑(古塔) : 옛 탑.
퇴색(褪色 ,退色) : 낡아서 빛이 바랜. 
성교당(聖敎堂) : 종교 단체의 신자들이 모이는 집. 
우에 : 위에.

2.  작가
  김광균(金光均, 1914~1993) 시인. 1926년 13살 때 이미 <중외 일보>에 시 ‘가는 누님'을 발표. 개성 상업 학교를 나와 회사원 생활을 하며 시를 쓰다가 1936년 <시인부락>의 동인이 되기까지의 10년간을 습작기로 볼 수 있으며 <시인부락>과 <자오선(1937)>의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차츰 감각적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보여 주었으며, 1938년 <조선 일보> 신춘 문예에 ‘설야’가 당선됨.
  시집에 <와사등(瓦斯燈)>(1939), <기항지(寄港地)>(1947), <황혼가(黃昏歌)>(1957) 등이 있다.

3.  ‘김광균’의 시 경향
  심상파(心象派) 계열의 모더니즘 시인. 이상의 다다이즘의 영향이나 김기림의 초현실주의적인 급진적인 요소보다 온건하고 차분한 회화적인 이미지에 치중함. 한국 시정시의 전통의 밭에 일차적으로 영미의 이미지즘을 접목시켰으며, 이탈리아의 미래파, 프랑스 상징주의를 수용(受容)했음. 

4.  시상(詩想)의 전개 
  이 시는 황혼에서 밤으로 옮아가는 시간 배경을 가지고 있다. 첫째 연의 저녁 안개, 노을에 젖은 구름으로 형상화된 시간대를 지나, 둘째 연에서는 조그마한 집들이 창문을 닫음으로써 '밤'으로 향하는 시간의 이행을 보여 준다.
  여기에서 밤은 어두운 시대 상황을, 그 속에 들어선 조그만 집들은 유폐된 낯선 공간의 분위기를 보여 준다. 안개라는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일종의 현대인의 방향 상실감과 공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조차도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은 아니다. '하이얀 / 고독한 / 시들은 / 가느란 / 여윈 / 퇴색한' 등과 같은 김광균 시 특유의 막연한 수식어들은 이 시에도 가득하다. 이 형용사들은 이 외인촌 그림의 배경색을 창백한 블루­비애의 색깔로 느껴지게 한다. 그 비애를 낯선 곳에서,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비애라고 볼 수도 있다.

5.  ‘외인촌’의 특징
  이 시는 서구 이미지즘의 영향 아래 씌어진 것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외인촌 같은 소재도 그렇지만. 시각적, 회화적 이미지의 창조, 공감각적 이미지의 활용 등의 표현 수법 또한 이미지즘의 영항을 말해 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표현 수법상의 새로움은 이 시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는 기법적인 새로움을 보여 주는 데 그치고 있을 뿐. 새로운 세계관이나 사상을 보여 주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 시는 애상적인 정조를 바탕에 깔고 있는데, 이러한 감상은 비정성(非情性), 견고한 지적 이미지의 구축 등을 특징으로 하는 서구 이미지즘과 김광균의 이미지즘을 구별지어 주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6.  작품의 구성
1연 : 산협촌의 저녁무렵의 모습을  원경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수평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우수와 연민의 정서가 주조를 이룬다. 
2연 : 시간의 경과에 따른 산협촌의 풍경이 근경으로 처리되어 있다. 수직 구조의 하강 이미지로 모든 물체의 정지 상태를 표출한다. 
3연~4연 : 화원과 묘지의 밤으로 야경을 묘사하였다. 소멸과 죽음의 수직 구조로 2연처럼 하강 이미지이다. 
5연~6연 : 산협촌의 아침을 전경으로 처리했다. 시간의 이행에 따른 수직 구조가 하강에서 상승 이미지로 전환된다. 특히 명사로 종결함으로써 간결성과 여운을 준다. 

7.  작품 감상 (1)
  이 시는 강렬한 색채로 채색된 회화적 이미지로 인하여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저녁 - 밤 - 아침'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변화에 따르는 감정의 변화가 동적 이미지와 정적 이미지의 교차를 통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시에서 사용된 이미지들은 시간의 흐름과 인생의 물락 내지 죽음을 암시하면서 시 전체의 분위기를 어둡게 물들이고 있다. 그러나 시의 결미에 이르면 '어둠(밤)­ 밝음(아침)'으로의 급격한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부활 내지 구원을 암시하고 있다. 

8.  작품 감상 (2)
  이 시는 외인촌의 정경을 그린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시킨다. 시의 배경은 '하이얀 모색 속에 피어 있는 / 산협촌의 고독한 그림'이다. 외인촌이 자리잡고 있는 두메 산골의 공간 배경에 하얀 저녁 안개가 피어 오르는 때를 시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그림은 각 연마다 그 나름의 독립된 장면을 형상하고  있다. 


  첫 연은 산협촌으로 가는 마차와 산마룻길 전신주 뒤의 구름, 둘째 연은 작은 집들과 돌다리 아래의 시냇물, 첫째 연은 화원지의 공허한 풍경, 셋째 연은 어둠이 깃든 외인 묘지의 묘사이다. '시들은 꽃다발'이나 ‘외인 묘지’의 이미지는 강한 상실감을 맛보게 한다. 다섯째 연은 촌락의 시계와 성교당의 지붕이 보이는 장면으로, 이 두 개의 높게 솟은 형상은 상승 이미지로서 다음 연의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 소리’에 연결된다. 6연은 내용면에서는 하등 연 구분의 이유가 없지만 따로 구분함으로써 그 신선한 공감각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각 연의 나열식 장면에 통일된 이미지를 부여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9.  작품 감상 (3)
  외인촌은 외국인 마을을 일컫는다. 그러면 외인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이 시가 30년대 모더니즘의 영향하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모더니즘의 중요한 테마는 인간성 옹호에 있다. 지적으로 통제된 표현 속에 산업 사회(폭력)로 인한 인간 소외의 문제에 눈을 돌린다. 이렇게 볼 때 외인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30년대라는 일제 하에서 우리의 모습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굴절된 모습이었을 것이고 , 따라서 이를 묘사하는 태도가 배우 애상적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낭만주의의 주된 정서인 애상과 우수가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작풍에서 나타남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이미지즘(회화성)을  내세우며 모더니티를 주장했지만 그 내용은 현실의 감상성을  감출 수 없는 30년대 모더니즘의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 모더니즘 시운동은 그래서 50년대 후반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 시는 시상이 구조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단편적 편린이 주가 된다. 그리고 지나친 회화적 수법으로 인해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의식이 빈약한 편이다. 그러나 30년대 상황에서 서구시의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보여 준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10.  작품 감상 (4)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시인 김광균의 이름이나 「외인촌」이라는 시를 모르는 사람들도 어쩌면 이 시 구절만은 외우고 있을지 모른다. 귀로 듣는 종소리를 눈으로 보는 분수로 나타낸 이 비유는 지금 읽어도 참신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청각에서 시각으로 시를 혁명하려던 30년대의 모더니스트들이 종소리에 파란 색칠을 해놓은 이 대담한 비유를 가만히 놔 두었을 리 없다. 모더니즘의 선교자였던 김기림은 말할 것도 없고, 시의 회화성(繪畫性)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둔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시론의 로고로 삼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시구는 시각 이미지나 공감각(共感覺)의 샘플로 인용되었을 뿐 시 전체의 구조를 통해 본격적으로 검증된 적은 거의 없었다. 공룡의 뼈나 발자귀는 그 생체의 구조와 관련되었을 때만이 의미를 갖는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는 「외인촌」의 그 시 전체와 유기적인 연관을 지닐 때 비로소 제 생명의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우선 「분수」라는 말부터 보자.


분수가 내포하고 있는 일차적인 의미소(意味素)는 「물」(水)이다. 그런데 외인촌에는 이와 관련된 바다, 시냇물, 물방울과 같은 물의 물질적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마차가 사라지는 것까지도 「그림 속으로~잠겨 간다」라고 표현한다. 잠긴다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물체가 물속에 침몰하는 것을 뜻한다.


붉게 타는 노을 역시 불이 아니라 물과 관련되어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이다. 사라지는 것을 「잠긴다」고 하고, 타오르는 것을 「젖는다」고 한 것은 종소리를 분수(물)로 비유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외인촌의 풍경 전체와 그 공기는 수족관처럼 투명하고 차갑고 조용하게 보인다.


그러나 김광균의 물의 물질성은 무거움을 상실한 가벼운 물, 상승하는 물, 그리고 수직의 공간성을 지닌 물이다. 그것이 「분수」의 ‘분(噴)’으로 그 두번째의 의미소를 이루고 있는 「솟구치다」(噴)이다. 「외인촌」에는 「~전신주 위엔」 「~벤치 위엔」 「~어두운 수풀 위엔」 「~언덕 위엔」 「~지붕 위엔」 등 「위」라는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만 해도 무려 다섯 개나 등장한다. 그리고 직접 수직성을 나타내는 물질로는 「산마루」 「전신주」 「갈대밭」 「외인묘지」(비석들), 그리고 고탑(古塔)과 성교당(聖敎堂)을 들 수 있다. 마을 전체가 「산협촌(山峽村)」으로 수직적 공간이다. 그러므로 「날카로운 고탑처럼 언덕 위에 솟아있는~」의 구절은 분수의 수직적 상방적 이미지에 선행하는 것으로, 「날카로운」 「솟아있는」의 수식어 등이 모두 그 높이와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다. 


「분수」의 세번째 속성은 「도시적」 「서구적」 근대문명의 의미소이다. 폭포나 냇물이 「자연의 물」이라고 한다면, 분수는 「인공(人工)의 물」 「도시의 물」이다. 그래서 외인촌의 「마차」는 달구지가 아니라 프랑스 영화처럼 「파란 역등」을 달고 있으며, 「산마룻길」에는 소나무가 아니라 「전신주」가, 그리고 꽃은 노변의 야생화가 아니라 「화원지」와 벤치 위의 흩어진 「꽃다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외인촌의 그 성교당 종소리는 자연히 산사(山寺)의 범종 소리와 그 이미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낙산사나 통도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누가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라고 할 것인가.
이러한 분수의 물질적, 공간적, 문명적 이미지들이야말로 우리의 전통적인 시골마을과 색다른 외인촌의 시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중심축인 것이다.


그러나 솟구치는 분수의 이미지는 「흩어지는」이라는 용언에 의해서 다시 역동적 이미지의 복합성을 띠게 된다. 울리는 종소리는 솟구쳐 오르는 분수요, 여운 속에서 사라지는 종소리는 흩어지는 분수의 물방울들이다. 「솟구치다」(噴)와 「흩어지다」(散)의 모순을 지닌 분수의 역동적 이미지는 외인촌 전체의 구조에 간여한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에 앞서 우리는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라는 구절을 읽을 수가 있다.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시각화하여 꽃다발과 같이 흩어져 있는 것이다. 소녀들이 한낮에 남기고 간 그 웃음소리는 종소리의 사라진 여운보다도 더 들을 수 없는 부재(不在)의 음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흩어지다」의 속성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흩어진 꽃다발의 꽃잎은 흩어지는 분수의 물방울과 같고, 시들어가는 꽃다발은 사라져가는 종소리의 여운과 같다. 그리고 「벤치 위에는」은 「성교당의 지붕 위엔」과 대구를 이룬다. 그렇다면 벤치는 바로 옆으로 누운 성교당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수직의 높이를 잃고 수평화할수록 「흩어짐」의 역동적 이미지는 강화된다.


분수의 마지막 의미소는 「푸른 종소리」의 그 푸른 빛깔이다. 외인촌의 시적 공간은 「하이얀 모색으로~」로 시작하여 「파…란 역등」, 그리고 「새빨간」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푸른 종소리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그 푸른 종소리의 「푸른 빛」은 분수(물)의 팔레트에서 선택된 물감의 하나일 뿐 외인촌은 먹으로 그려진 동양 산수화 같은 모노크롬과 강력한 대조를 이루는 다채색의 회화공간인 것이다. (그 자신이 외인촌의 풍경을 「그림」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가 연출해 내는 「외인촌」의 그 시적 공간은 한국인들이 전통 공간 속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서구문명 즉 모더니티라는 2차원의 공간인 것이다. 그러니까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의 그 「외인촌」은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회색 범종소리」의 우리들 ‘내부의 마을’(內人村)에 의해 차이화(差異化)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인촌은 파리나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라 바로 한국의 시골 속으로 들어와 있는 서양인들의 마을이므로 「外-內」, 「성교당/산사」의 그 공간적 대립항 역시 서로 오버랩 되어질 수밖에 없다. 제목은 「외인촌」인데 본문 속에서는 그것이 「산협촌」이라고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은 바로 뒤에 나오는 성교당의 그 종소리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대단히 중요한 시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공백한 하늘에 걸려있는 촌락의 시계」에 대해서는 전연 언급이 없었다. 촌락의 시계와 야윈 손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리키는 열 시가 밤 열 신지 열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조각 달(야윈 손)의 위치인지조차 검증되지 않은 채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만을 공염불처럼 외웠다. 우리 촌락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과 외인촌의 종소리가 알리는 그 시간의 시차(時差)…. 그 시차 적응의 긴장 속에 김광균의 진정한 시적 공간이 숨어있는 것이다.


「분수처럼~」의 그 구절이 모더니즘 이론의 표본이 된 것처럼 이제 「외인촌」 한 편의 시는 왜 우리가 지금 다시 한국시를 읽어야 하는 지를 밝혀주는 좋은 본보기로 남게 될 것이다.<이어령 교수>

11.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주지시 
(성격) : 회화적, 감각적, 묘사적 
(율격) : 내재율 
(어조) : 은근하고 정감어린 애상적(哀傷的) 어조. 나긋나긋하고 차근차근하며 은근함. 애상적(哀傷的) 목소리.
(심상) : 시각적, 공감각적 심상 
(제재) : 외인촌의 풍경 
(주제) : 이국적 정취를 통한 도시인의 고독과 우수. 인생의 종말과 영혼의 구제
(출전)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 (1935.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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