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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시(軟柿) / 분석 / 박용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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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시(軟柿) / 박용래


1.  작가
  박용래(朴龍來, 1925 ~ 1980) 충청남도 논산 출생. 1943년 강경상업학교 졸업. 1956년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 ‘황토(黃土)길’, ‘땅’ 등이 추천되어 등단. 이어 ‘엉겅퀴’, ‘코스모스’, ‘소묘’ 등 다수를 발표함. 그의 시는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언어의 군더더기를 일체 생략하고 시어의 정수(精髓)만을 골라 섬세하고도 간결한 압축미를 꾀하고 있다. 이 점에서 한국 현대 현대시의 새로운 방법론을 보여 주고 있다 할 만하다. 1961년 제5회 충남문화상 수상. 1969년 시집 󰡔저녁눈󰡕으로 󰡔현대시학󰡕 제정 제1회 작품상 수상. 1980년 제7회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 1984년 시전집 󰡔먼 바다󰡕 간행. 시집 :  󰡔싸락눈󰡕(1969), 󰡔강아지풀󰡕(1975), 󰡔백발의 꽃대궁󰡕(1979)

2.  박용래의 시세계
  박용래는 향토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세계를 순수하게 그려냈는데, 그의 향토 정서와 아름다움의 추구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외경심이 짝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자연 현상조차도 예사로이 넘기지 않는 관찰력으로, 향토의 사물들에서 아름다움과 의미를 포착해 내고 있다.


  박용래의 시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 속하는 것, 힘차게 약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러져 가는 것 등에 보다 큰 관심과 애정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는 생명 가진 존재 일반에 대한 깊은 외경의 마음,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용래 시의 형식적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언어의 절제와 표현의 간명함이다. 한 행이 두 단어 내지 세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시’에서도 확인되는 이같은 특성은 느릿느릿 흐르는 유장한 호흡과 상호 작용이 어떤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고 대상의 안쪽과 대상이 지닌 아름다움을 정밀하게 관조하는 시인의 태도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회화적 심상을 많이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3.  시어 풀이
(1)  비름 : 비름과에 속하는 일년초. 밭이나 길가에 나는데 잎은 길고 주로 녹색임. 어린 잎은 나물로 무쳐 먹음.
(2)  연시(軟柿) : 흠뻑 익은 감. 연감 혹은 홍시(紅柿).
(3)  제상(祭床) : 제사 때 제물(祭物)을 벌여 놓는 상.
(4)  심지 : 양초나 등잔, 석유 난로 따위에 실이나 헝겊을 꽂아 불을 붙이는 물건.
(5)  종발(鐘鉢) : 중발보다 작고 종지보다 조금 나부죽한 그릇.

4.  시구 풀이
(1)  비름잎에 꽂힌 땡볕 : 여름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녹색의 비름 잎에 내리꽂히듯 쏟아지고 있다는 표현. 바로 뒤의 ‘연시로 익다’라는 구절에 연결되어, 자연의 오묘한 생산 작용을 나타낸다.
(2)  한쪽 볼 서리에 묻고 : 늦가을에 내리는 서리를 맞고 감이 익어감을 표현한 것이다.
(3)  심지 머금은 종발로 빛나다. : 심지 머금은 종발이란 꼭지를 달고 있는 감의 형상을 나타낸 것인데, 이것을 기름(소기름 등)을 종발에 담고 그 속에 심지를 놓아 불을 밝히던 옛날의 등잔불에 연결시켰다.

5.  시의 이해
(1)  여름 한낮 ~ 軟柿(연시)로 익다 : 여름 →가을로의 변화는, 땡볕 → 연시로의 전이에 대응된다. 땡볕이 연시로 익는다는 시적 표현은 비록 일상의 논리적 차원을 벗어나는 것이지만 하나의 사물이 하나의 사물로서 소멸하는 데서 그치질 않고 전이와 변전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생성을 거듭해 간다는 시적 차원의 진실이다. 이러한 시인의 시적 인식은 모든 시간이나 사물, 혹은 현상이 저 홀로 독립하여 존재하여 존재할 수 없고 끝없는 인과적 과정 속에서 존재한다는 윤회론적 사고의 일단을 보여 준다.


    비름잎에 꽂힌 땡볕이 ‘이웃 마을’의 돌담의 연시로 익는다는 표현은 ‘나’와 ‘이웃’이 더불어 존재한다는 일원론적 사고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여름’과 ‘가을’, ‘땡볕’과 ‘연시’, ‘나’와 ‘이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존재한다는 시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구절이다.


(2)  한쪽 볼 ~ 종발로 빛나다 : ‘깊은 잠’의 하강적 심상은 ‘깨어나’, ‘빛나다’의 상승의 심상과 대조를 이룬다. 일상적 차원에서 겨울은 생명을 위축시키는 공간이지만 이 시에서의 겨울은 오히려 연시를 ‘종발로 빛나’게 하는 역설적 공간이다. 이런 역설적 공간은, 생명은 오히려 고통과 어둠 속에서 더욱 아름다운 것이라는 시적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13연의 ‘심지’는 감의 꼭지를 연상하게 한다. 꼭지가 떨어진 軟柿(연시)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제상에 놓여져 祭儀(제의)를 풍성하게 한다. 그러므로 겨울날의 연시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를 기약하는 하나의 상징이 된다.

6.  작품 감상
  이 시는 감이 한여름의 땡볕에 붉어지고 가을 서리에 익어서 눈 오는 겨울 어느 날 밤 제상에 오른 것을 노래했다. 형식상으로 이 시는 두 개 또는 세 개의 문장을 모두 14연으로 배열하여 전체적으로 언어의 절제와 표현의 간명함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두 개의 문장으로 볼 경우 9연의 ‘깊은 잠 자다’는 진행의 의도로 ‘자다가’의 뜻으로 해석되며, 세 개의 문장으로 볼 경우에는 ‘잔다’는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상의 전개상 세 개의 문장으로 보아 10연에서 ‘감’의 위상이 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남의 제상에 오르는 ‘감’으로 전이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회화적 심상을 많이 사용하여 한 폭의 생동하는 소묘를 떠올리게 한다.

 


7.  작품 감상
  박용래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향토적 정서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이다. 아무리 작은 자연 현상조차도 예사로이 넘기지 않는 관찰력과 언어의 군더더기를 일체 생략하고 시적 압축으로써 보여 주는 섬세하고 간결한 함축미는 그를 70년대 중요한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하게 하고 있다.


  이 시는 감이 한여름의 땡볕에 붉어지고 가을 서리에 익어서 눈 오는 겨울 어느 날 밤 제상(祭床)에 오른 것을 노래하고 있다. 단 2개의 문장을 14연으로 배열하여 전체적으로 언어의 절제와 표현의 간결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시각적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여 한 폭의 생동하는 소묘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구성은 상당히 치밀하고 적잖은 변화를 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율격을 보면 1~2음보로 한 연을 형성하고 있지만,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11연의 경우 의미상 10연에 연속되는데 음절 수가 10연에 비해 반으로 줄어 휴지(休止)가 길게 붙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의미 단락상 1․2․3 / 4․5․6 // 7․8․9 / 10․11 / 12․13․14연으로 구분됨으로써 10연과 11연의 위치가 전체 시상 전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오게 된다. 또한, 감이 여름에 익고 가을 서리를 맞고 있다가 겨울에 제사상에 오르는 시간적 추이 과정에 입각한 시상 전개에 맞춰 공간적 배경의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즉, 전반부에서는 ‘비름잎에 꽂힌 땡볕’이 ‘돌담 위 연시’로 익었다고 하여, ‘꽂힌’의 하강과 ‘위’라는 상승의 대조를 드러내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도 ‘깊은 잠’의 하강과 ‘깨어나’․‘빛나다’의 상승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편, 전반부의 주어는 ‘땡볕’이고, 후반부의 생략된 주어는 ‘감’, 서술어는 ‘빛나다’로 되어 있어 전반부의 주어인 ‘땡볕’에 연결됨으로써 내용이나 형식이 고도의 치밀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8.  시상의 전개 (1)
(1)  1연 ~ 3연 : 땡볕(여름)
(2)  4연 ~ 6연 : 연시가 익음(가을)
(3)  7연 ~ 9연 : 연시의 잠(가을)
(4)  10 ~ 11연 : 눈 오는 날 깨어남(겨울)
(5)  12 ~ 14연 : 제상에 오름(겨울)

9.  시상의 전개 (2)
(1)  1 ~ 6연 : 결실을 맺는 과정 묘사(자연의 오묘한 조화)
(2)  7~ 14연 : 제상에 오른 연시(인간과 자연의 만남)

10.  내용과 형식 : 교과서 253쪽 참고

11.  핵심 정리
(1)  갈래 : 서정시, 자유시
(2)  성격 : 서정적, 향토적, 회화적
(3)  율격 : 내재율
(4)  어조 : 내재율
(5)  심상 : 묘사적, 시각적 심상
(6)  제재 : 연시, 땡볕, 종발
(7)  성격 : ① 절제된 언어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 소재에 미학적 깊이를 불어 넣고 있다. ② ‘땡볕 → 연시 → 빛나는 종발’로의 감각적 전이를 보여 주고 있다.
(8)  주제 : 자연의 순리 속의 향토적 서정, 생명감으로 충만해 있는 연시의 아름다움
(9)  출전 : <현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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