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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인, 그들은 누구인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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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인, 그들은 누구인가 / 박재간 ( 사단법인 한국노인문제연구소 )

1. 젊은이들 눈에 비친 노인의 모습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분들은 지난날 많이 고생한 세대임을 직감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에 비하여 신체도 왜소하고, 허리가 구부러지고, 피부는 검고, 이마에는 주름살 투성이고, 손은 매우 거칠다. 신체가 왜소한 것은 과거 빈곤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양 섭취 부족으로 발육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하튼 젊었을 때 많은 고생을 한 세대들임을 알 수 있다.

오늘의 노인들은 젊은이들에 비하면 의복도 남루하고 신발 소지품 모두 값비싼 것을 지니고 있는 분들이 그리 흔치 않다. 노인정 같은 곳에 나가 보면 그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담배도 좋지 못한 것을 흡연하는 경향이 있고, 음주를 하는 데도 소주에 김칫조각을 곁들이는 것이 고작이다. 젊은이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빈곤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외출해서 식사를 해야 할 때는 구멍가게에서 빵 조각이나 우유를 사서 먹든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급 식당을 무상 출입하는 젊은 세대들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현대사회가 이룩해 놓은 문화시설이나 레저시설은 노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사우나, 헬스클럽, 고급술집 등의 시설도 노인들과는 거리가 멀다. 승용차나 택시는 젊은이들의 전용물처럼 인식되고 있어 노인들은 이용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용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돈이 없기 때문이다. 세대간에 소득재분배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못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외출이 가능한 계절에 대부분의 노인들은 마을 근처 공터나 나무 그늘 밑에 자리를 깔고 동년배의 친구들과 모여 잡담을 하며 소일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젊은이들의 세계와는 다른 문화권 속에 사는 이방인과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사회적으로 제공되는 노인정이 있고, 노인학교가 있기는 하나 투자가치가 없는 탓인지 시설이 허술하고 조잡하거나 비위생적인 곳이 적지 않다. 그나마 이런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회비를 내야 하는데, 그것을 감당할 만한 경제력이 없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도시에는 주택구조 또는 주택사정의 문제 때문에 노인들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집이 협소하면 노인들은 독방을 배정받을 수가 없게 된다. 이럴 경우 손자녀들과 같은 방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같은 방을 사용하면 시험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투덜거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여름철에는 외부에 나가 소일하다 들어오면 불평을 덜 수 있지만 겨울철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며 집안에 웅크리고 있어야 한다.

오늘의 노인들은 가사참여권을 상실하고 있어 자식의 월급액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그들이 보너스를 받았는지 여부도 알 길이 없다. 며느리는 입버릇처럼 돈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기 때문에 용돈을 달라는 말도 할 수 없다. 어림 짐작으로 판단해 보아도 며느리는 매달 상당액의 용돈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늙은 부모님을 대할 때는 항상 돈이 달린다고 말하고 있다.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노인의 수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집안에서 마음을 붙일 만한 곳이 없다. 용돈이 넉넉하면 친구들끼리 어울려서 외부에 나가 취미활동도 할 수 있는데 수중에 돈이 없는 노인들은 그것도 불가능하다.

최근 우리 나라 자녀들 중에는 부모 부양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노인일수록 고독감, 고립감, 소외감을 느끼게 마련인데 그러한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우리 나라 노인 중에는 자녀는 있으나 그들과 동거하지 못하는 노인이 이미 35.0%를 상회하고 있다. 앞으로 젊은이들의 노부모 부양의식은 더욱 감퇴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노인사회의 앞날은 더욱 어둡기만 하다.

노인들 중에는 건강이 좋지 못해서 항상 결리고 쑤시는 곳이 많으며, 치아도 나쁘고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람이 꽤 있다. 기운이 없어 목욕도 자주 못하고 내의도 제 때에 갈아입지 못하는 때문에 몸에서 노인냄새가 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손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2. 노인들이 살아온 시대적 배경

노인들은 우리 젊은 세대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들인가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들은 지난날 어떠한 사회적 배경에서 살아온 분들이며, 우리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고생을 한 사람들인가를 알아보자. 이러한 것들을 소상히 알게 되면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80세가 되는 노인은 한일합방이라는 민족의 비운이 겹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국운이 기울던 1910년대에 출생한 분들이고, 금년 70세의 노인은 조국의 독립과 주권회복을 외치며 온 겨레가 궐기했던 3.1운동을 전후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분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전통적 농경사회에서 태어나 유교적인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청장년 시절에는 부모님들께 마음과 정성을 다 바쳐 효의 규범을 몸소 실천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재산의 소유권, 금전의 관리권, 가사의 결정권은 으레 노부모의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 왔다. 또 오늘의 노인들은 젊었을 때 모두가 그러한 가족규범을 실천에 옮겼던 사람들이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얻은 수입이라 하더라도 일단 부모님께 갖다드린 후에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 생각했고, 또 그러한 규범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했다. 노부모는 명주옷, 젊은이는 무명옷을 입는 것이 상식화되어 있었고, 생선, 고기, 과일, 쌀밥 등 고급음식은 부모님께 드려야 하고, 남은 것이 있으면 자녀들 차지가 된다는 생각으로 웃어른들을 극진히 모셔온 사람들이 바로 오늘의 노인들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과 오늘의 젊은이들과는 가치관의 차이가 있으며, 이런 것들이 원인이 되어 때로 세대간 대화의 단절이라는 문제점이 야기되기도 한다.

오늘의 노인들은 자식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서 자신의 젊음을 희생해 가며 살아온 세대들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탈피하지 못했던 이들은 자식을 자산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자식만 많이 낳아서 잘 키우면 자신의 노후생활은 그들에 의해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으로 믿었던 것이라든지, 스스로의 노후생계 준비를 소홀히 하면서까지 있는 재산을 모두 자녀교육비에 투자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 등은 자녀를 자산시하는 가치관을 신봉했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해방후, 우리 나라는 선조 대대로 살던 정든 고향과 문전옥답을 버리고 무작정 도시로 이주하는 어버이들의 수가 증가했다. 현재 6, 70대의 노인들이 바로 그러한 유형에 속한다. 이것은 자식을 교육시켜 입신출세만 시키면 자신의 노후는 그들에 의해서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어버이가 행상을 하거나 날품팔이노동, 머슴살이, 식모살이, 삯바느질, 지게벌이 등으로 고생했다는 사례는 우리 나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북청 물장수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북청지방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 나라에서 20세기 중엽을 살면서 자식을 키워 온 모든 부모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6·25동란으로 인해 폐허가 된 잿더미 위에서 헐벗고 굶주려가며 어린 자녀들을 키우고 교육시켜 온 사람들이 바로 오늘의 노인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노후가 보다 보람되고 안락할 수 있도록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할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인이 소외되는 일이 있다면 이는 인륜도덕상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오늘의 노인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으로 희생당한 세대들이다. 이들은 지난날 일본인에게 농토를 뺏기고 어린 처자식을 데리고 북만주 또는 시베리아 땅으로 이민을 가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으며, 이들 중의 상당수는 강제로 징집, 징용을 당하여 침략전쟁의 총알받이 노릇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젊은 여성을 '정신대'라는 명목으로 전쟁터로 끌고 가 왜군의 뒷바라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는데 이들이 바로 오늘의 노인세대들인 것이다. 땀흘려 농사를 지어도 그 대부분은 공출이라는 미명하에 수탈당했으므로 대부분의 농민들은 봄이 오기도 전에 양식이 떨어져 초근목피나 대두박으로 연명을 하며 자식을 키워온 사람들이 오늘의 노인들이다.

3. 어려웠던 시대의 주인공들

오늘의 노인들은 식민지 문맹정책의 제물이 된 사람들이다. 우리 나라 노인들은 외국 노인들에 비해 교육수준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당시 일본인들은 한국에 학교를 많이 세우면 한민족의 교육수준이 높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민족의식이 강해져서 독립운동이 가열될 것이 겁났다. 따라서 그들은 한국을 통치하는 수단의 일환으로 우민정책 및 문맹정책을 폈고,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이 바로 오늘의 노인세대들인 것이다. 젊은이들 중에는 부모님들이 젊은이에 비해서 교육수준이 낮은 것은 젊었을 때 공부를 안하고 게으름을 피웠기 때문으로 오인하는 분도 있다. 또 노인들은 무식하고 교양이 없다고 헐뜯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 그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지난날 일본은 우리의 언어, 역사, 전통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펴왔다. 오늘의 노인들 중에는 당시 이러한 정책에 대항, 투쟁하는 과정에서 경찰서나 감옥을 자기집 출입하듯 해야 했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심하게 고문을 당하거나 생명을 잃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오늘의 노인들 중에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중국으로 망명하여 조국광복운동에 가담하는 등 고난과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이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낀 세대들이라는 점에서 젊은이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오늘의 노인들은 8. 15해방의 혼란을 틈타 창궐한 공산당의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적화통일의 흉계를 물리치며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항상 주역을 담당했던 분들이다. 6. 25동란 때에는 공산군의 남침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생명과 재산을 바쳐 싸워 그들을 물리치고 우리의 국가를 더욱 튼튼한 기반 위에 올려 놓은 것도 노인 세대의 공로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경제 체제하에서 풍요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이들이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주춧돌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젊은 세대들은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오늘의 노인은 6. 25동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북한의 흉계와 비인도적인 만행을 몸소 체험한 세대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은 전후 세대들에 대하여 역사의 경험자 또는 산 증인으로서 대북한관을 피력하고 그들을 선도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는 거리마다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승용차의 대열이 꼬리를 잇고 있다. 문화시설, 레저시설 모두가 선진국 수준을 육박하고 있다. 지난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러한 풍요로운 사회환경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젊은이들이 잘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의 번영된 사회가 이룩되기까지에는 과거의 세대들이 어려운 사회 여건하에서 땀 흘리며 노력해서 쌓아올린 토대 위에서 비롯된 성과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오늘의 노인은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청장년 시절에 더욱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그들은 어떠한 난관, 어떠한 희생이 있다 하더라도 자녀들만은 공부를 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이룩된 것이 오늘의 고학력 사회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회개발, 경제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갈 수 있는 것 역시 고학력의 인적 자원이 뒷받침되고 있다. 젊은이들 중에는 잘된 것은 자신의 공이고, 잘못된 것은 부모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오늘의 젊은이들 중에는 사회적인 지위를 얻게 된 것은 모두가 자신이 잘났기 때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님들이 지난날 자식들을 키우는 과정에서의 노력과 노고가 없었다면 과연 젊은이들이 오늘의 사회적 지위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는 오늘의 노인들이 자라온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들이 자녀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는가를 알아 보았다. 노인들은 지난날 자녀들을 자산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자녀를 두었고 또 자녀양육비의 과다 지불을 서슴지 않았는데 이러한 것이 원인이 되어 지금 스스로의 노후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지금 노인들 대부분은 가정에서 들러리 신세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녀들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고 오는 충격 역시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경로효친의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당사자인 노인들은 그러한 말들이 실감 있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말뿐인 서비스만 요란하고 정작 노인대접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4. 설 땅을 잃어 가는 노인 군상들

지난날의 농경사회에서는 노인은 가정내에서 카리스마적인 권위와 막강한 권한 그리고 높은 지위가 보장되어 왔기 때문에 가정내에서의 노인문제란 별반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의 노인은 가독권자(家督權者)로서 가족을 통솔했고, 영농의 경험자로서 농사일을 지휘했으며, 집안의 웃어른으로서 손자녀에 대한 훈육권을 행사하고, 가족의 대표권자로서 대외적인 중요사를 처리했다. 이러한 사회에서 자식은 부모에 의해서만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부모를 통해서 생산수단과 가산을 상속받았으며 부모의 후광으로 사회적 지위의 취득이 가능했다. 따라서 전통 사회에서는 노인은 자녀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모든 자녀들은 제각기 앞을 다투어 가면서 노인을 극진하게 모셨다.

그러나 사회가 근대화됨에 따라 가정과 직장이 분리되고 정치적, 종교적, 교육적 재기능이 분화되었다. 부모와 자녀의 직업이 달라지면서 부모는 자녀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장래는 부모가 개척해 줄 수 없게 되었다. 가족간의 인간 관계도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민주화의 물결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상하관계에서 대등한 위치로 바꾸어 놓았고 나중에는 부모를 자식에게 부양받는 존재, 즉 예속관계로 전도되기에 이르렀다. 자녀들 중에는 부모의 공적을 따지거나 남의 부모 공적과 비교하고 부모를 대함에서도 급부에 대한 반대급부의 교환관계로 해석하여, 지난날 부모가 잘해 주지 못했으면 봉양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지니는 자가 보편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전통 사회에서는 공동체적 부모중심적 집합주의가 중시되었고 또 그것은 젊은 자녀들에게도 이익이 되기도 했으므로 대가족 성립이 가능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가족구성에서도 핵가족 또는 부부중심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노인들이 자녀들에 의한 동거 부양의 현존 관습을 존속시키기에는 많은 시련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관습에서는 노인들이 자녀들에 의해서 부양받아 왔다고는 하더라도 모든 자녀들에 의해서 부양받은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장남 단독부양 제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 사회에서 장남은 노부모부양, 가계계승, 조상제사 등을 책임지는 대신 재산상속에서 타 자녀들에 비해서 월등한 우대를 받는 불균등상속의 원칙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아 왔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여성단체들의 주도하에 부모재산을 모든 자녀에게 균등 상속하자는 것을 골자로 하는 민법개정운동이 일어났고 1970년에는 드디어 그것이 법제화됨으로써 장남은 종전까지 노부모 부양과 조상제사의 대가로 보장받고 있었던 재산 상속상의 특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러한 재산 상속에 대한 법개정으로 인해 당장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노인세대들이다. 큰며느리 쪽에서는 재산상속의 우대도 받지 못하는데 장남만이 부모부양을 책임진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론을 내세우는가 하면, 차남이나 딸은 전통적인 관습에서는 부모 부양은 장남 책임인데 내가 왜 모셔야 하느냐는 식으로 응수한다. 노인 부양을 사회보장제도에 의해서 해결하고 있는 서구사회에서는 재산균등 상속의 법이론이 타당성을 지닐 수 있을지는 모르나 우리는 분명히 한국 민족이고 생활양식, 사회규범, 부양형태, 가치관, 그리고 역사적 문화적 배경 등에 비추어 서구인들과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법개정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최근 우리 나라 노인 중 장남 부부와 동거하는 비율이 30% 이하로 급격히 감소되고 있는 현상이라든지, 일정한 거처 없이 여러 자녀 집을 전전하며 생활해야 하는 노인들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요인 중에는 가족붕괴를 촉진하는 이러한 법조항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부 여성단체에서는 호주제도 자체를 폐지해 버리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행 호주제도는 책임도 의무도 없는 것이므로 차제에 삭제해 버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가사결정권도 재산관리권도 모두 젊은이들에게 넘겨준 노인들에게 설사 호주라는 칭호가 상징적인 성격의 것이라 하더라도 이것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만일 우리 나라가 앞으로 호주제도마저 폐지한다면 가정내에서의 노인 위치에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가계계승, 조상제사 등을 골격으로 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제도는 전면적으로 붕괴되지 않을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특히 농촌에서의 젊은이들의 이농현상과 인구의 지역간 이동의 심화는 핵가족화의 촉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어 우리의 전통적 대가족 제도는 그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

국가나 사회는 경로효친 사상의 앙양을 통해 노인을 가족이 보호하는 미풍양속이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지만, 사회학이나 가족관계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산업사회에서의 가족 해체현상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앞으로 생계문제가 어려운 노인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을 지는 정책개발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회는 날이 갈수록 변하고 있다. 물질위주의 사회, 민주와 평등 등 서구사회의 물결은 가정에서의 노인의 위치를 점진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종전에는 부모와 자식관계에서 상하관계의 위계질서가 존중되었으나 민주주의 평등의 사상이 침투하면서 그것은 대등한 관계로 바뀌어지고 있다. 가정에 따라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예속되는 관계로 뒤바뀌고 있기도 하다.

가족문화가 유지되는 사회일수록 노인은 가족부양에 의해서 노후생활을 보장받기가 용이하다. 가헌(家憲), 가풍, 가훈 등은 가족문화의 얼이고 핵심이다. 가족문화라는 것은 일상생활 면에서의 규범적 행동, 의식적(意識的) 행동에 이르는 장기간에 걸친 관습에 의해서 형성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통칭 가문의 전통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문화 또는 가족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없는 요인들이 나타난다. 현재 우리 나라 가정에서는 가산과 가계를 부모에게서 자식 부부에게로 물리고 있는 추세이지만 가문을 유지 또는 발전시킴에서 필요불가결한 문화유산은 계승되지 않고 있다. 특히 핵가족하에서는 가족 문화 전달의 기회가 더욱 제약된다.

노부부와 젊은 부부가 별거하는 상태에서 단편적인 접촉만으로는 가문의 문화유산을 자녀에게 올바르게 전수하기란 더욱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전통문화와 윤리규범이 올바르게 전수되지 않는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만족할 만한 효도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5. 노인들도 별거를 원한다

현재 우리 나라 노인들 중 절대 다수는 자녀들과 동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통적인 가족구성 형태에서의 자녀동거와는 본질적으로 그 성격을 달리한다. 과거 가족제도하에서의 노인은 자녀를 보호하고 지배하는 위치에서의 동거였는데 반하여, 오늘의 3세대 가족에서의 노인은 자녀들에게 종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부양받아야 하는 존재로 전락되고 있다. 노인들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가정내에서의 3등 가족으로 자처하는 경향도 있는데 이것은 가정에서 그들의 권한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위신 또는 권위마저 여지없이 추락되고 있음을 개탄하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만 있다면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독립생계를 꾸려나갈 것을 원하는 노인이 많이 있다. 부모 또는 조부모로서의 체통을 손상 당하면서까지 자녀들에게 의존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그들이 지니는 잠재의식이다. 신체적 노쇠현상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노인 중 일자리를 원하는 비율이 50.0%선을 상회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교육정도 또는 생활수준이 높은 노인일수록 자녀들과 동거하지 않는 비율이 높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 나라의 가족구성 형태가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를 예고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앞으로 우리 나라가 노인들에 대한 '일거리 부여' 또는 '노령연금' 등의 수단을 통해서 소득보장정책을 추구해 나간다면 자녀와 별거하는 노인들의 구성비율은 급진적으로 증가할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 노부모를 자녀들이 부양하는 우리 고유의 관습은 쉽사리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최근 주택 구조상의 문제가 있고 고부간에도 꽤 많은 불편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오랜 세월에 걸쳐 관습화되어 온 부모부양의 사회규범이 붕괴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사회학에서는 이것을 '문화지체의 이론'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문화나 관습은 조건의 변화처럼 급변하지 않는다는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시기에 이르면 이러한 관습체계가 붕괴될 것을 예상해야 하고 그러한 사태에 대비하는 준비도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는 노인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가정보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노인복지법' 제3조에는 '가족제도 유지발전'을 위한 규정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국가와 국민은 경로효친의 미풍양속에 따른 가족제도가 유지 발전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했고, '경로헌장'에서는 '노인은 가정에서 전통의 미덕을 살려 자손의 극진한 봉양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우리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도 못하다.

앞으로 국가나 사회는 노인문제가 제기되는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제기된 문제점을 보완 또는 시정해 나가려는 적극적인 자세와 보다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고령화 사회의 위기와 도전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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