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제 3의 물결 / 해설 / 앨빈 토플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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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물결 / 앨빈 토플러

  미국의 노예 해방과 남북 전쟁, 그것은 무엇이었던가? 링컨이라는 한 위대한 인물의 결단으로부터 비롯한 인도주의적 투쟁이었던가? 오늘날 그런 감상주의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북전쟁은 일본의 명치유신이나 러시아 혁명과 더불어 농업 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충돌, 다시 말해서 인류사에 있어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 사이의 충돌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인 사건이었다.

  길게 잡아야 불과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제2의 물결은 그처럼 짧은 기간에 1만년 이상 지속해 온 첫번째 물결을 여지없이 물리치고 인류의 생존방식에 전혀 새로운 양태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예컨대 오늘의 우리로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학교나 군대와 같은 수용체계도 그 전에는 생소한 것이었으며, 사실 학교라는 조직도 공자의 그것을 본뜬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시간엄수의 관념도 제2의 물결과 더불어 생겨난 것으로, 결국 분업화된 공장에서 일하게 될 장래의 직공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규정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제2의 물결에 끼어들기 위해 애쓰는 나라들이 지구상에는 많지만, 한국이나 대만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실패하고 있으며, 또 그러한 뒤늦은 몸부림이 권할 만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단적으로 생태계 파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산업 문명은 그 정당성을 상실했으며, 이들 후발 국가에서 산업화라는 명분은 예전의 고유한 미덕을 파괴해 버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세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혼란에 절망한 삶들은 종말을 논하거나 옛날의 세계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옛날 전원의 생활은 목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제2의 물결이 가져다준 인간생활의 향상도 인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현재의 직선상에서만 보려는 상상력의 결핍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국가건 사회주의 국가건 제국주의로 나아가게 마련이던 이 산업 문명은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 생산에 있어서는 엄격하게 제어되는 노동자요, 소비에 있어서는 주체할 길 없는 욕구를 충돌질당하는 이 모순된 인간형은 이제 사라질 것이다.

  우선적인 그 모티브는 에너지 문제에서 비롯한다. 문명은 곧 에너지요, 제2의 물결은 석탄과 석유라는 재생불능의 에너지원으로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불과 300년 사이에 지구상에 큰 격동을 몰고 왔으며, 또 대량생산을 낳았고 그 시스템에 물든 인간으로 하여금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의 대량학살까지 부추겼던 이 화석연료들은 이제 고갈되고있는 것이다.

  결국 산업사회를 성립시키는 기본요소들이 대체되어야만 하는 것이요, 우리는 이미 그러한 과도기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기본 요소들이 대체되는 마당에 기존의 산업사회는 그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우문에 불과하다. 나는 오히려 국민국가의 붕괴까지도 예언한다.

  제2의 물결이 몰고 온 운명은 이미 그 내부에서도 무너져 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가족제도 자체가 시비거리로 되고 있으며 동경 지하철의 교통지옥이 개선되리라는 전망은 아직 들은 바 없다. 한두 가지 예가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요인들이 결합해서 일구어 놓은 현상, 즉 '인격의 위기'가 문제이리라.

  미래의 산업은 유전자산업, 생물학 산업이다. 컴퓨터, 전자공학, 우주나 바다에서 얻은 새로운 원료 등의 새 테크놀러지를 유전학과 결합시키고, 그것을 새 에너지 체계와 결합시켰을 때 비로소 새로운 변혁의 흐름이 감지될 것이다. 물론 당분간은 엄청난 양의 전구 따위를 매일 공장에서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장 자체도 변하고 있다. 이미 사무실의 풍경은 컴퓨터로 말미암아 바뀌고 있었으며, 장차는 출근할 필요없이 자택에서, 그것도 원하는 시간대에 업무수행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곧 탈집중화, 탈획일화를 의미하여 그것이 가져올 파장은 엄청나다. 예컨대 컴퓨터의 도움으로 구매행위가 집안에서 완수되고 DIY(Do it Yourself) 등으로 생산=소비의 옛 시스템이 어느 정도 회복된다면 결국 대규모의 시장은 사라질 것이요, 그러한 탈시장문명은 속악한 물질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할 것이다. 탈시장문명은 시장에 의존하는 문명임에는 틀림없지만, 시장을 건설, 확대하기 위하여 에너지를 소모하는 문명은 아니다.

  우리가 제시하는 미래의 청사진은 결코 개개인의 안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유토피아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질병과 정치적 부패와 악습에서 해방될 수는 없으나 어떻든 현재의 사회와는 혁명적이라 할만큼 다른 문명, 즉 제 3의 물결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테크놀러지는 경제, 군사적으로만 검토되어서는 안된다. 생태계와 사회에 미칠 영향을 전제로 검토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를 막론하고 기득권을 지니고 있는 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제2의 물결을 연장하고자 하며, 이들은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어 회복불가능 상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손을 쓰려 할 것이다.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현실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이들과 투쟁해야 한다. 진정한 모습의 민주주의는 탈산업사회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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