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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 분석 / 김수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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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 김수영(金洙暎)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

 

<후략>


1.  작가 : 김 수 영(金洙暎,1921-1968)
  서울 출생. 1949년 김경린, 박인환 등과 함께 5인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1950년대의 모더니스트 중 주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점차 모더니즘 시의 공허함을 느끼면서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했고, 4.19가 일어난 1960년 무렵을 고비로 강렬한 현실 의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시의 모습을 바꾸었다. 이후 그는 지식인의 내부적 갈등과 고뇌를 정직하게 파헤치면서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시들을 발표하여 이 방면 시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달나라의 장난』(1958), 『거대한 뿌리』(1974) 등 시집과 『시여 침을 뱉어라』(1975)라는 평론집 및 기타 번역서 여러 권이 있다.

2.  김수영과 4.19묘지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조용히 개굴창에 넣고/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기념탑을 세우자/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김수영 `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첫 연).


 김수영(1921~68)의 이 시는 그의 가장 좋은 시도 아니며 4․19를 노래한 가장 빼어난 시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1960년 4월26일 이른 아침에 쓴 이 시는 4․19의 순수 절정의 순간을 직접 호흡하고 있다는 미덕을 안고 있다. 이날 나온 이승만 대통령의 사의 표명은 2백명 가까운 젊은  목숨을 바쳐가면서 학생과 시민들이 갈구하던 바의 최대치는 아니더라도 그 최소치에는 가까웠던 것이다.


 1960년 3월15일의 제5대 정부통령선거는 `국부' 이승만의 본질과 한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기회와도 같았다. 노욕과 망상으로 똘똘 뭉친 우남이 입 안의 혀 같은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고자 저지른 미증유의 선 거부정은 당장 그날로부터 민중의 거센 저항에 부닥친다. 마산에서 터져 나온 항의시위는 8명의 사망자와 72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그보다는 그날 실종된 한사람이 결과적으로 더 큰 파장을 몰고 오게 된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4월11일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몰골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마산상고생 김주열이 그였다.


 김주열의 주검에 다시 십여명의 사상자로 대답한 마산의 2차 시위는 남한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간다. 4월18일 고려대학생 3천여명이 국회의사당 앞 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정치깡패들에게 테러를 당한 사건은 그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피의 화요일'로 불리는 19일 성난  학생과 시민들은 종로와 광화문을 거쳐 경무대 앞까지 치달아 독재타도를 외쳤으며 경찰은 발포로써 응답했다.


 비상계엄령이라는 채찍과 자유당 총재직 사임이라는 당근으로써도 우남은 돌아선 민심을 되잡을 수 없었다. 4월25일 대학교수단이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거리로 나섰을 때 그의 운명의 나침반은 이미 하와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남에게는 정치적․인간적 실패, 나아가 역사적 죽음으로까지 다가왔을 4․19는 한국문학으로서는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았다. 그것은 4․19가 열어놓은 해방의 공간이 자유로운 문학적 표현을 가능케 했다는 의미와, 4․19 자체가 두고두고 한국문학의 가물지 않는 수원(水源)이 됐다는  두가지 의미에서 그러하다.


 시에 있어서 4․19의 적자는 김수영과 신동엽이었다.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며 4월혁명을 동학혁명에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면서도 그 성과와 한계, 장점과 단점을 냉정하게 가리고자 했다.


 김수영에게 있어 4월혁명은 시세계의 전면적인 변모를 가져올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50년대를 철저한 모더니스트로 통과한 김수영은 1960년 4월19일을 기점으로 해서 참여적인 사실주의 시인으로 변모한다. 앞서 인용한 시를 비롯해 `기도' `육법전서와 혁명' `푸른 하늘을' `만시지탄은 있지만' `그 방을 생각하며' 등 4․19를 직접 다룬 일련의 시편들은 물론, `가다오 나가다오' `거대한 뿌리'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사랑의 변주곡' 등 현실의 치부를 구체적이면서도 신랄하게 까발린 시들이 직․간접적으로 4․19의 영향 아래 쓰여졌다.


 그리고 그같은 변모의 궁극은 뜻밖의 교통사고로 숨지기 불과 보름 전에 토해놓은 절창 `풀'이었다. 산문투의 장광설과 거칠것 없는 발성으로 특징지어지던 김수영 시세계의 또한번의 변모를 예감케 하는 이 시가 그 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는 사실은 한국문학사의 안타까움이다.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김수영 `풀' 전문).

 

 4․19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그 대신 들어선 것은 자유당과 별다를 것도 없는 민주당 정부였다. 그나마도 1년 뒤에는 박정희 소장의 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4․19의 이념은 철저히 능욕당했다. 그런 점에서 4․19는 미완의 혁명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도 계속 진행중인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작가 김승옥씨가 70년대 초 월간 <샘터>에 발표한 짧은 이야기에 `정직한 이들의 달'이 있다. 바로 4월19일 경무대 앞에서 총상을 입고 그날 밤 수도육군병원에서 숨을 거둔 서울 문리대 수학과 학생 김치호의 마지막을 그린 것이다. 김치호가 말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어요. 부정한 짓을 하면 안 된다구. 그래서 선거를 부정으로 한 사람들에게 선거를 공정하게 다시 하라구 말했어요.(…)학교 교과서가 주동자예요. 부정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것도 부정이라고 가르치는 교과서가!󰡓


  그 김치호는 지금 서울 수유리 북한산 동쪽 자락에 자리잡은 `4․19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다. 다른 많은 교과서주의자들과 함께. 4․19 묘지는 혁명 이태 뒤인 1963년 현재의 위치에 조성됐으며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국립묘지로 새단장했다. 평일 오후의 4․19 묘지는 참배객이 드문 대신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나온 젊은 엄마들, 근처 국립재활원의 환자들, 노인들, 연인들, 그리고 과자 부스러기를 쪼는 비둘기들로 채워져 여느 시민공원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을 연출한다.


 그 풍경을 보면서 생각한다. 4․19가 추구했던 정신과 이념은 이 묘역의 어디에서 볼 수 있는 것일까. 제가 와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일까, 청장년의 나이로 4․19를 겪었을, 그러나 이제는 다만 무력한 삶의 구경꾼으로 가라앉아 있는 노인들일까. 아니면 유영봉안소니 만장이니 수호자상이니 수호예찬의비니 하는 각종 시설물일까. 4․19는 성소에서 기림을 받고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이 한정된 넓이의 묘역에 갇혀서 숨막혀 있는 것은 아닐까.

 


3.  시상의 전개 
  이 시의 시상은 그 주요 대상인 ‘눈’과 ‘젊은 시인'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시선이 상호 교차함으로써 전개되고 있다. 
  1 연에서 ‘눈’은 살아 있다는 점에서 시적 자아에게 의미를 지닌다. 시적 자아는 겉으로 보기에는 생명이 없어 보이는 눈에서 내적인 생명감을 본다. 


  2연에서 시적 자아는 그 대상인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자’고 권유한다. ‘기침’은 ‘젊은 시인’이 살아 있음을 주장하는 행위인 것이다. 


  3연에서는 다시‘눈’'에 대한 시상(詩想)이 반복된다. 여기에서 시적 자아는 살아 있는 눈의 속성이 지니는 의미를 확인시켜 준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눈’은 가장 왕성한 생명력을  지닌다. 


  마지막 4연에서 시적 자아는 현실의 부정을 극복하고자 하는 갈망과 함께 그 고뇌를 보여 준다. 구체적으로 시적 자아는 ‘젊은 시인’에게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라고 권유한다.


4.  작품 감상 (1)
  이 시에서 ‘눈’과 ‘기침’이라는 시어가 작품 이해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이 두 시어가 적절히 반복되고 변형되면서 시적 긴장감을 유지시켜 가고, 동시에 시적 의미를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눈’은 순결한 양심을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일상의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시인에게 반성의 계기를 제공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는’ 눈을 보면서 일상의 억압 속에 매몰되어 있는 자신을 반성하게 되고 그로부터 탈출하기를 열망한다. ‘기침’을 하는 행위는 자신의 마음 속에 고여 있는 온갖 불쾌하고 불결한 것(이것은 모두 현실의 어두운 면들이 내면화된 것이다.)들을 쏟아 버림으로써 자기 정화(淨化)를 이루려는 행위를 상징한다. 시인은 ‘살아 있눈’ 앞에서 ‘기침’을 함으로써 삶에 대해 순결하고 정직한 자세를 유지하지 못한 부끄러움과 그로 인한 고통을 털어 버리고 순결한 양심을 되찾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부정하고 부패한 현실에 대한 시인의 울분과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5.  작품 감상 (2)
  이 시의 시어들은 매우 딱딱하다. 종결사 또한 ‘있다’, ‘하자’와 같이 무미 건조하며, 단순한 비유로 관념을 드러내는 어사 표현을 쓰고 있다. 이 시에서는 관념이 주가 되며, 그러한 관념이 반복을 통해 강조되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우선 여기에서 말하는 ‘눈’의 의미와 ‘기침을 하자’는 촉구의 뜻을 살펴보자.


  1연에서 유사 반복을 통해 눈이 ‘살아 있다’고 거듭 말한다. 죽은 것으로 통상 알지만 결코 죽지 않았다는 단정 속에는 눈의 생명력, 강건성을 확인하는 의지가 크게 반영되어 있다. 


  그렇다면 눈이 살아있다고 거듭 말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 있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끈덕지게 생명을 유지하는 불멸성에 대한 확신 때문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런 눈을 보며 시인더러 기침을 하라고 촉구한다. 여기서 ‘눈 위에 대고’는 눈에게 기침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어 나오는 ‘눈더러 보라고’ 기침을 하자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눈과 기침은 동일한 의미망을 지닌다. 빼앗긴 가치가 여전히 구현되고 있는 상관물이 눈이라면, 기침의 행위는 빼앗긴 가치의 회복, 옹호의 태도인 것이다. ‘마음 놓고 마음 놓고’에서 볼 때, 이 가치는 억압적 상황에 의해 제약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의 사명이 순수의 구현, 인간성의 옹호와 관련된다고 할 때, 그 가치는 아마도 ‘양심의 순결’과 연관될 것이 분명하다. 양심은 침해받기 쉬우며, 그것의 사회적 구현은 더 큰 폭력에 눌리게 마련이다. 이 부정적 현실 상황에서 화자는 고통스런 몸짓으로 가치의 회복을 촉구하는 것이다. 
  눈을 보며 끝까지 살아남는 양심과 가치를 되살려 내기를 갈망한다. 눈이 살아 있는 의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양심의 발현을 촉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시인더러 죽음을 무릅쓴 각오로 시대의 양심을 지켜 가자고 애타게 당부한다. 이 당부는 바로 시인인 자신에게 향한 질책이기도 하다.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는 어두운 시대 상황에서 내면화되어 버린 부정 의식, 비양심 따위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을 뱉아 버리는 새로운 자아 인식에로 승화된 삶을 뜨겁게 살아가자고 촉구하는 것이다. 


  한편 이 시도 <풀>과 같이 반복률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가 거듭 반복되면서 가쁜 호흡을 통해 그 사실을 강조한다. 그것을 따라 읽다 보면, 독자들은 그런 사실에 은연중 몰입하게 된다. 김수영의 시가 갖는 역동적 힘은 이런 반복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6.  작품 감상 (3)
  이 시의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작품 전체는 단 두 문장 즉, ‘눈은 살아 있다.’와 ‘기침을 하자’의 변형된 되풀이로 이루어져 있다. 특이한 점은 그 변형의 방법이 위의 핵심 부분에 다른 문장 요소들이 점점 많이 덧붙으면서 의미가 뚜렷해지는 방향으로 점층적 전개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제1연부터 제4연까지의 이 점은 동일하다. 따라서 이 시를 이해하는 열쇠는 ‘눈’과 ‘기침’의 해석에 달려 있다.


  ‘눈’과 ‘기침(그리고 가래)’은 이 작품에서 선명한 대조의 관계를 이룬다. 눈은 희고 순수한 것이며, 기침은 어떤 괴로움 또는 병을 암시하는 탁한 것이다. 그러므로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라는 구절은 시인의 마음 속에 고인 버려야 할 무엇을 내뱉자는 의미이다.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는 말에서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밤새도록 고였다는 점에서 그것은 젊은 시인을 괴롭히는 어두운 요소이며, 그의 순수한 영혼과 육체를 좀먹어 들어오는 더러움을 암시한다.


  그런데 그러한 기침, 가래를 왜 흰 눈 앞에서 내뱉으라고 말하는 것일까? 둘째 연의 끝 부분이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는 것을 보면 이 시인은 평소에 마음 놓고 기침을 할 수 없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고 할 때 이 기침은 예사의 기침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것은 아마도 속되고 지저분한 일상 생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된 그리고 마음대로 표현하거나 내버릴 수 없었던 괴로움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생각할 때 눈을 향하여 기침을 하는 행위는 일상적 생활의 굴레 속에서 잃어버린(혹은 더럽혀진) 자신의 진정한 영혼과 육체를 되찾는 행위가 된다. 눈의 한없는 순수함, 차가움, 신선함을 통해 김수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추악함 씻어낼 수 있는 순결성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눈도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직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다시 말하여, 순수하고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갈망을 가진 이에게만 눈은 그 살아 있는 모습을 드러낸다. ‘눈’은 이와 같은 함축성 때문에 읽을수록 다시금 신선한 의미를 느끼게 한다.

7.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참여시
 (성격) : 의지적, 비판적, 주지적, 상징적, 반성적
 (율격) : 내재율, 반복, 변형, 첨가, 대칭 등에 의한 리듬의 창출
 (어조) : 단정적이면서 권유적임. 자기 반성의 목소리.
 (심상) : 비유적, 서술적, 감각적
 (제재) : 눈
 (주제) : 순수한 생명 의식을 통한 부정적 현실의 극복에 대한 갈망과 고뇌
 (표현) : (1) 동일한 문장의 반복과 문장 변형 및 첨가를 통한 점층적 진행으로 리듬감을 강조한다.
         (2) ‘눈’과 ‘기침하는 행위’라는 두 가지 개념에 대한 상징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주지적인 성격을 보다 명확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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