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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목도리 / 본문 일부 및 해설 / 박종화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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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목도리 / 박종화

 

 

<전략>

 

동경만 하더라도 명치 초년 경에 단발을 한 뒤에 간혹 목도리를 하는 풍속이 생겼고, 명치 10년경에야 '숄(Shawl)'이 수입되어 부녀계에 이것을 두르는 풍속이 성행하니, '숄'은 곧 파사어(波斯語, Shal)로부터 나온 말로 본시 중앙아시아로부터 인도서부 일대에 거주하는 토인들이 어깨에 두르는 정방형(正方形) 또는 장방형(長方形)의 일종 복식품(一種服飾品)이었다 한다. 이렇게 여자 목도리는 몇 십 년을 변천하여 지금 세계를 풍미하는 여우 목도리에까지 이르렀다.

 

여우 목도리의 종류는 은호(銀狐), 청호(靑狐), 백호(百狐), 홍호(紅狐), 십자호(十字狐), 적호(赤狐) 여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은호는 값이 2백 원으로부터 1천원까지 있어서 세계 각국 부인의 제1위 가는 유행품이요, 백호는 야회용(夜會用)으로만 쓰는 것이다 2, 3백 원이나 주어야 좋다 한다. 지금 한국에 범람하는 여우 목도리는 한층 떨어지는 십자호, 적호 따위들이다.

 

월전의 어느 신문을 읽으니, 표범 껍질로 얼룩덜룩 성장(盛裝)을 차리고 굽 높은 구두를 바지직거리면서 득의양양하여 종로 거리를 활보하다가 마침 뛰어오는 사냥개에게 흉물스런 짐승인 줄 오인되어 물고 늘고 잡아 떼이는 바람에 이 호기롭던 성장(盛裝) 미인은 샛노란 비명을 지르며 하도 급하매 거리 옆의 이발소로 뛰어들어가 뭇 남성 환소박장(環笑拍掌) 속에 겨우 피화(避禍)를 하고 긴 한숨을 쉬어 놀란 가슴을 진정하였다 하거니와, 이 표범 외투, 여우털 목도리들은 완전히 원시 시대로 돌아간 착각적 유행의 하나이다. 한국의 고유한 아얌, 남바위, 약과 무늬 잘옷 따위는 얼마나 교묘한 기술을 가진 문화인의 방한구였더냐. 여우, 표범을 그대로 감고 입고 다니는 유행은 원시 생활을 그리워하는 한개 야릇한 인간들의 변태적 심리로 인한 것이냐. 그렇지 아니하면 구미식 황금 만능의 엽기적 행동이냐. 괴기를 찾는 현대 사람의 마음은 고금이 이토록 현수(懸殊)하구나.


 지은이 : 박종화

 갈래 : 수필

 성격 : 비판적, 주관적

 구성 : 4단 구성

기 : 여우 목도리의 유행 현상

승 : 전통 방한구의 소멸

전 : 서양 목도리의 유래와 여우 목도리의 종류

결 : 여우 목도리 유행에 대한 비판

 주제 : 여우 목도리의 유행에 대한 비판

 특징 : 여우 목도리의 유행을 비판하고 있는 글로 한국 전통 방한구를 예찬하면서 방한구의 사라짐을 아쉬워하고 있다. 다소 국수주의적인 견해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여우 목도리'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유행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쉽고 흥미있게 드러내고 있으며, 한국인들의 유행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생각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봄소식이 한국을 찾아온 지는 오래다. 입춘[(立春) : 이십사절기의 하나.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들며, 이때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한다.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다. 입춘 거꾸로 붙였나 입춘 뒤 날씨가 몹시 추운 경우에 이르는 말.]을 지난 지 벌써 스무날이 넘었고, 7, 8일 전에는 우수[이십사절기의 하나. 입춘(立春)과 경칩(驚蟄) 사이에 들며, 양력 2월 18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330도인 때에 해당한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 :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짐을 이르는 말. 우수에 풀렸던 대동강이 경칩에 다시 붙는다 : 우수를 지나 좀 따뜻해졌던 날씨가 경칩 무렵에 다시 추워짐을 이르는 말.]가 마저 지나갔다.

 

때로 따스한 볕이 거리의 때묻은 적설을 녹아 내리고 나뭇가지엔 마음의 탓인가,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듯도 하다마는 아아(峨峨 : 산이 높고 험한)한 북악에는 눈이 삼다인 양 그대로 쌓여 있고, 조석으로 매운 바람은 초한(痒寒 : 살을 찌르는 듯한 추위)을 그대로 유지하여 손끝 발끝을 저리게 한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은 왔으나 봄답지 않다. 후한(後漢) 때의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의하면, 대부분의 후궁들이 화공(畵工)에게 뇌물을 바치고 아름다운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황제의 총애를 구하였다. 그러나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얼굴이 추하게 그려졌고, 그 때문에 오랑캐의 아내로 뽑히게 되어 버렸다. 소군이 말을 타고 떠날 즈음에 원제가 보니 절세의 미인이고 태도가 단아하였으므로 크게 후회하였으나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제는 크게 노하여 소군을 추하게 그린 화공 모연수(毛延壽)를 참형(斬刑)에 처하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왕소군의 시(詩)로 '동방규' *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자연히 옷 띠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이는 허리 몸매 위함이 아니었도다.],

 거리에 범람하는 피녀씨(彼女氏 : 그녀. 일본식 한자어)들의 여우 목도리도 한풀이 꺾어짐즉 하다마는 시절이 하수상하여 매화가 필동 말동한 탓인지 좀처럼 그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제 새삼스레 깨달은 바는 아니지마는 유행의 힘은 크고도 무섭다. 한국의 부인네들이 여우 목도리를 두르다니 될 뻔이나 한 소리냐. 중국식의 호선(狐仙 : 중국의 민간 신앙에서, 여우가 수천 년 동안 도를 닦아서 되었다고 하는 신), 호처(狐妻 : 여우 아내) 따위는 각설하더라도 그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여우, 송장을 파먹는다는 여우, 간악한 씨앗[어떤 가문의 혈통, 근원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보면 구미호[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로 몹시 교활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특히 그런 여자를 이른다]같이 잘 후려낸다는 여우, 여우의 무엇을 차고 다니면 사나이를 잘 후려낸다던 점잖은 부녀(婦女)의 가장 기피하던 그 여우의 몸뚱어리를 설부화용(雪膚花容 : 눈처럼 흰 살갗과 꽃처럼 고운 얼굴이라는 뜻으로, 미인의 용모를 이르는 말) 두 틈서리를 목에다 휘휘 칭칭 감고 다닌다. 감고 다니는 건 오히려 얌전한 패지마는 그 중에 교태를 한 술 더 뜨는 멋들어진 낭자는 감고 두르기커녕 꼬리를 툭 늘어뜨려 흔들흔들 흥글항글[꾀를 부리거나 마음이 들떠 행동하는 모양] 걸고 다닌다. 삼촌연보(三寸蓮步 : 미인의 정숙하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날씬날씬 날려 여우털 속에서 명모주진(明眸朱唇 : 맑은 눈과 붉은 입술)이 빠끔 반짝할 때 도리어 '그로테스크'한 매력이 없는 바도 아니지마는 그처럼 몇 천 년 몇 백 년을 혐오 기피하던 여자로서 이제는 못 둘러 한(恨)이요, 없어서 수치다.[여우 목도리의 유행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이 드러남]

 

유행은 구미에서 동경으로 동경에서 한국으로 이리하여 화류계 카페 걸로부터 다시 신여성 가정부인에까지 침투한다. 조바위[추울 때에 여자가 머리에 쓰는 방한모로 모양은 겨울에 부녀자가 나들이할 때 춥지 않도록 머리에 쓰는 쓰개인 아얌과 비슷하나 볼끼가 커서 귀와 뺨을 덮게 되어 있다]의 금줄, 뒤꽂이[쪽을 찐 머리 뒤에 덧꽂는 비녀 이외의 장식품. 연봉, 과판, 귀이개 따위가 있다] 따위는 다 어디로 달아났는지 모른다. 요사이 1935, 1936, 1937년도 겨울 여성의 선망[부러워하여 바람]의 적은 완전히 여우털 목도리로 집중되었다. 실로 고풍이 만국이다. 목도리가 한국에 들어온 지는 불과 30여 년밖에 아니 되었을 것이다. 본시 이것은 동양엔 없던 것으로서 구미의 풍조가 휩쓸게 되는 바람에 저절로 따라온 부산물의 하나이다. 한국의 방한구(防寒具)는 풍채, 남바위[추위를 막기 위하여 머리에 쓰는 쓰개. 겉의 아래 가장자리에 털가죽을 둘러 붙였고 앞은 이마를 덮고 뒤는 목과 등을 덮는다.], 아얌, 조바위, 그리고 옷으로는 잘배자[검은담비의 털가죽을 대어 지은 배자, '배자'는 추울 때에 부녀자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는 옷. 조끼와 비슷하나 주머니와 소매가 없으며, 겉감은 흔히 양단을 쓰고 안에는 토끼, 너구리 따위의 털을 넣는다.], 잘두루마기[검은담비의 털을 안에 대어 지은 두루마], 털토시[안에 털을 대고 만든 토시. '털토시를 끼고 게 구멍을 쑤셔도 제 재미라' 좋은 털토시를 끼고 게 구멍을 쑤시는 궂은일을 하더라도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면 그만이라는 뜻으로, 제 뜻대로 하는 일은 남이 참견할 것이 아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일 것이다.

 

동경만 하더라도 명치[일본 메이지 천황 시대의 연호(1867~1912)] 초년 경에 단발을 한 뒤에 간혹 목도리를 하는 풍속이 생겼고, 명치 10년경에야 '숄(Shawl : 어깨 걸치개)'이 수입되어 부녀계에 이것을 두르는 풍속이 성행하니, '숄'은 곧 파사어(波斯語, Shal : 페르시아의 음역어)로부터 나온 말로 본시 중앙아시아로부터 인도서부 일대에 거주하는 토인들이 어깨에 두르는 정방형(正方形) 또는 장방형(長方形)의 일종 복식품(一種 服飾品)[몸에 착용하거나, 옷에 달거나, 손에 들거나 하여 복장에 장식적 효과를 더하는 물건. 브로치, 핸드백, 장갑, 스카프, 넥타이, 핀, 목걸이 따위가 있다.]이었다 한다. 이렇게 여자 목도리는 몇 십 년을 변천하여 지금 세계를 풍미[(風靡) : 바람에 초목이 쓰러진다는 뜻으로,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사조 따위가 널리 사회에 퍼짐을 이르는 말]하는 여우 목도리에까지 이르렀다.

 

여우 목도리의 종류는 은호(銀狐), 청호(靑狐), 백호(百狐), 홍호(紅狐), 십자호(十字狐), 적호(赤狐) 여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은호는 값이 2백 원으로부터 1천 원까지 있어서 세계 각국 부인의 제1위 가는 유행품이요, 백호는 야회용(夜會用)으로만 쓰는 것이다 2, 3백 원이나 주어야 좋다 한다. 지금 한국에 범람하는 여우 목도리는 한층 떨어지는 십자호, 적호 따위들이다.

 

<하략>


 

  미인을 일컫는 한자성어(漢字成語)

 단순호치(丹脣皓齒) :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 호치단순.

 주순호치(朱脣皓齒) : 붉은 입술과 하얀 이. 미인의 얼굴.

 명모호치(明眸皓齒) : 빛나는 눈동자와 하얀 이. 미인의 얼굴.

 설부화용(雪膚花容) : 흰 살결과 꽃같이 예쁜 얼굴. 미인의 얼굴.

 화용월태(花容月態) : 꽃다운 얼굴과 달 같은 자태. 미인의 모습.

 해어지화(解語之花) : 말하는 꽃.미인의 다른 이름.

 아미(蛾眉) : 미인의 눈썹. 미인의 얼굴.

 세요(細腰) : 가는 허리. 미인의 모습.

 패류잔화(敗柳殘花) : 마른 버드나무와 끝판에 핀 꽃. 용모와 안색이 쇠한 미인의 모습

 경국지색(傾國之色), 경성지미(傾城之美) :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이라는 뜻으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미인을 이르는 말.

 만고절색(萬古絶色) : 세상에 비길 데 없이 뛰어난 미인.

 절세가인(絶世佳人) : 세상에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인

 

 

  왕소군 관련 한시(漢詩)

 

昭君怨(소군원) Ⅰ

李 白

 

漢家秦地月(한가진지월)               한나라 시절 진나라 땅에 떠 있던 달은

流影照明妃(유영조명비)               그림자를 내려 명비를 비추네

一上玉關道(일상옥관도)               한 번 옥관도에 올라

天涯去不歸(천애거불귀)               하늘가로 떠나간 후 다시 못 오네.

漢月還從東海出(한월환종동해출)  한나라 달은 돌아와 동해를 따라 오르건만

明妃西嫁無來日(명비서가무내일)  명비는 서쪽으로 시집 가고 돌아올 날이 기약없네.

燕地長寒雪作花(연지장한설작화)  연나라 땅의 긴 겨울에 눈이 꽃을 만들었으니

娥眉憔悴沒胡沙(아미초췌몰호사)  고운 아미는 초췌해져 오랑캐 모래에 쓰러졌도다.

生乏黃金枉畵工(생핍황금왕화공)  살아서 황금이 없어서 화공을 굽히었으니

死遺靑塚使人嗟(사유청총사인차)  죽어서 청총을 남겨 사람으로 하여금 탄식케 하네.

 

昭君怨(소군원) 2

李 白

 

昭君拂玉鞍(소군불옥안               소군이 옥 안장을 떨치며

上馬涕紅頰(상마체홍협)              말을 타니 붉은 뺨에 눈물이 흘러

今日漢宮人(금일한궁인)              오늘날 한나라 궁녀가

明朝胡地妾(명조호지첩)              내일 아침 오랑캐의 첩이 되는도다.

 

昭君怨(소군원)

동 방 규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자연히 옷 띠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이는 허리 몸매 위함이 아니었도다.

 

昭君墓(소군묘)

상건(常建 : 708-765)

 

漢宮豈不死(한궁기불사)             어찌하여 한나라 궁궐에서 죽지 못하고

異域傷獨沒(이역상독몰)             다른 나라 땅에서 홀로 죽음을 슬퍼하노라.

萬里馱黃金(만리타황금)             만리 길에 황금을 실어 보냈지만

娥眉爲枯骨(아미위고골)             고운 모습은 바른 뼈가 되었네.

廻車夜黜塞(회거야출새)             밤에 수레를 돌려 변방을 나오려 하지만,

立馬皆不發(입마개불발)             모두 말을 세우고 떠나지 못하며,

共恨丹靑人(공한단청인)             그림 그린이를 원망하며

墳上哭明月(분상곡명월)             밝은 달 아래에서 무덤에 곡을 하노라.

 

* 이밖에도 송나라 왕안석의 [명비곡(明妃曲)]과 구양수의 [명비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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