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 본문 일부 및 해설 / 피천득
by 송화은율봄 / 피천득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天癡)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凡俗)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띠우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業)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 발자취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젊음을 다시 가져 보게 하는 것은 봄이다.
<하략>
작자 : 피천득 (皮千得, 1910- )
형식 : 경수필
성격 : 서정적
제재 : 봄
주제 : 봄의 의미
구성 :
기 : 범속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승 : 젊음은 아름답고 지혜보다 낫다
전 : 인생의 40부터는 여생인데 이런 사람에게도 봄은 오니 다행이다.
결 : 봄이 오는 것은 가장 기쁜 일이다.
'인생은 빈 술잔, - 꽃 뿌리며 온다.' : 밀레이의 시 '봄'의 한 구절
천치 : 정신 박약 중 가장 심한 단계
범속 : 평범하고 속됨.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T.S엘리엇의 시구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 봄을 '천치요 잔인한 달'이란 읊은 자는 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자이다. 왜냐 하면 봄은 새 생명의 탄생과 부활에 따르는 고통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환멸 : 공상이 이상이 깨어질 때 느끼는 허무함이나 쓰라림.
해탈 : 글레에서 벗어남
여생 : 나머지의 삶
이역 : 다른 나라의 땅.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
유폐 : 아주 깊숙이 가둠
늙으면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 플라톤과 같이 높은 지혜를 지닌 사람도 늙으면 무디고 둔해지는 것이니, 젊음만한 것이 없다는 뜻.
나이팅게일 : 키츠의 시 '나이팅게일에게 주는 노래' 속에 나오는 새 이름
루스 : 구약 성서의 '롯기'에 나오는 여인
룻 : 구약에 나오는 모압 여자로 이스라엘 사람을 남편으로 맞았으나 그가 곧 죽자 시어머니와 함께 이스라엘로 와서 보리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함.
새 : 에이츠의 시 '비잔티움의 항해'에 나오는 새.
나이를 먹으면 - 가라 앉는다고 한다 : 공자의 말을 빌리자면 불혹이요, 지천명이며, 이순의 상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상태를 '무관심', '위안의 말'이라 낮춰 말하고 있다. '젊음'을 강조하기 위한 비교적 표현이다.
피천득의 수필은 우리들이 일상적인 생활에서 겪는 신변잡사를 다루고 있다. 그 속에서 평범하면서도 심오한 인생의 진리를 제시하고, 소홀히 하기 쉬운 작은 것들 속에서 인생의 기쁨과 행복을 찾고 있다.
이 수필도 '봄'이라는 계절이 자신에게 가져다 주는 새로운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언제나 새롭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계절의 여왕 봄을 통하여, 작자는 인생의 새로운 활력소를 찾고 있다.
특히 "인생은 40부터라는 말은 인생은 40까지라는 말이다."라고 역설적으로 말하면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 또는 봄의 새로운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그래서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에서 인생의 새로운 의욕과 삶의 자세를 추스르고 있다.
봄이 되면 겨우내 입었던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고, 방안에만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와 따뜻한 햇살이 퍼져 있는 생동하는 대지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다. 봄은 이처럼 마음과 몸을 짓누르던 무거움으로부터 가벼움을 되찾게 해 주고, 닫힌 공간에서 벗어나 생명이 약동(躍動)하는 열린 공간을 호흡하게 해 준다. 여기에는 비상(飛翔)의 꿈과 자유의 기쁨이 있다. 삶에 대한 성취 의욕이 다시 용솟음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자는 이러한 봄이 바로 인생에 있어서는 젊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지나간 청춘과 젊음은 안타까운 미련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나간 젊음에 대해 아쉬움과 한탄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봄을 기다리는 심정은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향수인 동시에, 생기 넘치는 삶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욕이다. 40이 넘은 사람에게도 매년 찾아오는 봄, 그 봄의 의미를 알뜰히 가꾸어 더욱 성숙된 삶을 지향하고자 한다. 한편으로, 이것은 무디어진 지성과 감수성의 회복이기도 하다.
이처럼 수필은 일상의 평범한 가운데 글쓴이의 독창적인 관점이나 안목이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수필의 본질(本質)이고 특성(特性)이다.
피천득 (皮千得, 1910- )
시인. 수필가. 영문학자. 호는 금아(琴兒). 서울 생. 개성적, 정감적인 찰스 램 스타일의 수필을 한국 문단에 정착시켰다. 수필집으로 <금아문선(琴兒文選)>(1959), 시집 <산호와 진주> 등이 있다.
밀레이(E.St.V.Millay, 1892-1950)
메인주(州) 로클랜드 출생. 바사여자대학 재학 중에 연극에도 관계하였고 시작(詩作)에도 정진하여, 서정시 《재생(再生) Renascence》(1912)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호평을 받아 시단에 데뷔하였다. 이어 1917년에는 처녀시집 《재생 기타 Renascence and other Poems》를 발표하였고, 《두 번째의 4월 Second April》(1921) 《하프 제작자 The Harp-Weaver》(1923, 퓰리처상 수상) 등으로 서정시인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으며, 그 후 《한밤중의 대화 Conversation at Midnight》(1937) 등 많은 시집을 냈다. 그는 소네트를 가장 장기로 한 순수한 서정시인이었지만, 1930년대 이후는 정치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한편, 프로빈스타운 극단을 위하여 여배우로서 무대에 섰으며, 또한 《왕녀와 시동(侍童)과의 결혼 The Princess Marries the Page》(1918) 등의 희곡도 썼다. 그가 죽은 후에 《전시집 Collected Poems》(1957) 《서간집 Letters》(1952) 등이 출판되었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인생이란 그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니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해마다 이 동산에
4월은 천치처럼 중얼거리며
꽃을 뿌리며 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봄>
엘리엇 (Eliot, Thomas Stearns) [1888.9.26~1965.1.4]
미국의 미주리주(州) 세인트루이스 출생. 스미스 아카데미를 거쳐 1906년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가 철학을 전공하는 한편 프랑스문학을 공부하고 그 상징시(象徵詩)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그 영향은 후에 그의 시작품에 나타나게 된다. 그 밖에도 17세기 영국의 형이상학시(形而上學詩)와 엘리자베스조(朝) 연극을 연구하였다. 하버드대학교 졸업 후 한때 프랑스의 소르본대학에 유학, 이어 1914년에 독일에 유학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영국에 피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연구하였으며, 1915년에 처음으로 지상(誌上)에 시를 발표하였다. 그후에도 계속 영국에 머물며 은행원으로 근무하는 한편 시작(詩作)에 몰두, 1917년에 처녀시집 《프루프록 및 그 밖의 관찰 Prufrock and Other Observation》을 냈고, 이어 1920년에는 처녀평론집 《성스러운 숲 The Sacred Wood》을 내놓아 새로운 문예평론의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명성을 높여 준 것은 1922년에 그가 편집·창간한 문화평론지 《크라이티어리언 Criterion》에 발표한 《황무지(荒蕪地) The Waste Land》(Dial상 수상)이다. 이 작품으로 종래의 미온적인 낭만주의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일부 보수적인 시인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20세기 시단(詩壇)의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1927년 영국에 귀화하는 동시에 영국 국교(國敎)로 개종(改宗), 1928년에 강행된 평론집 《랜슬롯 앤드루스를 위하여 For Lancelot Andrewes》의 서문에서, '문학적으로는 고전주의자, 정치적으로는 왕정 지지자, 종교적으로는 영국 국교도'임을 선언하였다. 1932년 미국에 돌아가 하버드대학교 시학 교수 칭호를 받았으며, 그후에는 주로 런던에 거주하면서, 참신한 문예서적을 많이 간행하는 출판사 'Favour & Favour'의 중역이 되어 영국문단의 중진(重鎭)으로 활동하였고, 194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초기의 시(詩)는 영국의 형이상학시와 프랑스 상징시에서 받은 영향이 짙으며, 현대문명의 퇴폐상을 그리면서 그 배경으로 신화의 세계를 엿보게 한다.
《황무지》 이후 1930년에 간행된 시집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한층 더 짙어졌으며, 그의 시인으로서의 정점(頂點)은 제2차 세계대전 전부터 쓰기 시작하여 전후(戰後)에 완성한 《4개의 4중주(四重奏) Four Quartets》(1944)에서 볼 수 있다. 그는 또한 시극(詩劇)에 관심을 가져, 《바위 The Rock》(1934), 《성당의 살인 Murder in the Catheadral》(1935) 《가족의 재회 The Family Reunion》(1939), 《칵테일파티 The Cocktail Party》(1949) 등을 발표하였다. 또한 그 동안 간행된 여러 권의 평론집이 1932년과 1951년에 각각 《평론선집》으로서 정리·간행되었다. 한편, 그는 문예비평에서 점차 문명비평(文明批評)으로 옮겨가서 《시의 효용(效用)과 비평의 효용 The Use of Poetry and the Use of Criticism》(1933), 《이신(異神)을 찾아서 After Strange Gods》(1934), 《고금 평론집 Essays Ancient and Modern》(1936), 《문화의 정의에 대한 노트 Notes towards the Definition of Culture》(1948) 등을 발표하였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사월(四月)은 가장 잔인(殘忍)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으니. (황무지)
키츠 (Keats, John) [1795.10.31~1821.2.23]
런던 출생. 마차 대여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시절에 부모를 여의었다. 클라크 사숙(私塾) 재학 중에 학교 도서를 모조리 탐독하였고, 특히 영국의 시인과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 열중하였다. 졸업 후에는 생계를 위하여 남의 집 서생(書生)이 되기도 하고, 병원에도 근무하면서 대시인이 될 희망을 품고 독서와 시작(詩作)에 몰두하였다. 의학을 배운 5년 만에 의사 시험에 합격하여 개업면허증을 받았는데 그 성공은 키츠가 의학보다는 문학 공부에 몰두하였다는 사정을 알고 있는 친구들의 시기심을 살 만큼 그의 특출한 자질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그는 화가 세반과 비평가 J.H.L.헌트 등 친구들의 격려로 병원 근무를 사직하고 시작에 전념하게 되었다. 1817년 22세 때 처녀시집 《시집(詩集)》을 출판하였고, 이듬해에 야심적인 장시(長詩) 《엔디미온 Endymion》을 발표하여 큰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취재하여 이상미(理想美)를 추구한 이 시가 혹평을 받았을 뿐이었다.
이듬해에 패니 브라운과 사랑에 빠져 바로 약혼으로 진전되었는데, 그와 더불어 그의 생활도 폭과 깊이를 더하여 시에서도 비약적인 진보를 보여 잇달아 걸작을 써 냈다. 중세 취미가 넘친 담시(譚詩, ballade) 《성 아그네스의 전야》(1820) 《성 마르코 전야》, 민요풍의 《무정한 미인》 등의 역작을 비롯하여 영국문학사상에 주옥 같은 일련의 송시(頌詩)가 잇달아 발표되었다.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On a Greecian Urn》 《나이팅게일에게 To a Nightingale》(1818) 《가을에 To Autumn》 등, 모두가 영국의 사화집(詞華集)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들이다. 이어 걸작 《하이피리언의 몰락 The Fall of Hyperion》을 썼는데, 24세가 되던 1819년은 놀라울 만큼 그의 시가 많이 쏟아져 나오던 해였다. 병고에 시달리면서, 또 연애의 기쁨과 괴로움을 경험하면서 많은 명저를 냈으나, 이듬해에는 건강의 악화로 요양을 위하여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그러나 몇 달에 걸친 병상생활도 보람 없이 로마에서 25년 4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를 끝마쳤다.
초기의 키츠는 감각미에 예민하여 짙은 색채를 즐겨 썼다. 특히 담시가 이 방면의 그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원숙기에 도달한 1819년의 키츠는 이미 단순한 감각미의 시인이 아니었다. 담담한 낙조의 경지에 들어가,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의 마지막 구절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이요, 참이야말로 아름다움”이라는 2행의 문장이 단적으로 나타내듯이 그는 영원한 모습에서 진선미의 조화, 또는 시인의 사명을 문제로 삼고 인생의 어두운 면을 괴로워하는 휴머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애인에게 보낸 연애서간도 그것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하게 하며, 또 그 서간에서 느끼는 인생경험과 시인으로서의 사명감은 25세도 채우지 못한 청년의 문장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깊은 것이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나이팅게일에게 주는 노래
너는 죽음을 위하여 태어나지 않았다. 불사의 새여!
나는 죽는 배고픈 사람들의 발 아래 너는 밟히지 않는다.
이 덧없는 밤에 내가 듣는 이 소리를
옛날의 제왕도 광대도 들었다.
눈물로 고향을 그리며 낯선 고장
밀밭에 섰던 룻의 슬픔 가슴 속으로도
오솔길 따라가듯 스며들었을 노래를
때로는 거품 이는 험한 바다
그 위에 솟은 성채의 마술의 창에도
풀렸으리라, 허깨비의 나라, 버려진 땅에 (나이팅게일에게 주는 노래)
봄 / 이영도
낙수 소리 듣다 미닫이를 열뜨리니
포근히 드는 볕이 후원에 가득하고
제가끔 몸을 차리고 새 움들이 돋는가
아이는 봄 따라 가고 고요가 겨운 뜰에
맺은 매화가지 만져도 보고 싶고
무엔지 설레는 마음 떨고 일어 나선다
<청저집, 문예사, 1954>
'봄'의 이해와 감상
봄이 오는 소리는 시인에게 반갑기 그지없다. 겨울 동안 움츠린 자연의 활달한 깨어남을 보는 기쁨과 그 기쁨을 시의 언어로 옮기는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도의 「봄 Ⅰ」에서 우리는 봄이 오는 기미를 발견하는 시인의 설레이는 기쁨을 접할 수 있다.
봄의 비 소리는 만물의 생장을 촉진하는 생명수와 같다. 그 낙수 소리에 시인은 미닫이를 열어 젖힌다. 미닫이 문은 아마도 겨우내 세찬 바람과 눈을 막기 위해 닫혀 있었을 것이다. 추운 바깥 세상과 단절시켰던 미닫이 문을 여는 것은 봄이 오는 외부의 변화된 공기를 한껏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포근한 볕이 드는 후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바로 세우고 움을 틔우는 나무로 향한다.
2연은 보다 활달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아이는 봄의 정취를 따라 나서고 뜰은 비어있다. 어린 싹이 돋아나는 봄은 사계절 중 어린아이와 어울리는 계절이다. 아이의 재잘대는 소리가 사라진 뜰은 조용하지만 시인의 봄을 대하는 심정은 더욱 활달해진다. 매화가지를 만져보려는 마음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추어진 설레임이 담겨져 있다. 그 설레임이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 봄의 뜰로 나서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봄이란 이러한 설레임과 떨치고 일어남에 있지 않을까. [해설: 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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