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 본문 일부 및 해설 / 한흑구
by 송화은율보리 / 한흑구
<전략>
온갖 벌레들도, 부지런한 꿀벌들과 매미들도 다 제 집 속으로 들어가고, 몇 마리 산새들만이 나지막하게 울고 있던 무덤가에는, 온 여름 동안 키만 자랐던 속새풀 더미가 갈대꽃같은 솜꽃만을 싸늘한 하늘에 날리고 있다.
물도 흐르지 않고 다 말라 버린 갯가 밭둑 위에는 앙상한 가시덤불 밑에 늦게 핀 들국화들이 찬 서리를 맞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논둑 위에 깔렸던 잔디들도 푸른 빛을 잃어버리고, 그 맑고 높던 하늘도 검푸른 구름을 지니어 찌푸리고 있는데, 너, 보리만은 차가운 대기 속에서 솔잎 끝과 같은 새파란 머리를 들고, 머리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하늘을 향하여 솟아오르고만 있었다. 이제 모든 화초는 지심(地心) 속의 따스함을 찾아서 다 잠자고 있을 때, 너, 보리만은 억센 팔들을 내뻗치고, 새말간 얼굴로 생명의 보금자리를 깊이 뿌리박고 자라왔다.
날이 갈수록 해는 빛을 잃고 따스함을 잃었어도 너는 꿈쩍도 아니하고 그 푸른 얼굴을잃지 않고 자라왔다.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이 너의 등을 밀고, 얼음같이 차디찬 눈이 너의 온몸을 덮어 억눌러도, 너는 너의 푸른 생명을 잃지 않았었다.
지금 어둡고 차디찬 눈밑에서도, 너, 보리는 장미꽃 향내를 풍겨 오는 그윽한 유월의 훈풍과 노고지리 우짖는 새파란 하늘과, 산밑을 훤히 비추어 주는 태양을 꿈꾸면서, 오로지 기다림과 희망 속에서 아무 말이 없이 참고 견디어 왔으며, 삼월의 맑은 하늘 아래 아직도 쌀쌀한 바람에 자라고 있다.
작자 : 한흑구(韓黑鷗 1909-1979)
형식 : 경수필
제재 : 보리
성격 : 예찬적. 교훈적, 경세적, 관조적, 서정적, 묘사적
특징 : 보리를 의인화해서 농부의 삶과 노동의 가치를 예찬하고 있다.
주제 : 고진감래(苦盡甘來), 고난을 견디며 끈질기게 살아가는 보리의 강한 생명력 예찬
출전 : <동해 산문>
구성 : 6 단락
1
보리.
너는 차가운 땅 속에서 온 겨울을 자라왔다.
이미 한 해도 저물어 논과 밭에는 벼도 아무런 곡식도 남김없이 다 거두어들인 뒤에, 해도 짧은 늦은 가을날, 농부는 밭을 갈고 논을 잘 손질하여서, 너를 차디찬 땅 속에 깊이 묻어 놓았다.[농부는 너를 추위에 - 깊이 묻어 놓았다 : 새봄에 보리가 나올 것을 기대하며 농부가 늦가을에 보리를 정성들여 심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차가움이 엉긴 흙덩이들을 호미와 고무래(곡식이나 재 따위를 그러모으는 데 쓰는 기구)로 낱낱이 부숴 가며, 농부는 너를 추위에 얼지 않도록 주의해서 굳고 차가운 땅 속에 깊이 묻어 놓았었다.
"씨도 제 키의 열 길이 넘도록 심어지면 움이 나오기 힘이 든다."(곡식의 씨를 너무 깊이 심으면 안 된다는 뜻의 격언)
옛 늙은이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농부는 너를 정성껏 땅 속에 묻고, 이제 늦은 가을의 짧은 해도 서산을 넘은지 오래고, 날개를 자주 저어 까마귀들이 깃을 찾아간 지도 오랜, 어두운 들길을 걸어서 농부는 희망의 봄을 보릿속에 간직하며, 굳어진 허리도(농사일의 힘겨움) 잊고 집으로 돌아오고 했다.
2
온갖 벌레들도, 부지런한 꿀벌들과 매미들도 다 제 집 속으로 들어가고, 몇 마리 산새들만이 나지막하게 울고 있던 무덤가에는, 온 여름 동안 키만 자랐던 속새풀 더미가 갈대꽃같은 솜꽃만을 싸늘한 하늘에 날리고 있다.[온갖 벌레들도, - 싸늘한 하늘에 날리고 있다 : 시간의 흐름, 늦가을의 계절감, 적막감]
물도 흐르지 않고 다 말라 버린 갯가 밭둑(원래는 갯장변으로 표기된 것으로 갯장변은 바닷가를 가리키는 사투리로 대개 돌이나 자갈이 있는 바닷가를 이렇게 말함) 위에는 앙상한 가시덤불 밑에 늦게 핀 들국화들이 찬 서리를 맞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논둑 위에 깔렸던 잔디들도 푸른 빛을 잃어버리고, 그 맑고 높던 하늘도 검푸른 구름을 지니어 찌푸리고 있는데, 너, 보리만은 차가운 대기 속에서 솔잎 끝과 같은 새파란 머리를 들고, 머리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하늘을 향하여 솟아오르고만 있었다. (보리의 강인한 생명력)
이제, 모든 화초는 지심(地心) 속의 따스함을 찾아서 다 잠자고 있을 때, 너, 보리만은 억센 팔들을 내뻗치고, 새말간 얼굴로 생명의 보금자리를 깊이 뿌리박고 자라왔다.
날이 갈수록 해는 빛을 잃고 따스함을 잃었어도(겨울로 접어듦) 너는 꿈쩍도 아니하고 그 푸른 얼굴(보리의 파란 새싹, 희망과 기다림을 잃지 않은 모습의 중의적 표현)을잃지 않고 자라왔다.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이 너의 등을 밀고, 얼음같이 차디찬 눈(보리가 자라는 기상적인 악조건이면서 고난과 역경의 뜻을 함축)이 너의 온몸을 덮어 억눌러도, 너는 너의 푸른 생명을 잃지 않았었다.(어떤 고난에도 굽히지 않는 보리의 강한 생명력 예찬)
지금 어둡고 차디찬 눈밑에서도, 너, 보리는 장미꽃 향내를 풍겨 오는 그윽한 유월의 훈풍과 노고지리 우짖는 새파란 하늘과, 산밑을 훤히 비추어 주는 태양을 꿈꾸면서, 오로지 기다림과 희망 속에서 아무 말이 없이 참고 견디어 왔으며(보리의 덕성), 삼월의 맑은 하늘 아래 아직도 쌀쌀한 바람에 자라고 있다.
<하략>
한흑구(韓黑鷗 1909-1979)
1909 ∼ 1979. 수필가 · 번역문학가. 본명은 세광(世光). 평양 출생. 1928년 숭인상업학교(崇仁商業學校)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 普成專門學校 ) 상과에 입학하였다. 1929년 도미하여 시카고의 노스파크대학에서 영문학을, 템플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하였다.
수필 〈 젊은 시절 〉 , 시 〈 북미대륙방랑시편 〉 을 ≪ 동광 東光 ≫ 에 발표하는 한편, 홍콩에서 발간되던 ≪ 대한민보 大韓民報 ≫ 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였다.
종합지 ≪ 대평양 大平壤 ≫ (1934)과 문예지 ≪ 백광 白光 ≫ 을 창간 주재한 것으로 전하여진다. 미국에 유학할 때 동인지에 영시를 쓰고 필라델피아의 신문에 동양시사평론을 기고하기도 하였으며, 〈 호텔콘 〉 (1932) · 〈 어떤 젊은 예술가(藝術家) 〉 (1935) · 〈 사형제 四兄弟 〉 (1936) 등 다수의 소설 창작과 함께 시작과 번역 · 평론을 병행하였다.
1939년 흥사단사건에 연루되어 피검된 일을 계기로 글을 발표하지 않았다. 광복 후 1945년 월남하여 수필 창작에 주력하면서 1948년에 서울에서 포항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이 무렵부터 〈 최근의 미국문단 〉 (1947) · 〈 이마지스트의 시운동 〉 · 〈 흑인문학의 지위 〉 (1948) · 〈 윌터휫트맨論 〉 (1950) 등 미국문학 및 작가론에 대한 평론을 발표하였다.
특히 ≪ 동광 ≫ · ≪ 개벽 開闢 ≫ 등에 흑인의 시를 최초로 번역, 소개한 대표적인 전신자(轉信者)로 일컬어진다. 저서로 ≪ 현대미국시선 現代美國詩選 ≫ 을 편역하여 1949년 선문사(宣文社)에서 출간하였다.
〈 하늘 〉 · 〈 바다 〉 · 〈 사랑 〉 (1949)을 위시하여 〈 눈 〉 · 〈 보리 〉 (1955), 〈 노년 老年 〉 (1965), 〈 갈매기 〉 (1969), 〈 겨울바다 〉 · 〈 석류 石榴 〉 (1971), 〈 들밖에 벼향기 드높을 때 〉 (1973), 〈 흙 〉 (1974) 등 100여 편의 수필을 남겼다.
수필집 ≪ 동해산문 東海散文 ≫ (1971)과 ≪ 인생산문 人生散文 ≫ (1974)을 각각 일지사 ( 一志社 )에서 출간하였다. 1958년부터 포항 수산대학(水産大學)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4년 같은 대학에서 정년 퇴임하였다.
자연물로부터 소재를 가져온 그의 작품은 서정적인 문장과 산문시적 구성으로 아름다움의 진실을 추구하고 있으며, 생명의 존엄성과 다른 생명체와 동등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겸손에 관심을 표명하였다.
시적 구성의 아름다움과 작품에 일관하는 인생에 대한 관조는 한국 수필문학이 창작 문학의 본령으로 자리를 굳히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 참고문헌 ≫ 韓國近代詩의 比較文學的硏究(金 軟 東, 一潮閣, 1981), 新人紹介 其二-韓黑鷗君-(朝鮮文壇編輯部, 朝鮮文壇 23, 1935), 隨筆의 散文詩的構成考-韓黑鷗 隨筆을 中心으로-(吳昌翼, 韓國隨筆文學硏究, 敎音社, 1986).
동해 산문
한흑구의 첫 수필집. 책머리에 "동해 산문'이라고 붙인 것은 동해에 대해서 썼다기보다는 동해변인 포항에 대해서 썼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라고 제호의 연유를 밝혔고, 시인 서정주는 '발(跋)'에서 "외우 한흑구 형이 이경(離京) 이십 수년 만에 그의 그 동안 동해변의 사색들을 모아 이 '동해산문'을 내게 된 것은 무척 반갑고 기쁜 일이다"라고 밝혔다. 수필 나무 등 26편 문단 교우록 3편, 수필론 2편 등이 실렸다.
농업박물관
http://www.nonghyup.com/a_allnacf/14_museum/museum/index.html
보리는 밭이나 논에 심어 기르는 두해살이 곡식입니다. 밀처럼 가을에 씨앗을 뿌려서 이듬해 초여름에 거두어들이지요. 보통 콩이나 조를 거두어들이고 난 밭에 뿌리거나 논에 뿌려요. 어린 잎으로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쑥쑥 자라나서 6월이면 누렇게 익지요.
뿌리는 수염뿌리이고 줄기는 곧게 자라며 속이 비어 있고 매끌매끌합니다. 줄기에는 마디가 지는데 마디에서 끈처럼 생긴 긴 잎이 나옵니다. 4∼5월쯤 줄기 끝에서 이삭이 나와서 노리끼리한 꽃이 피는데 이것을 ‘보리가 팬다’고 불러요. 이삭에는 짧은 털이 있는데 나중에 끝이 길게 자라서 까끄라기가 됩니다. 바람의 도움으로 가루받이를 하면 알곡이 맺어서 6월쯤 여물어요. 보리의 겉겨를 벗겨 내면 우리가 먹는 보리쌀이 되지요.
보리는 매우 중요한 잡곡이에요. 초여름에 거두어들여서 쌀이 나오는 가을까지 밥을 지어 먹었으니까요. 보리는 가루를 내어 된장 담글 때도 쓰고 싹을 틔워 엿기름도 내지요. 엿기름으로는 식혜나 조청, 엿을 만들어 먹지요. 겉겨째로 볶아서 보리차를 만들기도 합니다. 맥주나 양주의 원료로도 쓴대요.
분류 벼과
잘 자라는 곳 밭에서 심어 기른다.
다른 이름 맥, 겉보리
꽃 피는 때 4∼5월
베는 때 6월
쓰임 밥을 해 먹는다. 또 엿기름을 내거나 볶아서 차를 만든다.
가꾸기 늦가을에 심고 이듬해 초여름에 거둔다.
(출처 : http://210.96.7.15/wbig/cockio/non/보리.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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