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와 나르키소스
by 송화은율
에코와 나르키소스
나르키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이다.
그를 한번 본 처녀는 누구나 다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으나, 나르키소스는 제아무리 아름다운 소녀라 할지라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숲의 여러 요정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코가 그를 좋아하며 뒤따라 다녔지만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에코는 너무나 열렬하게 나르키소스를 생각한 탓에 여신 헤라의 비위를 거슬리고 말았다. 여신이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의 행방을 물을 때,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던 에코는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여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 "이제부터는 수다를 떨지 못하게 남이 하는 말의 끝 부분만 되받아 말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지."
그 후부터 에코는 자유로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여신이 말한 것처럼 남이 말한 끝 부분만을 되풀이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르키소스를 뒤쫓아다녀도 말을 걸 수 없었다. 이젠 상대편의 마음을 끌기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절호의 기회가 왔다. 나르키소스가 숲 속에서, "거기 누가 있어?" 하고 불렀던 것이다. "있어. 있어!" 하고 에코는 나무 그늘에서 정신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나르키소스는, "누구냐? 이리 와" 하고 불렀다. 에코도 기뻐하며, "누구냐? 이리 와" 하고 나무 그늘에서 뛰어 나왔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난 또 누구라구. 너 따위와 같이 어울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하며 획 돌아서고 말았다.
에코는 슬프고 또한 부끄러웠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가느다란 소리에 말하고는 쓸쓸히 동굴 속에 몸을 숨기고 말았다. 그리고 굴 속에 들어 박힌 채 슬퍼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윌대로 야윈 나머지 마침내 소리만 남게 되었다.
한편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나르키소스가 남은 사랑할 줄 모르는 것에 화를 내었다.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네메시스의 저주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물을 마시려고 샘가 에 웅크리고 앉은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자 온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는 마참내 그 자리를 떠나는 것도 잊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쓰러져 버렸다. 에코는 실같이 야윈 몸으로 동굴에서 나와 나르키소스의 곁으로 왔으나,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다만 나르키소스가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여, 안녕!" 하고 말했을 때 에코도 슬픈 목소리로 "안녕!" 하며 마지막 말을 되풀이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르키소스는 마침내 죽었다. 마음씨 고운 요정들은 평소에 나르키소스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을 잊고 이 아름다운 젊은이를 묻어 주기로 했다. 그러나 요정들이 샘 가에 와 보니, 나르키소스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쓰러졌던 자리에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다. 그리하여 모두들 이 꽃을 나르키소스[수선화]라 부르기로 했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자기 영혼이라는 생각은 옛 부터 있었다. 또 수선화는 종종 죽음을 연상시키는 꽃이라 여겨졌으며, 풍요의 여신의 딸 페르세포네도 이 꽃에 마음이 끌려 초원에서 놀다가 저승의 왕 하데스에 끌려가서 그의 아내가 되었다. 좌우간 죽음의 신이 나르키소스에게 단단히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대체로 우화적인 것이 많은데 이 나르키소스 역시 그러하다.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어 갈 만큼 강렬한 자기애란 지극히 근대적인 테마이다. 근대의 정신분석 학자는 응당 여기에서도 정신의 한 형태를 발견케 됐다. 넥케는 성도착자의 자기애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처음으로 나르시시즘이란 말을 썼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인간에 있어서의 리비도 애욕의 발전 단계를 분류하여 기관애, 자연애, 자기애, 동성애, 이성애로 나누고 리비도가 이성애에까지 발달하지 않거나 한 번은 거기까지 도달하더라도 다시 그 이전으로 물러서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리비도가 자기애에 그치든지 그것으로 퇴행하는 경우를 나르시시즘이라 불렀다. 나르시시즘은 보다 더 보편적인 에고이즘과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데, 전자에는 심미적 요소가 있다는 점에서 후자와 구별될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예술적 창조에 있어서 적잖은 구실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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